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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연 
 신학사상 2010년 겨울호(151집) 차례


이번 호에는 구약학 분야에서 강승일 박사는 “아가에 등장하는 중의적 표현들(double entendres)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남녀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아가서가 어떻게 성경에 포함될 수 있었는지 그 본질을 밝혀 보려고 했다. 그는 아가서가 거룩한 정경에 포함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남녀의 사랑을 은밀하고 모호하게 중의적 표현양식(double entendres)을 사용하여 알레고리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 공이 크다고 본다. 그리고 아가서는 남녀의 헌신적인 사랑의 노래를 통해 자유연애나 무분별한 성적 행위들에 대하여 경고하며 우리로 하여금 참된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고 서로를 신뢰하도록 하는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신약학에서 두 편의 논문을 게재했는데 김재성 교수는 “요한복음의 상징들에 나타난 대극의 통합― C. G. 융의 해석을 중심으로”이란 논문에서 요한복음의 상징적 표현들을 C. G. 융의 해석을 통해, 요한 공동체가 사용한 유대교와 헬레니즘의 빵과 빛의 문학적 상징은 역사적 예수가 빛과 생명의 빵의 실체라는 것을 증언하는데 초점이 있다고 본다.

이병학 교수는 “지구적 자본의 제국에서의 탈출: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오라”(묵 18:4)“는 논문에서 로마의 정치적 억압과 식민지의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시장경제 체제를 비판하는 요한저항과 주체신학을 추구하면서, 이를 통해 오늘의 지구적 자본의 제국에 저항하고 대안적 세계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실천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조직신학 분야에서 세 편의 논문을 실었는데, 이은선 교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와 한국적 聖·性·誠의 여성신학- 2013 WCC 부산총회를 전망하며”라는 논문에서 한국 땅에서 세계교회협의회의 총회가 열린다는 것은 기독교가 더욱 강력하게 종교다원적으로 사고할 것을 요청받은 사건으로 보고, 그 일을 위해서 전통적인 기독론의 재구성을 여성신학자의 입장에서 복수론적(複數論的)이고, 보다 다중적인 기독론의 전개를 시도하였다.

이정배 교수는 “민족과 탈(脫)민족 논쟁의 시각에서 본 토착화 신학-제 3세대 토착화론에 대한 비판적 탐색: A. 네그리의 『제국』과 『다중』의 비판적 독해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국경 없는 세계화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민족주의, 탈민족주의 논쟁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분석하고 한국 토착화 신학의 유효함과 가능성을 변증하고 있다.

김기명(성공회대 박사과정)은 “신적 폭력과 역사의 구원- 발터 벤야민의 메시아적 정치신학”이라는 논문에서 신학이 단지 교회라는 종교집단의 자기 해명의 담론이 아니라면, 최근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촛불집회와 용산참사라는 커다란 ‘질문’에 대해 응답해야하고, 이 신학적 응답을 하기 위해 20세기 초엽에 세속적 ‘정치신학’에 대한 성찰을 본격적으로 열었던 발터 벤야민과 칼 슈미트를 재검토했다.

평화학 분야에서 김동진(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 북한학) 박사는 “미국과 북한, 미국과 이란의 갈등에서 나타난 기독교, 주체사상, 이슬람 비교연구” 논문에서 종교와 철학이 갈등과 폭력을 해결하는 역할도 하지만 도리어 이것을 고조시키기도 했다는 역사적 고찰과 분석을 시도 했다. 특히 종교가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포함되면, 갈등해소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폭력의 사용가능성이 증가했는데, 이런 사례로 기독교, 주체사상 및 이슬람이 미국, 북한 및 이란이라는 갈등집단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밝혔다. 동시에 이 논문은 기독교의 사랑, 이슬람의 보편적인 인간성, 주체사상의 자주성과 같은 이타적인 개념들과 정치 이데올로기의 수사적인 연루는 이들 정치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약화시켜 이들 갈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

목회와 상담 분야에서 박노권 교수는 “기독교상담에서 렉시오 디비나의 활용가능성 연구” 라는 논문에서 전통적인 영성수련의 한 방법이었던 렉시오 디비나가 상담에도 좋은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보았다. 렉시오 디비나가 갖는 영적유익뿐만 아니라 심리적 치유의 효과가 있음을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상담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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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

어느 덧 2010 한해도 저물어 간다. 경술국치 100년, 해방 65년, 6.25전쟁 60년, 4.19학생혁명 50년, 광주민주항쟁 30년 등 지난 100여년의 수난과 희망의 역사를 되새긴 한해였다.
식민지, 전쟁, 군사독재로 얼룩진 가난의 폐허에서 G20 의장국이 된 자긍심을 갖게 한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행사들로 치러진 역사적 되새김과 요란한 G20의 뒷전에 밀려난 민중들의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보고 듣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 해를 헛되이 산 것이다. 아니 우리 역시 미화된 탐욕의 배반의 역사를 산 것이다.
한국 사람이란 것을, 한국 제품을 부끄럽게 여기던 의식에서 이제는 자랑스러운 의식으로 바꾸게 한 힘은 민중에게 있었다는 것을 바로 알 때 우리는 함께 행복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은 좌파적 이념의 주장이 아니다. 이번 G20의 슬로건도 “위기를 넘어 동반성장 하자!”, “동반 성장으로 위기를 넘자!”이다. 이미 세계는 나만 잘 살 수 없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  
신학과 신앙이 모두가 행복한 새로운 역사의 길을 가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따듯한 성탄, 희망의 새해를 축복으로 맞이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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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151집)              

연구 논문

강승일 ․ 아가에 등장하는 중의적 표현들(double entendres)에 대한 연구
김재성 ․ 요한복음의 상징들에 나타난 대극의 통합― C. G. 융의 해석을 중심으로
이병학 ․ 지구적 자본의 제국에서의 탈출: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오라”(묵 18:4)
이은선 ․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와 한국적 聖·性·誠의 여성신학
          - 2013 WCC 부산총회를 전망하며
이정배 ․ 민족과 탈(脫)민족 논쟁의 시각에서 본 토착화 신학-제 3세대 토착화론에 대한  비판적 탐색:  
                A. 네그리의 『제국』과 『다중』의 비판적 독해를 중심으로
김기명 ․ 신적 폭력과 역사의 구원- 발터 벤야민의 메시아적 정치신학
김동진 ․ 미국과 북한, 미국과 이란의 갈등에서 나타난 기독교, 주체사상, 이슬람 비교연구
박노권 ․ 기독교상담에서 렉시오 디비나의 활용가능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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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1
편집상 각주와 참고문헌 생략함


미국과 북한, 미국과 이란의 갈등에서 나타난 기독교, 주체사상, 이슬람 비교연구


                                                                             김 동 진(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 북한학)

초록

  종교와 철학은 수많은 국제적인 갈등에 연관되어 왔다. 때때로 종교와 철학은 갈등과 폭력 감소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갈등에서 폭력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특별히 종교는 갈등집단의 내적연대, 행위의 합리화 및 대중동원에 있어 매우 유용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일단 종교가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포함되면, 갈등해소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폭력의 사용가능성이 증가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 이 논문은 미국과 북한, 미국과 이란의 갈등에서 나타난 기독교, 주체사상, 이슬람의 영향을 비교하는 것을 그 주목적으로 삼고 있다.
  본 논문은 연구를 통해, 먼저 기독교, 주체사상 및 이슬람이 미국, 북한 및 이란이라는 갈등집단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밝혔다. 이들은 직접적, 구조적, 그리고 문화적 폭력 행위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행위들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수단이 되었다. 특별히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이전 정부들에 비해 기독교적인 언어를 그 정치적 수사에 더 많이 포함시키면서, 북한과 이란의 정치적 수사에 있어 주체사상과 이슬람의 영향이 더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갈등해소의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폭력사용의 가능성이 증가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 주체사상 및 이슬람이 가진 이타적인 가치들과 이에 대한 수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들이 강조하는 이타성은 집단에 대한 충성과 타인에 대한 적대감을 강조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에 사용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정치 이데올로기의 모순들을 드러내는데 재활용될 수 있다. 본 논문의 연구결과와 같이 기독교, 주체사상 및 이슬람은 각 집단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있어 규범적, 그리고 수사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사랑, 이슬람의 보편적인 인간성, 주체사상의 자주성과 같은 이타적인 개념들과 이러한 정치 이데올로기의 수사적인 연루는 이들 정치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약화시켜 이들 갈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주제어: 갈등, 기독교, 이슬람, 종교, 주체사상, 정치 이데올로기, 철학, 폭력, 평화  


