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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선생님
 


  한신연 
 현대인과 제자도-2007년 10월 15일 출판


다니엘 파트 지음/ 박노훈, 엄모성 옮김/ 349쪽/ 14,000원

성서 본문의 해석은 언제나 중요한 것이므로 우리가 누구이든 관계없이 자신이 택한 해석이 오늘의 신앙인들을 위해 과연 최선의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신앙의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눈으로 산상설교를 연구하며 살아가는 현장 속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제자도의 삶을 택하여 살아가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이 책은 신학교에서 성서해석의 방법들(methodologies)을 익히고 있는 신학도들과 평신도들에게 꼭 필요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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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과 제자도 추천글)

성스러운 본문에서 독자들은 Patte의 에큐메니칼한 초청에 응함으로서 윤리적으로 책임있는 성서해석에 참여토록 도전받고 있다.                                                                      - 앤더슨대학교 Fred W. Burnett

이 책은 성서를 가르치고, 배움에 있어 독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 가렛신학교 Jack L. Seymour

신학교 강의실과 교회 성서연구반의 절대적 필수과목이다.
                                                             - 메릴랜드 실버스프링 노어스우드 장로교회  Timothy B. Cargal

Patte는 이 책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신학자들의 해석에 모두 존중함을 보여 주며, 궁극적으로 크리스챤들로 하여금 진실한 신앙고백을 확인하도록 돕는다.                                           -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Cristina Grenholm

현대의 학문적인 곤경으로부터 다섯 가지의 대표적인 성서읽기를 발췌하고 요약함으로써, 성서해석의 선택의 갈림길에서 독자들에게 활기찬 대화를 가능케 한다. Patte의 새로운 성서비평은 세 번째 밀레니엄에서 성서의 권위에 관한 논쟁의 출현을 고지하고 있다.
                                                                               - 연합신학교 Laurence L. Welborn

이 책은 신약학의 궁극적인 중요성의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즉 프랙시스의 중재를 통한 본문의 의미와 독자의 상호 영향인데, 이 질문에 대한 Patte의 답변은 일반적으로 산상설교와 신약 본문의 계약에 중요한 것이다.                                                                                   - 예수회신학교 Sandra M. Schneiders
  
Patte는 어떤 특별한 본문 해석의 권위는 본문의 역사, 언어, 그리고 신학의 의미 뿐만아니라 삶의 상황에 적용할 때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동료들과의 열린 대화에서만 고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연구는 어떤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제자도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 켄트주립대학교 David W. Odell-Sc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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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

다니엘 파트 (Daniel Patte)

현재 미국 장로교(PC USA) 소속으로 밴더빌트대학교의 종신교수이며, 캠브리지대학교 출판사(Cambridge University Press)의 세계기독교대사전 책임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 간행『Global Bible Commentary』의 책임 편집자이기도 하였으며, 지난 2001년 SBL성서학회는『Reading Communities Reading Scripture: Essays In Honor of Daniel Patte』이라는 책을 저자에게 헌정하였다.

수많은 저서 중에서 2000년『Reading Israel in Romans : legitimacy and plausibility of divergent interpretations』는 대표적 저술로서 시리즈로 구성되어 매년 다수의 학자들과 함께 하는 공동 연구물로 출판되고 있으며, 저서 『What is structural exegesis?』는 한국신학연구소에서 1987년『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기도 하였다.

초기 유대 해석학과 기호학에 정통하였고, 특별히 Scriptural Criticism이라는 성서연구에 기초를 놓은 학자로 유년시절 홀로코스트를 경험했고, 청년기 아프리카 콩고의 선교사로 봉사하였으며 북미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학계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게 교류하는 장로교 대표적인 학자이다.

http://www.vanderbilt.edu/AnS/religious_studies/patte.htm

□ 역자 소개
*박노훈: 연세대학교, 서울신학대학원(M.Div.), 예일신학대학원(S.T.M.), 밴더빌트대학원(Ph.D. Candidate)

