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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연 
 신학사상 2011년 겨울호(155집) 차례


이번 호에는

구약학 분야에서 김래용 협성대 교수의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나타난 기도문의 연구”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김 교수는 이 논문에서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레위인들의 기도를 비교분석하면서 이 기도들을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드려야 할 기도의 길잡이로 제시한다.  

신약학 분야에서 한신대 이병학 교수는 “반제국적 대항담론으로서의 신화적 이야기들과 예배”라는 논문을 썼는데, 요한묵시록의 중심적 단락인 12;1-15:4를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신화적 이야기들을 역사화시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대에 수많은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의 생명을 파괴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오늘의 짐승들과 짐승의 우상을 호명하고 비판한다.

조직/교의신학 분야에서 이규성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는 “이냐시오 영성과 칼 라너의 신학”논문을 통해 영성과 신학의 통합적 상호지향을 모색하고, 이것을 현대인들이 삶에서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생활이 서로 분열되지 않은 채 통합된 삶으로 지향할 수 있는 해법으로 제시한다.  
류장현 한신대 교수는 “L. 라가츠의 경제윤리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라가츠의 경제윤리의 토대가 되는 하나님 이해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해석하고, 이에 근거한 경제윤리의 핵심개념들을 통해 라가츠의 자본주의 비판과 새로운 공동체 형성에 관해서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지배하는 현 상황을 신학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기독교사회윤리 분야에서 강원돈 한신대교수는 “정의로운 평화와 “민에 의한 통일”- 심원 안병무 선생의 통일이론“이란 논문에서 첫째로, 심원(心園) 안병무(安炳茂) 선생이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논한 정의와 평화의 관계를 규명했고, 둘째로 분단된 한반도 현실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안병무 선생이 제시한 “민에 의한 통일”의 구상을 분석했다.
  
이화여대 양명수 교수는 “리쾨르가 본 칸트 - 악의 문제를 중심으로”란 논문에서 경제성장보다 도덕적 성장이 더 필요한 오늘의 사회에 리쾨르 연구를 통해 인간이 본래성으로 가지고 있는 악한 죄인의 한계를 넘어 도덕적 자기완성의 희망과 보상의 희망에서 생긴 믿음의 길, 곧 은총의 믿음을 깨우치고 있다.

이종진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는 종교철학 논문으로 “누멘적 경험과 신비경험의 충돌”이란 논문을 썼는데, ‘종교의 정당성’을 근거 짓는 것과 ‘참된 종교성’의 척도를 제시하는 종교철학의 목적 연구를 통해 ‘초월’과 ‘역사성’을 근거와 척도로 제시하면서 ‘차이를 통한 배우기’라는 종교간 대화의 원칙과, 종교의 본질개념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정구 성공회대 교수는 교회건축과 예술 관련 논문 “현대 한국고층교회의 공간위계 풍경 비판”에서 교회가 예배와 목회, 선교적 기능만이 아니라 다른 복합적인 이유로 교회내부공간을 위계적으로 분절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교회의  모든 공간에 누구나 정서적으로 편하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공공성을 갖는 낮춤의 공간이 되도록 교회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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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

2011년은 인류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해로 기록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 아니 특히 미국과 서유럽국가들의 위기로 확산되면서 그동안 신자유주의로 3/4세계를 탐식하던 이들 나라가 부메랑의 덫에 걸려 침몰하면서 새로운 시장경제체제를 절박하게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의 이름이 자본주의 4.0이다. 이제는 나만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자본주의여야 한다는 주장이 보편성을 갖고 설득력 있게 전파되고 있다.
그러나 신학계에서는 아직 이런 ‘잃어버린 인간의 회복’, ‘공동체성 회복’에 대한 신학적 논의가 극히 소수에 국한 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신학계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 했던 세계적 위기의 변화 바람을 보면서도 그 실체를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여전히 과거 서양근대주의의 개인이기주의, 무한소유주의, 차별주의의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신학을 무사안일하게 반복해서 읊조리고 있다. 위기의 바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2011년 성탄을 상품적 기쁨이 아니라 신학과 교회의 위기를 깨닫고 통회하는 신앙으로 맞아야 할 것이다. 이럴 때만이 신학계가 2012년을 희망으로 맞고, 또한 절망과 위기의 세계에 희망의 빛을 비추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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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155집)              

연구 논문
김래용 ․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나타난 기도문의 연구
이병학 ․ 반제국적 대항담론으로서의 신화적 이야기들과 예배
이규성 ․ 이냐시오 영성과 칼 라너의 신학
류장현 ․ L. 라가츠의 경제윤리에 대한 고찰
강원돈 ․ 정의로운 평화와 “민에 의한 통일”- 심원 안병무 선생의 통일이론
양명수 ․ 리쾨르가 본 칸트 - 악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종진 ․ 누멘적 경험과 신비경험의 충돌
이정구 ․ 현대 한국고층교회의 공간위계 풍경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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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1

                    현대 한국고층교회의 공간위계 풍경 비판


이정구(성공회대 교수/ 교회건축과 예술)                            


                                      초록

이 논문은 동방교회의 정방형 공간보다는 서방교회의 장방형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현대 한국의 교회건축에서는 어떤 목적으로 교회내부공간을 분절하고 점유하는 것인지에 대한 비평이다. 교회가 예배와 목회, 선교적 기능만이 아니라 다른 복합적인 이유로 교회내부공간을 위계적으로 분절하는 것에 관한 연구이다. 예배기능 뿐 만 아니라 다양한 목회적 직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구축한 평면구성과 의도적인 공간배치의 위계성에 대한 신학적 분석이다. 교회공간을 크게 대 예배실(main chapel), 소 예배실, 당회장 실, 사무실, 주차 공간, 식당 공간으로 구분하고, 고층교회건물인 경우 어떤 이유로 어디에 각 각의 공간을 배치하였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교회의 선교신학과 정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교회건물이 예배와 기도, 친교의 공간들이 집합된 선교의 공간으로서 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간의 위계를 설정하고 그 모든 공간에 누구나 정서적으로 편하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공공성을 갖는 낮춤의 공간이 되도록 교회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 한국교회의 공간 위계는 대체로 목회자의 과시와 교회의 양적성장을 위한 것이 기준이 되고 있다. 이 논문의 의의는 한국교회가 공간분절을 위해 유념해야할 신학적이고 목회적인 부분들과, 또 이미 구축된 공간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안내함으로써 교회 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하려는 것이다.    

