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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선생님
 


  한신연(2006-10-20 10:23:33, Hit : 18195, Vote :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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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박사 10주기 추모국제학술심포지엄




안병무 선생 10주기 추모기념행사로 한국신학연구소 주최로 ‘지구화시대 예수·민중·평화’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2006년 10월16일 정동성공회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개최하였다. 민중신학 개척자인 심원 안병무(1922∼96) 박사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안 박사의 민중신학을 중심으로 ‘예수의 사랑과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발제와 토론의 열띤 장이었다. 발제자는 성공회대 손규태 명예교수와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폴케르 퀴스터 교수,일본 성공회 가야마 히로토 사제였고, 사회는 한신대 김성재 교수와 성공회대 최영실 교수가 맡아 안 선생님을 기리는 많은 참석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쳤다. 발제 논문자료집은 한국신학연구소에 문의하면 받아볼 수 있으며 '신학사상' 겨울호(135집) 특집논문에 게재된다.. (02)738-3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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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한겨레신문 보도내용(2006.10.17)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 10주기 심포지엄  

북핵 실험으로 격랑에 휩싸인 한반도에서 기독교와 미국을 다시 보게 하는 국제심포지엄이 열린다. 서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서구신학의 틀을 벗어던지고, 동양의 눈으로, 한민족의 눈으로, 민중의 눈으로 세상과 예수를 보았던 안병무(1922~1996) 박사의 10주기를 맞아서다.

추모 심포지엄은 1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정동 성공회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지구화 시대 예수 민중 평화’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발표자들의 원고를 미리 보았다.

첫 발표자로 나설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의 발표문은 ‘지구화의 두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미국과 기독교의 두 얼굴’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그는 “500년 전 콜럼버스의 항해는 기독교적 세계선교명령과 식민주의 내지는 제국주의적 세계화 의지가 가장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결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콜럼버스 둘째아들의 말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지존하심은 인디오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생필품의 부족과 질병까지도 보내주어 그들의 숫자가 전에 비해 3분의 1로 줄어들게 하셨다. 이것을 통해서 분명해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과 그의 고귀한 뜻을 통해서 그같은 놀라운 승리와 원주민들의 굴복을 가능하게 해 주신 것이다.”

손 교수는 또 문명비평가 커크패트릭 세일이 〈낙원의 정복〉에서 언급한 구절을 제시한다.

“콜럼버스 이래 굴복 당한 다른 대륙의 사람들에게는 서구의 언어와 의복뿐만 아니라 가치관과 관습들이 강요된다. 콜럼버스 이래 유럽의 것은 문화라면, 다른 대륙의 것은 민속이고, 유럽의 것이 종교라면, 다른 대륙의 것은 미신이고, 유럽의 것들은 언어라면, 다른 대륙의 것은 방언이며, 유럽의 것이 예술품이라면, 다른 대륙의 것은 민속품이 되었다.”

그는 “1960년엔 세계인구 20%의 복지국가들이 가난한 20%의 국가들보다 개인소득이 30배 많았으나 세계화로 인해 지금은 약 80배가 많아졌다”며 “세계화는 민중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나타나고 있으며, 콜럼버스는 세계화를 통해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맘몬(돈신)이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일본 성공회 사제인 가야마 히로토 신부도 발표문에서 “서구 사회에 의한 기독교는 제국주의와 결탁하고, 메시아니즘은 제국주의적으로 해석되어 전개되었다”며 “유일신교의 제국주의적 해석인 미국의 세계전략은 ‘인권 외교’와 ‘대테러전쟁’이란 말에서처럼 ‘세계의 경찰’을 넘어서 ‘제국주의적 메시아’로서 세계에 군림하려 하고 있다”고 보았다.

폴커 퀴스터 교수(독일 하이델베르크대)는 발표문에서 안병무를 탈식민지시대의 신학을 앞질러간 신학자로 평가했다. 그는 특히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민중조차 특정한 틀에 묶어둘 수 없는 것으로 보며, 끝없이 열린 마음으로 신학을 했던 그 자세야말로 안 박사가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유산”이라고 꼽았다.