*엄모성: 협성대학교, 연세대학원(Th.M.), 밴더빌트신학대학원(M.Div.), 현 미연합감리교회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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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앞으로 나는 신앙의 경전(經典) 혹은 경서(經書)로서의 산상설교에 관한 비평적 연구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하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이 같은 접근 방식, 곧 경전 및 경서로서의 성서 비평이 여러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새롭고도 기이하게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약성서에 생소한 사람이나 평신도들이 생각하기에는 이 같은 비평적 접근방식이 본서를 너무 기술적으로 흐르게 한다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신앙의 해석'에 대해 부정적인 사고를 주는것은 아닌지 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서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그렇게 기술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방법론에 관한 몇몇 토론들은 각주나 부록으로 따로 밀어 넣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시작부터 끝까지 본서는 신앙의 경전으로서 산상설교에 관한 신앙의 해석을 존중하면서 그 같은 면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가르치며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히려 본서가 비평적인 엄밀성이 결여된 것은 아닌지 염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본서가 신앙 경전으로서의 성서의 본문읽기를 신중하게 고려하며 이 같은 읽기를 존중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 이러한 접근이 의혹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까요? 고고학자가 고대주민의 종교적 이해나 해석들을 신중히 받아 들이는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러한 현장연구 없는 고고학적 연구는 때때로 중대한 증거의 결핍으로 비취어질 뿐 입니다. 왜 많은 기독교 신앙인들이 성서를 올바로 읽고 있지 않다고 전제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제기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은 ‘비평적 연구가 과연 신앙인들이 경전으로 성서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질문을 두 곳에서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앞서 출판된 '산상설교에 따른 제자도: 제자도에 대한 네 개의 적법한 해석들과 네 개의 타당한 전망들, 그리고 그 상대적 가치들'에서 나는 산상설교에 대한 일련의 학문적 해석들과 그 방법론, 그리고 그들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세밀한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이 연구는 각각의 해석이 어떻게 '신앙의 해석'이라는 특정한 형태를 함의하고 있는가에 관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본서에서는 그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과 결론들을 중심으로 각각의 해석들에 대한 상호비교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 본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성서연구의 절차, 곧 경전으로서의 성서 연구 및 비평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증명을 부록인 '왜 신앙의 경전으로서 성서 연구 및 비평인가?' 에 수록했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신앙의 해석들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평가들과 관련해서 품게 되는 전제들을 우리 자신이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비평적 연구자나 교사로서의 사명은 신앙의 경전으로서 성서를 읽는 그리스도인들의 본문 읽기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취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도 공을 많이 들이는 설교자라면 이에 관하여 이미 식상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매주 설교를 준비하며 행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신앙의 경전으로서의 본문 읽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본문에 관하여 설교를 준비할 때, 설교자는 보통 세 번의 해석적 국면을 통합하고자 노력합니다. 설교자는 본문에 담긴 중요한 특징들을 한정하기 위해 몇몇 주석서들의 도움을 받아 본문을 신중히 분석합니다. 또한 성서본문의 가르침을 의미 있는 설교로 전환시킴으로써, 회중이 특정한 신학적 주제들과 직접 대화에 이를 수 있도록 성서 본문을 신학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본문 속에서 가장 유용한 가르침인 하나님의 말씀이 신자들의 삶의 상황가운데서 분별되도록 신앙의 경서(經書)로서 성서의 본문을 해석합니다.  무엇보다 “최고의” 설교자는 신학교에서 배운 각각의 성서학과 조직신학, 실천신학을 넘어 그 모든 해석학적 동기들을 창조적 긴장 가운데 하나로 통합합니다. 이러한 긴장 없이 행하는 설교는 충실하거나 신뢰할만한 것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가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설교자들이 혹시 설교준비에 식상한 느낌을 갖었다면, 이는 틀린 견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경험이야말로 성서본문에 대한 다양한 비평적 연구를 꼭 수용해야 할 하나의 모델로 평가합니다. 본서가 신앙의 경서로서의 성서 연구 및 비평에 관한 체계적인 소개를 통해서, 책임을 다하는 충실한 설교자들의 선한 경쟁을 진작시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전 및 경서로서의 성서비평이 단지 설교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해석에 대해 한 걸음 물러서서 기꺼이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기 때문에, 신약을 처음 대하는 사람이나 평신도들에게도 유익하다고 할 것입니다. 성서 본문의 해석은 언제나 중요한 것이므로 우리가 누구이든 관계없이 자신이 택한 해석이 오늘의 신앙인들을 위해 과연 최선의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의 경서로서 산상설교에 대한 해석은 비록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게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이 이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고 있고, 그 살아가는 방식이 타인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산상설교에 바탕을 둔 다양한 교훈들이 많은 이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감화를 주고, 때로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때때로 기독교인들은 이 교훈들로부터 타인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려는 헌신을 작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사는 반유대주의나 가부장주의와 같은 차별적인 가르침들 조차 이 산상설교에 기초를 두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비기독교인 이라면 외부자의 입장에서 산상설교의 어떤 교훈이 타인에게 더 좋거나 혹은 더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해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산상설교의 교훈에 따라 살기로 작정하는 순간, '나는 이 가르침이 오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길 원했을 것입니다. 이 같은 고백이 있기까지 여러분은 다른 여러 해석들 중에 어느 하나만을 선택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로부터 우리는 비평적 태도를 갖게 되는데, 이는 타인이 나의 해석을 존중해 주기를 원하듯 나도 타인의 해석을 존중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경서로서의 성서 연구 및 비평론을 전개하며, 여러분의 해석을 존중할 뿐 아니라 나아가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해석에 대해 책임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 본서의 곳곳에서 산상설교에 대한 여러분 나름의 읽기를 위한 공간을 남겨 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본문의 교훈'의 형식으로 다듬어질 수 있으면 족합니다. 경서로서의 성서 연구 및 비평론은 그리스도인들의 시대적 관심사, 그리고 신학자들의 신학적 주제들을 둘러싼 본문과의 해석학적 소통과 성서학자들이 내세우는 본문의 증거들에 대한 분석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습니다.

해석 속에 담긴 세 가지 다른 형태들의 상호보완적 특성을 깨닫고, 이를 종합적인 비평적 실재로 구성하는 일은 성서학자인 나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조직신학자와의 공조가 필요하였는데, 크리스티나 그랜홀름(Christina Grenholm)과 나는『로마서의 이스라엘 읽기(Reading Israel in Romans): 서로 다른 해석들의 합법성과 개연성』 의 초판에 수록된 "역사와 문화를 통한 로마서(Romans through History and Culture)"의 방법론적 서장을 함께 쓰면서, 경서로서의 성서 연구 및 비평론을 성서해석의 정황적, 해석학적, 분석적 틀을 명확히 제시하는 비평적 방식으로 개념화 했습니다. 우리들은 각자의 초기 저서들에서 그 부분적인 모델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랜홀름은 성서에 대한 비평적 연구와 신학적 해석 사이의 관계에 관한 연구,『해석된 로마서: 바울의 로마서에 대한 바르트(Barth), 나이그랜(Nygren), 크랜필드(Cranfield), 그리고 윌킨스(Wilckens)의 주석에 관한 비교 분석』과 그 후의 저서『구약성서, 기독교 그리고 다원주의』에서 자신의 페미니스트적 관심사와 더불어, 신학자들과 성서학자들의 접근법이 갖는 상호 보완적 특성들을 밝혀 주는 정교한 양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성서학자인 나는『성서해석의 윤리학: 하나의 재평가』에서 남성중심주의와 유럽중심주의, 그리고 이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해석과 학자들의 분석적 해석 사이에 놓인 관계 틀을 재조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학문적 성서연구의 과제가 곧 “신앙의 해석들에 관한 비평적 이해”임을 인식하게 되었는데, 이는 또 하나의 신학적 과제로 남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구조주의적 기호학의 전망으로부터 분석적 해석과 상황적 해석 사이의 관계를 재조명하였으나 신학적 해석과 그 해석학적 틀의 지위에는 깊은 관심을 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1997년의 ‘세계성서학회 로마서와 주석 부문 협의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Consultation)’에서 그랜홀름과 나의 연구가 비로소 통합되어 '경서로서의 성서연구 및 비평론'이 제 형태를 갖게 되었고, '로마서의 이스라엘 읽기'의 서문에서 그 정련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위의 논문보다 출판이 조금 앞선 이 산상설교에 대한 경서로서의 성서연구도 동일한 접근법에 의해 구조화 되었습니다.

