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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연구소(2004-01-09 16:22:42, Hit : 4367, Vote : 695
 어떻게 자라는지 몰라 / 살림 2000.6

어떻게 자라는지 몰라 / 살림 2000.6
―막 4:26-29

안병무


‘어떻게 자라는지 몰라’ 그것을 오늘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향린교회 39주년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나온 결론이기도 합니다. 향린교회가 생기게 된 것은 6·25하고 직결이 됩니다. 향린교회는 6·25 전쟁을 빼고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6·25 전쟁의 성격을 규정을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우리 향린교회 출발한 정신을 알게 됩니다.
6·25 전쟁은 대리전쟁이었지 우리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우리를 분단시키고 힘을 겨뤄 본 것입니다. 공산권이 먼저 남침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때 소련이 김일성을 앞에 내세워서  총지휘한 것이 지금은 백일하에 문서상으로 드러났습니다. 미국 역시 한국의 전쟁을 바랐던 것입니다. 미국은 이미 고도로 발전된 정부 기관을 통해서 이북의 동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갑자기 철수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한 대의 전투기도 남기지 않고 탱크 하나도 남기지 않고 소총과 장갑차 몇 대 놔 두고 철수해 버렸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미국의 국무장관이라는 사람이 우리 미국은 이제는 방위선을 한국을 제외한 일본까지만 긋는다는 선언을 해 버렸습니다. 계획적이었습니다. 이북이 오판을 한 것이고 소련마저도 오판을 했습니다. 이제는 절호의 기회다. 철수한 미국인이 갑자기 개입할 까닭도 없고, 그래서 소련이 배후에서 조정하고 이북의 오판하에서 남침을 결정하고 감행했던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2차대전 이후에 우리를 희생의 양으로 삼았나? 생각하면 하느님이 원망스러울 정도입니다. 정치현실, 국제적, 정치적 상황을 보면은 그들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공백기를 만들어 놓고 그들에게 오판을 하게 해 놓고, 이북이 침입하게 만들고, 미국은 2차대전 때 너무나 많이 만들어 놓았던 무기들을 어디다 내버릴 수도 없어서 팔아야겠는데, 그것을 한국땅에 쏟아 놓기로 한 것입니다. 2차대전 때 쓰지 못했던 무기를 한국에 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패전국인 일본을 다시 살리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들에게 무기를 부분적으로 생산시키면서 그들을 살리는 일도 함께 해 나갔습니다. 죽어가는 것은 한국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때 완전히 죽은 사람만 200만 명을 초과한다고 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숫자는 알지 못합니다. 그때 피난민이라는 것도 파악을 못합니다. 최소한 500여만이 2차에 걸쳐서 나라를 왔다 갔다 하는 처참한 피난민 행렬이 한국에 이어지면서 도중에서 사격을 맞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또 굶어 죽었습니다.
이 쓰라린 6·25의 사건을 회상하는 것은 그 자체를 회상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 한국 교회가 얼마나 무능했던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선교사들로부터 미국을 유학한 사람들이 대체로 크리스천 안에 많았습니다. 그런 탓으로 군정이 되었을 때 크리스천들이 대거, 군정하에 입각을 했고 여러 요직을 맡았습니다.
