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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연구소(2004-01-09 16:13:09, Hit : 8127, Vote : 758
 민중신학이 나아갈 길

민중신학이 나아갈 길

안병무

서설

여러분이 나에게 요청한 강연의 내용은 다음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이제부터 민중신학이 나아갈 길, 둘째는 한국 기독교회의 미래가 있는가, 셋째는 한신의 전통과 그 과제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이른바 하나의 세계로 지향하는 이 시대에 신학의 진로를 관심하는 눈이 지나치게 한국에만 머물러 있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한신의 과제든지, 좀더 넓혀서 한국 교회의 과제든지, 민중신학의 길이든지, 세계의 문제,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인 새로운 시각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도대체 지금의 기독교는 어떤 질문과 도전을 받고 있는가, 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가? 이런 물음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려고 한다. 첫째, 근대사의 이후에 기독교는 어떤 도전을 받아왔으며, 거기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둘째, 세계와의 관계에 있는 한국 기독교 안에서 한신대학의 위상은 무엇이며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셋째, 그 최후의 대답으로서 민중신학은 어떤 대안이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나는 전체로서의 기독교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구조의 핵심을 재확인하고 그것이 오늘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명확히 하겠다.
서구에서 형성된 기독교의 골격은 사도신경이라고 불리는 문서에 요약되어 있다. 많은 신학적 논쟁이 계속되었으나 이 테두리를 벗어나는 신학적 사고는 교권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도신경은 5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며, 신구교(新舊敎) 나아가서는 동방교회까지도 신조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크다. 사도신경은 세 가지 테마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창조설이다. 전능한 하느님이 이 천지를 만드셨다는 것인데 이 천지란 표현 속에 이 우주 안에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우주의 성좌 운행의 궤도나 그때 당시에 인식된 자연 법칙의 모든 법이나 인간 생활의 가치 판단이나 그것을 기초한 윤리 제도나 생활도 모두 포함한다.
가령 성(性)문제를 예로 들어봐도, 하느님이 맨 처음에 아담을 만들고 그 갈빗대에서 하와를 만들었다는 창조설을 내세움으로써 ‘그러니까 남녀는 불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간단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또는 하느님이 처음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는 창조설을 받아들이면 남녀는 본래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이처럼 창조설은 발전되어서 일부일처제도 처음부터 하느님이 결정한 삶의 양식이라고 주장을 도도하게 해 왔다. 이런 창조설 해석은 인류학에서나 사회학 등에서 결혼 제도가 인류가 오래 살아오는 동안에 여러 형태로 변화되다가 마침내 일부일처제로 일단 정착이 되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가진 학설을 한 마디로 외면해 버렸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는 경우,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이 파악하고 있는 천지의 해석에 따라서 창조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전능한 신이라는 데 큰 비중을 두면 둘수록 그것이 어려워진다. 이 천지를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이 살며 경험하는 그 천지에 한정시킬 것인가? 아니면 창조된 물질의 발전 내지 진화까지 하느님의 창조에 포함시킬 것인가? 즉 하느님이 진화하고 변화하는 천지를 창조한 것으로 볼 것인가? 이러한 문제가 아직까지 숙제로 남아 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론인데, 그리스도를 형성한 세계관 내지 우주관이 문제이다. 그리스도론의 성격을 결정한 사도신경의 우주관은 갈릴레오 이전 사람들의 눈에 비친 천지, 즉 세계이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구별되어 있고 사람은 그 중간 지평에 존재한다. 말하자면 삼층천의 세계관이다. 예수가 성령으로 동정녀에게서 잉태했다는 것은 바로 삼층천의 우주관에서 가질 수 있는 필연적인 표현이다. 맨 위의 하늘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지평에로 사람의 몸을 타고 내려온 것이 예수이다. 이런 기본 틀에서 인카네이션 또는 임마누엘 사상이 생겼다. 하늘에 있는 존재가 완전히 자기를 변화시켜 사람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인카네이션이요 임마누엘이다. 인카네이션한 예수는 우리의 영역에 들어왔기 때문에 십자가에 처형되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죽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오르사 하느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이제 심판을 하러 이 세상으로 다시 오리라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인간 지평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고 부활은 인간 지평 아래로 내려갔던 예수가 인간 지평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고 그가 하늘에 오르사 하느님 우편에 앉았다는 것은 인간 지평에서 그 위의 세계로 갔다는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론에서 삼층천이라는 우주관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삼층천적인 세계관을 고집하기 때문에, 어쩌면 거기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나 그가 역사상에 남긴 그의 삶은 동정녀에게서 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처형되었다는 얘기 외에는 그가 한 말이나 그의 삶에 대해서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어떻게 그리스도를 그리는데 그를 통해서 일어난 그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이렇게 묵살될 수 있는가. 삼층천적 세계관을 뺀 그리스도론은 어떻게 가능한가?세 번째 문제는 삶 내지 생명에 관한 것이다. 예수가 생명을 받은 일이 그의 세상에 나는 일이고 빌라도에 의해서 처형되는 것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다. 이에 대해서 하늘에 올랐다는 것은 이 삶과 죽음을 초월한 또 하나의 존재 양식을 말한다. 그가 최후 심판을 할 때에 핵심적인 과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일이다. 그만큼 생명이, 또는 삶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러므로 마지막 고백은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로 되어 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생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오늘의 세계에서는 사람의 생활 양식을 산다, 죽는다는 이원적 표현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정말 삶을 인간 개체의, 운명의, 한 존재의 현상으로 파악할 것인가? 육체의 병을 다루는 의사들은 산다는 것을 규정하는 데서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싸움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심장이 정지할 때까지가 사는 것이라고 규정해 왔다. 그러나 완전히 무의식 속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도 심장은 오년이고 십년이고 여전히 뛰는 경우가 있다. 회복가능성이 없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심장이 뛰기 때문에 산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서 안락사의 문제까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기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삶을 인간에게만 국한시킬 수 있는가? 최후의 심판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국한시켜도 되는가? 그렇다면 역시 삼층천적인 세계관에 따라서 생명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죽는다는 것은 인간의 지평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인간 지평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다 썩어 없어진 시체마저도 부활할 때에는 저들이 육체를 다 회복하고 인간 지평으로 다 되돌아오는 것으로 주장한 종말관이 여전히 살아 있다.