주제어
공간위계, 목회자 권위, 양적 성장, 낮춤, 공공성                                  


                              1. 들어가는 말

  건축에서의 바닥의 규모는 공간형성의 기본 경계이며 기둥은 벽체와 지붕을 지지하는 구조적인 버팀 기구이다. 역 마름모 형태로 기초바닥보다 공간이 더 넓게 축조된 건축물과 공중에 매달린 건축물일지라도 기초바닥 위에 구축된다. 포스트모던 건축에서 기둥이 없는 건축물이 출현했지만 벽체가 그 기능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모든 건축물은 기초 바닥의 양을 기본으로 건축공간의 기본경계가 발생하는데 공간경계를 시각화하고 건물의 구조적인 버팀을 위해 바닥위에 기둥과 벽체를 세운다.
건축은 공간의 지배이기도 하며 장소의 창조이며 인간의 환경에 새롭고 특별한 질서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 글의 주제는 교회건축에서 공간배치에 관한 것이다. 건축에서 바닥에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을 천장이나 지붕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입체적 공간측면에서는 바닥을 기본으로 삼아 공간을 분절하게 된다. 서양 교회건축사를 양식사적 측면에서 지붕을 살펴보면 동방 비잔틴의 둥근 지붕 돔(dome)과 서방 고딕의 첨두형 지붕을 들 수 있는데 이 둘 모두 천상을 향한 신앙의 표현이라는 일반적인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반면에 바닥의 형태는 건축의 양식에 따라 큰 차별성이 없으며 특히 사각형의 바닥은 지붕과 상응하는 세상, 즉 지상을 의미한다는 것이 일반적 통설이다. 생활 주거 공간을 포함한 모든 건축의 평면은 공간의 기능과 목적을 건축 터의 모양과 방향, 크기와 지형에 맞추어 구성된다.
이 논문은 넓은 의미에서 교회건축의 장소와 그 장소성에 관한 연구이지만 교회건축에서 바닥이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이 세상을 의미한다는 일반적 통설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논문은 교회건축에서 장소와 공간 그 자체에 관한 연구이기보다는 교회가 예배와 목회, 선교적 기능만이 아니라 다른 복합적인 목적으로 교회내부공간을 위계적으로 분절하는 것에 관한 연구이다. 선교기능에 따라 공간을 위계적으로 분절하는 것에 관한 연구이다. 동방교회의 정방형 공간보다는 서방교회의 장방형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현대 한국의 교회건축에서는 어떤 이유로 교회내부공간을 분절하고 점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평이다. 즉 예배기능 뿐 만 아니라 다양한 목회적 직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구축한 평면구성과 의도적인 공간배치의 위계성에 대한 신학적 분석이다.
현대 한국교회는 전통적인 서양교회건축과는 다르게 제한된 대지면적과 효율성을 위해 ‘고층으로 건축’을 하고 그 한 건물 안에서 다양한 기능공간을 분절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 경우교회공간을 크게 대 예배실(main chapel), 소 예배실, 당회장 실, 로비(사무실), 주차 공간, 식당 공간으로 구분하고, 어떤 이유로 어디 어느 층에 각 각의 공간을 배치하였는지에 대한 글이다. 교회의 선교신학과 정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교회공간을 기능별로 구획해본 위의 여섯 공간의 위계는 교회의 본질을 ‘예배하는 처소’로 상정한다면 대 예배실을 최우선으로 하여 공간의 위계를 상정한다. 그 위계는 교회의 본질을 토대로 하여 교회의 선교적인 사명을 신학적으로 목회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배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의 개인적 과시와 교회의 양적팽창을 위한 것이 기준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한편 현재 저 마다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각각의 공간에서 진정으로 어떠한 바람직한 목회적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제안이며 비판이다. 이 논문의 의의는 한국의 고층건물 교회가 공간분절을 위해 유념해야할 부분들과, 또 이미 구축된 공간에 대한 비판을 통해 교회 공간에 대한 공공성 인식을 함양하는데 데 있다.          

                                   2. 기능 공간

    모든 건축물은 일정한 터에 건축되는데 그 터가 지닌 역사성이 건축의 장소성이다. 장소성은 단순한 터라는 개념을 넘어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곳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광장이란 절대공간을 집약하여 놓은 장소로써 비어 놓아야만 에클레지아(ecclesia)가 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광장은 연단을 포함하여 다양한 국가 기념물들에 의해 점유된 장소로써 그리스 광장과는 달랐다. 교회건축은 그리스보다는 로마의 영향아래 발전했는데 그리스 건축은 형태와 구조가 밀접히 관련된 것에 비해 로마건축은 분열되고 분리되어 항상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배치되었다. 초대교회부터 유럽의 교회는 대체로 순교자가 죽어 묻힌 사건이 있는 무덤 터에 교회를 세우고 동향(東向)에 제단을 설치하는 것이 상례였다.
한국의 현대교회는 좁은 국토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도시개발과 인구의 집중화로 인해 전통적인 도상에 따라 교회 터를 마련하고 과거 성탄 카드에서 볼 수 있었던 ‘낭만적인 풍경’의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지형과 지역상황, 그리고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제한된 터에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가 수행할 목적과 기능 그 모든 것을 충족할 수 있도록 그 내부를 분할하기란 불가능하다. 목적과 기능에 따라 공간분할을 했을지라도 모든 구성(composition)은 그 형태로 내용을 갖고 관념을 표출하며 또 그 공간을 체험하는 자의 감정에 의해서 그 구성은 다르게 체험되는 미학적인 문제는 남게 된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주어진 강요된 공간의 크기와 배치 및 위치가 사용자의 기대에 어긋나면 사용자는 정서적으로 불만을 갖게 되며, 그 공간을 사용할 때마다 불편함과 그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사용 빈도가 떨어지게 된다.
공간을 분할 할 때는 이용할 사람들의 의견의 최대공약수를 산출하여 분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푸코가 말했듯이 권력자는 자신의 편의에 따라 임의로 공간을 분할하고 제공한 공간을 사용하도록 강요를 하거나 익숙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최근 국내에 신축한 고층 교회 건물의 교회건축비 대부분을 헌금하고 있는 교인들의 의견이 수렴되는 부분은 교회의 외형에 한정되고 공간의 위계와 분할에 관한 것은 대체로 배제되고 있다. 기능에 따라 공간을 분할하고 위치시키는 것은 당회장과 교회 내 권력이 있는 소수 임직자들의 결정사항이 되는 경우가 많다.  

1) 본당 구성
서방교회의 본당평면은 바실리카의 장방형을 기본으로 삼아 변형 발전해 왔다. 그 내부 구성은 본당에 출입하여 예배당으로 출입하는 완충장소로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현관’(gathering place, narthex)과 예배공동체가 모이는 ‘예배당’(worship place)이다. 예배당은 회중석(nave), 회랑(path, aisles), 십자교차점 중앙공간을 중심으로 십자가 형태의 팔에 해당하는 좌 우 익랑(transepts), 성가대석, 그리고 제대(altar)를 설치하는 동편(東便)의 지성소(제단, sanctuary)로 구분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대성당(cathedral)을 포함한 지역의 큰 교회는 회랑과 익랑 그리고 지성소에 다수의 작은 예배실(chapel)들을 설치했다. 성가대석은 이층이나 지성소에 배치하는 경우도 있고 지성소에 가까운 장소에 회중석 보다는 조금 단을 높여 배치하기도 한다. 그리고 설교대와 성경 독서대는 회중석 한 지성소 위치에서 제대위치 보다는 낮은 곳에 설치하였다.
말씀 중심의 현대 한국의 개신교회는 전례적인 교회에서 제대가 있는 지성소 중앙 십자가 밑 위치에 성경 받침대를 놓고, 그와 같은 높이로 부터 회중석에 가까운 지성소 끝자락에 설교대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으로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설교대는 회중석에서 볼 때 지성소의 왼 편에 위치했는데 최근에는 지성소 중앙에 위치하는 경우도 많다. 한 공간, 한 평면에서도 용도가 다른 각각의 성구(聖具) 위치의 높낮이와 예배 프로그램의 중요한 순서로 벽 없이 공간을 분절하고 위계화하고 있다. 불교에서도 가람의 공간배치의 위계는 부처의 위상에 따르고 있다.

