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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연 
 (New)신학사상 2010년 여름호(149집) 차례


이번 호에는

구약학 분야에서 이종록 한일장신대 교수가 에스겔의 예언을 공연이라는 예술 형식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행위 예언’의 해석을 한 “예언과 공연-에스겔서 12장 1-16절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공연(公演)으로서의 예언’”, 이윤경 이화여대 강사가 안식일 법이 쿰란공동체에서 구약에서 신약으로 어떻게 연속적으로 제도화 되었는지를 추적한 논문 “쿰란공동체의 안식일 이해: 안식일 법, 정결례, 예식”, 박신배 그리스도대 교수가 구약학 연구의 중심인 계약신학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한 “계약신학의 새로운 모색” 등 세편의 논문을 게재하였다.

조직신학 분야에서 조현철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가 현대 생태위기의 주요 원인을 근대 이후의 기계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인간중심주의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태적 세계관에 기초한 생태영성의 함양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논문 “그리스도교 생태영성을 찾아서: 성서의 생태적 이해”를 게재하였다.

종교사회학 분야에서 이철 숭실대 교수는 “사회적 외상(Social Trauma)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문화사회학적 연구: ‘용산 참사’ 사건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통해 사회적 외상 사건이 사건 자체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문화적 차원에서 구성된다는 것을 문화사회학 이론을 통해 2009년 1월에 발생한 ‘용산 참사’ 사건을 분석하였다.

기독교윤리학 분야에서 양명수 이화여대 신학대학원 교수는 “폴 리쾨르의 해석학과 여성신학”의 논문에서 리쾨르의 해석학을 통해 여성 신학이 이데올로기 비판만이 아니라 신앙의 영성을 중시해야 함을 강조하며 여성신학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다.

선교학 분야에서 장성진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은 “혼돈 속에 있는 이주민 선교에 대한 선교학적 진단”이란 논문을 통해 ‘다문화’를 탈권력적으로 인식하는 다문화선교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하였다.

설교학 분야에서 조남신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설교학적 주제로서의 오이쿠메네: 루돌프 보렌(R. Bohren)의 『설교론』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보렌의 설교론에서 한국교회의 일치를 새롭게 모색하였다.

천안함 사건으로 46명의 고귀한 목숨이 희생되었다. 이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기원한다.  
한반도에서 냉전의 벽을 깨뜨리고 반세기동안 적대화되었던 남과 북을 수천년 함께 살아온 동족으로 회복시키고 평화관계를 형성한 6.15남북공동선언 10주년이 되었다.
우리 국민은 지난 10년 동안 한반도의 평화관계가 적대적 대결관계보다 남과 북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경험을 하였다. 동시에 한반도 평화는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경험도 하였다. 따라서 우리 국민들은 천안함 사건이 6.15선언을 폐기시키고 60년전 6.25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안함 사건이 한반도의 평화를 깨뜨리고 적대화로 되돌아가는 방향으로 해결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며 특히 천안함 사건을 6.2선거 북풍으로 악용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후 이 북풍은 그들에게 폭풍의 부메랑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담화가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하고 경제를 파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천안함 사건이 긴장과 갈등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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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49집)              

연구 논문

이종록 ․ 예언과 공연: 에스겔서 12장 1-16절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공연(公演)으로서의 예언”
이윤경 ․ 쿰란공동체의 안식일 이해: 안식일 법, 정결례, 예식
박신배 ․ 계약신학의 새로운 모색
조현철 ․ 그리스도교 생태영성을 찾아서: 성서의 생태적 이해
이   철 ․ 사회적 외상(Social Trauma)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문화사회학적 연구
             : ‘용산 참사’ 사건을 중심으로
양명수 ․ 폴 리쾨르의 해석학과 여성신학
장성진 ․ 혼돈 속에 있는 이주민 선교에 대한 선교학적 진단
조남신 ․ 설교학적 주제로서의 오이쿠메네: 루돌프 보렌(R. Bohren)의 『설교론』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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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소개)1
-편집상 각주 생략함

쿰란공동체의 안식일 이해: 안식일 법, 정결례, 제의*

                                                                                      이윤경(이화여대 강사/ 구약학)

