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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선생님
 


  한신연 
 고대교회(2006.10.15출판)


교회와 신학의 역사 원전 Alte Kirche- Kirchen und Theologiegeschichte in Quellen Vol. I
원문발췌,원문 번역 및 주석: 아돌프 마르틴 리터(A. M. Ritter)/공성철 옮김
신국판/504쪽/20,000원

이 원전 모음집은 고대 교회사 연구에서 중요한 많은 문헌들을 발췌하여 본래 원어인 희랍어, 라틴어 또는 시리아어로 기록된 다양한 교회와 신학의 역사문헌들을 번역하고, 알기 쉽게 배경 설명과 각주를 첨부하고, 연구사라고 할 수 있는 원전과 참고문헌을 모두 제시한 자료집이다.

이 책에 제시된 쉬운 설명을 곁들인 원전들은 교부문서와 철학자들의 문헌, 공의회 기록, 국가의 종교법, 교회법서들, 대학의 쟁론과 신앙고백서들에서 온 것으로 교회와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일, 이차문헌들을 읽다가 ‘본래는 어떠했을까, 여기에는 어떠한 연구들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나온 그 관심과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귀한 자료의 모음들로 고대 교회사 연구의 결정판이다.


편집자들의 머리말

이 책으로 시작된 “교회와 신학의 역사 원전” 시리즈가 가진 목적은 본 강의와 조망만을 해주는 강의 및 독학을 위한 원전모음을 통해서 교회사와 신학사 분야의 아카데믹한 강의를 위해 오래전부터 요구되어 왔던 갈망을 채워주는 것이다. 이 모음집에서 제시된, 목적에 걸맞게 이끌어주는 설명을 곁들인 원전들은, 교회사가와 일반사가들, 교부문서와 철학자들의 문헌, 공의회 기록, 국가의 종교법, 교회법서들, 대학의 쟁론과 신앙고백서들에서 온 것들이다. 그리고 이 책은 사용자들이 다룬 각각의 시대와 영향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현상들을 가능한 한 직접적으로 만나게 할 것이다. 게다가 특별하지 않는 한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본문들의 순서는 고대인들의 단어로 보도된 개별적인 사건들과 문제들을 그 각각의 역사적 맥락에서 관찰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그러한 본문을 선택하도록 이끈 목적은 교회사를 관점의 다양성 속에서 대면하도록 하며-예를 들면 한쪽으로 치우친 신학사적인 방향은 피하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된 원전들이 제공되되, 원어상의 중요한 개념과 용례 및 심각한 이해의 문제를 주고 그래서 본래의 본문으로 되돌아 가야만하는 그러한 구절에는 원어를 첨부하였다. 이것을 우리 입장에서는 실업학교 교사와 인문계학교 교사들, 곧 우리 원전작업에 흥미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 자들에 대한 배려라고 여겼다; 심지어 목사라는 직업을 목적으로 신학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도 충분한 언어적 지식이 점점 덜 요구되고 있다는 상황을 고려해야만 하였다. 하지만 물론 과거의 중요한 본문을 번역으로라도 아는 것이 전혀 모르는 것 보다는 분명히 낫다.
우리의 모음집을 좀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각 권에 함께 제시된 많은 색인을 통한 분류도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가 분명히 바라는 것처럼 이 모든 것과 함께 교회사, 교리사, 신조사 공부를 위한 실질적인 보조도구가 나타나기도 했고, 그러한 와중에 있다. 이 도구 “강독교재”는 교회사와 신학사의 각 시대에 관한 천연색의 그림을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되, 한편으로는 같은 분야의 동역자들에게 드린다. 이들은 “신학을 위한 학문적 모임” 안에 있는 교회사의 여러 학회에서 혹은 우리의 질문에 대해서 편지로 이 프로젝트 구상 전체에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본문선정에 조언하였고 자기들의 전문분야를 이해하게 만드는 비판으로 정말로 도와주었다; 이렇게 노련한 동반자적인 협력 작업은 이 모음집과 각권의 편집인과 편역자로서의 우리 노력이 얻은 가장 행복한 일들에 속한다. 다른 한편 이 시리즈를 출간하는 모험을 짊어지되, 매력적인 장정, 학생들과 우리의 주 대상들이 조달 가능한 가격으로 배려하여준 출판사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오버만(H. A. Oberman)        리터(A. M. Ritter)        크룸비데(H. -W. Krumwiede)


머리말

편집자들의 머리말에서의 언급 다음으로 이 첫 번째 고대교회 본의 편역자인 내가 할 남은 일은 동역자들을 호명하며 감사하는 일일 것이다. 저들은 나의 본문 선택 계획에 광범위한 입장표명을 하며 조언을 주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편집한 분들 외에 동역자들인 에를랑엔의 바이슐락(K. Beyschlag), 하이델베르크의 캄펜하우젠(H. von Campenhausen), 본 대학의 카르프(H. Karpp), 키일의 크라프트(H. Kraft), 베델의 루박흐(G. Ruhbach), 보쿰의 텟츠(M. Tetz) 이다. 이 외에 1975년 9월 베델에서 가졌던 교회사 학회에 참여했던 교부학자들이 있다. 곧 뮌스터의 알란트(K. Aland), 함부르크의 엘체(M. Elze), 뮌헨의 마이(G. May), 하이델베르크의 슈타아츠(R. Staats)를 말한다. 특별히 로마 카톨릭의 동역자 후라이부르크의 프랑크(K. Suso Franks)의 세심한 의견이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이것은 고대교회사와 신학사의 초보적인 과정과 문제들에 관한 이해는 신앙고백의 경계를 넘어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강의와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이 책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 안에 있는 카톨릭-신학과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원전의 최종적 선택과 본문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직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이 단번에 그리고 첫 판에서 벌써 해결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님도 내가 충분히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동역자들과 학생 신분의 사용자들에게 이 작업에 대하여 앞으로도 비판적으로 동행하여 줄 것을 부탁한다.

괴팅엔 1976년 10월                    리터(A. M. Ritter)


일곱 번째 증보판의 머리말
마지막 6판에서와 같이 일련의 수정과 보충이 무엇보다도 참고문헌에서 이루어졌는데, 그렇다고 거기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더 심도 있는 수정은 다음 판으로 유보시켰다. 이는 이 책이 서점과 교육현장에서 너무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게 되지 않도록 하려 함이다.
이 책 “고대교회”의 특별히 세심한 독자이며 힘을 실어주는 독자가 있다면 그는 한때 나의 괴팅엔 동료 베른트 묄러다. 이 때문에 앞으로 원전 모음집을 그에게 헌정하되, 동시에 그의 70세 생일에 대해 때 지난 선물로 감사와 우정의 마음을 담아서 드린다.

하이델베르크 2001년 성탄절                 리터(A. M. Ritter)


역자의 말

긴 작업 끝에 번역을 마친 자로서 한마디를 하게 되었다. 사실 작업으로 본다면 그렇게 길 것도 없는데 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고 해야겠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부학자 리터가 편집한 이 책은 역자가 독일에서 공부하던 때에도 독일 신학생들과 학자들이 많이 애용되던 자료집이다. 그 사실도 알고 때로는 이용도 했으면서도, 더 귀한 일을 해보겠다고 하며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이 작업, 저 강의를 하면서 몇 년을 보냈다. 그리고 2000년부터 몸담고 있는 대전신학대학에 와서 또 나름대로 잘 가르쳐보겠다고 하면서 원전들을 찾아서 사적으로 번역을 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공부를 일차자료를 보면서 하게도 하였다. 고대교회도 또 사용하고 번역도 하였지만 이 책을 번역하여 출판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또 4-5년이 흘러갔다. 그동안도 이 책을 번역하라는 권고를 하는 학문의 동반자가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해 보이는 일들로 보이는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통에 하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2004년 7월부터 2005년 1월까지 예일 대학 참고문헌들이 소장되어있는 방에 갔을 때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책을 읽다가 관심이 들어서 거슬러 찾아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자료만을 모아 둔 수많은 자료집들을 대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라도, 그리고 비록 작더라도 교회와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자들이 이차문헌들을 읽다가 본래는 어떠했을까, 여기에는 어떠한 연구들이 있었을까 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볼 수 있는 책을 제공하는 일을 해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과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큰 첫 걸음을 제시하는 데에는 리터의 고대교회가 가장 걸 맞는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개인적으로 번역해두었던 부분들을 모아서 좀 더 자세히 정확하게 번역하게 되었다.
본래 희랍어와 라틴어 때로는 시리아어로 기록된 다양한 문서들을 리터 교수가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다. 많은 교회사 연구에서 중요한 문헌들을 찾아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번역하고는 배경 설명을 붙이고, 각주를 첨부하고, 연구사라고 할 수 있는 원전과 참고문헌을 제시한 것이다. 이미 여기에 유럽의 신학이 축적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전어에서 독일어로 된 번역을 한국어로 한 역자의 번역은 따라서 번역의 번역이라고 해야 하겠다. 리터 교수는 모호한 곳, 중요한 단어에 원어를 친절하게 괄호 속에 넣어서 제시함으로 정확성과 정직성을 높이고 함께 머리를 맞대는 동역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에서 중역이 갖는 한계가 많이 부딪혔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 읽기 쉬운 번역에 치중을 하면 때로는 신학적, 교리적으로 눈여겨야 할 부분들이 강조가 되지 못하는 것을 극복해야 했다. 그렇다고 독일어에 충실하다는 것은 때로 본래 고전어를 가지고 애를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고도 해야 한다. 본 번역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이루어졌는데 그러한 흔적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번역을 마치기는 2005년 늦여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신학연구소와 연결이 되고나서, 출판을 추진하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판권을 가지고 있는 독일 출판사와 논의를 하는데, 최소한 4-5번 보내면 그곳에서는 한 번 받아 보는 때도 있었다. 반대로 4-5 차례 의견을 보내었는데 첫 번째 온 회신에 본인들은 4-5차례 동일한 답변을 했다는 내용이 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반복되는 긴 사연들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좋은 교분을 쌓게 하셨다. 다름이 아니라 한국에 리터 교수의 제자인 김광채 교수님(개혁신학대학원대학교)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 또한 리터 교수의 부탁으로 고대교회를 번역해서 2006년 봄에 마무리를 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김 교수님으로부터 알게 되고는 서로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에게 너무나 귀한 만남이었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작년 여름에 마무리한 책이 출판이 늦어진 것이 이 분을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기대를 하면서 갔다. 본 역자는 누가 권리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학자의 노력을 공으로 돌릴 수 없어서 공역할 것을 제안하였고, 그분은 또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그래도 몇 살 아래인 제가 기회를 갖는 것을 극구 권하셨다. 타이틀로 공역이라고 하지 말고 독일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Mitarbeiter로 하라고 하시면서 리터 교수 또한 그렇게 하였던 예화까지 제시하면서 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셨다. 두 개의 번역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기에 번역은 본인은 것으로 하고, 김 교수님께서 경험의 누적에서 정한 하나의 방식을 따라서 하는 것으로 추진하였다. 이 책이 나오게 된 이 자리를 빌어서 김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또 그 사이 리터 교수는 본 시리즈의 2권인 중세판도 번역을 하도록 허락을 해 주셨고, 고대교회 9판이 2007년도에 나오는데 그것을 번역할 마음은 있는가 하는 친절한 배려를 출판사를 통해서 보여주셨다. 이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별히 이 자리를 빌어서 리터 교수는 역자의 영적 삶의 여정에 아주 중요한 자리를 가진 분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열악한 출판현실에도 좋은 책이라고 여기면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빛을 보게 해 주시는 한국신학연구소와 함 승우 국장님께 감사드린다. 지치지 않고 이 책의 번역을 독려해준 신앙과 신학의 동역자,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의 교목인 임 걸 목사님께도 고맙고 기꺼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 막바지에 지겨운 색인 작업에 흥미까지 가지고 자발적으로 도와 준 아내 혜경에게 고마움과 사랑하는 마음을 보낸다. 멀지 않은 장래에 본 시리즈 2권인 중세편도 빛을 보게 되기를 바라면서 Soli Deo gloria.

