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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연 
 신학사상 2012년 봄호(156집) 차례


이번 호에는

먼저 용의 해를 맞아 독자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번 호에는, 구약학 분야에서 이윤경 이화여대 교수의 “역대기사가의 분열왕국 전쟁기사에 나타난 전쟁이데올로기”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일반적으로 역대기를 종말론적 성격이 배제된 신정론적 성직주의자들의 작품으로 보는 것과 달리, 역대기에 기록된 분열왕국시대의 전쟁기사 분석을 통해 역대기가 종말론적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조직신학 분야에서 이정배 감신대 교수의 “한국교회를 향한 돌의 소리들-고독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상상하라: 키에르케고어, 본회퍼, 李信의 苦言” 논문은 사회의 문제가 된 기독교의 현실을 직시하며 신학이 감당해야 할 교회 비판적 사명을 서술하고 있다. 이정배 교수는 이 논문에서 사교집단으로 변질된 덴마크 국교회와 싸우다 순교자가 된 키에르케고어, 히틀러가 주도한 독일 국가사회주의와 그들이 세운 교회집단에 저항하다 사형당한 본회퍼, 그리고 자본주의에 몰입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신앙마저 서구에 저당 잡힌 한국교회의 실상을 고발한 李信의 생각을 소개하고 있다.

생태신학 관련 논문으로 조현철 서강대신학대학원 교수의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부치는 신학적 성찰”을 게재했는데, 이 논문은 오늘날 자연을 정복하고 비재하는 것이 인간다운 것처럼 생각하는 지배적인 자연관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에서 현재 우리사회에서 격렬하게 사회적, 생태적 논란을 일으켜온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하고 있다.

교회사 논문으로 정병식 서울신대 교수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의 기초 마부륵 조항 연구”를 게재했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루터를 주축으로 한 비텐베르크 신학자들과 츠빙글리를 선두로 한 스위스 개혁자들이 함께 모여 개신교 신앙고백의 핵심적인 주제를 다루고 합의를 도출한 ‘마부륵 조항’이 열다섯 번째 성만찬 조항의 상이성에만 초점을 두고 연구되어 온 것에 반해 마부륵 조항 전체를 아우르며,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의 기초자료로서 신학적 연계성 및 종교개혁적 의미를 찾고 있다.

역사신학에서 조용석 영남신대 교수의 “츠빙글리와 교회: 사회적 영역으로의 통합”이란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하나님의 정의와 상응하는 인간의 정의가 실현되는 공간으로서의 국가를 또 하나의 교회 공간으로 이해하는 스위스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신학을 탐구했다.

정치종교사회학 논문으로 정태식 경북대 강의교수의 “종교와 정치의 긴장과 타협: 한국 개신교 대통령의 구원귀족 역할”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면 타협을 미덕으로 하는 정치는 절대화되고 종교적으로 승화되며, 종교는 정치의 수단인 타협을 수용함으로서 종교의 절대성을 잃어버리고 정치의 특수성에 함몰되어 보편주의를 상실한 상대적 가치로 전락하기 때문에 종교인이 정치를 할 때, 또는 정치인이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정치를 할 때, 정치인이든 종교인이든 이들 모두는 구원귀족이 되는 잘못에 빠지게 됨을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 출신 대통령인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이 모두 구원귀족의 모습을 적극 전개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실천신학에서 조남신 예일신학대학원대 교수의 “말씀의 부활축제로서의 묵상: 루돌프 보렌(R. Bohren)의 설교묵상이해에 대한 분석적 고찰”이란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성령론적 구도로 설계된 보렌(R. Bohren)의 설교론을 중심으로 묵상을 말씀의 부활축제로 보려는 그의 지론에 대해 분석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이해하며 고찰했다.

정현철 삼육대 간호학 교수가 4명의 학생들과 함께 연구한 “성경 속에 나타난 치유사역에 대한 간호진단적인 분석”이란 논문을 게재 했는데, 이 논문은 신학자가 아닌 간호학교수가 성경 사건 중에 치유 사례를 직접 분석한 것이다. 성경 치유사건은 모두 49건이었는데, 이 중 적용할 수 있는 간호진단의 영역은 9개영역이었고, 간호진단의 종류는 18개이었다. 간호학적 인간관이 성경의 인간관과 같이 인간을 몸과 마음과 영혼이 서로 통합된 하나의 총체적 실체라고 생각하는 간호진단에서 기독교적인 전인 치유사역이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규명하고, 이 연구가 장차 의료와 연합된 선교를 위한 치유사역에 밑거름이 될 것을 기대했다.  


올해 2012년은 우리나라와 전지구촌에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이미 세계는 경제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국경이 없는 지구촌이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해외 경제의존도가 거의 90%가 되고, 세계 최고수준의 IT강국답게 세계 각국의 현실상황과 변화를 시시각각으로 알 수 있는 유비쿼터스적인 정보의 세계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국내와 해외가 밀접하게 연관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올해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할 세계적, 국내적 문제와 과제는 다음의 몇 가지가 될 것이다. 첫째로, 아랍의 봄, 자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민주화 바람이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동유럽 지역 등에서 계속 확산될 것이다. 이제는 세계 그 어떤 나라도 정치 민주화, 민중의 주권을 외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둘째로, 기존의 자본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모색될 것이다. 2008년에 시작된 미국 발 국제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의 부메랑이 되어 미국과 서유럽국가들에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 결론을 내렸듯이 사회적 평등과 정의를 외면한 부자들만의 탐욕적 자본주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경제정의와 경제민주화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과제가 되었다.
셋째로, 2차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2국 지배체제였던 세계가 1990년을 전후한 구소련의 몰락으로 중국이 부상하여 이제는 미국과 중국의 2국 주도체제가 되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 후면 중국이 미국을 앞서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현재 서유럽국가들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원인과 해결도 중국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넷째로, 자연생태계의 위기가 점점 가속화 되고 있다. 이 문제를 지구촌이 함께 해결하지 못하면 수억년 동안 살아온 지구를 인간이 불과 몇백년만에 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다섯째로, 현재 인류는 농경사회 7000년, 산업사회 200년을 거쳐 지난 50년은 지식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지식정보사회는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달과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인류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식정보사회도 10년 후면 후기정보사회로 진입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구태의연하게 과거에 안주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미래는 재앙으로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현실의 변화를 바로 인식하면 미래는 ‘이미 일어난 미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과거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미래’를 사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여섯째로, 올해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한 국가들이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되고 정치 지도자들도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올해 새롭게 등장하는 정치지도자들은 자기가 속한 국가 문제만이 아니라 지구촌이 안고 있는 이상의 과제들을 해결할 비전과 능력을 겸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인류는 2013년을 희망으로 맞이하게 된다.
일곱째로, 이상의 세계적 문제들은 바로 우리나라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4월 총선과 12월의 대선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매우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이번 선거는 과거에 사로잡힌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라 전지구적 미래차원에서 선택해야 한다.
여덟째로, 올해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 출범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의 새로운 초석을 놓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시작부터 지금까지 “비핵․개방․3000”이란 적대적 대북정책을 견지하고 인도적 지원마저 일체 금지했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그 어떤 시기보다 더 긴장관계에 놓여있다. 따라서 국제정세의 변화, 그리고 남한의 안정과 발전 차원만이 아니라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 차원에서 새로운 남북관계를 이룩해야 할 것이다.
    