2) 대 예배실(main chapel)
회중석은 회당(synagogue, 야고보서 2:2) 이라고 불렀다. 회중석에서 제단과 제대까지의 계단 수는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도상에 따르면, 지성소는 회중석에서 3 단계위에 설치하고 지성소에 있는 제대는 회중석에서 7계단 혹은 3계단 위에 설치해 왔다. 7이라는 수는 에스겔서 41-42장에 기록된 에스겔이 본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6세기 경 에스겔이 측량한 표준 치수는 인간 몸 크기를 기준으로 6척을 한 장대로 삼아 측량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한 단은 성인 남녀의 한 발짝 폭인 60-64 센티미터로 상정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어느 수보다도 7의 수가 상징하는 의미가 가장 많은데 이 많은 의미들 중에서 지성소, 혹은 제대와 연결할 수 있는 상징은 성령의 7가지 은사가 가장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3의 수는 삼위일체와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과 ‘믿음 소망 사랑’ 등을 의미한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개신교는 보기(seeing)와 듣기(hearing) 두 가지가 지성소에서 균형 있게 자리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주님의 만찬을 통한 회개하는 공동체 의미로서 성찬테이블(table)과 말씀의 교회로서 설교대(pulpit)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무덤, 혹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상징하는 가톨릭교회의 경우에는 제대 위치의 3의 수를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사흘을 지내셨던 것과 연관 지우기도 하는데 이 모두 적절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현대교회는 이러한 전통적인 도상적 의미를 유지하지는 않고 오히려 지성소와 회중석 사이의 거리와 높이를 좁혀가고 있는 추세이다. 회중석과 유리된 지성소의 위치는 성례전을 진행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성직자의 권위를 고양시키고 표현했다. 그러나 다수의 현대교회가 지성소를 회중석보다 한 단계 위에 설치하는 것은 가능한 회중들이 함께 참여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한 신학에서 비롯된 시각적 산물이다.
현대교회는 회중석에서부터 지성소와 설교대의 높이를 낮춘 것은 성직자 중심의 교회론을 극복한 듯이 보이지만, 비록 지성소가 회중석에서 비록 한 단 높이에 위치해 있을지라도 그 한 단의 높이가 수 미터에 달하는 대형교회들의 권위적인 지성소도 여전히 축조되고 있다. 이것은 유럽의 중세교회와 성직자의 권위가 현대식으로 재창출된 이미지이다. 주로 주일에만 사용하는 대 예배공간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과 교회건물의 공공성 차원에서 예배공간을 ‘다용도 문화 공간’으로 구축하는 것이라는 명목아래 공연장과 유사한 구조로 신축하거나 개축하고 있는 것이 최근 대형 개신교회의 추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예배공간에서 다양한 음악회를 개최하고 또 결혼식장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음향과 조명 시스템을 비롯하여 흡음설비까지 구축하는데 그 설치비용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설비들은 주일에 목회자가 말씀을 선포하고 CCM을 비롯한 복음성가와 성가대가 공연을 하는데도 필요한 설비이기도 하다. 회중석에도 극장식 의자를 설치함으로써 일석이조를 기획한 예배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실구조가 공연장 형태로 정형화 되어가면서 개별식 회중석 의자를 비치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가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지방자치제를 실시한 이후 각 지역마다 천문학적인 건축비용을 들여 매머드 문화예술 공간을 경쟁하듯이 구축하고 있는데 대부분 그 사용빈도가 낮아 운영적자로 인한 국민세금낭비로 주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교회의 예배당과 지역사회의 문화 공간을 포함해 문화 공간을 누가 얼 만큼 이용하고 있는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자칫 교회의 문화공간이 제한된 신앙공동체만을 위한 것인지, 교회와 목회자의 대외적 과시의 표시인지는 교회가 기획하고 있는 그 프로그램과 그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통해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새들백 교회(Saddleback, California)처럼 급성장한 대형교회의 목회와 예배방식이 한국교회에 유입이 되면서 예배공간은 기존의 말씀중심의 공간에서 공연장 공간으로 변화하면서 교회의 규모에 관계없이 각종 대중음악 악기가 지성소를 채우고 있는 추세이다. 과거 작은 하나의 예배공간 안에서 성탄 극을 공연하고 성가대가 노래했던 소박한 예배공간과 현대의 대형 다용도 예배공간 안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영적 감성에 대한 비교분석은 필요한 연구이다.   또한 지성소 중앙 십자가를 중심으로 설교자의 얼굴과 몸짓까지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을 교회건물 곳곳에 설치하고 있다. 현대 테크놀로지의 산물인 폐쇄 회로를 활용하여 예배실에 참석하지 못한 교인들에게 말씀선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사용에 대한 신학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말씀 중심의 개신교회가 설교자에 초점을 맞춘 시각 이미지를 활용하면서 이에 관해 신학적 변명을 하고 있는 교회는 아직 없다. 이를 통해 설교자(당회장)를 우상화 할 수 있다는 이미지의 힘을 인식하면서 이미지를 조작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인 것이다.  

3) 소 예배실(small chapel)
소 예배실의 위치는 한 평면에서는 구석진 곳이거나, 고층 건물인 경우에는 대체로 지하 1-2층에 위치한다. 대 예배실은 2층 위에 위치시키면서 소 예배실을 지하에 두어야 하는 특별한 신학적 이유를 갖고 있는 교회는 없다. 주로 평일예배에 소수가 사용하는 소 예배실도 다용도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해시대 카타콤은 지하무덤이었으며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지상에 건축된 교회는 일정부분 황제의 영향권 안에 있는 제국의 교회였다. 현대건축물처럼 고층으로 축조할 수 있는 건축술이 없었던 중세의 대성당은 그리스도의 성체를 1층 대 예배당에 두지 않고 지하 채플(crypt)의 제단에 병자와 노약자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축성된 면병(떡)을 보관하는 감실(tabernacle)을 설치하는 전통은 오늘 날까지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전례적인 교회에 전승되고 있다. 이 면병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감실은 그리스도의 무덤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독교의 이러한 전통적인 측면에서 지하성당은 그 장소성에서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예배 처소로서는 콘스탄티누스의 지상교회보다 적절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지하 소 예배당에서 그리스도의 희생과 대속에 관계없고 적합하지 않은 집회를 갖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소 예배실은 침묵의 공간, 애도의 공간, 회개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가 납골당을 설치한다면 지하가 좋으며 그 옆에 소 예배실을 마련하는 적절하다. 간혹 가톨릭교회는 대 예배실을 지상보다는 지하에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로마네스크 시대 이후 순례자교회에서는 소 예배실(crypt)이 있는 위치의 바로 위층 본당 회중석 자리에 성가대를 위치시키고는 했다.


4) 당회장 실
대형교회의 경우에는 당회장 실은 물론 부목사, 전도사의 방을 독립적으로 두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부 교역자가 다수인 경우에는 수 명이 함께 방을 공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회장 실은 본당건물에 마련할지라도 한 층인 경우에는 가능한 예배실과는 먼 위치, 고층인 경우에는 예배실 보다 위층에서 예배실을 관망할 수도 있는 파놉티콘과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리스 아토스 산에서 수행하던 수도승이 그랬듯이 지상의 유혹과 억압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러한 상승의 공간구조는 당회장의 신변과 생활, 연구 활동을 일정정도 보호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기능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소수의 교회 임직자들과의 소통은 어느 정도 원활할 수 있는 공간위치 이지만 일반 대다수의 평 교인들과의 소통에는 위치적으로 장애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이 점을 고려하여 일반 신자들이 정서적으로 편하고 자유롭게 출입하기에는 불편한 공간에 의도적으로 당회장 실을 위치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은 그것을 획득한 계급의 전략이며 그 효과는 다양한 배치, 조작, 전술, 기술, 기능의 소산으로 행사되는 것이라는 푸코(Michel Paul Foucault)의 주장에 따르면 당회장의 권력과 당회장 실의 배치와 교회공간 안에서의 그 위계는 무관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 성직자라는 권위까지 부가되어 일반 정부나 회사의 기관장 실의 공간위계와 다른 영적인 공간 위계까지 갖게 된다. 건축가와 교회는 당회장 실과 목회자 실을 최상층에 배치한 것에 관해서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업무로 인한 피로를 덜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은 최상층에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공간은 목적과 기능의 효율성에 따라 배치하는 것이지만 예배당 위에 예배가 아닌 다른 기능을 위해 점유된 공간은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성서적 공간위계가 아니며 교인이나 시민들의 정서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목회자 실을 경유하여 예배실로 인도되는 동선을 오가면서 신자들과 목회자는 상호 친밀감을 고양할 수 있다. 건물로비를 지역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한 교회인 경우도 당회장 실을 예배 실 보다 높은 공간에 마련하고 이를 직무 기능상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 것이라고 주장 할지라도 정작 지역주민들의 정서로는 당회장실의 위치는 권위적인 곳에 있는 것이다. 비록 목회자가 위치상 목회자실을 사용하는데 다소 불편함이 있을지라도 사회와 교회, 목회자와 신자, 목회자와 지역 주민간의 수평적이며 상호적 신앙공동체형성을 위해서라도 시각적으로 세상을 섬기는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 목회자실의 신학적인 공간위치이다.

5) 로비와 사무실
교회 사무실은 건물의 층수에 관계없이 신자들이 편하게 출입할 수 있는 본 건물 출입문 로비에 배치하고 있다. 최근 신축하는 교회건물은 1층 로비에 사무실과 카페와 같은 휴식을 위한 공간이나 유락시설, 작은 전시공간을 배치하고 있다. 이것은 교인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정서적으로 편하게 교회 안까지 진입하도록 유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치는 출입자를 감시하는데 가장 적절한 것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교회들은 주보나 헌금봉투를 담은 가구와 테이블을 본당건물 출입 로비가 아닌 예배실이 있는 출입 로비에 비치하고 있다. 대형교회는 적당한 로비에 은행창구를 설치하기도 한다. 헌금을 준비하기에 편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예배실 출입구에서 헌금을 준비하는 것이나 은행에 공과금을 납부하듯 하는 것은 시각적으로도 적절하지 못하며 헌금을 봉투에 담는 순간 주변 교인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기 때문이다. 고층의 교회건물인 경우에는 신자들이 1층 로비에서 헌금 준비 뿐 만 아니라 예배에 참여할 모든 채비를 하는 것이 좋다. 1층 로비의 공간이 넉넉하다면 헌금을 준비하는 테이블을 다 수 설치한다면 주변의 눈길과 혼잡함을 피해 마음 편히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수도원은 아닐지라도 예배실 앞 로비에서는 마음을 정결하게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두는 것이 좋다. 비움은 곧 침묵으로 연결되며 그 영적 침묵은 예배실로 연결된다. 예배실로 진입하는 넓은 로비에 은행창구와 봉헌봉투 가구를 즐비하게 설치하고 있는 몇 몇 대형교회가 지향하는 여러 선교들에 가장 우선하는 목회적 의도가 교회 예산 증액을 위한 신자증가(전도)에 있는 듯하다.  