지금 우리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상태에 와 있다. 사람들이 인간의 장기를 마음대로 이식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으며, 임신도 사람과 사람과의 접촉이 아니라 체외수정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동정녀라고 금을 그은 그리스도론에도 문제가 있지만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인간의 존엄성에도 문제가 있다. 더 놀라운 일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복제 인간이 가능하다고 단언하는 상태다. 이미 동물에서는 그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것이 사람에게로 옮겨지면 그 이상 개인이 있을 수 없고 고유성을 주장할 길이 없다. 가령 안병무가 하나가 아니고 똑같은 것이 스물, 서른이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생명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서 한정되듯이 유한한 것이라는 주장이 옳은가? 다시 살며 영원히 사는 삶을 인간에게만 국한시키는 것이 옳은가? 번연히 생물의 세계는 넓고 넓은데도 말이다.

근세사 이후에 기독교가 받은 도전과 대응 자세

나는 지금 근대사라는 한계를 그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 와서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있어서 하나의 큰 도전이요, 오늘의 세계 내지 사회에 의식 구조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갑자기 한 세대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제 지명하는 사람들이 완성한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산업혁명 이후에 등장한 인물들이며, 오늘과 같은 산업 사회 혹은 포스트 산업 사회가 무슨 문제를 안게 될 것인지를 가장 구체적으로 실험적으로 집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챨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등이다.
아담 스미스를 제외하고 다윈에서 아인슈타인까지 한 백년 사이에 서구 기독교는 그들로부터 거창한 도전을 받았다. 산업사회는, 그 이름이야 정보사회라는 말을 쓰거나 기술사회라는 말을 쓰거나간에, 그들을 거점으로 하여 발전하여 왔으며, 그들이 예언하다시피 한 세계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오랜 것이, 기독교에 대해서 큰 포문을 연, 챨스 다윈의 진화론이다. 기독교는 긴장하고 이 학설을 진멸하려고 온갖 준비를 했었으나 단 한 번의 회전 끝에 포기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공교회적으로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마르크스는, 가장 고귀하던 인간에게 자본이라는 것이 새로운 힘으로 등장하여, 어떤 부분에서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간을 노예화하고 마침내 소외시킬 것이라고 산업사회의 현실을 고발하였다. 이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는 신의 존재도 창조의 질서도 없다. 우리는 그의 정확한 세계 질서의 진단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했는가?지그문트 프로이드에 와서 사람을 지배하는 실제의 힘의 거점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하느님이 사람을 이끈다거나, 양심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윤리가 사람을 이끈다거나, 그 어떤 지능적인 판단으로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프로이드는 우리를 움직이는 실제의 힘은 우리의 의식의 세계에서 보면 우리의 의식이 아니라 무(無)와 같은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칼 마르크스가 산업사회를 상층구조와 하층구조로 나누어 본 것과 같이, 인간을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나누어서 보았다. 실제로 인간을 움직이는 거점인 무의식 세계, 곧 하부구조는 상부구조에 의해서 포로가 되고 감금이 되고 압살되다시피 하여 의식의 영역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부세계를 형성하는 주범이 누구인가? 그것은 서구에 있어서는 바로 그리스도교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인간 됨을 억누르고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상태에 빠트려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스스로 이중 구조 속에 몰아넣어서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게 해 왔다.
