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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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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연 
  신학사상 2013년 겨울호(163집) 차례


이번 호에는

구약학 분야에서 박혜경 대만 장영대 교수의 “잠언 8장의 여성지혜와 안병무의『선천댁』에 대한 해석학적 대화” 논문을 게재했는데, 이 논문은 신(新) 양식비평학을 사용하여 잠언 8장과 안병무의 『선천댁』에 대한 해석학적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두 본문을 공시적, 통전적 해석으로 비교할 때, 우리는 여성과 지혜라는 합류점에서 만나게 된다. 이 합류점은 성서를 읽는 독자에게 해석학적 이해을 위한 전거를 제시한다. 잠언 8장의 여성 지혜와 『선천댁』은 시간과 공간을 달리 하는 본문들이지만 여성이 지니고 있는 지혜라는 공통된 전거로 한국 여성들을 위한 두 이야기의 합류를 보여준다. 여성과 지혜라는 담론을 지니고 있는 두 본문은 성서의 지혜 전승과 한국 여성의 지혜 담론의 합류를 드러내어 해석학적 대화를 보여준다.  

신약학 분야에서 협성대의 황현숙, 신동욱 두 교수가 공동연구 한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대한 이해”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는 성경의 다른 책들과 달리 기독론적으로 확장되어 사용되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별히 예수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이 아니라 Pax-Romana의 살인적인 현실에 대해 저항하다 살해당한 어린양으로 묘사되었고, 예수의 죽음이 Pax-Romana의 폭력의 역사를 중단시킬 수 있는 저항을 의미하며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신앙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규정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이 선포되는 예배의 기능을 불의한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이해한다.  

조직신학 분야에서 조현철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의 “구제역(口蹄疫)의 회상과 공장식 축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란 논문은 2010년 말에서 2011년 초에 구제역 예방으로 300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가 살처분(殺處分)된 것에 대한 생태신학적 성찰을 하고 있다. 이 참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날 성행하는 공장식 축산이 창조주 하느님의 피조물인 가축의 사육 방식으로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 글은 이 물음에 대한 신학적 응답의 노력이자, 그리스도인들이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암묵적인 이해를 검토해보길 요청하는 초대이다.
    
기독교윤리 분야에서 강원돈 한신대 교수는 “제10차 WCC 부산 총회 공식문서「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 행동의 촉구」에 대한 사회윤리적 분석과 평가”라는 논문을 통해 WCC「문서」가 가난과 부와 생태계 보전의 문제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불가분리적 관계에 있다고 파악하고 총체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문서」가 가난과 부와 생태계 위기의 연관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설명체계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데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관점에서 에큐메니칼 사회윤리가 더 숙고하여야 할 세 가지 의제, 1) 노동과 자본의 제도적 권력균형에 바탕을 둔 경제민주화의 실현 방안, 2) 대안적 복지체계로서 유연한 시민권에 바탕을 둔 기본소득의 도입, 3) 사회적 가난과 생태계 위기의 연관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분석 등을 제시했다.


이혁배 숭실대 겸임교수는 “나카자와 신이치의 경제적 성령론”이란 논문에서 인류학에서 신자유주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적 교환 대신에 증여를 대안적 경제양식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일본 인류학자 나카자와의 ‘순수증여’에 대해 연구했다. 나카자와에 따르면 순수증여는 증여의 고리와 교환의 고리 밖에 존재하면서 그것들에 끼어들거나 그것들을 끊어냄으로써 경제영역 전체를 움직인다. 순수증여는 교환이나 증여와 관계하면서도 그것들을 넘어서는 내재적 초월의 양식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순수증여를 시행하는 순수증여자를 기독교의 성령과 동일시한다. 나카자와는 순수증여자로서의 성령이 증여의 양식과 접촉할 경우 영적인 풍요로움을 가져오지만 교환의 양식과 맞닿을 경우는 영적인 황폐함을 불러온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그는 경제제도가 건강해지기 위해서 증여의 양식이 보다 널리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상담학 분야에서 최광현 한세대 교수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 근친상간에 대한 긍정심리학적 목회상담에 관한 연구”를 했는데, 이 논문은 최근 근친상간의 경험을 수기 집으로 발표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에서 제시하고자 했던 여러 주제 중에 트라우마에 대한 해결적 접근을 연구한 것이다. 근친상간의 트라우마만큼 한 인간을 철저히 파괴하는 트라우마도 없지만 근친상간의 고통에 대해 기존의 치료적 가설과 의미체계가 갖는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긍정심리학적 접근을 제시한다. 트라우마에 대한 긍정심리학적 접근은 목회상담 안에서 영혼 돌봄의 중요한 차원으로 사용되어 왔던 인간의 고통과 그 의미에 대해 치료적인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있다. 긍정심리학적 목회상담은 상담자가 일방적으로 원인을 분석하여 결과를 얻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내담자가 가진 문제 자체로 돌아가서 내담자가 가진 긍정의 자원을 스스로 드러내도록 촉진시킴으로써 트라우마에 대한 의미체계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선교학 분야에서 방연상 연세대 교수는 “현대 신학 담론에 대한 ‘트리컨티넨탈리즘’의 도전”이란 논문에서 기독교 선교의 결과로 비서구 지역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세계 기독교에 대한 논의 및 이해를 포스트 식민담론 (postcolonial discourse)을 통해 모색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기독교 선교의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방 교수는 포스트 식민주의 담론을 해석의 도구로 사용하여 새로운 인식체계와 구조를 제안하고, 존재론과 본질론에 내재되는 폭력성을 지적하면서, 포스트 식민주의 담론을 통한 ‘혼종적 혹은 디이스포라의 정체성 정치’를 제안한다. 이는 정체성을 투쟁과 저항의 도구로써, 한편으로는 조합과 대화, 그리고 연대의 도구로 사용하여 이를 윤리적인 주체의 원동력으로 제시할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저항과 대안의 담론으로 트리컨티넨탈신학을 제안한다.

기독교교육 분야에서 백은미 이화여대 교수는 “예언자적 지혜와 돌봄을 위한 부모교육”이란 논문에서 오늘의 시대에는 부모들이 기독교적인 가치와 신념에 근거하여 올바른 양육신념을 형성해야 하는데, 특히 예언자들의 지혜와 돌봄에 대한 배움을 통해 성숙한 부모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부모교육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네 가지 주요과제를 제시한다. 첫째, 부모교육은 부모들이 자녀들과 정의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자녀들과 함께 올바른 선택과 행위를 만들어가는 정의로운 돌봄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둘째, 부모교육은 부모들이 자녀들과의 공감적 대화와 연민의 행동을 통해 자녀들의 공감능력을 키워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셋째, 부모교육은 부모들이 소유욕과 탐욕을 버리고 단순한 삶이 주는 여유와 행복을 배우도록 돕고, 자녀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도록 도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모교육은 부모들이 예언자들과 예수가 꿈꾸고 가르쳤던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배우고, 이를 통해 현실을 변혁할 힘을 얻는 예언자적 상상력을 자녀들과 더불어 키워가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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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

이번 호에 실린 신학 각 분야 논문들을 보면 한국의 신학자들이 과거 주지주의 신학에서 벗어나 변화된 시대인식에서 구체적인 인간 삶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성찰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려는 진지한 노력들이 보인다. 이런 신학자들의 노력은 위기에 처한 한국기독교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을 주창하며 출범했던 박근혜정부가 1년이 다되어가는데, 이런 국민에 대한 약속과는 정반대로 국민적 갈등과 분열이 더 증폭되고, 국민들은 경제적 고통과 안보불안으로 더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에게 다른 미련이 있을 수 없을 텐데 왜 초심과 국민에 대한 약속을 저버릴까 하는 의문을 갖는 것은 순진한 것일까?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더 무거워지고, 자유와 정의와 평화가 종북이란 스티그마에 갇혀 신음하는 우리사회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크게 주님의 성탄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외치며 찬양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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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163집)              

