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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연구소(2004-01-09 16:16:27, Hit : 3886, Vote : 610
 해방과 제사─신명기 6:20~24

해방과 제사
─신명기 6:20~24

안병무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날을 그들의 해방의 날로 기념해 왔습니다. 그런데 기념하는 것은 곧 예배를 드리는 의식입니다. 딴 말로 하면 제사를 드렸습니다. 해방과 제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구약학자들이 어떻게 제사를 지냈나 하는 것을 대체로 윤곽을 그려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그때의 것을 도로 살릴 수는 없겠지요. 어쨌든 그 전 날에 양을 잡습니다. 그리고 그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여러 곳에 바릅니다. 그리고 양의 고기를 나누어 먹습니다. 이렇게 양을 잡는 것은 나중에는, 자기들의 죄 때문에, 자기들을 대신해서 희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점점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은, 우리 동양에도 있는, 악귀를 쫓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여기서 피라는 것은 해방과 관계돼서 희생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후에 이것을 하느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은 죽이면서도 우리들만은 살려준 기념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40년이라는 그 광야생활 동안 당하던 고난, 먹을 것 제대로 못 먹고 그야말로 늘 찬밥으로 반찬도 없이 살던 때를 생각해서 아무런 양념 같은 것이 없고 무미한 그런 떡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무교병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제사를 그들이 광야에 있든, 전쟁터에서든, 후에 성전이 세워진 후에는 성전 안에서, 일년에 꼭 한번 성대하게 전 국민이 모여서 이 해방을 기념하는 제사를 지냈습니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예배라고 부른 것, 내가 제사라는 말과 동의어로 씁니다만, 그것은 과거를 현재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나간 때에 일어난 그 슬픈 일, 애환 또는 자기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지만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야훼, 그때 일어난 모든 일체를 다시 현재화해서 오늘 실감하게 하는 것 그것이 목적입니다. 예배도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오늘 이 시간에 모여서 다시 현재화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제사도 본래의 뜻은 그런 것입니다. 그런 기록이 성서의 여러 곳에 나옵니다. 어떤 학자들이 이것을 열심히 연구를 했습니다. 그들이 계속 줄기차게 얘기를 하는데 구약 전체의 출발은 역시 엑소더스 ― 출애굽이라는 것이 확실해진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신명기 6:20~29 혹은 26:5~9, 여호수아 24:2~13, 시편 136편 등은 예배 때, 제사 때 자기들이 그때 당했던 얘기를 사제가 읽으면 바로 화답하는 내용입니다. 136편이 예입니다만 10절에서 ‘에집트 사람들의 맏아들을 치셨다’, 이렇게 시작하면 ‘회중이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하고, ‘그 속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내셨다’ 하면 회중은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하고, ‘억센 손 그의 팔을 휘두르셨다’ 하면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홍해바다를 둘로 쪼개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다’ 등등 이렇게 화답을 하면서 자기들의 역사를, 해방의 역사를 얘기합니다. 이것을 다시 재생시켜서 기억에 회생시키는 것입니다. 이 시편의 마지막에 들어가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빼내 주셨다’ 그러면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입 가진 모든 것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감사노래 불러라’ 이러한 화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물을 바치는 것도 결국 많은 것을 포함시킵니다. 후에는 속죄라는 교리가 생겼지만, 해방과 관계돼서 희생된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 희생의 제물로 죽은 모든 그 희생의 제물을 생각하면서 자기 대신으로 양, 돈이 없으면 비둘기라도 잡아서 재단에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을 다시 재생을 시켜서 오늘 현재 우리의 삶에 깊숙히 다시 들어가고 그게 살아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제사는 우리 초대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시금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멸시해온 것인데, 제사의 뜻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난 제사의 의미를 우리 예배에 상당히 도로 살려야 된다는 점에서는 카톨릭적인 것이 훨씬 옳은 것이 많다, 다시 살려야 될 점이 상당히 많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언젠가 어디에 쓰기도 했지만 한 치과의사가 일년에 한번씩 위령제를 지냈어요. 그것은 그가 일년 동안 뽑아낸 이들을 전부 모아 두었다가 그걸 전부 다 놓고선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위령을 하는 것입니다. “아, 희생된 이(齒)들이여. 얼마나 무지몽매해서 하루에 밥 두번만 먹어야 할 것을 세번, 네번을 씹어먹고 뼈다귀, 갈비 이런 것을 그냥 씹어먹고, 치료도 칫솔질도 제대로 안하고 이렇게 해서 희생된 이들이여, 편안히 진혼, 돌아가소서” 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마음에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일본 같은 데도 신도종교주의가 있는데, 그것도 가만 생각하면 우리와 대조해 볼 때 상당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어느 놈이 어떤 악한 마음을 가지고 했든지간에 나라를 위해서 피흘린 사람들의 혼들을 기억하면서 온 민족이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했다는 것은 강점입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무조건 남의 것을 버려 버릴 것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면서 좀 생각해 봐주세요.