신학이 이상의 국내와 세계적 과제들을 연구의 중심에 두고 신학하고 실천할 때, 교회와 신학이 살고 기독교는 우리나라와 세계를 살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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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156집)              

연구 논문

이윤경 ․ 역대기사가의 분열왕국 전쟁기사에 나타난 전쟁이데올로기
이정배 ․ 한국교회를 향한 돌의 소리들-고독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상상하라:
              키에르케고어, 본회퍼, 李信의 苦言
조현철 ․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부치는 신학적 성찰
정병식 ․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의 기초 마부륵 조항 연구
조용석 ․ 츠빙글리와 교회: 사회적 영역으로의 통합
정태식 ․ 종교와 정치의 긴장과 타협: 한국 개신교 대통령의 구원귀족 역할
조남신 ․ 말씀의 부활축제로서의 묵상:
              루돌프 보렌(R. Bohren)의 설교묵상이해에 대한 분석적 고찰
정현철 ․ 성경 속에 나타난 치유사역에 대한 간호진단적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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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1

                                                종교와 정치의 긴장과 타협:
                                         한국 개신교 대통령의 구원귀족 역할
                    

                                                                                정태식 (경북대 강의교수/ 정치종교사회학)


초록

   종교와 정치의 본질적 긴장의 관계는 역사 속에서는 타협을 거듭한다. 정책과 전략 중심의 정치와 정직과 도덕성 중심의 종교는 기본적으로 대립한다. 따라서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면 타협을 미덕으로 하는 정치는 절대화되고 종교적으로 승화되며, 종교는 정치의 수단인 타협을 수용함으로서 종교의 절대성을 잃어버리고 정치의 특수성에 함몰되어 보편주의를 상실한 상대적 가치로 전락한다. 또한 종교인이 정치를 할 때, 또는 정치인이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정치를 할 때, 정치인이든 종교인이든 이들 모두는 구원귀족이 되어, 즉 구원을 달성하기 위해 정치 행위의 주요 수단인 물리력(또는 폭력)을 구원 사업에 적용한다. 이때 종교는 보편성을 상실하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주술이, 사회정치적 차원에서는 근본주의가 출현한다.
   한국의 개신교 출신 대통령인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은 구원귀족을 모습을 적극 전개하였다. 이승만은 자기가 중심이 되어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어 한국의 사회정치적 구원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독재 정치로 정권을 마감하였다. 김영삼과 이명박은 직, 간접적으로 기독교 중심적 정치 행위를 보여주었다. 특히 주변 인물들과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심정적 동조자로서 기독교 자체를 절대화 하면서 경제적 차원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자본 독점적인 지향을 지지하였고 사회정치적으로는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의 등장과 준동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배경이 되기도 함으로써 개신교 구원귀족의 역할을 보여주었다.

주제어
정치와 종교, 종교개혁, 구원귀족, 종교 보편주의, 정치와 종교의 긴장과 타협, 근본주의, 주술,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1. 들어가는 말
  
   성(聖, sacred)과 속(俗, secular)의 경계는 분명한가? 종교는 본질적으로 성스러움의 실체인가? 세속적 영역에서는 성스러움의 설 자리가 없는가? 종교는 세속 영역과의 관계에서도 성스러움을 전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종교는 본질이 없고 역사만 있다(Religion has no nature but history)"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역사사회학적 입장을 취하는 필자에게 위의 질문은 매우 어리석은 것일 수도 있다. 역사 속에서는 늘 성과 속의 경계가 희미해져왔었고, 때로는 성이 속의 영역에 깊숙이 개입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속의 영역이 성스러움을 주장한 적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와 정치는 때로는 긴장의 관계 속에서, 때로는 서로 타협을 하면서 성과 속이 교차되는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럴 때마다 정치는 정치대로 정치행위에 변용된 의미를 적용하여 때로는 정치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행위 자체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종교 또한 온갖 견강부회나 결의론(決疑론, casuistry)을 내세워 세속과 타협을 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얻어지는 여러 형태의 보상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결국 목적(telos)과 내적 운영 법칙(internal law of operation)을 서로 달리하는 정치와 종교는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는 정치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그 본질을 잃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예컨대 권력의 적절한 분배와 함께 정책과 전략을 중심으로 하기에 타협을 미덕으로 여기는 정치가 종교와 결합하게 되면 그것이 지니는 상대적 가치는 절대화되고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되는 반면, 종교는 정치의 수단인 타협을 수용함으로써 정직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의 절대성을 잃어버리고 정치의 특수성에 함몰되어 상대적 가치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정치와 종교의 긴장과 타협의 모습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전개되었는지 개신교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하여, 그리고 이들 사이의 긴장과 그 해소과정에 대한 막스 베버의 논의를 전개하는 한편, 탈주술화(disenchantment)를 앞세운 종교개혁이 신앙적인 차원에서는 부분적으로 성공하였지만 사회 정치적 차원에서, 그리고 경제적 차원에서는 주술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에 대하여 종교의 보편성, 보편주의, 또는 보편애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또한 한국의 개신교 신자 출신의 대통령들이 보여준 정치와 종교의 파행적 관계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이는 바람직한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위한 현실 진단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2. 종교와 정치의 긴장과 타협 ― 막스 베버의 이론적 논의

