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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연구소(2004-01-09 16:23:32, Hit : 4801, Vote : 650
 권력의 질서와 하느님의 질서

*이 글은 1985년 10월 13일에 향린교회 한 설교를 다듬은 것입니다(살림 2001년 7월호에 실림).

권력의 질서와 하느님의 질서*
―마가복음 10:41-45


안병무



오늘 찬양대에 대해서 한 마디 하려고 했는데, 벌써 목사님이 말씀드렸는데, 참 잘 하신다 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으로 민족적 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 와 보면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이 났어요. “야 용하게도 외국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카피한 심미적 잔재가 그대로 있구나. 의복이며 무엇이며 옛날에 궁전에서나 혹은 대성당(cathedral) 같은 데서 부르던 저런 어려운 곡을 꼭 해야만 되나. 참 내게는 관심도 없는 멜로디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 식의 표현이 역시 있을 법한데 백년이 되었는데, 우리 감정을 가지고 호소를 하고 우리 하느님께 찬양을 하고 해야 할텐데……. 나도 지금 양복을 입고 있지만 한국 그리스도교도 민족적인 고백을 우리 나름대로 해야 할 단계에 서서히 오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금년에 계획하기는 12번의 설교로 '성서의 밑바닥을 뚫고 가는 맥을 짚어본다' 라는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두 번을 얘기하고 못했습니다.
지난번에는 탈향의 역사를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출애굽은 원래 탈향의 역사의 모델이었습니다. 출애굽 이야기,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그것에서 유추된 그런 얘기인 것을 전제하고 이것을 전체로 몰아서 역시 언제든지 사람은 낡은 것에서 계속 탈출하면서 새것을 향해서 앞을 향해서 지향하는 그 자세 자체에서 우리의 참된 삶은 이루어진다라는 것 그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약간 강의적인 내용이 되더라도, 성서학적으로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갖고 말씀하는 것이니까 지금까지 교회에서 듣던 것과는 다르더라도, 성서 지식도 필요하고 또 이것을 바탕으로 가지고야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것과 관계된 것을 선정했으니까, 그렇게 아시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얘기는 가나안의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구조와 야훼의 신앙이 어떠했으며 그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유는 제가 맥을 짚는다는 그것은 막연하게 허공을 사는 것이 아니고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역시 자기의 뿌리가 있습니다. 뿌리에 접근해 보려고 여러분의 뿌리를 좀 보여주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의미에서 고대 가나안의 이스라엘의 사회 생활이 어떻게 연결되었는가 하는 것을 갖고 오늘 현재 우리의 신앙의 자세가 어떤지를 반성을 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탈향, 탈출에서 앞으로 향하는 소위 ‘아우프(auf)’의 상징적인 지도자 모세의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그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가 대를 이어서 가나안으로 침입해서 거기서 정착하는 얘기가 여호수아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1장부터 12장 사이에 진입하는 과정과 거기서 열두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주는 얘기 등등이 있습니다.
가나안의 소위 이스라엘의 공동체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이스라엘의 원 모습은 결코 여호수아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성서는 여러 기록들을 다윗왕가들이 재편집을 하면서 해석을 해 가면서 편집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 이스라엘의 원 모습이 창세기, 출애굽기, 신명기, 여호수아기, 사사기, 사무엘상하, 시편, 심지어는 하박국에까지도 퍼져 있습니다. 