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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연구소(2004-01-09 16:12:26, Hit : 5890, Vote : 632
 동서양의 평화사상

동서양의 평화사상

안병무


머리말

동서양의 차이를 짧은 시간에 쉽게 구별할 수는 없다. 동서양 모두 넓은 지역과 긴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특별히 어느 지역이나 어느 시대를 잘라서 이야기하지 않는 한 그 차이의 지적은 추상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평화라는 문제를 중심에 두고 동서양 사상의 차이를 찾으면 양쪽의 이원론을 비교해 보는 만큼 편리한 잣대는 없을 것이다.

I. 이원론의 이해

기독교를 골격으로 한 서구의 이원론은 적대적이고 영원한 평행을 이루고 있다. 이 평행은 어느 시점에서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희랍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려는 사명의식을 갖고 세계정벌을 시도했는데 그 도상에서 중동아시아의 고대종교를 만나게 되었다. 이 고대종교의 골격은 철저 종말론이다. 이 철저 종말론의 구도는 이렇다. 악과 선이 영원한 적대관계를 갖고 갈등관계가 지속되는 것이 바로 이 세계의 역사다. 그것이 적게는 다툼, 크게는 전쟁을 일으킨다. 이 선과 악이라는 분류는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의 육체가 악의 거처라면 정신은 선의 근거지다. 여기에 인간의 갈등과 고통이 있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평화의 길은 이 악이 영원히 제거될 때이다. 그것이 바로 철저종말론이다.
이 같은 중동아시아의 고대종교와 이성(Nus)을 중심에 둔 희랍사상이 로마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른바 그레꼬 로마라는 새로운 문화권이 형성되었는데 그것을 헬레니즘이라고 한다. 이 헬레니즘은 알렉산더 이후에도 계속된 정벌영역과 로마의 판도에 그대로 전파되어 나갔다. 그 중에 팔레스틴 유다도 포함됐는데 유다교의 종말사상과 헬레니즘 속에 전파된 이원론이 만나서 새로운 형태의 종말론이 형성됐다. 그리스도교의 전제인 예수는 바로 이 유다에서 나서 이 종말론을 그의 사상의 중심에 두었다. 그러나 이원론의 철저화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 전 인류가 하나되는 궁극적인 평화의 현실인 하느님의 나라로 집약되었다(마 8:11). 예수는 국적으로 하면 이스라엘이요, 지역으로 말하면 중동지방 출신이다. 그런데 헬레니즘 영역 구라파에서 발달된 그리스도교에서 이 평화 사상은 후퇴되고 종말 사상 안에 담긴 이원론이 세계관, 역사관에 골격을 이루었다. 악의 근원은 사탄의 왕국으로 상징되고 선의 근원은 하느님의 나라로 상징되었다. 그러므로 두 세계에 공존하는 역사 현실에서는 갈등, 투쟁, 아니면 힘에 의한 정복으로 강자가 약자를 흡수하거나 유린할 수밖에 없는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를 종교 중에서 가장 피를 많이 흘린 종교가 되게 했고, 서구 세력이 근세에 와서 세계를 정복하고 식민지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 무모한 십자군 사건도 바로 그러한 구도에서 생겨난 것이고 갈등구조에서 계급 투쟁을 극단화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폭력혁명을 골격으로 하는 마르크시즘도 결국 이러한 서구의 이원론에서 그 원천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 동양의 이원론은 전혀 다르다. 동양의 이원론은 바로 음·양 사상이다. 음과 양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다르기 때문에 적대관계를 이루어 영원한 평행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음은 양을 필요로 하고 양은 음을 필요로 한다. 음이 있어서 양이 가능하고 양이 있어서 음이 가능하다. 남자와 여자는 분명히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남자 없이 여자를 생각할 수 없고 여자를 뺀 남자도 가능하지 않다. 이런 기본 사상의 바탕에서는 영원한 원수도 없으며 따라서 영원한 대결도, 모순도 없다. 어떤 외적 조건에 의해서 비록 원수 관계가 형성됐더라도 바로 그 원수마저도 내게 필요한 대상이 될 수 있다. 동양의 이원론인 음양사상은 앞으로 시각에 따라 더 밝혀질 것이다.
