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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성(2004-01-09 16:08:53, Hit : 4466, Vote : 659
 주체성과 신앙

주체성과 신앙


안병무


1. 한국에 특유한 사상이 없다는 주장

『한국사상』 제5권에서 송건오 씨가 “한국사상의 정체성(正體性)”이라는 논문을 썼다. 그는 ‘한국에는 고유한 사상이 없고 유불선(儒彿仙) 3대 외래 사상으로 이루어졌으니 중국, 인도, 일본의사상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이 점에서 화랑도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사상”이라는 논문인데, 곧 동양사상으로 뛰어버린다. 정말 한국에는 고유한 사상이 없는가? 없다면 왜 없는가?
우선 송건호 씨가 말하는 사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유불선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사상권으로 전제하고 그러한 것이 없으니, 사상이 없다는 논조이다. 그렇게 보면 중국, 인도, 그리스, 히브리 정도의 민족만이 사상이 있고, 다른 민족에게는 사상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구라파의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미국에도 사상이 없다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저들의 사상한 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히브리, 그리스 사상에 귀결되기 때문이고, 저들은 그런 사상의 발상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확실히 한국은 한국을 대표할 만한 고전이 없다. 몇 가지 있다고는 하나, 전 민족의 사상을 응결시킨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어떤 난국에 부딪치므로 푯대를 잃었을 때 경전(고전)을 가진 민족은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여 그 민족에게 재기할 수 있게 하는 활력소를 준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러한 기성(旣成)의 고전이 없다”, “그러니 우리는 사상이 없다”, “그러니 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는 사상하지 않은 푸념이다. 가령, 우리에게 고전이 있다 하자. 그러나 그 고전 자체가 어떤 효험 있는 부적이 되어 그대로 우리를 살리는 사상은 되지 않는다. 이미 형성된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사살해 버린 것, 살고 난 흔적, 타고남은 재와 같은 것이다. 그것 자체는 그렇기 때문에 죽은 사상이다. 이 죽은 사상을 방치해 두면 영원히 침묵할 뿐 말이 없다. 그러나 이 죽은 사상이 산 사상으로 바뀔 수 있다. 그것은 이 죽은 사상은 한 산 주체가 사상할 때, 다른 말로 하면 산 주체가 이 죽은 사상에게 자기 선 자리에서 옳은 문제를 설정하고 육박할 때, 이 죽은 사상은 생체(生體)처럼 말을 하는 산 사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고전은 사상하기 위한 소재에 불과하고, 그것을 살리는 것은 산 주체가 하는 일이다. 가령, 성서는 서구인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그들은 성서를 자기들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저들이 주체로서 부단한 물음을 던짐으로써 자기들을 위한 산 사상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사상한다는 것은 한 주체가 주어진 것을 자기와의 관련에서 해석하는 일이다. 즉, 자연이거나 역사적인 산물이거나 그 주어진 것을 해석함으로써 내 것을 만드는 것이 사상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문제되는 것은 우리의 고정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주어진 것을 내 것으로 하려는 산 주체성의 결함이 문제인 것이다.

2. 주체와 해석

사상하는 것은 해석하는 일이라고 했다. 딜타이(W. Dilthey)는 해석을 다음의 두 가지로 구별하고 있다. 첫째는 단순히 주어진 것을 객관화하여 설명하는 것(Erklarung),그것은 자연과학과 같은 것이다. 둘째는 주어진 것을 이해하는 일(Verstehen)이다.