6) 주차 공간
도심의 대형교회는 대체로 지하에 수층의 주차시설을 마련하고 있다. 교회에 따라 친교의 공간으로서 식당공간보다 주차공간의 위계가 한층 높은 곳인 경우가 많다. 주일 주차난으로 인해 교인의 출석률이 하락하거나 새 신자를 영입하는데 주차장의 있고 없음과 그 규모가 큰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식당이 없는 교회는 교회 인근의 식당을 임대하지는 않아도 주차장이 없는 교회는 일요일에 사용하지 않는 교회 인근의 주차장을 임대하기도 한다.
건축허가규례 상 일정한 주차공간을 확보해야만 하는 이유도 있지만 주일을 포함한 평일에도 교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석해야하는 까닭에 주차난을 피하기 위해 교인들은 일찍 출석을 한다. 그 밖에 평일에는 교회 주차공간을 임대주어 수익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역사회에서 교회가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무료 혹은 최소의 실비로 주차난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게 야간만이라도 주차공간을 개방하는 것이다. 시설투자비용과 관리의 문제가 난제이겠지만 여타 해외선교비용이나 그 밖의 비용을 줄여 우선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선교경비를 사용하는 것이 교회의 여러 선교에서 우선해야 할 일이며 나눔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 구성원들만 교회 화장실과 주차장을 포함한 편의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장치를 하는 것은 교회가 공공성을 염두에도 두지 않는 이기주의이며 야만주의인 것이다.
교회는 노약자 외에는 가능한 신자들이 다소 불편할 지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교회에 출석하는 실천을 하도록 기획(교육)하고 실천함으로써 환경 지킴이로서 뿐만 아니라 ‘교회다움’으로 교회를 구축해 가야한다.  

7) 식당
예수의 유월절 마지막 성찬(eucharist)에는 종교적인 애찬(kiddush)이 함께 한다. 현대 한국교회는 성찬식과 애찬을 구분하여 주일 예배 후 교회식당에서 신앙공동체의 공동식사가 이루어지는데 이 식사의 방법과 그 분위기는 대형교회 일수록 애찬식 성격보다는 군대처럼 줄서서 배식을 받아 식사할 빈자리를 찾거나, 혹은 뷔페식당처럼 음식을 스스로 담아 소수의 끼리 집단이 한 테이블에 모여 일상의 점심식사와 같은 식사를 하는 애찬인 경우가 많다.
전망이 좋은 고층의 극소수 교회는 고급 레스토랑처럼 최상층에 식당을 위치시키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의 교회식당은 지하에 자리한다. 식당은 공공공간으로서 예배 공간 다음으로 중요한 위계를 갖는다. 지하에 위치하지만 그 진입 동선은 편리하며 점유하는 공간의 면적도 예배 공간만큼 크다. 교회건물의 제한된 상황에서 식당공간의 위상은 주차공간에 우선한다. 그만큼 한국인에게는 친교와 식사가 중요하다. 반면에 유럽을 포함한 서양 교회는 예배 후 애찬식을 과자와 차 정도의 간단하고 가벼운 것으로 친교를 한다. 식당 전용공간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과 요구가 크지 않기 때문에 다용도 공간(hall)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식사와 친교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동 서양인의 교회에서 식사가 차지하는 비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양인들에게 만찬은 대체로 주일에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식사하는 점심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용식당이 있는 도시교회의 경우, 식당에서 매일 도시 노숙자들을 위한 급식을 하는 교회도 있는데교회식당 안으로 노숙자를 초대하는 경우는 특별한 교회절기 외에는 드물다. 한국교회는 ‘후드뱅크’ 처럼 IMF 이후 교회 공동체원들이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서울역과 같은 현장으로 직접 음식을 운반하여 배식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 구성원공동체만의 애찬을 넘어 노숙자와 독거노인, 결손가정 어린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교회의 애찬이다.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이 편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동선을 마련하고 입구와 내부를 소박하게 꾸며 정서적으로 부담감이 없도록 해야 한다. 누구나 정서적인 불편함 없이 교회의 시설물을 사용하고 교회가 제공하는 프로그램과 봉사의 수혜를 받을 수 있을 때 교회의 공공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3. 공간의 위계  

한 공간이 경험과 감정으로 익숙해지기까지에는 일정한 사용기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배공간이든 통로이든 그 공간은 객관적 공간이 아닌 자신이 경험한 주관적 공간이나 장소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간 안의 가구비치나 배열은 익숙해진 전통적인 도상에 따르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간의 위계는 다르다. 교회의 선교신학과 정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위에서 교회공간을 기능별로 구획해본 여섯 공간의 위계는 교회의 본질을 ‘예배하는 처소’로 상정한다면 대 예배실을 최우선으로 하여 공간의 위계를 세울 수 있다. 그 위계는 교회의 본질과 그 선교적인 목적을 신학적으로 목회적으로 수행하는데 효율적인 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교회공간을 마련하는 우선순위로서 주차장과 식당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 어느 기능을 먼저 택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쉽게 결정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교회는 그 교회만의 독특함과 선교적 이념을 전달하기 위해 공간위계를 세운다고 할지라도 교회 공간의 위계는 가능한 ‘성서적 풍경’이어야 한다. 이것은 채움보다 비움이며 높임보다 낮춤의 공간 위계를 말한다. 위계를 세웠다고 할지라도 예배하고 친교하며 이를 돕는 여러 기능 공간 주에 그 어느 공간이 다른 공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 교리처럼 위계는 다르나 모두 한 공간인 것이다. 각 공간은 유기적인 공간으로 관계를 맺으며 한 공간이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면 다른 공간들이 그 몫을 나누게 된다. 교회공간들은 각각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저마다 위치할 적절한 자리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교회건물의 이러한 공간 위계를 몸으로 체험하며 복음을 몸으로 이해한다. 첫 인상은 멈과 가까움을 밀접히 연결시키기 때문에 교회의 공간은 그 기능에 관계없이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으로 체험되어서는 안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안시스템과 같은 공간 위계의 통제선은 사람들이 출입하는데 정서와 의지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공간마다 그 사용 기능에 따라 지속적으로 상징성을 부여하고 고양시키며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공간을 통해 사건을 만들며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4. 나가는 말