이 이원론의 틀에서 몇 가지 시각으로 두 사상의 형태와 그 결과를 밝혀 보겠는데 전체 흐름에서 주목하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자세이다. 서구의 논리학은 A는 A이지 A는 B가 아니며 될 수 없다는 것이 바탕인데, 이로써 A는 주격이라면 B는 객체다. 그런데 A는 영원히 A로밖에 있을 수 없고 B, 즉 다른 것, 대상과의 만남의 길이 막혀 있다. 그런데 저들은 나와 너(B)는 완전히 다르다는 데 악센트를 두고 있다. 이런 시각이 현실적으로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다음에서 볼 수 있다.

1. 자연관
내가 A인 데 대해 자연은 B다. A는 B가 될 수 없기에 인간은 자연 안에 살면서도 자연이 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공존의 운명을 가졌으면서도 언제나 갈등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자연과의 공존의 길은 정복뿐이다. 그 정복의 자세는 원수를 정벌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자연정복이 개발이라는 형태를 띠고 마침내 오늘의 공업화 시대로까지 몰고 오게 되었다. 그 결과는 생태학에 위기를 가져오고 마침내 자연이 오염됨으로 인간이 살 수 있는 거처가 영원히 없어질 상황에 이르렀다.
저들이 자연을 관찰한 결론도 생존경쟁, 약육강식이라는 말로 집약했다. 즉 자연을 먹느냐, 먹히느냐의 각축장으로 본 것이다. 그런 눈으로 보면 자연은 결코 평화의 장이 아니다.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자연은 그대로 두면 해로운 대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그것을 정복(개발)하여 변질시키는 의지로 형성된 것이 서구적 문화이다.
이에 대해서 동양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관계에 두고 있다. 가령 동양에서 자연과 사람을 총괄하는 개념으로써 기(氣), 맥(脈) 등이 있는데 인간에게 맥이 있듯이 자연에도 맥이 있다고 본다. 산맥이 있고, 화산 맥도 있다. 기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연 전체를 꿰뚫고 있다. 자연과 인간은 너, 나로 구별하지 않는다. 사람을 살게 하는 기는 자연에 퍼져 있다.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사람에도 있다. 사람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자연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과 자연은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이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정복할 수는 없다. 사람에게 살려고 하는 의지가 있듯이 자연에도 살려는 의지가 꿈틀거린다. 곤충이나 사람만이 아니라 식물 아니 땅 자체도 살아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함부로 자르고 부수는, 즉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그런 무모한 짓은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돌 하나 옮기고 나무 한 대를 베는 데 얼마나 조심하며 무덤자리 하나를 찾는 데 자연의 구조를 얼마나 중요시하는가. 자연은 사람과 더불어 살며 사람이 의지해서 살 수 있는 것이기에 사람이 사는 것도 언제나 자연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지역을 선택한다.