2006년 8월  일  
아름다운 마을 아치울에서


〔서평〕

『교회와 신학의 역사원전: 고대교회』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6)

                                                                 서원모(장신대 교수)

        오랜만에 출판가에서 귀중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독일어권에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친숙하게 알고 있는 “교회와 신학의 역사 원전”(Kirchen- und Theologiegeschichte in Quellen) 시리즈가 번역되기 시작했고 그 중 제1권인 고대교회 부분이 출판된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자라면 누구나 원전을 읽고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기를 소망할 것이다. “원래 저자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들으며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며 수업을 진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모든 역사학도의 꿈이리라. 그러한 점에서 독일의 저명한 교부학자인 리터 교수가 고대교회와 관련된 원전들을 모아 해설을 덧붙여 출판한 이 유명한 서적을 한국어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고 경이롭게 여겨진다.
        “교회와 신학의 역사원전” 시리즈의 공동 편집자들(오버만, 리터, 크룸비데)이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이 시리즈는 독자들이 “각각의 시대와 영향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현상들을 가능한 한 직접 만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또한 이 시리즈는 공의회 기록, 교회법, 대학의 논쟁과 신앙고백서와 같이 교회에서 직접적으로 배출된 문헌뿐만 아니라 국가의 종교법, 일반 역사가들의 문서, 철학자들의 문헌과 같이 각 시대의 교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료들도 포함하여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교회사를 조망하게 해준다. 이 원전 자료들은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선입견 없이 당시의 사건과 문제들을 그 역사적 맥락에 비추어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더욱이 이 시리즈의 모든 책은 수록된 원전 자료들의 일련번호 표기, 본문에 대한 간략한 해설, 이해가 어려운 단어나 개념을 위한 원어제기나 주석 등을 통해 강의실에서 사용하거나 독학으로 연구하기에 매우 용이하다.
        이번에 출판된 『고대교회』도 이 시리즈의 기본적인 목적을 충실하고 실현하고 있다. 이 책은 키케로의 “신들의 본성”에서 나타난 고대 로마의 종교로부터 시작해서 9세기 동 시리아 교회(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중앙아시아 선교를 위한 마르 슙칼리쇼(슈브할리쇼)의 주교 서품에 대한 마르가의 토마스의 역사 기록으로 끝맺는다. 이 두 가지 예만 보더라도 포괄적이고 다양한 종류의 사료를 제시하고자 하는 편집자 리터 교수의 관심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실로 이 책은 고대교회 이해를 위해 중요한 사료들을 총망라하고 있으며, 이레네오스, 터툴리안, 오리게네스, 어거스틴과 같은 중요한 신학자들, 삼위일체 논쟁이나 기독론 논쟁과 같은 교리 논쟁, 로마제국의 박해와 순교, 배교, 국교화와 같은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 영지주의, 유대인 기독교, 마니교, 아리우스 등과 같은 이단들의 사상, 또한 디다케, 고대 로마교회의 세례문답이나 예루살렘의 퀴릴의 요리문답, 에프렘의 “교회찬가”, 암브로시우스의 저녁 찬송 등 고대교회의 다양한 측면을 총체적으로 알려준다. 또한 이 방대한 내용을 간추려 한 권으로 압축하여 제시한 것도 이 책의 뛰어난 장점이다.
        특별히 시리아 교회를 전공한 본인은 샤푸르 2세 치하의 페르시아 기독교의 박해 (61번), “시리아인” 에프렘의 “교회찬가” (74번), 네스토리우즈주의자들의 역사 (95번) 등 시리아 교회와 관련된 사료들을 보며 매우 반가웠다. 이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 내에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을 넘어서서 메소포타미아, 중앙아시아까지 전파되어 고유의 신학과 예전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리터 교수의 폭넓은 시각을 증언해준다. 다만 이 책이 9세기 동 시리아 교회의 중앙아시아 선교를 다루었다면, 7세기부터 9세기에 이르는 중국 선교도 중앙아시아 선교에 대한 해설 부분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원전 자료(가장 대표적으로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를 포함시키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것은 유럽 학자들의 한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대표적 역작을 우리말로 번역한 공성철 박사의 노고를 언급하고 싶다. 이 책의 곳곳에서는 번역자가 정확하고 적절한 언어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노력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더구나 중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친히 원문자료를 뒤지며 보다 나은 번역을 위해 애쓴 것은 다른 번역자들에게도 귀감이 된다. 또한 “역자의 말”에 나타난 대로 이 책이 김광채 교수님의 협조와 양해 가운데 출판되게 되었다는 사실도 사사로운 이해를 떠나 오직 학문의 발전을 위해 대승적으로 협력하는 본보기를 제시해주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다만 이 책의 인명이나 지명의 번역의 원칙을 밝혀주지 않은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대체적으로는 독일어 원문에 나타난 인명, 지명을 그대로 음독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보이는데, “저스틴” “어거스틴”은 관용적인 영어 발음을 따른 것 같다. 대부분의 용어가 영어권의 용어와도 일치해서 큰 무리가 없다고 보이지만, "두 명의 디오니스의 논쟁” (41번)에서의 “디오니스”(Dionyse)는 혼돈을 줄 수 있다고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지금 한국교회사학회가 중점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교회사 용어 통일 작업 이전에 출판되었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용어 통일 작업이 완성되면, 이런 문제들이 손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공성철 박사가 언급한 제2권 중세편뿐만 아니라 나머지 3권(종교개혁편, 근대편, 현대편)도 모두 완역되어 우리의 교회사 교육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한다.  