위에서 하나의 고층교회 건물 안에 기능에 따라 분절한 공간을 크게 여섯 공간으로 구분하고 그 공간이 그 위치에 있게 되는 위계의 원인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교회마다 교회의 선교신학과 정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위에서 구획해본 여섯 공간의 위계는 교회의 본질을 ‘예배하는 처소’로 상정하는데 반론이 없다면 대 예배실을 최우선으로 하여 공간의 위계를 상정할 수 있다. 그 위계는 교회의 본질과 그 선교적인 목적을 신학적으로 목회적으로 수행하는데 효율적인 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 교회는 그 교회만의 독특함과 선교적 이념을 전달하기 위해 공간위계를 세운다고 할지라도 교회 공간의 위계는 ‘성서적 풍경’이어야 한다.
공간의 위계는 온전히 예배를 드리고 영성을 고양하기 위한 공간이 우선되어야 하며,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는데 정서적으로 불편함이 없는 동선을 구축하여야 한다. 단순히 교회건물의 높이만을 보면 현대의 고층교회는 유럽 중세의 고딕 교회이상으로 높다. 예배실의 한 공간 안에서 제 일의 위계를 갖는 지성소는 성스러운 장소로 일정 높아야 하지만 회중석에서부터 지나치게 높이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회중석 앞자리와 뒷자리에서 지성소를 향해 바라보는 각도에 큰 편차가 있지 않아야 한다. 지성소 위에 설교대와 의자들, 그리고 다양한 악기들과 조명으로 인해 회중석의 시선을 산만하게 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위치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지하 예배실(crypt)을 대체로 소 예배실을 배치하는데 본래 그 곳은 교회의 그 어느 공간보다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교회가 이 공간을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가능한 침묵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회장실(목회자실)과 사무실은 권위적이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교회를 고층으로 신축하면서 당회장실을 파높티콘 공간처럼 예배 공간의 위층에 배치하면 성직자의 사생활은 보호할 수 있으나 바람직하지는 않다. 공간이 허락된다면 목회자들을 위한 작은 ‘쉼터와 영성 공간’을 최상층에 더 마련하는 것이 좋다. 식당(애찬과 친교)공간과 주차공간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며 나눌 수 있는 개방과 공공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건물을 통한 선교이다. 교회조직과 질서를 위해 구축하는 공간일지라도 탈 권위적인 보편적 공간이어야 한다.
교회공간은 다양한 세대가 저마다의 가치관과 신앙관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교회건물이 예배와 기도, 친교의 공간들이 집합된 선교의 공간으로서 그 기능을 하기 위해서 공간의 위계를 설정하지만 누구나 정서적으로 편하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 되도록, 그리고 제한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회가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공동체를 강조하는 한국사회, 한국교회는 그 사회와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따라야만 하는 공동의 규범과 동일성의 사고를 강요한다. 이것은 공동체 내부의 사람들을 구속하며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가족주의로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 라는 대명사를 통해 구체화되는데 한국의 교회 공동체는 교회공간의 점유와 이용이 배타적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교회건물과 공간에 관한 공공성은 한국교회가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선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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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2

정의로운 평화와 “민에 의한 통일”
- 심원 안병무 선생의 통일이론

                                                     강원돈(한신대/ 기독교사회윤리)


초록

  본 논문에서 나는 1) 심원(心園) 안병무(安炳茂) 선생이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논한 정의와 평화의 관계를 규명했고, 2) 분단된 한반도 현실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민에 의한 통일”의 구상을 분석했다.
  정의와 평화의 관계와 관련해서, 심원은 정의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물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았고, 그 자리가 민중의 자리임을 확신했다. 민중을 억압하고 수탈하고 주변화하는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고 민중을 해방하지 않고서는 정의를 말할 수 없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곳에서 평화를 운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심원은 정의에 근거한 평화를 말한 것이다. 정의에 근거한 평화의 비전으로부터 공동체 형성과 관련된 세 가지 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민중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의 원칙, 공공성을 위한 소유권 주장의 제한의 원칙, 평화의 수단으로서의 전쟁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 원칙이 그것이다.
  “민에 의한 통일”의 구상에서 심원은 정의에 대한 염원을 갖고 기득권의 해체를 위해 투쟁하는 민중이 통일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한 민중이 주체가 되어 전개하는 통일 운동에서는 분단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과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운동이 서로 단계를 달리 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결합되어야 한다. 심원이 말하는 “민에 의한 통일”의 운동은 다섯 가지 원칙들을 담고 있는데, 그 원칙들은 오늘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1) 분단의 극복과 통일의 성취가 전쟁 배제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 2) 민중이 분단 극복과 통일 성취 과정을 주도하여야 한다는 원칙, 3) 민중의 관점에서 분단체제를 전향적으로 해체하여야 한다는 원칙, 4) 민주주의, 공공성을 위한 소유권 주장의 제한, 민중의 실질적 권력 통제 등의 내용을 담는 통일공동체의 청사진(통일헌법)을 민중 주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주제어
공, 민주주의, 민중, 안병무, 전쟁, 정의, 통일, 평화

1. 머리말

  오늘 우리나라 신학계에서도 그렇지만,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에서도 정의와 평화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화두가 되었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리는 제10차 WCC 총회는 “생명의 하느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주제를 내걸고 정의와 평화 속에서 만물이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전 세계 교회를 초청하고 있다. 그런데 정의와 평화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놓고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나라 신학계에서 정의와 평화의 관계에 대해 치열한 생각을 펼친 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심원(心園) 안병무(安炳茂) 선생일 것이다. 그는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정의와 평화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했고, 분단된 한반도 현실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제시한 “민에 의한 통일”의 구상은 분단의 극복과 통일의 성취를 통하여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고자 하는 민중의 운동을 함께 형성하고 지원하고 성찰하고자 하는 신학 작업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심원은 정의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물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았고, 그 자리가 민중의 자리임을 확신했다. 민중의 자리에 설 때 정의가 비로소 인식되고, 그 정의가 실현될 때 평화가 수립된다는 심원의 주장은 “정의로운 평화” 혹은 “정의에 근거한 평화”라는 최근의 밋밋한 정식화마저 뒤흔드는 힘을 가졌다. 정의와 평화의 관계에 대한 심원의 예리한 통찰은 여전히 분단된 한반도에서 불의와 적대의 중층적 모순체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지구화 과정에서 더 많은 정의와 더 많은 평화를 갈구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 글에서 첫째, 심원이 민중의 시각에서 밝힌 정의와 평화의 관계를 규명하고, 둘째, 분단된 한반도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그가 구상한 “민(民)에 의한 통일”이 어떤 제안을 담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이 두 가지를 해명한다면, 오늘의 한반도에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더 해야 할 일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2. 민중의 시각에서 본 정의로운 평화

  심원은 민중의 자리에서 보면 정의가 평화의 전제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강조했고, 정의에 근거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제도 형성의 기본 원칙이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했다. 공(公)과 민주주의, 전쟁에 대한 단호한 반대 등이 그것이다.