동양은 자연을 인간의 본래 모습을 지닌 대상으로 보며 타락한 인간이 상실된 자기를 찾을 수 있는 본향으로 보는 것이다. 사람이 계속 다니므로 형성된 땅 위의 길과 사람이 지킬 도리(道)는 근본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자연이 정복의 대상이 아니므로 동시에 소유의 대상도 아니다. 땅을 소유하는 것이 곧 인간이 사는 가장 확실한 보장이라고 생각하는 서구인들의 이해와 땅의 정복, 그것은 곧 약한 민족 혹은 나라를 침범하는 것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에서 땅을 점령하는 역사를 회상해 보면 저들이 자연을 보는 시각이 마침내 사람에게까지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자연을 경쟁의 장으로 보는 것이 바로 전쟁을 정당화하고, 전쟁에 의해서 노획한 권리를 정당화하려는 심리로 발전된 것이다. 동양인의 눈에는 자연은 인간의 스승이며 평화의 궁극적인 모습이다. 자연은 평화의 현장이다. 그러므로 동양의 시인들은 서양에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더 많이 자연을 노래한다. 불살생을 주장하는 불교도 이러한 자연에 대한 존엄을 나타낸 것이고 도교는 궁극적으로 무위라는 것을 인간의 상도(常道)로 삼는데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연을 본받으라, 혹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로 자연존중의 철저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2. 윤리관
인간의 관계에서 윤리가 형성되는데 A는 A고 B가 아니라는 도식이 관철될 때, 그리고 나 아닌 B는 바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대상이라는 사고가 발전되면 결국 윤리는 형성이 안되고 만다. 상대방을 언제나 대상으로 보는데 그럴 경우 그 대상은 내게 어떤 이익을 주느냐 해로움을 주느냐 하는 계산이 따르게 된다. 즉 상대방이 너로써 즉 나와 똑같은 주체로써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어떤 물건과 같이 용도에 의해서 평가되는 대상이 되고 만다. 이원론이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치면 나와 이해관계를 달리하거나 또는 문화적으로나 혈통으로 다른 자는 공존의 대상은 물론 아니고 적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원론적인 자세가 마침내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배타주의를 합리화하게 된다. 언제나 나와 너의 공통성보다 나와 너의 차이점을 물음으로 나의 경쟁자 아니면 가해자, 나가서는 적으로 상정한다. 나 아닌 자(stranger)는 일단 관찰해 보고 감시해 보고 경계심을 가져야 할 대상으로 출발한다. 이런 상태에서 관계가 꼬이면 사적 차원에서는 충돌을 일으키고 소집단적 차원에서는 습격이 일어나고 종족 이상을 넘어서면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소유욕이 바로 이 이해관계의 핵심이다.
자연에 음양이 있듯이 사람, 그리고 사람의 관계도 음양이라는 시각에서 보는 동양의 윤리관은 이 틀에서 골격이 잡힌다. 중국 사상에는 자연과 인간을 꿰뚫는 다섯 가지 흐름, 맥이 있다고 본다. 오행(五行)이 그것이다. 오행은 자연 형성의 골격일 뿐 아니라 인간, 그리고 인간 사회의 질서이기도 하다. 오행은 물질적 요소인데 그것이 그대로 인간 생리 구조에도 적용되며 인간 생활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을 보는 기본적인 틀이 있기 때문에 서구와 같은 의미의 노예제도는 있어서는 안된다. 까닭은 사람은 권리나 경제적 차이로보다는 오행으로 한데 묶여 있기 때문에 공동운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 자체를 존중하지 않는 윤리 질서는 계급이나 신분주의에 기울어 갈등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설정된 이 오행이나 오륜이 반드시 인간의 현실에 꼭 맞아떨어지는지는 문제이나 그것은 적어도 지배자와 피지배자, 나와 원수를 구별하려는 그런 질서가 아니고 더불어 마찰 없이 살려는 질서를 구상한 것이다.
서구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他者)은 A는 A이지 B는 될 수 없다는 논리에서 영원히 만날 수 없거나 경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데 대해서 동양에서는 공존과 협동으로서만 살아갈 수 있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 반려이다.
3. 정치관(국가관)
서양의 정치 내지 국가관의 형태를 결정한 것은 그레꼬 로마시대다. 희랍의 폴리스 체제는 시민과 비시민, 다른 민족이나 다른 집단에 대해서 방어적이고 배타적인 집단 체제이다. 폴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이었다. 로마는 헬라를 정복하면서 문화적으로 헬라에 정복되었다. 그리고 희랍 문화가 퍼진 길을 따라 그 판도를 폭력으로 넓혀 나갔다. 로마의 법은 지금 구라파의 법의 원조이다. 그런데 그 법을 지탱해 나가는 기둥은 폭력이다. 로마의 정치가이며 사상가인 시세로(Cicero)는 정치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폭력을 빼고 어떻게 폭력을 어거할 수 있느냐”고 한 말은 유명하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와 접합함으로 이미 헬레니즘에서 깊이 뿌리를 박은 이원론에 의해서 국가라는 것이 절대권을 부여받았다. 그 이유는 악의 세력을 절대화하므로 그것을 통제할 책임과 권한을 국가에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를 기독교적으로 수용한 토마스 아키나스(Aquinas)는 국가는 단순히 외적인 삶의 질서를 지켜주는 제도가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 그리고 윤리 행위도 완전하게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요구에 걸맞게 국가는 절대의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란 결국 권력을 얻기 위한 싸움을 의미한다(M.Weber).