이승만도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마치 그가 대통령으로 앉기 전부터 기독교 국가가 된 듯이 야단이었습니다. 나라를 전부 그에게 맡겨버리고 그를 위한 기도회를 하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이전에 선교사만 통해 듣던 대로 미국사람들은 하느님이 보낸,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천사들, 사자들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만행을 보면서도 미국 사람의 상을 바꾸려 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을 신성하게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냉전 속에서 반공 교육하는 데 기독교가 앞장을 섰습니다. 동시에 북에 있는 절반의 한국 사람을 적대시켜서 사람이 아닌, 짐승보다도 무서운 악귀 같이 생각하게 만드는 데 기독교가 앞장섰습니다. 전쟁을 통해서 구제품 물자가 들어오는 것을 서로 합작해서 빼앗으려고 싸움을 했고, 적산 가옥을 빼앗는 데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별 추태를 부렸습니다. 교인들은 선교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하는 것은 피안적인 노래만 부르고, 지금도 우리 찬송가 속에 밤낮 피안적인 노래로 차 있어서 우리를 맥없이 만들지만, 그때도 계속 그렇게 해서 교인들 늘리는 운동만 했고 매일 북을 치면서 300만 교인 증가 운동을 하고, 가는 데마다 기독교국으로 만든다는 데 정열을 기울였으나 내부의 암투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민족의 장래가 어떻게 되는지,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희생을 당하게 됐는지, 이 희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무 생각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한마디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몽롱한 상태에 빠지는 아편 역할을 한 것밖에 없습니다. 이 민족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더러운 것에 아부했습니다.
아니 그 자신이 암적 존재였습니다. 일제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밤낮 피안의 꿈만 꾸게 하다가, 일본의 탄압에 교회 전체가 완전히 손들고 항복하고, 한국 기독교는 정기가 다 빠져버린 그리고 맥을 못추는 살아 있는 시체 같았습니다. 미군정, 이승만 시대 그리고 군인 구테타가 일어날 때까지, 정의로운 눈에는 기생충 노릇밖에 못한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에게 바라던 정신은 어느 한구석에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눈에 보이는 한국 기독교였습니다. 그리스도 교회는 볼 수가 없다던 것이 처음에 모인 젊은 사람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 공동체가 살아야 우리 한국도 산다는 신념은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민족에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어서 어떤 형태로든 개혁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진실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가슴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개혁 운동은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서, 또 파괴적으로 부정적인 면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전형적인 모델을 세상에 내세워서 정화운동을 펴자는 정신으로 시작한 것이 향린교회입니다.
결코 스스로 만족하자는 것이 아니고 한국 교회 갱신을 하지않으면 한국 교회라는 자체가 한국 민족사에 있어서 그야말로 군살과 같이 아무 감각이 없는 그런 것이 되고 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이런 운동의 전선에 선 사람들은 순교는 못할 망정 욕심에 자기를 맡기지 말아야 하고, 자신을 깎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라도 공동생활을 하면서, 반수도원적인 생활로 역류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기백은 모든 장애물에 부딪히고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향린교회는 적어도 처음 꿈꾸던 그런 공동체는 아닙니다. 아니 이미 포기해 버린 지 오랩니다. 방향 수정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향린교회를 이룩하려던 첫 세대는 실패한 셈입니다. 그 결과가 지난 40년 여러 가지 부정적인 증상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장애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장애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상을 뒤엎는 뜻밖의 일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도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현 상태에서 그것이 어떻게 40년을 자라 왔으며, 또 앞으로 역사 안에서 어떤 일을 하려는지를 앞당겨서 판단할 권리는 없습니다. 저도 최후적 판단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 본문을 선택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의 얘기입니다. 제가 지난번 꽤 오래 병석에 누워 있다가 몸을 가누기 시작하면서, 예수의 비유 전체를, 신학적이고 지성적인 것을 완전히 빼 버리고, 순수하게 단순한 마음으로 다시 읽으면서 굉장한 감동을 받고 그것을 문서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비유 전체를 다시 이야기로 재현해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그 기간이 행복했습니다. 이것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는 평범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바로 이것이 너무도 일상적이기 때문에 무심해진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그대로 함으로써 누구나 생각해야 할 핵심을 열어 보입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에 자고 낮에 깨고 하는 동안에 그 씨가 싹이 나고 자라는지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알을 맺게 한다. 