나는 밴더빌트 대학교와 뉴샤텔 대학교, 그리고 유니온 신학교의 많은 학생들뿐 아니라 이 방법론의 구성이 채 끝나기 전에도 이 같은 교수적 접근법의 전개를 격려하고 때로는 비판했던 내쉬빌 장로교회와 성공회의 성서연구반원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도와주신 몇몇 분들에 대한 언급은 사실 이 같은 연구를 계속하도록 격려해 주고 때로 건설적인 질문을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분들에 대한 감사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통찰이나 제안, 반대, 그리고 질문 등이 없었다면 본서의 어느 한 페이지도 완성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위의 학생들은 산상설교에 대한 자신의 해석들을 기꺼이 모두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같은 접근을 발전시켜온 지난 8년 동안 특별히 교수조교로 함께 있었던-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젊은 동료들에게 감사합니다. 강의의 책임을 함께 나누는 동안에도 이들은 비평적 성서연구에 대한 나의 시각들을 새롭게 정리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별히,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교수조교였던 그레고리 케리(W. Gregory Carey), 무사 두베(Musa Dube), 탓숑 베니 류(Tat-Siong Benny Liew), 비키 필립스(Vicki Phillips), 다이안 샤라쯔(Diane Turner Sharazz), 니콜 듀란(Nicole Wilkinson Duran) 교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교수조교로 본서가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고 많은 부분 함께 토론했던 플로리넬 심핀(Florinel Cimpean), 제임스 그림쇼(James Grimshaw), 레티샤 과디올라-샌즈(Leticia A. Guardiola-Saenz), 모냐 스텁스(Monya Stubbs), 약휘탄(Yak Hwee Tan), 레블레이션 벨룬다(Revelation E. Velunta)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바쁜 스케쥴에도 친절히 본서의 초고를 읽어 준 여러 동료들에게도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산드라 쉬나이더스(Sandra M. Schneiders), 잭 세이모어(Jack L. Seymour), 데이빗 오델-스콧(David Odell-Scott), 프레드 버넷(Fred W. Burnett), 로렌스 웰본(Laurence L., Welborn) 교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들은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본서가 더 좋은 결과물이 되도록 제안과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본서는 무엇보다 아내 에이린(Aline)의 헌신적인 지지를 통해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에이린은 미국장로교회(PCUSA)의 여러 교구에서 보여준 헌신된 사역을 통해서 나로 하여금 성서학이 교회와 분리되면 결국 무의미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어린 세 명의 독자요, 나의 손주들인 로렌(Lauren)과 벤쟈민(Benjamin), 다니엘(Daniel)에게 헌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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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 서문)

나는『현대인과 제자도』의 한글판이 소개됨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현대인과 제자도』는 내 자신의 저작물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본서는 기독교 신앙인들이 산상설교에 관한 자신의 해석과 더불어 이들이 살아가는 오늘의 세상이라는 넓은 환경속에서 제자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는 노력을 격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제자도가 가족과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한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모든 기독교 신앙인들에게는, 제자로서 자신의 삶에 책임을 갖는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성서적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복잡한 삶의 정황속에서 어떤 정해진 간단한 답은 없을지라도, 우리가 제자로서의 삶과 그에 따른 올바른 선택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이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 5:16).

산상설교의 제자도에 관한 책임 있는 해석을 우리 각자가 끌어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가능한 해석들 중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고심해야 합니다. 계몽주의 이후 오랫동안 서구의 많은 학자들은 산상설교에 관한 단 하나의 정확한 해석이란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자신의 학문적인 해석들로 인해 무엇이 새롭게 드러났는지 입증해 왔습니다. 요컨대 산상설교는 많은 해석 층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것을 읽을 때마다 매번 변화하는 삶의 상황에 맞는 가장 의미 있는 가르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설교자는 산상설교에 관하여 매주 새로운 설교를 할 수 있을 만큼 이 안에는 풍성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과 설교자들은 몇 가지 가능한 해석들 중에서 은연중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종종 이들은 ‘이것이 본문에 관한 적당한 혹은 유일한 해석이 아닐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행한 선택들 속에 스스로를 감출 수 있습니다.  

본서『현대인과 제자도』는 독자를 도와 과연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특별히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선택은 세상의 어느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선택들과는 다른 점이 있을 것입니다.

본서는『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은 무엇인가? (한국신학연구소, 1987)』의 한글판이 처음 소개된 후 거의 20년 만에 모습을 보이게 되었습니다.『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은 무엇인가?』에서 나는 그 어떤 성서의 본문일지라도 매우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본문의 가르침은 단순히 역사적 연구의 결과물로써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역사적 연구만으로는 본문을 대하는 독자들에게 더욱 중요한 교훈(혹은 가르침)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성서 본문의 어떤 가르침들은 해당 본문의 서술적이며 의미론적인 구조들을 면밀히 살펴볼 때 인지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특정한 환경에서 자신의 삶을 위해 성서를 읽는 평범한 신앙인들도 종종 학자들이 놓쳐왔던 성서 본문의 교훈들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바램은 본서가 한국에 있는 신앙의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눈으로 산상설교를 연구하며 살아가는 현장 속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제자도의 삶을 택하여 살아가도록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책의 번역과 출판이 가능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한국신학연구소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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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젊은 시절 아프리카 콩고의 선교사로 사역한 밴더빌트 대학교의 신약학 교수, 다니엘 파트는『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은 무엇인가?(한국신학연구소, 1987)』라는 책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 개신교의 한 분파인 위그노(Huguenot)의 후예로서 홀로코스트(Holocaust)를 경험한 그는 성서해석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여 성서해석의 과정 중에 수반되는 여러 차원의 선택들을 보다 분명히 하는 신앙의 경서(經書) 혹은 경전(經典)으로서의 성서 연구 및 비평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같은 연구는 성서 학계의 지속적인 관심 속에 최근의『글로벌 바이블 주석(Global Bible Commentary)』과 같은 수많은 학자들의 공동 역작(力作)을 생산하기도 하였습니다.
본서『현대인과 제자도』는 산상설교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과 그 특징을 살펴보며, 독자 스스로 자신의 해석 속에 담긴 일련의 선택들을 인지하고 평가하되, 자신의 해석의 결과에 대해서는 기꺼이 책임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서는 명시적이거나 암시적인 방법으로 독자가 택하는 해석학적 전망과 역사적, 상황적 인식과 본문의 분석적 근거들을 스스로 인지함으로써 정당한 비평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적절한 형식화들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본서를 통해 오늘 우리 자신을 위한 신앙의 의미와 제자도의 부르심에 대한 성서 본문의 책임 있는 해석들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산상설교에 대한 본서의 다양한 해석들은 최근의 연구 동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본문에 대한 현재의 학문의 흐름을 익히기 원하는 연구자들에게 다양한 비평적 실마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특별히 성서학 연구로부터 설교학에 이르는 두 학문의 연결과 접점을 발견하는 기회도 제시될 것입니다.