설명이라고 하면 자연을 말할 때 그것의 법칙을 찾아 밝히는 것, 어떤 역사적인 사건 또는 처지를 관찰할 때 그 상황을 정확히 밝히고 또 그 문장의 문법 등을 바로 해독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해라고 할 때는 다음의 두 가지가 전제된다. 우선 주어진 것과 내게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그러나 나는 주어진 바로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 대상은 따라서 언제나 두 가지 이상의 가능성으로 내 앞에 놓인다. 따라서 나는 이 둘 이상의 가능성 앞에서 선택해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 선택의 자유를 가지는 것이 주체성이 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사상』 제4권의 이항녕 씨의 “한국의 풍토와 사상”이라는 논문을 보자. 그는 풍토적 유형을 구분해서 서양은 해양성적 풍토 유형인데 대해서, 한국은 계절 풍토 유형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는 계절풍적 풍토에 속했기 때문에 농사짓게 되었으며 그 사상은 자연주의라고도 한다. 그 이유로서 ‘자연의 혜택으로 사는지라 우리의 생활태도는 자연 순응적이며, 그렇게 된 것은 자연의 이법(理法)을 깨닫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만이 우리의 생활을 안전하게 하는 방법인 까닭이다’라고 하면, 이에 반하여 서아시아와 동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에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므로 자연 반항적인 생활 태도로 나오고, 자연에 반항 하는 방편으로 사회적 결합은 견고하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로서 동양의 사상은 경천사상(敬天思想), 평화사상(平和思想), 호국사상(護國思想)이라는 3요소로 구성되었으며 도교, 유교, 불교 등도 그러한 면에서 본질상 같다고 한다. 그리고 화랑도도 다름 아닌 이 세 요소의 종합이라고 한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근대의 동학이 바로 위의 동양적 요소를 총집결한 것이요, 이 동학을 일으키면 도, 유, 불이 다 활기를 띨 것이라고 한다. 우선 그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숙명론이다. 그는 동학마저도 자연주의라고 보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자연주의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의 자연주의는 숙명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시대의 화랑도는 어느 누가 창시한 것이 아니고, 계절풍적 풍토에 연유하는 농경생활에서 자연히 우러난 사상’이라고 한다. 자연히 우러나온 것이 자연주의라면서 그는 왜 ‘오늘날 건전한 동학(자연주의로서)을 진작시키는 것만이……’이라고 강조하는가? 그것은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날 것이 아닌가? 이 분은 역사 해석에 있어서 인간의 주체성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있으며, 그 해석 자체에도 주체의식이 없다. 정말 계절 풍토라는 여건에서 자연주의가 발생했는가? 그것은 절대로 필연적인 귀결은 아닌 것이다. 그러한 여건에서도 순응 또는 이용의 두 가능성 앞에 사람을 세운 것이며, 자연주의는 한국인이 그 중에서 선택해 가진 사상적 결단에서 온 것이다. 그렇기에 자연주의는 자연 자체는 아니다. 내가 아는 대로는 동학이란 자연에 순응에서 온 것이나 ‘농사 짓다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동학이듯이 서양문명의 홍수와 이에 대해서 무능한 장치에 대한 반발에서, 즉 서(西)에 대한 동(東)으로서 일어난 운동으로 안다. 다시 말한다면 서양문명의 저항을 위해서 디딜 자리를 만든 것이 동학사상인 것이다. 문제는 이 동학사상이 어떻게 확고한 거점을 구축했느냐가 문제일 뿐인지, 역시 동학은 주체적인 결단에서 우러나온 사상이요, 행위다.
이항녕 씨에 대해서 주목할 것은 함석헌 씨의 한국 역사에 대한 해석이다. 그로 그 책에서 한국사의 관찰을 이항녕 씨와 유사하게 지정학적인 고찰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풍토적인 불리한 여건에서도 우리가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함석헌 씨에게 있어서 주목할 것은 북벌론을 주장하던 인물들에 착안한 점이다. 그는 여건은 그대로 눈앞에 놓고 보나 그 앞에 그대로 굴복해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이 여건을 변동시키겠다는 산 주체들이 있을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저들은 번번히 소위 역적으로 몰리고 말았다. 그는 바로 이 역적들에게서 우리의 주체성을 찾으려 한다. 그는 풍토적으로 불리한데다가 주체정신이 꺽이면서 수난의 역사를 빚게 된 것을 인정한다. 그는 이 사실을 놓고 애가(哀歌)를 부른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 사실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다. 여기서 사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이사야서의 사관(史觀)에서 한국 역사를 풀이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우리의 수난을 세계사의 형성과 관련시킨다. 즉 세계사의 형성은 언제나 수난자가 있어서 형성된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의 어떤 민족도 이 수난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가 세계사에서 화려한 거리, 화원만이 되려고 하지, 하수구의 역할은 거부한다. 