목차

1. 고대 로마의 종교(키케로, 신들의 본성 2, 8, 72; 내장을 살피는 자들의 보고 9, 19)
2.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행위록”에서 보는 로마제국의 견고성(Res gestae divi Augusti)
3. 주후 50년경의 농경상황(콜룸멜라, 농경에 관하여, 1권 머리말)
4. 학문 연구의 감소(대 플리니우스, 자연의 역사 2, 117f. 세네카, 자선에 관하여 7, 1, 3-7와 비교)
5. 주후 64년 네로 황제 치하에서의 기독교 박해(타키투스, 연대기 15, 44, 2-5)
6. 유대전쟁(주후 66-70)과 예루살렘의 멸망(유세비우스, 교회사 3, 5, 3; 요세푸스, 유대전  
   쟁사 7, 216ff.)
7. 클레멘스 1서
   a) 구약성경의 제사규정의 모법(40f.)
   b) 직임의 연속성(42. 44장)
8. 디다케
   a) 기독교 예배(7-10)
   b) 공동체의 직임과 은사들(11. 13. 15)
   c) 주님의 날 기념(14)
9. 회당과 교회의 분열: 저스틴의 증언(트리포와의 대화 16, 4)
10. 로마제국에서의 기독교인들의 법적인 위치: 소 플리니우스와 트라얀 황제의 서신교환
    (소 플리니우스, 편지 10, 96f.)
11.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a) 가현설 이단에 대한 경고(트랄레스 교인들에게 6. 7. 10)
   b) 올바른 그리스도 고백(트랄레스 교인들에게 9; 에베소 교인들에게 7, 2)
   c) 예수 이야기의 모순(에베소 교인들에게 18, 2-19, 3)
   d) 감독 없이는 모든 것이 무효!(트랄레스 교인들에게 7, 2; 필라델피아 교인들에게 7; 서머나 교인들에게 8)
   e) 성찬의 빵은 “불멸의 영약”(에베소 교인들에게 20, 2)
   f) 순교를 향한 열망(로마 교인들에게 4f.)
   g) 기독교와 노예제도(폴리캅에게 보낸 편지 4, 3)
12. 스토아 철학자 에픽텟의 가르침
   a) 스토아 철학의 근본원리(소책자 1, 1-13)
   b) 상황은 아무 것도 아니다; 상황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중요함(담화 1, 12, 17)
   c) 인간은 신의 한 부분(담화 2, 8, 11-14)
   d) 신의 가호에 대한 신뢰와 신이 주는 선물에 대한 감사(담화 2, 16, 42f.; 1, 16,          15-21)
13. 132-135/136년의 바르-콬흐바의 반란(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69, 12ff.; 저스틴, 변증      I, 31)
14. 헤르마스의 “목자”에서 본 회개의 문제(환상 2, 1, 1-3; 2, 2, 1-7; 계명 4, 3)
15. 마르키온의 “개혁”
   a) 하나님 개념을 나눔(터툴리안, 마르키온 반박 1, 2; 4, 6)
   b) “율법”과 “복음”의 대조(같은 곳 1, 19, 4f.)
   c) “구약성경”과 우화적인 성경해석의 폐기(이레니우스, 이단반박 1, 27, 2; 터툴리안,
      마르키온 반박 3, 5, 4)
   d) 기독교의 “사도적” 전승 비판(터툴리안, 마르키온 반박 1, 20, 1f.)
   e) 마르키온의 “신약성경”(에피파니우스, 약상자 42, 9)
   f) 하르낙이 복원한 마르키온의 갈라디아서
16. 클레멘스 2서
17. 황제의 노예 배려(유스티니아누스 법전 1, 8, 2)
18. 몬타누스주의
   a) 유세비우스에 나오는 익명의 반 몬타누스가 말하는 몬타누스주의의 발생(교회사    
      5, 16, 6-10)
   b) 몬타누스 어록(에피파니우스, 약상자 48, 4. 10)
   c) 여선지자 브리스가의 예언(같은 곳 49, 1)
   d) 여선지자 막시밀라의 예언(같은 곳 48, 13, 1)
19. 마다우라의 아풀레이우스의 “변신”이 말하는 이시스 신비종교
   a) 전능의 신 이시스(변신 11, 5, 1-3)
   b) 이시스의 상급(같은 곳 11, 5, 3-5)
   c) 입문자들의 봉헌(같은 곳 11, 23, 4-24, 5)
   d) 입문자들의 감사기도(같은 곳 11, 25, 1-6)
20. 기독교에 대한 문헌적 공격(키르타의 프론토[?] 미누시우스 펠릭스, 옥타비우스 8,
    3-10, 2)
21. 저스틴의 변증
   a) 기독교인들을 향한 비난들은 그 확실성을 검증하여야 한다(변증 I, 2-5)
   b) 이교 국가에서의 기독교인(같은 곳 12. 17)
   c) 로고스론(변증 II, 6, 1-3; 13, 2-6)
   d) 기독교의 세례와 예배(변증 I, 61-67)
22. 폴리캅의 순교와 기독교의 순교자 숭배 시작(폴리캅의 순교 17f.)
23. 기독교를 향한 켈수스의 공격
   a) 비판의 요점(오리게네스, 켈수스 반박 1, 1-21)
   b) 비판의 종교철학적 기초(같은 곳 7,36. 42. 45. 68; 8, 63. 67)
   c) 비판의 경향(같은 곳 8, 68f. 73. 75)
24. 스킬리인들의 순교
25. 기독교 영지주의
   a) 영지주의의 주제(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테오도투스 발췌문 78, 2)
   b) 나아센주의자들의 시편에서 본 영혼의 추락과 외부로부터의 길(히폴리투스, 이단반박
      5, 10, 2)
   c) 발렌티누스주의자들의 세계상(에피파니우스, 약상자 31, 5. 6)
   d) 플로라에게 보내는 프톨레미의 편지가 말하는 구약성경의 율법에 대한 자세(같은 곳
      33, 3, 1ff.)
   e) 유대적 기독교 영지주의자 케린트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이레니우스, 이단반박 1, 26,
      1; 히폴리투스, 이단반박 7, 33)
   f) 바실리데스가 말하는 수난이야기(이레니우스, 이단반박 1, 24, 4)
   g) 물리적 과정으로서의 구원(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테오도투스 발췌문 55, 2-56,
      3)
   h) 교회론의 차이(진리의 복음 24f.)
26. 이단이 되어간 유대인 기독교
   a) 이레니우스가 말하는 에비온주의자들의 믿음(이단반박 1, 26, 2)
   b) 에비온주의자들의 복음(에피파니우스, 약상자 30, 13, 7f; 16, 4f.)
27. 리옹의 이레니우스와 “공교회(카톨릭 교회) 기준”의 확정
   I. 사도적 전승과 연속성의 의미
   a) 사도적 연속성 가운데 있는 교회 직분(이단반박 3, 3, 1; 4, 26, 2)
   b) 로마 교회와 그 특별한 권위(같은 곳 3, 3, 2f., 유세비우스, 교회사 4, 23, 10f.에
      나오는 고린도의 디오니스를 참조하며)
   c) 신앙의 규범(같은 곳 1, 10, 1f.; 사도적 선포의 논증 47)
   II. 정경신학자 이레니우스
   d) “두 계약”(이단반박 4, 9, 1)
   e) 진리를 온전히 소유한 사도들(같은 곳 3, 1, 1)
   f) 성경의 명료함과 “충분함”(같은 곳 1, 8, 1; 10, 3; 2, 27, 1f.)
   g) 네 복음서 정경의 원리적인 연계성과 그 기준(같은 곳 3, 1, 2; 11, 7ff.)
   III. 구속사 신학자 이레니우스
   h) 천년왕국(같은 곳 5, 35, 36)
28. 가장 오래된 정경목록(무라토리 정경)
29. “역동적” 군주신론과 “양태적” 군주신론
   a) 히폴리투스가 말하는 피혁상 테오돗(이단반박 7, 35, 1f.)
   b) 히폴리투스가 말하는 노엣 이단(같은 곳 9, 10)
   c) 터툴리안이 말하는 프락세아스 이단(프락세아스 반박 1)
30. 터툴리안
   I. 기독교 변증가 터툴리안
   a) 변증의 목적(변증 1, 1f.)
   b) 기독교인 미워함의 어리석음과 불의함(변증 1, 10-13; 2, 1-3; 40, 2; 50, 12f.)
   c) 기독교인과 황제(같은 곳 21, 24; 30, 1f.; 31, 1; 33, 1)
   d) 기독교인의 영혼이 본성으로부터 내어 놓는 증거(같은 곳 17, 4-6)
   e) 기독교와 병역(우상숭배 19)
   II. 반 이단 저술가 터툴리안
   f) 사도적 교회들(이단들의 소송권 20. 32. 36)
   g) 신앙의 규범(프락세아스 반박 2, 동정녀들의 베일로 가림 1; 이단들의 소송권 13을
      함께 참조)
   h) 이단들은 성경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이단들의 소송권 37)
   i) 철학은 이단의 어머니(같은 곳 7)
   III. 터툴리안과 회개 문제
   j) 몬타누스주의자가 되기 전 터툴리안의 입장(회개 7-9)
   k) 몬타누스주의자 터툴리안과 감독의 면죄권의 한계(명예론 1, 21)
3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a) 주요저작과 그 구성계획(선생 1, 1, 3)
   b) 기독교의 “윤리적 자세”? “부자 청년” 구절의 바른 의미(설교 “어떤 부자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11. 19장)
   c) 철학은 예비학교(양탄자 1, 27. 28)
   d) “믿음”과 “지식”(같은 곳 7, 55. 57)
32. 오리게네스
   I. 동시대인들이 판단하는 오리게네스
   a) 철학자 포르피리우스의 증언(유세비우스, 교회사 6, 19, 4ff.)
   b) 능력자 그레고르의 증언(감사의 말 6-15)
   c) 율리아 맘메아의 궁정 시절의 오리게네스(유세비우스, 교회사 6, 21, 3f.)
   II. 성경신학자 오리게네스
   d) 모든 가르침은 성경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마태복음 주석 R. 18, 옛 라틴어 번역)
   e) 성경의 영감과 외적인 모순과 상반되는 내적인 일치(원리론 4, 2, 1ff.)
   f) 헥사플라(유세비우스, 교회사 6, 16)
   III. 조직적 사상가 오리게네스
   g) 교회 전통으로의 소급(원리론 1, 머리말 2-7. 10)
   h) 로고스론(같은 곳 1, 2, 1f. 4. 6; 4, 4, 1)
   i) 삼위일체론(켈수스 반박 5, 39; 8, 12; 원리론 1, 3, 5)
   j) 창조와 타락과 자유의지의 문제(원리론 2, 9, 2. 6)
   k) 구세주가 인간이 되심(같은 곳 2, 6, 2-5)
   l) “만물의 회복”(원리론 2, 11, 2; 요한복음 주석 1, 16; 원리론 3, 6, 1. 6)
   IV. 기독교 변증가 오리게네스
   m) 플라톤주의자들의 비역사적 로고스 철학과 만인 구원에 관한 기독교의 염려(켈수스
      반박 1, 9)