이 자료들을 전부 학자들이 모아서 이것이 가장 오래된 역사자료로써 고대 이스라엘의 사실을 전한 것이라는 그런 정설, 거의 정설같이 된 내용을 제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이스라엘의 형성이 어떻게 됐나 하는데 대해서 그리 중요하지는 않지만 다음 얘기를 위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인데 세 가지 학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서를 단순하게 평신도가 읽는 것처럼 여호수아가 선두에 서 가지고 군사적인 활동을 해서 팔레스틴을 진격해서 정복한 것으로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를 해 온 소위 정복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정복해서 제거해 버리고 자기 나라를 세운 것 그것이 이스라엘이다 이렇게 이해한 학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성서를 피상적으로 읽으면 이렇게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두 번째가 아무리 보아도 성서 내용을 여러 각도로 읽어보면 그렇지는 않고, 정복은 아니고 서서히 이주를 했다는 이주설입니다. imigration, 이것은 싸움을 한 것이 아니고 서서히 우리가 만주로 들어가듯이 이렇게 이주를 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소위 혁명설이 있습니다. 안에 있는 어떤 세력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이라는 처음 공동체를 일으켰다는 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실제는 어떻습니까. 처음에 말한 정복설은 주전 13세기 말경에 된 일입니다. 전부 한꺼번에 전투를 해서 정복을 했다는 그런 설이 여호수아 1장에서 12장 사이에 있고 한편은 지파별로 부분적으로 정복하였다는 자료가 사사기, 여호수아기에도 있습니다. 동시에 정복을 못한 지역이 있다는 것을 노출했고 또 하나는 거기에 가나안 사람들과 혼합을 해서 살고 있다는 흔적이 성서에는 도처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나안 사람들과 아주 평화롭게 살고 있는 기록들이 많습니다. 이미 창세기 12장에서 50장 사이의 소위 족장들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들의 삶의 내용을 기록한 것을 보면 저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이민족과 함께 살았다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도 여러 곳에 발견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학자들의 연구 내용은 어떻게 12지파라는 것이 생겼는가 하는 데서 생겼습니다. 이집트 안에 있을 때 12지파라는 것이 생길 수는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광야 40년 생활 내용이 있지만 일정한 지역도 없고 삶의 거처도 없는데 12지파라는 것이 형성이 될 수 있었겠나 하는 것 등이고, 이런 것으로써 문제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논증을 한 결과로는 분명히 가나안 안에 있는 여러 부족들이 결코 이집트에서 탈출해 들어온 히브리들만 아니고 가나안 안에 있는 여러 부족들이 공동의 이익과 공동의 적 앞에서 자기끼리 살기 위해서 한쪽으로 방어하면서 자기들의 적극적인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 결속된 공동신앙에 의해서 뭉쳐진 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라는 결론입니다. 여호수아기의 12장 9절에서 14절에 쭉 나열한 것 하나는 여호수아가 투쟁하면서 들어가는 동안에 왕의 이름을 열거합니다. 그들이 31명의 왕을 물리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기의 내용을 보면 실제로 어떤 도시국가랄까 군주성이랄까 하는 그 왕과 싸운 설화는 15가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31이라는 설은 무엇일까요. 학자들의 결론은 여호수아가 한번에 싸운 것이 아니고 가나안이라는 그 지대에 시리아, 팔레스틴에 거점을 두고 있는 군주체제가 적어도 31개 있었다는 것이 판명이 됐습니다.
즉 다음과 같은 결론입니다. 이스라엘은 31개나 되는 군주들에게 매여있던 농노(노예)들이 더 이상 그 압제에 견딜 수 없어 탈출해 나왔습니다. 소위 합비루, 또는 압비루 라는 그들과 이집트에서 군주의 압제 밑에서 신음하다가 탈출해 나온 히브리들이 단합해서 야훼의 이름 밑에 뭉쳐서 군주제도에 항거함으로써 왕 없는 공동체를 구성한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의 기원입니다.
왜 이런 결론인가 하면 그때 이스라엘이 출현되는 배경을 보면 확실해 집니다. 시리아, 팔레스틴이 군주제가 된 것은, 주전 1786년에 소위 유명한 헥서스라는 사람이 점령해 들어왔는데 그로부터 처음으로 전차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때 가나안에 있는 주민들이 혹은 공동체들이 굉장한 위협을 받았습니다. 도무지 이렇게 조직화된 군사적인 세력을 배후에 둔 이런 세력이 밀고 들어오니까 낫이나 호미 같은 것을 들고서 어림도 없다는 판단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자극이 돼서 팔레스틴의 군주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속속 일어났습니다. 다른 기록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강해야 되겠다 하는 강병 논리가 강하게 우세해져서 이들이 소위 군주제도를 채택해서 강병주의, 군국제도를 채택했습니다. 군주란 말할 것도 없이 일반 사람들을 노예로 부려서 먹고 군대를 부하로 두었습니다. 또 공신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땅밖에 없으니까 땅을 뚝뚝 잘라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신들은 이 땅을 농노에게 강제로 농사를 시켜서 먹고살았습니다. 그래서 이 가나안에 이스라엘을 이루기 전에 사람들 대부분은 지도계급을 빼고는 전부 군국주의 밑에서 신음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중적인 착취를 당해야 했습니다.