우리는 세계사적 역할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 세계사적 갈등이 우리 땅에서 터졌고 또 대결하고 있다. 이것은 우연이아니고, 우리에게 세계사적 한 사명이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세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한 도시 형성에 하수도가 절대 조건이듯이 우리에게 이제 세계의 탁류가 몰려 쏟아져 나가야 할 하수도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즉, 세계를 위해서 주체적으로 수난을 등에 지자는 것이다. 그런데 할 일은 그런 것뿐인가? 이에 대해서 박종홍 씨는 “한국사상 연구의 구상”이란 글에서 한국에 사상이 없다는 주장, 즉 ‘한국이 지리적으로 고난의 이 역사를 마치 운명적으로 받아온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반박하고 ‘그것이 틀림없는 판단이라면 장애도 그러한 운명을 걸머진 채 같은 고난의 역사만을 되풀이하여야 된다는 말인가?’ 하고 반문한다. 그 반문 자체로 하나의 적극적인 사상의 산출의 계기를 삼기 위해 브레이크를 걸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상 자체를 탐구하는 과제에서는 탈선한 반문이다. 사상은 고난당하고, 당하지 않는 데서 살고 죽는 것이 아니다. 그의 강조가 나라 세움(建國)이라는 점을 적극화하기 위한다는 점에서는 수긍이 되는 바가 있으나, 너무 서둘러서 사실 자체를 은폐하려고 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없다. 그는 한국이 소극적인 은사(隱士)의 나라, 애상(哀傷)의 아름다움을 가진 나라로서 널리 알려진 것을 못내 아쉬워 하면서, 고려자기의 형태나, 또는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의 빛깔과 문양, 민요의 애조(哀調)를 띤 멜로디를 시인한다. 그러나 그는 ‘왜 그런것만 보느냐’고 반박하면서, 또 ‘고구려 고분의 벽화, 석굴암의 석가상, 청룡이나 현무의 그림에서 건설적인 약동이 보이지 않느냐’고 하면서 소극적인 데서 적극적인 데로 눈을 돌리라고 한다. 그러나 소극적인 면을 본다고 사상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보고 그 앞에서 어떻게 결단하느냐가 문제일 뿐이지, 사실을 덮어두면 그의 말대로 ‘공연(空然)한 허장(虛張)의 세(勢)’가 될 것이다. 애조가 죽이는 것은 아니다. 아니 참 애조를 철(徹)하면 오히려 거기서 산 사상이 나올 수 없다. 요는 ‘이 애조를 주체성 있게 받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애조는 반항의 형식의 표현일 수 있고, 여건에 그대로 짓눌리지 않으려는 숨구멍일 수 있다. 비극은 사상이 아닌가? 죽어 가는 폐병 환자한테 흥겨운 노래를 부르라 함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니, 그의 슬픈 애가를 철저히 해라. 그 애조가 닫힌 마음을 뚫는 보도(寶刀)가 될 수도 있다. 애조띤 노래도 그냥 듣기만 하면 그것에 휘몰려 들어 퇴폐적일 수 있다. 그러나 주체성만 가지고 이 애조의 노래를 들으면, 산 사상, 새 가능성으로의 비약의 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아리랑>은 분명 극히 애조의 노래이기는 하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남북한의 공통 응원가로 민족 통일의 애원을 안고 불리워지지 않는가! 그 노래를 부르면서 통일을 노래하고 오히려 그 애조를 통하여 앞으로 가야 할 미래를 다짐하지 않는가! 누군가가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바람에 이리저리 휘는 데서 보면 약하다. 그러나 생각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보아 위대하다. 산 사상은 외적인 승부에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면서도 산 사상, 이기면서도 죽은 사상이 가능한 것이다. 배고파 죽은 자와 스스로 단식해서 죽는 자는 죽는다는 데서는 같을지 몰라도 다른 것이다.
3. 한국의 주체의식

박종홍은 한국에 고유한 사상이 있다는 전제에서 한국의 사상을 발굴해 내는 수고를 한다. 한국에 고유한 언어가 있다. 언어는 사상 없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에게 고유한 사상이 있음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발굴해 낸 사상들이 정말 산 사상인가? 그것이 산 사상이라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담을 무너뜨리고 민중의 것이 되어 새로운 역사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낡은 것을 깨트리고 새로운 기점에서 앞으로 밀고 나가려면 그것이 어떤 튼튼한 거점을 가져야 한다. 즉 사상하는 주체가 어떠한 것에 거점을 두었느냐가 그 사상의 성격을 규정한다. 한국의 사상하는 주체는 어떤 거점을 지녔나? 박종홍 씨는 “한국에 있어서의 근대적 사상의 추이”라는 논문에서 ‘주체의식이 곧 민족정기’라고 했고 또는 ‘주체의식은 백성들의 속임 없는 밑바닥의 생활 자체가 참되면 참될수록 엄연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민족의 정기란 무엇인지, 그게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니, 이런 주장을 하려면 좀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참 역사의 가는 길마저도 거슬러 갈 수 있는 주체의식이 되려면 그 주체가 역사 밖에, 지구 밖에 발 디딜 거점이 있어야 한다. 누가 ‘내게 지구 밖에 디딜 수 있는 거점을 다오, 그러면 나는 지구를 밀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이 있어야 평면적인 것에서 자유할 수 있고, 그럴 때에만 자유한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외점(punkt-ausserhalb)’이라고 부른다.