   n) 기독교와 세상(같은 곳 8, 69f., 유세비우스, 교회사 4, 26, 7-11의 사르데스의      멜리토와 비교)
   o) 기독교와 전쟁(같은 곳 8, 73)
33. 로마제국의 고조되는 내적 위기
   a) 로마의 모든 노예들에게 시민권 부여: 카라칼라 황제의 “안토니우스 법령”(212)과 카
      시우스 디오의 반박(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77, 9)
   b) 세금과 공과금을 위한 원로원의 임무(유스티니아누스, 법학대전 50, 2, 1; 50, 4, 3,
      15)
   c) 백성의 착취: 신탁간구 목록(Papyrus Oxyrhynchus 1477)
   d) 화폐가치의 절하(Papyrus Oxyrhynchus 1411, 260년)
34. 데키우스(Decius) 황제의 기독교 박해와 그 동기(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52, 36, 1f.;
    유세비우스, 교회사 6, 4, 1ff.; 제의증서 3 [J. R. Knipfing])
35. 카르타고에서 발생한 대대적 배교(키프리안, 배교자들에 관하여 7-11)
36. “배교자들”의 회개 문제
   a) 유세비우스가 말하는 노바티안의 입장(교회사 6, 43, 1f.)
   b) 252년 카르타고 공의회의 결정(키프리안, 편지 57)
37. 키프리안
   a) 공교회만이 구원을 제공한다(교회의 하나 됨 6)
   b) “베드로의 수위권”과 감독직(같은 곳 4f.)
   c) 이단 세례의 문제(편지 70, 1)
   d) 그리스도를 대신한 성례전의 희생(편지 63, 2. 9. 14)
   e) 유아세례문제(편지 64, 2. 5, 터툴리안, 세례론 18과 비교)
   f) 선행의 공로(선행과 자선[De opere et eleemosynis] 1. 2. 5. 26; 253년경 저술)
38. 공동체 내에서의 금욕
   a) 키프리안이 말하는 동정녀 신분과 그 근거(동정녀의 자세 [De habitu virginum] 3.          21-23; 249/250년 저술)
   b) 유세비우스가 전하는 노바티안의 소극적 태도(교회사 6, 43, 16)
39. 발레리안 황제의 기독교 박해(키프리안, 편지 80)
40.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틴의 가르침
   a) 일자의 원리(엔네아드 6, 5, 9, 47f.)
   b) 원초적인 세 실체(같은 곳 5, 2, 1, 1-6; 2, 7)
   c) 일자를 향한 상승(같은 곳 6, 9, 11, 77-79)
   d) 세계 안에 있는 인간(같은 곳 2, 9, 8f., 70f., 75-80)
41. “두 명의 디오니스의 논쟁”
   a) 로마의 디오니스가 사벨리우스주의자들을 반대하여 보낸 서신(아타나시우스, 니
     케아 공의회의 결정들 26)
   b)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스의 “반박과 변호”(아타나시우스, 디오니스의 의도 15. 17f.)
42. 고대 로마교회의 세례문답
43. 마니교
   a) “샤푸라칸(S̆ahpuhrakān)” 서두에서 보는 마니의 존재와 사명(Al-Bi̅runi̅,
       Chronologie orientalischer Völker, S. 207 Sachau)
   b) 마니의 “거인족들의 책”이 말하는 이원론(안디옥의 세베루스, 설교 123)
   c) “샤푸라칸”이 말하는 마니교의 보편성(= F. C. Andreas, 중부 이란의 마니교, II, S.
      295f.)
   d) 어거스틴의 서약서(어거스틴, 마니교도 펠릭스와의 토론 2, 22)
44. 포르피리우스의 기독교인 공격(단편 1, 80[하르낙])
45. 디오클레티안과 제국의 재편성
   a) 사두체제와 그 구성(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론 39)
   b) 통화제도의 개혁(최고가격에 관한 디오클레티안의 칙령)
   c) 제사제도의 개혁(카르눈툼의 미트라스 비문)
   d) 297년 디오클레티안의 마니교 칙령(Lex Dei sive Mosaicarum et      
      Romanarum legum collatio, tit. XV, 3)
46. 락탄츠가 말하는 디오클레티안 치하에서의 기독교인 박해(박해자들의 다양한 죽음
    10-15)
47. 엘비라 공의회의 법령들
   a) 참회제도(법령 2. 6. 7)
   b) 노예취급(법령 5)
   c) 이교도들과의 혼인(법령 15-17)
   d) 순교와 부추김(법령 60)
   e) 성상숭배(법령 36)
48. 도나투스 분열의 발단
   a) 어거스틴이 말하는 411년 카르타고 공의회의 신앙에 관한 담화문서에서 보는 카르타
      고의 감독 멘수리우스와 티기시의 감독 세쿤두스 간의 서신교환(304/
      305?)(Breviculus collationis cum Donatistis 3, 13, 25)
   b) 카르타고의 도나투스주의자들의 공의회(307/8? 311/2?): 캐킬리아누스의 폐위와 마
      이오리누스를 대립 감독으로 서임(같은 곳 3, 14, 26; 밀레베의 옵타투스, 도나투스
      주의자 파르메니안 반박 1, 19, 20; 어거스틴, 풀겐티우스 반박 26)
49. 락탄츠가 말하는 갈레리우스의 용인칙령(박해자들의 다양한 죽음 34)
50.콘스탄틴의 부상과 기독교
   a) 락탄츠의 증언(박해자들의 다양한 죽음44, 1-12)
   b) 유세비우스의 증언(콘스탄틴의 생애 1, 28f.)
   c) 313년에 나온 익명의 한 이교도 찬송작가의 증언(Panegyrici Latini 9, 2. 4)
   d) 아를르의 감독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는 황제의 자기 증거(밀레베의 옵타투스, 부         록 5)
51. 락탄츠가 말하는 “밀라노 칙령”(박해자들의 다양한 죽음 48, 2-12)
52. 콘스탄틴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에 온 혜택
   a) 얼굴훼손 금지(테오도시우스 법전 9, 40,[315년 아니면 316년 3월 21일])
   b) 일요일 법(유스티니아누스 법전 3, 12, 2; 테오도시우스 법전2, 8, 1)
   c) 성직자의 면책특권에 관한 법(테오도시우스 법전16, 2, 2[319년 10년 21일])
   d) 감독재판(테오도시우스 법전1, 27, 1[318년 6월 23일])
   e) 교회건축에 관한 명령(유세비우스, 콘스탄틴의 생애 2, 46)
53. 안토니우스와 수도원의 시작
   a) 아타나시우스의 “안토니우스의 생애”에서 보는 안토니우스의 모습(1-3. 5. 7f. 12. 14. 67. 69. 94)
   b) “교부들의 금언집”에서 보는 안토니우스의 모습(금언집 1-5. 7. 9-11. 23f. 26. 36
   f.)
54. 아리우스와 삼위일체 논쟁의 시작
   a)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감독의 교서에 나타난 “아리우스 논쟁”의 시작(Opitz,          Urkunde 4b)
   b) 아리우스와 그의 동료들이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감독에게 제출한 신앙고백(320
      년경: Urkunde 6)
   c)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감독과 아리우스에게 보낸 콘스탄틴의 편지에 말해주는    
      콘스탄틴의 교회논쟁에 개입(324년 10월: Urkunde 17)
55. 콘스탄틴이 324년 속주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타난 종교활동용인 약속 다짐(유세비우스,
    콘스탄틴의 생애 2, 56)
56. 니케아 공의회와 니케아 신조
   a) 알렉산드리아, 이집트, 리비아, 펜타폴리스 교회들에게 보낸 공의회 교서에서 보는 공     의회의 협상들(Urkunde 23)
   b) 니케아 신조(N)
   c) 동일본질(Homousios)의 삽입과 유세비우스 감독이 자기 교구에 보낸 편지가 말하는 그 의미(Urkunde 22)
   d) 법령 5와 6.
57. 326년의 콘스탄틴의 이단법령(유세비우스, 콘스탄틴 황제의 생애 3, 64f.)
58. 고대말기의 국가는 전제국가(테오도시우스 법전 5, 17, 1; 12, 1, 1; 13, 5, 1)
59. 파코미우스의 수도원
   a) 팔라디우스의 수도원 역사에서 보는 파코미우스와 타벤네시의 수도사들(Historia
      Lausiaca 32f.)
   b) 파코미우스 수도규율이 말하는 수도원에 받아들임(규율 49)
60. 330년 콘스탄티노플로 천도(발레시아스가 말하는 익명인 6, 30)
61. 샤푸르 2세(Schapur II) 치하의 페르시아에서의 기독교인 박해: 감독 시몬(Schem ́́on)
    의 순교
62. 삼위일체 신학자 앙퀴라의 마르켈
   a) 유세비우스의 “마르켈 반박”과 “교회의 신학”에 있는 마르켈의 단편(66f. 52. 60. 111. 113. 121. 41[Klostermann])
   b) 마르켈과 로마신조(에피파니우스, 약상자 72, 2, 1-3, 5)
63. 세르디카에서의 “서방측” 공의회의 교령(테오도렛, 교회사 2, 8, 39ff.)
64. 콘스탄티우스 2세와 이교(테오도시우스 법전16, 10, 2-4)
65. 기독교의 이교배척: 휘르미쿠스 마테르누스, 이교들의 오류(16, 4; 28, 6; 29, 1. 4)
66. 예루살렘의 퀴릴의 “세례문답집”(예비 교리문답 2. 12. 16; 교리문답 3, 10; 18, 33)
67. 아타나시우스의 반 아리우스주의와 그 동기(니케아 공의회의 결정들 20장과 아리
   우스주의자들 반박 2권 67-69장; 3권 31장)
68. 359년 5월 22일 제 4차 시르미움 신앙고백(아타나시우스, 이탈리아의 아리미눔과 이사
    우리아 시르미움에서 거행된 공의회 8)
69. 찬송작가요 바울주석가인 마리우스 빅토리누스
   a) 삼위일체에 대한 첫 번째 찬송(1-16. 74-78절)
   b) 바울의 소서신들 주석(갈 2, 15f.; 빌 2, 12; 3, 9; 엡 2, 8. 15f.에 대한 주석)
70. 동일본질에 관련된 문제들(아타나시우스, 공의회들에 관하여 41-45)
71. 황제 줄리안(Julian)과 이교의 재건
   a) 이교도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가 전하는 줄리안과 옛 제의의 재건(로마사 22, 5, 1-4)
   b) 사제들의 바른 자세(편지 89b[Bidez])
   c) 재건정책의 결과(갈라디아의 최고사제 아르사키오스[Nr. 84b Bidez]와 철학자 아리
     스톡세노스에게 보낸 편지[Nr. 78 Bidez])