독일 같은 데도 일년에 한번씩 그렇게 희생의 제물이 된 사람들,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냥 기념하고 놀러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 기념일 때 같이 노는 것이 아니고, 혹은 국군 묘지나 가서 장난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날은 각 묘지들에서 예배를 진행을 합니다. 요새 특별히 생각합니다만, 베를린 장벽에 가본 사람은 아시지만 그게 막힌 후에 굴을 뚫다가, 뛰어넘다가 죽은 사람들의 그 자리에다가 조그마한 제단에 가까운 것을 만들어 놓고 여러 사람이 글을 써놓고 꽃을 언제나 갖다바치면서 그 죽은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걸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지만, 모름지기 그 자리는 적어도 희생된 그 사람들, 분단된 그때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 대한 기념을 언제나 간직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파리같은 데 여러분이 가보면 바로 큰 탑 아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지요. 그것은 언제나 불이 붙어서 타고 있는데 무명용사를 기념하는 불입니다. 그것은 꺼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프랑스 사람들의 눈에서 보면, 우리를 위해서 이름없이 죽어간 이 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기념하면서,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았겠나 하는 감격도 언제나 지니고 있습니다. 난 되돌아서 우리는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없이 우리를 이렇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죽어갔나, 그렇게 수많은 역사들이 진행됐는데 그런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런 것이 우리에게 서서히 사라져간다, 실제상 없어져 가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굉장히 의미가 있다, 이런 생각이 납니다. 실상 우리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은 표면에 나타난 권력욕에 의해서 투쟁하는 그런 것들에 의해서 된 것도 아니고 소위 중간층이라는 그런 것들에 의해서 된 것도 아니고 이름이나 알려진, 글줄이나 쓰는 사람들에 의해 된 것도 아니고, 무명의 사람들의 희생에 의해서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의 역사도 배경을 들추면 그런 것이 다 기록되지 않았지만 무수히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기독교가 제사제도를 그냥 막 없애버린 것은 아주 잘못된 죄악 가운데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간 부모를 지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격적인 것인데 어쨌든 돌아간 부모가 살았다는 전제를 하고 아침식사마다 음식을 패말 하나밖에 없는 거기다 바쳤다가, 숟가락을 꽂았다가 그걸 내려서 맏아들부터 식구들 고루고루 나누어 먹는다, 한 제단에 바쳤던 것을 나누어 먹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통의 의미의 식사가 아니라 이것은 하나의 제사입니다. 제사, 이것으로 어우러진 것이 가족입니다. 한 그릇 한 가마의 밥을 먹는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한 제단에 바쳐지는, 한 핏줄의 근원에 바쳐지는 그것을 나누어 먹는다는 의미에서, 내가 늘 얘기하지만 식구(食口)라는 말, 가족이라는 말, 먹는 주둥이라고, 이팅 마우스(eating mouth)라고 영어로 내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모두 그렇게 굉장히 웃습니다만, 그것이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먹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지만 이것을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폐기해 버린 것은 문제입니다. 부락제 같은 것도 가난한 사람들이 일년에 한번씩 그래도 뭔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죄책감도 있고 여러가지 의미가 다 포함된 것을 생각하면서 부락제를 한번씩 지낸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모두 모여서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건만 나무가 있고 한 그런 데다가 밥 그릇을 전부 갖다놓고 돼지를 잡고, 그리고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나눠먹는 것입니다. 이 부락제 같은 것이 다 없어져 가는 것입니다. 산산히 흩어져서 민족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모래를 담은 자루같은 이런 이기주의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극적인 일입니다.
