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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연 
 강남순: 페미니스트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신간

강남순
페미니스트 신학
여성.영성.생명



저자 서문:  끊임없는 미완의 지도작성하기...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글쓰기는 사유의 체계가 아니라, 내적 경험의 예상치 못한 분출이라고 한 어느 철학자의 말을 떠올린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란--그것이 논문이든, 에세이든, 시든, 편지이든 간에--나 자신도 예상할 수 없는 나의 내적 세계와 경험, 그리고 갈망의 분출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지금 여기‘ 세계 속의 다양한 층들에 대한 성찰일 뿐 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상이라는 점에서, 쓴다는 것은 저항하고, 생성하고,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다. 나의 삶의 다층적 경험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들과 구상들--이런 것들이 나의 글쓰기가 담고 있는 것들이며, 이 책은 그러한 글들의 모음이다.  




        내가 페미니즘이론을 나의 학문적 분석의 틀로 수용하게 된 것은 미국에서의 유학시절이었다. 한국에서나 독일에서 공부할 때, 나의 학문적 관심은 추상적 문제들에 쏠려 있었다.  대학시절 나는 실존철학에 깊이 매료되었었으며, 실존철학이 제시하는 물음들이 내가 지속적으로 씨름하고 싶은 주제라고 생각했었다. 어설픈 작업이었지만 학부에서 니체의 무신론연구로 졸업논문을 쓰면서 나는 형이상학적 신 죽음의 선언을 통해서 깊은 정신적 해방감을 경험하였으며, 니체 사상의 신학적 의미에 대하여 보다 심층적인 연구를 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실존철학이나 니체의 해체담론에 대한 나의 관심들은 결혼 후 내가 부딪히는 세계와 현실속에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분석의 틀이 되지를 못했다. 나는 두 아이를 낳고 다양한 모습을 지닌 현실세계에 부딪히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않았던 문제들과 매일 매일 씨름해야 했는데, 그 당시 이러한 나의 삶을 들여다 보고 이해할 도구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새롭게 대면하게 된 나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매우 우울한 나날들을 보냈다. 대학시절 가졌던 학문함에 대한 강한 열정을 촉발해주었던 사상들이 새로운 나의 현실속에서 아무런 통찰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나는 별안간 섬에 홀로 남겨진 사람처럼 철저한 고립감을 느꼈다. 이전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 내가 분석하고 해석할 수 없는 세계에 던져진 것 같았으며, 그렇게 새롭게 대면하게 된 나의 현실속에서 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사람들은 물론, 나 자신 조차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 자신과 나의 주변세계를 들여다 볼 분석적 도구가 없었던 나는 더 이상 학문함에 대한  열정이나 갈망을 갖기 어려웠다. 이러한 딜레마들속에 잠겨있던 내가 나의 그러한 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나의 현실에서 내가 매일 매일 씨름하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사실상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보게 된 것은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미국의 대학으로 학교를 옮긴 후 택한 대학원 세미나를 통해서였다.

        성차별 문제가 신학적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나의 삶에서 내가 성차별 때문에 자 자신이 제한된다고 느껴보지도 않았던 내가, 사실상 결혼 이후 대면한 현실은 다층적 가부장제적 제도와 구조였다는 사실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은 한 사람과의 만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제도나 관계의 틀들과 강한 연관을 갖는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 자명한 사실을 한 개인이 자신의 사실적 현실로서 경험하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라는 것은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구나 출산을 하여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주 다양한 사회적 제도와 끊을 수 없는 관계속에 들어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회문화적 제도로서의 다층적 인간관계속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내가 이전에 나에게 구체적인 현실로서 경험되던 세계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별안간 내가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을 통하여 부과되는 다양한 사회문화관습적 틀속에 던져지면서, 이전에 내가 경험하고 인지하던 세계라는 것은 사실상 아주 부분적이고, 피상적이고, 덜 드러난 세계였다는 사실을 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은 페미니즘 이론과의 만남을 통해서 시작되었고, 나는 이 페미니즘 이론들을 통해서 내 세계를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처음 택한 ‘여성신학 세미나’에서 문학, 역사, 심리학, 사회학등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서 쏟아지는 페미니즘 이론들을 접하면서 가졌던 전율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가 매일 씨름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했던 일상적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 나를 우울하게 했던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문제들, 내 책상 앞과 책상 뒤의 세계가 건널 수 없는 커다란 거리가 있다고 느끼면서 더 이상 학문함에 대한 열정을 가지지 못했던 원인들 등 나는 아주 구체적인 나의 매일 매일의 문제들을 해석할 수 있는 도구를 접하게 되고, 그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학문적 주제로 진지하게 다루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마치 오랫동안 굶주려서 배고픈 사람처럼, 분야를 가리지 않고 페미니즘이론에 대한 글들을 읽어대기 시작하였으며, 페미니스트 작가들, 학자들, 이론가들이 쓴 글들은 나의 학문적이며 실존적인 ‘배고픔’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그 오랫동안 나의 내면세계 깊은 곳에 침잠해 있던 앎에 대한 열정을 다시 꺼낼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책상 앞과 책상 뒤의 세계가 주는 문제들이 전혀 다른 것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책상 뒤에서 내가 부딪히고 씨름하는 문제들을 나는 나의 책상 앞으로 모두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학교의 연구실이나 나의 서재뿐만이 아니라, 부엌, 수퍼마켓, 교회, 아이의 학교, 대학 강의실, 학술회의장, 버스나 전철 안--이 모든 나의 삶의 공간들 속에서 내가 보고 부딪히는 문제들을 나는 이제 내 책상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것은 나에게 ‘앎과 삶’이 지녀야 할 강한 연관성에의 요청성을 비로소 보게 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공간과 시간에서의 크고 작은 경험들이 사실상 신학적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간결하게 명명하자면 그것은 ‘지식의 물질성’ (materiality of knowledges)에의 분명한 인식이었다. 즉 내가 페미니즘 이론들을 접하면서 인식하게 된 것,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통해서 나의 삶의 여러 층들을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은 ‘지식의 물질성’에의 깨달음과 요청성이었다. 동시에 거창한 큰 이야기들(grand narratives)과 아주 작은 세세한 이야기들(petit narratives)이 모두 학문적 주제이며 신학적 주제가 된다는 인식은 나에게 나의 현실이나 학문함에 대하여 이전과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였다. 그러한 경험은 더 이상 내가 존재하는 세계와 사유의 세계가 유리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나에게는 새로운 인식론적 해방의 경험이었다. 이전에 나의 사유속에 각인되었던 소위 ‘중요한 주제’와 ‘사소한 주제’의 구별 기준이라는 것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했으며, 누구도 아닌 나 자신 스스로가 그 구별기준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나에게 참으로 커다란 내적 자유를 느끼게 하였다. 이것이 내가 페미니즘과의 조우를 통해서 현실세계를 보다 예민하고 포괄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분석적 시각을 가지게 된 과정이다.