   d) 기독교인들의 법적 지위(아타르비오스에게 보낸 편지[Nr. 83 Bidez])
   e) 기독교 교사의 직업생활 금지(편지 42[Bidez-Cumont])
72. 이집트에서 발생한 성령론 논쟁의 발단
   a) 이집트의 “트로피커”들의 주장들(아타나시우스, 트무이스의 감독 세라피온에게 보낸
   편지 1, 1. 3. 15)
   b) 아타나시우스의 답변: 성령은 피조물이 아니다!(같은 곳 3, 2-5)
73. 362년 알렉산드리아 공의회(아타나시우스, 안디옥 교인들에게 보내는 교서 3-6)
74. “시리아인” 에프렘의 “교회 찬가”(찬가 26/27)
75. 라오디게아의 아폴리나리스의 기독론
   a) 철학적 전제들과 그 기독론적 귀결(위 아타나시우스, 아폴리나리스 반박 1, 2; 학문적
      서술 단편 81 Lietzmann; “헤노시스(Henosis)”에 관한 첫 강연 단편 2 Lietzmann)
   b) 대적자들(학문적 서술 단편 15 Lietzmann, 안디옥의 유스타티우스, 아리우스주의자들
      반박 단편 41과 비교)
   c) 그리스도 상과 그의 구원동기(성육신론 단편 10 Lietzmann; 학문적 서술 단편 48.
      49. 51 Lietzmann; 삼단논법 단편 15 Lietzmann; 요비안에게 보낸 편지 1f.)
76. 아타나시우스가 고린도의 에픽텟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는 그의 기독론
77. 성직자의 세속화(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 로마사 27, 3, 11-15)
78. 가이사랴의 바실리우스
   a) 공동체적 삶이 홀로 거함보다 우월성(긴 규범들[Regulae fusius tractatae] 7)
   b) 나찌안스의 그레고리의 추모사에 나오는 바실리우스 수도원의 사회적 의미(강론 43, 63)
   c) 성령의 신적 능력(성령론[375년] 9, 22f.)
   d) 성령의 역사(같은 곳 19, 49)
   e) ouvsi,a와 u`po,stasij의 의미 차이(편지 236, 6; 376년)
79. 울필라와 서고트족의 기독교로 개종(소크라테스, 교회사 4, 33)
80. 국가종교로서의 기독교: 테오도시우스 1세의 칙령“Cunctos populos” 380년 2월 28일
    (테오도시우스 법전 16, 1, 2)
81.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정
   a)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NC)
   b) 법령 1
   c) 382년 콘스탄티노플 지역 공의회의 공의회 교서에 나타나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법
      령(“Tomus”)(테오도시우스, 교회사 5, 9, 11)
   d) 법령 3
82. 히에로니무스와 라틴어 성경 개정(복음서 개정에 대한 서문)
83. 교리논쟁과 콘스탄티노플 시민(니사의 그레고리, 성자와 성령의 신성)
84. 383년 7월 25일 테오도시우스 1세의 이단에 관한 법(테오도시우스 법전 16, 5, 11)
85. 밀라노 암브로시우스의 저녁 찬송
86. 암브로시우스와 제국교회의 확립
   a) 빅토리아 제단 재건을 위한 심마쿠스의 청원서(3, 3-10)
   b) 암브로시우스의 항의(편지 17, 1. 12-14)
   c) 암브로시우스와 칼리니쿰 회당의 방화사건(편지 40, 6. 10)
   d) 이교인 웅변가 리바니우스의 강연 “신전의 보존을 위해서”(강연 30, 8f. 55)
   e) 암브로시우스가 황제에게 속죄를 요구함(편지 51, 6f. 11-13. 17)
87.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대의 비기독교인의 법적 지위
   a) 이교적인 공식적 제의행위 금지(테오도시우스 법전16, 10, 10[391년 2월 24일])
   b) “유대 분파”-“법적으로 금지하지 않음”(같은 곳 16, 8, 9[393년 9월 29일])
   c) 비기독교인들을 향한 폭력사용을 금함!(같은 곳 16, 10, 24[423년 6월 8일])
   d) 병역과 고위 관직에서 이교도들을 제외함(같은 곳 16, 10, 24[416년 12월 7일])
88. 요한 크리소스톰
   a) 교회의 직제와 그 책무들(사제직에 관하여 3, 4. 7; 고린도전서 설교 8; 사제직에 관
      하여 4, 3f.)
   b) 수도원과 교회(창세기 설교 43, 1; 사제직에 관하여 6, 5. 10; 고린도전서 설교 25,
      3)
   c) 사회악에 대한 비판과 사회 개혁 프로그램들(창세기에 관한 아홉 강연 R. 4. 5; 고린
      도전서 설교 40, 5; 선지자 다윗의 말씀[시 49, 17]과 손님 환대 3; 디모데전서 설교
      12, 4)
89. 기독론 신학자 몹스베스티아의 테오도르
   a) 아리우스-아폴리나리스 방식의 “로고스-육신”도식 비판(요리문답 설교 5, 9)
   b) 테오도르의 기독론의 근본 이해(인간이 되심에 관하여 9권 단편 1; 요리문답 설교 5,
      19; 8, 10. 13)
   c)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성의 하나 됨(유노미우스 반박 8권; 인간이 되심에 관하여 7
      권; 요한복음 주석 6권)
   d) 마리아-하나님을 낳으신 자?(인간이 되심에 관하여 15권)
90. 415년 발생한 여성 철학자 히파티아 살해(소크라테스, 교회사 7, 15)
91. 어거스틴
   A. 어거스틴의 발전 과정
   a) 수사학도와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고백록 3, 4, 7)
   b) 마니교도의 일원(같은 곳 3, 5, 9-7, 12; 4, 1, 1; 5, 6, 10)
   c) 바울에게로 인도한 플라톤주의자들의 문서 탐독(같은 곳 7, 9, 13f.; 20, 26-21,
      27)
   d) 안토니우스의 모범(같은 곳 8, 6, 14-8, 18)
   e) 회심(같은 곳 8, 12, 28f.; 10, 27, 38)
   f) 사제직을 향한 준비(편지 21)
   g) 감독 (설교 340, 1)
   h) 수도사 신학자(어거스틴 수도규율)
   B. 어거스틴의 가르침
   I. 해석학과 인식론(fides, ratio, auctoritas)
   i) 기독교 신앙론(De doctrina christiana)의 머리말
   j) 신앙과 지식(편지 120, 3; 설교 43, 4, 9; 마니교의 근본교서 반박 4, 5)
   II. 도나투스주의와의 논쟁에서 나온 교회신앙을 세움
   k) 교회의 단일성(페틸리안의 편지 반박 2, 77, 172; 세례론 3, 16. 21)
   l) 교회의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선물(기독교 신앙론 3, 32, 45; 파르메니안의 편지 반박
      2, 4, 9; 14, 32)
   m) 성례를 받음의 효력과 유용함(세례론 4, 17, 24; 페틸리안의 편지 반박 1, 6, 7-7,
       8)
   n) 말씀과 성례전(요한복음 연구 80, 3)
   III. 펠라기우스 논쟁에서 보는 죄와 은혜에 관한 가르침
   o) 본성과 은혜에 관한 기본 사상(본성과 은혜 3, 3-6, 6)
   p) 행위의 법과 믿음의 법(성령과 문자 9, 21. 22)
   q) 하나님의 예정(성도의 예정 8, 16)
   IV. 역사신학: 두 왕국
   r) 인류역사에 나타나는 두 왕국의 양립(초신자들 교육[De catecizandis rudibus] 31,
      2; 하나님 왕국 14, 28)
   s) 지상 왕국의 발생(같은 곳 15, 1)
   t) 지상 왕국의 상대적 권세(같은 곳 4, 4; 15, 4; 19, 17. 21-26)
   u) 하나님 왕국과 교회(같은 곳 20, 9, 1. 2)
   V. 사회윤리
   v) 산상수훈의 윤리와 로마의 정치적 윤리(편지 138, 9ff.)
   w) 기독교 황제의 이상(하나님 왕국 5, 24)
   x) 신앙강요의 정당화(편지 93, 2, 5; 5, 17. 16)
   y) 기독교와 사유재산(요한복음 연구 6, 25. 26, 편지 157, 4, 33과 비교)
   z) 기독교와 노예제도(하나님 왕국 19, 15; 시 124, 7 강해)
92. 펠라기우스
   a) “바울서신 해석”(Expositiones XIII epistularum Pauli)
   b) 어거스틴과의 논쟁 시작(어거스틴, 견인의 은혜 20, 53)
   c) “자유의지론”에서 보는 의지의 자유(어거스틴, 그리스도의 은혜와 원죄 4, 5)
93. 5세기에서 7세기까지의 기독론 논쟁 역사
   a) 네스토리우스의 설교(설교 9. 12[Loofs, S. 262. 280])
   b) 430년 1/2월의 퀴릴이 네스토리우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Schwartz, ACO I, 1, 1,
      S. 25-28)
   c) 430년 6월 15일 네스토리우스가 퀴릴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같은 곳 S. 29-32)
   d) 퀴릴의 네스토리우스 이단판결문(같은 곳 S. 40-42)
   e) 433년 일치신조(같은 곳 I, 1, 4, Nr. 123, 3=127, 5)
   f) 교황 레오가 “플라비안에게 보낸 교서”(같은 곳 II, 2, 1, S. 24-33)
   g) 451년 칼케돈 공의회의 기독론 형식(같은 곳 II, 1, 2, S. 126-130)
   h) 482년 황제 제논의 “헤노티콘(Henotikon)”(에바그리우스 주해, 교회사  3, 14)
   i) 단성론자 맙북의 필록세누스의 신앙고백(Budge, S. XXXV)
   j) 553년 콘스탄티노플의 제 5차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이단판결문(ACO IV, 1, 1971, S.        240-242)
   k) 680/681년 콘스탄티노플의 제 6차 에큐메니칼 공의회 신조(ACO Ser. 2, II, 2,  
      1992, S. 774ff.)
94. 대 레오와 로마교회의 수위권(설교 4)
95.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의 역사(마르가의 토마스, 지도자들의 역사[Budge I, S.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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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일부.......)