1) 평화의 전제로서의 정의

  많은 사람들이 평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평화를 수립하기 위한 방안을 말하는 것을 보면서 심원은 정의를 전제하지 않은 평화는 거짓 평화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 1980년대에 세계적 관심을 끌면서 진행된 JPIC 공의회 과정에서 유럽 교회들, 특히 독일 교회는 평화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하였는데, 심원은 그 논의를 점검하면서 서구에서는 “정의 문제를 뺀 평화론”이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일침을 가한 뒤에 “정의가 없는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평화론을 제대로 전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서구의 평화론에 대해 이처럼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은 것은 지구적 차원에서 부가 중심국에 과잉 축적되고 가난이 주변국에 확산되는 구조적 문제들을 내버려두고 세계 평화를 운위하는 것을 제국주의적인 논리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서구에서 제시된 평화론을 모조리 도매금으로 매도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서구 학계에서 평화론의 이정표를 설정하였다고 알려져 있는 요한 갈퉁의 적극적 평화 개념을 잘 알고 있었다. 적극적 평화는 평화를 전쟁의 부재로 규정하는 소극적 평화 개념의 불충분성을 넘어서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사람들은 갖가지 갈등과 대립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어서 평화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는 갈등과 대립을 불러일으키고 폭력을 일삼게 하는 구조들과 요인들을 제거할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 평화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법치를 확립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인간의 자기실현의 기회를 보장하는 일련의 역동적 과정을 통하여 실현된다. 국가들 사이의 평화도 군사적 조치나 군비확충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기보다는 각 나라가 보다 낫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하고 그러한 나라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거쳐서 달성될 수 있는 목표이다.
  그러나 심원은 갈퉁의 적극적 평화 개념을 훨씬 더 넘어서는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평화를 말하기 이전에 정의를 말해야 하며, 오늘의 세계에서처럼 부의 집중과 가난의 확산이 구조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정의를 묻는 자리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직 민중의 자리에서 민중의 관점을 갖고서 정의를 생각하여야 참 정의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참 정의는 바로 이렇게 억울한 착취와 압박을 당하는 민중이 그런 사회구조에서 해방되어 인권을 회복하고 저들의 절규가 수용되는 민주화가 수립될 때에만 비로소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러한 정의가 수립될 때에만 “평화의 터전”이 마련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심원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명제에 압축적으로 정식화되어 있다. “민중의 해방과 자주성이 보장되지 않고는 정의가 성립될 수 없다. 그러한 정의가 수립되지 않은 채 평화를 내세우는 것은 기존체제를 지키겠다는 의미밖에 없다.”
  정의가 평화의 전제라는 심원의 사상은 성서의 예언자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1972년에 쓴 한 글에서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궁극적 샬롬을 약속하였지만, 그것은 오직 정의가 수립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샬롬’을 주려고 한다(렘 29:11). 그는 이스라엘에 궁극적 샬롬을 약속했다(겔 34:25-37:26; 렘 26:6). 그러나 하느님의 진노가 있는 한 평화란 없다(렘 12:12). 정의가 서지 않는 평화란 평화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의를 가로막는 것은 바로 인간의 불의다(사 57:21). 참 평화는 정의가 병행한다(사 48:18).”
  이러한 예언자 전통에서 볼 때, 약자들을 폭력으로 내리누르며 강자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질서를 참된 평화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참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정의를 수립하여야 한다.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이 아시리아나 바빌론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 다른 나라의 폭력을 끌어들이는 데 단호하게 반대하고 먼저 공동체 안에 정의를 수립할 것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예언자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예수는 당대 현실을 규정하는 프레임이었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하느님의 통치를 날카롭게 대립시켰다.
  예수는 로마 군단이 주둔하고 있는 갈릴래아에 가서 하느님의 나라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외치고 그 외침에 호응하여 모여든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했다. 로마 군단은 팍스 로마나의 군사적 토대이다. 팍스 로마나는 정의 위에 세워진 평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약자를 무력으로 억압하여 평온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의 자유와 재산을 약탈하고 강자의 특권을 공고히 하는 불의한 체제였기 때문이다. 예수는 팍스 로마나의 한복판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임박했음을 선포했다. 그것은 하느님이 정의롭게 다스리는 날이 가까이 왔다는 뜻이다. 그 날이 오면,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과 세력이 종말을 고하고 하느님의 직접 통치가 실현될 것이다. 이제 그 선포에 호응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지배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지배로 옮겨가야 한다. 이것이 회개이다. 회개는 지배의 전환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기존질서에 안주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동터오는 새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 도래의 선포는 “갈릴리의 민중에게 최대의 돌파구를 열어주는 일이며 동시에 로마-헤롯-예루살렘 세력권에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심원은 루가복음 4장 18-19절에 근거해서 평화를 향한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루가복음의 두 구절은 예수가 갈릴래아의 유다인 회당에서 이른바 메시아 취임 설교를 할 때 인용한 이사야의 말씀인데, 심원은 주의 은혜의 해를 고지하는 이 의미심장한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이 선언에서처럼 평화에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눌린 자와 가난한 자를 강자와 부한 자에서 해방시키고 그리고 마음만이 아니라 권리도 재산도 나누는 일, 즉 나눔(sharing)의 행위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해방과 나눔은 기득권 구조의 해체를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기득권 구조는 “칼”로써 상징되는 민중의 투쟁과 심판에 의해 붕괴되어야 하고, 정의에 근거한 평화로 대체되어야 한다. 심원은 마태오복음 10장 34-39절에 대한 주석을 통해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오늘의 불공평한 기득권을 그대로 둔 채 운위되는 평화는 평화일 수 없다. (...) 우리가 참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려면 그 전에 투쟁을 통해서 모든 기득권의 구조가 붕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분열, 시비를 가리는 심판이 앞서야 한다. 그것은 바로 평화 실현에 앞서야 하는 것이 정의 실현이라는 말이다.”
  평화에 앞서서 정의를 말해야 한다면, 정의를 제대로 인식하는 자리를 확인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미 앞에서 그 자리가 민중의 자리임을 말한 바 있지만, 심원은 역사의 예수로 돌아가서 그가 하느님 나라와 민중을 서로 직결시켰음을 확인함으로써 민중의 시각이 갖는 중요성을 날카롭게 부각시켰다. 마태오복음 10장 34-39절에 대한 주석에서 심원은 민중의 시각에서 정의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의 치명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오늘에 있어서 정의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 대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역사의 예수에게 돌아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예수는 하느님 나라(Shalom)와 민중(가난한 자)을 직결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죄와 의는 민중의 시각에서 결정된다. 민중이 해방되는 것이 바로 정의의 실현이며, 거기에 샬롬이 있다.”

2) 공(公)과 민주주의

  심원이 치열하게 추구했던 정의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그 근거로 한다. 창조 신앙의 전통에서 하느님의 주권은 그분이 지은 하늘과 땅과 바다, 그리고 그곳에 깃들인 생명체에 대한 그분의 주권으로 이해된다. 출애굽 사건의 기억을 전승하는 해방 전통에서 그 주권은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권력과 재산에 대해서도 관철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심원에게서 하느님의 절대주권은 공(公) 사상과 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개념으로 명료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심원의 사상은 그가 1967년에 숭실대학교에서 행한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이라는 강연에서 최초로 표출되었다. 이 강연에서 그는 기독교가 하느님의 절대주권, 공(公) 사상, 민 주도의 민주주의를 옹호하여 한국 사회의 형성에 공헌하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 곧 “기독교 사회주의”의 길로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공 개념을 토지소유권에 적용하여 토지 공개념을 확립한 뒤에 공공성의 원칙에 따라 다른 모든 기득권의 변화를 꾀하여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했다.
  민중신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단계에서 심원은 하느님 나라 운동의 역사적 핵을 분석하고 그 나라의 실상을 밝히면서 공 개념을 더욱 더 구체화하였다. 서구 신학은 하느님 나라의 실체에 대한 불가지론에 빠지고 말았지만, 심원은 예수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민중에게 선포하였을 때, 예수와 민중은 그 나라의 현실이 어떤 것인가를 자명하게 알고 있었다는 대담한 주장을 내놓았다. 그 나라의 역사적 원형은 원시 이스라엘이다. 거기서는 대가족 단위로 땅을 분배받아 이를 점유하고 자급자족의 원칙에 따라 살림을 꾸려나갔다. 원시 이스라엘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인 땅에 대한 비소유권적 점유권을 경제적 토대로 삼았다. 또한 거기서는 왕이 없었다. 공동체 안의 갈등과 분쟁을 다스리기 위해 장로들이 선출되었지만, 그들은 권력자라기보다는 오랜 경륜과 지혜로 공동체를 규율하는 권위 있는 지도자들이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농민들은 군사지도자를 옹립하고 그를 중심으로 의용군을 조직하였으나, 전쟁이 끝나면 군사 지도자도 의용군도 원래의 농민으로 되돌아갔다. 원시 이스라엘을 조직하는 원리는 직접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이러한 원시 이스라엘을 관철하고 있는 신앙은 “오직 야훼만”의 신앙, 곧 만물에 대한 야훼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이었다. 땅은 야훼의 것이니 그 누구도 야훼의 땅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그 땅을 경작하는 사람은 그 땅의 소유자가 아니라 다만 “식객”에 불과하다.(레위 23, 25) 따라서 그 땅을 사유화하여 임의 처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침해이다. 모든 권세의 원천이 야훼이기 때문에 야훼의 것이 아닌 권력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야훼의 권력을 자기 것인 양 독점하거나 사유화하는 일은 인정될 수 없다. 만물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속하여야 할 것의 공공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권력과 땅은 모든 사람들에게 속하여야 할 것을 가리키는 기표이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의 나라는 지배 없는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예수의 비전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그 비전은 마르코복음 10장 42-43절에 남아 있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의 집권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백성들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고관들은 세도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려고 하면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마르 10, 42-43) 이 말씀의 전반부에는 권력 현상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권력은 상대방의 의지를 꺾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권력이 행사되는 곳에서는 지배와 복종이라는 권력 현상이 나타난다. 팍스 로마나의 한복판에서 예수는 그러한 권력 현상이 일상화되어 있음을 몸으로 체험했다. 그는 그러한 권력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불변의 질서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심원은 이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공동번역에서 “이방 사람들의 집권자로 알려진 사람들”로 옮긴 희랍어 본문을 직역해서 “민족들을 지배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로 옮겼다. 이렇게 번역하면, 당대의 통치자들은 본래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권력을 찬탈한 세력임이 강력하게 암시된다는 것이다. 심원은 이에 근거해서 “주인으로 민에 군림할 수 없는 것들이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권위를 자기 것인 양 민에게 행사한다.”고 풀이했다. 그는 예수가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외침으로써 이러한 권력 찬탈과 권력 현상을 철저하게 부정했다고 해석했다. 예수는 팍스 로마나의 지배질서를 송두리째 거부하면서 “하느님의 나라는 이처럼 인간이 권력을 가지고 인간을 억압하고 짓밟는 체제와는 전혀 상반되는 현실”임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더불어 사는 한, 정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은 지배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해석에서 심원의 급진적 민주주의 이념이 드러난다. 그는 하느님의 통치와 민중이 직결되는 세상, 하느님의 주권 아래서 민중이 그들의 삶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결정하는 세상,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이다.
  이와 같은 급진적 민주주의의 전망을 가졌던 심원은 민중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지식인 독재를 경계했다. 설사 지식인들이 새로운 세계의 역사적 비전을 실현하는 방법과 그 프로그램들을 구상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그것을 마련하여 민중에게 제시하는 일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자칫 민중의 자율성과 민중의 권력을 찬탈하는 지식인의 혁명적 독재를 불러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심원은 민의 주권을 제약하는 그 어떤 제도적 장치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먼저 민중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는 모든 지배자가 물러나고 체제가 변혁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새 것이 온다. 그 다음은 민중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원이 기존체제를 변혁하고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는 데 주저했던 것은 아니다. 심원은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에게” 돌릴 때, 따라서 공(公)을 공(公)으로 인정할 때 땅과 권력과 물질이 하느님의 주권 아래서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전망했다. 그가 말하는 공(公)은 “아무도 사유화할 수 없는 것, 모두를 위한 것이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일러 “하느님의 것”이라고 한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에게” 돌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것”을 찬탈하여 자기 것으로 삼는 죄가 오늘 어떤 형태의 구조악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을 구상하여야 한다. 심원은 그러한 방안의 구상과 관련해서 민중신학이 계급의 문제와 물질의 문제를 끌어들여 적극적으로 사유할 것을 주문하였고, 이 문제들에 대한 “기본적 인식의 혁명”을 주문하였다. 그는 기독교가 제 소임을 다 하지 못하는 동안에 맑스주의가 기독교가 할 일을 대신 하였다고 말함으로써 구조악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실천을 강조하였다.

