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소개
 
 
연구소 약사
 
 
연구소 소식
 
 
민중신학 자료
 
 
독자마당
 
 
월간살림
 
 
신학사상
 
 
신간안내
 
 
도서신청
 
 
관련 사이트 링크
 
 
안병무 선생님
 
신학사상 총목차 연구논문 투고규정 안내 신학사상 원문서비스


  한신연 
 신학사상 2012년 여름호(157집) 차례


이번 호에는

구약학 분야의 장석정 관동대 교수는 “아홉 째 재앙(출 10:21-29) 이해”라는 구약학 논문에서 출애급 과정에서 발생한 열 가지 재앙들 가운데 아홉 째 재앙인 흑암이 내리는 재앙의 본문에 대한 구성비평적 연구를 했다. 장 교수는 이 연구에서 애급 땅은 흑암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고센 땅은 빛으로 구별되어 이렇게 구별된 땅에 각각 흑암과 빛이 있도록 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이 흑암의 재앙이라는 분석을 했다.  
박철우 나사렛대 교수는 “히에로니무스 전도서 주석의 알레고리적 특징에 대한 재평가”라는 논문에서 지금까지 많은 영감을 주는 히에로니무스의 전도서 주석이 알레고리 주석이라는 평가 때문에 부정적으로 취급된 것에 대한 재평가를 했다. 단적으로 정량적 검토 결과에 따르면, 주석 총 줄수 3799줄중 622줄만이 알레고리적 해석이다. 이것은 백분율로 전체 줄수 중 16.4%만이 알레고리적 해석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히에로니무스의 주석 대부분은 문자적 해석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었으며, 본문의 상호연관성(intertexuality)과 정경적 관점(canonical view)을 전제로 한 해석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종교철학 분야에서 신은희 경희대 교수는 “지젝의 기독교 비평연구: ‘사신(死神)’신학에서 ‘초혼(招魂)’신학으로”라는 논문에서 유물론적 신학자로 자치하는 슬라보이 지젝이 정통신학과 유물론적 신학을 병렬시키며 자신의 고유한 신 개념과 그리스도의 죽음 해석을 ‘신학화’ 시켜 나가는지를 고찰했다. 그리고 그가 강조하는 신의 죽음으로 탄생되는 ‘성령’ 개념이 어떻게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혁명의 주체인 ‘이웃’의 개념과 만나 실천 신학의 초월적 기표를 형성하게 되는지 살펴봄으로서 지젝이 강조하는 신학적 함축성과 한국적 상황에서 급진적 실천 신학의 가능성을 재고해 보려고 했다.  

기독교윤리 분야에서 조용훈 한남대 교수는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의 현황과 미래적 과제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빈곤문제가 다시금 우리사회의 중요한 사회이슈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의 사명으로 빈민선교와 지역공동체운동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실천적 방법을 제시한다.  

김상기 남서울대 교수는 “문화적 폭력으로서의 아모스의 마르제악과 한국 명품문화 연구: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아모스의 예언서(암 6:4-7)에서 언급된 ‘마르제악’ 현상을 문화계급이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동시에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화적 차별화 욕망 현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명품문화’를 분석한 후,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문화적으로 영속화하려는 메커니즘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하나의 ‘대항문화’이자 ‘문화소통의 장’으로서의 교회공동체를 검토하고 있다.

김현수 장신대 강사는 “오늘 우리를 위한 디트리히 본회퍼: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막스 스택하우스와의 비교를 통하여”라는 논문에서 신학이 공공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세 가지 질문을 가지고 막스 스택하우스와 디트리히 본회퍼의 공공신학을 비교분석했다. 세 가지 질문은 첫째, 공공신학은 무엇인가? (정의) 둘째, 왜 신학은 공적인 영역으로 나가야 하는가? (이유) 셋째, 어떻게 신학은 공적인 영역으로 나아가는가? (방법)이다.

교회사 분야에서 최영근 한남대 전임교목은 “한국 기독교에서 교회와 국가 관계: 선교초기부터 해방이전까지 정교분리 논의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정교분리는 종교의 자유와 종교 본연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정치적 중립과 정치 불간섭을 표방하는 종교적 신념이지만 또한 주류 개신교의 사회 종교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수사학의 기능을 하면서 다양한 맥락에서 복잡한 의미를 지녀왔음을 분석하고 교회가 본연의 순수성을 지킴과 동시에 그 바탕 위에서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권진호 목원대 강의전담 교수는 “종교개혁 초기의 설교 소책자”라는 논문에서 종교개혁에서  소책자 그리고 설교 및 설교소책자가 갖는 의미를 파악하였다. 그리고 세 사람의 종교개혁자 루터, 케텐바흐, 귀텔의 설교소책자를 분석했는데, 그 결과 이 설교들의 중심 내용이 칭의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분석에서 나온 결론은, 초기 종교개혁은 루터의 신학, 무엇보다도 칭의론을 중심으로 하여 동질적으로 전개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편집후기

전통적 신학은 상아탑 대학에서 추상적 관념론에 의한 신 이해에 근거했다. 그러나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 인간과 무관한 관념의 신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관계를 가진 신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바로 알려면 세계와 인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세계와 인간을 배제하고 성서만 연구한다고 신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신학은 과거 신학지식의 답습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성서적 성찰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가 염려하는 위기의 본질은 바로 세계와 인간을 무시하고 추상적 관념의 신을  교리화하여 믿는데 있다. 세계와 인간과 유리된 신앙을 정통으로 생각하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은 교회와 무관한 정치 행사가 아니라 우리나라와 교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다. 따라서 신학자들은 이미 끝난 총선에 대해서도 분석과 평가를 해야 하지만 앞으로 올 대선에 대해서도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이 아니라 성서에 근거해서 대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밝혀야 한다.
국민들의 주인됨의 권리가 제한받고, 서민들이 고통 받고, 남북관계가 더욱 적대화되는 불안한 사회현실을 외면한 교회, 신학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차 례 (157집)              

연구 논문

장석정 ․ 아홉 째 재앙(출 10:21-29) 이해
박철우 ․ 히에로니무스 전도서 주석의 알레고리적 특징에 대한 재평가
신은희 ․ 지젝의 기독교 비평연구: ‘사신(死神)’신학에서 ‘초혼(招魂)’신학으로
조용훈 ․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의 현황과 미래적 과제에 대한 연구
김상기 ․ 문화적 폭력으로서의 아모스의 마르제악과 한국 명품문화 연구: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을 중심으로
김현수 ․ 오늘 우리를 위한 디트리히 본회퍼: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막스 스택하우스와의 비교를 통하여
최영근 ․ 한국 기독교에서 교회와 국가 관계:
           선교초기부터 해방이전까지 정교분리 논의를 중심으로
권진호 ․ 종교개혁 초기의 설교 소책자

========================================================================================
(논문 소개)1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의 현황과 미래적 과제에 대한 연구


                                                                                                조용훈 (한남대 교수/ 기독교윤리)


초록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빈곤문제가 다시금 우리사회의 중요한 사회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가난한 자들의 교회였으며,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회였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교회성장의 시기를 지나면서 가난과 먼 교회가 되었다. 이같은 비판적 상황인식에서 출발한 이 연구는 빈곤문제를 빈민선교와 지역공동체운동의 관점에서 다룬다.
   우리나라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행려자를 위한 무료급식소인 밥상공동체로서 다일공동체가 대표적이다. 둘째, 노숙인을 위한 쉼터인데 원주밥상공동체를 예로 들 수 있다. 셋째, 이주노동자의 권익향상과 지역사회로의 통합을 위한 이주노동자센터로서 안산이주민센터가 잘 알려져 있다. 넷째, 빈곤아동의 보육을 위한 공부방운동인데 많은 교회가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숙인이나 빈민을 위한 인문학강좌로 최초의 시도인 성프란시스대학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빈민공동체운동들은 그 대상과 사업내용에 따라 각기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나 복음에 기초한 가난의 극복과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형성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노력들이 빈곤문제 해결을 통해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교회의 사회적, 선교적 역할을 다하려면 우선 신학이론적 토대가 확고해야 한다. 여기에는 사회선교로서 빈민선교의 이해, 가난의 신학과 영성에 대한 이해,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요청된다. 다음으로,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 과정에서 생겨나는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실천적 과제 해결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첫째, 교회의 긍휼(구제)사역의 방법론의 재고, 둘째, 에큐메니칼 정신과 네트워킹 능력 함양,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참여의 리더십이 포함된다.