1. 고대 로마의 종교(키케로(Cicero), 신들의 본성 2, 8, 72; 내장을 살피는 자들의 보고 9, 19)

기독교 초기 선교는 아무리 팔레스타인 밖이라고 하여도 결코 어떤 종교도 없는 공백지대로 들어간 것이 아니다. “이교도라는 말이 말해주듯이. 오히려 종교적 확신과 제의에 가득 찬 세계로 들어갔던 것이다.”(P. Stockmeier) 그중에는 자기들만의 특징을 가진 로마인들의 종교도 있었다. 그 종교의 특징을 아는 것은 고대 교회의 역사와 신학의 역사를 파악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이유는 기독교를 핍박하던 자들의 종교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특별히 초기 라틴 신학의 특성도 바로 로마식 사고의 전제들, 곧 그중에서 고대 로마의 종교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데서부터 이해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인들만의 종교성에 관한 가장 중요한 증인 중 하나가 키케로(M. Tullius Cicero, 106-143)이다. 특히 그의 글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De natura deorum) 때문이다. 이 글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철학자의 강연(2, 7ff.) 중 한 단락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신의 섭리에 대한 증명, 그 중에서 로마역사의 축복과 패배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2, 8):

그들[곧 두 번에 걸친 포에니 전쟁 때의 그 패역한 로마 장군들]의 파멸에서 깨달아야 할 것은 종교적 명령에 순종한 자들(qui religionibus paruissent)의 통치로 말미암아 공공제도들은 확대되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위업을 남들과 비교한다면, 다른 면에서는 비슷하거나 심지어는 부족한 상태이다. 하지만 종교, 곧 신들 숭배(religione id est cultu deorum)에 관한한 훨씬 앞서 있다.

바로 이 책의 다른 곳에서(2, 72) 키케로는 아래와 같이 말하면서 religio(종교)라는 단어의 어원을 자세하면서도 역사적으로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신들을 숭배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세심하게 생각하며 부지런히 그리고 거듭거듭 묵상하는 자를 “종교적”이라고 한다.”(qui... omnia, quae ad cultum deorum pertinent, diligenter retractarent et tamquam relegerent, sunt dicti religiosi ex relegendo1)

키케로의 말 가운데에 나오는 로마인의 종교적 개념의 여러 요인들과 측면들을 요약하는 데는 그의 “내장을 살피는 자들의 보고(9, 19)”의 아래 발췌문이 적격이라 하겠다:

... 이 거대한 제국이 그들(곧 신들)의 섭리(numen2)로 발흥하고, 성장하고 유지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정도의 정신 상태에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왜냐하면 경건(pietas), 종교성(religio) 그리고 신들의 섭리로 모든 것이 다스려지고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 하나의 지혜에서 바로 우리(로마인)는 모든 민족들보다 우수하기 때문이다.3

원전: W. Ax, Cicero, De natura deorum, BT, 19332 (재인쇄 1961); W. Peterson, M. Tulli Ciceronis Orationes, V. Oxford (1911) 1959. - 참고문헌: K. Latte, Römische Religionsgeschichte, 1960; A. Wlosok,, Römischer Religions- und Gottesbegriff in heidnischer und christlicher Zeit, AuA 16, 1970, S. 39-53 (m. weit. Lit.); P. Stockmeier, Glaube und Religion in der frühen Kirche, 1973; J. H. W. G. Liebeschütz, Continuity and change in Roman religion, Oxford 1979.
1. 반면에 기독교인인 락탄츠는 자기의 책 “신성한 가르침들”(Divinae Institutiones) 4, 28, 2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바르고도 당연한 순종을(iusta et debita oqsequia) 바치며, 그분만을 인정하고, 그를 청종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이 경건한 의무의 사슬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금 그분께 묶여있는 것이다(obstricti deo et religati); 여기에서 바로 종교가 자기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지, 키케로가 해석하듯이 “거듭 묵상(relegere)”에서 온 것이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A. Wlosok, 위의 책 49를 참조하라.) Servius ad Aene. VIII 349도 비슷하게 말하고 있다.
2. numen (nuere에서) 본래 명령을 내리는 “고개 끄덕임”이다. 결국 이것이 로마인들이 선호하는 신의 명칭이라면 이렇게 해석된다: “신은 로마인들에게... 무엇보다도 권능에 찬 의지와 요구이다”(A. Wlosok).
3. 로마의 유일한 종교성에 관한 “가르침(dogma)”에 관해서는 터툴리안의 변증 25, 2를 보라. 여기서 터툴리안은 아래 주장에 반대를 펴고 있다: “로마인들은 최고로 견실한 종교성(religiositatis diligentissimae)에 대한 보상으로 그렇게 위대한 데까지 올랐던 것이다”.

2. 아우구스투스(Augustus)와 그의 “행위록”에서 보는 로마제국의 견고성(res gestae divi Augusti)

수에톤(Sueton)에 따르면(아우구스투스 101)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주전 27-주후 14 Princeps)는 임종 직전 베스탈리스(Vestalis, 아래 각주 9를 보라)들에게 4개의 기록을 남겼다. 그중 “자신의 행적에 관한 일러줌”이 있다. 이 문서의 큰 부분이 복사판으로 남겨졌는데, 앙퀴라-앙카라에 있는 아우구스투스-로마신전(Monumentum Ancyranum)의 현관에 라틴어로, 바깥벽에는 희랍어로 번역되어 새겨져 있다. 부분적으로는 분명히 선동적 목적(공화정의 재도입!)으로 편찬했지만 아우구스투스 행위록에 있는 실제 자료들은 대부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인 계획안에서 옛 종교를 재건하는 것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졌는가도 알려 준다; 나아가서 기독교의 확산이 얼마만큼 그의 치하에서 시작되어 전 지중해 지역을 포괄하는 안정화 과정에 의해서 덕을 보았는지, 또 주제어처럼 되어 버린 “아우구스투스의 평화(Pax Augusta)”가 얼마나 불안정한 구절인지도 가늠하게 한다. - 아래에 있는 발췌한 번역에서는 라틴어 문장이 못쓰게 되어 그것을 그리스어로부터 보충한 것을 표시하지 않았다.

(1) 내 나이 열아홉에(주전 44년)에 내 자신의 결정에 따라 그리고 나의 재정적 능력으로 군대를 일으켰다. 이들의 도움으로 한 당파 아래에서 포악한 통치(dominatio)로 말미암아 멍에를 지고 있는 나라를 다시금 자유하게 하였다. 이 이유로 판자(C. Pansa)와 히리티우스(A. Hiritius)가 통령으로 있을 때[주전 43년] 원로원은 권위 있는 결정에 따라 나를 자신들의 반열에 받아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군사통솔권(imperium)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두 명의 통령이 실각한 바로 그 해에 국가를 견고하게 할 목적으로(rei publicae consituendae) 나를 통령과 3인방1으로 선출하였다.
(3) 나는 바다와 육지와 온 땅(orbis terrarum)에서 다른 민족들과 전쟁을 했던 것처럼 내전도 자주 치렀다. 그리고 승자로서 자비를 간구하는 자들을 살려주었다. 확실히 용서하여 줄 수 있는 이방민족들(gentes)은 없애기 보다는 남겨두었다. 거의 50만 명에 달하는 로마시민들이 나의 군기(sacramentum) 아래 있었다. 그들 중 30만 명 이상을 나는 전쟁이 끝난 후에 식민도시들(coloniae)에 이주시키거나, 혹은 자기들의 공동체(municipia)로 돌려보내고 땅을 주거나 전쟁 참여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주었다...
(5) 마르켈루스(M. Marcellus)와 아룬티우스(L. Arruntius)의 통령시절 내 앞에서 뿐 아니라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백성과 원로원은 나에게 통치권(dictatura)을 부여하였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7)... 나는 최고 제사장(pontifex maximus2), 아우구르3였고, 제사를 관장하는 15명 중 한 명이었고4, 신의 식탁을 관리하는 7인 중 하나였고5, 아르발 형제단의 구성원이었고6, 소달리스 티티우스7와 훼티알이었다8.
(8) 나의 여섯 번째 통치시절 동역자인 아그리파(M. Agrippina)와 함께 로마의 인구조사를 실시하였다... 시민의 숫자는 4.063.000명이었다.
(12) ... 스페인과 고을에 있는 속주들의 모든 것을 정상으로 만들어 놓고 내가... 로마로 돌아 왔을 때[주전 13] 원로원은 나의 귀환을 맞아 마르스 평원에 아우구스투스의 평화(Pax Augusta) 제단을 헌정할 것을 약속하였다. 거기에서 원로원의 명령에 따라서 귀족들, 제사장들 그리고 베스탈리스들이 매년 희생제물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
(15) 로마 평민들에게 나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서 나의 5번 째 통령시절(주전 29)에 모든 남자에게 300세스터스 씩을 주었고, 내 이름으로 400세스터스 씩을 전쟁 전리품에서 나누어주었다... 내가 베풀어 준 이 혜택은 최소 25000명 이상에게 돌아갔다...
(20) ... 나는 여섯 번째 통치시절에 원로원의 결정에 따라서 80개의 신전을 복구하였다. 복구를 필요로 하는 신전은 하나도 없도록 만들었다...
(26) 주변에 우리 통치(imperium)에 굴복하려고 하지 않는 민족들이 있는 모든 속주지역들로 넓혀 나갔다...
(27) 이집트를 로마 민족의 명령권(imperium)에 복속시켰다...
(34)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의 통령 시절, 시민전쟁을 결정적으로 마무리한 이후에, 나는 모든 사람의 일치된 여망에 따라서 최고통수권(potitus rerum omnium) 소유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직책이 가진 권위(potestas)를 가지되, 원로원과 로마 시민의 뜻에 따라서 국가를 떠맡았다. 그리고 이 나의 공로 때문에 원로원의 결정에 따라서 “아우구스투스(Augustus)” [최고의 통치권자] 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아울러 금방패가 율리우스의 회당(청사)에 걸리게 되었다. 곧 원로원과 로마시민이 나의 공의로움(iustitia)과 경건함(pietas) 때문에 나의 용맹(virtus)과 자비(clementia)에 바친 것이다. 이후로 나는 위엄(dignitas)에서는 모두를 능가하나, 권력(potestas)으로는 동료들보다 더 가지지 않았다.
(35) 내가 13번째 통령권을 가졌을 때[주전 2], 원로원, 기사계급 그리고 로마의 모든 백성들이 나에게 “국부(pater patriae)” 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리고 결정하기를 이것을 나의 아버지 집 현관, 율리우스 회당 과 아우구스투스 광장에 있는 원로원의 결정에 의해서 나에게 준 4쌍의 말이 끄는 마차 형상 밑에 새기기로 하였다. 이것을 기록하고 있는 내 나이는 76세이다.