이 책의 한국어 출판이 가능하도록 격려해 주시고 도와주신 한국신학연구소 김성재 이사장님과 함승우 국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1부와 제2부로 구성되어 있는 본서의 한글판은 특별히 엄모성님이 제2부 및 부록의 번역을 전담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본서의 각 장이 서로 다른 성서 읽기의 정당성과 개연성 및 그에 따른 해석학적 윤리를 논하는 만큼 서로 다른 번역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 유익한 가이드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최선의 성서해석을 발견하고 그에 마땅한 책임을 기꺼이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박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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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제 1 부
신앙의 경서로서 팔복
마 5:1-16과 7:13-29의 제자도에 관한 교훈

제 1 장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오늘의 팔복과 제자도 (마 5:1-16과 7:13-29)

신앙의 경서로서 팔복읽기

기독교인들은 팔복의 본문으로부터 제자로서 오늘 자신의 삶을 위해 무엇을 배우는가?

팔복(마 5:3-12)과 팔복의 산상설교 내에서의 문맥-특히 서론(5:1-16)과 결론(7:13-8:1)-을 다시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연 오늘의 신앙인이나 혹은 구도자를 위해 팔복의 제자도는 어떤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까?
본문을 숙고하면서 어떤 특정한 상황에 놓여 있는 자칭 제자들의 필요에 관하여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필요들 중 어느 하나가 팔복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까? 혹은 팔복의 본문이 특정한 상황 안에서 제자들이 섬겨야 될 어떤 다른 이들의 필요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까? 어느 정도 묵상이 따르겠지만, 나는 여러분들이 어렵지 않게 오늘의 신앙인을 위한 팔복의 교훈에 대하여 분명한 결론을 얻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 교훈이 적용될 특정한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오히려 교훈을 구체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 몇 줄이나마 여러분의 결론을 본서의 공란에 적어보기를 권합니다.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5: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행복하고 도움을 입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행복하고 도움을 입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행복하고 도움을 입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6 의(공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행복하고 도움을 입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행복하고 도움을 입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8 마음이 청결한(열려있고 수치가 없는) 자는 복이 있나니(행복하고 도움을 입나니) 저      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행복하고 도움을 입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      음을 받을 것임이요
5:10 의(공의)를 위하려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행복하고 도움을 입나니) 천국이 저      희 것임이요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      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행복하고 도움을 입나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나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      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      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5: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      을 돌리게 하라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       가 많고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      라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       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기적)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      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      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8: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성서를 읽는 것은 관람객의 행위가 아니다.

나는 여러 그룹과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신앙인들 혹은 예비적 신앙인들을 위한 팔복의 교훈에 대해 스스로의 결론을 도출하지 않으려는 저항이 여러분에게도 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여러분이 만일 위의 구절들에 대한 내 주석을 바로 접할 수 있다면, 이와 같은 단계를 기꺼이 생략할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위에 인용된 잘 알려진 본문을 힐끗 쳐다 보는 엉성한 읽기를 행했다 할지라도,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 자신도 종종 그러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에 대한 인식만으로 충분했던 전통적인 성서학과는 달리, 오늘 우리의 목표는 이러한 폭넓은 지식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신앙인을 위한 본문의 교훈에 대해 앞으로 계속될 토론들은 오히려 여러분 자신의 해석을 구체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론에서 언급 된 바와 같이, 이 상호대화적 연구에의 참여는 많은 이해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성서를 신앙의 경서로서 읽는 일은 결코 관객의 행위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이 단계를 건너 뛸 것을 결심하면 나로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왜 그토록 오늘의 신앙인을 위한 본문의 교훈에 대해 뚜렷한 결론을 구체화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같은 주저함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정당한 이유들이 존재하는데 대부분 다음의 두 가지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신앙인을 위한 본문의 교훈이 신앙인이 아닌 이들에 의해서도 구체화 될 수 있다.

여러분이 갖는 주저함에 대한 첫 번째 이유는 여러분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니거나, 기독교인이지만 경건한 성서 묵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럴듯한 사유는 되지 못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자신을 위한 본문의 교훈에 대해 요구하지 않고, 오늘의 신앙인을 위한 교훈을 구체화 해볼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경서로서 이 본문의 권위를 믿는 어떤 사람이 본문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누구나 꼭 경건한 신앙인으로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어떤 특정한 신앙인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앞으로 더욱 분명해 질 것입니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신앙인이 아닌 이들이 오히려 이와 같은 교훈을 구체화하는데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들에게 향한 질문은 같습니다: 오늘의 신앙인을 위한 팔복의 교훈의 도출에 왜 주저 하는가?

신앙인을 위한 본문의 교훈은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와 동일하지 않다.  

여러분의 주저함에 대한 두 번째 이유는 해당 본문의 교훈을 구체화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느낌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저함은 오늘의-즉 현재적 관심사를 갖고 있는-신앙인을 위한 본문의 가르침과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즉 본문의 주제나 논제들과 혼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이 팔복(5:3-12)과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에 대한 교훈(5:13-16), 그리고 좁은 문과 험한 길에 대한 교훈(7:13-14), 열매로 거짓 선지자들을 구별함에 대한 교훈(7:15-20), 마지막 심판에 대한 교훈(7:21-23), 집을 건축하는 건축자들의 비유(7:24-27) 등을 포함하고 있음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교훈으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본문이 보도하는 내용에 해당될 뿐, 신앙인을 위한 교훈 즉 믿음의 제자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 그리고 그 삶에 대해 본문으로부터 깨달아야 될 바로 그 무엇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본문이 말하는 그 내용에 대한 묘사는 필요한 것으로 우리의 연구에 있어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서는 신앙인을 위한 본문의 교훈에 대해 토론할 것을 제안하며, 본문을 읽는 모든 독자와 청자들이-나의 독자인 여러분을 포함하여-이러한 상호대화적 연구에 참여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문의 성격과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연구는 학자적인 전문성을 요구하는 반면, 오늘의 신앙인을 위한 팔복의 교훈에 대해서는 모든 기독교인들과 이들을 지켜보는 모든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신뢰할만한 정보 제공자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본문의 가르침은 신앙의 독자들에게 언제나 새롭다