연구 논문

박혜경 ․ 잠언 8장의 여성지혜와 안병무의『선천댁』에 대한 해석학적 대화
황현숙, 신동욱 ․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대한 이해
조현철 ․ 구제역(口蹄疫)의 회상과 공장식 축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성찰
강원돈 ․ 제10차 WCC 부산 총회 공식문서「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 행동의 촉           구」에 대한 사회윤리적 분석과 평가
이혁배 ․ 나카자와 신이치의 경제적 성령론
최광현 ․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
         근친상간에 대한 긍정심리학적 목회상담에 관한 연구
방연상 ․ 현대 신학 담론에 대한 ‘트리컨티넨탈리즘’의 도전        
백은미 ․ 예언자적 지혜와 돌봄을 위한 부모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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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1

   제10차 WCC 부산 총회 공식문서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 행동의 촉구」에 대한 사회윤리적 분석과 평가*


                                                                                          강원돈 (한신대 교수/ 기독교사회윤리)



초록

  이 논문에서 나는 제10차 WCC 부산 총회는 1983년 밴쿠버에서 열린 제6차 WCC 총회에 공식문서로 제출된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 – 행동의 촉구」라는 문서(이하 「문서」)를 분석하고 평가하고자 했다.
  먼저, 나는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역사를 배경에 놓고서 「문서」의 형성과정과 내용을 분석하고, 이 문서가 거둔 성과를 평가했다. 「문서」는 1)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역사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과 정의를 부각시켰던 JPSS 패러다임과 생태계 위기의 극복과 평화의 실현을 인류 공통의 문제로 강조하였던 JPIC 패러다임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서 두 패러다임의 통합을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보여주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2) 「문서」는 지구화 시대에 점점 더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는 가난과 부와 생태계 보전의 문제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불가분리적 관계에 있다고 파악하고 총체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문서」가 가난과 부와 생태계 위기의 연관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설명체계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데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 다음, 나는 지구화 과정에서 사회적 양극화와 극심한 생태계 파괴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관점에서 에큐메니칼 사회윤리가 더 숙고하여야 할 세 가지 의제들을 제시하고, 이를 「문서」의 후속작업으로 수용할 것을 제안했다. 1) 노동과 자본의 제도적 권력균형에 바탕을 둔 경제민주화의 실현 방안, 2) 대안적 복지체계로서 유연한 시민권에 바탕을 둔 기본소득의 도입, 3) 사회적 가난과 생태계 위기의 연관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이 그것이다.

주제어:
가난, 생명, 생태계 위기, 에큐메니칼 사회윤리, 정의, 평화, JPSS, JPIC




1. 머리말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주제로 열린 제10차 WCC 부산 총회는 1983년 밴쿠버에서 열린 제6차 WCC 총회 이래 세계 교회의 화두가 되어 왔던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 세 가지 개념들의 논리적 관계와 실천적 관계를 가다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WCC 부산 총회에 공식문서로 제출된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 – 행동의 촉구」라는 문서(이하 「문서」)이다.
  이 「문서」는 두 가지 점에서 관심을 끈다. 첫째, 「문서」는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역사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과 정의를 부각시켰던 해방신학적 패러다임과 생태계 위기의 극복과 평화의 실현을 인류 공통의 문제로 강조하였던 통전주의적 패러다임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서 두 패러다임의 통합을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둘째, 「문서」는 지구화 시대에 점점 더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는 가난과 부와 생태계 보전의 문제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불가분리적 관계에 있다고 파악하고 총체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두 가지 점에서 「문서」는 WCC 차원에서 전개되어 왔던 사회윤리 담론들을 집대성하고 한 단계 전진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구화 과정에서 사회적 양극화와 극심한 생태계 파괴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작은 사람들이 더 많은 정의,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복지, 더 많은 생태계의 안정과 건강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찾도록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여야 할 것이다. 정의에 바탕을 둔 평화 속에서 만물이 생명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문서」는 이러한 담론을 마련하고자 하는 한국 교회에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 사회윤리의 관점에서 「문서」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이유이다.
  이 글에서 나는 먼저 「문서」의 형성과정과 내용을 분석하면서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성과를 평가할 것이다. 그 다음 한국교회가 「문서」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더욱 더 천착하여야 할 과제들이 무엇인가를 짚어 볼 것이다.

2. WCC 총회 문서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 – 행동의 촉구」의 분석과 평가

1) 「문서」의 배경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 – 행동의 촉구」는 2012년 8월 28일부터 9월 5일까지 크레타 콜륌파리(Kolympari, Crete)에서 회집한 WCC 중앙위원회가 채택하여 2013년 10월 부산에서 열린 제10차 WCC 총회에 제출된 공식문서이다. 이 「문서」가 WCC 중앙위원회에 의해 공식문서로 채택되기까지는 오랜 논의 과정이 있었다.
  이 「문서」는 2006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9차 WCC 총회가 폐막하면서 AGAPE 과정의 후속작업을 계속하기로 결의한 데 그 뿌리를 두고 있다. AGAPE는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민중과 지구를 위한 대안적 지구화”)의 약어이다. AGAPE 과정은 1998년 하라레 총회로부터 2006년 포르투 알레그레 총회에 이르기까지 WCC 중앙위원회의 지도 아래서 WCC 본부의 JPC(Justice, Peace and Creation) 국이 경제적 지구화에 대항하기 위해 주도한 논의과정이었고, 그 결실이 AGAPE 문서이다. 2005년 9월 WCC 실행위원회는 포르투 알레그레 총회 기간에 열리는 경제정의에 관한 전체회의에서 AGAPE 문서의 최종판을 공식문서로 활용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2006년 포르투 알레그레 총회는 AGAPE 문서를 중심으로 지구 차원에서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AGAPE 과정을 종결하지 말고 이를 계속할 것을 촉구하는 「아가페 – 사랑과 행동의 촉구」(AGAPE – A call to love and action)이라는 문서를 채택하였다. 이 문서에서 WCC 총대들은 빈곤 척결, 공정한 무역, 세계금융시장의 통제와 규율, 땅과 자연자원의 지속가능한 활용, 공공재와 공공서비스의 사유화에 대한 투쟁, 생명을 살리는 농업, 좋은 일자리, 해방된 노동, 민중의 생활안정, 제국의 권력에 대한 교회의 투쟁 등을 통하여 온 세상의 교회들과 종교 공동체들이 사랑을 실천하고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포르투 알레그레 총회가 폐막을 하면서 만장일치로 채택한 「프로그램 지침위원회 보고서」 제26항은 “다른 에큐메니칼 파트너들과 기관들과 협력하면서 AGAPE 과정의 후속작업을 진행하고 확대하여 (1) 이 이슈들에 대하여 우리의 신앙의 핵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신학적 성찰을 수행하고, (2) 견고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분석을 시도하고, (3)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활동가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추구하고, (4) (이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한) 교회 측의 실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들을 공유할 것”을 천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추진되기 시작한 AGAPE 과정의 후속작업은 WCC가 주도한 PWE 프로그램의 틀에서 진행되었다. PWE 프로그램은 가난(poverty)과 부(wealth)와 생태계(ecology)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포괄적으로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을 촉구하면서 가난을 척결하고, 부의 축적에 도전하고, 생태계를 보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PWE 프로그램은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지속적인 대화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고, 대륙별로 조직된 연구 모임과 협의회들을 통하여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2007년 탄자니아 다레쌀람에서 아프리카 협의회, 2008년 과테말라에서 라틴아메리카-카리브 협의회, 2009년 치앙마이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협의회, 2011년 캘거리에서 북미 협의회가 순차적으로 열렸고, 2012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는 AGAPE 과정을 기리는 지구 포럼이 열려 PWE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였다.
  「문서」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수렴된 의견들을 정리하여 2012년 크레타 중앙위원회에서 채택된 공식문서이다.