원전: Th. Mommsen, Res gestae divi Augusti, (1865) 18832. - 참고문헌: M. Schade - H. S. Schultz, Ankara und Augustus, 1937 (번역) - A. Alföldi, Octavians Aufstieg zur Macht, 1976; H. Bengtson, Kaiser Augustus, 1981; D. Kienast, Augustus, 1983; ferner die Themenhefte Klio 67, 1985;Historia 34, 1985.
1. “삼두정치 참여”. 레피두스(Lepidus)와 안토니우스(Antonius)와 함께 옥타비아누스가 주전 43년에 결성한 삼두정치는 폼페이우스(Pompejus), 시저(Caesar), 크라수스(Crassus)가 주전 60년 결성한 것에 이어 두 번째로 이루어졌다. “두 번째 삼두정치결성은 결정적인 공화정 몰락이었다”(K. Heussi).
2. 공적이든 사적이든 모든 제의를 관장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로마 사제단의 지배적인 최고 우두머리. 시저와 그의 이후 그라티안(Gratian, 382)까지의 모든 황제가, 주전 3세기부터 로마 백성들에 의해서 종신직으로 선출되는 이 직위를 가졌다는 사실은 이 직책의 중요성과 특별한 명예를 잘 지적해 준다.
3. A.(augere(증가하다) 에서 왔다.)- 왕들과 훗날 공화정에서 귀족들에게 징조(새가 나는 모습과 하늘의 징조를 지켜보며 해석하는)를 가져오는 일을 하는 로마 사제회의 구성원들.
4. 이 “십오인회”는 국가의 최고성지에 보관된 “시빌리(sibylli)”의 운명록과 공식적으로 로마에서 행해지는 모든 제의를 관장하였다.
5. 이들은 “로마식”인 “시민”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9월 13일, 11월 13일) 주피터의 향연을 거행하였다. 하지만 아마도 최고사제(pontifex)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또 다른 제의적인 의무들을 맡아 행하였을 것이다.
6. 원래부터도 있었지만 아우구스투스가 다시 회복시켜서 봄철에 강물이 흐르는 것을 축하하는 제의를 맡은 사제직.
7. 원래는 분명히 아우구르 학예를 행하는데 전념하는 소달 티티우스 형제단도 아우구스투스가 다시 일으켜 세울 때는 거의 몰락되었었다; 그 이후에 그들이 어떤 기능을 행사하였는지는 불분명하다.
8. 훼티알회의 20명은 전쟁을 선포하기 전과 평화조약을 맺기 전에 어떤 예식을 하여야 한다. 공화정 말기에는 모든 의미를 상실하였는데, 아우구스투스에 의해서 잠시 동안 재건되었다.
9. 로마 불의 여신 베스타(Vesta)의 6명의 여사제들을 말한다.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들이며 총 30년에 걸친 입문시절과 사제직을 위해서 처녀로 남아야 만하는 자들로서, 그들은 여신의 신전 근처 광장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최고사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들의 주요임무는 거룩한 도시의 불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다른 많은 옛 로마의 제의기관들과 달리 이 제의는 테오도시우스 1세 때까지 기독교의 승리를 견뎌내며 살아남았었다.

3. 주후 50년경의 농경상황(콜룸멜라(Columella), 농경에 관하여 1권 머리말)

고대문명은 고래로부터 도시생활방식(Polis)에 기반을 두었다. 하지만 기계문명시대가 시작할 때까지의 모든 문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농경은 일반적으로 상업과 생산업를 제치고 가장 중요한 경제분야 였다. 주후 1세기에 농경이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를 당시 지도력 있는 농경이론가 중 한 사람이 펼치는 묘사가 잘 가르쳐 준다.

(1) 거듭 거듭 우리 국가의 지도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듣는다. 곧 논밭의 흉작에 대해서, 또는 벌써 오랫동안 작물을 해치는 기후의 원만치 못함 등... (2) 이 모든 이유들은 내가 확신하건데 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다; 곧 창조자가 영원한 결실능력을 부여한 자연이 결실치 못함과 병이 들었다고 믿는 것은 죄악이다... (3) 그래서 이 모든 것이 하늘이 노해서[혹은: 날씨가 돌봐주지 않아서] (violentia [intemperantia] caeli) 우리에게 이르렀다고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조상들 가운데서도 가장 능력 있는 분들이 최선을 다해서 가꾸었던 농경을 우리가 가장 질이 떨어지는 노예1 및 교수형 당할 자에게 벌 대신 맡겼던 우리 스스로의 책임이다... (20) 그래서 오늘날 “이 라틴, 새턴[Ennius]의 땅”, 곧 신들 스스로가 자기 자식들에게 논밭의 생산성[혹은: 경작]을 가르쳤던 곳에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공식기구를 세우고는 굶어죽지 않으려고 곡식을 물 건너 속주들로부터 수입하고 포도주는 퀴크라드와 베이티스[스페인] 또 고을 지역으로부터 우리 지하실로 옮겨오고 있다2.

원전: Columella, Zwölf Bücher über Landwirtschaft ..., lat. u. dt., hg. u. übers. v. W. Richter, I, 1981. - 참고문헌: M. Weber, Agrarverhältnisse im Altertum, in: ders., Ges. Aufs. zur Sozial-u. Wirtschaftsgeschichte, 1924; M. Rostovtzeff, Gesellschaft und Wirtschaft im römischen Reich, 1931; K. Ahrens, Columella. Über Landwirtschaft (Übers., Einf., Erl.), Schriften z. Gesch. u. Kultur d. Antike 4, 1972; F. Vittinghoff (Hg.), Handbuch der europäischen Wirtschafts-u. Sozialgeschichte, I, 1990, S. 70ff.
1. 이 시대 노예제도와 농경에서의 그들의 역할에 관해서는 N. Brockmeyer, 위의 책, S. 112f.; 아래 Nr. 17도 함께 비교하라.
2. 이에 대해서는 대 플리니우스의 자연의 역사 18, 35를 비교하라: “옛 사람들은 농토소유에는 특히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조금 심고 많이 거두는 것이 더 낫다고도 생각했다... 진실을 고백한다면 대토지경작(Latifundium)이 이탈리아를 황폐하게 했고 이것은 아주 속한 시일 내에 속주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겨우] 6명의 토지소유자들이 네로 황제가 그들을 죽일 그 당시에 아프리카의 반을 가졌었다.”

4. 학문 연구의 감소(대 플리니우스(Plinius), 자연의 역사 2, 117f., 세네카(Seneca), 자선에 관하여 7, 1, 3-7와 비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넓은 지역을 선교적으로 침투하면서 맞닥뜨린 정신적 상태는 헬라 문화의 만개와 비교할 때 눈에 띠게 고갈되어 있었다. 이 현상은 대 플리니우스(주후 79년 사망)가 자기의 훌륭한 책 자연의 역사(Hisoria naturalis, 2, 117f.)에서 통탄한 것처럼 무엇보다도 전문적인 학문분야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117) 이 대상[곧, 바람]에 관하여 20명 이상의 옛 희랍저술가들이 자신들의 관찰한 바를 전해 주었다. 더욱이 내가 놀라는 것은 그 땅이 하나 되지 못하고 다양한 나라, 곧 각각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을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연구하기가 어려운 대상을, 그것도 전쟁 한 가운데서 또 안정되지도 못한 나그네의 신분으로서 연구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도 평화스러운 시기에, 기술적이고 정신적인 진보를 그렇게도 기뻐하는 통치자 밑에서 새로운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아무런 새로운 것을 더하지 못한다는, 곧 옛사람들이 발견한 것들과 근본적으로 걸 맞는 것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118) 그 보상은 발견한 축복의 위대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가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발견자들이 그 발견을 한 것은 후세가 누릴 수 있다는 것 말고 또 다른 대가 때문에 행한 것이 아니다. 도덕적인 이유에서 그 사람들이 노력했던 것이지, 그 어떤 얻게 될 것[에 대한 관심] 때문에 행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모든 바다가 열려 있고 모든 해안에 자유롭게 정박할 수 있기 때문에 무수한 사람들이 항해를 하지만,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지, 학문(scientia) 때문이 아니다1.