주전 1670년에 힉소스의 지배가 사라집니다. 사라지니까 군주체제를 만들어놓은 가나안의 여러 소국들이 불안하니까 전부 연결시키기를 이집트 군주들과 연결해서 거의 종속국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한때 아시아에서 중국 앞에서 예속되었던 것과 비슷하게 그런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세력에 의존해서 자기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체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주전1490년에서 주전1430년 사이가 이집트가 가나안, 팔레스틴에 가장 영향력을 많이 행사하고 가장 강력하게 지배권을 행사했을 때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을 때 고대문헌, 이집트문헌에도 나오는데 합비루 혹은 압비루, ‘PR’이 어간으로 되어있는 특수 사회 계층이 많이 생겨서 이것이 골칫거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임꺽정, 장길산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보통 말하는 도적들이 우글거리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된 것처럼 합비루라는 특수 사회 계층이 죽지 못해 자기들끼리 결속해서 탈출해서, 즉 고용병, 쫓긴 사람들, 빚을 진 사람들 등,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뭉쳐서, 그들을 토벌한 기록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바로 합비루라는 말과 연결이 된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이집트에서 온 힙브리, 아니면 가나안 자체에서 항거하고 온 힙부루 이들이 연결이 돼서 이루어놓은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를 ‘out law community’ 라는 말을 씁니다. 소위 소외자의 공동체라는 말을 씁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출발이 애당초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이것은 야훼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출발한 이스라엘의 구조를 보면 가장 처음 기본 단위가 가족입니다. 소위 ‘벳’이라고 하는 가족입니다. 한국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가족은 5대까지도 같이 살았습니다. 사랑방 같은 것을 더 지으면서도 5대가 함께 살면서 한 운명 공동체로 살았습니다. 자주권이 있고 침해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보통 족속이라고 번역하는 ‘미스파하’라는 단위가 있습니다. 씨족, 문중, 가문 이런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혈족과 관계되지만 꼭 혈족에만 관계된 것은 아니고 여기에 이 안에 들어간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공동 운명체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또는 공동 목표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이 결속된 것이 이것이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미스파하라는 것 이것은 굉장한 자주권을 가졌던 것입니다. 대체로 천이라는 말도 포함되어있어서 크게는 천명이라는 단위까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봅니다.
이 족속은 상당한 독자성을 가졌습니다. 절대로 어떤 군주도 그들을 지배하거나 명령하거나 제도를 하달해서 할 수 없는 자치적인 단위였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권을 뺏으려고 별 짓을 다하다가 그가 어떤 잔치에 참여하라는 강요를 받았을 때 핑계를 댄 것이 사울의 아들에게 한 말이 다윗 문중에 일년에 한번씩 드리는 주년제가 있어서 속히 고향의 베들레헴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참여할 수 없다고 전해달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20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대로 사울도 종족의 법이니 어쩔 수 없다고 양해하는 대목이 나올 정도로 상당히 자치적이고 자율적인 자주권을 가진 단위입니다.