   막스 베버는 대부분의 예언자적 종교와 구원 종교는 세상이나 세상의 질서와 날카로운 긴장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이 긴장관계는 종교가 진정한 구원종교의 모습을 지니면 지닐수록 더 커진다고 말한다. 특히 구원종교의 의미와 가르침이 윤리로 발전할 경우, 더 나아가 이 윤리가 원칙적으로 합리적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또는 종교의 성스러운 내적(inward) 가치를 지향하면 할수록 세상과의 긴장은 더 커진다. 다시 말해 종교가 의례주의에서 종교 절대주의로 고양되면 될수록 긴장관계는 더욱 커지게 된다. 반대로 세속적인 넓은 의미에서 세상적인 것들(worldly things)에 대한 내적이고 외적인 소유가 합리화되고 고양되면 될수록 종교 쪽에서 보면 긴장이 더 커지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다양한 가치 영역에 대해 인간이 보여준 관계의 합리화와 고양이 각 영역의 내재적이고 법칙적인 자율성을 의식하는 방향으로 강행되기 때문이다.
   구원 종교가 세상과의 관계에서 긴장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종교가 제시하는 사고논리의 발전에 따른 행위논리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종교 내용의 발전에 따른 종교의 실천 방식, 그 중에서도 윤리의 내용이 바뀌고 그 적용의 범위가 확대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베버는 세속적 가치와 구원종교와의 갈등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친족과의 관계에서라고 본다. 구원의 목표가 영적인 것을 향하면 향할수록 신앙인은 자연적인 친족관계 보다는 구원자, 예언자, 성직자, 그리고 신앙 안에서의 형제와의 관계를 당연히 더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친족의 주술적 결합과 배타성이 흔들리게 되고 보편적 형제애에 대한 종교적 윤리가 구원종교에서 새롭게 확대되어 만들어진다. 결국 마을 공동체, 친족 구성원, 길드, 전쟁을 위한 원정 등에서 나타나는 구성원 사이의 사회 윤리적 행위 규범 등은 구원종교에 의해서 평가절하 된다. 이들의 윤리가 우리네 집단(in-group)과 타 집단(out-group)의 이원론적 배타성의 윤리를 고집하고 우리네 집단의 윤리 또한 호혜의 윤리(morality of reciprocity)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베버는 구원 종교가 제시하는 구원대상의 범위 확대를 이야기 하면서 예수가 형제와 부모를 부정했던 사실을 언급한다. 예수의 주술적 경계 허물기는 이밖에도 다양한 그의 언행에서 나온다. 예수가 유태인의 ‘종족간의 형제애(tribal brotherhood)’를 넘어서 ‘보편적 형제애(universal brotherhood)’로 넘어가는 사건은 벤자민 넬슨(Benjamin Nelson)의 고리대금업에 대한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유태인들의 종족간의 형제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신명기에 쓰인 종족 간의 이자놀이 금지 조항이다. 그러나 예수는 정치적으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었음은 물론, 위생학적으로 접촉이 불가능했던 사마리아 사람을 이야기 속에서 착한 사람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종족간의 형제애를 넘어서려 하였고, 접촉 불가의 이유로 도망치는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얻어 마시는 등 경계 허물기의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베버가 말하는 in-group과 out-group의 배타적 관계의 극복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베버가 말하는 in-group 내의 호혜의 윤리는 어떻게 허물어지는가. 예수 당시 유태인 공동체의 지배적 사회윤리는 호혜의 윤리였는데,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초대 문화에서였다. 당시의 지배적인 사회윤리는 사람을 초대할 때는 베풀고 대접한 만큼 갚을 수 있는 자만을 초대해야 하고 갚을 수 없는 자를 초대해서는 안 되며, 설령 초대를 받았더라도 대접을 받은 만큼 갚을 수 없는 처지라면 초대에 응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호혜의 윤리(morality of reciprocity)라 한다. 그런데 목수 집안 출신이기에 사회적으로 하층에 속하는 예수는 중상층의 바리세인의 집에 초대를 받고 간다. 또한 잔치 집에 들어가 누구든지 사람을 초대할 때에는 갚을 수 있는 자를 초대하지 말고 갚을 수 없는 자를 초대하라고 권하면서 유명한 ‘위대한 잔치’의 우화를 이야기 한다.
   구원종교의 보편적 지향은 결국 세속적 가치와 충돌하게 된다. 특히 세속적인 영역들이 그 나름의 내재적 법칙으로 합리화되고 고양되면 될수록 종교와의 불화는 극에 다다른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이웃 간의 윤리를 종교적인 형제자매애로 대체하고자 하는 종교의 배타적 경계 허물기와 가장 크게 대립하는 세속적인 영역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경제영역과 정치영역이다. 여기서는 정치영역과의 관계만을 다루고자 한다. 베버에 따르면 구원의 개념이 합리적일수록 내적으로는 절대 윤리가 발전하며 대외적으로 이 윤리적 명령은 고통에 처한 자는 물론이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더 나아가서는 원수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확대된다. 결국 구원종교의 윤리적 요구는 신앙 공동체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 집단의 장벽. 특히 정치적 장벽을 넘어서는 보편적 형제에를 지향한다.
   그러나 주술적인 종교와 기능적인 신을 섬기는 종교는 정치의 속성인 특수이익 지향과 배타성을 추구하는 공동체 종교(community cult)의 모습을 지닌다. 정치 단위와 종교 단위가 일치하는 공동체 종교는 정치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기에 종교인들의 자발적인 집합체인 종교공동체(religious community)와 구별된다. 특히 정치공동체 간의 대립적인 관계는 이들 정치공동체가 섬기는 신들과의 대립을 수반하고 부추긴다. 따라서 지역, 종족, 정체 등에 놓여있는 장벽을 허물고자 하는 보편 종교는 개별주의적인 정치와 충돌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베버에 따르면 정치체제가 합리적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긴장이 고조되는데 그 이유는 정치가 무미건조하게(matter-of-fact) 사랑이나 증오의 인간적인 모습도 없이 모든 것을 탈 인격적으로 건조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 관료주의 국가체제는 국가이성의 객관적아고 실용적인 적용의 수단을 통해 차등적인 권력의 분배를 유지한 채 사회의 질서 유지를 목표로 한다. 따라서 강압적 폭력 사용을 당연히 여기기에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무용지물이 된다.
   물론 국가 또한 종교와 마찬가지로 정의를 내세우면서 폭력 사용을 정당시하기도 하며 이를 확대하여 전쟁의 정당화도 이끌어낸다. 베버에 따르면 국가가 신의 이름으로 '정의(right)'를 내세우고 정의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종교인들에게는 이러한 국가의 의미적 정당화가 보편적인 신의 이름을 공허하게 하는 것이며 종교윤리의 흉내 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정치가 내세우는 정의의 문제는 전쟁의 차원에까지 이른다. 베버에 따르면 전쟁과 관련하여서는 정치가 종교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종교에서 말하는 순교자만큼이나 고양된 정치 영웅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우선 전쟁은 보편적인 형제애를 강조하는 종교와 달리 특정의 정치공동체로 하여금 배타적인 일체감을 갖게 함으로서 적어도 공동체내의 여러 상이한 집단의 결속을 이끌어낸다. 따라서 집단주의적 장벽을 무너뜨린다는 의미에서 종교와 유사성을 갖는다. 그러나 전쟁을 통한 결속의 단위는 정치공동체에 한정되기에 인류공동체의 결속을 지향하는 보편 종교와는 다르다. 한편 정치는 전쟁에서의 죽음을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종교와의 유사성을 보이기도 한다. 무엇인가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신의 부름 안에서(in their calling) 죽은 것만큼 고양되지만, 전쟁을 통한 정치공동체의 결속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계명을 실천해야 하는 구원종교인들에게는 투쟁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것에 지니지 않는다.  
   결국 구원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긴장의 연속인데 베버는 이 두 영역간의 긴장 해소를 가능하게 한 종교로 신비주의와 청교도주의를 꼽는다. 정치에는 무관심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세속적 정치권력이나 경제이익 등에 일찌감치 등을 돌리는 등 정치와의 긴장관계를 스스로 포기한 신비주의와 달리 청교도주의는 세상에 대한 캘빈주의적인 지향을 멈추지 않았다. 베버에 따르면 세상 안에서 움직이고(inner-worldly) 세상을 정복함(mastery of the world)에 있어서 캘빈주의의 합리적인 금욕주의는 동물적이고 사악한(creatural and wicked) 인간을 세상적인 ‘직업(worldly vocation)’으로 길들이고자 한다. 여기서 세속적인 직업 중의 하나가 정치이다. 물론 이 세속적인 정치는 폭력을 사용한다. 청교도주의는 캘빈주의와 마찬가지로 축복의 보편성보다는 개별성을 강조하면서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신이 부여한 계율을 가지고 세상을 구원해야하기에 폭력 사용이 통치의 주요 수단인 정치와 결합하게 된다. 결국 전쟁은 어거스틴이 그랬던 것처럼 거룩한 전쟁이나 의로운 전쟁(holy or just war)으로 의미가 부여되면서 정당화되기까지 한다.
   신정정치(theocracy)는 정치와 종교의 결합을 의미한다. 이때 정치인과 종교인은 베버가 말하는 구원귀족(salvation aristocracy)이 된다. 종교전문가(religious virtuoso)와 달리 이들은 기도하는 자인 제1신분의 성직자와 싸우는 자인 제2신분의 귀족이 결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싸우는 자로서의 귀족은 폭력을 중요 수단으로 사용한다. 구원귀족은 한 마디로 세상 구원이라는 신의 계율을 실천하기 위한 종교 전사(religious warriors)이기에 국내적으로는 폭력을 사용하면서 까지도 세상을 정화하려고 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신의 계명과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종교전쟁까지도 불사한다. 대표적인 구원귀족으로 베버가 말하는 청교도적인 전제정치(tyranny of Puritanism)를 실시한 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청교도를 들 수 있고 죄 많은 세상을 자기들의 뜻대로 교정하기 위해 정치권력을 이용한 미국이 근본주의자들을 들 수 있다.
  