원전: K. Mayhoff, C. Plini Secundi Naturalis Historiae libri XXXVII, I, BT, 1906. - 참고문헌: O. Gigon, Die antike Kultur und das Christentum, 1966, S. 34-69; E. R. Dodds, Die Griechen und das Irrationale, 1970, S. 123-140 (많은 문헌도 제시); ders, Pagan and Christian in an age of anxiety, Cambridge 1965 (Nachdr. 1985)도 비교하라.
1. 이 퇴보는 정확히 “지중해의 정신적 환경에서 일어난 일반적 변화의 한 징조에 불과하다”(E. R. Dodds)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철학자 세네카(Seneca, 약 주전 4-주후 65)의 문서도 나타내고 있다. 세네카는 자기의 “자선에 관하여(De beneficiis)”의 7권의 초두에서 교분을 가지고 있는 키닉 철학자 데메트리우스(Demetrius)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전개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언제고 가르치고 사용할 수 있는 소수의 철학의 요점을 가지는 것이 아무 짝에도 쓰지 못하는 넓은 지식을 갖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 그러면서 문자적으로 인용한다: (4) 그[데메트리우스]는 말한다. “가장 훌륭한 씨름꾼은 모든 자세와 재주를 다 가지고도 상대를 쓰러뜨릴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 혹은 다른 것을 용기 있게 또 확실하게 연습하고는 참을성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할 기회를 기다리는 자이다(왜냐하면 이기는데 필요한 것을 충분히 알기만 하면, 그는 자기가 얼마나 아는가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노력(studium)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분명히 기쁘게 하는 일은 많지만 실제로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별로 없다(multa delectant, pauca vincunt). (5) 너도 알고 싶지 않은가: 무엇이 대양의 간조 만조 시간 변화의 원인인가; 왜 항상 일곱 번째 해가 [인생에서] 한 단계 변화하는 해인가...: 알 수도 없고 유익하지도 않은 일을 피하는 것은 너에게 특별히 손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진리가 깊숙이 가려져 있고 숨겨져 있다. (6)... 이와 반대로 우리를 더 고귀하게 만들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자리에 노출되어 있거나 아니면 멀리 있지 않다. (7) 그러니까 우리 정신이 덕에 헌신하고 덕이 원하는 길을 달려 왔다고 한다면 죽음은 악의 원천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악한] 것들의 결말이라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신은 무엇이 유익하고 필수불가결한 것인가에 대한 완전한 지식에 도달하게 된다. 그밖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무의미한 시간으로 이끄는 파괴들일 뿐이다.

5. 주후 64년 네로(Nero) 황제 치하에서의 기독교 박해(타키투스(Tacitus), 연대기 15, 44, 2-5)

네로의 박해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볼 때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향해 행한 첫 번째 박해이다. 이 박해는 로마 시에 있는 공동체에만 해당된 것으로 보이지만, 고래로부터(터툴리안) 첫 번째 사례일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데키우스 황제(Decius, 아래 Nr 34 번) 때까지 로마제국 안에서 기독교인들이 가진 법적 처지의 근원이라고까지 여겨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보아야 하는가는 오늘까지 논쟁이 되고 있다.
세부적으로 볼 때 많은 면에서 불확실하게 전승되고 있고, 해석도 어려운 타키투스의 보고(약 주후 61/62)가 말하는 정황: “우연히 발생했는지 아니면 황제의 책략에서 인지(왜냐하면 이 두 가능성 모두를 원전이 전하고 있기 때문에)...”(연대기 15, 38, 1), 주후 64년 7월 큰 불이 로마의 넓은 지역을 소실시켰다; 즉시로 복구명령이 주어졌고 속죄제의가 거행되었다:

(2) 인간적인 구호나 황제의 하사나 신들에게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도 그 악한 소문은 사라질 줄 몰랐다. 오히려 사람들은 최고 통수권자의 명령에 의해서 방화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소문을 잠재우려고 네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싶어 하였고, 지독한 형벌로 다스렸다. 이들은 배우지 못한 무리들이고, 자신들의 부끄러운 행위(flagitia)1로 미움을 받는 자들인데, 그들을 완고한 자들(Chrestianos)2이라고 부른다. (3) 이 이름은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하였다. 그는 디베리우스 황제때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 하에서 처형된 자이다. 이 때문에 잠시는 억압되었지만 이 패역한 미신(exitiabilis superstitio)3은 다시금 기승을 부렸다. 이번에는 그런데 유대 땅, 곧 이 패역이 시작된 곳뿐 아니라 로마에까지도 나타났다. 곧 온 천하에서 온 각종 폐해와 각종 무리들이 모여들고, 열광적인 동요가 일어나는 곳에까지 말이다. (4) 우선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4 고백하는 자들을 체포하였다. 다음에는 고발에 의해서 엄청난 숫자를 잡아들였다. 이들은 방화보다는 [범법자들로 증명된] 사람들이라는 미움5이 덮어씌워졌다(Igitur primum correpti qui fatebantur, deinde indicio eorum multitudo ingens[,] haud proinde in crimine incendii quam odio humani generis convicti [v.: coniuncti] sund). 이 이유로 처형을 시키면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저주를 몰아내었다: 어떤 사람들은 짐승 가죽을 덮어 꿰매어서는 개들이 물어뜯게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고(또는 화형에 처했다.) 어둠이 찾아오면 밤을 밝히기 위해서 불태웠다. (5) 이러한 쇼를 위해서 네로는 자기 정원을 제공하였다. 또 서커스를 하게하고는 자기가 마부로 변장해서는 군중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거나 경마용 마차를 타고 달리기도 하였다. 그래서 범법을 했고 심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에 대해서 동정심을 일으켰다. 곧 그들이 마치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 개인의 살상에서 얻는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희생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6.

원전: E. Koestermann, Cornelius Tacitus Annales, BT, 19652. - 참고문헌: A. Wlosok, Rom und die Christen, Zur Auseinandersetzung zwischen Christentum und römischen Staat, Der altsprachl. Unterricht, Beiheft 1 z. R. XIII, 1970, S. 7-27(광범위한 참고문헌); J. Molthagen, Der römische Staat und die Christen im 2. und 3. Jahrhundert, Hypomnemata 28, 1970, S. 21-27 (광범위한 참고문헌). - Tertullian이 말하는 (예를 들면, 이교도들을 향하여 1, 7, 8-9) 소위 “Institutum Neronianum”에 관한 논의에 관해서는 J. W. Ph. Borleffs, Institutum Neronianum, VigChr 6, 1952, S. 129-145(독일어 번역: Das frühe Christentum im römischen Staat, hg. v. R. Klein, WdF 267, 1971, S. 217-235를 보라); J. Zeller, Institutum Neronianum, Loi fantome ou réalité, RHE 50, 1955, S. 393-399 (독일어 번역: 같은 곳, 236-243): Ch. Saumagne, Tertulien et l'Institutum Neronianum, ThZ, 1961, S. 334-355.
1. 이에 대해서는 아래 [Nr. 20]을 보라.
2. 이 독법이 이 외에 입증되고 있는 “Christianos”에 비해서 최상의 독법이다. “Chrestiani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천박한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타키투스는 여기에서 아주 뚜렷하게 그렇게 명명하고 있다. 이 명칭은 ‘용감한’, ‘정의로운’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고유명사 크레스토스(Chrestos)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Chrestiani는 그러니까 원래 ‘박카스 숭배자들’이나 이와 비슷한 자들을 말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의미를 가지고 타키투스는 자기를 우리 입장에 세우고는 빗대어 말하는, 곧 아이러니한 유희를 벌이고 있다”(A. Wlosok, 위의 책 S. 9f.). ‘완고한 자들’이라는 표현은 홈멜(H. Hommel, Theologia Viatorum 3, 1951, S. 16f.)에게서 왔다. 다른 해석 가능성으로는 Chrestiani(희랍어Crhstianoi,) = 이오타 형태의 Christiani(Cristianoi,)가 있다.
3. 아래 [Nr. 10]을 참조하라.
4. 그들이 방화를 ‘자백’ 했다고 타키투스가 생각했을 리 없다. 이것을 그의 도입부분(15, 38, 1)과 연이어 나오는 부분들이 말해 주고 있다.
5. 기독교인들 이전에는 특별히 유대인들을 향해 던져진 “인간 혐오”에 관해서는 살전 2, 15의 주석들을 참조하라; 또 A. Wlosok, 위의 책 S. 20ff.(폭넓은 참고문헌 제시)
6. 네로의 기독교인 박해에 관해서 참조하라: Sueton, Nero 16, 2(“기독교인들에게 죽임의 형벌이 내려졌다, 새로운 형태이며 공동체를 위태롭게 하는 미신에 빠진 인종들에게”[genus hominum superstitionis novae ac maleficae]); 클레멘스 1서 5. 6은 이와 반대로 도처에 상투적이며, 또 역사적으로 아주 훌륭하게 제시한다. 반면에 술피우스 세베루스(Sulpius Severus)의 역대기 2, 28, 3-29, 4는 타키투스에 의존하고 있다.








환경과 개발(2006.10.30출판)
마가복음의 예수와 민중(2006.10.15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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