요약
본 논문은 안식일 법이 제 2성전시대 유대의 한 변방인 쿰란공동체에서 어떻게 구약에서 신약으로 연속하여 제도화되어갔는지를 추적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쿰란문서에 나타난 안식일 제도를 안식일 법, 정결례, 제의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쿰란공동체는 오경의 ‘노동금지’ 원칙을 더욱 세분화하고, 구체화하였으며, 안식일을 다른 주요 절기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정결례를 통해 준비하였으며, 안식일에는 특별한 제의행사를 치렀음을 문서들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쿰란문서에 나타난 안식일 언급은 오경의 안식일 개념이 제 2성전시대에 이미 얼마나 제도화되었는지를 방증해준다. 쿰란문서에 나타난 안식일에 대한 배경지식은 신약시대 예수와 바리새파 간의 안식일 논쟁의 전승사적 위치와 그 논쟁의 엄중성을 이해하기위한 필수적 지식이라고 본다.  

주제어: 쿰란, 안식일, 다메섹 문서, 안식일의 노래,



1. 서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십계명 중 제 4계명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에 관한 명령 중 마지막 명령이다.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과 인간의 온전한 관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십계명 중의 하나로서, 안식일 계명의 위반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엄중한 율법조항들 중 하나였다(출 31:14f: 35:2; 민 15:32-36).
        출애굽기와 신명기는 각각 다른 근거를 통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출애굽기는 창조의 원리를 따라 야웨가 제 칠일에 쉬셨던 것을 ‘기억하여’ 객을 포함한 모든 사람과 가축까지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쉴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신명기는 출애굽기와 마찬가지로 객을 포함한 모든 사람과 가축이 안식할 것을 명하지만, 야웨가 출애굽의 역사를 통해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쉬게 하셨기 때문에 안식일에 쉬라는 다른 근거를 제시한다. 구약 시대를 거치는 동안 안식일 규정은 일을 금하고, 쉴 것을 제안하지만, 그 ‘일의 범위’에 대해서는 상술하지 않고 있다. 이 ‘노동금지’에 대한 안식일 규정은 구약시대를 거쳐 신구약중간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의 삶의 중요한 원칙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사실은 신약시대에 예수와 바리새파 간의 안식일 논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안식일에 대한 전승사적 고찰은 안식일 규정이 도대체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신약시대에 이르러 그토록 격렬한 안식일 논쟁이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 신구약중간사 시대에 기록된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유대문헌 중 하나인 쿰란문서에 나타난 안식일 이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안식일 논쟁을 파악하기 위해서, 쿰란문서에 나타난 안식일 규정 검토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를 위해 먼저 쿰란공동체의 안식일 규정에 대한 전이해로서 구약시대의 안식일과 관련한 언급들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쿰란문서에 나타난 안식일 규정을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 안식일에 치러지는 정결법, 안식일에 드려지는 제의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보고자 한다.

2. 구약시대의 안식일

        십계명의 안식일 계명의 핵심은 안식일 법의 제정의 배경이 창조이든, 애굽의 노예 살이 경험이든, 궁극에는 동일하게 ‘일을 하지 말라’는 노동금지로 귀결된다. 이 점은 안식일을 위해 제 6일에는 만나를 두 배 모으라는 명령(출 16:22-23),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말라는 명령(출 35:3), 안식일에 나무하는 자를 사형에 처하라는 율법(민 15:32-36)과 같은 왕국시대 이전의 관행을 통해서도 노동금지령은 금과옥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은 더 이상 상세하게 노동에 해당하는 ‘일’을 분류하고, 목록화하지는 않는다.
        왕국시대 이전처럼, 포로기 이전 왕국시대에도 여전히 안식일에 상업행위를 금지한다(암 8:5). 이사야 역시 안식일에 노동금지와 오락금지를 명령한다(1:13; 58:13). 안식일과 관련하여 좀 더 눈여겨보아야 할 예언자는 예레미야와 에스겔이다. 먼저 포로기 직전 예언자인 예레미야는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짐을 지고 들어오지 않고, 안식일에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면, 다시 다윗왕조가 설 것이며, 예루살렘 성은 영원할 것이며, 성전예배가 재개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안식일에 일을 한다면 예루살렘은 영벌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17:21-27). 예레미야의 이런 선언은 에스겔에 와서 확증된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게 된 원인을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지 않았고, 특별히 구체적으로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기”(20:13; 22:26) 때문에 초래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포로됨의 원인을 다른 어떤 율법보다도 안식일 계명 위반에서 찾았다. 이 예언자들이 안식일 법 위반과 포로됨은 직접적으로 연관 관계가 있다고 신랄하게 지적하였지만, 포로기 이후에도 여전히 안식일 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 자행되던 상업행위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10:31; 13:15-22). 이처럼 포로후기에도 여전히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제 3이사야(66:23)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예배로 지킬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천명한다.
        이상에서 개괄적으로 살펴본 바대로, 구약시대 이스라엘은 포로기 전후를 막론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하는 날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았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위반함으로써 결국 포로가 되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었다는 신학적 반성을 하였다. 이후 제 2성전시대를 거치면서 신약시대 즈음에 이미 안식일은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가 되었고, 그 위상은 거의 성전의 거룩성과 맞먹을 정도에 이르게 된다. 이제 쿰란문서를 통해 구약시대를 넘어, 신약시대 문턱으로 넘어가기 직전인 제 2성전 후기시대에 안식일이 어떻게 이해되고, 제도화 되어가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3. 쿰란문서에 나타난 안식일