아인슈타인에 와서, 이미 갈릴레오에서 시작되어서 뉴턴을 거쳐 온 입장인 이른바 삼층 체계적인 세계관은 아무 쓸모 없는 낡은 휴지로 전락하게 되었고, 세계를 물(物)이라는 것이 활동하는 광활한 공간으로 보게 되었다. 오늘날 과학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 가운데 신을 전제로 하는 사람은 없다. 생물과 무생물의 한계도 없어졌다. 우리는, 무생물로 무시해오던 저 돌덩이와 사람의 기술이 합작을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그 주인이 되어야 할 인류 전체를 순식간에 몰살시킬 수 있다는 예고를 받아왔다. 실제로 그 가능성을 실험으로 보여주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신이 하늘에서 종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저 물(物), 저 무생물이라고 소외해 버렸던 것이 실질적인 종말을 가져오는 에너지를 보유한다. 여기에 대해서 기독교는 무엇을 말하는가?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사람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로서 가치관이나 윤리 규범을 지킴으로써 자기 자리를 찾는 존재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으로서 생명을 가진 존재로 해방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전제했다.
챨스 다윈은 그의 진화론에서, 생물의 미미한 단세포적인 아메바에서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해하고 있는 생물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는 없고, 존재한 자기 상황과 깊이 연계되어 여러 모양으로 심지어 종(種)까지 변질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생명이라는 것이 변화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존재하는 장소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무한히 길게 발전될 것임을 증명해 보였다. 생명에 대한 재래적인, 기독교적인 파악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신이 아니라 인간이 생명 영역에 매일같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 세계는 지금 공산주의 사회가 무너진 다음에 자본주의만이 살길이라는 전제를 자명한 것으로 안고 있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물질의 유통과정을 다루는 것이요 그에 대한 태도이다. 자본주의의 성격을 한 마디로 하면 시장 경제라는 말로 압축이 된다. 미국은 지금 시장경제라는 자본주의로 세계를 제패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이나 이북을 보면 안다. 그런데 시장경제의 특징은 경쟁이다. 전에는 땅을 얼마나 점유해 나가느냐 하는 데서 국가의 힘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의 생산품을 팔 시장을 얼마나 넓히느냐 하는 데 힘의 기준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주의 형태의 틀을 놓은 것이 아담 스미스이다. 그의 『국부론』(1776년)은 바로 영국의 산업사회혁명 이후에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제창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생산과정의 자율성, 즉 자유방임의 정당성을 밝히려고 했는데 그의 말 가운데 중요한 뜻을 내포한 것이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경제질서를 조정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는 단적으로 ‘경쟁’이라고 본다. 놀랍게도 22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한국 땅에서도 자유 경쟁 시대라는 것으로 현재를 성격화한다. 그것은 도를 넘어서 ‘세계화’와 ‘무한경쟁’이라는 말로 상승하고 있다. 그런데 아담 스미스가 대전제로 하는 것은 경쟁의 원동력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욕심이다. 사업욕, 정복욕, 승리욕 등으로 확산될 수 있으나 구체적인 한마디로 하면 소유욕이다.
도대체 소유욕에다가 역사를 싣고 가는 이 현상을 기독교는 어떻게 보고 있으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나는 전문 지식의 한계도 있고 그 문제가 너무도 커서 설명을 시도할 마음이 없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는 이 세계가 가고 있는 현실 앞에서 방관자 이상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니, 방관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존재 양식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에 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 문제에 들어가면 어디까지나 모호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인들의 90%를 넘게 이 같은 자세에서 평행선을 긋고 있는 두 세계의 틈에 끼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형적 의식 속에서 살고 있다. 학교 내지 사회에 가서는 진화론자요, 교회에서는 창조론자다. 학교나 사회에서는 한계를 긋지 않은 무한한 우주 속에 사는데, 교회에 가면 삼층천적인 동화의 세계를 마치 현실인 것처럼 수용하는 흉내를 내야 한다. 지구가 둥근 것을 알면서도 아직도 위의 세계, 아래의 세계, 올라가는 세계에서 그리스도를 논하고 생명을 논한다. 이런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서구의 신학자들도 그 나름대로의 많은 노력을 거듭해 왔다. 반항도 했고 부분적인 수용도 했고 변증론도 발전시켰으며 수정론(修正論)도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 틀을 그대로 두는 한에 있어서 이 변하는 현실을 대응하는 기독교는 아주 무능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결국 서구 기독교의 모습이다.