안병무, 강원용 목사 등과 활동해온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는 발표문에서 ‘민중과 평화’를 주제로 삼았다. 그는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 십자군 전쟁식 평화로 추구하는 ‘정의로운 전쟁론’이 지배하며 ‘이라크 침공 전쟁’에까지 이르렀다”면서 “특히 북핵 실험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서 ‘정의로운 전쟁론’의 근거와 현실 적응을 평화신학과 운동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목사는 또 “안 박사는 민중의 주체적 평화 만들기 참여를 통해 ‘민에 의한 통일’을 내세웠지만, 공산주의가 말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실제 파워 엘리트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름을 악용한 독재였을 뿐 ‘민’은 없었다고 보았다”며 “진실로 자유할 수 있고, 정의롭게 살 수 있는 ‘민주주의 체제’에서의 민과 민중의 자발적 참여가 담보된 평화와 통일을 주창했다”고 밝혔다.

안 박사 추모예배는 19일 오전 1시 경기도 마석모란 공원 묘지에서 있다.  

한겨레신문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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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안 보도내용(2006.10.20) 발췌

지구화 시대의 민중신학을 위하여  
민중신학자 안병무 추모 10주기 국제학술심포지엄을 다녀와서  

정강길 위원 minjung21@paran.com

  
안병무 추모 10주기 학술심포지엄의 발제들

“산 자가 죽은 자를 전유한다”는 말이 있다. 화이트헤드가 말한 존재론의 <객체적 불멸성> objective immortality 이란 개념도 바로 그런 것이다. 안병무는 죽었어도 그의 사유는 남아 있는 자들의 사유에 의해 끊임없이 <객체화>objectification된다. 그러한 점에 있어 이미 안병무는 불사적 존재다. 그 사례의 하나로서 심원 안병무 선생 10주기 추모 국제학술심포지엄인 <지구화 시대 예수ㆍ민중ㆍ평화>가 10월16일 한국신학연구소 주최로 성공회대성당 프란시스 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손규태 교수는 「지구화 시대 예수ㆍ민족ㆍ민중」이라는 글에서 자본의 지구화로 인한 피폐된 민중적 삶의 현실을 말한다. 그러면서 민중의 삶의 고통의 원인을 자본이라는 맘몬의 자유를 풀어놓은 데서 시작했다고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 문제를 분석한다. 그는 특별히 루터의 사상을 거론하면서 루터를 비롯한 기존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외적 인간의 지평 사회 정치적 영역을 상실한 내적 자유이며 그로 인해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원론적 관점에서 나온 것임을 짤막하게 말하고 넘어갈 뿐, 그 이상의 분석과 대안으로까지 나가진 않고 있다.

독일에서 온 폴커 퀴스터 교수는 「예수와 민중을 다시 생각해보기」에서 안병무와 그의 신학을 평가하고 있다. 그는 안병무가 불트만과 독일 신학계를 극복하면서 역사적 예수와 역사의 민중을 고난과 고통의 신학을 통해 만나도록 하였으며, 수기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안병무는 탈식민주의 신학을 앞질러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쾨스터의 언급은 오늘날의 상황에서 상황신학인 민중신학이 오픈 시스템이라고 할 경우에도 어떻게 재구성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하게 남겨두고 있다.

박종화 목사는「지구화 시대의 민중과 평화」라는 글에서 안병무의 신학이 ‘평화신학’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세계화에선 시장경제가 환경과 공생할 수 있는 인간 중심의 시장경제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전반적으로도 그의 언급은 매우 두리뭉실한 감이 없잖아 있다. 그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논의들이다. 예컨대,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라는 식의 언급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듯이, 그의 평화나 통일 혹은 세계화에 대한 언급들이 대체로 그런 식이다.

(그는 특별히 보수와 진보가 합의되는 지점을 인도주의적 차원이라고 했는데, 보다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이 부분은 물량지원과 사회복지의 차원일 것이다. 보수측도 이 부분에선 나름대로 열려 있는 면이 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인도주의를 신본주의와 반대되는 <인본주의>로서 이해하는 맥락도 있어서 그럴 경우 그같은 휴머니즘조차 하찮게 혹은 부수적으로 여김으로 인해 경시되는 측면도 또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온 가야마 히로토의 「민중신학ㆍ지구화ㆍ일본」에서는 민중신학을 탈신학화하여 탈식민주의 신학의 도구로서 더욱 날카롭게 갈고 다듬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의 일본을 분석하면서 최근 일본사회를 상징하는 말로 ‘하류(下流)사회’를 언급한다. 일본은 1970년대 이후에는 소득 격차가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를 일컬어 ‘격차사회화(格差社會化)’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구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인간 생활의 차원에서의 특수와 보편, 부분과 전체의 연속성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다.