1) 안식일의 율법

        쿰란문서 중 다메섹문서(CD)는 가장 상세한 안식일 율법을 제시하고 있다(10:14-11:18). 다메섹문서는 오경에는 나타나지 않는 안식일의 시작 시각을 정확하게 규정한다. “여섯째 날에 태양이 자신의 문으로부터 직경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이후로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10:15). 다음으로 다메섹문서는 구약의 안식일 법의 원칙인 ‘일을 하지 말라’는 사항을 보다 면밀하게 상술한다. 다메섹문서가 상술하는 ‘하지 말아야 되는 일들’을 목록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현존하는 다메섹 문서의 본문을 통해서 확인된 사항은 대략 27개에 달한다. 아래의 27개 사항 중 구약에 관련 내용이 나오는 경우에는 괄호로 밝힌다.

(1) 불필요하거나 어리석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사 58:13).
(2) 어떤 것도 자기 동료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
(3) 재물이나 이득에 관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암 8:5).
(4) 일과 관련된 것들 내지는 그 다음날 해야 할 직무에 관해서 얘기해서는 안 된다.
(5) 들판을 걸어서는 안 된다(사 58:13).
(6) 성읍 밖으로 1천 규빗 이상을 걸어서는 안 된다(사 58:13).
(7) 미리 준비된 것 이외의 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출 16:25-27).
(8) 들판에 버려져 있는 것을 먹어서는 안 되며, 진중에 있는 것을 마셔서도 안 된다.
(9) 목욕하기 위해 내려갈 때 자신이 선 길 위에서 마셔서는 안 된다.
(10) 어떠한 그릇으로도 물을 길어서는 안 된다.
(11) 외국인을 보내어 자신이 안식일에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12) 더러운 옷이나 상자에 있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13) 안식일에 일부러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
(14) 짐승을 방목하기 위해 성읍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2천 규빗 거리는 예외이다(민 35:5).
(15) 손을 들어 주먹으로 짐승을 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완악하다고 자기 집 밖으로 이끌어내서는 안 된다.
(16) 무엇인가를 자기 집 밖으로 또는 밖에서 안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렘 17:21-22).
(17) 봉인된 그릇을 열어서는 안 된다.
(18) 안식일에 밖으로 나가거나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향료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19) 자신의 처소에서 돌이나 먼지 하나라도 들어올려서는 안 된다.
(20) 어느 유모도 안식일에 아기를 데리고서 박으로 나가거나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21) 자신의 남종이나 여종 또는 고용인을 압제해서는 안 된다.
(22) 안식일에 짐승이 새끼 낳는 것을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
(23) 짐승이 우물이나 구덩이에 빠지는 경우에 그것을 안식일에 끄집어내서는 안 된다.
(24) 이방인들 가까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25) 재물이나 이득으로 안식일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암 8:5).
(26) 누군가가 물이 있는 곳이나 저수지에 빠져서 살아있을 경우 그를 사닥다리나 밧줄 또는 다른 도구를 사용하여 이끌어내서는 안 된다.
(27) 안식일에 제단에 무엇을 바쳐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안식일의 희생제사는 예외이다 (레 23:38).