3. 종교개혁을 통해본 개신교의 보편종교로서의 한계

   정치와 종교의 타협이 개신교의 경우 청교도와 근본주의자들에 의해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고 이미 종교개혁 당시부터 있어왔으며, 루터와 캘빈의 종교개혁은 정치와의 타협을 통해 정치와의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한편 사회정치적 차원에서의 주술성을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필자의 논지이다.
   루터와 캘빈은 중세 가톨릭과 다른 새로운 사고논리를 제시한다. 루터는 행위보다는 믿음을 강조(sola fide)하고 모든 사람이 사제라는 만인사제설을 제시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으로 종교의 탈주술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주술적 행위나 중재자를 통한 구원의 인간 중심적 행위보다는 신에 대한 믿음과 신의 뜻에 따른 삶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 신화적인 신의 의인화(anthropomorphism)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의인화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인간인 것처럼 설명하는 것(explanation of what is not human as though it were)으로 중세의 가톨릭이 절대자인 신을 인간을 대하듯이 대하였다는 것이다. 즉 주술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루터는 인간의 행위를 통한 신의 변화 유도 등의 행위를 중단시켰고 신에 대한 믿음과 함께 모든 사람이 사제라고 함으로써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서 그 당시 많은 주술적 모습으로 종교를 타락하게 하였던 성직자계급의 존재를 부정하였던 것이다.
   한편 캘빈은 운명예정설을 제시하면서 주술에서의 인간 중심이 아닌 신중심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킨다. 신의 주권(sovereignty)을 강조하는 것이 운명예정론의 배경이 된다. 즉 인간이 구원여부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결정권은 전적으로 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도 신의 뜻을 알지 못하기에 신의 비합리적 의지가 바로 운명예정론의 근거이며 원인이 된다. 결국 구원은 물론, 선과 진리에 대해서는 인간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캘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운명예정론을 통해 신의 주권을 강조함으로써 신의 절대성을 회복하고 동시에 종교의 탈주술화에 기여한다.
   그러나 문제는 신앙적 차원에서는 탈주술화를 이끌어냈지만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루터와 캘빈은 주술이 지니는 배타적 경계를 허물지 못하였다는데 있다. 루터는 종교를 국가 권위에 종속시킴으로써 종교의 보편성을 국가의 정치적 특수성에 함몰되게 하였고 캘빈은 선민사상을 바탕으로 신정정치를 통해 이 땅에 거룩한 공동체(Holy Community)를 세우고자 함으로써 베버가 말하는 구원귀족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정치의 배타성과 함께 폭력의 종교적 승인을 허용하였다.
   루터는 로마교회의 종교적 권위를 부정하였지만 세속적 권력인 국가를 인정하였다. 루터에 따르면 국가는 교회의 종교적 일에 대하여 간섭할 수 없지만 교회는 국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당시의 군주 또한 만인사제설과 직업소명설에 따라 신의 섭리에 따라 세워진 권력으로 간주한다. 죄 많은 인간을 다스리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도 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고 정치적 권위는 신이 부여한 것이기에 어떠한 도전도 혁명도 허락되지 않는다. 따라서 루터는 네로와 같은 독재자일지라고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평화의 유지라는 국가의 기능을 수행하는 권력자는 죄악에 가득한 인간의 본질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반항을 잠재우기 위해서 강력한 지배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루터의 국가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권고가 가져온 역사적 사건은 1524년에 있었던 농민반란과 관계된다. 만인사제설과 성서의 독일어로의 번역을 통해 신 앞에서의 만인의 평등사상을 전해들은 대다수의 농민들은 루터에게 그들의 처지를 호소하고 경제적 요구를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루터는 자기의 가르침이 정치, 특히 혁명에 확대 적용되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거부했다. 급기야 농민들은 토머스 뮌처(Thomas Muntzer)를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켰다. 이에 루터는 군주의 진압을 권고하고 동조함으로써 대규모 학살이 벌어지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루터는 신 앞에서의 종교적 평등은 이야기 했지만 사회정치적 차원에서는 신분제도를 중심으로 한 불평등을 묵인함으로서 구원종교의 보편성 지향에 있어서는 한계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루터에게 있어서 정치와 종교의 관계적인 측면에서 볼 때 더 심각한 것은 세속적 권력을 인정하는 것도 모자라 교회를 국가의 권위에 종속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성직자가 사제에서 교역자(minister)로 바뀜으로써 나타난 교회내의 권위 부재 때문이다. 루터에 따르면 교역자 또한 평신도와 마찬가지로 신의 부름을 받은 사제일 따름이다. 따라서 어떤 상태의 완전함을 지니거나 어떤 뛰어난 은총의 수혜자가 아니기에 교회 권위의 대표자가 될 수 없다. 결국 교회지도자들은 교회를 지배할 권위가 인정되지 않기에 교회의 권위를 국가에 맡기게 된다. 세속적 권위에 대한 종교적 인정과 세속적 권위, 즉 정치권력으로의 종교의 예속은 종교의 보편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모습은 훗날 나치와의 협력관계를 보였던 독일교회의 행태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세계대전 후 전쟁에 대한 책임과 비판의 대상에 루터까지도 이름이 오르게 된다.
   한편 캘빈은 운명예정론이라는 새로운 사고논리의 전제하에서 새로운 행위논리인 성찰적인 삶(Methodical way of life)을 제시하면서 금욕, 근면, 절제 등의 덕목을 제시한다. 이러한 윤리적 요구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실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즉 베버가 말하는 세상 안에서의 금욕주의(inner-worldly asceticism)를 실천하는 것인데 이것이 사회정치적 차원으로 확대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캘빈은 신성한 공동체가 이 지상에서도 가능하다는 꿈을 제시함으로써 역사 속에서도 교회를 통해 신의 나라가 똑같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신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 선택된 자들이 바로 선민이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에는 유태인에게 부여되었던 선민의 역할이 New Israel로 불리는 로마 교회로 넘어갔다가 이제는 개신교 중심의 소수에게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캘빈은 제네바를 중심으로 신의 통치, 또는 신정정치(theocracy)를 펼치고자 하였고 평신도, 교역자, 시 평의회, 행정가 모두가 신성한 공동체 형성이라는 공유하는 목적의식을 지닌 채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우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아주 엄격한 통치체제를 도입하여 사소한 세속문화까지도 엄격히 통제하려고 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신앙체계를 믿거나 실천하는 자를 추방하거나 엄벌하였고 이단자들은 화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제네바는 거룩한 공동체에의 헌신을 고백하는 사람들만 적극 수용함으로써 성인들의 도시(city of saints)가 되었다.
   문제는 이들이 세속사회의 무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캘빈처럼 신성한 공동체를 세우고자한 재침레파들은 세속적 권력과의 결별을 주장하면서 초기 원시기독공동체로의 회귀를 요구하면서 무력이나 무기의 사용을 반대하였지만 캘빈의 제네바는 세속의 정치가 지니는 통치의 핵심 수단인 물리력을 사용하였다. 또한 스스로가 종교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선민이 되어 정치권력을 행사함으로서 베버가 말하는 구원귀족이 되었다. 훗날 캘빈의 이러한 정치적 행보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신대륙으로 퍼져나가게 되었고 스코틀랜드와 뉴잉글랜드에서는 캘빈주의의 이상이 거의 실현되었지만, 영국 등지에서는 캘빈주의가 전투적 소수 또는 영적인 귀족이 되어서 다른 집단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기도 하였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예컨대 크롬웰 중심의 영국 청교도들은 영국을 '성인(Saints)'에 의해 인도되어 신의 뜻을 따르는 ‘성도(the godly)’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꿈을 펼치고자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누가 성인이냐는 것이다. 크롬웰은 의회가 성인의 집단이 되기를 원했는데 때로는 부르주아지를 대변하는 의회 의원이, 또 다른 때에는 군인들이 의회의 의원이 됨으로써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정치 집단과 자본의 독점을 지향하는 경제적 특수이익 집단을 성인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