기독교인들이 제자로서 자신의 삶을 위하여 혹은 그 삶에 대하여 배우는 것을 지키고 살아간다면 이는 이들을 위한 진정한 성서의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 같은 가르침에 대한 나름대로의 결론을 도출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신실한 제자들이라면, 이는 말 그대로 팔복의 본문과 산상설교의 내적 문맥이 어떻게 여러분에게 영향을 주는지(혹은, 주어야 하는지)를 밝히는 문제에 해당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이 성서본문이 소위 신앙의 경서로서 지키고 간직하려는 신앙의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주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소위 교훈이라 함은 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혹은 새로운 어떤 것을 그들에게 선사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팔복의 본문은 제자들이 살아가는 ‘어떠한’ 삶에 대해 기독교인들의 이해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이 본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행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가? 혹 이들을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고 있는가? 어떻게 본문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결단을 도전하고 있는가? 어떻게 이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여러분 자신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게 할 수 있습니다. 제법 잘 알려져 있는 본문이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어 갈수 없기도 합니다. 이 본문을 신앙의 경서로 읽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본문의 시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믿음, 확신, 그리고 구체적 삶의 경험까지 깊이 숙고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특정한 삶의 환경 속에 놓인 기독교인들에게 이 익숙한 본문이 제공하는 가르침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떤 새로운 빛이 기독교인들과 이들 주변에 있는 예비적 기독교인들, 그리고 이들 모두의 구체적 삶의 현장 속에 비추어 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저항에 관한 이유: 기독교 신앙인은 성서가 제시하는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기독교 신앙인들은 위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를 곤란스러워 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본문의 교훈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부분 본문에 비추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돌아볼 기회를 갖는다면, 이들은 모두 어렵지 않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로서 속인(俗人)이나 무신론자들도 그 같은 교훈들을 어려움 없이 구성한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본문이 기독교인들의 생각이나 행위를 어떻게 도전할 수 있는지, 혹은 본문이 어떻게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도록 안목을 제시하는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그럴 수 있다면 우리 기독교 신앙인들도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대해 성서적 권위를 부여하는 우리에게는 이들과는 다른 한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비기독교인들과 달리 우리는 우리가 찾아낸 교훈을 수용하며 그에 따라 살아갈 것을 강요받습니다. 초연한 입장을 가질만한 사치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의 교훈에 대하여 결론을 맺고 확정하는 일에 주저하곤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우리 자신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교훈은 신앙의 경서로서의 성서에 대한 우리의 확신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해당 본문이 또 다른 본문을 통해 형성된 우리의 확신을 흔드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요컨대, 본문의 교훈을 찾는 것과 관련된 어려움이 많음을 호소하는 우리의 주장은 어쩌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만한 결론을 끌어내는데 주저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주저함은 적절하고 건강한 주의(caution)의 표시입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중심에 놓인 변화와 변모는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문제들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비용을 계산하는 것(참고, 눅 14:28-29)이 적절한 만큼, 이 변화들이 우리의 삶과 주변에 있는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방식도 적절하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본훼퍼(Bonhoeffer)가 자신의 산상설교 연구서를 <제자도의 비용 (The Cost of Discipleship)>이라 이름을 붙이며, 제자로서의 결단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대가로 지불함으로써 직접 우리에게 상기시켜준 것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하기를 결단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본문의 교훈과 또한 그것이 의미하는 삶의 자세와 행위의 변화가 타인을 해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을 이롭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기독교인을 위한 교훈과 그에 대한 결단 유보
위와 같은 정신에서, 여러분이 현재의 삶을 위해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잠시 여러분 자신을 본문의 교훈으로부터 얼마간 거리를 둘 것을 제안합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이라도 말입니다. 이를 위해, 나는 팔복의 가르침이 당장 여러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 보도록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가르침이 무엇이든 여러분의 삶 속에서 꼭 지켜나가야 할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오히려 오늘의 ‘신앙인들’을 위한 팔복의 교훈을 끌어내 볼 것을 요구합니다. 비록 여러분이 이끌어 낸 것이 여러분과 같은-즉 여러분과 비슷한 상황과 처지에 놓여 있는-신앙인들을 위한 본문의 교훈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교훈에 대한 결단을 잠시 유보할 것을 요구합니다. 오히려 이 순간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해석하는 방식들을 지켜보는 비기독교인들의 시각을 취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여러분이 스스로 찾아낸 교훈을 평가하고, 그 유익과 책임을 산정(算定)하며, 특정한 환경들 가운데 더 나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대안적인 또 다른 교훈이 존재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그 후, 여러분이 기독교 신앙인이라면 여러분 자신을 의지할 교훈에 대해 마땅히 그에 맞는 책임도 지게 될 것입니다.    

읽기를 돕는 질문들

요컨대 여러분은 오늘의 신앙인을 위한 팔복의 교훈에 대해, 특히 제자도나 혹은 제자로서의 기독교 신앙인들의 삶과 관련된 교훈들에 대해 직접 자신의 결론을 끌어내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다음의 몇 가지 질문들은 이 과정 중에 놓인 여러분들을 도울 것입니다.

● 팔복은 기독교인이 제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선이해들을 변화시키고 있     는가? 그렇다면 어떤 변화들을 이끌어 내는가? 그 때, 제자도에 관해 내포된 의미들은      무엇인가?
● 팔복은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제자로서 자신의 행위를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변화들을 요구하고 있는가?
● 팔복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확신에 도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팔복의 어떤 부분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 팔복은 기독교 신앙인이 처한 특정한 상황에 대한 자의식을 변화시키는가? 그렇다면, 어     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본문의 교훈을 간직하는 한편, 그 교훈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아래의 공간에 여러분 자신의 결론을 간단히 요약해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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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론과 다섯 가지 다른 해석들을 비교하기
앞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많은 공간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생각을 제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른 곳에 여러분 자신의 결론을 적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적은 분량이라도, 오늘의 기독교 신앙인을 위한 팔복의 교훈에 대해 스스로의 결론과 그 결론이 갖는 특징을 표현해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다음의 다섯 가지의 예에서 나는 이 같은 교훈을 한 줄로 정리할 것입니다.

이 각각의 읽기는 다양한 배경 속에서 서로 다른 강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결론들이 보다 더 구체적인 상황과 연관되어 있기에 더욱 상세하다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결론과 아래에 제시된 다섯 가지의 읽기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같은 비교의 목적은 분명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비교는 여러분 자신의 해석이 갖는 독특성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제시할 다섯 가지의 읽기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다섯 가지의 타당한 해석들 외에도, 오늘의 기독교 신앙인을 위한 팔복의 교훈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해석이 이 다섯 가지의 어느 하나와 가까울 수는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해석이 갖는 독특성에 주목하는 일입니다. 우리 자신의 해석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우리의 결론이 본문 속에 적절히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하며, 그 결론이 다른 해석들과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를 인식하고, 우리가 선택하는 해석이 사실 다양한 가능성들 중 하나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내가 해석을 적어보라고 요구한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곧 여러분의 해석이 갖는 독특성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으며, 그렇지 않았더라면 다른 해석들을 중시한 나머지, 자신의 해석이 갖는 독특성을 간과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제시될 다섯 가지 해석들의 독특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나는 오늘의 신앙인을 위한 성서본문의 교훈을 끌어내는 일이 결국 다음의 사항들을 구상(構想)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전제할 것입니다.  