이상의 안식일 규정을 다시 세부 항목으로 분류하자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1. 말하는 것으로부터 쉬라: (1), (4)
2. 노동하는 것으로부터 쉬라: (5), (6), (10), (11), (13)-(23), (26), (27)
3. 경제행위로부터 쉬라: (2), (3), (25)
4. 먹고 마시는 것으로부터 쉬라: (7), (8), (9)
5. 기타: (12), (24)

사실상 위의 세부 항목 분류는 기타 항목을 포함하여, 말하는 것, 경제행위, 먹고 마시는 것 역시 크게 보면 모두 ‘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규칙들 중 일부는 괄호를 통해 밝혀두었듯이 성서본문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일관성 있는 성서해석의 특징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16)번의 ‘무엇인가를 자기 집 밖으로 또는 밖에서 안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는 규칙의 근거 본문인 예레미야의 원문은 “예루살렘 문으로”라는 구를 통해 이 율법은 예루살렘에 국한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는데, 다메섹문서는 이 구를 삭제함으로써, 모든 도시에서 모든 사람에 의해 준수되어야 할 사항으로 확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7)번의 ‘미리 준비된 것 이외의 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의 근거본문인 출애굽기는 광야에서 만나를 걷어 들이는 법칙에 대한 것인데, 다메섹문서는 이 법칙을 안식일에 적용하여 미리 준비된 것 외에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법칙은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이 수용하고 준수하는 안식일 법이다. 다른 측면에서 (6)번의 ‘성읍 밖으로 1천 규빗 이상을 걸어서는 안 된다’라는 규정은 이사야의 본문이 ‘네 발을 금하며...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58:13)라는 규정을 보다 구체화하여 제한 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다메섹문서의 안식일 규정의 가장 큰 부분은 오경에 나타나는 안식일의 노동금지의 원칙을 보다 더 세밀하게 구체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0)번의 ‘어떠한 그릇으로도 물을 길어서는 안 된다,’ (17)번의 ‘봉인된 그릇을 열어서는 안 된다,’ (19)번의 ‘자신의 처소에서 돌이나 먼지 하나라도 들어 올려서는 안 된다,’ (20)번의 ‘어느 유모도 안식일에 아기를 데리고서 박으로 나가거나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와 같은 규정은 금지된 노동의 종류를 보다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한 예이며, 특별히 (19)번의 규정은 쿰란공동체가 ‘노동’으로 여기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예시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노동금지’와 관련한 다메섹문서의 안식일 세칙 중에서 주목할 것은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과 관련한 (23)번과 (26)번의 두 규정이다. 이 두 규정은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의 입을 통해 소개된 바리새파의 관행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12:11). 그런데 다메섹문서에서는 이 바리새파의 관행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안식일 규율을 명하고 있다. 즉, 다메섹문서는 짐승뿐만 아니라 사람의 목숨마저도 안식일에 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쿰란공동체는 바리새파보다 훨씬 더 엄격한 안식일 율법을 명하고, 이를 준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메섹 문서 외에 안식일 법을 다루고 있는 문서는 4Q264a이다. 이 문서 중 다메섹 문서의 안식일 법이 다루고 있지 않는, 추가적으로 안식일 세부규정을 언급하는 4Q264a 제 1단편 1열(frag. 1 col. 1) 부분을 살펴보자.

1. 어느 누구도 천 규빗 이상 자기 성읍 밖으로 출입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도
2. 안식일에 연주하기 위해 악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제사장들, 아론의 아들들은 번제나
3. 안식일 희생 제사를 위한 연주를 하기 위해 악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
4. 어느 누구도 안식일에 자신의 책을 읽기 위해 문서를 취해서는 안 된다.
5. 오직 공중만이 읽기 위해 책을 취하고, 연구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입으로 안식일에 자신의 일을 추구하기 위해 말하면 안 된다. 그는 문제, 일, 재산, 매매, 다음 날의 여행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된다. 그는 관습적인 거룩한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하며 하나님을 축복해야 한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한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도 좋다.