열매가 있으면 곧 낫을 든다. 얼마나 단순한 얘기입니까? 여기서 하나도 관련된 것이 없습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를 얘기하고 특별한 의미를 부각하려는 그런 것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묘하게도 종교적인 냄새도 안 납니다. 우리 생활 그 자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대지에 꿈틀거리는 생명이 힘으로써 세상을 가득차게 합니다. 농군이 때를 맞추어서 밭을 갈고 씨를 심게 됩니다. 농군은 춘궁기에 들어서면 먹을 것이 없어서 나무껍질을 벗겨서 먹는 한이 있더라도 작년 가을 수숫대에 제일 좋은 것으러 골라 간직했던 씨를 절대로 손대지 않고 있다가 봄이 오면 땅을 갈아 헤치고 그 귀중한 낱알들을 모두 땅에 털어 버립니다. 이렇게 소중하게 간직했던 씨를 대지에 보이다시피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에는 불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모험입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렇게 했으니까 금년에도 반드시 싹이 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또 비록 나더라도 그것이 잘 자란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짐승들이 다 먹을 수도 있고, 하늘에서 비나 이슬이 내리지 않아서 말라 죽을 수도 있고, 그런데 농부는 무엇인가 맡기는 자세로서 씨를 땅 위에 뿌려 버립니다. 물고랑도 만들고 무엇인가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다시 고르고 흙을 덮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 더할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그의 한계입니다. 기다리는 훈련밖에 할 게 없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농부의 눈에 파릇파릇하게 돋아난 싹이 보입니다. 이것을 보는 농부의 환희는 농부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의 기다림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매일같이 바라보는 그 싹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명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곤충이 뿌리를 잘라 먹을 수도 있고, 대지가 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곡식이 자라는 것을 농부는 자명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싹이 나고 자라지만 어떻게 자라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농부는 생명의 환희 앞에 그저 황홀할 따름입니다. 처음에는 싹이 돋고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이 알을 맺습니다. 이것이 성장의 순서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성장하게 하는가?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게 한다, 농부도 아니고 씨알 자체도 아닌 땅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농부가 내가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씨를 뿌리고 흙을 북돋아 주고, 그리고 잡초를 뽑아 주고 해서 열매를 맺게 했다고 해서 생명이 자라는 것을 자기가 한 일이라고 한다면,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만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생명에 대한 신비의 체험은 전부 잃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것은 내가 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땅 스스로가 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 생명의 신비를 그래도 가슴에 지니게 됩니다. 감사와 감격의 마음으로 그 낱알을 먹을 때, 개나 돼지 같이 위를 채운다는 동물적인 포만감에 머물지 않고, 생명에 대한 존엄성, 밥에 대한 소중함, 한 알의 낟알이 아니라 한 생명의 사건이라는 감격이 있을 때, 단순히 위를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밥알이 정신화하는 그런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단순한 얘기를 했는데 이 얘기로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지? 그것은 이 얘기 앞에 단서로 붙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마치’라는 단서입니다. 이것이 그의 얘기의 목적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알려 주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얘기의 내용은 이렇게 단순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낯선 것인지 몰라도 농부에게는 너무도 단순한 얘기입니다. 예수님은 이 얘기로 하느님 나라의 성격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성서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들은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내용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분명히 이 얘기는 하느님 나라의 이야기로는 볼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청사진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신비입니다. 그 생명은 그 농부 자신의 손 안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그 생명은 끝끝내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그 생명은 자랍니다. 계산할 수 없는 난관을 헤치고 생명은 마침내 대지를 뚫고 나와, 온갖 방해를 물리치고 하늘과 땅의 힘과 협력해서 열매를 맺기 위해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바로 이렇게─우리가 그 농부처럼 대지를 갈아 헤치고, 비료를 주고 씨알을 뿌리듯이 그것에 참여하고 있으나, 그 씨알이 어떻게 자라는지는 알지 못하듯이─우리 역사 속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생명의 신비처럼 조용히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입니다.