조지훈 씨는 “한국사상의 거점”이라는 논문에서 민심은 천심이라는 사상은 중국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위지동이전』에 ‘옛 부여의 풍속에는 비오는 것과 별나는 것이 고르지 않아 오곡이 익지 않으면 그 허물을 곧 임금에게 돌려 마땅히 바꾸든지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예증으로 한다. 즉, 혁명의 거점이 천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에 맞서기 위해서 나-우리-민심-대국-천심, 종당에는 더 미칠 수 없는 밖에 설자리를 설정했다. 이것은 ‘외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바로 이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내게 지구 밖에 디딜 자리를 다오. 그러면 지구를 밀겠다’ 하는 것처럼 역사의 악의 세력을 거슬러 밀고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천심은 왕보다 높은 것으로서 왕이나 정부의 악을 척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천심이란 정말 외점인가?”, “그것은 민심에 예속되어 있지 않나? “그 민심은 조작된 민심, 유동하는 민심일 수 있지 않나?”, “그 천심이 다시 ‘나’를 주체화할 거점이 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한국에 ‘나’라는 주체가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선 언어학적 관찰에서 증명하려는 이들이 있다. 유창순 씨의 “대인 언어 현상에서 본 사유”와 신일천 씨의 “우리 언어와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두 논문은 ‘너’와 ‘나’라는 말을 분석 했는데, ‘나’와 ‘너’가 제자리에 고정되지 못하고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나-본인-저-소생-불초 그리고 너-자네-그대-당신-선생님, 이것은 결국 ‘나’라는 주체로서 적극적인, 개성적인 사회 참가에서 기피적이며, 사회참여로서 ‘나’를 감추고, 외부에 대해 사대(事大)함으로써 비굴-아첨으로 후퇴되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신일철 씨는 우리 문학에 주어를 뺀 문장이 수두룩한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나’ 대신 ‘우리’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명사가 발달하지 못한 것을 지적한다. 정말 한국어에서 명사는 발달되지 못했다. 즉 주체의식이 평면적인 사회 여건에 눌려서 제 구실을 못하고 도피해 왔다. 이러한 것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불교가 들어 왔을 때, 유교 들어 왔을 때, 그것은 정치 정세에 좌우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주체의식이 약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보자. 이것은 주체의식이 없는 기록이다. 그저 중국을 상전으로 그것에 비추어 정책을 결정한다. 왕명을 간할 때에도 ‘나는 반대한다’가 아니라 대국의 예를 들어 간한다. 이조시대의 유교를 보자. 주자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고 맞서지 못했으며,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교의 원칙이 공자를 엎지 못했느냐? 또 공자를 주체적으로 배웠다면 공자가 쳐들어 온다면 그를 맞서 싸우는 것이 공자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의식을 못했는가? 한국사상이 약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사상하는 주체가 디딜 자리가 없어서이다. 사상이란 주체가 발 디딜디딤돌이다. 자연주의도 하나의 디딤돌로서 직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위한 완충지대이다. 대국의 대왕도 왕을 간할 디딤돌, 주자는 공자, 그러나 그것은 역시 평면적인 디딤돌이다. 그것마저도 흔들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때는 공자를 넘어서는 디딤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외점이라고 하자. 참 외점은 ‘나’를 ‘나’라고 세울 수 있어야 한다.

4. 주체성과 신앙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받아야 할 것이 있다. 저들은 수천년 동안 국가의 형성의 절대 조건인 땅 그리고 주권을 잃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의식을 잃지 않고, 정말 3천년 동안 죽어 있던 고목에 꽃을 피우게 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나? 그것은 저들의 신앙이 한 일이다. 저들이 믿는 하느님은 땅에도, 권력에도 예속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이 믿는 대상은 바로 이런 것들과 연속적인 대상이 아니라, 이런 것들과 거슬러서 대좌하는 대상이다. 저들은 자기들이 있음은 오직 이 신앙에 의해 있다고 보았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런고로 나는 있다’라고 했지만 저들은 ‘나는 믿는다. 그런고로 나는 있다’이다
신앙! 그것은 바로 이 ‘외점’에 발디딘 것이다. 신앙은 주체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신앙이 신약(예수)에 와서 더욱 순수하게 되었다.