2) 「문서」의 핵심내용

  「문서」는 크게 1) 서문(§1), 2) 생명을 살리는 일에 대한 신학적이고 영적인 이해(§2-§8), 3)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생태학적 위기의 긴급성과 상호간의 밀접한 연관관계에 대한 인식(§9-§16), 4) 정의의 원천들에 대한 확인(§17-§20), 5) 헌신과 행동의 촉구(§21-§26)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서문
  「문서」는 지구적 차원에서 금융 위기와 사회경제적 위기, 생태학적 위기와 기후 위기 등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민중과 지구에 파국적 재앙을 가져오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위기의 뿌리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주의, 노골적인 무시, 탐욕의 죄와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는 한, 지구 공동체의 생명은 종말에 이르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문서」는 이에 대응하여 행동할 것을 촉구하면서 “생명을 위한 경제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형성되어 가고 있고, 하나님의 정의가 그 바탕을 이룬다.”는 것을 믿고 희망을 갖자고 권유한다.(§1)

(2) 생명을 살리는 일에 대한 신학적이고 영적인 이해
  「문서」는 생명을 살리는 일과 관련해서 일곱 가지 명제들을 제시하는데, 그 출발점은,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이 상호연결망을 이루고 있고, 인간이 그 연결망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렇게 창조된 피조물의 세계가 선하다는 창세기 1장의 확언이다. 생명을 갖고 있는 유기체들이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공동체는 땅으로부터 생명을 취하고 땅에 생명을 부여하고, 한 세대와 다른 세대를 연결하고, 하나님이 꾸리는 살림의 풍요성과 다양성을 지속시킨다. 하나님의 살림에서 경제는 만물을 위해 풍요한 생명을 제공하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다.(요한 10:10) 「문서」는 이와 같은 성서의 생명 이해가 세계 여러 지역 원주민들의 생명에 대한 지혜와 공통점을 갖고 있음을 확인한다.(§2)
  「문서」는 “좋은 삶”이 상호성, 파트너관계, 호혜성, 정의, 사랑과 친절 등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귐의 원리에 따르는 것이어야 하지, 경쟁적인 소유의 추구, 부의 축적, 안보를 위한 요새와 무기비축 등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 뒤에,(§3) 곧바로 피조물의 탄식과 가난한 민중의 외침에 귀를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오늘의 생태학적 위기와 사회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위기는 풍요로운 생명을 보장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비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문서」는 이러한 사태가 인간의 욕망을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의 핵심으로 보는 자기기만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고, “우리의 탐욕과 자기중심성이 민중과 지구를 위협한다.”고 진단한다.(§4)
  「문서」는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일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될 것을 요구한다. 그러한 변혁의 핵심은 탐욕과 이기주의의 죄를 고백하고, 다른 사람들과 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갱신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생명을 긍정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파트너로서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정의를 실천하고 생명을 촉진할 수 있다.(§5)
  정의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변화되고 배제된 사람들과 자신을 일치시켰다. 그것은 그의 긍휼 때문만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삶이, 체제들과 구조들이 죄로 가득 차 있음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너희들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들을 위해 한 일이 곧 나를 위해 한 일이다.”(마태 25:40)는 말씀은 정의의 실천이 무엇인가를 가장 명료하게 가르쳐 준다.(§6) 「문서」는 이와 같은 정의를 실천하는 영성을 “변혁적 영성”(transformative spirituality)이라고 지칭한다.(§7)

  (3)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생태학적 위기의 긴급성과 상호간의 밀접한 연관관계
  「문서」는 지구적 차원에서 금융 위기와 사회경제적 위기, 기후 위기, 생태학적 위기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위기들은 상호 의존관계를 맺고 있고 서로 서로를 강화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놓고 다룰 수 없다. 광범위한 시장의 자유화, 규제철폐, 굴레 벗은 재화와 용역의 사유화는 피조물 전체를 착취하고, 사회 복지를 해체시키고,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끝없는 생산을 추구하게 만든다.(§10) 이러한 상호 연관되어 있는 위기들의 뿌리에는 “탐욕과 불의, 손쉬운 이윤의 추구, 불의한 특권,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목표를 무시한 단기적인 이익의 추구”(§13)가 도사려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로지르고 있는 패러다임이 “시장 근본주의”이다. 그것은 “경제적 패러다임 이상의 것이며, 사회철학인 동시에 도덕철학”이다.(§14) “이 이데올로기는 삶의 모든 측면들에 침투하고, 삶을 그 안과 바깥으로부터 파괴하고,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생활에 스며들고, 자연 환경과 전통적인 생활형식들과 문화들에 치명적인 재앙을 가져오고, 지구의 미래를 해친다. 이런 식으로 지구적 경제 체제는 평화로운 공존의 조건들과 생명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15)  

  (4) 정의의 원천들
  「문서」는 이러한 위기의 상황 속에서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혁(transformation)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17) 그러한 신념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만물을 위한 생명에 관한 그분의 약속에서 비롯되는 희망에 근거한다.(§18) 이러한 신념과 희망을 갖고서 세계 곳곳의 교회들은 지구화에 대한 각기 다른 경험을 함께 나누며 서로에게서 배우고, “각기 다르게 부담해야 할 공동의 책임들”(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을 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연대와 전략적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탐욕의 지표를 설정하고, 탐욕에 대한 투쟁에서 공동지반을 찾고 있는 불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과 대화를 나눈다. 시민사회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교회들은 새로운 국제 금융 체제와 경제 체제의 틀을 모색하고자 하며, 생명을 살리는 농업을 촉진하고 연대의 경제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19) 여성들은 가부장적인 지배 체제에 도전하면서 경제를 사회적 관점에서 형성하고 사회를 생태학적 관점에서 재형성하고자 하는 페미니스트 경제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청년들은 단순한 삶과 대안적인 삶의 스타일을 형성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토착 원주민들은 삶의 모든 측면들을 통전적으로 회복할 것을 요구하고, 사회적 부채와 생태학적 부채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해 땅의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20)
  바로 이러한 움직임들에서 정의의 샘물이 솟구친다.

  (5) 헌신과 행동의 촉구
  「문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전제하고, 우리가 “정의와 지속가능성의 영성을 증언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용기”를 갖고서 “만물을 위한 생명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예언자적 운동”을 전개할 것을 요청한다.(§21) 이러한 변혁의 과정은 인간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확실하게 하는 과정이다.(§22)
  이와 관련해서 「문서」는, (1) 제10차 WCC 부산 총회에서 교회들을 모이게 하고, 공동의 목소리를 형성하고, 에큐메니칼 협력을 강화하고, 만물을 위한 생명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더욱 더 견고한 일관성을 갖도록 WCC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헌신하자고 촉구한다. (2) 「문서」는 특히 이번 부산 총회에서 새로운 국제 금융 체제와 경제 체제를 형성하고, 부의 축적과 총체적인 탐욕에 도전하고 탐욕에 대항하는 수단들을 강구하고, 생태학적 부채를 청산하고 생태학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작업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23) (3) 더 나아가 「문서」는 이번 부산 총회와 다음 WCC 총회 사이의 기간 동안에 “생명을 위한 경제 –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살아가기(만물을 위한 정의와 평화)” 위하여 신앙의 헌신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한다.(§24) (4) 끝으로 「문서」는 「정의로운 금융과 생명의 경제에 관한 선언」이 “정직, 사회정의, 인간의 존엄성, 상호책임, 생태학적 지속가능성 등의 공동 가치들에 근거한” 윤리적이고 정의롭고 민주적인 국제 금융 체제를 촉구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곳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생명을 위한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25)
  「문서」는 생명을 위한 경제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 세밀한 목록을 제공하고 있는데,(§26) 여기서는 이에 대한 정리를 생략하기로 한다.