주제어
빈민공동체(운동), 가난, 빈민선교, 공동체신학, 가난의 영성, 긍휼사역

                                
1. 서론

   우리사회에서 ‘빈곤문제’가 다시금 사회와 정치의 핵심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1960-70년대에 근대화(산업화와 도시화)로 말미암는 빈곤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198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과 소비사회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간과되었던 빈곤문제가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 경제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형태로, 말하자면 절대적 빈곤만 아니라 상대적 빈곤 형태로 부각되고 있다. 워킹 푸어니 하우스 푸어니 하는 새로운 형태의 빈곤은 고용없는 성장, 사회적 안전망의 붕괴, 비정규직 확산, 실업자의 증가 등 여러 가지 구조적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고 있다.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은 성서의 중요 관심사였다. 한국교회 역시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 혹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로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도시산업선교나 도시빈민선교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신학과 목회의 관심을 기울였다. 민중신학과 민중교회 운동이 생겨난 것도 이 때였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들어 교회가 양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부요하고 정치적으로는 힘있는 집단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가난한 계층에 대한 관심은 줄게 되었다. 물질적 성공이 영적 은혜나 축복과 동일시되는 상황에서 가난은 저주로까지 인식되게 되었다.  
   이런 비복음적 상황에서 지역사회 공동체운동의 관점에서 빈곤문제를 다루는 이 연구는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의 유혹 때문에 가난한 자에 대해 무관심해진 한국교회 현실을 반성하도록 요청하며, 성서의 정신에 따라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나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교회’로 거듭나도록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이 연구의 주제인 빈민공동체운동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활발한 편이다. 신학적 관점에서 민중신학이나 민중교회론에 기초한 연구도 적다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하는 지역공동체운동으로서 기독교 빈민운동과 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충분치 않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근 한국교회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지역공동체운동이 태동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빈민들의 삶의 조건들의 개선을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선교사역을 수행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빈민공동체운동이 시도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진행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선, 행려자를 위한 밥상공동체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다일공동체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노숙인 쉼터와 자활공동체들 가운데에서 원주밥상공동체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외국인노동자 공동체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안산이주민센타에 대한 연구는 공동체의 설립자인 박천응 목사에 의해 상당히 심층적으로 이루어졌다. 빈곤아동의 보육공동체인 공부방(혹은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연구는 주로 (지역)사회학적 관심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숙자나 빈민을 위한 인문학 강좌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인 보고서나 신문․잡지에 소개된 글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인문학 강좌가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새로운 형태의 빈민 학습공동체운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연구는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도시빈민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공동체운동의 관점에서 탐색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먼저 그동안 기독교에 의해 시도된 도시민빈공동체운동의 개념과 역사를 살펴보겠다. 그런 다음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즉, 행려자 밥상공동체, 노숙인 쉼터, 이주노동자 생활공동체, 빈곤아동 보육공동체, 그리고 노숙인 학습공동체를 각 공동체의 역사와 이념, 그리고 활동내용을 중심으로 분석해보겠다. 그런 후에 이런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이 활성화되는데 요청되는 신학적·실천적 과제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순서로 연구를 진행하겠다.

2.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의 개념과 역사

1)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의 개념과 의의
   일반적으로, 빈곤을 논의할 때 절대빈곤을 우선적으로 문제 삼는다. 절대빈곤이란 한 가구가 최저수준의 식품, 주거, 피복을 조달할 수 없는 상태로서, 물질적으로만 아니라 정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도 소외된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의 연구주제인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이란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여 이러한 소외상태에 있는 도시빈민이 객체(시혜의 대상)로 머물지 않고 주체가 되어 다양한 사회, 경제, 정치, 문화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며, 자신의 삶의 조건들을 인간답게 바꾸어 나감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기여하려는 기독교의 신앙공동체운동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이 우리시대의 사회와 교회에 갖는 의의는 여러 가지이다. 첫째, 대안사회운동 가운데 하나로서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질서 아래 심화되는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현실 자본주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정치적으로는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위한 정치를 모색하는데 기여한다. 둘째, 공동체운동으로서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지역공동체 형성을 돕는다. 도시에서의 삶은 익명성과 극단적 개인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계층간의 위화감도 커서 빈민이나 장애인의 집단거주가 아파트 값을 떨어뜨린다고 차별하기까지 한다.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빈곤계층에 대한 차별이나 배제 대신 연대(solidarity)를 강조함으로써, 주민사이의 무관심이나 경쟁적 삶의 방식 대신에 공동체적 상생 관계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셋째, 교회갱신운동으로서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1980년대 이후 ‘부자교회’로 이미지화된 한국교회의 영적 갱신을 돕는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는 사회적 양극화만 아니라 교회간 양극화 문제도 생겨나게 했다.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한국교회의 성공지향적인 신앙문화와 개교회 성장주의 문제를 반성하고 지역사회와 밀착된 새로운 목회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반 시민사회나 지역사회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게 만들 수 있다.

2) 우리나라 도시빈민의 형성배경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고대사회에서부터 구황, 한해, 병충해, 그 외의 각종 자연재해로 말미암는 가난을 피하지 못했다. 조선사회에서는 양반계층에 의한 착취로 인해 구조적 가난의 고통을 당했다. 일제 때에는 식민지 수탈로 인해 빈민들이 고향을 이탈하여 도시빈민으로 혹은 해외 이주자로 흩어지게 되었다. 한국 전쟁 때에는 초토화된 도시 곳곳에 대량의 난민이 발생하여 집단 빈민촌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에는 근대화(산업화와 도시화)로 말미암아 이농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도시빈민이 형성되었다. 당시 우리사회의 희생자였던 이농인구는 행상, 일용직노동자, 혹은 반실업 상태로 존재하면서 대부분 도시빈곤층으로 전락하였다. 1970년대가 되면 우리나라 경제정책이 중화학공업과 수출주도산업 중심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장노동자들이 새롭게 빈곤층을 형성하였다. 당시 서울인구의 600만 명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이들로서 주로 달동네나 뚝방의 무허가 판자촌에 거주했다고 한다. 1971년 지역주민 5만 여명이 참여한 ‘경기도 광주 대단지 사건’은 도시에서 내쫒긴 빈민들의 비인간적인 현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에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게임을 앞두고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판자촌을 강제 철거하고 노점상을 단속하면서 빈곤층의 생존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1997년 IMF 경제체제 아래 사회적 양극화가 진행되고 실업자와 비정규직 근로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노숙자들이 새로운 빈곤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독거노인들의 빈곤문제나 교육기회를 박탈당한 빈곤아동,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빈곤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윤석범은 우리나라 빈곤층을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부랑성 빈곤층으로서 거주가 일정하지 않은 노숙자가 포함된다. 둘째, 도시밀집성 절대빈곤층으로 일세나 월세의 임대료를 지급하면서 사는 노점상이나 행상이 포함된다. 셋째, 노약성 절대빈곤층으로 달동네의 가난한 독거노인이다. 넷째, 전래성 절대빈곤층으로 농어촌 지역의 자연 취락의 형태로 존재하는 빈농이다. 다섯째, 미정착 빈곤층으로 도시주변의 신개발지역에 산재한 사람들로서 저임금 또는 산업재해 등으로 생계유지가 힘든 빈곤층이다.