● 문제: 특정한 이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신실한 제자들로 남기 위해 꼭 충족되어야 할 필     요들(needs)
● 해결: 이 같은 필요들을 언급하는 팔복의 교훈; 신앙인들의 삶을 위한 새로운 그 무엇
● 변화: 신앙의 독자들을 위한 교훈의 변화효과; 문제가 극복되고 해결방안이 실행되는 과     정

여러분 자신의 해석도 이 세 가지 요소들과 관련하여 각각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읽기1-1: 본문의 팔복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규범을 제공한다.
문제: 서양 자본주의 문화와 비기독교 문화의 세속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민감한 감각을 잃어 왔습니다. 그 같은 문화 배경 속에서 기독교 신앙인들은 종종 상반되는 도덕적 교훈들로 인해 혼란스러워 합니다.  
해결: 이 같은 이들을 위해 팔복의 본문은 신앙인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초적 교훈들을 가르쳐 줍니다.
변화: 위의 사람들에게 본문의 가르침이 미치는 변화효과는 세상의 쉬운 길(7:14-14)을 따르지 않는, 하나님이 통치(혹은 나라, 5:3,10)하시는 공동체의 참된 구성원이 되는 것과 세상의 빛(5:14-16)이 되는 것입니다.  

읽기1-2: 본문의 팔복은 기독교 신앙인 공동체를 위한 규범을 제공한다.  
이와 비슷한 두 번째의 읽기는 신앙인 개인이 아닌 신앙인들 전체 공동체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문제: 기독교 공동체는 세속 사회 혹은 비기독교문화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찾으려 애태우고 있습니다.  
해결: 팔복의 본문은 제자들의 공동체를 사회의 다른 공동체들과 구별되게 하는 어떤 삶의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변화: 이 공동체에 대해 본문의 가르침이 끼치는 변화효과는 과연 누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공동체 속에 들어갈 수 있는지(7:13), 누가 그 공동체에 속하였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7:15-23)를 분별할 수 있는 기초적 규범들을 공동체에 제공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읽기1에 따라 두드러진 팔복의 교훈

위의 두 경우 신앙인을 위한 팔복의 교훈은 훈계와 명령의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곧 하나님의 뜻의 표현으로서, 신앙인들로 하여금 세속적인 서구 자본주의 세계나 혹은 비기독교 세계의 삶의 기준이나 도리들을 포기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참 제자는  심령이 가난하며 겸손한 사람들(“심령이 가난한,” 5:3)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세상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죄에 대하여 슬퍼하며(“애통하며,” 5:4), 친절함으로 그 겸손함을 증명하며(“온유하며,” 5:5; 11:29), 의롭게 살기위해 노력하며(“의에 주리고 목마른,” 5:6), “긍휼히” 여기며 (5:7), 선한 양심으로 의의 요구를 이루며 (“마음이 청결한,” 5:8), “화평케” 하며 (5:10), 자신들의 의로운 행위(5:10)로 인해 혹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의로운 길”을 따름으로 인해 (21:32) 핍박을 받는 (“나를 인하여...핍박하고,” 5:11-12) 사람들임을 새겨볼 때 더욱 분명해 집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제자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에 속해 있으며, 더 이상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읽기2: 본문의 팔복은 제자도로의 부름이다.    
문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록 다른 대안이 있음을 알지라도 세상의 것을 추구함에 모든 것을 걸고 있으며, 그리스도 신앙인일지라도 거듭 타락에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또한 제자들이 되려는 동기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해결: 팔복은 제자도로의 부름입니다. 곧 제자가 될 것을 설득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보낸 초청장입니다. 신앙인에게는 더욱 새로워진 부름으로서 꾸준히 제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자극하며, 전심으로 제자의 삶에 헌신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변화: 앞의 사람들에게 본문의 가르침이 끼치는 변화효과는 곧 이들이 제자도의 보상과 목표를 인지함으로써 결국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평범한 삶을 포기하게 되리란 것입니다. 이러한 보상과 목표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제자들 자신에게는 현재와 미래의 축복(5:3-12); 세상에 대하여는 천국의 급진적인 의를 촉진하고 하나님의 사랑(5:13-16)을 입증하는 겸손과 사랑의 행동을 뜻하는 “소금”과 “빛”; 하나님을 향하여는 찬송(5:16). 반복된 팔복의 약속들 (그리고 이것이 박탈될 수 있음에 대한 경고들, 7:13-27)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드리는 것에 대한 강한 동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예수에 의해 시작된 사역이기도 합니다.

읽기2에 따라 보다 분명해지는 팔복의 교훈
군중들(5:1-2)에 비견될 수 있는 오늘의 신앙인들에게 팔복이 미치는 효과는 바로 제자도로의 부름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약속된 천국의 모든 복을 받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이미 복 있는 자로 스스로를 구별하기 원합니다. 비록 외부자의 시각에서는 이러한 일이 어리석고 값비싼 결정(5:11)으로 비췰지라도, 이들은 기꺼이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팔복의 본문은 이 급진적인 삶의 형태에 대해 보다 더 영원하며, 보다 더 완전한 헌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형태의 상황 속에서든지, 현재와 미래에 있어 심령이 가난하며 온유하고 의에 굶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기며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며,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등의 일에 자신을 드리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읽기3: 본문의 팔복은 천국과 하나님의 사랑의 보호에 대한 비전을 제공한다.