3) 「문서」에 대한 평가

  「문서」를 평가하기에 앞서서 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초점을 설정하고 싶다. 하나는 사회경제적 위기와 생태학적 위기의 연관성이 제대로 인식되고 있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대안을 구상하는 신학적 비전이 충실하게 제시되고 있는가를 살피고, 마지막 하나는 새로운 대안을 이끌어가는 정의의 원칙들이 명료하게 밝혀져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1) 사회경제적 위기와 생태학적 위기의 연관성
  「문서」는 경제의 지구화가 급진전된 오늘의 세계에서 사회경제적 위기와 생태학적 위기가 불가분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위기들의 연관성에 대한 에큐메니칼 논의는 1975년 나이로비 총회를 준비하는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우 오래 동안 진행되어 왔지만, 성공을 거둔 예는 별로 없다. 만일 「문서」가 이 두 가지 위기들의 상호연관성을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다면, 그것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학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사회경제적 위기와 생태학적 위기의 연관을 의식하기 시작한 첫 흔적은 1972년 로마클럽이 발표한 『성장의 한계』에 대한 에큐메니칼 응답이었다. 1974년 베를린에서 열린 WCC 중앙위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사에서 처음으로 인류의 생존능력을 절박한 의제로 설정하였으며,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JPSS)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명료하게 부각시켰다. JPSS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일은 1975년 나이로비 총회가 채택한 프로그램 지침에 수용되었고, 그 핵심 주제들은 1979년 JPSS 논의에 관한 자문위원회 제2차 보고서에서 비로소 명확하게 표명되었다.
  JPSS 논의에 관한 자문위원회의 제2차 보고서는 정의와 참여와 지속가능성을 하나의 좌표에 통합하려고 시도했지만,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사회적-정치적 문제와 생태학적 문제를 제대로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두 문제들의 발생 맥락과 위상을 구별하면서도 그 다음에는 이 둘을 서로 연관시킬 수 있는 분석과 설명의 체계가 필요한데, 그 당시 에큐메니칼 사회윤리는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가난과 생태계 위기를 연관시키지 못했고, 도리어 이 둘을 서로 나누어 보는 경향을 보였다. 생태계 위기는 자연에 대한 인류의 기술적 통제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로 축소되고, 논의의 우선순위는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에 놓였다. 그리하여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역사에서 인류의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처음 다루기 시작한 자문위원회 보고서에서 생태계 위기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이러한 JPSS 논의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논의의 틀이 고안되어야 했다. 그 논의의 틀이 바로 JPIC (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 = “정의와 평화와 피조물의 보전”) 공의회 과정이다. JPIC 공의회 과정은 1983년 밴쿠버에서 모인 제6차 WCC 총회에 의해 소집되었다. 총회는 “회원 교회들을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을 위한 상호 책임(계약)을 향한 공의회 과정으로 초청”하였으며, 이를 WCC의 포괄적인 중점사업으로 명시하였다. 총회는 인류의 생존이 불의하고 모순적인 질서들과 환경파괴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생태계 파괴,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 군사주의, 계급차별과 가난, 인종차별, 성차별 등이 세상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세력이라고 지목했다. WCC는 이러한 절박한 세계상황에 직면하여 죽음의 악마적인 세력에 맞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생명으로” 고백하였다. 1987년 제네바에서 모인 WCC 중앙위원회는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의 세 영역에서 각각 나타나는 문제들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천명하고, “이 상호관계의 본질을 인식하고, 평화, 정의, 피조물의 보전에 관한 교회들의 범세계적인 공동 입장을 천명하되, 이를 교회의 신앙고백 및 교회의 행동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1987년 중앙위원회 이후에 JPIC를 위한 공의회 과정은 유럽과 북미,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진행되었으며, 1990년 서울에서 JPIC 세계대회가 열렸다. JPIC 세계대회는 1988년 3월 이스탄불에서 회집한 WCC 실행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정의와 평화와 피조물 보전에 관한 신학적 견해를 표명하고, 생명을 위한 이 세 영역들에서 나타나는 서로 밀접하게 결합된 위협들을 드러내는 것”과 “무엇보다도 상호 책임의 행위를 취함으로써 이 위협들에 대해 응답하고 교회들이 그 모범을 따르도록 하는 것”을 과제로 하였지만, 그 과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 까닭은 JPIC 세계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세계상황에 대해 공동인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가난과 억압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생태계 위기의 문제는 부유한 국가들의 관심사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유럽과 북미에서 온 참가자들은 생태계 위기와 대량살상 무기를 동원한 전쟁이 인류를 위협에 빠뜨린다고 보고 이를 가난과 억압의 문제보다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제3세계 출신의 참가자들이 대체로 JPSS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어서 JPIC 논의의 진정한 도전이 무엇인가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면, 북미와 유럽 출신의 참가자들은 JPIC 논의의 통전주의적 함정에 빠져서 평화의 문제와 생태계 위기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정의의 확립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었다.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역사와 패러다임의 전환을 연구한 마르틴 로브라는 서울 세계대회가 “난파”했다고까지 말했다. JPIC 서울대회가 에큐메니칼 합의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었다고 지적한 볼프강 후버는 죽음의 세력에 맞서고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일을 신앙고백의 수준에서 촉구한 공의회 과정이 “신앙고백의 닫힌 언어”에 사로잡혀 “경험의 개방성”과 “합리적 논증의 개방성”을 억누르고 문제 해결의 다양성에 눈을 감게 만들었다고 분석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이라는 세 가지 주제들 가운데 무엇이 우선적인가를 놓고 벌인 논쟁이 에큐메니칼 담론의 지평을 좁혔고, 공통된 상황분석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하여 정의와 평화와 피조물의 보전 사이의 내적 연관을 찾는 것은 어려웠고, 그러한 내적 연관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었다.
  사회경제적 위기와 생태학적 위기의 연관성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시도는 1991년 캔버라 제7차 WCC 총회에서도 계속되었다. 총회에 제출된 분과연구 I의 보고서를 준비하였던 1990년 쿠알라룸푸르 협의회는 “생존을 위한 정의 윤리”의 구상을 제시하였고, 이 구상은 캔버라 총회 분과연구 I에서 “생태학적 경제윤리” 구상으로 가다듬어졌다. 이 구상은 다음과 같은 명제들로 요약된다. “우리는 만인을 위한 사회 정의와 모든 피조물을 위한 생태학적 정의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회 정의는 건강한 환경과 무관하게 성립되지 않으며, 생명능력이 있고 안정된 환경은 보다 큰 사회 정의를 전제로 한다. … 성서적인 정의 개념은 하나의 통전체를 이루고 있는 피조물들 사이에 건강한 관계들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태학적 경제윤리 구상은 1998년 하라레 제8차 WCC 총회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여물지 못했다. 하라레 총회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응하여 제3세계 국가들의 부채탕감을 핵심 이슈로 부각시켰고, 대안적 지구화를 추구하는 AGAPE 과정을 출범시키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였을 뿐이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맞서서 “민중과 지구를 위한 대안적 지구화”를 추구하였던 AGAPE 과정은 “정의롭고, 공감적이고, 포괄적인 세계의 비전”을 추구하였고, “이 비전은 모든 수준에서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는 가운데 경제정의와 생태학적 정의를 통전적으로 구현할 때에만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AGAPE 과정은 JPIC 패러다임보다는 JPSS 논의의 패러다임에 가까웠다. 2006년 포르투 알레그레 총회의 공식적인 배경문서로 채택된 AGAPE 문서는 대안적 지구화에 대항하는 “생명을 위한 경제”를 “하나님의 은혜로운 경제”로 성격화하면서 이 경제는 “생명의 풍부함을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다룰 것을 요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이라는 어구가 JPSS 논의의 핵심적인 슬로건을 연상시킨다는 것이 그것이다. AGAPE 문서는 경제정의와 생태학적 정의를 통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기는 하였지만, 대안적 지구화를 추구하는 프로그램들의 방점은 공정한 무역과 공정한 금융에 찍혀 있었다. 생태학적 정의가 다루어지기는 했지만, 그 비중은 공정한 무역과 금융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을 뿐만 아니라, 제안된 프로그램도 매우 추상적이었다.
  사회경제적 위기와 생태학적 위기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인식의 진전은 AGAPE 과정의 후속작업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AGAPE 과정의 후속작업을 뒷받침한 PWE 자문그룹은 2007년 6월 모임을 갖고서 “WCC의 AGAPE 과정과 국제 에큐메니칼 평화 대회(IEPC)의 맥락에서 가난과 부와 생태계 위기의 연관성을 연구하기 위한 신학적 토대를 논의할 것”을 제안하였다. 자문그룹은 PWE 논의가 기본적으로 AGAPE 과정을 계승하지만, (1) “생태학적 부채”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 생태학적 차원을 강력하게 부각시키고, (2) 가난의 문제만이 아니라 부의 창출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탐욕의 문제를 전면화하고, (3) 가난과 부와 생태계 위기의 상호연관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에큐메니칼 보고서를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을 주문하였다.