3) 우리나라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빈민공동체운동의 역사는 짧지 않은 편이다. 이는 우리나라 기독교가 선교 초기부터 가난한 자에 관심한 선교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연구의 주제인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의 역사는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무엇보다 먼저 언급할 가치가 있는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도시빈민을 위한 근대적 의료보험조합운동인 ‘청십자의료조합’이다. 청십자의료조합은 기독인 의사 장기려를 비롯 채규철, 김서민 등에 의해 1968년에 시작되었다. 이들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시행되었던 무상치료 경험과, 미국에서 1929년 대공황 이후 실업자를 위해 설립된 민간의료조합 청십자(Blue Cross)를 참고삼아 부산의 지역교회들과 연합하여 청십자의료조합을 결성한다. 우리나라 정부가 1977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근로자 500명 이상의 사업장과 공장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조합을 만들게 된 것도 이들 청십자의료조합의 성공적 운영과 무관치 않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는 청계천에 자리 잡은 활빈(活貧)교회의 빈민운동이다. 1971년 김진홍 목사는 청계천 판자촌에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 빈민중심의 공동체, 지역사회 구원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목적으로 교회를 설립하였다. 구체적 활동으로 청소년을 위한 ‘달학당’, 탁아소인 ‘배꽃어린이집’과 ‘장미어린이집’을 열었다. 그 외에도 주민자활회나 의료봉사회를 통해서 도시빈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꼬방동네사람들』의 실제인물인 허병섭 목사는 1970년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활동(총무 1974-76)을 통해 일찍부터 빈민선교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는 1976년에 가난한 주민들과 함께 하월곡동 산동네에 동월교회를 개척하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일하던 중 1980년 초에 탁아방인 ‘똘배의 집’을 열었고, 1988년에는 일용직 노동자조합인 ‘건축일꾼조합’, 그리고 1990년에는 ‘월산동 건축일꾼 두레’를 결성하기도 했다.
   기독교 전체 차원에서 도시빈민문제에 대해 체계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미국 연합장로교의 후원으로 세워진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의 발족(1968년)이라 하겠다. 여기서 도시선교와 지역주민운동단체의 실무자를 위한 교육이 실시되었다. 1971년에는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가 조직되고 일곱 군데의 현장사역이 진행되었다.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이어받은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가 1979년에 해체되고, 유신정권 말기에는 빈민선교운동단체에 대한 정치적 박해와 탄압이 강화되면서, 기독교 도시빈민선교는 민중교회운동이나 노동자교회운동 그리고 농촌선교운동 등의 형태로 변화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1984년에 결성된 ‘기독교 도시빈민선교협의회’는 빈민운동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선교협의회는 서울 신설동과 광주대단지 등 20여 곳의 빈민지역을 선교활동의 무대로 삼아 사역했다. 선교협의회는 ‘천주교도시빈민회’와 더불어 철거반대투쟁, 지역의 빈민운동, 그리고 일용직노동자나 노점상의 생존권 투쟁을 지원하였다. 그 외에도 빈민지역인 공단이나 달동네를 중심으로 주민조직화 운동을 통해서 공부방, 탁아소, 진료소, 독서실, 협동조합운영에 도움을 주었다.
   한편, 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은 도시산업선교라는 이름으로 도시빈민문제 해결에 관심했다. 정병준은 도시산업선교 사역을 다섯 단계로 시대구분하고 있다: 1단계는 산업전도 활동기다.(1957-71). 2단계는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흐름에 따라 ‘도시산업선교’라는 명칭으로 활동하던 도시산업선교위원회 시기다(1971-1983). 3단계는 군사정권과 교단총회 내부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도시산업선교 대신에 산업‘전도’라는 명칭으로 활동해야 했던 도시산업전도위원회 시기다(1984-1987). 4단계는 ‘산업선교’라는 명칭을 다시 사용하면서 산업선교의 다양화를 꾀했던 시기다(1988-1997).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IMF 체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새로운 상황 속에서 산업선교의 변화를 모색하는 시기다.(1998-2007).
   1980년대 태동한 민중교회운동은 산업선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공단지역이나 빈민지역에 터를 잡고 노동자나 빈곤계층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앙공동체운동이다. 민중교회는 예배만 아니라 각종 빈민사역을 실시했는데, 탁아소, 공부방, 의료봉사, 주부교실, 가출 청소년 그룹홈, 장애인 공동체, 이주노동자선교, 환경운동, 도농직거래운동 같은 다양한 형태의 사업이 포함된다. 1990년대에 이르면 복지정책의 변화에 발맞추어 자활지원센타를 중심으로 빈곤계층의 일자리 마련과 복지 향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3.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의 유형들

   일반적으로, 도시에는 행려자나 노숙자, 무의탁노인, 이주노동자, 빈곤여성, 빈곤청소년, 빈곤아동, 일용직 노동자 등 다양한 유형의 빈곤층이 존재한다. 따라서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도시빈민의 유형과 목적에 따라 각기 다양한 형태의 운동방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비교적 잘 알려지고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다섯 가지 유형의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는 행려자를 위한 무료급식소인 밥상공동체, 노숙인을 위한 잠자리와 일터를 제공하는 노숙인 쉼터, 이주노동자의 권익향상과 지역주민과의 통합을 위한 외국인노동자센터, 빈곤아동의 보육을 위한 공부방(지역아동센터), 그리고 노숙인을 위한 인문강좌가 포함된다.