어쨌든 제사라는 말의 내용은, 감사한다든지 그때 당한 희생된 사실이라든지 그 이유라든지 이 모든 것을 다시 재생시켜서 오늘 내 것으로 한다는, 그래서 시기와 장소를 초월해서 그것을 공유한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오늘 들으니까 이북에서도 이 시간에 같은 내용의 글로 혹은 성서로 설교를 하고 기도한다 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제사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빠졌더군요. 그것은 뭐냐 하면 자신의 잘못, 해방의 과정에서 자기가 안한 것이든지 자신의 잘못한 것에 대한 참회가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 제사에, 가족의 제사를 빼고는 대개 다 빠져있다는 느낌이 났습니다, 참회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죠. 제사는 과거를 오늘에 다시 회생시키는 것, 내 삶으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본래의 의미입니다. 예배도 이 의미를 빼서는 안되겠다 그거죠.
자, 이런 마당에 해방 45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의 우리한테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이제 우리의 꼴은 말이 아닙니다. 민족, 민족을 말은 하지만 실감이 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원수는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습니다. 8·15가 우리에게 무슨 감격이나 해방의 기쁨을 갖다줍니까? 우리를 대표한다는 정부라는 게 계속 국민을 기만만 하면서, 국민을 끝끝내 배반하면서 폭력만 휘두르고 있지 않습니까? 불법으로 국회도 독점하고 야당없는 이런 판국을 막 함부로 이끌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통일을 미끼로 삼고, 8·15까지 미끼로 삼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난 믿지도 않았습니다마는, 아무 통일 의사가 없으면서 민족이라는 큰 이름을 내걸고 장난을 해서 순진한 사람들이 희망을 걸었다가 절망을 하게 하는 그 따위 장난으로 하루하루 정권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이런 판국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순진한 사람들이 혹시나 하고 기대를 걸었다가 또 좌절하고 좌절하는, 8·15가 아마 또 한번 배신당하는 슬픔을 다시 경험하는 그런 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적으로 8·15를 주신 이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해야 합니다. 이게 실제로 우리에게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해방을 위해서 투쟁하는 일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북이나 이남이나 독립유공자니 빨치산이니 운운하는 여러 얘기를 들으면 그런 일을 제대로 한 사람이 몇이나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몸소 경험도 하긴 했어요. 어릴 때 독립군 혹은 공산당을 밤중에 집에 데려다가 음식도 먹이고 갖다주고, 그런 것을 부모들이 하는 것을 여러번 경험도 했지만은, 약간 그랬을 뿐 실제로 아무 것도 한 것도 없습니다. 다른 민족의 투쟁 경력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안했던 것입니다. 얼마 있다가는 소위 이름 있다는 놈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항복을 해버려서 주구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정말 해방은 갑자기 하늘에 떨어진 것이지 우리가 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주어진 것이니깐 철저히 감사하는 심정이 민족 전체에게 진짜로 속에서부터 나와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걸 진심으로 감사할 새가 없었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분열의 싸움, 권력 싸움, 이데올로기니 뭐니 이런 것을 내세워서 싸움만 계속하는 통에 언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또 우리 민족해방이라는 과정에서 적어도 희생자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참 의미의 감사를 드릴 새가 없었습니다. 참 제사를 드릴 새가 없었습니다. 사상범, 징병, 징용, 여자들 정신대, 재일교포들의 원한이나 사할린 교포들의 쓰라린 상태나 지금 분단의 비극들이, 해방이라는 그 이름과 더불어 춤을 추고 야단한 것이 어떻게 가슴이 아팠던지, 언제 해방의 기쁨을 누릴 새가 없었어요.