한국 교회의 위치

엄밀히 말해서 한국 교회는 제 고유의 자리는 없다. 적어도 교리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정통성의 금을 그을 때는 서구 신학의 어떤 계보, 내지는 어느 교파에 줄이 닿고 있지만 신앙고백의 틀은 사도신경에 두고 있다는 데서 다른 것이 없다. 한국에는 보수계가 압도적인데 보수라는 이름을 내세울수록 그 뿌리를 서구의 어디에다가 두겠다는 것을 고집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사도신경에 발판을 굳게 하고 자유주의 이래로 발전된 서구 신학에 자유분방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추구와 그 결과마저 전부 배제해 왔다. 그러므로 날로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눈에 들어오는 하늘, 그것도 돈짝만큼 제한된 피안만 바라보고 세상에서는 무책임하게, 그러나 철저히 이기주의적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장로회는 무슨 역할을 했는가? 나는 이 관계를 생각하면 언제나 조선조 말엽에 수구파와 개화파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대원군을 정점으로, 국가라는 이름으로, 밖과 통하는 문을 전부 닫아버렸다. 그 때 미 함정도 나타나고 프랑스 함정도 나타나는 것을 보고 화포로 일격에 격퇴했다. 여기에 힘을 얻어 저들은 교만해진 것이다. 이미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서구적 힘을 갖춘 일본이 구체적인 식민지 계획을 갖고 침투해 올 때도 이른바 정부는 여전히 수구적인 위치에서 정절만 논의하고 양반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아무런 힘도 못 가진 중인 이하의 상놈들 사이에 개화의 씨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한의사도 있고 역관(譯官)도 있고 중도 있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상류 계급의 자녀들도 차츰차츰 흡수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개화는 결국 강제에 의한 개화였다. 그러므로 개화 자체는 옳은 일이었으나,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므로 단순한 애국적 입장에서 보면 대원군이 옳았다는 염을 남겼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수입된 기독교는 철저히 경향성을 띤 선교사들 손에 의해서 요리되는 집단이었다. 별로 수준이 높지 않은 선교사들이 얻어 들은 것을 쓴 견문록들이 한국 사람들의 수준을 알리는 보고문이 되었고 한국 사람 자체가 직접 그리로 가서 그 세계를 보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출발부터 뚜렷한 차별적 대우였다. 이렇게 출발한 한국 교회는 그후로도 그들이 전해 준 수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평양 시대에서 시작된 전통을 그대로 전하는 것을 보수주의의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선교사들 자신은 정책적으로 한국 풍토에 맞는 범위 안에서 기독교를 소개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치명타는 저들이 미신, 우상 또는 구습이라는 명목 하에 한국, 특별히 한국의 민중적 문화의 뿌리를 근절하려고 했던 것이다. 우상숭배, 샤머니즘 속에 얽혀 있는 민중의 한과 한풀이, 그리고 민속에서 볼 수 있는 시대를 앞질러 가는 지혜 등도 전부 미신이라는 이름 밑에서 수모를 당했다. 나도 그런 희생자 가운데 하나인데, 민중에게 눈이 뜨이자 나 자신이 하반신이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것은, 내가 교회 생활에 젖어서 언제인지 모르게 민중적 문화의 바탕을 깡그리 잃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로써 기독교는 현실적으로는 문화 싸움에 개입하여 우리의 문화를 축출하고 서구인들의 문화를 도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혼 양식이 달라지고, 상례의 법이 달라지고, 민의 명절 따위가 무색해지고 한 민족을 형성하는 요람인 전설의 맥이 끊어졌다. 여기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진 것이다. 상체를 유지하려면 하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붙여야 한다. 상투를 틀고 자전거를 타는 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개화의 선각자적 의식분자가 바로 기독교 장로회다. 평양파 보수주의를 대원군에 비교한다면, 이들은 그 시대상에서 본다면 중인 이상을 넘지 못하는 신분이었고 계급적으로 상부인은 극히 소수의 동조자를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선각자들은 대표적인 보수의 아성인 장로회의 안에서 폭발로 새 길을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니라 수적으로 보아도 적은 무리가 분가해서 새로운 교단을 창설했다.
또 하나는 이 선각자들의 시각(視覺)이 철통같이 에워싼 기독교 내부에만 머물다가 바깥 세상을 보기 시작하고 그 밖의 세상을 보게 됨으로 경악하고 그 실체가 의식 영역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사회 참여, 역사 의식, 민주화 운동, 인권 운동 등등으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민중’이라는, 언제나 있으면서 보이지 않는 새로운 실체와의 접촉이 가능했다. 그러나 찾아야 할 중요한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오랜 세월 보냈다는 잘못이 있다.
그것은 세계 속에서 나를 찾겠다는 노력이 오래 잠들고 있었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 하부구조를 형성한 민중 문화를 새롭게 파악해서 다시 살리겠다는 각오가 서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민과 함께 구체적인 사건이 있을 때 제휴하고 공동 전선을 벌일 수 있었으나 그 사건이 지나가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과 그들 사이에 아무 연계가 없었다.