1) 행려자 밥상공동체: 다일공동체
   (1) 이념: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대량실직과 해고 등으로 말미암아 행려자가 급속히 늘고, 가족구조의 변화에 따라 독거노인도 새로운 빈곤층으로 부각되고 있다. 다일공동체는 기독교 신앙의 다양성 안에서 일치, 사랑의 나눔, 그리고 도시빈민과 소외된 이웃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실천을 이념으로 삼고 있다.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신앙인과 비신앙인, 교파나 교단을 상관하지 않고 자원봉사에 동참하도록 개방한다. 한편, 가난한 사람을 위한 무료급식만 아니라 병원사역을 통해 통전적 치유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는 가난이 경제적 문제만 아니라 전인격적인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2) 역사: 다일공동체는 1988년 11월 서울 청량리역 인근 쌍굴다리에서 행려자와 노숙자를 위한 무료급식을 시작하면서 설립되었다. 다일공동체는 1990년부터 가난한 노인환자를 무료로 진료하기 시작하여 2002년에 다일천사병원을 개원하게 된다. 1996년에는 ‘밥퍼운동’을 조직하였는데, 이후 이 운동은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목포 등의 여러 도시로 확산되었다. 밥퍼운동은 국내만 아니라 베트남이나 중국, 캄보디아와 필리핀 등 7개 국가로 그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1999년에는 공동체 식구들과 후원자들을 위한 영성훈련을 목적으로 다일영성생활훈련원을 개원하기에 이른다.
   (3) 주요사업과 과제: 행려자를 위한 무료급식으로 시작했던 다일공동체의 사역은 다양해졌다. 첫째, 행려자, 노숙자, 독거노인, 무의탁노인, 알콜중독자 등 도시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나눔운동(밥퍼)이 있다. 2011년 5월 2일, 밥퍼운동을 시작한지 꼬박 23년 만에 다일공동체가 행려자에게 건넨 밥그릇 수가 자그만치 500만 그릇에 이르렀다. 둘째, 가난한 행려자나 무의탁 노인을 진료하고 치료하기 위한 치유사역이다. 다일천사병원에서는 전인적 치유사역에 힘쓰면서 호스피스 사역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다일천사병원에서 치료나 수술한 환자가 7만 여명에 이르렀으며, 17회에 걸쳐 아시아 국가 아동들 가운데 구순구개열, 심장병, 척추 수술을 돕기도 했다. 셋째, 재소자 선교를 위한 교정복지 사역에도 힘쓰고 있다. 넷째, 유진벨재단이나 등대복지회와 더불어 북한의 결핵환자나 빈민들을 지원하는 북한돕기 사역도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동체 식구들만 아니라 일반 기독인의 영성훈련을 위한 영성사역을 위해 영성수련원을 지어 다양한 영성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행려자나 노숙인을 위한 사역에는 늘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예산지원이 따른다. 배식에는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천사병원의 경우에는 다르다. 열정과 동시에 의료적 전문지식을 갖춘 의사나 간호사, 행정요원들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긍휼사역이 성공하려면 자원봉사자의 열정만 아니라 전문성의 조화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2) 노숙인 쉼터: (원주)밥상공동체
   (1) 이념: 1997년 경제위기로 인해 갑작스럽게 생겨난 노숙자 수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노숙자가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체로 가정빈곤, 알콜중독, 이혼으로 인한 가정해체, 개인의 성격장애로 인한 사회부적응 등이 중요 요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숙인은 주거불안, 식생활, 질병, 주민등록말소 등의 고통을 당하며, 그 가운데서도 여성 노숙인의 경우에는 성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쉼터에서는 노숙인에게 숙식을 제공하는데 우선적 목적을 두지만, 최종적으로는 자활 및 자립에 목적을 두게 된다.
   노숙인의 무료급식에 사역의 초점을 두는 다일공동체와 달리, 밥상공동체(허기복 목사)는 노숙인의 자활에 더 비중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밥상공동체는 노숙인의 쉼터 사역에 머물지 않고 밥문제 해결, 일자리 창출, 그리고 자활의 조화를 통한 ‘창조적 복지’를 추구한다. 말하자면, 나눔과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되 노숙인에 대한 시혜 대신에 자활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노숙인 자신들에 의해 수행되는 노동의 가치와 공동체적 삶의 신학적 의미를 강조한다. 밥상공동체의 밥훈에는 공동체의 희망과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작품.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된 것보다 될 것을 바라보며, 이제 새로 시작하자.”
   (2) 역사: 밥상공동체는 허기복 목사가 1997년 경제한파의 여파로 급격히 늘어난 원주지역의 실직자, 노숙인, 독거노인을 위한 밥나눔 운동을 원주천 쌍다리 밑에서 1998년에 시작하면서 출범했다. 이어서 밥상공동체에 참여하는 노숙인을 위한 쉼터를 개원했으며, 자활일터를 열기 시작했다. 노숙인들에 의해 수행되는 일의 종류에는 집수리, 야채모음, 의류수거, 거리청소, 교통지도 등이 포함되었다. 1999년에는 구두수선대학과 보물(고물)상을 개원했다. 2000년에는 쉼터를 퇴소하는 자활 노숙인을 중심으로 집수리, 녹색장터, 그리고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자활공동체를 창립했다. 2002년에는 연탄은행을 설립해 저소득 빈민들의 겨울나기를 돕고 있는데, 이 사업에 동참한 숫자가 현재 국내 31개 도시(33개 연탄은행)에 이르고 있으며, 2011년 10월에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도 연탄은행을 개소하여 연탄 10만장을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3) 주요사역과 과제: 밥상공동체의 첫째 사역은 노숙인을 위한 생계보호 사업으로 무료급식소와 푸드뱅크, 그리고 연탄은행을 통해 쪽방거주자와 독거노인을 위한 난방지원이다.  2002년 연탄은행을 시작한 이래 2010년까지 총 1만 5천여 저소득 가구에 총 2천 여 만장의 연탄을 배달했다. 둘째, 노숙인을 위한 쉼터사역으로서 원주밥상공동체 출범 초기에 시작했던 쉼터들을 2001년 ‘다시서는 집’으로 통합했다. 셋째, 노숙인을 중심으로 자활공동체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악세사리판매점(삔공주악세사리), 붕어빵집(황금영양붕어빵), 간이 분식점, 구두수선대학, 보물상, 그린 집수리센터, 녹색장터, 그리고 사랑농터(농장)  등의 사업체가 포함된다. 넷째,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닌 노숙인을 위한 주권운동 차원에서 2002년부터 주민등록말소 갱신 및 선거참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쉼터의 노숙인이나 일반 저소득층의 실업극복을 위한 사업들로서 취업상담 및 지원, 민간위탁 공공근로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무엇보다 노숙인들이 쉼터사용을 꺼리는데 그 이유는 쉼터의 규칙들이 너무 엄격하다는 점과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쉼터가 노숙인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려면 독립된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노숙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데 구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노숙인 쉼터 운영의 또 다른 어려움은 재정형편상 시설 환경이 열악하고 자활사업체 종사자의 전문성 부족도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노숙자의 유형에 따른 쉼터의 특성화나 전문화가 요청된다. 말하자면, 노동력을 상실한 입소자의 경우에는 시설보호, 자활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자활지원, 그리고 알콜중독자는 재활치료식으로 입소자의 유형에 따른 특성화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3) 이주노동자 생활공동체: 안산이주민센터
   (1) 이념: 우리사회에는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국제결혼 가정의 숫자가 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도시에 존재하는 빈곤층은 주로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족이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소외되어 있다. 이주노동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불법체류자여서 어떤 법률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런 현실 인식에서 안산공단에 위치한 안산이주민센터는 이주노동자의 인권만 아니라 한국사회로의 통합을 추구한다. 안산이주민센터는 몇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 신인간운동을 통해 ‘국경없는 평화’를 추구한다. 둘째, 이주민과 지역주민으로 구성되는 ‘국경없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셋째, 국경과 인종을 넘어 세계보편적 인권실현을 위한 ‘국경없는 인권’을 추구한다. 넷째, 노동의 권리가 보장되는 ‘국경없는 노동’을 추구한다.
   (2) 역사: 안산이주민센터의 설립자인 박천응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단지역 빈민가 가운데 하나였던 안산시화공단지역에 안산형제교회(1989년)를 개척했다. 1992년부터 공단의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사역을 시작한 이후 1994년에 외국인노동자상담소를 열었다. 1999년에는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국경없는마을운동’을 전개하고, 2003년 다문화가정 아동과 주부들을 위한 ‘코시안의 집’을 개소하였으며, 이어 2006년에는 안산이주민센터로 개명하여 사역을 다양화하기에 이른다.  
   (3) 주요사역과 과제: 현재 안산이주민센터에서 하고 있는 사역에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포함된다. 첫째,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노동자상담소를 운영한다. 둘째, 국제결혼한 가정(다문화가정)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코시안의 집을 운영한다. 셋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재 대신에 지역주민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대안공동체 형성을 위해 국경없는 마을운동을 벌인다. 넷째,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 한글학교, 컴퓨터교육 등의 다양한 문화 및 복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다섯째, 이주여성을 위한 자활경제공동체지원 및 직능교육을 위해 ‘다문화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주민의 지역사회 적응만 아니라 지역민과의 통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다문화를 창조하려는 안산이주민센터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이주민에 대한 도움과 배려만 아니라 지역민의 의식의 전환과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역의 대상을 이주민만 아니라 지역민으로 확대하고, 지속적 교육을 통한 의식화가 필요해보인다.
  
4) 빈곤아동 보육공동체: 공부방 혹은 지역아동센터  
   (1) 이념: 사교육 시장 위주의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 대부분의 빈곤아동들은 교육의 기회를 잃은 채 ‘빈곤의 대물림’의 위협에 내 몰리고 있다. 도시빈곤아동들은 대개 부모가 맞벌이를 하거나 조손 가정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교육과 문화적 측면에서 방치되기 일쑤다. 일반적으로, 공부방이란 성인이 보호할 수 없는 시간동안 아동들에게 급식과 간식, 놀이나 오락, 그리고 교육을 제공하는 아동복시 시설이다. 빈곤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가 교육이라는 사실을 전제할 때 빈곤아동의 교육 기회를 위한 공부방운동은 매우 중요한 지역사회운동이라 하겠다. 역사가 흐르면서 공부방운동은 아동에 대한 관심에 머물지 않고 자모회를 중심으로 지역주민운동을 활성화하는 일로 사역이 확대되고 있다.
   (2) 역사: 공부방운동은 1980년대 들어 교회가 우리나라의 빈곤아동에 대한 선교적 관심에서 시작한 빈민사역이었다. 1984년 서울 하월곡동에서 시작한 ‘산돌공부방’이 공부방 운동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2000년 1월 공부방을 지원하던 부스러기선교회가 결식아동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면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산되었다. 2003년 아동복지법에 의해 지역아동센터가 아동복지시설로 확정됨으로써 공부방이 지역아동센터로 전환하게 되었다. 1995년에 100여개였던 것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2000년에는 500개로 늘었고, 현재는 3,800여개에 이용하는 아동들 숫자가 약 18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교회가 운영 중인 시설은 전체의 절반이 약간 넘는다고 한다. 잘 알려진 공부방 가운데 하나인 삼양동 돌산아동청소년센터 판(Participation Activity Networking)의 경우 1990년 기독교 도시빈민선교회 사무국장 출신인 김성훈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후 이 운동은 근로청소년을 위한 학습교실, 인간다운 지역 재개발을 위한 투쟁, 그리고 신용협동조합운동이 포함된 주민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3) 주요사역과 과제: 일반적으로 공부방은 사교육 기회가 별로 없는 빈곤아동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첫째, 방과후 학습지도가 포함된다. 책읽기, 글쓰기, 영어, 기타 학과목 지도를 통해 전인교육과 공동체교육을 추구한다. 둘째, 악기나 미술교육을 통해 아동들의 예능교육을 지원한다. 셋째, 지역주민사업의 일환으로 자모들을 위한 교양강좌, 지역민을 위한 의료봉사, 주민도서관, 그리고 마을축제를 기획하고 실행한다. 교회가 주체가 되어 운영하던 공부방이 지금은 대부분 정부의 행정․재정 지원 아래 운영되는 ‘지역아동센터’로 변하면서, 아동복지법에 따른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어 선교적 목적을 실현하는 일만 아니라 재정적 자립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의 운영지침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로 등록된 사람은 상근해야 하며, 타시설이나 기관 등의 직무를 겸직할 수 없다. 그리고 공간의 겸용 사용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교회관련 지역아동센터의 50-60%가 작은 규모의 미자립교회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 겸직이나 공간 겸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정부 보조금의 50-70%만 인건비로 지출할 수 있기 때문에 아동수의 증가에 따른 식사비와 교육비의 증가는 곧 프로그램 운영 부실을 가져올 우려가 높다.