4. 개신교 출신 대통령에게서 나타난 정치와 종교의 파행적 관계

   베버에 따르면 캘빈주의나 청교도주의가 중심이 되는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구원을 독점한 구원귀족의 종교이고 동시에 이 세상에서의 신의 축복을 독차지한 결과 경제적 독점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정신이 될 수밖에 없으며, 세상의 정화와 구원을 책임진 신의 전사로서 세속적인 수단인 전쟁을 동원하는 등의 방식으로 정치적 독점을 지향하는 등 세속적 영역과의 타협의 명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상당수의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출발부터 근대사회의 지배 체제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자본의 독점을 지향)가 부추기는 사유재산의 최대한 증식의 목표를 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하수인격인 관료주의 국가체제(폭력의 독점을 지향)의 배타성(exclusivity)을 전제하고 출발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결과로서 배타적 개신교는 독점과 배타의 속성만을 강조하는 한편 이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신의 절대성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지배적일 뿐 구원 종교의 속성인 신의 보편성에 대한 강조가 희박하다. 신에 대한 절대성의 강조는 하나밖에 없는 신(신의 이름까지도 하나뿐인 존재로서 하나님이고)의 강조로 인해 타 종교를 배척하고 자신들과 신과의 독점적인 관계만을 강조하기에 신의 은총의 독점과 함께 진리의 독점을 주장하고 세상 개혁의 독점적 지위만을 강조하게 된다.
   필리핀의 고(故) 신추기경(Cardinal Sin)은 종교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되지만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해서는 안 되는 정치는 특수이익을 추구하고 폭력의 독점적 사용을 정당화하는 정치 그 자체를 말하며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종교가 제시하는 보편적인 지향을 띤 정치적 활동이 지녀야 할 성격을 말한다.
   문제는 정치와 종교가 결합할 때이다. 정치가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되면 정치행위의 미덕인 타협과 협상을 버리고 그 자체를 절대화하게 되는 반면 종교는 정치와의 결합을 통해 개별주의적이고 특수이익을 지향하는 정책과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치는 절대화되고 종교는 상대화 되는 것이다. 만하임은 정치적 대립 관계에서 상대방을 비방하는 기제로 이데올로기를 동원한다고 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부분적인 이데올로기(partial ideology)와 전체적 이데올로기(total ideology)로 구분된다. 전자는 정치적 상대(political opponents) 사이에서 불리는 이데올로기이고 후자는 체제적 차원의 적(political enemies) 사이에서 불리는 이데올로기이다. 하나의 체제 안에서의 정당 간 대립이 부분적 이데올로기적이라면 남북 간이나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체제의 갈등은 전체적 이데올로기 차원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게 되면 정적이 적의 차원을 넘어 악의 수준에 이른다. 이 때 적은 악이 되고 자신은 선으로 승화된다. 부시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변과 북한을 포함한 악의 축 발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전개된 것으로 이들 국가는 악이 되고 미국은 선의 결정체가 된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신자 대통령들은 위에서 언급한 구원귀족의 모습을 적지 않게 보여주었지만 이들과 관련된 자료는 주로 신문 등의 언론 매체에서 나타났을 뿐이며 이들의 종교 정책이나 종교관련 정치적 행위에 대한 연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먼저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이승만의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노력에 대한 유영익의 논문은 ‘독재자’로 낙인찍힌 대통령과의 연계를 꺼리는 한국 기독교 교회사가의 소극적 분석 태도를 뛰어 넘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기독교로의 입교부터 미국에서의 유학생활과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이 보여준 기독교 편향적인 정책과 정치적 행위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안종철은 이승만이 문명개화의 일환으로 한국의 운명과 한국개신교를 동일시하였음을 보여준다. 이승만의 개신교 문명론은 미국 주도의 세계문명사적 차원의 역사인식에서 비롯되었으며 1940년대 이후에는 전체주의에 승리하기 위해 기독교문명의 선택이 민주주의를 위한 한국인의 운명이라고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이승만의 『독립정신』(1904)에서 대한독립방안의 내용과 의미를 분석한 차남희와 김지혜는 이승만에게 있어서 독립정신은 “종교를 통한 정치변혁이며 구체적으로는 기독교를 통한 민주주의 구현”이었음을 보여주면서 조선 몰락의 원인으로 간주한 유교의 대안으로 ‘변혁과 평등, 이타심’의 종교인 기독교를 선정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만은 기독교화를 통해 최강대국, 선진문명국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김영삼과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관련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는 신문기사 등에서 단편적인 사실을 보여주지만 본격적인 연구 논문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다만 한국 개신교가 보여준 정치세력화에 대한 연구 논문 등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김영삼의 문민정부와 이명박 정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예컨대 강원돈은 한국의 근본주의 세력이 미국 문명의 우월성을 찬양하고 친미, 반공의 태도를 가지고 대형교회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로 성공하면서 군사정권시절과 문민정부 시절에는 영향력을 신장하였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국가 권력을 매개로한 영향력 확대 강화의 기회가 박탈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7년의 대선에서 교회 장로 대통령 당선이 기독교인들의 사명이라고 선전한 결과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는 국가 권력에 다시금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종교 원로의 대우를 받으면서 대통령에게 자문 역할을 전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조용훈은 개신교의 정치참여 문제를 다루면서 이명박 정권의 종교편향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논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의 개신교 출신 대통령들의 종교관련 정치적 행위에 대하여 논의를 전개하면 이승만은 자기가 중심이 되어 기독교를 통한 한국의 사회정치적 구원을 도모하였고 김영삼과 이명박은 직, 간접적으로 기독교 중심적 정치 행위를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은 그 주변 인물들과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심정적 동조자로서 기독교 자체를 절대화 하면서 경제적 차원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자본 독점적인 지향을 지지하였고 사회정치적으로는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의 등장과 준동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배경이 되기도 함으로써 개신교 구원귀족의 역할을 보여주었다.  
   먼저 이승만은 한국을 아시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고 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에도 그는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공공연히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겠다고 공헌하였으며 한국의 운명을 한국의 개신교와 동일시하였다. 예컨대 1919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한인회의(The First Korean Congress)에서 앞으로 만들어질 한국은 기독교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결의문을 직접 작성하여 선포하게 하였다. 또한 이승만은 개신교와 새로운 근대 문명을 동일시함으로써 개신교문명론을 설파하기도 하였고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에는 민주주의의 기저를 기독교에 두면서 반소 ․ 반공적 태도를 명확히 하고는 하였다.
   이승만이 개신교문명론의 근저에는 조선왕조의 정치사회적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유교를 대체할 유일한 종교를 기독교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정교분리원칙에 기반을 둔 종교의 탈 제도화가 지배적인 추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여전히 공적 지배이데올로기를 추구하였고 그것을 기독교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승만의 이러한 태도는 일제의 압박의 상황에서 일제를 능가할 수 있는 나라를 갖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강대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국가의 설립이념과 정신인 개신교를 국가 종교로 삼아야 한다는 논리의 결과이다. 그는 한 나라의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이 국가의 기독교화와 비례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승만의 기독교 국가 건설의 발언은 해방 후에도 계속되었다. 예컨대 1945년 11월 28일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임시정부요인 환영회에서 김구와 김규식에게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겠다고 하면서 교회가 건국이념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을 피력하였다. 1948년에는 오하이오 주에서 열린 미국 및 캐나다 해외선교위원회 간부 및 위원 총회에 참석하여서도 기독교 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또한 이승만은 1948년 5월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장이 되면서 제1대 국회 개원에 앞서 식순에도 없던 순서로 한 목사 출신 의원에게 기도를 하게 하기도 하였다. 헌법이 공포된 1948년 7월 17일에 있었던 정동제일교회에서의 국회의원 환영회에서는 국회의원 전원과 서울시내 주요 교회 대표들이 자리를 같이 하기도 함으로써 신생국가와 개신교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취임사에서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직무를 다하겠다고 맹세하였고 ‘문벌타파’, ‘빈부동등’, ‘남녀평등’, ‘지방구별 삭제’를 핵심으로 하는 자신의 ‘일민주의’ 사상을 피력하면서 그 근거로 하나님을 언급함으로써 개신교가 민주정체의 근본임을 주장하였다. 재임하는 동안에도 비공개적으로 또는 준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지원하면서 기독교 이념에 기초한 국가를 건설하려 하였는데, 일례로 국기에 대해 머리 숙이는 것을 주목하는 것으로 바꾸는 등 국가의례를 기독교식으로 거행하게 하였다. 또한 이승만은 군목제도와 군종제도, 그리고 형목제도를 만들기도 하였다.