지금까지 기존 민중신학의 유용한 효과성이 나타났던 지점은?
    

▲ 안병무 추모 10주기 학술심포지엄

전반적으로 이 날 논의된 것들은 그동안 기존 민중신학의 논의들과 비교해볼 때도 안병무를 기념하는 정도이지 죽어가는 민중신학을 제대로 다시 살려내는 그 이상의 자리는 못되었다고 본다. 그런 자리에 가면 으례히 듣는 레퍼토리들 있잖은가. 물론 민중신학을 옹호하는 많은 이들은 오늘날 지구화 시대에도 여전히 억압과 고통의 현실과 이로 인한 민중이 있기에 민중신학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곧잘 말들은 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같이 당연시되는 명제에도 퀘스천 마크를 붙이고 싶다. 사실 민중신학은 지금까지 민중 현실을 변혁하는 운동에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기여를 해왔었던가?

예컨대, 민중신학이 자본의 지구화 흐름에 있는 한미 FTA 문제나 미제국주의 정책들과 관련한 북핵 문제에 대해 효과적인 대안들을 줄 수 있는가? 즉, 민중신학은 일반의 진보적인 사회운동에 분명한 기여를 해왔었는가? 애초에 민중신학의 효과는 어디에서 나타났었던가? 그리고 민중신학은 왜 죽어갔었고, 왜 다시금 불러내고 있는가?

솔직히 곰곰히 생각해보면, 민중신학이 지금까지조차 효과적이었던 지점은 사회 일반의 민중운동에 대한 직접적 기여라기보다 실제로는 종교 영역에 있던 보수진영의 기독교인들의 시각을 새롭게 일깨워줬다는 점에 있지 않나 싶다. 오히려 이 부분이 훨씬 더 컸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점은 현재까지도 일부 보수 진영이나 개혁적인 복음주의 진영에서 한국의 민중신학에 관심을 보이는 현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민중신학은 민중사건을 증언하는 신학이라고 한다. 이때 그 사건을 누구에게 증언한다는 것인가? 내가 보기엔 그 증언의 대상이 그나마 기존의 보수 기독교인일 때 보다 효과적이었던 점이 있었지 그 외에는 민중신학의 효과성을 발견하기란 매우 힘들지 않았나 싶다. 아주 엄격하게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간혹 간접적인 기여는 있을 수 있겠다. 예컨대, 보수 기독교인이 민중신학으로 인해 사회과학적 시각까지 확보하면서 아예 민중운동에 투신하는 경우들이 그러한 사례가 되겠지만, 실제로 민중신학이 일반 사회의 민중운동에 탁월한 효과를 줬었다고 보긴 힘들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일반사회의 민중운동을 보면 훨씬 더 뛰어난 이론가들과 운동가들이 이미 포진하고 있는 실정이잖은가.

게다가 민중신학의 그러한 효과성도 한계에 봉착한 것도, 기존 민중신학이 여전히 <탈신학/반신학>을 지향함에 있어 궁극적으로는 종교 영역과 사회 일반 영역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일관된 통전성을 가지기 힘들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탈신학 혹은 반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이란 것은 그저 기독교 신학의 언술을 통한 <비판/저항 담론>의 기능으로서 제시되고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이는 궁극적으로 온전한 대안을 지향하는 종교적 차원의 지평과는 거리가 있다.

예를 들면, 그동안 민중신학이 민중의 하나님, 약자의 하나님을 말했다지만 실제로 그것이 어떤 신관인지는 여전히 모호한 채 매우 무신론적인 신 이해에 가까울 뿐 서구의 주류 보수신학이 가진 초월신론과 어떻게 다른지는 분명하게 다뤄지지 않았었다. 그저 프락시스의 범주에 갇힌 신 이해로서 얘기된다. 따라서 그것은 여전히 모호하게 남아있다.