3) 전쟁에 대한 단호한 반대

  평화의 전제가 정의라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 심원은 평화를 이루는 수단으로서 전쟁을 상정하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하였다. 평화는 전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고, 무력을 통해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서적 전거로 제시하였던 거룩한 전쟁을 해석하면서 전쟁의 신학적 정당화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거룩한 전쟁이 “이제 있을 전쟁인데도 모두 현재완료형으로 서술된 것”에 주목하고, “이것은 전쟁을 하기 전에 이미 사태는 결정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전쟁 기록이기보다는 하느님이 이 역사를 이끈다는 고백이다.”고 해석한다. 심원의 해석은 거룩한 전쟁에 대한 최근 연구의 결과들과도 일치한다. 이스라엘에 왕권이 성립되기 이전에 벌어졌던 거룩한 전쟁은 전쟁이 인간의 소관이 아니라, 도리어 하느님의 소관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전쟁에서 잡은 포로들은 모조리 살육되어야 했고, 노획물은 전쟁 참여자들에게 임의로 배분될 수 없었다. 포로들과 노획물은 야훼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사회에서 전쟁의 동기가 되었던 포로 획득이나 재산 약탈은 원천적으로 부정되었던 것이다. 왕권이 성립한 뒤에 국가가 수행하는 전쟁을 마치 신의 전쟁인 것처럼 묘사하는 성서 구절들은 왕이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조직한 전쟁을 야훼의 전쟁에 투사하여 마치 그것이 거룩한 전쟁인 양 보이려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원은 성서에서 군사동맹을 통해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선전하는 구원의 예언자들과 평화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의를 구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불구원(不救援)의 예언자들을 날카롭게 대조하면서 군사동맹이나 무력에 호소해서 안전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관념의 허구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성서는 전쟁을 평화의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존질서를 안정시키기 위한 평화 운동도 인정하지 않았다. 심원은 무력이나 권력 혹은 기존체제를 절대화하면서 이런 것을 수단으로 해서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생각이 바로 우상숭배라고 보았고, 이에 대해 저항할 것을 촉구하였다. “성서에서는 이런 것에 대한 저항을 통틀어 우상의 타파라고 한다. 권력이거나 무력 또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이거나 간에 그것이 절대한 것으로 군림할 때면 그것은 바로 우상인 것이다. 절대주의는 미래를 차단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완결됐기에 스스로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심원의 단호한 반대는 성서의 정의로운 평화 전통에 근거한 입장일 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가 확산되어 있는 현대의 상황을 염두에 둔 판단이기도 하다.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 앞에서 정당전쟁론은 그 어떤 논거를 내걸더라도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전쟁은 네가 이기고 내가 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망하는 전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인이 살기위해 문제를 무기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버려야 하겠다는 것이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는 잠재적인 적에 대한 선제공격까지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나라들이 할거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전쟁과 안보 절대주의에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를 놓고 성찰하고 투쟁 전략을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큰 과제가 되었다. 심원은 그 방략을 성서가 제시하지 않기에 기독교인들이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역사적으로 결단하여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면 전쟁이나 절대주의라는 우상에 대한 투쟁은 어떤 방법으로 저항하라는 것인가? 성서는 그러한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평화의 역군으로서 그가 처한 역사적 상황에서 결단해야 할 것이다.”

3. 민에 의한 통일

  정의에 근거한 평화에 관한 심원의 구상은 분단 상황에서 민중이 주도하는 통일에 관한 구상으로 나타났다. 그가 말하는 “민에 의한 통일”은 민중의 시각에서 민족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제시한 방안인데, 이 방안의 주조음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정의와 평화이다.
  민족 문제에 대한 심원의 관심은 그 뿌리가 깊고도 깊다. 그는 식민지 시대에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하면서 민족 문제에 눈을 떴고, 분단 이후 민족 형성의 문제와 통일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그 나름의 분명한 견해를 표명해 왔다. 이 글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반도 분단과 통일에 국한시켜 볼 때, 그는 한반도 분단과 민족 통일과 관련해서 매우 주목받을 만한 의견을 제시해 왔다. 그의 견해는 일관성이 있기는 하지만 시기별로 강조점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아래서는 7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와 80년대 민중운동 시기를 거치며 그가 통일 문제에 대해 취한 입장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민주주의와 통일

  심원은 통일에 대한 논의를 정부가 독점하고 민간 차원의 통일 논의가 금기시되었던 시대에 통일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진지하게 생각을 펼치는 용기를 보였다. 그는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1972년 『씨알의 소리』가 주관한 통일 토론회에 참석하여 매우 중요한 발언을 하였다. 그는 「남북공동성명」이 민간의 참여 없이 정권 차원에서 발표되었기에 그 진의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그 성명은 통일 논의를 위한 “거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이 선언에 대한 “해석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확대해서” 이를 “물고 늘어지는 운동”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민간이 참여하여 통일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를 쟁취하여야 한다고 역설하고, 이 논의를 진전시켜 가면서 우리 민족의 미래를 가로막는 자본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통일의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같은 심원의 발언에는 그가 그 뒤에 계속해서 강조한 원칙들의 맹아가 담겨 있다. 그 하나는 민이 주도하여 통일 논의를 전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이 주도하는 통일 논의에서 정권 차원의 압력이나 제약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통일된 민족 공동체의 비전은 민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1981년 심원이 발표한 “민에 의한 통일” 구상의 핵심을 이룬다.
  민족 문제의 핵심을 이루는 통일 문제를 다루면서 심원은 결코 민족주의에 포박당하지 않았다. 그는 남한에서 민족주의를 앞세우며 민주주의와 민중 생존권을 억압하는 현실을 인식하였고, 북한에서 소수의 지배집단이 민족 주체를 내걸면서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인식은 1975년에 발표한 심원의 기념비적 논문인 「민족․민중․교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은 있어도 민중은 없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정말 실재하는 것은 민중이고 민족이란 대외관계에서 형성되는 상대적 개념인데 언제나 내세운 것은 민족이었고 민족을 형성한 민중은 계속 민족을 위한다는 이름 밑에 수탈상태에 방치되어 왔다.” 이와 같은 인식 구도 아래서 심원은 민중이 주체가 되는 사회를 형성하는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민족통일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걸면서 통일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민주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지만, 심원은 정반대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유신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76년에 쓴 「민족적 과제와 교회」 라는 글에서 심원은 민주주의에 기반을 두고 민족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회의 과제임을 역설했다. 그는 무력에 의한 통일을 원하지 않는 한, 통일의 유일한 방도는 공산체제에 대한 민주체제의 우월성을 실제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족 통일을 결정하는 민족 주체는 남한이나 북한의 소수 집권자 집단이 아니라 민중이고, 바로 이 민중이 “주체”가 되는 사회가 민주사회이다. 심원은 이와 같은 전제 아래서 민족 통일은 민주 사회의 노선을 전 민족적으로 관철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민족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교회는 인권을 신장하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민주화 운동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심원의 견해를 집약하는 구상이 바로 “민에 의한 통일”이다. 1981년에 발표된 이 구상에는 심원이 1972년에 단편적으로 제시하였던 생각이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예리하게 가다듬어져 정식화되어 있다.