1. 들어가며

  종교와 철학은 그 표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화 가운데, 타인에 대한 사랑, 욕심에 대한 절제, 용서와 이해 및 화해 등과 같이 이타적 가치에 대한 문화적 헌신을 제공하는 여러 형태의 관습과 법체계들을 발전시켜왔다. 이에 따라 종교와 철학은 위와 같은 이타적 가치 및 규범과 관련한 특성들을 가지고 폭력의 감소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종교와 철학은 갈등에 관여하면서 폭력을 고조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별히 9.11 테러 이후 종교가 많은 국제적 갈등에서 집단정체성을 강화시켜 갈등의 근원으로 작용하거나, 확고한 신앙체계 및 제도를 구축해 갈등을 심화시키고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어 왔다. 이는 종교의 교리나 신학과 같은 관습들이 행위에 영향을 줄뿐만 아니라 그 합법성(legitimacy)의 근거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밀리오 젠틸레는 이를 ‘정치의 신성화’라고 부른다. 그는 “정치의 신성화 개념이 전통적 종교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관습을 세속적 목적에 부합시킨 근대적 정치 이데올로기와 운동에 적용”된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종교는 일반적으로 종교적 제도들(religious institutions)을 구성하기 때문에 여전히 전통적인 종교집단들의 정치적 동원 및 정치집단 내부의 내적연대에 있어서도 매우 유용한 도구인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종교가 가진 특성이 갈등집단의 배타성을 전제로 한 정치 이데올로기에 포함될 때, 평화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폭력의 사용빈도가 증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전제하에 본 연구는 미국과 북한, 미국과 이란의 갈등 가운데 기독교, 주체사상, 이슬람이 보여준 영향력을 비교 관찰한다.

2. 미국과 북한 갈등에 나타난 기독교와 주체사상

  종교는 미국대중들의 여론을 형성하는 공론장(public sphere)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다. 특별히 기독교의 내러티브(narratives)는 미국의 정치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80%가 넘는 미국의 성인인구가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200여 개의 기독교 TV방송국과 1500여 개의 기독교 라디오국은 미국 공론장의 내러티브들을 생산해냈다. 거터만(D. Gutterman)은 이 가운데 미국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미국기독교 내러티브로 출애굽(Exodus) 내러티브를 들고 있다. 이러한 출애굽 내러티브의 가장 일반적인 주제는 ‘약속의 땅’(promised land)에서 사는 ‘선택된 민족’(chosen people)이다. 구약성서 예레미야서 11장 3절 중반부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이 언약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또 너희 조상들에게 한 맹세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이 그것을 증언하느니라.  

  거터만에 의하면, 위 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선택된 국가로써의 미국이라는 개념에 대한 믿음은 “수많은 미국의 집합적인 맹점들(blind spots)과 배제(exclusion)의 정치”를 정당화해왔다. 머피(A. Murphy)는 이러한 믿음이 선교사적인 열정과 결합하여 미국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국가를 위험한 세상에 존재하는 신적인 권력으로 보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머피에 의하면, 이러한 믿음을 가진 미국인들은 그들의 군사력을 북한을 포함한 ‘공산주의자들’(communists) 및 이란을 포함한 ‘이슬람파시스트들’(Islamofacists)과 같은 악과 싸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특별히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Reinhold Niebuhr)는 공산주의라는 악에 대한 초기 미국의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공산주의체제를 한 명의 독재자가 다스리는 독재정치로 묘사했으며, 권력의 독점이라는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공산주의를 악으로 간주했다. 니버에게 이러한 악에 대항하는 정의는 평화보다 더 높은 사회적 목표이다. 그는 정의를 위한 행동이 국제전쟁의 무익함을 비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비폭력적인 행동이 효율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해야만 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신학은 한국전쟁당시 미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니버는 하나님께 책임을 다하는 강력한 국가로서 미국은 도덕적 책임의 견지에서 남한을 방어해야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하는 전쟁에 있어 원자폭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말 것을 미국대중들에게 호소했다.    
  한국전쟁 (1950-1953) 기간 동안, 미군은 총 330여 톤의 소이탄(incendiary bombs), 700 여개의 500 파운드 네이팜 탄, 총 175여 톤의 폭약탄(demolition bombs), 그리고 12,000여 파운드의 타존(tarzon)탄을 북한 지역에 투하했다. 특별히 1950년 12월 24일, 중국군의 진주를 막기 위해 미군 장성이자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멕아더(MacAthur)는 30여개의 원자폭탄을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에 투하할 것을 미국정부에 건의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1951년 한 해 동안 미국정부는 원자폭탄의 사용을 지속적으로 고려한 바 있다. 이 때 니버뿐만 아니라 미국교회협의회도 공식적으로 애친슨(D. Acheson) 미국무장관의 요청을 받아들여 필요한 경우 미군이 한반도에 핵을 사용하는 것을 지지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세계대전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간의 전쟁으로 비화된 한국전쟁이 유럽대륙까지 번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의 원자폭탄의 사용을 강하게 반대했을 뿐 아니라 한국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 속에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휴전 이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갈등집단들은 38도선이 아닌 휴전선이라는 군사분계선으로 서로 대치하게 되었다. 물론 휴전협정을 통해 소극적 평화가 조성되어 직접적 폭력의 발생빈도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대신 상호간의 비방전이 시작되었고 여전히 지속되던 북미 간의 갈등은 구조적, 문화적 폭력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끊임없이 남한에 대한 공격가능성을 언급했고, 미국은 남한과 함께하는 연례합동훈련들을 통해 북한을 압박했다. 이 가운데 국가안보에 대한 불안과 전쟁재발에 대한 공포가 한반도에 만연했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북한에 대하여 포괄적인 경제제제를 시작했다. 특별히 1989년 냉전종식 이후, 미국의 경제제제는 기본적인 생필품을 제외한 모든 상품들의 수출입을 금하는 형식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미국과의 갈등 가운데 김일성은 미국과 기독교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김일성은 반동적 행위를 하고 있는 친미파 가운데 반동적인 목사들과 장로들이 많다면서 이들은 미국의 “종교선전에 넘어가 미국을 ‘하느님’처럼 받들면서 우리 조국을 ‘달라’에 팔아먹으려는자”들이라고 비난했다. 김일성은 미국의 종교선전에 대해 설명하면서, 미국선교사들이 말하는 “왼뺨을 치거든 오른뺨을 돌려대라”는 성서구절이 “미국이 조선인민의 자유를 침해한다 하더라도 조선인민은 반항할것이 아니라 복종하여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반동적인 목사 및 장로 외에 대다수의 애국자들과 인민들은 미국에 이러한 기만적인 종교선전에 넘어가지 않고, “미국놈들에게 ‘네놈들이 한번 치면 우리는 두번 갈기겠다’고 대답하였으며 또 실지로 그렇게 하였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에서 비추어볼 때, 김일성은 성서에 등장하는 평화적 가치가 미국의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북한사람들에게 이러한 모순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외세에 맞서기 위한 민족의식 및 그 가치를 고취시키려는 노력을 보였다. 예를 들어 김일성은 1949년 10월 ‘민족문화유산을 잘 보존하여야 한다’는 담화에서 종교보다는 국가가 우선이라는 취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인들은 ‘하느님’을 믿어도 다른 나라의 ‘하느님’을 믿을 것이 아니라 조선의 ‘하느님’을 믿어야 합니다. 교인들은 조국의 번영과 우리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하느님’을 믿어야 합니다. 력사가 보여주는바와 같이 외래침략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인민은 망국노의 비참한 처지를 면할수 없으며 종교도 마음대로 믿을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인들도 나라를 사랑하며 건국사업에 적극 기여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북한정부가 전쟁의 책임을 미국에게 돌리면서 미국의 학살만행을 상기시키는 와중에 미국 선교사들이 그 앞잡이로 묘사되는 등, 기독교는 미국의 종교로 인식되어 강한 적개심의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어 김일성은 미국선교사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과거에 조선에 와서 십자가를 들고 ‘하느님’을 우러러 ‘주여’를 부르던 미국선교사들은 오늘에 와서 십자가 대신에 카빙총을 들고 임신부를 몇십명씩 한데 모아 총살하며 땅크로 어린애를 깔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의식 고취과정에서 김일성은 미군이 전쟁당시 교회를 파괴했을 뿐 아니라 신자들도 많이 죽였는데, 신이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을 보고 북한의 많은 기독교신자들이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창조자라는 주체사상의 신봉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북한정치사전은 주체사상을 “당과 인민이 혁명의 주인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자기 힘을 믿고 자체의 힘에 의거하여 모든 문제를 자기 인민의 리익과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게 풀어나가는데서 견지하여야 할 근본 립장과 태도를 밝혀주는 혁명적인 사상”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주체사상은 그 초기에는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김일성이 미국 등과 같은 외국세력에 맞서 민족의식을 강조해나가는 가운데 발생한 국가도덕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 인민위원회일군들과 산업기관, 문화, 교육 기관, 그밖의 모든 부문에서 일하는 일군들이 앞장에 서서 광범한 대중속에서 낡은 사상을 버리고 새로운 건국사상으로 무장하기 위한 투쟁을 벌려야 하겠습니다.…중략…개인의 향락만 생각하고 국가와 사회의 공동생활을 무시하며 국가재산을 아끼고 사랑할줄 모르는 온갖 리기주의적 사상과 견결히 투쟁하여야 하겠습니다. 개인의 리익보다도 사회전체의 리익을 소중히 여기며 국가재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새로운 인민도덕을 세워야 할것입니다.