그런데 마키아벨리(Machiavelli)에 와서 도덕적 사고나 요소를 정치에서 완전 제거해 버리므로 정치 내지 정부는 힘의 집단으로 남게 되었다. 정부를 공적인 폭력, 민에 대한 주권, 압제, 권위, 설득, 심지어는 칼이라는 말로 상징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서 동양의 정치관은 전혀 다르다. 공자는 가장 이상적인 시대를 요순 치하(治下)의 국가 형태에서 본다. 그 성격은 비록 임금이 있으나 민은 임금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의식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가 일면 왕도정치를 구상하고 봉건주들을 설득하여 주나라 시대에로 돌리려고 했으나 그것은 결코 중앙집권자로서 한 세력이 통치할 수 있는 제도를 구사한 것이 아니라 세력싸움을 방지하고 인간을 가장 평화적으로 살게 하는 길, 즉 대표적인 사람의 덕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꾸려 나가는데 목적이 있었다.
도교는 이보다 훨씬 앞으로 나간다. 노자는 어떤 형태로나 중앙집권이 가능한 생활 양식을 거부한다. 이상적인 삶의 모습으로는 조그마한 마을들이 새벽 닭소리를 들을만한 거리로 분산되어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그는 통치를 극도로 경계하여 윤리적 체제마저도 통치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거부함으로 마침내 무위 즉 다른 말로 하면 자연에로 돌아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통치는 물론 덕치도 그에게는 경계의 대상이다. 불교도 그 원리로 보아 폭력이나 권력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체제로써의 국가를 생각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조그마한 곤충의 살려는 의지마저도 존중하여 불살생을 신조로 삼으며, 모든 사람은 물론 모든 생물에게까지도 불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민이 어떻게 일개 권력집단의 도구로 사용되거나 사살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동양은 나라를 하나의 집으로 보고 있다. 국가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부모와 자식들 그리고 가까운 혈연이 함께 사는 집단이 나라라면 그것은 원칙적으로 평화롭게 사는 공동체를 전제한 것이다.

II. 동양평화 사상의 한국적 수용

한국의 특수성을 혼합주의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혼합주의는 우리의 다른 말로 한다면 조화(造化)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고, 영어로는 harmony와는 다르다. 조화란 여러 가지 것을 수용하여 용광로 역할로써 제3의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 생산력을 의미한다. 유불선(유교, 불교, 그리고 선(도교))은 각기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들이 한국에 모두 유입됐는데 이조시대에 정책적으로 유교를 국교로 삼으므로 불교를 배척한 것 외에는 서로 충돌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최치원이 전한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특수한 현상인 화랑도의 성격은 화랑도의 자주적 정신을 유불선으로 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분명히 다른 셋이 한 몸에 들어와 조화를 일으켜 새로운 사람을 만든다는 전제이다.
한국에는 서구나 일본에서 보는 것 같은 봉건체제가 없었다. 그것은 역대로 왕권이 튼튼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헤게모니를 추구하여 군할하려는 무리들이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가끔 민란은 있었어도 왕권에 대립한 다른 세력의 구심점을 추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권력욕에 맛을 들인 왕권 주변에서 도는 일부를 제외하면 왕은 언제나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태평성세의 상징으로 섬기고 또 그런 것을 기원하는 대상이었다.