향린교회를 지금의 모양으로 만들려고 출발한 사람은 없습니다. 향린교회라는 이름도 ‘향린원’이라는 고아원의 이름을 그대로 딴 것뿐입니다. 교회이기 전에 밥상 공동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식구들끼리만 한 밥상에서 오손 도손 먹기를 바랐습니다. 직장에서 얼마를 벌든지 한 주머니에 넣고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 쓰기로 했습니다. 토론을 하고 또 하고 해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교회라는 간판을 내건 것도 교회를 보통 또 하나의 교회로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것도 편법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적산 재산이었기 때문에 불하를 받기 위해서 향린교회라는 이름을 내걸었습니다. 어느 교파에 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적산가옥을 신청할 때 바로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이 공갈 협박을 하는 와중에서, 우리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전전긍긍했는데, 그래도 어떻게 마침 중앙 신학교에 깊이 관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마당에 천막을 치고 ‘제일학원’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생계를 꾸려 나갔습니다.
한마디로 밭을 갈고 씨를 심고 비료를 준 것은 몇몇 우리들인데, 그것이 어떻게 자랐는지는 모릅니다. 또 우리가 처음에 구상했던 그런 것도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실 늘 농담 반 진담 반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것이 향린교회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때에 와 있습니다. 보수주의와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냉전시대하고 또 다른 불균형 시대에 접해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모르는 동안에 밥술이라도 먹는 중산층 이상 사람만 오는 그런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맥은 있습니다. 무슨 정의니,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모임을 하자면, 갈 데는 향린교회밖에 없다고 사람들이 인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향린교회에 몰려들어 여기서 무슨 사건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 목사도 자기가 한 발언 말고도 이런 것도 그 죄물 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알고 있습니다. 향린교회만은 제정신이 있다고 합니다. 나도 창립자 중의 한 사람으로 감옥에도 갔다 왔고 홍 목사도 그렇고, 이것들이 다 장식품이 되어 있는지, 하여간 교회 성격은 지금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열매를 맺을 때는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에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신비한 역사에 참여한다는 준비만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 시간에 단 하나 부탁할 말이 있습니다. 내년이면 40주년입니다. 향린교회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궁극적인 것은 하느님 나라 도래에 참여하는 일이지만 구체적인 일 하나를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쨌든 이 민족 역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희년 준비를 위해서 1995년을 설정을 했는데, 그냥 기념 예배나 보고 지나가려 했더니, 그러지 말고 구체적인 일을 하자고 해서 제가 ‘장차 이루어질 통일된 조국의 헌법의 기초를 잡아보자’고 제안을 해서 통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의 구상을 회보 등에 발표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이 민족이 어떤 체제로 나갈지 모릅니다. 정권에 맡겨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의 통일문제는 민에 의해서 이루어져야지 권력자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분단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세력권이니까 통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향린교회가, 주제넘을지 모르나 40년을 계기로 이일 저일 우물우물 축제식으로 나가지 말고 통일 헌법 초안위원회를 만듭시다. 향린교회가 이제 1년을 앞에 놓고 통일민족 헌법 초안을 구성하는 위원을 형성해서 40년 기념 때에는 그것을 천하에 발표하는 것을 제의하고 싶습니다. 한국 민족이 장차 어떻게 살아나갈지 하는 것을, 윤리가 배제되고, 도덕이 배제되고, 모든 문제가 테크놀로지 일변도로 발전하는 이 시기에 우리가 브레이크를 걸고, 오는 통일된 나라의 모습이 이렇게 되어야겠다는 사상을 안으면서 일반적인 언어로 통일 초안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자 하는 제안을 해 봅니다. 기독교 장로교를 통해서 하건, 어떤 형태로든지 공동체가 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문가를 초청해서 이것을 1년 동안 기초하여 40주년 기념식에 세상에 공표하면 우리가 역사에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 우리 자신이 역사의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재확인하는 것도 되겠고,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는 신도로서 자세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결과적으로는 새나라를 건설하는 데 어느 부분이라도 우리가 참여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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