문제: 세상의 문화는 나누고 분해하기를 즐겨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잃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마 9:36) 하기 쉽습니다. 기독교 신앙인들은 제자들의 공동체로서 자신들을 묶는 소망과 비전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해결: 팔복은 하나님의 사랑의 보호와 천국에서의 삶에 대한 비전을 제공합니다. 이는 십자가와 부활을 포함한 예수의 사역 속에 충분히 입증되었으며, 예수의 진실한 추종자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이는 이와 같은 비전의 열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변화: 위의 사람들에게 본문의 가르침이 끼치는 변화효과는 이들이 이 비전을 나누고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얻기 위해 예수님-곧, 자신의 행위와 삶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어린 보호와 천국의 삶을 분명히 구현했던 분-과 복 있는 자들-비록 팔복의 어느 하나만을 구현할지라도 제자도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한 이들-의 모습을 닮아가야 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읽기3에 따라 보다 분명해지는 팔복의 교훈

팔복은 독자들의 삶을 위하여 종말론적 지평(예컨대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5:3, 10,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4)과 신학적 지평(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로서 반복된 축복의 선언 속에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의 보호에 대한 표현, “복이 있나니”)을 함께 포함하는 놀라운 비전을 제공합니다. 축복이라는 종교적 어휘가 주 되신 예수에 의해 언급됨으로써 이 축복은 새로운 현실을 기초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저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7:23).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님에게 복을 받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 놓이게 됩니다(출 19:4-5). 즉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하나님의 소유된-사람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 있는 자들은 이상적인 행위(“심령이 가난하며,” “긍휼히 여기며” 등)를 취하며, 이들을 묘사하는 본문의 팔복은 신앙의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이 행하는 행위들을 모방할 것을 요청합니다. 요컨대 본문은 마태복음서의 여러 인물들-곧 팔복의 모든 면을 구현하는 예수를 비롯해, 작은 자들, 어린 아이, 여성, 이방인, 그리고 복음서의 팔복 중 어느 한가지라도 구현하고 있는 모든 다른 인물들-을 닮아야 할 모델로 신앙의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상설교의 다른 부분들은 제자도의 참된 모델들과 “거짓 선지자 (7:15-20)”들을 구별하기 위해 필요한 비전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읽기4: 본문의 팔복은 우리 가운데 임하는 천국의 현현과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안목을 제공한다

문제: 기독교 신앙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듭해서 거짓 선지자들-특히, 종교,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영역들에서 유능한 지도자로 여겨지고 있는 사람들-을 추종하고 닮도록 유혹을 받습니다.
해결: 본문의 팔복은 예수께서 심령이 가난한 복 있는 자들을 가려내듯이, 누가 과연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진실하게 드러내는지 가려낼 수 있는 믿음의 필요한 안목을 제공합니다.
변화: 위의 사람들에게 본문의 가르침이 끼치는 변화효과는 이제 과연 누구를 닮아야 할지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심령이 가난하거나 온유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쉽게 경멸하는 사람들 중에 섞여 있었습니다. 신앙의 독자들이 이러한 제자의 모델을 분별할 수 있을 때 이들은 비로소 현명한 건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반석 위에 자신의 삶을 건축하는 사람들입니다 (7:24-27).  

읽기4에 따라 보다 분명해지는 팔복의 교훈

이 경우 본문의 팔복은 누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지(7:15-20), 혹은 무엇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지(자신의 집 건축을 위한 반석으로서, 7:21-27) 신앙의 독자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팔복을 선포함으로써 예수는 이 같은 도덕적 통찰을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팔복에 나타난 행동형태의 묘사들(심령이 가난하거나, 애통하거나, 온유함 등)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함(7:21)에 대한 묘사와 다른것이 아닙니다. 그 같은 행동형태를 하나님의 뜻에 대한 표현으로 판정하는 것은 사실 신앙의 독자들에게는 직관에 반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론적 축복에 관한 묘사(예컨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는 결국 이 같은 선택이 지혜롭다는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렌즈로서의 팔복을 통해 신앙의 독자는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복 있는 자 곧 자신이 제자도의 모범으로서 닮아야 할 이들을 분별할 것을 요청받게 됩니다. 팔복에 나타난 일반적 주어 형태인 “저희들”은 누구든지 사회의 어느 곳에서나 그 같은 제자도의 모범들을 발견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닮는다는 것은 신앙의 독자들이 “심령이 가난한”(5:3) 복 있는 자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우유부단한 사람들로 세상에서 멸시받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내면화(참조 7:21) 하였기에 그 같은 태도를 갖게 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늘의 멍에를 메며, 하늘나라에 소속을 두고 있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찬가지로 모든 팔복에 대하여 예수의 분별을 닮아감으로써 하나님의 뜻(혹은 의)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한-그 모습이 무엇이 되었든 천국을 소유한-사람들이 자신이 평소 멸시하는 사람들 중에도 포함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약하면 본문의 팔복은 진정한 도덕적 분별로 선택된 반석같은 행위를 하는 이들에 대한 일련의 범례를 제공함으로써 신앙의 독자들이 도덕적 분별력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읽기5: 본문의 팔복은 신앙의 독자들에게 제자와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능력을 부여한다    
본문의 팔복은 다음 두 종류의 독자들에게 각기 다른 능력부여의 효과를 끼치고 있습니다: (1) 가난한 자와 억압된 자 (2) 교회의 또 다른 구성원들

(1) 가난한 자와 억압된 자
문제: 기독교 신앙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이들은 일종의 박탈된 상태이며, 억눌려 있고, 무력해진 상태입니다. 이들은 고통하며(혹은 애통하며), 의에 굶주려 있습니다.    
해결: 본문의 팔복은 이들에게 천국과 하나님의 공의의 대리인이 되도록 능력을 부여하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성취의 말씀입니다.
변화: 앞의 억눌리고 박탈된 사람들에게 본문의 가르침이 끼치는 변화효과는 능력제고(提高)의 효과라고 할 것입니다. 본문의 팔복은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통치(그들을 위로하며 공의와 땅을 베푸심)와 하나님의 행동방식을 보여주고, 이들 자신이 과연 누구인지(하나님의 자녀), 핍박받는 이유가 무엇인지(의를 위하여)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유와 능력의 말씀으로 힘을 얻습니다. 자신의 억눌림이 운명이나 처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나라를 부인하는 불의(不義)에서 비롯된다는 것과 비록 핍박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노력할 수 있어야 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2) 교회의 또 다른 구성원들  
문제: 빈곤의 실재.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모든 기독교 신앙인은 “가난한 자들이 항상 함께” (마26:11)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해결: 본문의 팔복은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과의 연대에 대한 요청입니다.
변화: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를 위하시는 하나님(가난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우선순위)을 보여주는 팔복의 첫 부분 (5:3-6)을 통해 기독교 신앙인들은 위와 같은 연대 곧 함께 불쌍히 여기며(5:7), 연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마음이 청결함, 5:8), 화평케 하며(5:9), 의를 위하여 핍박(5:10)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힘입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노력을 통해 이들과 하나 되어 천국의 기쁜 소식으로서 팔복을 전하며, 능력을 받아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의 빈곤과 억압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읽기5에 따라 보다 분명해지는 팔복의 교훈

앞의 두 경우에 있어 듣는 이들에게 복이 있다거나 기쁨이 있다는 긍정은 마치 하나님에게서 능력을 얻고 도움을 받는다는 긍정처럼 들려 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브라보 겔라도(Bravo Gallardo)는 역설하기를 “이들은 빈자(貧者)가 부자(富者)가 되며, 핍박받는 자가 핍박자가 되는 것과 같은 역전의 상황을 약속받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오히려 빈자들이 도움을 받는 것은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통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브라보 겔라도의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에 대한 번역).