어떤 면에서 기존 민중신학에서 볼 때,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말하기보다 <신에 대한 담론>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것이 신 존재를 부여안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종교의 자리를 민중신학이 거의 탈각시켜버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동안 <민중교회>가 민중신학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매우 가혹한 비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결정적 지점은 바로 종교현장과 사회현장의 두 가지 차원을 기존의 민중신학자들이 제대로 통합시켜내지 못한 점에 있다 고도 볼 수 있겠다. 민중신학은 언제나 이를 과제로서 남겨두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1세대 때부터 언제나 과제였다. 그것은 지금까지조차도 여전히 걸리적거리는 모호성으로서 남아 있는 것이다. 그 같은 모호성은 어떤 면에선 장점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뿌리깊은 미해결로 인해 발생되는 연쇄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내가 보기엔 민중신학도 마찬가지로 기존 기독교 신학에 대한 <반신학/탈신학/상황신학>을 넘어서 아예 <재신학/대안신학/보편신학>으로서의 역할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고 본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기존 민중신학은 그저 특수신학으로서 자족하고 그런 협애한 자족으로 인해서 또한 끊임없이 민중신학은 헤매임과 정체를 계속적으로 겪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보기엔 근래에 기존 민중신학 진영이 <교회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언급들이나 자리들을 많이 연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궁여지책의 행사들로 보인다. 이전에 민중신학이 교회에서 탈(脫)하는 흐름을 지지하던 신학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결국 민중신학도 종교현장이라는 교회의 필요성을 인식해서인가?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를 극복하는 기획

민중신학이 한국의 상황에서 나온 신학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민중Minjung의 그 뜻은 한국사회의 민중을 가리킬 것이다. 오늘날 다원화된 사회에서 파악되는 그 민중은 매우 다양하다. 어린이, 청소년, 여성, 농부, 장애인, 동성연애자, 노인, 병자 등등 그리고 이것은 또한 세계적일 것이다. 민중은 이라크에도 있고, 인도에도 있고, 북한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고 심지어 따지고 보면 미국에도 있을 것이다.

세계 안에는 여러 특수한 상황들이 있다. 그럴 경우 한국의 민중신학이 지닌 일반성의 범주를 도대체 어디에까지 한정할 것인가? 만일 민중신학을 그저 특수한 상황들에 한정할 경우 -설령 그것이 중범위 정도라고 해도- 그것은 분명한 한계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 민중신학이 이제 지구화 시대를 다룬다고 하면서 어찌 한정된 특수성에만 자족하고, 국지적인 상황신학에만 안주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그것은 지구적 보편성을 포기함으로서 기존의 주류 보수신학을 대체하는 대안의 역할을 온전히 기대하긴 힘들 것이라고 본다. 그 보편성도 근대적 보편성이 아닌 <오류와 비극에는 겸허한 최선의 보편성> 이라면 그나마 우리에게서도 최선의 것으로서 삼을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현재 민중신학을 주류 담론에 대한 제한적인 비판적 기능으로서 자족한다면야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결국 오늘날의 상황에서 민중신학은 모든 지구적 문제들과 관련하는 <지구신학>이면서 약자인 민중을 우선시하는 신학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한다면, 이제 민중신학은 <세계 안의 다양한 인간군상들과 약자들을 위하는 지구적 보편신학>으로 도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참고로 여기서 나 자신이 제시하는 <보편성>이란 그 어떤 절대불변적인 성격을 말한 것이 아니라 다른 말로 하면 기껏해야 그것은 <지구성>을 의미할 뿐이다).

행여 우리네 보편성 추구가 당대성 혹은 상황성을 배제해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거대 담론의 횡포요 폭력이며, 이미 <거짓보편성>일 뿐이다.  그같은 거짓보편성의 신학이 바로 기존 기독교의 주류 보수신학이요, 그것은 자본과 제국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제국의 신학>인 것이다.

민중신학은 이 모든 다양성과 특수성들을 가능하면 일관된 통합으로서 꿰뚫어낼 줄 알아야 한다. 가능한가? 이 불가능한 도전조차도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기획해나갈 때 유효한 효과가 있다고 본 사람이 바로 사상가 화이트헤드였다. “불가능한 도전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도전을 하지 않기에 불가능할 뿐이다”(심형래?)라는 말이 있다. 화이트헤드는 바로 그 불가능한 기획에 도전하는 그 과정 자체가 창조적 문명에 유효한 효과를 준다고 보았던 사람이다.