그 다음은 히브리말로 ‘세베트’라고 하는, 지파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소위 종족이라는 최대로 50개 정도 숫자의 확대된 공동체입니다. 중앙정치조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같은 운명을 경험한 데서 자연발생적으로 뭉쳐진 사회적 단위입니다. 예를 들면 함께 어디서부터 몰려서 혹은 의도적으로 이주를 해서 와서 정착한 사람들, 쉽게 말하면 6·25전쟁 때에 많은 피난민들이 이쪽에 나와서 한 지역에서 살거나, 만주에 약 200만 명의 한국 사람이 웅거하고 살면서 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이나 같은 맥락입니다. 함께 박해나 저주를 받아서 싸우던 기록을 가졌다든지 아니면 지연적으로 같이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지연적인 관계에서 공동으로 해결하지 안 되는 이유에서 운명 공동체가 된 그런 단위입니다. 이 지파는 이스라엘 전체의 회의에 갑니다. 당당한 권리를 가지고 대표를 파견합니다. 결코 상부에서 지시하는 것이 없고 이 대표가 올라가서 합해서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민주체제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지파는 지파 단위로 군대를 소집하고 만일 팔레스틴에 이스라엘 전체의 위협이 있을 때면 군대를 함께 보내면서 결성해서 거기서 지휘자를 결정해서 대항해서 싸우게 했던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지방자치제라는 가장 고대적인 모델입니다. 한국은 계속적으로 독재정권만 들어서 있어서 끝끝내 지방자치를 반대하면서 지금까지도 안 하고 있는데 벌써 4, 000년 전에 이런 모델이 있었는데 흔히 열두 지파로 부르고 있습니다. 즉 지방자치제와 연결시켜서 생각하십시오. 야훼 신앙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소위 열두 지파가 모여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열두 지파는 완전수의 표시입니다만 이런 지파들이 결속하고 연합해서 소위 말하는 종족동맹 혹은 지파동맹이라는 것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스라엘에는 군주는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큰 주제입니다. 사사기에 많이 나옵니다. 군주에 저항해서 나온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이 군주체제에서 권력이 집중하게 되면 거기서 눌려서 고생하던 것이 너무도 몸서리치게 신물났기 때문에 우리는 왕은 절대로 안 둔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공동의 신앙의 대상으로 야훼를 중심으로 뭉친 것’입니다. 이것은 땅위에는 사람 위에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신념과 야훼 하느님 한 분만이 우리의 주님이라는 것과는 직결된 것입니다. 절대로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몸서리치게 생각되면 생각될수록 우리는 오직 당신만이 주님이다는 고백은 이 땅 위에서 독재정권이 폭력을 쓰면 쓸수록 그 신앙은 불붙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대전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서 계속 전수하기 위해서 소위 의식제도, 제사의식 속에서 계속 자기들만이 경험한 것이 아니고 경험한 세대가 없어지더라도 계속 예식, 제사를 지낼 때 그것을 낭독하면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해방하신 하느님이 어떻게 했다하는 것을 반복해 읽으면서 대대로 전승하면서 우리 하느님은, 신앙은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성립했다는 것을 계속 전승해 내려갑니다. 십계명에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은 어떤, 나 외에는 어떤 것도 섬기지 말라, 어떤 상도 만들지 말라는 것은 소위 군주체제가 군이 신의 이름을 가지고 횡포를 한 것에 대한 제도란 것이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똑같이 똥싸고 밥 먹고 하는 자식들이 우리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국민이 결정하지도 않은 법을 마음대로 법 이상의 권리를 쓰면서 사람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마음대로 하는 것 이런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은, 야훼여 당신만이 우리 주님이 되어 주십시오 하는 신앙과 절대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셋째가 평등사회입니다. 이것은 계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자기들이 뼈저리게 하층계층으로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내 생명이 아까우면 남의 생명 아까운 줄 알고 내가 가난의 슬픔을 알았으면 가난한 사람의 괴로움도 알고 내가 인간으로 대접을 못 받았으면 인간으로 대접 못 받는 당신도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되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철저히 평등사회입니다. 이것은 관념적인 평등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정치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평등사회라서 재산이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제도적으로 만들어서 희년제 같은 것도 상당히 일찍이 돼서 가졌던 재산을 도로 분배하고 나누어주고 억지로 팔려갔던 노예를 다시 해방을 받는 그런 제도까지도 발전할 정도로 제도에 대해서 깊이 관심을 가지고 관여했던 것입니다.