5) 노숙인 학습공동체: 성프란시스대학
   (1) 이념: 학습공동체인 성프란시스대학은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강좌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성프란시스대학은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www.homelesskr.org)의 활동 가운데 하나로 2005년 임영인 신부에 의해 성공회대학 안에 개설되었다. 성프란시스대학은 1기에 20명 중에 17명, 2기에 17명 가운데 11명이 수료하였다. 노숙자 문제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기존의 접근 방식이 노숙자에게 숙식 제공에만 초점을 두었다면,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추구하는 것은 인문강좌를 통해 노숙자의 자아존중감을 강화함으로써 자활의지를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프란시스’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성 프란시스가 노숙자를 만나 깨달음을 얻었고 평생을 노숙인처럼 단 한 벌의 옷과 맨발로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강좌라는 표현 대신에 ‘대학’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노숙인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노숙자들에게 비록 가난하더라도 가치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도우려는 학습공동체운동이기 때문이다.
   (2) 역사: 성프란시스대학은 얼 쇼리스(E. Shorris)가 1995년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들, 특히 죄수, 마약중독자, 그리고 노숙인을 대상으로 마련한 인문강좌 ‘클레멘트 코스’를 벤치마킹해서 우리사회에 응용한 프로그램이다. 얼 쇼리스는 기존의 복지프로그램이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나 훈련에 초점을 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교육에 초점을 둘 것을 강조한다. 그는 인문학 수업이 사회적 약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처한 세상에 대해 성찰적으로 사고하며, 정치적 삶을 통해 내면의 힘을 일깨워 줌으로써 이른바 ‘무력의 포위망’(surround of forces)으로부터 벗어날 힘을 준다고 믿었다.
   (3) 주요사역과 과제: 노숙자를 위한 학습공동체인 성프란시스대학은 다양한 과목의 인문교양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제공하는 인문학 강좌에는 철학, 예술사, 문학, 역사, 작문 등을 내용으로 1년 2학기제, 6과목 15강의의 강좌를 기본으로 한다. 강좌운영의 특징은 강의만 아니라 현장학습 및 문화체험, 그리고 사례관리를 통한 다양한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 강조하는 게 글쓰기인데, 이는 글쓰기가 의사소통 능력이기 때문이다. 한편, 저소득층의 자활과 자립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실용경제 과목이나 문화공연 관람도 개발되고 있다.
   노숙인을 위한 인문강좌를 운영해 본 결과 몇 가지 어려움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첫째, 강사진의 잦은 교체와 그로 인한 경험축적의 부재다. 둘째, 과목간 연계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해 학습효과가 떨어진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소외계층의 처지에 대한 충분한 사전 정보가 필요하며, 교육 방식에서 피교육자의 참여가 가능한 방법을 통해 일방적 강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습자의 참여에 필요한 공감대 형성을 위해 흥미도 있으며 시사성도 있는 주제들을 선정할 필요가 있다.

4.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신학적 과제
  
1) 사회선교로서 빈민선교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일반 시민사회의 빈민운동이나 사회복지사업과는 이념과 목표가 다른 신앙공동체운동이다. 따라서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빈민선교로 이해되어야 한다. 빈민선교는 사회선교의 한 형태로서 복음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화와 구원을 위한 선교활동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선교의 과제가 되는 이유는 가난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존엄성을 근본적으로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난문제가 개인의 인격이나 도덕에 관련된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제도나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편, 빈민선교에서 가난한 사람은 선교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선교의 주체이다. 따라서 도시빈민공동체운동과 관련한 현실문제 인식과 활동 프로그램 마련은 가난한 사람들 자신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빈민선교의 신학적 토대는 우선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비록 빈민이라도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존엄성을 지니며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행복추구권, 노동권, 교육권을 지닌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그리고 이방 나그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이신다.(출 22:25; 신 10:17-18; 시 68:5; 사 53:7 등)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 역시 가난한 이웃에게 관심할 것을 요구하신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은 이후 예언자의 신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언자들이 강조한 하나님의 정의는 가난한 자들을 편드는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하셨으며(“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눅 9:58), 가난한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다(“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그분의 자기이해와 사역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자유와 해방이었다.(눅 4;18-19) 그분은 제자도의 조건으로 가진 것을 다 버리고 따를 것을 요청하기도 하셨다. 초기 교회는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였다.(행 6:1-6, 고전 1:26) 바울도 궁핍한 사람들에게 관심할 것과(고후 9:6-9), 그들을 수치스럽게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전 11:21-22) 이후 나타난 사막의 수도자들과 교부들은 한결같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구제를 그리스도인의 덕으로 제시했다.
   선교학적 차원에서 빈민선교는 개인의 영혼만 아니라 전인구원에 관심하며, 교회중심적인 선교방식 대신 하나님 중심적 선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에 기초한다. 통전적으로 이해된 하나님의 선교에서 복음화와 인간화, 인간구원과 사회봉사, 영성과 해방, 그리고 신앙과 정치사회적 행동은 상호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빈민선교는 복음선포와 동시에 빈민을 위한 구제와 사회적 실천이라는 봉사사역(디아코니아)을 포함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가난이 제도적으로 구조화될 때 교회는 사회정의를 위해 투신해야 한다.
   목회적 차원에서 빈민선교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데 초점이 있어야 하지만 교회사역을 빈민운동을 위한 지역프로그램의 하나로 환원시켜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영성에 대한 목회적 접근(영적 체험이나 치유 등)에 무관심하거나, 구원의 개인적 차원과 종말론적 차원을 무시하는 빈민선교 방식은 과거 민중교회운동에서 보았듯 실패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든지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보다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강력한 종교적 체험을 갈망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가난의 신학과 영성
   기독교 빈민공동체운동이 부자들에 의한 자선행위 차원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가난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요청된다. 가난은 물질적 의미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가난이 경제적,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분배의 문제’이겠으나,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관계의 문제’, 즉 사회적 고립이나 배제의 문제다. 가난한 사람들은 물질만 아니라 정체성, 자아존중감, 사회적 관계성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우리사회에 건강한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구조적으로 강요된 비자발적 가난은 비인간화와 고통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악이기에 성경은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게 하라.”(신 15:4) 명령했다. 한편, 가난은 영적인 차원에서 볼 때 하나님을 발견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는 물질적 부요가 하나님 대신 물질 자체를 의지하게 만드는 반면에,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물질 대신에 하나님을 의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 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 가난의 삶을 요청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초대교회는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려 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신앙공동체를 이루었다. 사도행전과 신약성서는 교회의 빈민구제가 공동체적으로 제도화된 형태로 시행되었음을 보여준다. 고대교회의 구제활동의 주요 대상은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자들이었다. 그 외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마련, 병든 자의 간호, 죽은 자의 매장, 나그네 환대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4세기에 들어서면 교회가 종합구빈기관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가장 유명한 곳이 가이사리아 성문 앞에 세워진 바실리아스였다. 그리고 교회 역사에는 자발적 가난(청빈)을 실천한 수많은 인물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후 구걸하면서 복음을 전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아씨시의 프란시스(Francis of Assisi)는 가난을 부인(Lady)으로 삼고,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눅 9:3)는 말씀에 따라 가난한 순회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신학사적으로, 1960-70년대 발전한 남미의 해방신학은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option for the poor)을 강조한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자의 관점에서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세상을 이해한다. 더 나아가 가난한 자의 해방과 인간화를 위해 교회가 투신할 것을  요청한다.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민중신학과 민중교회 운동 역시 가난한 자에게 우선적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민중신학은 해방신학과 달리 가난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중시했다. 최근의 세계적 빈곤화는 가난의 신학적 의미를 묻게 만들며, 가난의 영성에 관심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가난의 영성이란, 가난한 자들과 연대하며 가난한 자들을 위해 투쟁하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하여 스스로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삶을 가리킨다. 최승기는 자발적 가난을 적극적 요인과 소극적 요인으로 나누어 이해한다: 적극적 요인에는 세상의 물질 대신 하나님으로 온전히 채우는 일과, 재물을 하나님과 타인을 섬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이 포함된다. 한편, 소극적 요인에는 재물에 대한 탐욕을 버리는 일과 검소한 생활이 포함된다. 자발적 가난의 적극적 요인과 소극적 요인이 조화를 이룰 때 온전한 가난의 영성이 실현된다.