암스트롱은 이러한 김일성의 인민도덕에 대한 강조를 ‘욕망의 교육’이라고 정의한다. 암스트롱은 “국가에 의해 정의되고 국가 목표에 정향된 집단적 주체성을 통해 시민들을 사회화하려는 것”은 “개인적인 호불호를 사적인 쾌락으로부터 떼어내 공적인 기획으로 되돌리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 말한다.  
  특별히 주체사상은 미국과의 갈등뿐만 아니라, 북한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소련과 중국 간의 갈등 가운데 더욱 강조되고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김일성은 중소분쟁에 휘말려들기보다 북한만의 독자적인 노선을 찾으려 노력했다. 따라서 김재현은 주체사상에 대한 최초의 정식화는 “중소분쟁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분열과정에서 북한의 입장이 정리되고 소련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주노선이 구체화”되면서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체사상은 점차 북한의 절대적인 지배이념으로써 북한정권의 구조적, 문화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규범으로 사용되어 나갔다. 암스트롱은 주체사상이 북한의 유일사상으로 확립된 이후 김일성 가족숭배가 확대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족숭배는 단순히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측면을 넘어 친절하고 너그러운 모성적인 숭배용어를 사용하면서 주체과 객체, 국민과 민족의 궁극적인 융화를 유도했다. 올슨(E. Olsen)은 북한이 스탈린주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파주의를 한반도 특유의 유교적 전통으로 막아내면서 자신들만의 계급적 권위주의 국가를 형성했다고 평가한다. 김재현도 주체사상의 핵심은 김일성이 단순한 권위주의적 통치자가 아니라 북한인민의 ‘어버이’로 나타났다는 점이며, 이를 통해 북한인민들에게 “권력이 사랑과 은혜로 통제가 귀속감으로, 그리고 권력자의 요구와 의지가 공권력으로 대체”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북한인민들은 이러한 북한정치의 신성화를 통하여, 김일성 정권에 대해 종교인들의 신에 대한 충성도에 비견될 정도의 충성도를 가지게 된 것처럼 보인다. 박한식은 북한이 경제 분야의 수행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일반적인 공산주의 체제와는 달리 이데올로기에 의해 합리화가 되는 체제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하면서, 주체사상에 호소하는 이러한 정치체제를 “기초적인 형태의 신정정치”라고 묘사한다.
  이와 관련하여 종교연구 웹사이트인 어드히어런트닷컴(Adherents.com)은 아예 주체사상을 세계 10대 종교의 반열에 위치시키기도 했다. 이 웹사이트는 세계 10대 종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크기’, 적어도 50만의 신도를 보유할 것, ‘넓이’, 적어도 한 개 이상의 국가 혹은 제한된 지역을 넘어선 범위의 구성원들을 보유할 것, ‘독립성’, 독립적이고 독특한 성격을 가질 것을 들고 있다. 이러한 기준들을 가지고 주체사상을 평가한 이 웹사이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주체사상을 확산시키는 이들은 주체사상을 종교가 아니라 단순히 세속적이고 윤리적인 철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 주체사상은 분명히 종교이다. 특별히 많은 부분에서 소련시대의 공산주의나 중국의 마오쩌둥주의보다 훨씬 더 종교적이다.

  김일성은 이렇게 종교적인 특성을 지닌 주체사상을 대내외적으로 강조하면서 명실상부한 북한의 당, 군대, 국가의 유일한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주체사상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체제유지를 위해 더욱 사회통제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북한체제는 점차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제한되고 검열된 정보만을 허용하는 마치 군대와도 같은 통제된 사회로 변해갔다.
  
3. 미국과 이란 갈등에 나타난 기독교와 이슬람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이슬람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다. 만다빌(Mandaville)은 1979년의 혁명이 많은 무슬림들에게 현대 이슬람의 부활의 정점을 대표하며, 이슬람이 정치에 있어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하는가의 사례가 되었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이 혁명은 성직자들의 통치에 기반을 둔 국가 질서를 설립하려는 것이었다. 이 혁명에 이데올로기적인 근거를 제공한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는 쿠란에 의하면 예언자(the Prophet)야말로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기 위해 지정된 후계자였다고 주장한다.  

오 믿는 자여! 신에게 복종하고 그 사도, 그리고 너희 중에 권위를 부여받은 자들에게 복종하라. (코란 4: 60)

당시 혁명의 대상은 서방화와 세속화를 진행하는 것처럼 보였던 왕(shah)의 권력이었다. 호메이니는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만이 이란을 폭정과 서방의 지배에서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정부의 후계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 사도여! 그대의 주로부터 전해 받아온 모든 것들을 선포하라: 그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는 그(주)의 메시지를 전혀 선포하지 않는 것이다. (코란 5: 70)

  1979년 11월 4일, 이러한 이슬람혁명의 진행과정 가운데,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이 호메이니의 추종자들이었던 무장한 이란학생들에게 점거되었다. 이 당시 대사관에 있던 52명의 미국인들은 444일 동안 인질로 잡혀있었다. 이에 대응하는 조치로 당시 미국대통령 카터(Carter)는 원유를 포함한 이란으로부터의 모든 수입품반입을 금지하고, 미국상품을 이란에 수출하는 것을 막는 수출입제제를 실행했다. 스미스(Smith)는 당시 이란에 제제를 가했던 카터가 국가는 그 힘을 정의의 도구로 사용해야한다는 니버의 견해에 동의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카터는 자주 성서를 읽는다는 것으로 유명했고, 공적인 자리에서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하는 등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카터는 성서적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력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세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을 정권의 주요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호메이니를 비롯한 이란의 이슬람성직자들은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서방식민주의의 성격을 가지고 서방의 제국주의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이라 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호메이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국주의자들은 이슬람이 정부의 특별한 형태나 정부기관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견해를 확산시켜왔다.…중략…이러한 종류의 선전선동은 무슬림들이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게 되는 것과 이슬람 정부를 세우는 것을 막으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전반적인 계획의 일부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 이외에도 이란에 이슬람 정부가 세워진 이후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로부터의 인권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란의 인권문제를 비판하는 이들은 이란 헌법 하에서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과 여성들의 인권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동시에 내부로부터는 수니(Sunni) 급진파들이 오히려 호메이니가 진정한 샤리아(Shari'a)의 의미를 이란헌법에 담아내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렇게 갈등이 고조되던 가운데 1983년 레바논(Lebanon)에서 미국대사관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미국의 레이건(Reagan) 행정부는 즉시 이란을 ‘국제테러의 스폰서’(a sponsor of international terrorism)로 지명하고, 이란에 대한 국제기관들의 원조를 제한하는 조치를 실행했다. 스미스는 당시 레이건이 카터의 기독교신앙에서 더 나아가 요한계시록 16장에 등장하는 아마게돈(Armageddon) 전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레이건은 이러한 믿음 속에서 북한과 이란을 포함한 공산주의 및 테러지원국들에 대항하여 더 강력한 미국의 국가방위를 확보하려 노력했다. 그는 심지어 미국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누가복음 14장 31-32절의 다음과 같은 부분을 인용했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레이건은 이 구절을 미국의 상황에 적용하면서, 예수님께서도 국가방위예산확대를 지지하셨을 것이며, 미국이 약자가 되어서 평화협상을 벌여야하는 상황을 피하길 원하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주께서 미국으로 하여금 그 약함으로 인해 적들과 협상할 필요가 없을 만큼 미국을 축복하셨다고 언급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도 미국은 계속하여 이란이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들에 협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더불어 1990년대 초부터 미국중앙정보부는 이란이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의 개발을 시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미국은 이란과의 상업적인 교류를 금지하는 행정 조치를 시행했으며, 특별히 1996년에는 원유를 비롯한 이란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투자를 처벌하기 위한 이란-리비아 경제제제(the Iran-Libya Sanctions Act, ILSA)를 발효시켰다. 이러한 경제제제는 이란의 경제상황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4.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의 등장 이후 악화된 미국/북한 및 미국/이란 갈등에 나타난 기독교, 주체사상, 이슬람