한국신학대학의 길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한국신학대학이 무엇보다 먼저 한 일로써 내세울 것은 세계 신학의 도입이다. 세계 신학의 조류는 한국신학대학이라는 창구를 통해서 한국에 유입되는 현실이 된 것이다. 장공이 그 앞장에 섰으며 그가 열어놓은 문으로 많은 신학자들이 드나들면서 신학 세계와, 내지는 교회와의 교류로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제도 교회가 앞장서서 신학을 그 산하 기구로 삼은 것이 아니라 거꾸로 신학이 제도 교회의 일체를 이끌고 나갔다. 교회에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거기에 대한 대답이나 해결은 신학대학에 의뢰한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현상 하나는 이 같은 신학 교육을 적어도 사년 이상 받고 교회 현장으로 나간 목사들이 목회 생활을 시작해서 얼마 되지 않아 한국신학대학에서 배운 신학을 그의 목회에서 괄호에 넣거나 아니면 묵살한다는 현상이다. 일부 교수들이 충실하게 바르트 신학을 교수해 왔으나 바르트 신학이 교회 내에서는 별 반응을 주지 못한 것처럼, 세계 신학의 거성들이 속속들이 소개되고 강의됐으나 그 어느 것도 정착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것이 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 의구심은 한신적 신학 경향이 교회의 민중에게 호응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구체화됐다. 여기에서 두 갈래의 흐름이 점점 벌어졌다. 그것은 다시 보수주의로의 회귀의 길이고 또 하나는 내용은 불문에 부치고라도 민중을 끌어안는 데 성공하는 교회의 방법을 도입하자는 파들로 나뉘어졌다. 이 두 길은 다 잘못된 것이다. 역시 위에서 지적한 대로 우리는 하반신을 다시 찾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한신은 기장의 분위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소강상태에 빠졌다. 세계의 창구 역할은 한신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감리교신학대학교도 그리고 연세대학교 신학부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굉장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외형상으로는 이미 경험해 본 일이 있는 민중의 싸움 속에 합류된 데서 일어난 사건이다. 70년대의 한신은 불과 200명도 안되는 극소수의 학생을 보유하면서도 대학계 전체에 주목의 대상이 됐으며 가공할만한 독재 정부도 마지막 과녁으로 한신대를 삼았을 정도로 한신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천하에 공표했다. 70년대의 한신, 그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한신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민중의 염원과 한과 한풀이와 운동이 곧 우리의 사명이라는 의식과 일치됨으로 일어나는 생기(生氣)가 한 일이다. 그때의 학생이나 교수는 모두 생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존재의 보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자부심으로 꽉 차 있었다. 다시 말한다. 한신대가 그 크라이막스를 장식할 때가 어떤 때인가? 민중의 한과 한풀이가 곧 우리의 한이며 우리의 과제라는 일체감을 터득했을 때, 생기가 일어나는 사건이 일어날 때이다. 나는 이것을 주저없이 생기 또는 성령 운동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나는, 한신의 미래, 한신의 사명, 한신의 자부심으로 처음 내세운 것을 이룩하는 가능성은, 민과 자기를 일치시킬 때, 민의 염원과 우리의 사명감이 하나로 될 때, 그것을 생기로 받아들일 때만이 우리에게 열린다고 본다.

민중신학

민중신학이란 무엇인가? 1970년대에 고고히 소리를 지르며 탄생한 민중신학이란 별것이 아니고 바로 위에서 말한 것같이 민중의 한과 그들의 싸움을 터득하고 그것에 합류함으로 생겨난 사건이다. 민중신학이란 틀을 먼저 만들고 체계화하는 그런 작업이 아니다. 민중과 신학자가 만남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여기에서 사건이라는 의미가 크게 부각된다. 분명히 우리는 사건을 경험했다. 사건이 사건을 유발시켰다. 70년대는 사건의 점철로 이루어진 역사다.
여기에서 우리의 반성은 서구 신학이 전통적으로 로고스 중심의 사고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은 것이 아니라 사건이 있었다. 창세기도 하느님이 말했다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한다는 사건이 그 중심이다. 로고스라는 선재적인 것을 전제하고 역사를 보고 사물을 보는 것은 틀을 만들고 거기에 내용을 붓는 작업이다. 로고스는 희랍 그릇이다. 불행히도 예수는 이 경계 시대에 태어났다. 로마의 세력으로 그레꼬로마의 세력과 문화가 이미 집의 주인이 됐을 때 그래서 팔레스틴의 도시들까지도 상부지배층도 헬라화 내지는 헬레니즘화 됐을 때다. 유대교에도 헬레니즘이 상당히 침투되어 왔다. 그러나 예수에게서만은 그 어디에서도 헬레니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역사가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것은 예수가 도시를 상대로 하지 않고 헬레니즘의 파장이 미치지 못하는 농촌에만 한정하고 활동했다는 것이다. 그의 언어를 조사하면 농경 문화의 언어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불행한 출발은 우리가 경전으로 가지고 있는 신약성서가 전부 희랍어로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때 헬레니즘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된 데는 예수의 민중 편에서 보면 적극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선교의 대상을 그레꼬로마세력 하에 있는 사람들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예수의 민중들은 비록 그레꼬로마의 영역에 들어가서 활동했지만 헬레니즘 문화에 물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들의 지적 수준으로 보아서도 그렇다. 저들은 대부분이 어부요, 농사꾼으로 희랍문화에 접할 기회가 없었다고 상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 의해서 씌어진 글이 신약에는 단 하나도 없다.