우리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종교가 들어 와도 민중의 종교인 무속에 의해서 조화를 이룩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무속을 잘 모르나 그 중심에는 기가 서 있다고 판단한다. 이 기로써 모든 종교간의 담을 넘고 굿을 함으로써 피 억압자인 민중들의 한을 풀고, 관리들의 착취와 포악에 견디다 못해 폭발하는 폭력행위를 순화하는 길이, 굿판이 놀이판으로 이어지게 함으로 축제를 통해 자기 분노의 승화를 꾀한다는 것은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부모의 원수를 찾아 땅 끝까지 헤매었다는 효자들의 무용담도 가끔 보이나 원수를 용서하고 화해함으로 특이한 우정을 조화해 냈다는 이야기가 더 지배적이다. 우리의 탈춤도 성격상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농노들이 언제나 눌려 살면서도 양반계급에 대한 분노를 삭히는 방법으로 연중 정해진 날에 민중의 축제를 벌인 것이 바로 탈춤판이다. 이 탈춤판에는 양반도 상놈도 중도 무당도 등장하고 상놈을 대표한 말뚝이가 오늘의 언론기관을 대표한다. 양반을 비판하고 종교계의 추태를 폭로하고 성 문제를 공개한다. 말뚝이는 민중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아래로부터 위를 보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축제가 관료나 귀족들의 동의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통치수단의 하나였겠으나 공존의 불가피성을 전제하고 비록 구조적으로 지배, 억압하고 있으며 피지배자는 말이 없으나 그들에게 쌓인 스트레스나 불만을 지배층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지배층은 저들을 가리켜 상놈이라고 했으나, 그것의 본뜻이 한자로는 상(常)인데서 나타나듯이, 저들만이 언제나 있어야 할 존재고, 있는 존재고, 있어야할 존재고, 가장 정당한 길을 걷는(常道) 사람들이라는 뜻을 사실 인정하고 있다.
샤머니즘은 자연을 존중하는 동양의 사상을 그대로 답습함에 그치지 않고 자연 하나하나를 섬기기까지 했다. 평화로운 삶을 희구하는 저들은 인간관계 감정을 승화시킬 뿐만 아니라, 하늘과 사람의 관계는 물론, 이승과 저승, 사람과 귀신과의 관계도 공존 내지는 서로 상대방의 위치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참 평화가 온다고 믿었다.
풍수설의 한국적 수용은 철저하여 산 사람과 죽은 자, 혹은 자연과 사람이 같은 기를 마시며 같은 조건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평화적인 사상을 제도로, 생활로 드러낸 것이다. 끝으로 우리 민족이 한번도 자기 국경을 넘어 남의 나라를 침범한 역사가 없다는 것은 제국주의나 군국주의에서 보면 일면 창피한 사실이나 제국주의나 군국주의의 죄를 직시하고 평화적 공존만이 인간의 살길이라는 것을 인식한 오늘의 눈에서 보면 한국이 얼마나 평화적인 민족이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무(武)를 숭상한 일이 없다. 선비 사(士) 자를 일본도 한국도 공용으로 쓰고 있으나 일본은 이 말을 곧 무사와 연결시키는 데 대해 우리는 문사를, 즉 선비를 연계시킨다. 일본인의 상징이 칼이라면 우리 민족의 상징은 붓이었다.
홍익, 대동, 태평 등이 근대 이후 우리 민족의 목표였고 너는 내가 아니고 내가 아닌 것은 원수라고 분열, 분리를 앞세우고 마침내 철저한 이기주의에 떨어진 서구인들이 주도한 서구문명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일본은 무력으로 계속 우리를 쳐들어 올 때 우리는 갓 쓰고 붓을 든 선비들이 일본으로 계속 파견되었다.