그 기획은 존재론의 기획부터 다시 검토하고 시작해서 새롭게 건설하려는 <새로운 기독교>다. 앞서 손규태도 그 자신의 글에서 기존 그리스도교가 보는 자유 개념의 한계가 <이원론>에서 비롯된 것임을 짤막하게 언급하고 지나간다. 사실 우리 안에도 부지불식 간에는 이미 이 문제의식을 접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러한 점은 이미 안병무도 그랬고, 서남동도 그랬었다.

이들은 서구 기독교를 얘기할 때면, 흔히 쓰는 상용구처럼 "서구 기독교의 관념론적 병폐~" 라는 표현들을 입버릇처럼 내뱉곤 했었다. 즉, 그것은 민중신학자들이 보기에도 서구신학은 존재론의 대한 기획부터가 애초 틀려먹었음을 부지불식 간에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 기독교란, 곧 이원론이라는 존재론의 기획이 최종적으로는 실패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그것은 이제 다가 올 문명에서는 점점 더 뚜렷이 몰락해가는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안병무 다시 객체화하기 : 총체적 위기의 시점에서 민중신학이 새롭게 나갈 길은

    

▲ 안병무를 총체적으로 다시 객체화하기

따라서 민중신학이 21세기에 제대로 살아남고자 한다면 보다 구체적이고도 정합적인 새로운 신학방법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안병무 때부터도 이를 해내지 못하고 모호하고 남겨두고 만다. 그저 민중신학의 해석학은 ‘민중의 관점' 혹은 ‘고난받는 사람들의 입장’이라는 정도만 기껏 언급될 뿐이다. 안병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특별히 어떤 방법론이나 해석학을 따로 갖고 있지 않다. 애초에 우리는 새로운 학파를 시작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냥 살아가기를 원했다.... 나는 항상 위에서부터 사물들을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아래서부터 사물들을 생각한다. 나는 항상 지적으로 따져 왔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민중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물론 여기서 그 '민중의 삶(민중의 눈)'이라 표현이 설사 틀리진 않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구체성이 떨어진 모호한 언급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안병무를 그 기초부터 다시금 객체화 할 필요가 있다(개인적으로는 조직신학의 입장에서 볼 땐 서남동의 신학이 더 매력이 있긴 하다. 앞으론 <서남동 다시 읽기>도 보다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기존 민중신학은 바로 이 뿌리깊은 모호함의 안개를 걷어내고 보다 구체적이고도 정합적인 신학방법론이 간구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어차피 모든 경험에는 피할 수 없는 형이상학이 깃들어 있다고 할 때, 이원론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해석학적 존재론(형이상학)에 기반한 기독교야말로 보다 튼튼한 민중신학을 위한 출발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 해석학적 패러다임의 전환 및 기초공사야말로 실질적인 출발이다. 그것이 바뀌면 모든 게 뒤바뀌어지는 초석을 얻게 된다.

나로선 앞으로의 민중신학의 미래를 위한 핵심 관건과 과제는 바로 이것일 때 그나마 제대로 살려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보수 진영의 위치에서 볼 때는 아직도 진보 진영의 민중신학은 여전히 통찰력 있는 새로움일 게다. 열린 신앙인들이라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전히 민중신학에 관심하기도 할 것이다. 지금도 이들에게만큼은 어느 정도 기존 민중신학의 유용한 효과성이 확인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오늘날의 민중신학이 그 이상을 넘어 더 진도가 나가고 발전한 모습은 냉정하게 말해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그것은 일반 사회담론으로서 뻗어나가긴 쉬웠어도 교회 안에 자리하기란 여전히 힘겹고 어려울 따름이다. 이는 민중신학이 꼭 교회에 자리해야만 발전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교회와 사회에 대한 일관된 통합의 실패를 말한 것이다. 1세대의 가슴 떨린 그 발견 이후 민중신학을 계승했던 학자들은 도대체 얼마나 이를 제대로 뛰어넘고 있는가?