3) 공동체신학
   일반적으로, 공동체란 지리적 영역, 사회적 상호작용, 그리고 공동의 유대관계(공유가치)를 중요한 구성요소로 삼는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염두에 둔 공동체란 주거공간을 함께하지 않더라도 이념을 함께 나누는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도 포함한다. 말하자면, 생활과 일터를 함께하는 노숙인 쉼터(원주밥상공동체)만 아니라, 특정한 시간에 모여 인문학 수업을 함께 듣는 노숙인 학습공동체(성 프란시스대학)나 공부방(지역아동센터), 그리고 식사 시간에만 만나게 되는 행려자 무료급식(다일공동체)같은 공동체까지 포함한다.
   공동체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의 이론적 토대만 아니라 현실적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빈곤문제 해결에 있어 공동체운동이 필요한 것은 외롭고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일반인보다 훨씬 더 공동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빈민들의 고통은 의식주문제 만큼이나 심리적 고립과 사회문화적 소외에서 생기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만 온전한 치유가 가능하다. 그리고 빈민들은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이 모자라서 서로간의 지지와 격려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도시빈민공동체가 사회로부터 단절된 빈민들만의 폐쇄적 공동체로 발전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함께하는 개방적 공동체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빈민의 사회적 통합 노력만 아니라 빈민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포용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 다양한 공동체운동 가운데서도 빈민공동체운동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빈민들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상처가 깊고 생활력이 없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분명한 기독교적 이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성원 사이의 정기적인 종교활동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공동체의 이념을 확인하고 의식화하며, 구성원 사이에서 생겨날 수 있는 각종 갈등요소들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만남과 소통의 기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종교적 신앙을 통해 자아존중감을 강화할 수 있다. 다일공동체가 영성훈련원을 운영하는 것이나 안산이주민센터나 원주밥상공동체가 종교의식을 갖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 중요해 보인다.

5.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 활성화를 위한 실천과제

1) 통전적 긍휼(구제)사역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와 나눔을 핵심 사역으로 삼는다.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의 긍휼사역이 성공하려면 다음 몇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긍휼사역의 동기와 목적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며, 다른 하나는 긍휼사역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실천적 성찰이다. 먼저, 긍휼사역의 동기와 목적이란 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도시빈민을 위해 사역해야 하는지 답을 찾는 일이다. 이것은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이 일반 빈민공동체운동과 다른 기독교적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기독교 빈민공동체운동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지역교회의 관심과 자원봉사자의 헌신을 불러 오려면 이 물음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한편, 긍휼사역의 동기나 의지가 곧 올바른 행위 내용과 방법으로 자동적으로 귀결되지 않기 때문에 사역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실천적 성찰을 필요로 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올바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선한 의지 외에도 여러 가지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역이 자칫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상처를 줄 것 수 있다. 한편, 사역의 지속성과 체계성, 전문성의 확보를 위해선 자원봉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과 훈련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긍휼사역에 대한 통전적 관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가난의 문제가 단순히 경제문제만 아니라 심리적 상처나 사회문화적 소외와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피해의식과 고립감이 깊다. 한 예로, 노숙인을 위한 사역의 경우 음식과 쉼터의 제공만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 상처 치유를 병행해야 효과적이다. 이는 노숙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아원이나 결손가정 출신이며, 약물중독, 알콜중독, 폭력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여전히 주거불안, 각종 질병, 이혼경험, 알코올중독 등의 복합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밥과 숙소만 아니라 자아존중감과 사회관계의 회복이다. 노숙인 학습공동체인 성프란시스대학이 자아존중감을 위해 인문교육을 강조하고, 다일공동체가 전인적 치유를 위해 천사병원을 세우고, 노숙인을 위한 영성훈련을 시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노숙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밥(밥퍼운동)만 아니라 질병의 치유(천사병원)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통해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영성훈련)될 때라야 온전한 회복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셋째, 개인적 시혜 차원을 넘어서 가난한 사람 자신들의 자활노력이 있어야 한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개인적 자선이나 구제를 통한 빈곤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빈곤문제의 근원적 해결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자립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원주 밥상공동체가 노숙자에게 무료급식과 쉼터를 제공하는데 머물지 않고 자활을 위한 각종 일자리 창출과 창업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의미깊은 일로 보인다.

2) 에큐메니칼 정신과 네트워킹 능력
   기독교 도시빈민공동체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선 다양한 형태의 에큐메니칼 정신이 요청된다. 나라님도 해결할 수 없는 도시빈민의 문제를 어느 한 공동체나 한 교회가 다 해결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떤 한 사회가 도시빈민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다양한 사회단체나 공동체들, 그리고 종교단체나 지역교회와의 연대와 협력이 요청된다. 그 가운데서도 공동체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정보교환과 협력은 공동체운동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역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전문가적 능력이나 지식, 기술, 경험이 부족한 신앙공동체가 단독으로 도시빈민을 대상으로 사회사업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경우에 네트워킹은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따라서 도시빈민 사역에 참여한 각종 단체들, 예를 들자면, 무료급식단체, 노숙인 활동단체, 공부방운동(지역아동센터)협의회, 이주민사역단체, 인문학강좌단체들 사이의 조직화와 연대가 중요하다. 공동체가 위치해 있는 지역민의 인식전환과 적극적 관심을 얻기 위해 적절한 지역 홍보활동도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단체의 홈페이지나 지역언론매체의 활용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일공동체가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를 추구하는 신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이같은 네트워킹과 협력의 분위기 조성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3) 참여의 리더십
   기독교 빈민공동체운동은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을 극복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가능케 하려는 신앙적 공동체운동이다. 빈민공동체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주체가 되어야 할 가난한 사람들은 빈민사역 프로그램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공동체의 설립자나 활동가들이 주체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의 소외와 대상화가 더욱 심화되곤 한다. 어떤 공동체운동이든 초기에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나 전문가의 지도가 효과적일 수 있으나 지속적 발전에는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런 위험성을 극복하려면 소수의 엘리트 활동가로부터 가난한 사람들 자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참여의 리더십을 형성해야 한다.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공동체의 의제가 정리되고, 사역의 종류가 결정되어야 한다. 노숙인 학습공동체인 성프란시스대학이 인문학 강좌 커리큘럼을 짜면서 교수들에 의해 일방적인 강좌 대신에 학습자인 노숙인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중요한 공부는 수업의 내용보다는 수업의 과정 자체라 볼 수 있는데, 그럴 때라야 비로소 노숙인의 자치 치유와 자율적인 삶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편, 공동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유혹 가운데 하나가 성공의 기준으로 공동체의 크기나 사업의 재정규모와 사업범위를 생각하는데 그같은 유혹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받는 공동체에 대한 평가다. 원주밥상공동체가 ‘그들이 주인되는 공동체’를 목표로 하면서 그 구체적 전략으로 노숙인과 빈민들의 자활사업에 사역의 방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공동체의 경제적 자립은 외부 의존도를 줄일 뿐만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의 지도력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6. 맺는말

   우리사회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 사회적 양극화가 커지면서 빈곤문제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의 교회였으며,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음적 교회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는 경제성장의 시기를 지나면서 가난한 사람을 잊었으며 그 결과 복음으로부터 멀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가난의 영성에 대한 신학적 관심이 교회 안에 부쩍 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기독교 빈민공동체운동은 복음의 회복만 아니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교회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독교 빈민공동체운동이 성공하려면 확실한 신학적 토대에 기초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그것은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머물고 말 것이다. 기독교 빈민공동체운동의 신학적 토대로는 빈민선교의 선교신학적 의미,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만 아니라 자발적 가난의 영성신학적 의미, 그리고 구체적 공동체 형성에 필요한 공동체 신학이 포함된다. 한편, 빈민공동체운동이 현실 속에서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발전되려면 공동체 운영 과정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 실천적 능력도 필요하다. 여기에는 교회의 긍휼(구제)사역의 체계화와 전문화, 에큐메니칼 정신과 네트워킹 능력, 그리고 구성원 자신들에 의해 형성되는 참여의 리더십이 포함된다.
  
