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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성(2004-01-09 16:07:33, Hit : 5228, Vote : 662
 자연을 찾는 마음

자연을 찾는 마음

안병무


나는 자연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역시 인간이 흥미있다. 그래서 그림을 볼 때도 자연 풍경 따위보다는 인간의 표정에 더 끌렸다. 그래서인지 ‘엘 그레꼬’의 그림을 좋아했고, 오늘의 그림으로는 역시 피카소의 그림 중에도 인간을 그린 것들을 좋아했다. 또 문학작품에서도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것을 좋아했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는 자연의 묘사가 많다. 그는 사건의 사이 사이에 자연의 묘사를, 그 자체로 독립된 듯한 것들을 모자이크 한다. 난 그런 장(章)들은 곧잘 넘겨 버렸다. 이에 반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는 자연의 묘사가 거의 없고 인간의 심리묘사로 일관한다. 그래서 그를 좋아했는지 모른다. 이것과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산으로 산책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거리로, 그것도 지저분한, 가난한 거리로 거니는 것을 좋아했다. 빈대떡, 족탕, 순두부 따위의 집 또는 왕대포 집이 즐비한 지저분한 거리에 취한 쥐가 ‘고양이야 나오너라’ 하는 식으로 독(毒) 없는 함성을 고래고래 지르면서 지나는 거리에서 왠 사연인지는 모르나 입씨름을 하며 아귀다툼하는 분위기 속의 인간들의 표정은 인간 고뇌의 축도처럼 보여 이른바 체면만 아니라면 오래오래 서서 보고 싶고, 참여하고 싶은 장소로 돼 있었다.
그러나 요사이 왠지 거리,아니 사람 모인 데가 싫어지고 자꾸 자연 속에 깊이 묻히고만 싶다. 왠일일까? 인간 오염증에 걸렸나?
지난 가을에 한국신학대학원생들과 처음으로 설악산으로 갔다. 참 오랜만에 어떤 의무도 없이 젊음이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저들의 젊음을 부러워하고 또 대견하게 생각했지만 무엇보다도 자연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세상 구경을 많이 한 것은 아니나 그래도 유럽인들이 자랑하는 지대, 무엇보다도 서구인들이 자랑하는 알프스에 연한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다 다녀봤지만 설악산에서처럼 자연에 도취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알프스는 웅장하기는 해도 설악산처럼 아기자기한 모습은 없다. 글자 그대로 들 하나 하나가 하느님의 예술품이다. 거기에 불이 타는 듯한 단풍이 산악을 수놓아서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래서 연륜에 굳어진 것으로 안 이 감정이 폭발되어 몇 번이고 비명같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만 했다. 계곡을 들어갈수록 인적이 없어지고 맑은 물, 수려한 산악 그리고 단풍이 이룬 풍경은 어디에 렌즈를 맞추어도 훌륭한 한 폭의 그림이 될 수 있는 황홀경의 연속이다. 처음에는 저들보다 앞장섰으나 산으로 오를수록 나이는 속일 수 없어 뒤로 처져야만 했다. 그저 어디든 그대로 앉아 그 자연에 그대로 흡수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금강산은 더 아름답다는데 어떻게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왜 그리도 아름다울까? 이 감정은 뒤로 둔 인공의 세계에 지친 반작용은 아니었던가?
산을 오르다가 길을 막고 쓰러진 거목의 시체 위에 젊은이들과 함께 걸쳐 앉았다. 그 끝은 아득하리 만큼 저 아래로 뻗어 쓰러져 있는데 겉은 썩어 들어가고 있다. 무수한 벌레들이 그것을 다시 대지에 환원시키기 위해 공동작업을 펴는 것이다. 그 위에 커다란 버섯들이 여기저기 돋고 있다. 죽은 몸으로도 사람들이 먹을 것을 남겨주는 죽은 고목, 저 나무가 쓰러져야 할 무슨 큰일이 있었을까? 바람이 아무리 세다 해도 이런 나무를 어떻게 뿌리째 뽑아 쓰러뜨릴 수 있을까? 아무래도 새 세대를 위해서 삶의 자리를 양보한 게지 그리고 그 거구를 썩혀 비료를 제공하려던 것이겠지. 아니면 자연을 짓밟는 인간들의 횡포에 견딜 수 없어 몸을 육탄삼아 이 사람새끼들이 오르내리는 길을 가로막아 보렴이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 시체를 타고 그 아래에 펼쳐진 예술의 세계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우리 머리에는 인간 사이에서 일어난 아귀다툼 속에 묻은 때들이 씻기어 나가고 우리의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토록 무색한 감정에 사로잡힌 곁의 젊은이들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정해진 날짜와 돈 때문에 그 곳을 떠나야 했으나 그래도 단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어 돌아오는 길에 소금강이란 곳이 있다기에 그리로 들어가려고 한 작은 마을에 내려서 다음 차를 기다렸다.
오밀조밀 모여 사는 요 작은 거리는 사람들이 발라놓은 때가 꾀제제해서 눈살을 찌푸리고 서 있는데 한 학생이 신문을 들고 뛰어왔다. 한신학생들이 국회의원 조찬회 모임 앞에서 데모를 벌였다는 기사이다. 인간세계! 부조리 속에서 아귀다툼하는 인간세계! 우리는 지금 설악산과 더러운 세계 사이에 있었다. 자연으로 되돌아갈까? 서울로 갈까? 그러나 학생 전원은 누가 선창함도 없었는데 그 길로 서울의 열차를 탔다. 우리는 밤새 자리다툼하는 차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였는지 비명이었는지 몰랐다. 누가 앞에서 끄는 것도 아니었으나 그래도 사람이 사는 지대로 와야 했다. 제 손을 내밀어 결박을 자청하는 죄수처럼.
학생 데모, 위수령, 학생 제적, 사퇴! 돌아온 서울은 이러한 사건들의 무대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기고 지는걸 모르는 자연으로 갑시다. 나는 젊은 동료들과 함께 또 다시 자연이 그리워 무주구천동 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초상집 같은 학교를 오래 떠날 수 없어 하루를 택해서 강화도로 향했다. 언젠가 가봤던 전등사였다. 인간이 가까울수록 자연은 빛을 잃는다. 그 산은 인간 벌레가 눈 똥으로 더러워졌다. 전등사 뒤로 산을 오르니 강화도가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바다가 아득하다. 저기를 가면 북한 땅인가? 우리 땅을 어떤 놈들이 점령해서 우리는 이렇게 멀리 바라다만 봐야 하나! 산정에는 산성이 그래로이다. 열대(列代) 나약한 왕조들의 곡소리, 눈물을 듣고 보는 것만 같다. 국민을 버리고 제 몸하나 피신해 묻혀 살던 판국에 그 마음이 금수라 해도 편했을 리 없다. 이 곳 산천은 즐겁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을 떠난 것만으로 우리는 그렇게 후련해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자연! 서울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상처투성이의 문둥이 같다. 그 아름다운 산들이 개간이라는 이름 밑에 마구 찢기고 있다. 근대화의 상징 서구문화의 병폐!
산에 정기가 있다고 본 우리 조상은 현명했다. 자연의 정기를 보는 눈은 기술과학의 렌즈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에는 정기가 있다. 그래서 언덕 하나도 함부로 깎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눈을 잃은 현대인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알고 함부로 학대했던 결과는 생태적 자살로 휘몰려 갔다. 하나님이 주신 집을 헐어버린 인간! 그들은 콘크리트 집이면 살 수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라도 탕자처럼 되돌아 오려는가?

(이 글은 <현존> 1971년 12월호/ <살림> 2000년 12월호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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