III.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결론으로 우리 현장에서 평화란 어떤 상태인가를 다시 물어보며 결론을 유도하려고 한다. 서구에서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의 균형밖에 없다는 입장이 강세를 보여 2차대전 이후 긴 냉전체재를 산출했다. 이 냉전체재가 이 땅 위의 인간관계를 사실상 둘로 쪼개고 서로 반목 질시할 뿐 아니라 상대방을 원수로 간주하는 것이 곧 자기 영역을 지키는 것이라는 논리가 정당화되었다. 이 냉전체재에서 가장 피해를 받은 것이 우리 민족이다. 38선은 이 냉전체제가 그어 놓은 칼자국이다. 평화는 힘의 균형만 이루면 된다는 사고는 군국주의적인 힘의 논리이다. 그리고 그것이 설정한 평화는 결국 전쟁을 방지한다는 것이다.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가. 전쟁만 없으면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전쟁은 무기로써 힘을 겨루는 것인 데 대해 지금은 무기 대신 경제의 힘을 가지고 세상을 경쟁의 각축장으로 삼고 있다. 고도의 기계 문명의 성장을 구가하는 오늘에 사는 인간이 평화로운가. 그렇지 않다. 전에는 전선에서 적에 맞서 싸우는 한계적인 전쟁이었으나 지금은 전선이 따로 없다. 이 경제적 싸움은 언제든지 무기로 전환할 내면성을 갖고 있다.
근본적인 평화의 성립은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사물과의 대립구조를 극복하고 상부 상조함으로만 살 수 있다는 인식과 그에 걸맞은 체제가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너를 치고 내가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너 없이 내가 살 수 없다는 올바른 인식에로 도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양 영향을 받아옴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도움을 받아 왔다. 사물을 구별하는 능력도 배웠고 분석과 비판도 배워 왔다. 특히 그들의 물질문명에서 결정적인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런 문명이 편리라는 이름의 열차에 우리를 실은 채 달리다가 이제 우리를 포함한 인간을 실은 그 열차 자체가 궤도에서 벗어나 깊은 심연으로 추락될 위험성을 앞에 두고 있다. 우리는 서구 문명에서 혜택을 봄과 더불어 인간 자체가 소외되고 인간 관계가 이기심으로 모래를 담은 자루같이 응결력을 잃어 가는 것을 보고 있다. 물질을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 이용하는 상태가 아니고 날이 갈수록 인간은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그와 더불어 서구에서 몰려오는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침투되어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적 삶이 크게 위협받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전통의 붕괴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태에 있다. 이기주의는 집단적으로는 남을 종속적 관계에 몰아넣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힘(경제적 힘도 포함)으로 상대방을 침략해서 굴복시킨다. 세계 평화를 위해 민족자결을 내 세우고 그 바탕에서 세계협조체제구축을 주장했던 윌슨과 그 아메리카는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 이상은 좋으나 자국 내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미국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분열과 지배라는 전략을 금과옥조같이 사용한다. 그런 상태에서 지금 세계개방이라는 구호로 제3세계의 무장해제를 기도하고 있다. 한국은 이에 덩달아 국제화에서 진일보하여 세계화라는 모호한 말로 우리의 삶의 구조를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국내 정치는 세계화는 고사하고 개방할 마음도 없다. 아직도 안기부를 내세워 비밀정치를 하고 정보를 독점하고 대통령은 모든 중대한 결정을 자기 진영과의 의논도 없이 밀실에서 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권위주의 탄생이라고 한다. 언론 탄압 정책은 고도의 수단으로 계속된다. 무슨 외적 증거를 필요로 하랴. 신문들의 흐름을 보면 안다. 비판정신을 면도칼처럼 내 세워야 할 신문들도 언젠지 모르게 솜방망이가 되었다. 대통령 한 사람의 천하인 양 그의 눈치만을 보는 민족국가로 비친다. 그러나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저들은 신문논조에 따르지 않는다. 저들은 저항한다. 그러나 그 힘을 응집할 지도력이 없다. 그래서 지금 이 민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열됐다. 모래를 담은 자루와 같다.
나는 위에서 우리의 소질과 능력이 ‘조화’라는 데 있다고 했다. 그리고 홍익, 대동, 태평 등의 구호에 우리의 자세가 반영되어 있다고 했으며 그것은 평화를 추구하는 큰 비전과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주체의식이 없거나 희미해지면 그저 세계물결에 흘러가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되어지는 대로 자기 운명을 내 맡길 수 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무책임한 민족이 될 수 있다. 태평이란 세계평화를 지향할 때는 굉장한 이상이다. 그러나 주체적 의욕이 빠지면 우리말에서도 나타나듯 ‘세상이 어찌됐든 태평이다’는 식의 태평이 될 수 있다.