   유영익은 1910년대의 200,000명에 불가했던 개신교 신도가 1960년에 1,140,000으로 증가하는데 있어서 이승만의 노력이 한 몫을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강국이 된 것은 이승만 집권기에 이미 그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이승만이 보여준 또 다른 형태의 기독교 지원은 내각 구성에 있어서다. 장차관급의 다수가 기독교인이었는데 부차관급 이상은 38%가, 부장급 이상 장관, 차관은 42%가 기독교인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만 집권기에 있었던 정교유착은 당연한 것이었고 특히 선거기간 중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자유당은 기독교 단체들로 하여금 이승만과 이기붕에게 투표하라고 요구하였고 1956년의 정부통령선거와 1960년의 선거에서 『기독공보』는 기독교인이 대통령과 부통령에 당선되어만 한국이 기독교 국가로 완성된다면서 이들의 지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나 유영익은 이승만은 집권 12년 동안 헌법의 선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 등을 고려하여 공개적으로나 배타적으로 기독교를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공식 ․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한국의 기독교화를 추진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는데 그것은 WCC가 공산권교회와의 관계로 용공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승만 이후 대통령에 오른 개신교 신자는 김영삼이고 현 대통령인 이명박이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때의 교회(여기서는 개신교)와 정치와의 관계는 반공체제유지와 정교유착으로 특징지어진다. 정부는 교회에 대하여 직접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면서 타종교와의 관계에서 편파적인 모습을 보였다. 3공과 유신, 5,6 공의 군사정권 때에는 정부의 종교 통제 강화와 국가종속화가 제 종교에 대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6월 항쟁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 역할이 무익해졌고 정부는 무개입의 원칙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른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에 따른 정책을 펼치었고 제 종교들 또한 원칙적으로 종교 간의 화합과 종교 연대 및 협력의 성격을 내세웠다.
   그러나 문제는 개신교 신자가 대통령이 되면서 보수적인 개신교 집단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데 있다. 기본적으로 이들 보수적 개신교 집단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였고 동시에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사상에 경도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사회주의는 물론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에 부정적이며 사유재산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시장경제논리를 적극 지지하기도 하였고 영혼과 육체의 구원에 덧 붙여 물질축복의 논리를 피기도 하였다. 예컨대 정교분리원칙에 따라 정치 불간섭 입장을 보이던 보수적인 개신교회는 김영삼 대통령 당선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개신교계의 카리스마적인 종교지도자들은 쇠고기 협상이나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 등의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이명박 정권을 적극 옹호하였다.  
   문제는 이들의 종교적인 욕구와 이데올로기적 욕구를 개신교 신자 출신의 대통령들이 때로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때로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리고 때로는 심정적으로 때로는 실제적으로 충족시켜주었다는 데에 있었다. 단지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대통령 후보나 대통령으로서의 언행이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사회정치적 행보에 동기적인 상황(motivational situation)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 시장 시절 이명박은 2004년 5월 31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청년학생연합기도회’에서 서울시장 이름으로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라는 봉헌서를 읽기도 하였고 부산에서 불교사찰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종교집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5년에는 청계천 복원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라고 발언을 해 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시장 재임 시 시청 앞에서의 집회를 기독교 단체에는 허락했지만 불교 단체의 집회는 허락하지 않는 등 논란거리를 불러오기도 하였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취임 직후 뉴 라이트 성향의 목사를 불러 청와대에서 예배를 봤고 특정 교회의 기념행사에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낸 반면, ‘부처님 오신 날’에는 봉축 축전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종교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한편 김영삼은 국군중앙교회에서 예배를 볼 때 기독교인 장병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타 종교인들을 경계 근무자로 변경한 사건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고 성직자 양성 전문대학원을 추진했다가 개신교 교육체계를 기준으로 한 교육관계법 시안이라는 비판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종교관련 스캔들은 신앙인이면서 정치인인 이들 대통령 개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개신교가 지닌 전반적인 문제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앞서 언급한 바의 종교의 재주술화와 근본주의적 행태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하겠다. 종교의 보편성이 무시되고 종교 자체의 절대성이 강조되면서 뒤따르는 현상은 경제적이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주술의 강화이며 사회적이고 정치적 차원에서는 근본주의의 출현이다. 주술은 현대사회의 지배체제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에 종교가 동의하면서 사적 이익의 극대화를 물질 축복의 이름으로 종교가 정당화함으로써 발생하였다. 근본주의는 전 국민의 기독교 신자화를 통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기독교의 지상과제를 스스로를 선민으로 간주하는 종교지도자들이 정치권력을 빌려 도모하는 과정에서 등장하였다. 특히 이 두 번째가 정치적 차원에서 구원귀족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따라서 구원귀족의 관심사는 기본적으로 자기 종교의 진리의 절대성에 바탕을 둔 진리의 독점을 전제로 하기에 타 종교집단에 대한 배타적 행태를 서슴지 않는다. 또한 종교 자체 세력의 힘으로는 감당하기가 힘들기에 사회구원을 위해 정치적 힘을 한껏 활용하는데 정당을 만들거나 특정 정치인을 대선과 총선 등에서 지원한다.
   결국 미군정기와 이승만 정권 시절에 가능했던 정교유착이 선거과정을 통해 다시금 가능해 졌고 이승만 정권 때처럼 다수의 장차관이 기독교 신자로, 그리고 특히 특정 교회를 중심으로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의 서울 시장 재보선에서 시장 후보에 대한 사탄 발언을 일으켜 물의를 일으킨 김홍도 목사는 “기왕이면 예수님을 잘 믿은 장로가 대통령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기도 하였다. 특정 정당에 대한 개신교 지도자들의 공개적 지원 또한 적지 않았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인수위 때부터 자신이 다니는 소망교회 중심의 개신교도들로 인수위를 꾸렸고 초기 내각의 각 부처 장관은 물론 청와대 수석의 상당수를 개신교도로 충당하였다. 이들 24명 중 14명(60%)이 개신교 신자로서 앞서 언급한 이승만의 장차관급 인사 42%에 훨씬 웃도는 현상을 보임으로써 기독교 코드 인사의 논란이 불거졌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 김영삼과 이명박 정권은 개신교 이외의 종교와 갈등을 벌이기도 하였고 이러 저러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 자신들은 정교분리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추종하는 관료나 그를 지지하는 종교인들은 정교분리원칙에 어긋나는 언행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급기야 몇몇 개신교적인 신념을 가진 공직자들 또한 노골적으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근대사회의 기본 원칙이며 약속임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신념을 공적인 자리에서 표방하는 등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청와대 경호처 간부는 “모든 정부 부처를 복음화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고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회양극화는 신앙심의 부족 탓”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경찰청장은 목사와 나란히 서서 경찰복음화 포스터를 제작해 일선 경찰서에 게시하도록 하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개신교 출신의 대통령 등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개신교 종교집단에 있다. 개신교 대통령 후보를 적극 지지한 한기총 등의 출현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근본주의자는 한국에 없었다. 기독교의 근본원리를 믿는 자들은 복음주의자이고 이들이 반드시 근본주의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을 전후로 해서 수면아래 있던 기독교 보수 세력이 공격적인 대사회적 자세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의 반공이데올로기에 따른 반북정서와 친미주의적 정서가 확대되어 미국의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로 간주하고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조와 함께 반미적인 행태를 악으로 규정하고 미국이 표방하는 경제정책, 즉 신자유주의적이며 경제 패권주의적 행태에 대하여 무조건 승인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아울러 다른 종교에 대한 공격 또한 강화함으로써 타 종교에 대해 차별적 태도를 보인 정권을 적극 옹호하는 동시에 이에 힘입어 타종교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절대 악으로 규정하는 행동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점차 근본주의적 색채를 지니게 되었고 때로는 근본주의적인 공격적 행태를 보이기도 하였다.
   종교가 정치적 속성을 띠고 사회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이 종교의 공적 재등장이라면 그것은 담론의 장에서 이루어지기에 지극히 근대사회의 사회계약적인 동의에 기초하는 것이지 근본주의자들처럼 일방으로 공격적인 투쟁적 모델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종교의 탈국교화 등의 헌법적 차원의 약속에 기반을 둔 것으로 이러한 맥락에서 타 종교와의 공존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가 주는 신념에 바탕을 두고 타종교에 대하여 공격을 서슴지 않는 것은 커다란 사회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의미체계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종속, 즉 사회와 문화에 대한 종교적 목소리에 대한 영향력의 감소에 대한 저항의 의미보다는 사회의 반미적 성향, 친북적 성향, 반신자유주의적 성향 등에 대해 거부하는 이른바 정치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기독교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주술성과의 결합이 부의 축적과 신으로부터의 축복을 동일시하게 하였으며 부의 축적을 수월하게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와 기능을 만능 시 하게 하였고 부의 축적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멀리하게 하였다.