        페미니즘과의 조우를 통해서 내가 새롭게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 보면서, 나는 이 세계속에 다양한 차별구조가 존재하여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내가 인지하든 하지 못하든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반(反)생명적이고 탈(脫)생명적 조건들이라는 사실이었다. 페미니즘이라는 프리즘으로 이 현실세계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사회, 문화, 역사, 정치, 종교 영역속에 무수한 다층적 차별과 배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보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현실을 해체하고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변혁의 과제가 바로 신학함의 의미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굳이 칼  맑스나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신학자 또는 지식인이 이 세계에 대한 단순한 연설자나 해석자가 아니라, 이 세계를 변혁하고 새로운 세계를 기획하는 건설자이며, 구체적 현실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나의 신념은  글쓰기나 가르치는 일이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서툴고 부분적이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것,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이들을 향해 지도 그리기를 하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신학적 글쓰기의 가장 주요한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또 하나의 미완의 ‘지도 그리기’이다. 이 지도를 통해서 나는 이것을 읽는 사람들이 어디를 향해 갈지를 모른다. 그러나 다만 ‘덜’ 차별적인 제도와 의식이 있는 세계, 지금 여기보다는 조금 더 평등하고 자유를 확보해 주는 곳으로 도달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어떤 학문적 ‘작품’을 만드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 누구도 말하지 않은 나만이 지닌 독특한 이야기나 충격적인 담론을 생산하는 ‘학문적 작품’을 만드는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생각이 나는 전혀 없다. 다만 어떻게 글쓰기를 통해서 내가 몸담고 있는 다양한 공동체에서 인식론적이며 실천적인 해방의 지평을 확장하는데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나의 주된 학문적 관심이며 글쓰기의 목적이고, 또한 내가 다양한 사상과 담론들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어떤 사상이나 담론이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주변인들의 삶에 해방적 지평을 확장하는데에 유용한 분석적 틀을 제공해 준다고 생각되면, 나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즉 요즈음 많은 이들이 관심하듯이, 어떤 담론이 나온 지리-문화적 출처나 또는 그 담론의 생산자의 생물학적 성별이 그 담론의 유효성이나 적절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외적 조건들은 그 담론이 지니고 있을 한계들이나 제한성들을 조명하는데에 이차적 참고들이 될 뿐 본질적 기준들이 되어서도 또한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답을 주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며, 사실상 답을 줄 수도 없다. 다만 우리가 익숙하게 몸담고 살아온 현실세계에 깊숙이 뿌리 박은 차별과 배제의 현실, 인간생명을 진정한 생명이도록 하는 자유를 향한 갈망을 억누르고 제한하는 반(反)생명적 제도와 가치를 강요하는 이 현실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문제설정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나는 이 세계의 변화가 새로운 답을 주는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물음을 묻기 시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이전에는 묻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하여 물음을 묻기 시작하게 되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이전에는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상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임을 보기 시작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통해서 갖는 유일한 기대이다.

        나는 이 책을 이제까지 내가 만났던 학생들, 그리고 만나게 될 학생들, 그리고 ‘제3의 공간’에서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바치고 싶다. 나의 학생들은 나의 학문적 사유가 우리의 구체적 삶과 역사적 현실속에 굳게 뿌리내려야 함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사람들이며, 또한 그들이 써내는 글들, 보내는 편지들, 그리고 함께 나누는 토론과 대화들을 통해서 ‘작은 변화가 모여 비로소 커다란 변화를 이룰 수 있다’ 는 이 단순하고 낭만적인 듯 하기까지 들리는 모토를 아직도 내가 붙잡고 있게 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제3의 공간’에 살고자 하는 이들은, 인간을 ‘스스로 그 자체인 존재 ‘ (Sich-zu-eigen-sein)로 만나는 사람들이다. 인간을 규정하는 무수한 이름표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지닌 그 자체의 고유성, 독특성을 보고 그것을 통해서만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 ’제3의 공간‘의 사람들 속에 자유, 평등, 평화의 미래세계의 희망이 있다고 믿고 있다.

     신국판/ 360쪽/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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