참고문헌

김경호 외, 『다일의 영성과 신학: 다일공동체창립20주년기념논문집』, 서울: 도서출판 다            일, 2008.
김은혜, “해방이후 개신교도시빈민선교의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본 21세기 빈민선교의 방향         과 한국교회의 미래”, 14회 소망신학포럼 자료(2011).
김진홍, “간척지에다 두레 농민공동체를”, 이삼열 편, 『사회봉사의 현장에서』, 서울: 한울,            1993.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국내선교부,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서울: 총회국           내선교부, 2007.
박천응, 『이주민 신학과 국경없는 마을 실천: 안산이주민센터』, 안산: 국경없는마을,               2006.
--, “외국인 노동자와 사회선교”, 정원범 편, 『사회선교 목회 21세기』, 서울: 한들출판사,          2006.
--,『다문화교육의 탄생』, 안산: 국경없는마을, 2009.
서인석,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 왜관: 분도출판사, 1979.
윤석범, 『한국의 빈곤』, 서울: 세경사, 1994.
임철우·우기동·최준영 외, 『행복한 인문학』, 서울: 이매진, 2008.
지강유철, 『장기려, 그 사람』, 서울: 홍성사, 2007.
최일도,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서울: 울림, 2000.
최일도,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 1,2』, 서울, 동아일보사, 2000.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민중의 힘, 민중의 교회: 도시빈민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서울: 민중사, 1987.
--, 『한국의 가난한 여성에 관한 연구』, 서울: 민중사, 1987.
한국기독교역사학회편, 『한국기독교의 역사 III: 해방 이후 20세기 말까지』, 서울: 한국기       독교역사연구소, 2009).
한국민중교회운동연합 민중교회자료집편찬위원회편, 『민중의 교회, 민중의 희망』, 서울:        한민연사무국, 1996.
활빈교회, 『활빈교회 개척기』, 남양만: 활빈교회, 1989.
황홍렬, 『한국 민중교회 선교역사(1983-1997)와 민중선교론』, 서울: 한들출판사, 2004.
허기복,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 서울: 미디어윌, 2005.
허병섭, 『일판 사랑판』, 서울: 현존사, 1993.
레슬리 호프, 『성서에 나타난 가난』, 나요섭 역, 서울: 나눔사, 1992.
로렌스  커닝햄, 『아씨시의 프란체스코: 가난한 마음과 결혼한 성자』, 김기석 역, 서울:           포이에마, 2010.
얼 쇼리스, 『희망의 인문학』, 고병헌 외역, 서울: 이매진, 2006.

구경모, “도시빈민지역의 공부방에 대한 연구”, 영남대 미간행 석사학위논문(2002).
김헌우, “도시빈곤문제에 대한 기독교복지공동체운동에 관한 연구: 두레마을공동체, 다일공         동체 사례를 중심으로” 계명대 여성학대학원 석사논문(2000).
노혁, “빈곤계층 밀집지역 청소년 공부방 실태와 역할 재조명”, 『청소년복지연구』5권2호           (2003/10), 17-32.
박정세, “1970년대 도시빈민선교의 유형과 특성”, 『신학논단』24(1996), 201-233.
박천응, “쓰레기더미 속에 피는 꽃: 외국인노동자선교이야기”, 『교회와신학』(2003),               139-144.
윤태복, “가난한 자들에 대한 공동체 개발 연구”, 감신대 대학원 미간행 석사학위논문              (1988).
유영희, “빈곤지역 공부방 활성화 방안: 성남 구시가지 민간공부방을 중심으로”, 한신대사회         복지실천대학원 미간행 석사학위논문(2002).
이영호, "가난한 자들의 교회형태로서 기초교회 공동체에 관한 연구“, 장신대 대학원 미간행         석사학위논문(1994).
조연순, “도시 저소득층 취학아동을 위한 공부방운영 연구”,「여성학 논집」5(1988/12),            229-255.
최승기, “부와 가난과 영성”, 『신학논단』61(2010/9), 169-198.
허기복, “그들이 주인되는 공동체: 원주밥상공동체를 중심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         회부, “예장 실직․노숙인 선교 평가와 전망”, 심포지엄 자료집(2003), 155-169.
--, “밥으로 여는 세상”, 『교회와 신학』54(2003), 147-151.

=======================================================================================

(논문 소개)2


                  문화적 폭력으로서의 아모스의 마르제악과 한국 명품문화 연구
                           –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을 중심으로

                                                                                      김상기(남서울대 교수/ 기독교사회윤리)


초록

본 연구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경제적 번영, 정치적 안정, 국제적 교류, 문화적 발달이 가장 활발했던 주전 8세기 남북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활동했던 아모스의 예언서(암 6:4-7)에서 언급된 ‘마르제악’ 현상을 문화계급이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동시에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화적 차별화 욕망 현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명품문화’를 분석한 후,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문화적으로 영속화하려는 메커니즘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하나의 ‘대항문화’이자 ‘문화소통 의 장’으로서의 교회공동체를 검토함에 그 목적이 있다.  
  주전 8세기 이스라엘에 존재했던 마르제악 현상은 극상층 계층의 사람들의 단순한 경제적 부를 통한 사회적 사치와 윤리적 무책임의 차원을 넘어 문화적 사치취향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계급을 견고히 하고 이를 재생산 내지 지속화시키고자 하는 문화계급적 전략이자 상징폭력 메커니즘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의 명품문화 또한 경제자본을 바탕으로 한 단순한 사치풍조로 보기보다는 명품소비와 향유라는 문화적 취향을 통하여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계급을 확고히 하고 과시함으로써 이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사회문화적 차별구조를 재생산하려는 욕망으로 해석했다.
  문화적 소통과 통합을 가로막는 문화적 취향에 의한 차별하는 폭력의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다양한 계층과 문화에 대한 끝없는 개방적 태도를 지향하면서 기독교적 이념과 가치를 중심으로 공동체 내의 평등과 친밀성을 사회문화적 범위로 확대하여 실천함으로써 문화적 소통과 통합의 공간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교회는 오늘날 다양한 사회집단들 가운데 문화적 차별과 장벽의 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독특한 사회적 장으로서의 가능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제어
마르제악, 명품문화, 문화적 취향, 문화적 차별, 상징폭력, 아비투스, 교회, 열린 공동체, 문화적 소통, 사회적 통합



1. 들어가는 말

본 연구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경제적 번영, 정치적 안정, 국제적 교류, 문화적 발달이 가장 활발했던 주전 8세기 남북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활동했던 아모스의 예언서(암 6:4-7)에서 언급된 ‘마르제악’ 현상을 문화계급이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동시에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화적 차별화 욕망 현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명품문화’를 분석한 후,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문화적으로 영속화하려는 메커니즘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하나의 ‘대항문화’이자 ‘문화소통 의 장’으로서의 교회공동체를 검토함에 그 목적이 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경제발전과 국제적 무역의 등장과 함께 소수의 지배엘리트 계층과 다수의 소작농민 계층 간의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비판은 아모스 예언윤리의 핵심 주제였다. 특히 암 6:4-7에서 지배계층의 다섯 가지 문화적 취향(상아침대, 살진 송아지 음식, 최고급 음악, 대접으로 마시는 포도주, 최고급 향수 올리브 오일)을 나타내는 ‘마르제악’ 현상에 대한 아모스의 비난은 당시 극상층 사회의 사치스런 생활에 대한 고발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본 연구는 ‘마르제악’ 현상을 단순한 지배계층의 무책임한 쾌락적 생활방식이라는 기존의 해석을 넘어, 이를 사회적 불평등을 내재화하고 영속화하려는 지배계층의 오래된 문화적 재생산 전략으로써 수행된 상징폭력의 한 형태로 재해석한다. 이를 위한 해석의 틀로써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rerre Bourdieu)의 비판사회이론을 활용할 것이다. 특히 그의 책 Distinction(1984) (『구별짓기』최종철 역)에서 제시되고 있는 '아비투스(habitus)'와 같은 핵심 개념은 마르제악 현상을 기존의 신학적 논의 지평으로부터 문화사회학적 지평으로 확장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나아가, 아모스 예언 윤리에 대한 재해석 과정을 통해 오늘날 새로운 문화적 차별화 현상으로 나타난 한국의 ‘명품문화’를 분석함으로써, 3천 년 전 이스라엘 지배계층이 향유했던 마르제악 전략이 어떻게 오늘날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가를 밝혀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은 이중적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하나는 아모스 예언서에 나타난 ‘마르제악’ 현상을 문화적 취향을 통한 지배계층의 구조적 불평등 전략으로 다시 밝혀 주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오늘날 한국의 명품소비문화에서 나타나는 각 개인의 문화적 취향이 철저한 경제력을 바탕한 문화적 차별화 욕망이자 전략임을 드러내 주는 일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불평등 구조의 영속화 전략으로써의 문화적 취향을 통한 재생산 메커니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대안적 담론은 무엇인가? 본 연구에서는 문화적 차별과 갈등을 해소할 대안적 장으로서의 교회공동체에 주목할 것이다. 하나의 종교적 비전과 목적으로 모인 ‘교회’라는 조직 속에서 새로운 문화적 소통과 결합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2. 주전 8세기 아모스 시대와 마르제악 현상