이 법의 제도, 경제도 이것은 성법전, 신명기 법전, 레위기 법전 등에 분명히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특별히 눌리고 고통하고 가난한 사람들, 과부들, 고아들을 돌보라는 것이 거기에 아주 정신이 충일되어 있습니다. 우리 십계명 같은 것도 보면 전부 구체적으로 밑바닥에 깔린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차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가 이들이 한 것은 공동의 방위입니다.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야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 민병대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평범한 농부가 유사시에는 모여서 싸우는, 지금 스위스 같은 제도지요. 이것을 만들어서 그들은 군사적인 조직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사라는 것이 등장합니다마는 사사도 절대로 군주가 아닙니다. 그들은 특별히 하느님께 카리스마를 받아서 어떤 놈이 나라를 쳐들어오면 갑자기 등장해서 밭을 갈다가도 나와서 싸우고 싸움이 끝나면 도로 밭으로 가서 낫을 들고 호미를 드는 것이 원래 사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세습 제도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들은 안에 기근이라든가 천재 등이 일어나면 갑자기 결속해서 대처하다가 문제가 없으면 평화롭게 되면 지파는 지파대로 종족으로 돌아가고 종족은 가족으로 돌아가서 그 가족이 다시 독자성을 가지게 만들지 결코 국가라는 형태를 가지고 중앙집권체제를 가지고 상존기구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상의 특징이 지속된 것은 결국 야훼, 야훼의 신앙입니다. 살아있는 산 하느님, 야훼, 우리를 언제나 모든 경우에서 간섭함으로써 그리고 잘못 나가면 질투하는 하느님, 이 말은 중요합니다. 잘못된 길로 나가면 질투하는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어떤 제도나 기존화된 특권 등에 정좌하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습니다. 특권층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습니다. 희년제도를 두어 언제나 환원할 길을 여는 것은 야훼가 하신다는 것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언제든지 환원시켜서 기득권을 박탈하니까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얼른 보면 이것은 제가 한국 역사를 잘 모릅니다마는 고대 한국 사회를 연상하게 합니다. 고대 한국 사회는 역시 종족동맹, 씨족동맹 이런 것으로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소위 신석기시대에는 육시동맹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박혁거세의 이야기에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마는, 육촌의 대표들이 나와서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하여야 되겠습니다 라고 토론하는 원 모델이 있습니다. 결코 상부의 중앙집권으로 하지 않고 육촌이 의논해서 모여서 토론하는 것이 있습니다. 별스러운 것이 등장하지만 단군씨족이 있고 그 씨족 중에 하나입니다. 그 단군 씨족은 곰을 토템으로 삼았고 박씨 씨족은 말을 토템으로 삼았고 김씨 씨족은 닭을 토템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씨족 중에 하나입니다. 또 이렇게 씨족, 동족, 신라의 화백제도라든지 씨족회의 등 이름이 그런데서 온 것입니다. 청동기시대에 들어오면 부족동맹국가가 출현됩니다. 이씨조선이라든지 부여, 초기 고구려 같은 것은 완전히 씨족동맹입니다. 소위 오족동맹이 고구려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왕이라는 것은 결코 특권층이 아니고 오족동맹의 대표가 와서 의장으로 선출한 것이 왕이었습니다. 왕은 절대로 세습화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왕이 세습화할 때부터 병이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습화 될때도 수상격인 사람은 오족에서 추천한 사람에 의해서 되어야지 왕이 마음대로 임명할 수 없도록 되었습니다. 지금보다 민주적이라니까 참 묘한 세상입니다. 왜 세상이 이렇게 거꾸로 돌아갈까! 한국만!
삼한 때도 소위 78이나 되는 민족이 씨족이 회의를 해서 이끌어나간 것이 드러나 있습니다. 부족동맹시대입니다. 상당한 민주적 흔적을 가지고 있어서 놀랍게도 고대 이스라엘을 방불케 합니다. 신라만 해도 초기에는 이른바 가야연맹 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역사는 이스라엘역사와 이렇게 다를까? 그래 수난은 이스라엘이 더 했을지 모르나 우리 역사와 이스라엘 역사는 굉장히 다릅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
이스라엘 민족은 국가는 잃어버렸는지 몰라도 민족은 절대로 잃어버린 일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 경제 등 모든 것을 포함한 사회적인 염원과 그것에 연계된 직결된 종교가 성립되지 않은 데 문제가 있습니다. 종교가 제 구실을 못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는 망했어도 민족은 끝끝내 살아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했나? 야훼의 신앙, 내 삶과 직결된 야훼의 신앙입니다. 사회 제도 즉 정치, 경제를 뺀 것이 아닙니다. 이것과 직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훼의 신앙이 이 체제를 유지하고 이 잘못된 것에 대한 반항이 야훼의 신앙을 굳건히 하는 이 다이나믹한 관계, 이것이 고대 이스라엘을 살리게 했고 이 뿌리를 가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이렇게 보지 않으면 안 되고, 이 뿌리에서 예수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정치적 결단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억압받은 계층이 사람으로써 다시는 사람에 의해서 예속되지 않으려는 염원이 “야훼여 당신만이 나의 왕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우리에게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마 10:26-31
한국의 인간상 / 살림 2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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