우리는, 민중신학이 그저 한때 반짝했던 과거의 신학으로 기억되는 이유를 계속 민중신학의 외부탓으로만 돌릴 순 없을 게다. 솔직히 민중신학이 죽었니? 살았니? 하는 논의 자체가 나오는 것도 실은 <민중신학 자체의 위기>로서, 아니 <진보 기독교 진영 전반의 위기>로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부분도 곰곰히 생각해보라. 정말로 이 두 가지 사항은 맥을 같이 해왔잖은가. 현재의 진보 기독 진영 역시 위기를 느낄 만큼 그 역량들이 과거에 비하면 뚜렷하게 퇴보한 실정이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민중신학은 한국 사회를 위기구조로서 읽기 이전에, 이미 자신이 처한 <이천 년 기존 기독교 전반의 위기>부터 새롭게 읽어내고서 21세기 <지구화 시대의 기독교>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신학을 혹은 교회를 탈(脫)하고 반(反)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잖은가. 즉, 나로서는 기존 민중신학이 바로 그 <틀>자체부터도 이제는 새롭게 넘어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바야흐로 민중신학이 죽어야 민중신학이 사는 시점에까지 이르렀지 않았나 싶다.

정길강 위원
에큐메니안 편집위원, 세계와기독교변혁을위한연대 기획실장 및 생명평화기독연대 신학위원장. 저서로는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이 있다. 홈페이지 http://freevie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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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보도내용(2006.10.16) 발췌

"안박사는 끝없이 열린 마음의 신학자"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1970년대 '민중신학'을 대표하는 안병무(1922-1996) 전 한신대 명예교수의 10주기를 기념하는 국제 학술심포지엄이 16일 오후 서울 성공회대성당 프란시스 홀에서 열린다.

'지구화시대 예수ㆍ민중ㆍ평화'를 주제로 열리는 심포지엄에서는 '민중'이라는 용어를 신학 해석의 핵심 틀로 사용하며 영적 구원 보다 정치적 구원이 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안 박사의 민중신학을 조명하는 논문들이 발표된다.

첫 발표자로 나서는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는 미리 배포한 '지구화시대의 예수'라는 논문을 통해 "콜럼버스 이래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언어와 의복 뿐 아니라 가치관과 관습까지 서구의 것을 강요받아왔다"면서 "오늘날 세계화도 민중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순전히 영적 혹은 내적 자유가 아니며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자유"라고 설명하고 "삶의 전반적 해방을 목표로 하는 자유는 저항과 복종(고백)을 두 축으로 하며 돌고 전개된다"고 주장했다.

폴커 퀴스터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교수는 논문 '예수와 민중을 다시 생각해 보기 : 안병무가 남긴 것'을 통해 "안 박사는 20세기 한국 신학계를 주도한 사상가였으며 서구 문명 특히 독일 신학계의 전통과 한국 기독교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평했다.
그는 "안 박사는 마가복음 연구를 통해 독일 신학계에서 간과한 민중(오클로스)을 중심에 세우고 민중에 대한 예수의 무조건적 사랑을 강조했던 사람"이라며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롭게 신학하는 길을 걸어간 자세야말로 안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유산"으로 꼽았다.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 목사도 '지구화시대의 민중과 평화'라는 글에서 "민중신학이 출범하던 당시 한국 상황은 기본권이 유린되고, 특히 민중의 가장 기초적 생존권마저 짓밟히는 상황이었다"며 "당시 민중신학은 사회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다만 "민중신학이 민중의 문제를 신학화하던 당대의 상황이 더 이상 거대한 실체로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환경 정의와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성공회 사제인 가야마 히로토 신부도 "민중신학의 본질적 요소는 '탈서구신학'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독교는 선교, 전도라는 이름으로 패권주의적 팽창주의를 실천해왔고 지금 세계 각지에서는 친미적 민족국가주의가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아시아의 상황신학을 대표하는 민중신학을 바르게 탈신학화해 탈식민주의 신학의 도구로 날카롭게 갈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안 박사 추모 예배모임이 19일 오전 11시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소에서 열릴 예정이다.

jslee@yna.co.kr









출판예정 책 소개-현대성서학 연구: 난외(欄外)의 전망
출판 예정 책 소개(마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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