이런 마당에서 전쟁만 없으면 평화롭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구인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열차를 정지시킬 능력은 적어도 이원론에 바탕을 둔 서구적 문명도상에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얼마 동안은 인간의 기술발달로 새로운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서 지쳐 버리고 마침내 눈을 동양에로 향하게 되었다. 동양적인 사고에서 지금의 힘의 경쟁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근거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 경제적으로는 아시아, 태평양 시대라는 이름으로 성격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대도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면 서구적 물질문명의 연장이 되고 말 수 있다. 동아시아의 문제는 동아시아 사람들에 의해서 동아시아인의 뿌리에서 출발될 때만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당면한 평화의 과제는 어떻게 서구적 냉전체제에 의해서 분단된 우리의 통일을 대결이나 힘의 논리에 의한 정복이나 균형 등으로 해결하지 않고 너 없이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존의 인식으로 이룰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그 자체로서 존중하고 그 영역을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나는 여기서 간디(Gandhi)를 기억한다. 간디는 힌두교에 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생을 결단하게 된 것은 ‘서양종교’라는 낙인이 찍힌 그리스도교 경전에서 받은 영향이다. 그는 톨스토이에 심취했는데 그에게서 신약성서의 보고(寶庫) 같은 산상설교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산상수훈에서 참 평화의 길을 찾았는데 막연한 평화가 아니라 인도를 강점하고 착취하는 영국과의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배우게 됐다. 그것은 바로 ‘비폭력적 저항’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자기 모순을 지닌 교훈을 주체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한 마디로 이렇다. ‘나는 영국을 사랑한다. 그리고 인도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영국은 제 나라로 돌아가라’, ‘그래야 둘 다 영예롭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운동은 비폭력적 저항일수 밖에 없다.
산상설교에 ‘원수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대라.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벗어 주어라’ 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람이 더불어 사는 평화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얻어 맞어라, 끌려가라, 강탈당해라’ 라는 말과는 다르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이것은 비겁, 비굴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내대라고 한다.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자고 제안하라고 한다. 맞고, 끌려가는 것은 같을지 몰라도 어디까지나 주체적인 결단에 의해서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비겁이 아니다. 약자의 윤리가 아니라 강자만이 할 수 있는 자기 결단, 그리고 용기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왼뺨을 맞고 오른뺨을 맞으며, 오리도 끌려가고, 십리도 끌려가며, 겉옷만이 아니라 속옷까지 깡그리 빼앗길 뿐 주체적으로 결단한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이런 예수의 말을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는 거부하고 남에게만 강요했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를 위해서 주체적으로 이런 것을 받아들인다면 때리는 자와 맞는 자를 영원한 적으로 만들지 않고 둘을 용광로에 집어넣어서 제3의 길, 즉 우리를 만드는 조화의 길, 대동의 길, 홍익의 길, 그러므로 평화의 길을 이룩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공자를 주체적으로 배웠다면 공자가 만일 군대를 거느리고 우리 땅을 쳐들어온다면 공자를 숭상하니까 무조건 백기를 들고 항복할 것이 아니라 마주나가 ‘선생님 이것은 선생님의 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도를 위해서도 이런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하며 정중히 맞서다가 그래도 뜻을 이루지 못하면 공자의 도를 위해, 우리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싸워서 격퇴하는 것이 그를 위하고 우리를 위하는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자세인 것이다.
간디는 우리가 세계를 포용하면서도 주체적으로 세계의 평화를 위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범일 수 있다.
우리는 동아시아에 위치한다. 세계의 무게가 동아시아로 기울어지는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문제는 동아시아인이 해결해야 한다. 여기 한국인이 세계 평화를 위해 주동적 역할을 할 기회가 열렸다.
(살림 97년 8월호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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