  스미스(Smith)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임기 기간을 미국 역사상 종교적인 문제들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시기라고 평가한다. 이는 이전 행정부에 비해, 부시가 국내 및 국제정치에 있어 상당한 분량의 종교적인 수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부시는 그의 연설문들 가운데 상당부분 종교적인 삼단논법을 활용했다. 부시가 활용한 삼단논법의 첫 전제는 미국이 자유라는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전제는 미국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그 자유라는 목표의 근원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미국이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된 하나님의 국가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삼단논법을 활용한 부시의 가장 유명한 연설은 ‘악의 축’ 연설이라고 불리는 2002년 부시의 국정연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진짜 속성을 압니다. 북한은 그 국민들을 굶겨가면서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체제입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소수가 국민들의 자유를 향한 희망을 억압하고 있는 이란은 공격적으로 무기들을 추구하고 테러를 수출합니다.…중략…이러한 국가들과 그들의 테러리스트 동맹들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기 위해 무장하는 악의 축을 구성합니다.…중략…미국의 성격 가운데 그 깊은 곳에 명예가 있습니다. 그것은 냉소보다 강합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비극 속에서, 특별히 비극 속에서 발견해왔습니다. 그 즉시, 우리는 이것이 자유의 역사 가운데 결정적인 10년이 되리라는 것, 우리가 인류의 사건들 가운데에서 유일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중략…우리의 적들은 다른 사람들의 아이들을 자살임무 및 살인에 내보냅니다. 그들은 폭정과 죽음을 목표와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중략…우리는 자유의 힘을 보여 주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갈등에 있어, 나의 동료 미국인들이여, 우리는 자유의 승리를 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위에서도 나타나듯 부시는 삼단논법의 첫 전제로 미국이 “자유의 역사” 가운데 “자유의 힘”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이어서 두 번째 전제로 부시는 “미국의 성격” 가운데 있는 “명예”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에 대한 발견을 통해 가능한 것이라 말한다. 결론적으로 부시는 국민들을 굶기고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무력무장을 하고 있는 북한과 이란에 대항하는 선택된 국가로써의 미국의 승리는 신의 목적에 따라 당연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생어(Sanger)는 이렇게 부시가 대통령 임기동안 미국만이 하나님으로부터 북한 및 이란과 같은 국가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힘을 부여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부시는 카터 및 레이건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힘이 곧 미국의 경제력 및 군사력이며, 이러한 경제 및 군사적인 압박을 통해 북한과 이란의 항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특사였던 프리차드(C. Pritchard)는 다음과 같이 부시와의 대화를 회상한다.

“나는 바보가 아닙니다.” 대통령은 말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우리가 무언가 하려하면 사람들(북한)에게 떨어지는 재정적인 부담이 클 것이기 때문에 내가 너무 빨리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중략…이 사람을 제거하면, 누가 맡을 것인가…중략…나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자유를 믿던지…중략…아니면 그렇지 않든지 둘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전략은 성공적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던 상황 가운데 오히려 갈등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고난의 행군으로 대표되는 급격한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 주체사상보다는 선군정치, 및 강성대국론을 강조하고 있었다. 또한 이는 김일성을 이어받은 김정일의 통치를 경제발전을 기치로 삼아 합리화해나가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북한은 김일성, 그리고 김정일로 이어지는 유일지배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을 그 정치이데올로기로 삼아 이들의 통치를 정당화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체제는 점차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 새로운 정책목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자기 규정력에 묶여 교조적인 양태를 보였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 가운데 경제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자, 김정일은 강성대국 등으로 경제건설 논리를 강조하면서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지향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임동원에 의하면 사실상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경제발전을 위해 북미관계개선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조명록 차수를 미국에 특사로 파견해,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 북미 간의 정상회담을 타진할 정도로 관계개선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의 등장 이후 미국의 재정적 경제제제는 북한의 붕괴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엄격했고, 이는 조금씩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던 북한의 대외경제를 다시 악화시켰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2005년 북한기업의 자산들을 동결시키고, 북한으로 유입되는 국제기업들의 자금줄을 막았다.
  이렇게 부시의 강경정책은 김정일의 경제 전략에 차질을 주었고, 북한으로 하여금, 반미, 반제국주의의 논리를 가진 주체사상을 다시 한 번 강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은 1995년 이후 처음으로 2002년 신년공동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주체사상을 언급했다.

우리 사상제일주의를 높이 들고 나가야 한다. 조선혁명은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개척되고 력사의 풍파를 뚫고 승리하여 온 혁명이다... 우리는 주체사상을 혁명의 천하지대본으로 튼튼히 틀어 쥐고 나가야 한다. 주체사상을 뿌리로 하여 선군정치가 나오고 주체사상을 구현하는 투쟁속에서 일심단결도, 우월한 사회주의도 생겨 났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혁명이 계속되는 한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 인민들을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키는 사업을 한순간도 중간하지 말아야 한다.…중략…우리는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혁명과 건설에서 자주적대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 준엄한 <<고난의 행군>> 시기처럼 제 정신을 가지고 제 힘으로 일떠서며 우리의 로선, 우리의 원칙을 추호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더불어 북한은 선군정치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모습을 가진 선군사상으로 격상시켰다. 선군정치는 경제건설의 효율성을 위해 주체사상에 있어 혁명의 주력인 인민대중이 아니라 군대를 일시적으로 혁명의 주력군으로 삼아 강성대국을 일으킨다는 논리를 가진 김정일 정권의 표어였다. 그러나 이는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경제상황이 좋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선군정치는 미국을 비롯한 외부로부터의 공세를 방어하는 성격을 가진 선군사상으로 변화되었다. 2003년 신년공동사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체사상에 기초한 우리 당의 선군사상은 사회주의위업수행의 확고한 지도적 지침이며 공화국의 륭성번성을 위한 백전백승의 기치이다.…중략…우리는 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침투에 혁명적 경각성을 높이고 우리의 사상과 도덕, 우리의 고상한 사회주의생활양식을 견결히 지켜 나가야 한다.…중략…현 시기 조선반도에서의 대결구도는 북과 남의 조선민족 대 미국이라고 볼 수 있다.…중략…우리 군대와 인민은 제국주의와의 대결전에서 언제나 백승을 떨쳐 온 우리 공화국의 긍지 높은 력사와 전통을 위대한 선군의 기치밑에 영원히 빛내여 나갈 것이다.

  이렇게 심화되어 나가던 미국과 북한의 갈등 가운데, 북한주민들에 대한 구조적인 폭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미국북한 인권위원회(The US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 HRNK)는 유엔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 WFP)과 유니세프(UNICEF)가 2004년 수행한 연구보고서를 종합하여 북한의 식량난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6세 이하 어린이의 37%가 성장장애, 12%는 심각한 성장장애, 23%가 체중미만, 8.1%는 심각한 체중미만, 7%가 쇠약상태, 거의 2%는 심각한 쇠약상태, 3분의 1가량의 산모가 영양실조, 35%는 빈혈.

  그러나 북한은 위와 같이 열악한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위협에서 국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계속하여 상당한 분량의 재정적, 산업적 자원들을 군사력 증강에 투입해왔다. 특별히 선군사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뒤 북한은 곧 핵실험을 공표했다. 2006년 10월 3일, 북한조선중앙통신(The Korean Central News Agency)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미국으로부터의 극심한 핵위협, 경제제제 및 압력은 우리(북한)로 하여금 이에 상응하는 방어조치로 핵억제를 강화하는 필수적인 과정인 핵실험을 수행하도록 만들었다.

  한편 부시행정부가 등장했을 무렵, 이란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과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경제적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던 1997년, 성직자들이 지정한 후보자에 맞서 모함마드 하타미(Mohammad Khatami)가 이란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이란 젊은 세대의 자유에 대한 희망을 포용하려고 노력했으며, 의미 있는 정치경제개혁을 단행했다. 하타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축복을 구가하는 한 사회는 진정으로 매력적인 이슬람의 이미지와 혁명 정신을 잘 반영하는 사회입니다. 그러한 사회는 사실상 오늘날 현대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중략…우리는 우리의 독립을 존중해주는 어떤 나라와도 관계를 맺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국익의 차원에서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의지가 우리를 강제하고자 하는 어떤 세력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맞설 것입니다.