소위 해방자 소련인들이 온다고 그래서, 숨어있던 동네사람들을 전부 다 동원해서, 여자들은 때때옷 입히고 화장을 시키고 전부 길거리에 나가서 소련군들을 맞이했는데, 이것이 보니깐 막 내리자마자 춤을 추자고 그러니깐 우리 여자들도 막 안겨서 춤을 추고 야단을 하고 그랬는데 그날 밤으로 이것들이 강도로 돌변해서 여자 헌팅을 하려고 들어왔는데, 그날부터 매일밤 하루도 못자고 여인들 보호하는 데 전부 남자들 정신이 없었더랬습니다. 그런 것을 다 잊어버리고 한국 민족사에 일어난 것을 없었던 것으로 잊어버리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마침내 공산정권, 소련군의 만행을 더 견딜 수 없어서 남으로 남으로 넘어올 때,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그때 3·8선 근처에서 흘린 피라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게 다 역사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중 한 예는 한 20여명이 됐는지 정확지 않지만 같이 일행이 돼서 3·8선을 밤중에 넘어오는데, 젊은 부부가 어린애 하나를 안고 같이 넘어왔습니다. 그러다가 소련군인이나 혹은 그들의 수하에게 걸리면 총에 맞아 죽게 되어 있습니다. 길을 오고 있었는데 오는 도중에 저들이 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모두 그 순간에 지시대로 땅에 엎드려야 됩니다. 찍소리 못하고 밤이니까 엎드려 있어야 됩니다. 그때 이 애기가 아나요, 울기 시작하니, 보채기 시작하니 그 젊은 부부가 얼마나 애를 썼겠어요. 그보다도 그 주변 사람들이 증오의 눈초리로 빨리 저 아이를 어떻게 조치를 하라고 눈짓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별짓을 다해도 안되니까 할 수 없이 솜으로 입을 틀어막아 버렸습니다. 그 아이는 물론 소리를 내지 못했지요. 그 소련군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죽어버렸어요.
외국 서양사람 같으면 아마 그 자리에, 바로 그 자리는 확인 못하더라도 3·8선 어디엔가에 그 아이의 상을 세우고 영원히 기념할 것입니다. 그 아이는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넘어와서, 소위 남한으로 넘어오니깐 해방이나 당한 것처럼 소리를 질러야 될 텐데 누구도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왜? 어느 것이 옳은지 말 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얼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두 부부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누구도 모르게 없어져 버렸습니다. 자기 자식을 입을 틀어막아 죽인 그 부부는 더 살수 없는 용기가 없어서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둘 다 죽었어요. 이 아이, 두 부모와 이 어린아이를 놓고 온 민족이 영원히 제사를 지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극히 한 예에 불과하지만, 구체적인 예들이 그렇게 무수하게 많은데 그게 다 우리 기억에서 너무 더 높은 악제나 더 나쁜 일들을 자꾸 보니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 희생된 이 사람들에 대한 진혼제라도 지내야지 과거에 억울하게 죽은 혼들이 그야말로 떠돌아 다니면서 제자리를 끝끝내 못 찾고 있으면 그 나라는 불안이 계속될 것입니다. 정말 온 민족이 우리의 해방을 계기로 당한 희생에 대해서 민족적인 대제사를 지내야 될 때입니다. 이러한 제사는 한번도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예배에도 이런 것이 도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 잊혀진 것, 오늘 우리를 있게 해준 사실들, 아까 이스라엘은 그때의 그 일은 조금씩 조금씩 시대에 따라서 꼭 교향곡의 멜로디처럼 약간씩 바리에이션 해가면서 자꾸 반복하면서 잊지 않았는데, 오늘 읽은 것도 너희 자손들이 혹시 묻거든 ‘왜 이럴 때 이래야 됩니까, 예배는 이렇게 드려야 됩니까?’ 이렇게 묻거든 다음 얘기를 해라, 그 얘기입니다. 우린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러한 생활을 안하면 안되고 이것을 익히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고 말을 해서 우리가 왜 이걸 사수해야 되는지를 대대에 전해라, 그것입니다. 이걸 완전히 예배 때마다 했던 것입니다.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우리를 해방을 시켰나, 나는 아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자기가 해방한 것이 아니고 탈출했습니다. 그럼 누가 가능하게 했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를 일러서 하느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께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결코 한 종교적인 어떤 대상이 아니라 그동안 모든 것, 총체적인 것을 포함시킨 겁니다. 그 앞에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일제시대에 유명하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어가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전부 친일파로 전향을 해서 일본놈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들이 전부 소위 명사로 행세했습니다. 그걸 그렇게 가능하게 했다는 민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창피한 줄 모르지요.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외없이 온 민족 전체가 해야 된다는 것처럼 모두 회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참 의미의 온 민족적인 회개운동을 이룩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역사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반민족특위같은 것이 무산된 이후부터 친일파가 주도한 역사를 계속 끌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참 해방은 이제 앞에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선 것이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라는 것이 해방전선에 섰던 이스라엘의 목표라면은 우리에게 가나안땅이 뭐냐? 통일이죠! 그밖에 길이 없어요, 이것밖에 약소민족으론 살 길이 없어요.