우리의 길을 되돌아가자. 우리는 로고스, 즉 말씀의 신학에서 해방돼야만 한다. 예수라는 존재는 결코 말씀이라는 개념으로 포괄할 수 없다. 그의 삶 자체가 사건이다. 그는 30세라는 나이가 될 때까지 어딘가에 조용히 숨어서 때를 기다리다가, 세례 요한이 새 세계를 외치는 데에 참여하는 운동을 벌일 때 홀연히 나타나서 이 운동에 참여하고 세례 요한이 체포됐을 때 곧 바로 세례 요한을 체포한 그 영주가 생사권을 가진 지역인 갈릴리라는 시골로 갔다. 거기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연속 사건을 일으켰다. 마술사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가 전지전능한 신이었다는 말도 아니다. 그는 거기서 민중을 만났다. 민중의 고뇌를 만났으며 한을 만났으며 저들의 염원을 뿌리칠 수 없는 현장에 온 것이다. 민중과의 만남, 민중과 무명의 한 청년과의 만남, 고난의 역사와 그 현장에 살고 있는 그 민중의 한과 그 한을 풀어주려는 해방의 극단파가 산중에 거점을 두고 칼을 갈고 있을 때 그는 알몸으로 민중을 만났다. 저들의 한이 예수의 한이 되고 저들의 운동이 예수의 운동이 됐다. 이 만남은 마치 전기의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부딪쳐서 스파크를 이루는 것 같이 스파크를 연쇄적으로 일으킨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생애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내가 네 병을 고쳤다’고 하지 않고 ‘네 스스로가 네 병을 고쳤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선언했다. 예수는 주(主)요 민중은 객(客)이 아니다. 예수가 주도권을 쥐고 민중이 거기에서 놀아난 것이 아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관서의 기적 이야기들은 언제나 병든 민중 편에서 시작된다. 예수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결과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 민중의 애원과 민중이 부르짖는 소리가 예수로 하여금 예수 되게 한 셈이다. 예수는 희랍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영웅 같은 영웅이 아니다. 예수는 이미 그 안에 모든 세계관을 가지고 수미일관한 철학을 갖추어 놓고 그것을 설파하는 스승 같은 로고스가 아니다. 그것은 희랍적인 스승의 모습이다.
그 예수가 불과 일 년 내외에 갈릴리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얘기는 다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민중의 한을 심어주고 민중으로 하여금 분노케하고 가난하게 하고 죽음으로 몰고가는 착취와 폭압의 장이 바로 예루살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들과 만남으로 사건을 일으키려고 한 것이다. 그들과 예수와의 만남은 십자가의 처형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일으켰다. 어마어마하다는 이유는 다음에 몇 가지로 집약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신 부재의 현실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 사건이 절망한 민중에게 제 발로 되살아나 세계를 향해 돌진할 수 있는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을 일으킨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다. 아니 민중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 사실을 오순절의 성령강림이라는 그림으로 표현한다. 세계를 향한 예수의 제자들도 로고스를 전파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예수의 사상을 전파한 것이 아니다. 아니, 그가 일으킨 사건을 증언하는 증인들이었다.
나는 지금 로고스가 아닌 예수를 이야기하는 데 상당한 정열을 기울여 의미 부여를 했다. 이로써 민중신학의 큰 주제 하나를 이야기한 것이다. 그것은 민중신학은 희랍적 사고의 틀인 로고스로 형성된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가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역사의 예수, 즉 우리의 삶의 지평에 서 있는 예수, 그 분화구에서 분출하는 사건들을 그 시대 시대마다 오늘에 살아 있는 예수로 증언하는 것이 민중신학의 중심 과제다.
이상에서 본 이런 예수의 사건을 예수를 따르는 민중들은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인식하고 뚜렷하게 성격화하고 있다. 승리자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패배자로서의 예수, 건강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병든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예수, 이른바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 당시에 소외된 죄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예수, 문제가 없는 아흔 아홉 마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예수, 섬김을 받으려는 예수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예수, 지배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중을 위해서 존재하는 예수, 살려고 한 예수가 아니라 죽음으로 뛰어든 예수. 이상의 성격을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경향적이다. 복음서에는 그와 다른 초인적인 예수의 모습도 많이 튀어나오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수난사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둠으로 수난사에서 예수의 삶을 역광적으로 본 것은 이러한 경향성이 있는 시각을 뒷받침한다. 수난사는 하느님에게서 출발하지 않고 수난당하고 배척당하고 외롭게 죽어간 한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전능하거나 승리의 상징인 신으로 하지 않고, 무능하고 없으면서 존재하는 신, 명령하거나 타이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신, 로마와 유대 지도층 사이에서 악랄하게 진행되는 모의에 개입하지 못하는 신을 보여주었다.