  만다빌은 이렇게 하타미가 개혁과 개방성을 통해 이슬람 혁명을 좀 더 안정적인 형태로 만들길 원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란의 점차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2001년 부시는 결국 ILSA를 연장했다. 이에 따라 계속해서 증가하던 미국과 이란의 긴장상태는 2002년 부시의 새해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부시는 이란을 북한과 마찬가지로 악의 축(axis of evil) 국가들 중 하나에 포함시켰다. 악의 축 선언에 이어진 미국의 이란에 대한 새로운 적대감은 이란 내에서 하타미를 비롯한 개혁주의자들을 미국의 제국주의적 디자인에 협조하는 자들로 묘사되게 만들었고 이란 정치에서 강경한 네오-호메이니즘의 등장을 야기했다. 이 결과 2005년 강한 반미 성향을 가지고 있던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Mahmoud Ahmadinejad)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생어는 아마디네자드가 스스로를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주의 골리앗에 대항하여 굽히지 않는 페르시아의 다윗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이란 내부의 정적들을 잠재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란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2006년, 핵프로그램을 재개했다. 물론 당시 이란은 북한과 달리 그들의 핵프로그램을 무기화한다는 전면적인 선언을 한 것은 아니었고 계속하여 핵의 평화적인 사용 권리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란의 핵프로그램 재개는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핵무기와 관련된 갈등으로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란의 테러리즘과의 유착관계 및 핵무기 개발에 대한 의혹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이란의 입장에서는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미국의 경제제제 및 미군의 이란국경부근 주둔에 대한 고민이 증가했다. 이러한 미국과 이란의 갈등 가운데, 북한과 마찬가지로 이란 민중들을 향한 구조적인 폭력이 고조되었다. 이란의 경제상황이 침체를 면하지 못하면서, 인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2006년 부시는 이러한 이란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비판했다.

이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란은 지금 그 국민들을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소수의 성직자들에게 인질로 잡혀있습니다.

  이렇게 경제제제를 포함하여 계속된 일련의 위기상황들은 이란의 경제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정치적 주권을 위협했다. 그러나 북한과 마찬가지로 이란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서방세계, 미국, 제국주의 및 세계정의에 대한 종교적 수사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디네자드는 2007년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물질적인 욕심은 인간들을 세상에 존재하는 실재들에 대항하도록 합니다. 타락하고 독립적인 인간은 실재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들이 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중략…예를 들어 그들은 과학적인 방법과 도구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속입니다. 그러할 지라도 사실상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존재하지도 않는 적들 및 불안한 환경을 만들어서, 그들은 안보불안과 테러리즘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것들을 통제하려 합니다.

생어는 이란사람들이 경제제제와 고립상태를 좋아할 수 없으며, 계속하여 미국이 이란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란 내부에서 이러한 아마디네자드에 대한 지지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2009년 부시를 이어 좀 더 포용적인 이미지를 가진 오바마(Obama)가 새롭게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많은 수의 언론 및 학계에서 미국과 북한, 이란의 갈등 가운데 긍정적인 변화를 예측했다. 그러나 2009년 오바마는 다시 한 번 이란을 미국에 대한 큰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제제를 연장했다. 이러한 상황 속 2009년 열린 이란의 대통령 선거에서 아마디네자드는 다시 이란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와 더불어 오바마가 경제제제 완화와 같은 북한문제의 해결보다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문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두 번째로 지하핵실험을 감행하는 등, 미국과 북한, 이란과의 갈등은 아직까지 그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5. 결론

  포포스키(Popovski)는 종교 자체가 폭력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의 특성을 활용하여 폭력을 활성화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종교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집단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단에 충성하는 종교적인 이타성은 폭력으로 변화되기가 쉽다. 우리는 위에서 미국, 북한 및 이란이라는 국가 영향력의 확장과 방어를 위한 정치 이데올로기에 나타난 기독교, 주체사상, 이슬람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었다. 기독교는 미국의 정치적인 힘뿐만 아니라 그 사회문화적인 힘을 다른 국가에까지 확장시키는 공격적인 정치 이데올로기에 포함되었다. 주체사상과 이슬람은 이러한 영향력에 맞서 북한, 이란의 정치, 사회문화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한 방어적인 정치 이데올로기에 포함되었다. 이 가운데 특별히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가진 이타적 가치는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회의 관습적인 형태로 배타적인 민족주의 및 국수주의에 결합되었다. 반대로 정치 이데올로기로 시작한 주체사상은 민족 및 국가에 대한 이타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과정 속에서, 점차 종교에 근접할 만큼 집단구성원들의 충성도를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갈등의 대상 집단 간 직접적, 구조적 폭력뿐만 아니라, 갈등집단 내부의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폭력을 증가시켰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간 많은 수의 갈등해소연구들은 사회과학적인 입장에서 이들 종교와 사상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보이거나, 아예 그 영향력을 배제함으로써 갈등의 근본원인을 찾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도출하는데 집중해왔다.
  그러나 기독교, 주체사상, 이슬람이 가진 가치 및 그 정치적 영향력을 연구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들을 사용했던 정치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드러내는데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사랑의 신에 대한 충성을 기반으로 한 종교라고 해석되어 왔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기독교가 가진 사랑이라는 이타적 가치를 특정국가 혹은 민족에 제한시켜 폭력행위에 가담하는 것은 종교적인 모순이다. 특별히 사랑과 비폭력에 대한 다양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 성서는 이러한 모순을 드러내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이는 이슬람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슬람은 신이 창조한 인간의 보편적인 존엄성을 기반으로 한 종교라고 주장되어 왔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에 대한 존중의 가르침을 가진 쿠란은 이슬람이 포함된 정치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나타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인간존중사상에 대한 수사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인간의 자주성과 인간존중을 강조하는 주체사상은 김일성, 김정일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과정에 사용되었다는 자체적인 모순을 가진다. 북한은 이러한 김일성, 김정일의 절대적인 영도가 주체사상이 말하는 인간의 자주성을 집단적으로 실현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주체사상이 가진 인간의 자주성 및 인간존중이라는 기본적인 수사의 지속적인 강조는 결국 이러한 북한 정치체제가 가진 논리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결론적으로 이들 종교와 철학은 정치 이데올로기로써 폭력에 기여한 만큼, 오히려 이들은 그러한 정치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드러내는데 사용되어 평화의 정당성을 확산시키는 데 재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갈등과 폭력에 기여한 종교와 철학의 영향력을 제거하거나 배제하려는 노력보다는 이들을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평화에 기여하도록 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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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2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와 한국적 聖·性·誠의 여성신학
-2013 WCC 부산총회를 전망하며

                                                                                                  이은선(세종대 교수, 조직신학)

초록

  본 논문은 2013년 부산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열리는 것을 계기로 해서 오늘날 지구환경의 변화에 대한 다각도의 숙지와 더불어 앞으로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한국 여성조직신학자의 시각에서 조명한 글이다. 아시아 유교문명권의 핵심 나라인 한국에서 총회가 열린다는 것의 의미를 기독교 문명권이 역사상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자신과 대등한 관계임을 주장하는 문명권과 만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이 유교 문명권과 기독교 문명권이 만났을 때 어떤 창조적인 열매가 맺어질 수 있는지를 탐색하였다.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경우로서 인류가 지금까지 일구어온 대표적인 세계 종교군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국 땅에서 세계교회협의회의 총회가 열린다는 것은 기독교가 더욱 강력하게 종교다원적으로 사고할 것을 요청받은 사건으로 보았고, 그 일을 위해서 전통적인 기독론의 재구성을 요청하였다. 즉 복수론적(複數論的)이고, 보다 다중적인 기독론의 전개를 말하는 것이다.
  유교 성인지도(聖人之道, To become a sage)를 ‘최소한으로 종교적이면서도 풍성하게 영적인’ 즉세간적(卽世間的) 종교성으로 해석하면서 기독교 신앙과의 만남 속에서 바울의 ‘믿음을 통한 칭의’를 새롭게 해석하고 조명하였다. 또한 전통적인 ‘갱생’(incarcation)이나 ‘부활’을 모두의, 그리고 매 순간의 ‘믿음의 행위’로 해석하면서 기독교 신앙이 다시 한 번 수행적 차원을 회복하고 오늘 우리 삶에서 긴급한 문제인 모성과 가족 해체, 교육문제, 고령화 문제 등에 지혜롭게 응대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모든 대안들이 기독교가 유교와 만나면서 가능해지는 일들로 보았고, 2013년 한국에서 총회가 열리는 것을 계기로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에 제시해 줄 수 있는 일로 보았다.