이제는 광야의 이스라엘에 있어서 광야 40년의 역사만큼, 아니 그보다도 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정말 통일을 해야 할, 역사적 볼 때에는 해야 할 할 수 있는 그런 때에 도달한 것입니다. 단지 중간에 방해한 것이 집권자들입니다. 계속해서 결사적으로 방해할 것입니다. 대를 물려서 절반이 끊어진 여기에서 집권연속을 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인 그들에게 그 이상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 자리에 앉으면 그렇게 될는지 모르지요. 여기서 우리 할 일은 아까 말한 그런 과정을 분명히 거쳐야 되고, 거치면서 통일에로 매진해야 되는데 나는 거듭 말합니다만 민(民)에 의한 통일밖에 통일의 길이 없습니다.
독일은, 제가 비교적 세밀히 아는데, 그들 멘탈리티(menta-lity)도 아는데 조금 전까지도 중산층 이상, 교회전체가 통일의사가 절대로 없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와 몇 차례 통일문제로 논의를 했는데 우리가 통일문제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죽어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못해요. 뭐 때문에 그러느냐? 그래도 공존하면 되는 것인데 왜 그러냐? 끝끝내 이해 못했습니다. 의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民이 밀고 일어나 밀려서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그 길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밀고 넘어가든지 밀고 넘어오든지 그 길밖에 없어요, 民이.
우리가 해방을, 우리 민족이 내 힘으로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해방을 못 만난 것처럼 앞으로 통일문제도 우리 손으로 해야지, 정권이 해서는 안돼요. 손으로 풀어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독일사람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그게 튼튼히 선 우리의 해방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되요, 남이 시작한 다음에 나도 따라 가겠다, 가서 어떻게 해방시키면 난 가서 교회나 세우겠다, 이따위 자세 가지고는 안되요.
이제는. 우리 통일은 내 힘으로 해야죠. 과거의 해방이 내 힘으로 되지않았던거니깐 그 대가를 우리는 무의식중에 치러왔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희생당한 사람들, 희생의 제물로 바쳐진 민중들을 기념하는 민족적 운동을 전개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가, 이스라엘 민족이 민족적인 고백을 한 것처럼 하느님 앞에서 고백을 해야 합니다. 해방 이후라도 좋아요. 우리 민족 고백을 줄거리로 해서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 왔다는 것을 우리 기독교인이 반복을 해서 예배 때마다 그걸 낭독하고 교독하는 그런 자료를 만들어 내는 운동이 벌어졌으면 합니다.
여러분, 해방은 희생의 제물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희생은 남이 하는 것에만 기대서는 안됩니다. 내가 희생할 각오를 하고 앞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 예배는 예배라는 성격에 그치지 않고 제사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 같은 민족적인 참회나 아무도 못했던 것을 그래도 우리가 앞장을 서서 해야 된다는 신념이 우리 예배로 이어지고 교회운동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이 글은 1990년 8월 12일에 향린교회에서 한 주일예배 설교를 다듬은 것입니다.<편집자 주>
(살림 1998년 8월호에 수록)




전에는 …… 이제는─고전3:2; 13:11-12; 갈 3:23-25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울지 않고─마 1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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