1) 아모스 시대의 정치경제적 정황
아모스는 호세아, 이사야, 미가와 더불어 주전 8세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아우르며 활동했던 예언자로서 사회적 정의와 윤리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물이다. 특히 아모스 시대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구조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번영과 이에 따른 사회 양극화, 국제화, 그리고 문화담론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사회윤리적 문제제기와 고발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본문으로 사료된다.  
  아모스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II세가, 남유다는 웃시야가 다스리고 있었으며, 이 두 왕은 남북왕국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여로보암 II세(주전 801-760년경 재위)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외적으로 모압과 수리아 등의 옛 영토의 대부분을 회복하였고, 국내적으로는 수도 사마리아와 벧엘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웃시야는 에돔과 블레셋을 정복하고 암몬 사람들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였으며, 예루살렘을 강력하게 요새화하였고 강한 군대를 양성하였다.
   이처럼 두 왕국이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유리한 국제 정세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앗수르의 국력은 우라투(Urartu) 왕국에 대항해 자신들을 방어하는데 온 힘을 소진한 무능한 통치자들로 인해 쇠락하기 시작했고, 티글랏-필레세르 III세(Tiglath-Pileser III)가 즉위할 때까지 시리아-팔레스틴 지역은 4대 강국의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국제 정치 역학의 안정을 토대로 여로보암 II세의 이스라엘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엄청난 경제적 번영의 시대를 경험했다. 한스 볼프(Hans Walter Wolff)는 아모스 시대의 경제적 부흥에 따른 문화적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상업은 극도로 활발했으며(8:5a), 무역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3:9). 속여서 이윤을 챙기는 사기성 경제행위가 증가했다(8:5b). 화려한 건축물 짓기가 유행(3:15)했으며, 집들은 이전의 이스라엘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튼튼해졌으며(3:15b, 5:11, 6:8), 정교하게 꾸며졌다(3:10, 12b, 15b, 6:4a). 포도재배와 가축사육은 흥겨운 연회의 쾌락을 위한 욕구를 채우려는(4:1, 6:4, 6) 수요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공급되기 시작했다(5:11b, 6:4b). 새로운 음악이 등장(6:5)하고, 성적 부도덕이 증가(2:7)했다. 경제 부흥과 함께 종교적 제의에 사용될 희생제물들이 넘쳐났으며(4:4-5, 5:21-22), 축제는 흥겨운 노래와 악기로 거행되었다(5:23).

이 시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국제무역의 증가에 따른 정치, 경제, 문화, 종교적 번영은 사회적으로 지배 엘리트 계층과 피지배 농민 계층 간의 차이를 심화시키는 촉발요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마빈 체니(Marvin Chaney)에 따르면,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사치물품, 군수물자, 그리고 기념비적 건축에 사용될 목재 등을 수입했고, 수입물품의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밀, 올리브 기름, 그리고 포도주와 같은 대표적인 식료품을 수출하고자 했다. 따라서 국제무역을 통한 지배계급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경제정책이 추진된다. 우택주는 이를 산업사회 이전 농경사회의 정치-경제 역학으로 분석한 결과, 이른바 ‘집약농업역학(dynamics of agricultural intensification)'이 극대화된 시기로 설명한다. 그는 집약농업역학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집약농업역학이란 농사에 파종할 종류와 경작방식을 결정하는 권한이 경작자에게 있고 생산량을 전부 자급자족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마을 중심의 기초생활 경제가 국가와 관료가 농사의 제반 사항을 원격조정하고 잉여생산물을 공출하여 국제시장에 수출하고 그 경제적 수익을 대다수 농부에게 분배하기보다는 도시의 소수 지배계층이 차지하는 도시 중심의 시장지향성 의무경제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작의 실질적 주체가 농민으로부터 국가와 관료에게 넘어갔다는 것, 경작의 목적이 내수시장 분배보다는 국제시장 수출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잉여생산물에 따른 경제적 수익이 소수 지배계층에게 집중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관 주도적 정치경제 시스템은 정착유형의 변화와 높은 인구증가율(403,000명 추산), 테라스 조성(terrace), 포도주 생산용 탑(field tower), 올리브 기름 생산을 위한 가로기둥 압축기(beam press), 저장시설과 대규모 창고 건설 등과 같은 기술의 혁신, 그리고 사마리아 오스트라카(ostraca)와 유다의 lmlk 인장(jar stamps), 중량 시스템의 표준화와 같은 국가주도의 경제정책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결국 주전 8세기 이스라엘의 정치적 안정, 경제적 번영, 그리고 영토의 확장이라는 외적 현상 이면에는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 그리고 부정부패라는 또 다른 사회구조가 자리잡게 된다. 부는 사회의 특권층에게만 한정되었고, 정의는 땅에 떨어졌으며, 민중들은 과중한 세금으로 궁핍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8세기 이스라엘은 이미 토지를 소유한 자유농민 계층이 소멸되고 사회는 상류층의 가진 자들과 그렇지 않은 빈민층이라는 두 개의 뚜렷한 계층으로 형성되기에 이른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곧 지배 계층의 정치적 부패와 무책임으로 이어졌다. 즉 집권자들과 부유층은 사치와 퇴폐 풍조에 탐닉하였으며, 이들의 경제는 부정과 결탁하여 사회 정의와 공동체적 연대성을 무시하고 개인의 이익 추구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경제적 번영을 토대로 한 정치적 부패는 문화적인 영역에서 독특한 생활방식을 창출하게 되는데, 이른바 ‘마르제악’ 현상이 그것이다.

2) 마르제악(Marzeah)의 정체
아모스 6:4-7에는 당시 지배계층의 다섯 가지 사치스런 생활 모습이 비난의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른바 ‘상아 상에 누우며(beds of ivory)며’, ‘우리에서 나온 살진 송아지를 먹으며(calves from the midst of the stall)며’, ‘비파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고(the sound of the harp)’,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wine in bowls)',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는(the finest oils),' 이른바 극상층 사회의 생활 양식에 대한 아모스의 구체적인 지적이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이 다섯 가지 요소들이 아모스가 단순하게 마구잡이로 말한 것이 아님이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즉 이것들은 소위 ‘마르제악(Marzeah)'이라는 이름의 현상으로 파악되고 있다.
  마르제악은 고대 근동의 여러 나라의 문서에서 발견되며 주전 14세기부터 로마시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구약성서에서는 오직 2회(암6:7과 렘16:5) 언급되지만 거의 3천 년에 걸쳐 비교적 널리 시행되었으며, 고대사회에서는 잘 알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 마르제악은 사회정의를 해친다는 이유로 예언자들로부터 신랄하게 비판받은 사회역학들 가운데 하나로써, 이는 어떤 사회적-종교적 제도나 결사체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 모임의 회원들을 지칭하기도 하며, 그들이 모이는 집회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르제악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으로 그 정체를 실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우택주는 이를 




신학사상 2012년 가을호(158집) 차례
신학사상 2012년 봄호(156집) 차례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zero
한국신학연구소 / Korea Theological Study Institute / http://www.ktsi.or.kr
03752 서울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55 선교교육원내 / Tel 02-738-3265~7 , Fax 02-738-0167 , E-mail :
Copyright 2000-2019 KTSI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