  PWE 논의의 틀에서 대륙별로 진행된 연구 모임들과 협의회들은 가난과 부와 생태계 위기의 상호연관성에 초점을 맞춘 논의의 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하였다. 2007년 다레쌀람 보고서로부터 2011년 북미협의회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가난과 부와 생태계 위기의 상호연관성이 체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다레쌀람 보고서가 부각시킨 우분투 경제(ubuntu economy)는 경제와 생태계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통찰에 근거하여 자족의 경제를 추구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지혜와 하나님의 경제에 대한 성서의 비전을 서로 결합시키고 있다. 또한 PWE 유럽 협의회가 채택한 2010년 부다페스트 보고서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부의 창출 방법과 무제한한 성장에 대한 집착이 공동체를 가난하게 만들고 피조물 전체에 해를 끼친다.”는 인식을 분명하게 천명하였다. 부다페스트 보고서는 “불의의 도전들과 기후 변화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분석한 뒤에 “사회 정의와 기후 정의가 상호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경제 – 행동의 촉구」는 PWE 논의의 성과들을 수렴하면서 사회경제적 위기와 생태학적 위기의 상호 연관성을 그 어떤 에큐메니칼 문서들보다 더 명료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문서」는 부산 총회에서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 준비된 문서로서는 상대적으로 부피가 작으며, 가난과 부와 생태계 위기가 어떻게 서로 맞물려 있는가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피상적이다. 탐욕의 경제가 사회복지를 해체시키고 생태계 위기를 가져온다는 인식은 문제의 정곡을 찌른 것이지만, 이러한 명제는 서술적인 수준에서 제시되고 있을 뿐, 역사적-분석적 설명의 수준에 이르고 있지는 못하다. 만일 경제계와 생태계의 관계를 에너지-물질 대사의 맥락에서 파악하고, 경제계에서 이루어지는 에너지-물질의 형태변화 과정과 소비 과정이 자본의 축적 과정을 매개로 해서 팽창적 성향을 갖게 된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가난의 확산과 부의 축적과 생태계 파국이 어떻게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가를 명석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가난을 불러내는 바로 그것이 생태계 파국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할 수 있게 되고, 사회적 가난과 생태계 위기를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시키는 바로 그 장본인이 자본의 축적과 팽창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2)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경제의 신학적 비전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경제의 신학적 비전은 「문서」에서 간략하기는 하지만 짜임새 있게 제시되었다. 생명이 관계의 현실성을 가리킨다는 「문서」의 통찰은 JPIC 공의회 과정을 거치면서 에큐메니칼 진영이 공유하게 된 신학적 인식이다. 「문서」는 이러한 통찰을 한편으로는 삼위일체론적 정식을 통해 강화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간 대화와 토착 문화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종교적이고 다문화적인 에큐메니칼 확언으로 가다듬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사람들 사이의 관계, 사람들과 피조물 전체의 관계를 생명의 연결망으로 보는 「문서」의 통찰은 에큐메니칼 생명신학이 도달한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3) 정의의 개념
  「문서」는 정의의 개념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동시에 이를 분화시키고 있다. 「문서」가 전제하는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변화되고 배제당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일치시켰고, 지극히 작은 사람들의 기본 욕구를 우선적으로 충족시키는 일을 통하여 그가 추구하는 정의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문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편드는 일과 정의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음을 천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문서」는 정의가 관계 개념이라는 점도 확실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정의는 깨어진 관계들을 회복하여 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실현된다. 정의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이 바른 관계에 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바른 관계들 속에서 생명이 누리는 충만한 상태가 곧 평화이다. 따라서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다. 정의가 갖는 이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부각시키고 있는 「문서」는 1975년 나이로비 총회에서 정식화된 메시아적 정의 개념과 1983년 밴쿠버에서 정식화된 관계론적 정의 개념을 성공적으로 통합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메시아적 정의 개념과 관계론적 정의 개념은 그 동안 에큐메니칼 운동 진영을 양분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해방신학적 시각을 강하게 견지하였고, 유럽과 북미 지역의 에큐메니칼 대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의 문제보다는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관심을 갖는 평화와 생태계 보전에 더 큰 주의를 기울여 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가난과 생태계 위기의 상호연관성이 조금 더 또렷하게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이와 같은 인식에 힘입어 「문서」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로 인하여 희생당하는 사람들과 지구의 입장에서 정의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문서」는 정의의 개념을 다양한 맥락에서 분화시키고 있다. 「문서」에서 정의가 상호성, 호혜성 등과 같은 개념들과 나란히 관계론적 개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정의가 관계론적 개념이라면, 논리적으로 그 반대 개념은 자기중심성과 이기심과 탐욕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문서」가 AGAPE 과정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생태학적 정의(eco-justice) 개념을 채택하여 생태학적 부채 문제의 해결 방안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서」는, 그 소략한 분량으로 인하여 상세한 설명을 시도하지 않고 있지만, 생명의 경제가 정의로운 금융 체제와 경제 체제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문서」가 인용하고 있는 2009년의 에큐메니칼 문서 「정의로운 금융과 생명의 경제」는 “탐욕과 개인주의와 배제”에 근거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에 대항하면서 “연대와 공공선과 포용”에 근거한 대안적인 경제 체제를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협동과 나눔과 사랑과 자연과의 역동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경제이다. 그러한 경제는 “인간적인 욕구의 충족과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자기계발과 민중의 복지와 행복을 위한 봉사”이며, “정직, 사회정의, 인간의 존엄성, 상호 책임, 생태학적 지속가능성” 같은 가치관 위에 굳건하게 세워진 “윤리적이고 정의롭고 민주적인 지구적 금융 체제”를 필요로 한다. 「정의로운 금융과 생명의 경제」가 에큐메니칼 공식문서로 채택된 이후에도 생명의 경제를 위한 국제적인 금융 체제의 변화를 모색하는 논의가 계속되었고, 이 논의는 2012년 10월 상파울루 선언에 수렴되었다. 상파울루 선언은 민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들과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시키는 정의로운 국제 금융 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기준들은 (1) 탐욕의 극복, (2) 사회적 포용, (3) 젠더 정의와 생태학적 정의, (4)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변혁할 수 있다는 희망, (5) 생명의 경제를 갈망하는 영성 등이다. 이렇게 보면, 비록 「문서」가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회정의, 경제정의, 생태학적 정의, 젠더 정의, 기후 정의 등과 같은 다양한 정의 개념들이 「문서」에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서」는 AGAPE 과정에서 부각되었던 “변혁적 정의”(transformative justice)라는 개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 본래 “변혁적 정의” 개념은 인종차별 극복에 관한 WCC 연구에서 채용된 개념이었는데, 이 개념은 불평등과 배제를 가져오는 경제적, 정치적 체제를 변혁하여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과제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변혁적 정의” 개념의 핵심은 인정과 참여이다. “변혁적 정의”는 AGAPE 과정에서 진정한 포용과 참여를 보장하는 사회(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정의), 권력의 잘못된 배분을 극복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 사이의 갭을 메우는 사회(경제정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존상태를 인정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사회(생태학적 정의)를 이끌어가는 원칙을 가리켰다. 한 마디로, 개념의 확장이 일어난 것이다. 「문서」가 이처럼 확장된 “변혁적 정의”라는 개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다. 어쩌면 “변혁적 정의”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내용을 갖게 되어 조금 더 분화된 정의 개념을 문맥에 따라서 사용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변혁적 정의”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서」에서 변혁이 강조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서」는 오늘의 금융 체제와 경제 체제를 “변혁”하여 생명을 살리고 영화롭게 만드는 경제를 건설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3. 맺음말 : 「문서」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앞으로 더 생각해 보아야 할 점