5. 나가는 말

   투쟁 모델로서의 공적 재등장을 꾀하는 근본주의자 등의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다원주의 사회를 결집시키는 규범, 즉 모순된 관점이나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 타인에 대한 개인의 도덕성 부과의 금지 등의 시민사회의 담론의 장을 파괴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종교의 가치는 절대적이지만 정치적 또는 경제적 행위와 연결되면서 상대적 가치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종교의 정치적 역할은 없는 것인가. 과연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에 총체적으로 대답해야할 종교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초연해야 할 것인가. 문제는 이럴 경우 현상(現狀, status quo)의 암묵적 지지로 나타날 수가 있다는데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종교가 정치적 행위를 한다면 그 행위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기준은 보편적 가치에 두어야 할 것이다. 특정한 종교집단이나 종교인의 특수한 이해관계에 얽매어 정치적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종교의 보편성을 저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정치적 행위는 종교가 내세우는 보편적 가치의 빛 아래에서(in the light of) 인간의 정치적 삶과 경제적 삶을 비추어 보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정 정치집단과의 친화적 관계를 유지하거나 정권장악을 위한 정당을 종교의 이름으로 구성하는 행위는 모두 보편적 정치행위라고 말할 수가 없다. 특정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을 만들어 선거에 임하는 것은 결국 정권을 잡겠다는 것이며 특정 종교의 이름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현대사회의 약속인 정교분리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개신교가 취해야 할 방향에 대해 하나의 제안을 하고자 한다. 절대적인 존재는 신이지 기독교가 아니다. 신은 절대성을 지니지만 기독교는 절대성을 지니지 못한다. 기독교는 역사성(historicity)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인간의 이야기인 역사는 절대 절대적이지 않다. 교회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버려야 한다. 종교 자체의 절대성에 대한 집착은 종교의 보편성 상실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의 여러 상대적인 제도나 기관의 하나로 스스로를 낮출 필요가 있으며 이들과의 비교우위에 있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기독교가 추구해야 할 것은 신의 보편주의 정신(spirit of universalism)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와의 결합을 통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반복하지만 보편주의의 퇴행은 개인적으로는 주술을 낳고 사회정치적 차원에서는 근본주의의 출현만 가져올 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종교개혁으로 이어진 개신교의 역사적 형성과정에서 나타나는 보편성의 상실과 구원귀족으로서의 정치와의 타협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드러내는데 있었다. 이는 사회적 실체를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사회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한국의 개신교 출신 대통령과 개신교가 정치와의 관계에서 드러낸 종교의 보편성 상실과 구원귀족적인 행태에 대한 개괄적인 논의를 전개한 본 연구는 보다 깊이 있는 탐구를 위한 예비적 단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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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ension and Compromise between Religion and Politics:
Roles of Salvation Aristocracy of Protestant Korean Presidents

                                                                                                               Jung Tai-sik

   Through the world history the immanent tension between religion and politics has very often been solved in a way of compromise. Essentially, the politics centered on policy and strategy stands opposite to honesty and morality centered religion. Thus, when religion and politics join each other, politics with compromise as its virtue is to be absolute and sublimated to the level of religion, while religion, by way of accepting compromise, the means of politics, is to lose its absoluteness, and degrade into a relative value because it becomes subsidized into the particularity that is characteristic of politics. Also, when religious persons practice politics, or politicians do politics in the name of religious conviction, they all become salvation aristocracy, who take advantage of the physical force(or violence), the main means of political power for the sake of the realization of socio-political salvation. Then, as religion loses its universalism, there emerge magic on the level of individual, and fundamentalism on the socio-political level.
   Rhee, Syngman, Kim, Young-sam, and Lee, Myung-bak, the Korean presidents of Korea as Protestant Christians has unfolded actively the feature of salvation aristocracy in the midst of their being presidency. Rhee, Syngman tried to build Korea into a Christian country, but his regime ended with the name of dictator.  Kim, Young-sam and Lee, Myung-bak showed directly or indirectly Protestantism-centered political actions. Especially, as the mental sympathizers of surrounding conservative Protestants, they have absolutized the Christianity, supported the neo-liberalist monopoly of capital, and become the main body or background of the emergence and maneuvering of Christian fundamentalism. Thus they have acted as salvation aristocracy of Korean Protestantism.  

Key Words
Religion and Politics, Reformation, Salvation Aristocracy, Religious Universalism, Tension and Compromise of Religion and Politics, Fundamentalism, Magic, Rhee, Syngman, Kim, Young-sam, Lee, Myung-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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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2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부치는 신학적 성찰


                                                                                 조현철 (서강대신학대학원 교수/ 조직신학)


초록

이 글은 시작되기 전부터 격렬한 사회적, 생태적 논란을 일으켜온 “4대강 살리기 사업”을 계기로 살펴본, 오늘날 지배적인 자연관에 대한 비판적인 신학적 성찰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 곧 자연의 개발은 자연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자연 생태계는 하느님이 창조한 것이며, 생태문제의 근본 원인은 피조물인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있다. 오늘날 인간과 자연의 관계의 형성에 기여한 주요 요인들로는 근대 이후 등장한 기계론적 세계관, 여기서 비롯되는 자연에 대한 인간중심의 도구적 관점, 과학적 낙관주의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생태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이 요인들이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의 하느님 중심의  세계관은 이 요인들을 효과적으로 다루면서, 오늘날 바람직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의 기초를 제공해줄 것이다.

주제어
4대강 사업, 기계론적 세계관, 인간중심의 도구적 관점, 과학적 낙관주의, 하느님 중심의 세계관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경제성장이다. 그리고 자연의 개발은 경제성장의 중요한 수단이 되어 왔다. 인간은 처음부터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자연을 개발하여 이용해왔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오늘날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자연 생태계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의 대규모 개발이 생태문제 발생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면서, 개발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격화되는 경우가 자주 생겨났다. 경제성장이 지상목표인 한, 자연의 개발을 둘러싼 생태적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생태문제는 현상적으로는 자연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요컨대, 생태문제의 근저에는 우리가 인식하는 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태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은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현 정부가 추진해온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이하, 4대강 사업)’은 그 목표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 격렬한 논란과 첨예한 대립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볼 때, 4대강 사업은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의 피조물인 자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다. 또한 이 사업은 피조물인 인간이 같은 피조물인 자연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자연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생태문제의 근본적인 접근을 염두에 두고, 이 사업의 근간에 놓여 있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검토한 후, 이를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자연에 대한 바람직한 관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4대강 사업의 개요와 그리스도교 내의 찬반논란을 포함한 주요 쟁점들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4대강 사업의 개요와 주요 쟁점들