주제어: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 한국적 聖·性·誠의 여성신학, WCC 부산총회, 복수론적 기독론, 유교 종교성, 聖人之道



I. 시작하는 말 : 21세기 인류문명과 기독교 에큐메니즘

   현대 과학이 추정하는 지구의 나이는 대략 45억년 정도라고 한다. 거기서 ‘인간다운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살기 시작한 10만 여 년 전으로부터 21세기가 된 오늘 우리는 정말로 세계가 하나 되었음을 느낀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각종 통신장비나 미디어매체, 여행이나 국제정치와 경제 등을 들지 않더라도 지구는 진정으로 우리 모두의 집이며, 인류는 한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 떼이아르 드 샤르뎅은 인류는 이미 19세기 말부터 그동안의 의식의 팽창기를 거쳐서 팽창한 의식이 하나로 되는 압축기로 접어들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인류 공동의 집(오이쿠메네, οικουμενη)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 문제는 지금까지 인류가 상상하지 못한 총체적 차원의 것이고,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어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 이름들이 있다. 동아시아적 문명의 세계에서는 ‘대동세계’(大同世界)를 이루기 위해서 거쳐야하는 ‘소강’(小康) 시대에 대해서 말하고, 한국적 우주론과 문명론은 신천지, 신사회, 신인간의 탄생을 위한 ‘후천개벽’을 지시한다. 이렇게 지구 집에 생긴 문제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는 “자연이 파괴될 수 있다”(die Verletzbarkeit der Natur)는 것이다. 지난 80년대 유럽 사회에서 한스 요나스(Hans Jonas)가 기술문명이 불러올 수 있는 자연 파괴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존재론적 문제”로 부각시키면서 “책임의 윤리”(das Prinzip der Verantwortung)를 호소했을 때는 그래도 덜 긴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 곳곳에서 ‘임계점에 이른 기후변동’의 추이를 더욱 자주 겪고 있고, 그 위기가 초래한 ‘생지옥’(dystopia)의 가능성이 점점 더 현실화되는 상황이므로 이 환경의 문제로 인해 인류는 점점 더 한 가족임을 자각한다. 다음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 상황은 서구 근대성(modernity)의 성과물로 이야기되는 “시장경제”(market economy)와 “공론장”(public sphere), 그리고 “인민주권”(self-governing people)의 세 가지와 잘 연관될 수 있다.  먼저 근대인들의 의식을 이루는데 첫 번째 역할을 한 ‘경제적인 것’은 오늘날 보다시피 인간 삶의 다른 모든 차원을 잠식해 버렸다.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뿐 아니라 국가적 삶에서도 경제적 이익의 추구란 행위자의 제일의 원리가 되어서 특별히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를 가릴 것도 없이 오늘날 인류 삶을 가장 잘 지시하는 언어는 ‘경제제일주의’가 되었다. 이 경제제일주의와 공리주의적 도구이성은 갈수록 점점 더 어떤 공론의 장도 남겨두지 않는다. 모든 개인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추구를 위해서 사적 영역으로 숨어버리고 참된 권위와 책임을 가진 공적 인간은 정치의 영역에서는 물론이고 종교의 영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서 근대의 ‘공론장’(a common space)은 점점 더 위축되어 가거나 왜곡되어진다. 남는 것은 오로지 파편화된 경제적 동물로서의 개인들뿐이다. 이런 가운데서 ‘인민주권’의 이상은 “자기중심적인 세대”(me generation)와 주관주의에로의 함몰로 부패되고, 여성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이미 “세계소외”(world alienation)로 유사하게 지적했듯이 한국 사회뿐 아니라 인류의 집은 자기도취에 빠진 개인과 인간과 정신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오늘날은 지금까지 인간적인 상식과 이성으로 보편적으로 파악되던 자연 세계의 ‘실재’(reality)가 무너지고 현실감각과 신체적 세계를 떠나서 한없이 가상적(virtual) 세계로 날아가는 인간주관의 부패가 심각하다. 이와 더불어 지구 밖의 우주적 집의 건설을 위해서 상상할 수도 없는 정도로 지구적 힘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 인간 ‘우주정복’의 과학은 또 하나의 인간적 자아도취와 세계소외의 표현일 수 있다.
  
   현대(근대) 사회의 경제제일주의와 자아중심주의, 공적 영역(또는 지구적 실재)의 소멸 문제는 결국 ‘궁극’과 ‘초월’에 대한 물음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즉 ‘종교’(궁극적인 것宗에 대한 가르침敎)의 문제를 말하는데, 왜냐하면 지금까지 세계의 종교들은 그 사용하는 언어와 표현 양식은 달랐지만 한결같이 경제(물질)가 궁극이 아니고, 자아를 넘어서는 초월이 있으며, 모두가 인정하고 배려해야하는 더 근원적인 기반(공적 영역 또는 역사적 실재)이 있음을 줄기차게 지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중심주의와 물질주의, 주관(개인)주의의 문제로 지구 집(오이쿠메네)이 존재론적인 위기에 처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종교들이 화합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갈등의 주된 요인이 되는 것이 지구 집의 또 다른 문제이다. 즉 종교 간의 갈등과 불화를 말하는데, 오늘날 인류 문명 간의 충돌이 이야기된다면 그것은 곧 종교 간의 반목과 불화를 말하는 것이다. 중동지역에서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사이의 오래된 반목, 인도나 중국, 티벳 지역에서의 갈등과 동아시아에서의 유교, 불교와 기독교의 갈등 등 전 지구적 차원에서 자신들 공동의 집이 존재론적 위기에 처해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서로 반목하고 있다. 다시 더 지평을 좁혀서 기독교 내에서만 보아도 캐톨릭과 동방정교회, 개신교사이의 불화, 개신교 내에서도 교파간의 싸움은 에큐메니칼 70여년의 역사에서도 크게 줄은 것 같지 않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를 지금까지의 교회 내에서의 일치의 문제를 넘어서 보다 근본적으로 지구 집의 ‘살림’의 문제로 보고자 한다. 위에서 서술한 대로 인간 공동의 지구적 집이 당면한 현실 앞에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 종교의 기독교적인 표현인 WCC 총회가 2013년 부산에서 열리는 것을 앞두고서 풍성한 종교적 전통의 나라 아시아의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고자 한다. 특히 여성신학자로서, 또한 아시아의 풍성한 종교 전통 중에서도 ‘유교’ 전통에 주목하면서 이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것이 본인의 입장임을 우선 밝힌다.