예수를 이렇게 파악하고 인식한 민중은 그리스도론을 들고 세계로 나간 것이 아니라 그 비극적 십자가의 사건을 그대로 세계에 증언하기 위해서 세계에 나갔다. 이른바 수난사의 예고는 수난사 이전에 세 번 반복된다. 그는 박해를 받고 죽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난사 자체는 사흘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전제는 전혀 없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그렇고, 예수의 철저한 침묵이 그렇고, 제자들이 실망하고 도망하는 것이 그렇고, 예수의 십자가 상에서의 마지막 절규가 그러하다. 수난사에 사흘만에 부활하리라는 전제가 들어가면 수난사가 참 고난의 사건일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 이었나?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의 민중은 수난자로서의 예수의 삶을 수난자, 패배자로서 끝마친다. 사흘만에 부활해서 제자들에게 보였다는 이야기는 제대로 설정되지 못했다. 복음서마다 그 얘기는 들쭉날쭉하다. 중요한 것은 마가복음에 전한 대로 예수는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갔으니 거기서 만나자고 하는 메시지다. 예수는 부활했다. 부활한 예수는 그런데 누가복음서의 표현처럼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갈릴리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갈릴리 민중 속으로 들어간 예수, 들어가서 생동하는 예수는 인간의 지평인 온 세계를 누볐다. 예수는 민중 안에서 부활한 것이다. 민중이 생기, 즉 성령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바로 부활한 예수를 그 가슴 안에 받았다는 말로 이해하면 안되는가?이상의 견해에서 민중신학적인 입장에서 확실히 말하는 것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역사의 예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위대하고 전능했기 때문에 민중들이 믿고 힘을 얻었다면 다른 종교나 사고의 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패배자로서 예수가 민중 속에 생기로 환생되어 하나가 됐다는 인식이라면 이것은 갈릴리 민중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다.
갈릴리 민중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시각은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볼수 있다.


이상에서 대조시킨 것은 조직적인 것이 아니라 발상되는 대로 나열한 것이다. 이 분류를 만일 칼 마르크스의 사회 이론이나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표현을 빌린다면 ‘가’는 상부구조이고 ‘나’는 하부구조일 것이다. 그런데 분류된 전체의 성격을 규명한다면 ‘나’에 속하는 것은 생명과 직결된다. 삶, 삶의 온상, 삶의 근원, 삶의 바탕, 삶의 보금자리, 삶의 담지자, 하여간 어떤 표현을 하든지 삶의 근거를 준다는 점에서 동일 성격을 갖고 있다. 그 가운데서 두 세 가지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겠다.
기(氣)는 동양적인 표현을 쓰면 하늘과 땅과 사람을 엮는 삶의 기운이다. 그래서 숨도 되고 바람도 되고 힘도 된다. 놀랍게도 그것은 프뉴마나 루아흐와 같은 뜻이다. 이것을 우리는 성신 또는 성령이라는 말로 표현해 왔다. 나는 주저없이 ‘생기’라는 말이 옳게 옮겨진 것이라고 본다. 거기에 대해서 리(理)는 틀이다. 리와 기에 관해서 예수의 민중들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의 편에 서기 위해서 저들은 율법에서 탈출하려고 하고 있다. 다음에 말하는 것과 말 못하는 것 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말 못하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 보이는 것을 살게 하는 근거를 준다. 간디는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소를 숭배하는 관습을 수용하면서, “소는 말 못하는 세계, 그러면서도 사람을 실제로 살리는 모든 만물을 대표하는 상징이기 때문에 숭배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를 실제로 먹여 살리는 것은 모두 예외없이 말 못하는 영역에 있다. 식물, 동물을 다 포함해서 무생물까지 말의 영역에 있지 않고 말하는 사람을 살리는 기본 요소들이 있지만 말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면 말 못하는 세계는 물밑에 보이지 않는 빙산과도 같이 거대하고 크고 넓다. 보이지 않는 것은 노장이나 불교 등에서 무(無)나 공(空)이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없음’의 상반개념이 아니다. 보이는 쪽에서 보면 없는 것과 비었다는 말과 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거기에 삶의 온상이 있다. 칼 마르크스의 하부구조도 그런 뜻에서 중요하고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세계에도 주목해야 한다. 까닭은 이 하부구조가 의식하는 사람의 존재근거이기 때문이다. 반자(班者)와 상자(常者)를 대비시키고 민중신학은 상자를 선택했다. 반자는 벼슬을 한, 그러므로 장신구를 지닌 인간으로 지배자의 자리에 선 자들을 의미하는데 대해 상자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 어디에 가거나 발길에 채이는 돌과도 같은 존재,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안 보이는 존재, 말없는 존재, 그들을 양반들은 상놈이라고 했다. 상자에 쌍시옷 하나를 더 붙여서 상스럽게 천하게 보이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반자는 그 의복을 벗거나 그 자리를 떠나면 없어지는 데 대해서 상자는 언제나 있는 존재, 없으면 안되는 존재, 그러므로 영원한 존재이다. 그런 뜻에서 궁극적인, 영원히 있는, 사람의 가야할 길을 도덕경은 상도라고 했다. 의도적으로 번역하면 상놈의 길이 된다. 그 상놈들이 역사의 담지자가 된다. 생명을 지탱하는 것을 공급하는 근원이 된다.