예수는 그의 적대자인 당시의 지배층으로부터 “당신은 무슨 권위로 이런 행동을 감행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런 질문을 하는 저들의 논조는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한 공자의 입장과 같다. 예수는 어떤 공인된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런 뜻에서 그는 하나의 필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면 필부답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는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한 말과 행동을 감행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행동에 대해서 어떤 권위도,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예수는 현 체제에서 엄연히 ‘죄인’으로 낙인찍힌 무리들을 스스럼없이 역사의 주인처럼 떠받들었다. 그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권위를 갖춘 법 질서도 그것이 반인간적일 때는 주저 없이 거부했으며, 권위에 힘입어 세워진 어떠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그런 것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병들거나 가난함도 죄값이라는 통념이 법적 구속력을 가진 현장에서 그는 ‘나는 저들을 위해 왔다’고 선언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저들의 것임을 선언했다. 무슨 권위로? 그는 원래부터 주어지지 않은 자기의 자리를 내세우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공인된 조상의 이름을 내세워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방패로 삼지 않았으며, 신의 권위를 이용하는 일은 더욱 없었다. 무슨 권위로? 그와 밀착했던 민중이 그를 이해 못하고 이른바 제자들이 배신하고 그 민족의 지도층으로 자부하는 자들이 그를 없애야 할 병균처럼 여겨 마침내 점령세력인 로마와 결탁하여 십자가에 처형하는 순간까지도 그는 저들에게 어떤 권위도 제시하지 못했다. 모두 그를 버릴 뿐 아니라 신마저도 그의 행동에 동(動)하지 않았고, 끝까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십자가에서 죽어갔다. 무엇을 믿고? 그렇다. 그는 믿는 것이 있었다. 그의 신앙이 그를 그렇게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면 그의 신의 대상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인간의 의식 속에 동의된 그런 신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외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신앙의 대상은 이미 있는 것과 단절된 것, 즉 단절에서 마주 관계지어진 그런 대상이다. 바울은 이 신앙을 자유라고 규정했다. 어떠한 인간 또는 어떠한 지상의 힘에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종이니, 상전이니 하는 것이 없다고 보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이 외점에 발을 디뎠기 때문에, 그런 강한 주체의식이 이런 사상을 가능하게 했다. 그의 주체의식은 마침내 땅, 하늘, 현재 있는 것, 미래에 올 것, 아니 죽음마저도 내 주장을 가로막지 못한다. 어떤 신앙인가? 그것은 자연 법칙 안에 살면서 그것에 예속되지 않고 역사 안에 살면서 역사에 예속되지 않게 하는 ‘외점’이었다. 그럼 그 신앙의 대상은 형이상학적인 대상인가? 아니다. 성서가 말하는 하느님은 역사와 관련된 이다. 그러나 그 대상은 역사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앞에 있으면서 역사와 관계를 가지는 대상이다. 즉 그 하느님은 언제나 ‘오시는 분(das Kommender)’ 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무한한 새 가능성이다. 오고 있는 새 가능으로서 언제나 계속적으로 기존의 것을 부정함으로써 미래를 향하게 한다. 그 신앙은 ‘이만하면 되었다’고 정착하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정의하면 ‘외점’이란 바로 오고 있는 것이다. 오고 있는 것이 발을 디디고 과거와 현재에 맞서는 것이 된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하나님을, 외점이라는 것을 바꾸어 말하면, 과거와 현재에 맞서는 것이 된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하나님을, 외점이라는 것을 바꾸어 말하면 ,과거와 현재가 아니라, 오고 있는 미래이며,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끝이 바로 ‘외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과거에는 이 외점은 중국에, 공자에, 주자 또는 석가에 그리고 현금에는 신라시대, 세종 시대라는 회고적인 외점 아니면 미국, 구라파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외점이 될 수 있는가? 오히려 그런 외점은 내 주체의식을 비굴로 바꾸어 왔다. 참된 외점은 내 주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하는 그런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 믿음은 가난하고, 부하고, 전쟁에 지고, 이기고에 좌우되지 않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안창호가 ‘하늘이 대한의 독립을 명하니, 대한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신앙의 표현이다. 그럼 그가 말한 그 믿음, 그 외점이 무엇인가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외점을 우리의 외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1969년 4월경에 전북대, 계명대에서 한 강연이며, 안병무 선생 전집 가운데 아직 간행되지 않은 『한국 민족 운동의 맥』에 수록되어 있다. 살림 2001년 2월호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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