II. 한국에서 제10차 WCC총회가 열리는 것의 의미: 유교 즉세간적(卽世間的) ‘聖’의 종교성 회복

   1948년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창립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지금까지 모두 9번의 총회를 세계 곳곳에서 가졌고 앞으로 제10차 총회(2013년)를 대한민국 부산에서 앞두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교회에 의해서 주도된 세계교회협의회 교회연합 운동은 제3차 총회(1961년 11.19-12.5)를 인도의 뉴델리에서 연 이후 두 번째로 아시아에서 총회를 갖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매번의 대회가 열리는 장소에 따라서 나름의 의미화를 해왔지만 이번 한국에서의 대회는 여러 차원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오늘 우리 시대를 인류 제2의 차축시대라고도 하고 ‘유교의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of Confucianism)을 말하는 지적과 다르지 않게 21세기에 들어선 세계는 크게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나라로 대변되는 유교 문명권과 기독교 문명권이 마주하는 상황에 들게 되었다. 이러한 정황에서 유교 문명권의 핵심나라인 한국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열린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가지고, 그것은 이전 아시아의 다른 종교 전통인 불교와 만났을 때와도 또 다르다. 이번의 만남은 불교와 같은 ‘無爲’의 종교가 아닌 같은 ‘有爲’의 전통과의 만남이고, 그래서 서구 기독교가 로마문명권의 국교가 된 이후 처음으로 정치적으로도 자신과 대등한 위치를 주장하는 문명권과의 만남이 된다. 한국은 주지하다시피 유교 문명권의 핵심 나라로서 지금까지 그 근원지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깊이 있게 유교 문명을 가꾸어 왔다. 18세기 말 가톨릭과의 만남과 19세기 후반 더욱 포괄적으로 기독교 복음과 접하면서 세계에서 유래 없는 교회의 모습으로 일구기까지 거기에는 유교 전통이 큰 역할을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비록 한국 교인들 스스로가 뚜렷이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 하더라도, 또한 당시의 배타적인 제국주의적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서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앞에서 지적했듯이 21세기의 인류 문명의 정황이 그 두 문명 간의 대화를 더욱 요청하기 때문에 2013년 한국 대회를 계기로 삼아서 그 만남을 더욱 진척시키는 것이 한국 교회의 긴요한 과제이고, 그럴 경우에 한국 대회의 고유성과 열매를 풍성히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인류 종교문화사 속에서 한반도는 아주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지구라는 생명체에서 인류가 가꾸어온 대표적인 종교군들인 ‘지혜’ 종교군에 속하는 샤머니즘이나 유교와 도교, ‘신비가’ 종교군에 속하는 힌두교나 불교, 그리고 ‘예언자’ 종교군의 유대교나 이슬람, 기독교의 세 종교군 모두가 이곳에서 꽃을 피웠으며, 21세기 세속화 사회에서도 여전히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모두 활발하게 실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이러한 한국 땅에서 열린다는 것은 종교적인 우월성과 배타성의 교회와 신학이 참으로 포괄적이고 첨예하게 종교다원적 상황과 마주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런 뜻에서 오늘의 세속 사회에서 기독교가 점점 더 그 실행력과 의미를 잃어가는 때에 자신의 개혁과 갱신을 위한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유교의 종교성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제기되어왔다.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를 포함한 예수회 전교사들이 명나라 말기의 중국 내륙에 첫발을 내딛었던 1583년의 상황에서도 리치 일행은 중국의 유교보다도 불교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들을 불교 승려처럼 꾸며 중국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곧 중국 문명의 존엄과 고유성이 유교 전통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논어』를 위시한 중국 경전들을 공부하면서 유교가 어떻게 경천(敬天)의 사상을 순수하게 지켜왔고 그 일자(上帝 또는 天)의 존숭에 근거한 인간 덕의 신앙을 구현해 왔는지를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리치는 ‘하느님’(Deus)을 공경하고 지성을 중시하는 기독교가 오히려 “우상숭배적인 불교”보다도 유교와 더 잘 만날 수 있음을 보았다. 그렇게 두 종교 전통의 만남을 위해 일생을 바친 리치에게 중국 조정은 “모의입언”(慕義立言, 義를 숭모하고 말씀을 세운 사람)이라는 송덕문을 내렸고, 1603년 『천주실의』를 출간하는 서문에서 그의 친구는 그를 큰 스승의 존칭에 해당하는 ‘리쯔’(利子)라는 유교적 이름으로 불렀다.
   처음에 서방교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에 의한 것이 아닌 18세기 말 조선 유교 선각자들의 자발적인 진리 탐구에 의해서 촉발된 한국 교회의 시작이야말로 유교의 종교성을 잘 드러내주는 일이라 하겠다. 한국 교회사에서 익히 알고 있듯이 1770년대 이래로 당시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의 문하에서 수학한 젊은 유학자들(권철신·일신 형제, 정약전·약종·약용 형제들, 이벽과 이승훈 등)의 유교 갱신 노력이 기독교 진리탐구와 신앙 실천으로 이어져서 한국 교회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바로 유교 가르침 안에 그와 같은 초월성에로의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뿌리가 놓여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인류의 대안적 영성으로 주목받는 동학의 시작이 바로 유교 선비 최제우(1824-1864)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유교 종교성의 또 다른 좋은 증거라고 본다. 천주교보다 100여년 늦게 시작된 한국 개신교를 보더라도 굳이 최병헌(1858-1927)이나 유영모(1890-1981), 이용도(1901-1933)나 김교신(1901-1945), 함석헌(1901-1989) 등을 들지 않더라도 1888년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 게일(J.S. Gale)은 “대나무로 된 붓이 특산물”인 “학문을 숭배하는 나라” 조선에 대해서 “중국이나 인도에서 아마 천명 가운데 한 사람이 읽을 수 있는데 비한다면 조선에서의 읽기는 거의 보편적”이라고 하면서 하늘이 예비한 “(지구)전반구(全半球)를 돌리기 위한 축으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표현했다.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의 측면에서도 이미 1930년대에 한국 교회에서 교파의식이 굳어지는 것을 비판하며 오직 한국을 위해 예수 정신을 가르친 이용도의 “한국적 영성 속에서 에큐메니칼 의식의 전형을 만날 수” 있다는 지적과 배치되지 않게 이후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구자들도 한결같이 유교적 뿌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김재준, 김관석, 길진경, 박상증, 강문규, 오재식, 안재웅 등). 여기서 본 연구자는 지금까지 특별히 주목받지 못했지만 민중신학의 거인 안병무의 신학도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는데, 그가 공자의 仁사상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이 그의 민중신학을 일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중 사건이 곧 예수 사건”이라는 그의 급진적인 聖과 俗의 등가화는 유교의 핵심 가르침인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낮고 쉬운 것을 배워서 높이 올라감)과 ‘극고명이도중용’(極高明而道中庸, 고명한 것을 밀고나가면서도 중용을 살아감)의 도와 일맥상통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그의 민중신학을 유교적 즉세간(卽世間)의 종교성이 또 다르게 토착화된 것이라고 보려는 것인데, 이와 더불어 1970년 전태일의 죽음 앞에서 당시 한국기독교학생회(KSCM)의 간사로 있던 오재식 선생이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전태일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으로 역사화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오늘날 세속화 사회에서 출세간적(出世間的) 초월의 이야기는 더 이상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서구 근대성의 탐구가 찰스 테일러와 같은 사상가들도 이제 어떤 탈세간적 신성성의 힘으로 인간주체성과 사회적인 결속을 근거지우려는 일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하며 대신에 “최소한으로 종교적이면서도”(miniaml religion) 풍성하게 “영적인”(spiritual but not religious) 또 다른 차원의 종교성을 찾고자한다. 본 연구자는 ‘인간은 누구나 다 배움(學)을 통해서 성인이 될 수 있다’(學以至聖人之道)고 말하는 유교적 즉세간의 ‘성인지도’(聖人之道, To become a sage)의 종교성이야말로 이러한 포스트모던적 요구에 어느 다른 전통보다도 훌륭하게 답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聖’(the sacred)과 ‘俗’(the profane)의 초월적 구분 대신 俗 안에서 聖을 보고, 가장 적게 종교적이면서도 가장 실천적으로 이 현실과 일상과 세계의 모든 일 가운데서 궁극의 의미(聖)를 실현하려는 추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교학자 류승국은 일찍이 “유교에 있어서는 지극히 높고 밝은 天道와 일상적인 人道와의 이원성을 어떻게 조화하며, 지극히 높은 이상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이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이른 시기부터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시도해온 쥴리아 칭은 유교를 하나의 종교전통으로 보면서, 그러나 그 유교적 종교 전통의 특징은 이 세계와 인간 세계에서 도를 실현하려는 내면화의 길을 가는 것(“lay spirituality”)이라고 밝혀 주었다. 이렇게 유교의 길은 일상의 삶에서 초월을 실현하려는 시도이므로 불교나 도교, 또는 기독교처럼 일상과 속(俗)을 구별하는 차원에서의 성직자 그룹을 따로 두지 않는다. 또한 삶의 모든 일 속에서 도를 실현하려는 구도이므로 ‘배움’의 과정이 바로 구도의 과정이 되고, ‘정치’의 일이 곧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길이었다. 이렇게 學(배움 또는 교육)이나 政治(사회생활 또는 직업) 등의 ‘누구나’에게의 보편적인 삶을 의미추구(초월성)의 관건으로 삼았으므로 유교 전통에서의 주체성 의식은 그 이전 시대와 비교하여서 매우 신장되었고, 구한말 서구로부터 들어온 또 다른 주체성의 종교인 기독교(특히 개신교)와의 만남은 이러한 유교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잘 살려내지 못했다. 오히려 서구 교회보다도 더 과격하게 聖과 俗을 나누었으며, 교회와 교회 밖을 구분하여 두꺼운 벽을 쌓았고, 그런 과정에서 한국 교회의 성직자중심주의와 교파주의, 개교회 중심주의는 끝 모르게 진행되었다. 자신들만을 그렇게 종교적으로 거룩의 존재로 구별하여 살지만 현실의 다른 삶에서는 철저히 “실질적인 무신론자”가 되어서 온갖 종류의 유물론에 빠져 사는 것이 현재 많은 한국 기독인들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부산 WCC 대회를 계기로 교회가 다시 아시아 유교 영성의 즉세간적 종교성을 살려내야 한다고 본다. 과거 公과 私의 대립에서 우선 公을 내세웠고, 義와 利의 대립에서 인간다운‘사생취의’(捨生取義,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함)를 강조하였으며, 학식이나 (좁은 의미의) 종교적 비의 대신에 보편적 인격의 수양과 덕의 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전통이기 때문이다. 비록 조선말의 왜곡과 오류를 겪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그 이상은 바로 우리 삶의 구체적인 영역(身·家·國·天下)에서 道를 이루려는 것이고, 그 일을 위해서 개개인의 실천적 수행을 큰 가치로 여기면서 평천하(平天下)의 큰 평화를 이루려는 것이므로 앞에서 서술한 우리 지구 집과 인간사회의 치유를 위해서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앞에서 언술한 대로 지구 위의 한반도에는 지금까지 동서의 인류 가족이 서로 나뉘어져서 나름대로 일구어온 핵심 종교 전통들이 모두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유래 없는 환경에서 어떠한 새로운 영성을 찾아내는가가 인류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 큰 의미를 갖는다. 東의 유불도를 모두 포괄하고 거기에 西의 엑기스인 기독교를 받아들여서 일구어낸 한국 교회와 신학의 유산 속에 이 일을 위한 쓸 만한 전통이 있는지를 더욱 찾아볼 일이다. 물론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의 상황과 정치, 경제, 문화의 정황을 돌아보라고. 그러한 모든 종교전통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정도로 형제끼리 서로 싸워서 존재의 사실적 종말이 염려되는 상황이므로 ‘너나 잘 하세요’라는 소리를 딱 듣기 좋은 현실이 아닌가고. 그러한 한국의 종교문화 전통에서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를 위한 지혜를 찾아보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라는 반박을 잘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본 연구자는 다시 이렇게 묻고 싶다: 19세기 말 한국이 고통과 비참에 빠져있었을 때 하늘의 복된 소리로 기독교 신앙을 전해준 서양 선교사들 나라와 당시 그들 교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즉 그들도 당시 노예장사와 인디언 학살을 막 끝내고 여전히 제국주의의 탐욕에 흠씬 젖어있었으며, 공산주의 혁명을 몰고 올 정도로 극심한 빈부격차의 경제적 악이 팽배해 있었고, 유태인들을 비롯한 타자와 약자를 잔인하게 게토에 몰아넣었고, 키에르케고르의 저술을 들지 않더라도 교회는 국가교회가 되어서 특권과 부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 정황의 나라들에서 온 선교사들의 메시지를 한국은 하늘의 소리로 들었고, 그 소리가 또한 역할을 했으며, 그래서 우리는 변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다시 말하면 메시지의 본래와 현실의 처지를 그대로 등가화하지 말자는 것이다. 동서의 핵심 종교 전통들이 모두 한자리에 있고, 20세기 인류의 숙제(남북문제)가 마지막으로 풀리지 않아서 극도로 고통 받고 있는 곳, 또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산업경제의 기적을 이루어서 지구 생태정의의 문제가 참으로 첨예하게 제기되는 곳, 한국에서 WCC 총회가 개최된다는 것의 의미를 뒷받침해 주는 정황들이다.
  