하나님이 빈자를 염두에 두어 통치하신다는 긍정과 확신은 가난을 마치 미덕이나 축복으로 칭송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가난”을 “심령”이라는 말로 한정하고, 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그리고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는 동일한 약속한 받은 자들, 5:10)과 동일시하고 있는 5:3에서 더욱 분명해 지고 있습니다. 누가 가난한자들일까요? 요컨대,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자신의 정체성이나 약속을 얻지 못하였기에 고난을 당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비로소 이 약속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기에 자신들도 곧 하나님의 사람들(5:4) 가운데 일부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위로도 얻을 수 있습니다. 비록 자신을 변호할 수는 없었지만, 이들의 비폭력성은 더 이상 희생자의 수동적 굴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들을 위하여 유업으로 땅을 돌려 주신다는 것을 아는 하나님 자녀만의 조용한 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현재 자신과 타인을 위하여 간절히 의를 구하고 있으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새로운 의와 새로운 사회관계(5:6)를 이루실 때 스스로 만족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긍휼(혹은 감정이입)한 마음으로 기꺼이 다른 빈자들이나 억눌린 자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자신의 이웃을 위한(5:7) 결행(決行)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기 자신과 하나님의 또 다른 자녀들인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 (5:8)과의 연합과 연대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겔라도가 말하듯, “정의와 법의 결과이자 하나님과 타인과 세상과 자신과의 의로운 관계의 결과” (5:9)라고 할 수 있는 평화의 실현 가능성을 창조해 나아갑니다. 이들은 곧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노력 (6:33; 5:10)에 참여함으로, 심령이 가난해지며 핍박을 당하여도 결국 “도움을 얻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이 노력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스스로가 극복하려는 억압적 체제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브라보 겔라도가 역설하듯,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들에게서 제자도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드러남에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떻게 하나님이 이들의 편에서 역사하시는지, 이들의 정체뿐 아니라 왜 이들이 핍박을 받고 오늘과 내일에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읽기: 나의 해석이 전제하는 문제, 해결, 변화를 인식하기

여러분 자신의 산상설교 해석과 위의 다섯 가지 읽기는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여러분 자신의 해석에는 어떤 독특한 면이 담겨 있습니까?  

앞에 제시한 것처럼 각기 다른 상황에 놓인 이들을 위해 내린 팔복의 교훈과 이에 대한 위의 다섯 가지의 결론들은 본문에 대한 모든 가능한 해석들을 대표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해석들은 (1) 책과 논문을 통해 형성된 나 자신의 제한된 경험 속에서 (2) 신앙의 독자들이 본문의 팔복에 의해 받을 수 있는 영향들에 대해 내가 가진 문화적 안목으로부터 설득력 있다고 판정한 결론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복합성과 혼성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의 문화적 안목이 또 다른 해석의 개연성을 가리우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여러분의 해석이 내가 제안하는 해석의 어느 하나와 비슷할 수 있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전혀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읽기가 위 다섯 가지 읽기 중 어느 하나의 변형으로 여러분의 구체적 상황이 갖는 특정함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여러분의 해석이 전혀 다른 읽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특히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경우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해석이 갖는 구체성을 명료히 하기 위해 어느 특정한 상황에서 발견되는 문제(신실한 제자들이 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구체적 필요들)와 팔복의 본문이 제시하고 있는 해결방안, 그리고 신앙의 독자들에게 본문의 교훈이 가져다줄 변화효과, 곧 이들의 삶을 위한 혹은 그에 관한 새로운 그 무엇 등을 가려내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특징들을 요약해 보는 것은 다음 장의 비평적 이해를 위해 유용하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해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봅시다.  
문제(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신실한 제자들이 되기 위해 꼭 충족되어야 할 필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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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앞의 필요들을 충족시켜 주는 팔복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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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신앙의 독자들의 삶에 끼치는 앞 교훈의 결과, 즉 앞 교훈의 그 무엇이 이들의 삶에 새로운 요인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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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들의 필요에 대한 우리의 인지 개연성 평가

오늘의 신앙인을 위한 성서 본문의 교훈을 구체화하면서, 은연중 자신의 필요에 맞추어 믿음의 해석을 전개하는 일단의 사람들을 상상합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의 해석에 대한 예비적 분석의 일환으로 앞의 전제들이 과연 개연성이 있는지 아닌지를 확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신앙인들이 과연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사람들입니까? 이들에게 전가되는 그 필요들이 우리의 특정한 상황 속에서 발견되는 실제적 필요들입니까?

이 질문들은 우리의 해석이 오늘의 신앙인을 위한 본문의 실제적 교훈을 드러내는지 혹은 단순히 본문이 말하고 있는 어떤 “초시간적 교훈”-즉 신앙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에 전혀 교훈이라 할 수 없는 것-을 단순히 되풀이 하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때에 따라서는 우리가 가려낸 본문의 교훈이 매우 다른 상황 속에 놓인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끼치기에, 전혀 우리의 관심 대상인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팔복의 교훈이 오늘의 신앙인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이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립니다. 읽기1-1과 1-2의 토론에서 살펴 보았듯이, 이는 세속적 혹은 비기독교적 세계의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에 해당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미 깨닫고 있는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이 같은 신앙인들로서는 그 해석 속에서 특별히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메시지가 이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들을 위한 본문의 진정한 교훈은 의지의 결여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는 주저함(읽기2)이나 천국에 대한 믿음의 비전 결여(읽기3), 분별력의 결여(읽기4), 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는 무능력(읽기5) 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팔복의 교훈은 특정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실제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은 실제적 해석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해석에 대하여 비평적 이해를 더하는 것은 자신이 발견한 교훈이 본문에 적절히 기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해석이 어떻게 성서본문이나 현대의 독자들과 연관을 갖는지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현대성서학 연구:난외(欄外)의 전망- 2008년 2월 20일 출판
조직신학입문(개정증보판)-2007년 2월 23일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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