“민에 의한 통일이란 말은 성서적으로 <하느님의 주권>을 절대적 조건으로 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야훼의 주권>이 민의 공통된 염원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민의 공통분모>를 통일의 기본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 우리가 염원하는 민주주의는 <민>이 하느님의 직접통치 아래 들어가서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체제를 의미한다. (...) 진정 <민>에 의한 통일을 지향한다면 어떻게 출발할 것인가는 분명하다. 그것은 통일문제를 <민> 사이에서 계속 활발하게 논의하고 중의를 모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부터 선행시켜야 한다.”

2) 민족 자주화와 민족통일

  1981년 5월 광주 항쟁을 계기로 해서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화를 추구하는 방식을 놓고 인식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는 오직 자주화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인식이 싹튼 것이다. 군대가 광주 항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전시작전권과 평시작전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미국의 용인과 지원이 있어야 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국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서는 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자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는 민족자주화와 민족 통일에 결부시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공고해졌고, 민주화, 자주화, 민족통일을 이끌어 나가는 주체는 민중이라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민중이 주체가 되어 상황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면, 군부독재, 대미종속, 민중 생존권 위기, 분단 등 당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심원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 한국 사회의 변혁에 관한 논의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민중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권력 블록이 외세에 의존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분단 상황을 유지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에 존재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독재와 외세의존과 분단고착화는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중첩되고 응축된 모순들이 드러나 보이는 모습들이기에 민주화와 자주화, 그리고 민족통일은 별개의 과제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 연관을 맺으며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을 갖고 있었던 심원은 정권이 통일운동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 말에 쓴 한 글에서 그는 40여 년간 분단 상태를 온존시켜 오고 특히 7․4 남북공동성명 이후에도 통일 문제에서 한 치의 진전도 이루지 못한 정권에 통일 논의를 맡겨두는 것은 “민이 그 민됨의 권리와 의무를 유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민에 의한 통일”을 또다시 강력하게 촉구했다.

“민은 민족의 실체다. 민은 외세에서 자유로우며 자기운명을 자기가 해결할 자율권을 침해받지 않는다. 민족자결이란 결국 민의 자율권 관철이다. 우리의 통일운동은 민이 시작하여 민에 의해 그 결실을 보아야 하며 또 그 길밖에 없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1970년대의 민주화 운동 가운데서 가다듬어졌던 “민에 의한 통일” 구상은 1980년대의 민중운동을 거치면서 민족의 실체인 민중의 반외세 자결권 개념을 담아내고 있다. 심원은 이처럼 확장된 “민에 의한 통일” 구상의 틀에서 민족 통일의 비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러나 매우 신중하게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민족 통일의 비전에는 남한과 북한의 체제와 이념을 넘어서서 민중이 원하는 사회의 내용과 형식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비전은 다음과 같다.  
  
“그러면 체제와 이념을 떠나서 민이 호응하고 바라는 사회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몇 마디로 집약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민이 자기 민족의 운명을 자기가 직접 짊어지고 책임적 존재로 살 수 있는 사회, 각 분야에서 그것을 기획하고 생산하고 분배하는 과정에 주체자로 참여하며, 그럼으로써 자본이 민의 노동을 강요하고 상품을 설정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민이 자본을 조정함으로써 민이 자본의 주체가 되는 그런 경제질서를 원한다. 민은 민의 이름을 빌어 형성된 정권이 민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 정치질서를 반대하고, 모든 중요정책과 그 시행에 참여하여 자기들의 뜻이 왜곡됨이 없이 반영되는 정부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한 정부와 민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장치가 이루어진 사회를 바란다. 사회의 모든 가치척도나 문화의 성격은 지배권에 속하여 배부른 극소수의 감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노동과 삶에 직결된 절대다수의 민중의 감정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어야 한다.”

  인용문에서 밝혀져 있는 바와 같이, 심원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추구하는 자주적인 국가공동체, 민중이 자본의 주인이 되는 경제질서, 민주주의적 소통에 기반을 둔 정치질서, 민중의 노동과 생활감정에 기반을 두는 사회문화 등을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로 하는 통일사회의 비전을 갖고 있었다. 이와 같은 통일 사회의 비전은 심원이 심혈을 기울여 마련하고자 했던 통일헌법의 원칙들로 다시 나타난다.

3) 분단의 극복과 통일의 성취

  심원은 민족 통일을 중시하고 이를 촉진하는 여러 가지 방안들을 구상하였지만, 분단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분단 상황의 극복과 민족 통일의 성취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나 각기 다른 과제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분단 상황의 극복이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남북전쟁의 결과들을 청산하는 과제들을 갖는다면, 통일의 성취는 이념과 체제를 달리 하는 두 개의 실체 국가들이 통합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정교하게 계획하고 관리하고 추진하는 과제들을 갖는다.
  심원이 분단 상황의 극복과 관련해서 명확한 입장을 내어 놓은 계기는 1989년 2월 28일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이하 「선언」) 1주년 기념 예배에서 행한 설교였다. 그는 이 설교에서 「선언」이 발표된 이후 1년이 경과하면서 나타난 상황의 변화에 주의를 집중시켰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 북한의 강력한 평화공세 등으로 인해 분단 상황의 극복과 관련해서 중대한 사정의 변화가 생겼다고 본 심원은 북한이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의 전제조건들로 내세운 1) 군사 파쇼에서 민주체제로 전환, 2) 반공법, 국가보안법 철폐, 3) 민주인사들과 애국적 인사들의 석방, 4)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 5) 외국군 철수 등을 민의 입장에서 전폭 수용할 수 있다고 천명하였다. 북한이 내건 통일방안의 전제조건들은 모두 분단 상황의 극복과 관련된 것인데, 심원은 민중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남한에서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심원은 분단 상황의 극복과 관련된 「선언」의 입장이 그 당시 크게 변화된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생각했다. 「선언」은 “평화적 협정이 체결되고 남북한의 신뢰 회복이 확인되며 한반도 전역에 걸친 평화와 안정이 국제적으로 보장되었을 때 미군 철수를 해야 하며 주한 UN군 사령부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소극적 주장은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북한 상호간의 신뢰 회복과 한반도 전역에 걸친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미군을 철수하고 UN군 사령부를 해체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주장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군 철수와 UN군 사령부 해체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의 결과가 아니라 그 전제여야 한다는 심원의 주장은 그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에도 매우 대담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심원은 분단의 극복과 통일의 성취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제안을 했다. 그는 “민에 의한 통일”의 원칙에 입각해서 정부나 입법부에 대해 독립적 지위를 갖는 “범국민적 통일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심원은 이 위원회가 입법부의 지원을 받으며 정부에게 요구해서 관철할 사항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했다. 1)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나아가서는 불가침조약으로 바꾸도록 할 것, 2) 분단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주도록 할 것 - 이를 위해 미군 철수, 핵무기 완전 철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감군의 단행 등을 통하여 전 세계와 특히 북한 정권에 우리의 평화 통일 의사가 진정한 것임을 입증하여 통일의 주도권을 잡을 것, 3) 두 정부에게 통일에 방해되는 모든 조약이나 협정을 폐기하도록 할 것, 4) 통일된 민족 공동체의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남북 합동위원회를 구성하고, 민족 공동체의 유일한 담지자인 민중을 주축으로 한 민족 공동체를 구성하도록 할 것이 그것이다.
  심원은 이러한 제안을 한 뒤에 민족 통일의 청사진을 담는 통일헌법을 구상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4) 한반도 통일의 청사진을 담는 통일헌법의 네 가지 원칙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일어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그 뒤를 이은 세계사적 변동




신학사상 2012년 봄호(156집) 차례
신학사상 2011년 가을호(154집)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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