  「문서」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마치면서 나는 「문서」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한국 교회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을 몇 가지 짚고 싶다.
  오늘의 한국 사회와 교회는 보다 정의롭고, 보다 민주주의적이고, 보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매우 엄중하고 다양한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이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확대, 생태계의 안정과 건강성의 회복이 아닐까 한다.
  먼저 경제 민주화를 놓고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민주화가 대자본과 중소자본 사이의 억압적이고 수탈적인 갑을관계를 바로 잡는 일로 여겨지고 있지만, 본래적인 의미의 경제민주화가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모순에서 비롯되는 자본과 노동의 경사진 권력관계를 역동적인 제도적 균형관계로 전환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매우 희박하다. 독과점적인 시장권력의 형성과 전횡을 바로 잡아 큰 시장권력과 작은 시장권력 사이의 갑을관계를 청산하는 데 필요한 법제는 경쟁법, 곧 공정거래법이겠지만, 공정거래법을 갖고서 자본주의의 틀에서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사회세력들의 관계를 규율할 수는 없다. 제도적으로 대등한 권력을 갖춘 사회세력들 사이의 대립과 협력이 보장될 때 비로소 시장경제에서 더 많은 정의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산별교섭제도를 제도화하고,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을 법제화하고, 작업장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정교하게 설계해 내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가동하고자 하는 노력이 선진적인 사회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나라들에서 실험되고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사회 세력과 교회에 도전이 되어야 할 것이고, WCC 총회에 제출된 「문서」에서도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지만, 「문서」에서도 이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문제를 사회세력들 사이의 권력관계에서 파악하는 인식구도가 분명해야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복지의 확대와 관련해서, 나는 우리 사회가 보편적이고, 전면적이고, 최대한의 복지를 구현하기 위해 급진적인 복지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대체로 개발주의 국가복지 체제에서 빈약한 복지를 감내하다가 신자유주의적인 복지 체제로 전환된 이후에는 노동연계적인 선택적 복지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다. 그러나 선진적인 시민사회와 교회 부문은 지구화 시대에 신자유주의적인 복지 침식에 맞서기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를 전면적으로 최대한 구현하여야 한다고 이미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경제의 지구화 조건에 부응하게끔 유연한 시민권 인정에 근거한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할 것을 촉구하기까지 한다. 기본소득 구상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논의되고 있지만, 독일을 위시한 여러 나라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활발하게 논의되어 왔고, 중앙정치에 참여하는 정당들에서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지구적 시민권과 기본소득 보장은 지구화 시대에 문명의 과제가 된 것 같다. 나는 유연한 시민권 인정에 바탕을 둔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을 한국 교회의 사회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WCC도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지구적 차원에서 기본소득 담론을 형성하고 확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생태계의 안정과 건강에 관한 「문서」의 선언과 제안은 전반적으로 매우 시사적이다. PWE 논의에서 가난과 부와 생태계의 밀접한 관계를 인식하는 데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앞에서 이미 그 인식의 이론적 토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사회적 가난과 생태계 위기가 같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고, 사회적 가난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생태계와 경제계의 에너지-물질 교환 관계를 극도로 교란한다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인류는 만물이 서로 바른 관계들을 맺는 가운데 생명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1차 문헌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s and Earth (AGAPE) : A Background Document, ed. By Justice, Peace and Creation Team(Geneva : World Council of Churches, 2005).
Beratungsausschuss, “Grundlagen einer gerechten, partizipatorischen und verantwortbaren Gesellschaft : Bericht,” epd-Dokumentation Nr. 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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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icht aus Vancouver 1983. Offizieller Bericht der Sechsten Vollversammlung des Ökumenischen Rates der Kirchen, hrsg. v. Walter Müller-Römheld(Frankfurt am Main : Lembeck, 1983).
Budapest Call for Climate Justice Addressing Poverty, Wealth and Ecology. AGAPE Consultation : Linking poverty, wealth and ecology : Ecumenical Perspectives in Europe (12.11.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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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ement on just finance and the economy of life” (adopted on 2 September 2009). http://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central-committee/2009/report-on-public-issues/statement-on-just-finance-and-the-economy-of-life.

2. 2차 문헌
강원돈,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위한 생태윤리,” 『지구화 시대의 사회윤리』(서울: 한울아카데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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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ser, K., Ökumene im Übergang : Paradigmenwechsel in der ökumenischen Bewegung(München : Kaisers Verlag, 1989).
Robra, M., Ökumenische Sozialethik : Mit einer Einführung von Konrad Raiser(Gütersloh : Gütersloher Verlagshaus, 1994).
Vanderborgt, Yannik/Philippe Van Parijs, Ein Grundeinkommen fuer alle? Geschichte und Zukunft eines radikalen Vorschlags. Mit einem Nachwort von Claus Offe(Frankfurt/New York: Campus, 2005).



Abstract

A Social-Ethical Analysis and Evaluation of “Economy of Life, Justice, and Peace for All : A Call to Action” submitted to the 10th General Assembly of the WCC held 2013 in Busan

                                                                                                                     Kang, Won-Don


  In the article I have analyzed and evaluated “Economy of Life, Justice, and Peace for All : A Call to Action”, an ecumenical document, which was adopted by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WCC on 19 July 2012 and submitted to the 10th General Assembly of the WCC held 2013 in Busan.
  First, I have analyzed the formation process and contents of the document on the background of the ecumenical social ethics and articulated some achievements of the document. 1) It is significant that the document presents a viewpoint from which the JPSS and the JPIC paradigm can be integrated. The former has put its primary emphasis on the justice from the standpoint of liberation theology, while the latter has been more concerned about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 from a holistic perspective. 2) It is also noteworthy that the document sees deeply into the interrelation of poverty, wealth and ecological crisis. But I have pointed out that the document has not yet presented a logical and systematic explanation of the inter-connectedness of three issues.
  Second, from the viewpoint of Korean church, which sees itself seriously challenged by social polarization and ecological crisis in the process of globalization, I suggest that the following three agenda should be deliberately discussed further in the ecumenical social ethics in order to develop the document in its historical achievements: 1) an institutional balance of power between labor and capital for the realization of economic democracy, 2) a world-wide introduction of basic income on ground of flexible citizenship, and 3) an logical and systematic analysis of inter-connectedness of poverty and ecological crisis.