마지막으로 산과 곡을 보자. 유교에서는 군자는 산을 즐긴다고 했다. 유교에서 산에 큰 의미를 준 데 대해 노장에서는 곡(谷)에 의미를 부여했다. 곡은 우선 더럽다. 산에서부터 혹은 높은 데서부터 흘러내려오는 것이 모두 이 곡, 즉 골짜기에 모인다. 그래서 산과 비교하면 더러운 곳이다. 그러나 곡은 물을 지니고 있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곡에서 냇물이 흐르고 크게는 강이 흐른다. 생물들은 이 곡을 중심으로 모여 산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젖줄이기 때문이다. 더럽게 보이나 생명을 보전하는 품이 바로 곡인 것이다. 도덕경은 이 곡과 산을 여자와 남자로 분류한다. 여자는 곡이고 남자는 산이다. 음과 양으로도 비교한다. 여자는 음이고 남자는 양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산을 찾고 양을 찾다가 메말라 죽고 마는 역사를 경험했다.
예수는 결국 생기에 찬 분이고 예수는 상자, 즉 상놈이었으며 예수는 세상에서 버려진 병자나 죄인이나 여자들을 끌어안음으로 더러운 사람이라는 조소를 받았다. 그러나 바로 ‘그에게 참 생명이 있다’, ‘그가 우리를 살린다’는 것이 예수와 함께한 민중의 고백이었다.
이상과 같은 논제에서 우리가 맨 처음에 사도신경으로 문제를 제기한 세 가지 주제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나 하는 데 대한 대답을 내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문자적으로 표면화시키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느님이 창조주라는 전제는 아무런 저항을 받고 있지 않다. 단지 어떤 천지를 창조했느냐 하는 데 대한 해석이 문제될 뿐이다. 과학자들은 물질에만 관심을 가지므로 신을 전제로만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도 물질의 기원을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리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다. 민중신학은 지금까지 이 문제를 다룬 일이 없다. 그러나 오늘 내가 조심스럽게 민중신학이 선택할 창조론을 수용한다면 ‘진화적 창조론’일 것이다. 태초에 하느님은 오늘과 같이 진화되는 어떤 것을 창조했다. 떼야르 드 샤르댕은 그것을 메트리얼이라고 했다. 가톨릭 교회는 그런 창조론을 제창한 샤르댕을 출교시켰고 그가 낸 책들을 모두 판금(販禁)시켰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역시 그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그리스도론의 도구가 된 삼층천의 세계를 거부해야 한다. 그 삼층 세계관을 배제하고 그리스도를 본 것이 바로 위에서 설명한, 나의 정열을 기울인 예수의 모습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결론삼아 생명에 대한 문제를 말하겠다.

민중신학이 직면한 현실

우리가 이제 받아야 되는 도전은 무엇인가?
나는 이것을 긴 말로 전개할 열의는 없다. 나는 이제 우리의 과제는 죽임에 대한 상반개념인 ‘살림’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살림』이라는 잡지를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내기 시작한 것이다. 생태학적 위기라거나 세계의 종말을 들먹거리는 분위기는 흔히 반복되는 그런 현상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산다는 것 자체가 지금 위협받고 있고 애매한 현상이 일어날 현상으로 바싹바싹 다가온다.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다. 예수의 민중들도 이렇게 생각을 좁혔다. 그러므로 우주적인 그리스도론을 전개하면서도 인간 중심의 생명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 특히 인도에 원초를 둔 불교에서는 생명을 모든 생물에게 확대시킨다. 그런 기본적인 인식이 저들에게 불살생이라는 생활 양식을 가져오게 했다. 말없는 생물들인 저들을 다 정복해 버리고 인간 중심적 사고로 내가 살기 위해서 다 먹어치운다면 자연생태계가 깨져서 인간도 살 수 없다. 살림을 위한 우리의 과제는 모든 종교, 특별히 예수의 종교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는 살리기 위해서 죽은 것이다. 살리기 위해서 민중 안에서 생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는 아직도 인간 영역에서 확대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을 통해서 충격적일 만큼 이색적이고 놀라운 시각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로마서 8장 18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생명의 지평을 인간 영역을 넘어서 모든 피조물에게 확대시켰을뿐만 아니라 성령과 마침내 하느님에게까지로 확대시켰다. 우주적인 생명, 우주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들이 신음하고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면서 살림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의 첫 단계는 하느님의 자녀들이라고 했다. 그것은 바로 참 인간의 출현이다. 그런데 인간만으로 그 과제를 이룰 수 없다. 생기, 즉 성령의 참여가 필요하다. 성령은 하느님의 뜻에 의존한다. 이 짧은 구절 속에 고난이 등장하고 허무에 굴복한 신음 소리가 등장하고 죽임을 당하는 종살이가 등장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등장하고 약함 자체가 강함의 뿌리라는 것이 등장한다.
살림 운동은 죽임을 당하는 현장을 체감하고, 저들 자신도 거기에 참여하게 하고, 저들을 그 현장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이 일치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 글은 1996년 4월 16일에 한신대학교에서 있은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살림 97년10-11월호에 수록)




구약 해석과 역사적 현실
민중신학의 새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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