   본인은 한국에서 WCC총회가 열리는 것과 관련하여 오늘의 중국도 할 수 없고, 일본도 가능하지 않으며, 유교 문명권의 나라들 중에서 그 종교·문화적 정황과 정치적 정황으로 참으로 고유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한국 교회와 신학이 새로운 신앙적 전위의 표준을 지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을 위해서 한참 앞서서는 하늘과 진심으로 대응하는 인간과 자아에 대한 이상(性則天)에서부터 출발하여 가족, 사회의 개혁을 거쳐 우주의 만물에 대한 책임과 배려로 나아가는 한국 성리학 전통의 율곡『성학집요(聖學輯要)』의 이상이 생각나고-이 율곡의 이상은 다시 17세기 서구 스피노자의 ‘보편종교’(religio catholica)의 이상을 매우 생각나게 하는데-, 올해 서거 100주년이 되는 안중근 의사는 물론이고 유영모, 김교신, 함석헌, 이용도 등을 떠올리고, 이와 더불어 지난 삼사십년의 한국 근대화의 여정 속에서 가장 낮은 삶의 현장에서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온 몸을 바쳐 살아오며 “한국 여성그리스도의 도래”를 준비해 온 민중여성기독인들을 생각한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바로 한국적 즉세간적 聖의 종교성 전통 안에 있다고 여긴다.

III. 다중의 ‘복수론(複數論)적’ 기독론으로의 탈(脫)과 향(向): ‘性’의 인간 이해
  
   세계 내에서 초월의 의미를 찾는 21세기의 내재신적 영성은 전통적인 기독론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전통적 기독론은 역사상의 오직 한 점에서만 그 신적 계시를 허락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18세기 이후 혹독하게 겪은 서구 정치제국주의에 대해서 말하듯이 종교제국주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오늘날은 특히 세계화가 거의 서구화나 미국화와 등가화 되어버린 상황에서 ‘기독교 제국주의’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그 우려되는 모습을 이라크 전쟁이라든가 오늘 한반도에서 긴박하게 펼쳐지고 있는 각종 정치·사회 정황들, 거기서의 한국 교회와 극우 종교그룹의 서구와 미국 지향, 문화와 교육 등에서의 종속으로 뚜렷하게 보고 있다.
   본 연구자는 이러한 모습이 지금까지 기독교 교회가 견지해 왔던 기독론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기독교의 기독론이란 역사적인 유대인 남성 ‘예수’를 ‘그리스도’로 그리는 초상화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기독교의 자기 정체성을 위한 밑그림이 되어서 모든 기독교적 실천의 근거가 되었다. 오늘날 인간 삶의 정황은 그러나 예수 삶의 때로부터는 물론이고 그 후 기독론으로 기초화될 당시의 상황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변하였다. 오늘날의 변화된 상황에서 기독교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이 변화에 상응하는 새로운 신앙신조를 구성해 내기 위해서 여러 방편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그 헌장의 근간으로 삼는다면 거기서의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WCC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세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의 협의체”라고 정리하는데, 이러한 서술방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여전히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 관계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 여기서 대중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가 ‘유일하게’ 하나님으로 인정되면서 기독교의 독자성과 유일성이 배타적으로 본체론적으로 세워지는 것이 되고,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다른 모든 종교는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가 어떠한 여과나 사고 없이 하나님과 동격화 되는 이러한 문장들을 통해서 기독교의 우월주의와 배타주의가 퍼지고 선포의 주체였던 예수가 선포의 대상이 됨으로써 여기서부터 시작된 기독교의 절대주의와 그리스도우상주의는 20세기 세계교회협의회의 신학 안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오이쿠메네’는 그래서 여전히 기독교 세계 내에 한정되어 있고, 오늘날 기독교 문명권에 대해서 강력하게 등장하는 다른 종교 전통들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지 못하다. 인도의 신학자 피에리스(Aloysius Pieris)는 이미 7-80년대에 “아시아 종교성의 요단강”에 대해서 말하면서 서구 신학의 종교적 제국주의를 비판해왔지만 오늘의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본 연구자는 2013년 부산에서의 WCC 총회를 계기로 세계교회협의회가 다시 더 진지하게 기독론의 재정립에 힘을 쏟을 것을 촉구한다. 2000년 전 바울이 자신의 유대교 전통에서부터 나와서 그리스 로마 문명과 만나면서 변방의 한 청년 예수를 그리스도로 전파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와 기득권과 자랑을 철저히 버렸듯이, 이제 그동안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가 다시 세계의 기득권이 된 기독교와 WCC가 그 권한과 자랑을 버려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오늘의 로마제국, 당시의 로마제국보다 더 힘이 센 물질주의와 경제맘몬주의에 맞설 수 있다고 본다. 거기에 맞서서 지구의 온 종교인들이 힘을 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서구적 기독교가 그 독점적 종교 제국주의를 포기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런 가운데서 신약학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올바른 예수상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활발히 일어나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는 태도를 버리게 하고, ‘예수에 대한 믿음’(Faith in Jesus)만이 아니라 ‘예수의 믿음’(Faith of Jesus)을 가르치는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지금까지 축적된 기독교 신앙 신조의 역사 연구와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는 기독교 교회와 교리의 형성과정에서 어떻게 우상 파괴자였던 예수가 스스로 가장 강력한 ‘성상’(icon)이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에서 ‘아들이신 하나님’으로, 다시 ‘유일한 하나님’이 되면서 형이상학적인 배타성의 실체론으로 굳어져 갔는지를 보여준다. 그러한 배타적 기독론은 교회 역사 가운데서 인간과 우주의 그리스도화와 영성화를 위해서 점점 더 걸림돌이 되고, 오늘날 이반 일리치와 같은 이는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된다”(perversio optimi quae est pessima)고 할 정도로 행위와 실천 없는 신조뿐인 ‘신앙(믿음)의 율법화’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를 잘 지적해 주었다. 2천 년 전 유대인 청년 예수에게서 만의 유일회적인 그리스도화를 주장하는 기독론은 그 이후의 모든 다른 요소들을 배척하고 재단하는 억압적 기제가 되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서구 기독교문명의 우월주의,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에 대한 배척과 이슬람과의 갈등, 예수와 같은 性이 아닌 여성에 대한 핍박과 억압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다시 참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성)령의 사람으로서의 예수의 본래 메시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복수론’(複數論, plural)의 기독론을 주창하는 목소리에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본인은 ‘비서구’(한국) 다원주의적 여성신학자로서 이러한 복수론적 기독론의 의미를 앞에서 제시한 유교적 ‘성인지도’(聖人之道)의 종교성이 뛰어나게 드러내준다고 이해한다.
  
   유교적 聖의 이해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기독교에 나타난 전통적인 신인동형론적 ‘하나님’(God) 이해와 비교해서 더 보편적이고, 모든 인간이 그들의 자연스러운 삶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하늘’(天)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궁극자를 표현한다. 또한 한 특정한 인물에 한정되는 구원론 대신에 ‘性’이나 ‘德’이라고 하는 모든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소여된 하늘적 근거에 기초해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같




신학사상 2011년 봄호(152집) 차례
(New)신학사상 2010년 가을호(150집)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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