Key Words:
ecumenical social ethics, justice, JPSS, JPIC, life, ecological crisis, peace, pove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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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2

구제역(口蹄疫)의 회상과 공장식 축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성찰*    



                                                                                 조현철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생태신학)


초록

2010년 말에서 2011년 초, 거의 전국적으로 퍼진 구제역을 막기 위한 예방 조치로 3백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가 살처분(殺處分)되었다. 이 참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날 성행하는 공장식 축산이 창조주 하느님의 피조물인 가축의 사육 방식으로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 글은 이 물음에 대한 신학적 응답의 노력이자, 그리스도인들이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암묵적인 이해를 검토해보길 요청하는 초대이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첫째, 기존의 연구를 간략한 살펴보며 동물의 윤리적 담론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차지하는 의의를 지적한다. 둘째, 부버(Martin Buber)의 ‘나-너’와 ‘나-그것’의 범주를 사용하여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고려한다. 올바른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나-그것’과 ‘나-너’의 조화와 균형을 요구한다. 셋째, 성서에서 드러나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검토한다. 성서적 관점에 따르면, 동물은 인간과 근원적 친화성과 유대를 지니고 또한 그 자체의 본질적 가치를 지니는 창조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여기서는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공장식 축산과 직결된 현안인 육식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끝으로, 이렇게 제시된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기초한 삶의 양식으로 절제와 검약을 제안한다. 절제와 검약의 태도로 동물을 대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충족하면서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창조공동체를 동물과 함께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공장식 축산, ‘나-너’, ‘나-그것’, 창조공동체, 육식, 절제와 검약



1. 공장식 축산의 응보: 살처분(殺處分)과 생매장(生埋葬)

2013년 5월 30일, 녹색당과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는 공장식 축산을 권장하는 현재의 축산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세계 최초로 제기하였다. 이 헌법소원은 2010년 11월 말부터 2011년 2월 초까지 경북, 경기 지방을 중심으로 거의 전국적으로 번졌던 구제역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 구제역이 그토록 급속히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던 구조적 원인으로 공장식 축산이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에서 최초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예방백신 접종으로 구제역의 확산을 막으려는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전국적으로 무려 3백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가 이른바 ‘살처분’되었다. 단기간에 걸쳐 엄청난 수의 가축을 살처분 하기 위하여 생매장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참혹한 방식도 동원되었다. 지옥같은 현실이었다. 살처분의 피해는 동물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우선 매몰지의 가축 사체에서 나오는 침출수로 인해 광범위한 지역에서 지하수가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또한 가축의 살처분을 직접 담당한 수의사들과 공무원들, 가축을 키워온 축산농가 모두가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피해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지금 같은 공장식 축산이 계속 된다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이는 처참한 환경 속에서 사육되다가 결국 구제역의 여파로 떼죽음을 당한 가축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일 것이다.
우리는 대개 정갈하게 진열대 위에 놓여 있는 포장육, 계란, 우유 등 이른바 ‘축산제품’을 통해서 가축과 접촉할 뿐, 축산제품으로 생산되기까지 가축들이 겪는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축산제품 이면의 진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축산제품의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공장식 축산은 효율의 극대화를 통한 수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이런 목표를 가진 공장식 축산에서 동물의 복지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대표적 축산동물인 닭과 돼지는 사육비용의 절감을 위해 밀폐된 과밀공간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사육되고 처분된다. 여기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동물들에게는 잔혹한 학대의 과정을 의미할 뿐이다. 공장식 축산에서 동물 학대의 구조적 발생은 예정되어 있는 셈이다.

2. 동물에 관한 도덕적 담론

동물과 관련된 도덕적 담론은 18세기 칸트(Emmanuel Kant)와 벤담(Jeremy Bentham)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칸트는 이성이 결여된 동물에 대해 인간의 직접적인 의무를 부정했다. 이와는 달리, 공리주의에 바탕을 둔 벤담은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면 도덕적 고려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고 봄으로써 인간중심의 윤리적 지평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세기 들어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생명을 도덕적 척도로 삼아 윤리적 담론의 지평을 인간을 넘어 모든 생명체로 확장하였다. 슈바이처가 제기한 ‘생명경외론(reverence for life)’은 모든 생명체는 생명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명경외론’의 무차별적인 생명 존중은 실현 불가능한 윤리적 요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20세기 후반 동물 학대에 대한 의식과 반성이 확산됨에 따라, 동물에 관한 도덕적 담론이 본격화되었다. 오늘날 이 분야의 주요 인물로는 싱어(Peter Singer)와 레건(Tom Regan)을 들 수 있다. 싱어는 벤담의 공리주의적 윤리를 기초로 ‘동물해방론’을 제시한다. 싱어는 “쾌고(快苦) 감수능력(sentience)”을 도덕적 고려의 기준으로 삼는다. 도덕적 권리는 쾌고 감수능력의 보유를 바탕으로 정당화되며, 이 도덕적 권리는 평등의 원리에 따라 존중되어야 한다. 쾌고 감수능력을 지닌 존재의 도덕적 권리를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부정하는 것은 평등의 원리를 위배하는 종차별주의(speciesism)로 비판받아야 한다. 한편, 공리주의적 접근에는 인간도 동물과 그 자체로는 구별되지 않고 각자가 경험하는 고통이나 기쁨의 양으로만 구별된다는 문제점이 생긴다. 이에 대해 싱어는 기존의 공리주의를 보완한 “선호 공리주의(preference utilitarianism)”를 제안한다. 선호 공리주의는 지속적 생명을 선호하는 존재를 그러한 선호가 없는 존재보다 도덕적 고려에서 우선시한다.
레건(Tom Regan)은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를 비판적 기초로 ‘동물권리론’을 제시한다. 칸트는 이성을 도덕적 기준으로 삼아 인간만을 직접적인 도덕적 의무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동물에 대한 의무는 인간에 대한 간접적인 의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레건은 이러한 칸트의 견해가 동물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온전한 이성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의무를 인정하면서 동물에 대해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일관성 없는 종차별주의라는 비판도 더해진다. 레건은 “삶의 주체(subjects-of-a-life)”를 도덕적 고려의 기준으로 삼는다. 삶의 주체만이 본질적 가치와 함께 동등한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 싱어의 공리주의와는 달리, 레건의 경우에는 행위의 결과인 고통이나 기쁨이 아니라 그 결과에 영향을 받는 개별존재가 중시된다. 공리주의와 의무론이라는 윤리적 접근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싱어와 레건은 인간과 동물의 우호적 공존, 동물의 본질적 가치 인정, 동물의 도구적 이용의 최소화, 종차별주의 비판, 평등의 원리 적용 등의 여러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이 밖에 여성주의 진영에서도 동물윤리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었다. 여성주의자들은 싱어와 레건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동물윤리가 도덕적 사유에서 인간 감정을 배제하고, 보편적 범주와 규정을 우선시하면서 구체적인 개별 존재와 상황을 무시하였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또한 이들은 여성의 고유한 체험과 관점에 기초하여 동물에 대한 도덕적 고려의 주요 요소로 유대, 책임, 돌봄 등을 강조한다.
신학적 관점에서 동물의 도덕적 고려를 시도한 인물로는 린지(Andrew Linzey)가 대표적이다. 초기에 린지는 동물에 대한 도덕적 고려가 요구되는 본질적 가치와 권리 보유의 기준으로 쾌고 감수능력을 제시하고 평등의 원리를 주장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동물해방론의 싱어나 동물권리론의 레건과 유사한 입장이다. 이후, 철학적 관점 대신 신학적 관점을 택한 린지는 동물의 도덕적 고려의 근거로 쾌고 감수능력 대신 “하느님의 권리(the theos-rights)”를 제안한다. 린지의 이 제안은 신 중심적 창조관에 기초하고 있다. 린지는 인간 이외의 피조물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간중심적 창조관을 비판한다. 인간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것은 인간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피조물에 대한 근원적 권리를 지닌다. 린지는 하느님의 권리의 또 다른 기초로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관심을 든다. 본성이 사랑인 하느님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으며, 피조물들의 가치는 바로 하느님의 관심에서 비롯된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이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기본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피조물의 가치가 바로 피조물의 권리 보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린지는 피조물을 인간과 동물 그리고 그 외의 피조물로 양분한다.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을 소중히 여기지만, 인간과 동물은 하느님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그래서 인간과 동물은 모든 피조물의 기본적 가치 외에 본질적 가치를 추가로 지닌다. 그리고 본질적 가치를 지닌 피조물만이 하느님의 권리에서 비롯되는 자신의 권리를 보유한다. 이렇게 린지는 동물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하느님의 권리의 맥락에서 정당화하고 있다.
동물과 관련한 기존의 도덕적 담론의 어려움은 도덕적 고려의 기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슈바이처는 생명을 도덕적 고려의 기준으로 삼아 생명의 무차별적 경외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는 자연의 질서와 생명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자연의 근본 질서는 순환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개별 생명체는 고립의 상태가 아니라 순환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생명체들의 순환은 경쟁과 협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먹고 먹힘의 과정인 먹이사슬 또한 순환의 중요한 요소이다. 생명체들은 서로 먹고 먹힘으로써 생명을 보존한다. 개별 생명의 보존과 경외는 자연 질서에 따른 생명의 주고받음과 대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의 주고받음은 생명의 보존과 경외에 필수적이다. 이를 고려하면, 슈바이처와 같은 방식의 생명 경외는 실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자연 질서에도 어긋남을 알 수 있다.
공장식 축산이나 동물실험 등에서 일어나는 동물 학대를 염두에 두고, 싱어와 레건은 도덕적 고려를 동물로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도덕적 고려의 기준으로는 이성(칸트)이나 생명(슈바이처)이 아닌 동물의 특정한 능력, 곧 쾌고 감수능력 또는 삶의 주체가 제시된다. 따라서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동물들은 아예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면에, 이 기준을 만족하는 동물들은 평등의 원리에 따라 동일하게 존중되어야하므로 슈바이처의 경우와 비슷한 어려움이 생긴다. 공장식 축산이나 동물실험에서 발생하는 동물학대의 문제가 없더라도, 일정 기준을 만족하는 동물을 이용하는 행위 자체가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동물의 사육은 원천적으로 부정되며, 채식주의는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다. 동물의 권리 주장을 위해 하느님의 권리라는 신학적 관점을 택한 린지의 접근방식도 결국 비슷한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동물에 대한 고정적인 도덕적 고려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을 만족하는 일정 범위의 동물에 대해서 동일한 태도와 처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에 대한 이러한 도덕적 접근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순환 속에서만 생명을 유지한다는 근본적인 자연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 효율과 이익만을 내세우는 공장식 축산이 윤리적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때문에 인간이 동물을 다루는 방식의 중요한 부분인 동물의 사육 자체가 전면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사육을 포함해서, 동물을 다루는 방식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 설정에 크게 좌우된다.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이므로, 우리가 설정하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와 이에 따라 우리가 동물을 대하고 다루는 방식도 자연 질서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자연 질서가 동물을 다루는 방식의 도덕적 정당성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자연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한, 우리가 동물을 다루는 방식은 획일적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결정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인간과 동물 사이의 자연 질서, 곧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설정하느냐에 달렸다. 동물의 학대와 고통에 전혀 개의치 않는 공장식 축산이나 동물실험이 허용되는 것은 우리 대다수가 동물을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생명이 없는 사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가축은 우리에게 ‘고기’의 생산 원료일 뿐이며, 실험용 동물은 실험 재료에 불과하다. 이렇게 파악되고 규정된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오늘날 성행하는 공장식 축산과 동물실험을 정당화해줄 것이다. 하지만 동물을 이런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잘못이라면, 현재의 지배적인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재검토되고 새롭게 설정되어야 한다. 물론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명확하고 간결한 공식이나 규정의 형태로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은 한 사회의 전통과 문화에 스며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규범인 유대-그리스도교 전통 속에 배여 있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검토하고, 이것이 동물을 다루는 방식에 어떤 지침을 주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3. 동물: ‘그것’과 ‘너’ 사이