현재 우리나라의 4대강, 곧 금강, 낙동강, 영산강, 한강에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은 ‘경부 운하’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서 비롯되었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경제성이 없다는 여론으로 취소되었지만, ‘4대강 물길 잇기’, ‘4대강 하천정비’ 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계속 추진되어 왔다. 4대강 사업은 3년 6개월의 공기에 22.2조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이 사업은 우리나라의 홍수 예방, 물 부족 해결, 수질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일자리 창출과 4대강의 생태계 회복 등도 함께 겨냥하고 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준설(浚渫)과 보(洑) 건설에 있다. 곧, 준설을 통하여 강바닥에 쌓인 더러운 퇴적물을 긁어내어 평균 수심 7.4m를 유지하고 16개의 보 건설을 통해서 물을 확보하는 것이 사업의 주요 내용이다.
사업 시행 이전부터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던 4대강 사업은 그동안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이제는 거의 완공 단계에 도달했지만, 이에 대한 찬반양론은 아직도 끊이질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4대강을 포함한 국가하천 정비의 97.3%를 완료했다는 2006년 당시 정부(건설교통부)의 발표가 4대강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현 정부의 주장에 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4대강 사업의 목표인 홍수예방, 물 부족 해소, 수질개선의 필요성 여부, 이에 따른 준설과 보 건설의 타당성, 그리고 이 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강의 생태적 조성의 가능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1) 홍수예방
정부는 우리나라에 빈발하는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4대강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 거의 매년 홍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홍수의 구체적인 실상을 보면, 4대강 사업을 통한 홍수예방이라는 목표의 설득력은 상당히 떨어진다. 우리나라의 홍수는 대부분 국가 하천이 아니라, 지방하천이나 소하천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산사태와 계곡물의 범람이 홍수 피해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의 홍수가 4대강이 아닌 곳에서 일어나며, 홍수 피해 대책도 4대강이 아닌 지천과 샛강에 필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4대강의 홍수 예방이란 목표는 애초부터 잘못된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2) 물 부족 해소
우리나라에 물이 부족한 지역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4대강의 보 설치로 물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홍수 예방 계획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물 부족의 원인은 주로 물의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에 있다. 곧, 도시지역에는 대부분 물 공급이 충분하고, 물 부족을 겪고 있는 곳은 일부 산간농촌지역과 도서지역이다. 그렇다면, 해발이 낮은 4대강의 물 확보를 통하여 물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다. 더구나 준설로 수심을 깊게 하여 물을 더 확보한다고 해도, 하천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는 일정량 이상의 유지용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용가능한 물이 더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물 부족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가용 수자원의 지나친 하천의존율을 꼽을 수 있으며, 이를 고려하면 물 부족의 해결책은 강물의 확보가 아니라 지하수 활용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3) 수질개선
현재 4대강의 실제 수질은 수질개선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한강은 1급수에 가까운 수준을, 낙동강은 2급수의 수준을, 금강과 영산강은 1급수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4대강 사업의 핵심 내용인 보 건설과 준설은 수질 개선이란 목표 자체에 역행한다. 보가 건설되면 물이 고이고 결국 오염 퇴적물이 축적될 수밖에 없게 되며, 단기간의 대규모 준설은 강바닥에 쌓여 있던 유해 성분들을 강물 전체에 섞어놓아 강물을 오염시킬 것이다. 또한 준설은 우리나라 강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천연적인 수질 개선 기능이 있는 모래층을 제거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4) 일자리 창출과 생태적 조성
4대강 사업이 대규모의 일자리 창출과 강의 생태적 조성에 기여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먼저,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의 성격상, 4대강 사업으로 실제 발생될 일자리의 수는 상당히 제한적이고, 일자리의 질 또한 매우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대규모의 인위적 변화를 뜻하는 4대강 사업은 근본적으로 생태적일 수 없다. 강의 생태적 조성은 근본적으로는 강 자체에 맡길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아름다울지라도, 인공적으로 변화된 강을 생태적 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5) 그리스도교 내의 찬반 논란
4대강 사업은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격렬한 찬반 논란을 불러왔고,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의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 표명이 활발해진 것은 상당 부분 1990년대 이후 성장해온 종교계 내의 환경운동 덕분이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생태적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에서 확산되면서, 신학 전반에 대한 생태적 성찰과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져왔다.
개신교는 교단에 상관없이 자연을 하느님의 피조물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4대강 사업이라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교단에 따라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령,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현재의 공사 진척율, 물 부족 문제 해결, 지역 활성화 등을 이유로 4대강 사업에 대해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반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등은 하느님의 창조질서 훼손, 인간의 경제적 욕심과 탐욕에서 비롯된 무분별한 개발, 생명의 옹호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중대한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 비교적 일치된 견해를 표명해왔던 천주교에서도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들이 표출되었다. 천주교 전체 차원에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2010년 춘계 정기총회를 마치며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서 처음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하지만 그 해 12월 8일, 서울대교구장은 주교단의 성명서의 입장을 뒤집는 발언으로 천주교 내에서 찬반 논란을 일으켰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천주교 원로 사제들 일부는 각각 성명서와 기자회견을 통해서 서울대교구장의 발언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였다. 4대강 사업은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도 찬반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신자들은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4대강 반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한편, 서울대교구장의 발언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천주교 일각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천주교 원로 사제들의 기자회견을 비판하는 청원서를 바티칸 법원에 제출하면서 4대강 사업의 지지를 표명했다.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쪽의 주장에서는 신학적 관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이 사업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었다는 현실론, 개발을 통한 경제적 효과, 국책사업, 국론분열 반대 등을 들어 사업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대체로 정부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며, 적어도 신학적 관점에서는 찬성 근거가 빈약한 실정이다. 이에 비해 반대쪽의 주장에는 신학적 관점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하느님의 창조질서의 존중, 신학적 인간학에 근거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 기계론적 세계관, 인간의 과도한 탐욕을 부추기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비판 등이 포함되어 있다.

2. 4대강 사업에서 드러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기계론적 세계관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한 가운데서도 4대강 사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4대강 사업이 거의 완결된 이 시점에서, 사업 목표의 타당성과 관련해 어느 쪽의 견해가 옳은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한편, 4대강 사업은 오늘날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관점을 잘 드러내준다. 자연에 대한 관점은 우리가 자연과 관계를 맺고 자연을 다루는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생태문제의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1) 자연에 대한 인간중심의 도구적 관점
4대강 사업의 핵심인 대규모 준설과 다수의 보 건설은 4대강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산을 허물고, 강의 흐름을 바꾸고, 바다를 메우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여 자연이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만드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자 과제로 여기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중심의 도구적 관점이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4대강 사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4대강 사업은 전적으로 인간의 필요와 요구에 입각해 있으며, 강은 이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간주된다. 강의 흐름과 구조를 인간의 필요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며, 이에 비해 강의 자연스러운 상태나 흐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근대 이후의 서구 역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확대,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 뒤에는 기계론적 세계관이라는 자연에 대한 특정 관점이 자리 잡고 있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과 자연을 사유주체와 사유객체라는 서로 전혀 다른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이원론적 관점에 기초한다. 이로써 인간과 자연은 서로 분리되었고, 자연은 공간을 차지하는 사물이나 수많은 부품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계로 간주된다. 여기서부터 자연에 대한 인간중심의 도구적 관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사물이나 기계로 간주되는 자연보다 우월하다. 기계의 존재 이유는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봉사에 있고, 사물의 가치는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유용성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제는 자연이 인간을 위해 제대로 봉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에 내포되어 있는 인간중심의 도구적 관점은 자연을 우선적으로 인간의 편리, 이익, 유용성의 차원에서 파악하며, 자연 자체의 의의와 본질적 가치는 부차적인 고려 대상에 불과하다.
기계론적 세계관에 내재된 자연에 대한 지배와 통제의 경향은 인간중심의 도구적 관점이 자연에 실제로 구현되는 것을 용이하게 해준다. 물질이나 기계로 &




신학사상 2012년 여름호(157집) 차례
신학사상 2011년 겨울호(155집)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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