유대 전통을 뿌리로 하는 부버(Martin Buber)의 관계에 관한 통찰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부버는 인간 이해의 핵심 범주로 ‘나-너(Ich-Du)’와 ‘나-그것(Ich-Es)’이라는 두 가지 근원적 관계를 제시한다. 관계는 언제나 ‘나’에 앞서 있고, ‘나’를 규정한다. ‘나’ 자체란 없으며, 언제나 ‘나-너’의 ‘나’와 ‘나-그것’의 ‘나’가 있을 뿐이다. 이 두 개의 ‘나’는 서로 다르다. ‘나-그것’의 ‘나’는 개체이며, 다른 개체들을 ‘나’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나타난다. ‘나-너’의 ‘나’는 인격체이며, 다른 인격체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나타난다. ‘나-그것’은 나와 대상의 관계이다. 나는 상대방을 내가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으며, 언제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다. ‘나-너’는 인격적 관계이다. 나는 상대방을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존재로, 상호개방과 신뢰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격체로 바라본다.
부버는 ‘나-너’와 ‘나-그것’의 근원적 관계가 우리에게 모두 필요함을 인정하는 한편, ‘나-그것’의 지나친 지배를 우려한다. 사실 이 중에서 어느 한쪽의 지나친 지배는 모두 문제가 된다. 세상 내의 어떤 존재도 자족하지 않으며,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들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에 대해 ‘그것’이 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이는 자연의 근본 질서에 해당한다. 이를 부정하고 ‘나-너’의 관계만을 고집하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한편, 우리는 ‘나-그것’을 필요로 하지만, ‘나-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살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나-그것’의 관계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그것’이 ‘나-너’와 이루는 균형과 조화를 무너뜨리고 일방적인 지배를 하게 되면, ‘나-그것’은 악한 것이 된다. 우리는 인격체이고, 모든 인격체는 ‘너’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물질주의는 ‘나-그것’이 세상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타자는 일차적으로 나를 위한 유용성의 전망에서 파악된다. 이는 근대 이후를 지배해온 기계론적 세계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상은 하나의 기계이고, 세계를 구성하는 타자는 기계 속의 부품에 해당하며, 필요할 경우 언제나 대체 가능하다. 기계는 ‘나’와는 전혀 이질적인 존재이며, 그 자체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 이런 기계론적 세계관의 틀에서는 통제와 지배를 통한 자연의 조작이 정당화된다. 자연은 대상화되어 자원이란 관점에서 경제성과 유용성의 기준으로 취급되며, 여기에는 물질만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도 예외 없이 포함된다. 오늘날의 공장식 축산은 ‘나-너’와 ‘나-그것’의 조화와 균형이 깨어졌으며, 후자가 전자를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공장식 축산의 확산은 가축을 기르던 기존의 목장이 이제는 고기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대체되었음을 보여준다. 공장식 축산에서는 ‘나와 너’의 관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은 생명체가 아니라 이익을 얻기 위한 상품의 원재료로 간주되고,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너’는 사라져야 하고, ‘나-그것’의 전적인 지배가 요구된다. 효율이 지상목표인 생산과정에서 ‘나-너’는 걸림돌일 뿐이다. ‘나-그것’이 지배할 때, 생명체들은 도구적인 관점에서 쉽게 대상화, 사물화, 상품화된다. ‘나’와는 이질적인 ‘그것’으로 간주되는 동물은 ‘나’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며, 필요하다면 언제든 처분되고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제역의 확산으로 인한 더 큰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한 예방조처로 수백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이나 생매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나-그것’의 일방적 지배로 인한 피해는 동물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관계 속의 존재인 ‘나’ 또한 그 피해를 비껴갈 수 없다. ‘나’는 ‘나-너’의 관계 속에서만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는데, ‘나-그것’의 일방적 지배는 성장의 통로를 막아버린다. ‘나-그것’의 지배는 특정한 사건을 통해서




신학사상 2014년 봄호(164집)
신학사상 2013년 가을호(162집)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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