4Q264a는 이미 다메섹문서를 통해서 알려진 천 규빗 이상 거리 여행 금지나, 입을 열어 말할 수 있는 내용의 제한과 같은 안식일 법외에, 다른 어떤 쿰란문서에서도 언급하지 않은 특이한 두 가지 안식일 법을 제시한다. 첫 번째로 이 문서는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악기 연주하는 것을 금지한다(2-3행). 두 번째로 이 문서는 안식일에 개인독서 및 연구를 금한다. 독서와 연구는 오로지 공중을 위한 경우에만 허락된다(4-5행).  
        그렇다면 먼저 쿰란공동체는 왜 안식일에 제사장들의 악기 연주를 금하였는가? 이들의 악기 연주 금지령은 마치 현대의 ‘그리스도의 교회 무악기파’를 연상시킨다. 구약에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레위인들이 제금, 비파, 수금을 연주하는 장면이 분명 나온다(대하 5:11-12). 그런데도 불구하고, 쿰란공동체가 제사장들의 악기 연주를 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쿰란공동체가 안식일에 악기 연주를 금한 것은 음악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 연주를 노동의 일종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즉, 쿰란공동체는 제사장들이 악기를 ‘들어’ ‘연주하는 것’은 아기를 드는 것조차 금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자들도 들어내지 못하도록 하는 광범위한 안식일 노동금지령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쿰란문서는 안식일에 악기 연주를 금하였지만, 안식일 제의를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장려하였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 단락에서 다루고자 한다).  
        두 번째 특이 율법인 안식일에 개인 독서를 금지하는 명령은 다른 쿰란문서에도 나타난다(예: 4Q251 1-2, 4Q421a 2-3 등). 구약이 책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지지하고 격려하였고(예: 수 1:8; 시 1:2), 쿰란문서도 하룻밤의 삼분의 일을 부지런히 책을 읽고 연구하라고 명한 것(1QS 6:7)을 고려한다면, 이 금령은 분명 특이하게 보인다. 노암(Noam)과 큄론(Qimron)은 랍비문헌(미쉬나, 토세프타 등)에도 평행 금령이 있음을 제시하면서, 왜 안식일에 개인 독서를 금했는지 그 이유를 추론해보고자 한다. 이들은 랍비문헌을 통해 개인 독서 금지는 “랍비적 방법인 설교와 반복을 통해 구전 율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추론한다. 그런데 쿰란공동체가 과연 구전 율법과 문서 율법을 구분하였는지, 또 구전 율법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는지 알 수 없으며, 오히려 그들은 구전 율법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노암과 큄론은 쿰란공동체의 개인 독서 금령의 이유는 다른데서 찾아보아야 하고, 그 이유는 공적 독서와 연구에 더욱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거나, 혹은 세속적인 책을 읽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고 제안한다.  

2) 안식일의 정결례

        위에서 쿰란공동체의 안식일 규정을 살펴보면, 그들은 근본적으로 일로부터의 휴식을 기본 규정으로 삼는 오경의 안식일 법을 그대로 따르면서, 오경의 안식일 법을 구체화하며, 확대하여 적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다메섹문서는 안식일에 지켜야 할 노동금지 원칙을 훨씬 더 구체적인 경우들을 세밀하게 예시함으로써 보다 엄격한 준수의 틀을 제시한다. 또한 다메섹문서의 안식일에 지켜야할 ‘노동 금지’에 대한 외적 규정 외에도, 쿰란공동체는 안식일에 특별한 정결례를 치렀던 것 같다. 이들은 안식일을 정결례가 수반되는 제의적 절기로 여겼던 것 같다. 사실 제 2성전시대 유대사회는 일반적으로 안식일에 정결예식을 치렀던 것으로 보인다. 유다스 마카비우스와 그의 군대는 안식일을 맞아 “규례대로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였다”(마카비하 12:38)라고 한다. 이를 미루어 보건데, 제 2성전시대에 안식일 정결례는 이미 일반적인 제의적 관습으로 안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쿰란공동체는 안식일 정결례를 어떻게 치를 것을 규정했는가? 또 제 2성전시대 유대일반과 어떤 다른 점은 없었는가? 먼저 쿰란문서가 규정하는 안식일 정결례에 대해서 살펴보자.
        4Q512(4QRitual of Purification) 문서는 여러 가지 제의적 부정으로부터 정결을 얻기 위한 기도문을 포함한다. 이 문서에서 안식일 전날 밤에 제의적 정결례를 치를 것을 요구하는 제 33+35단편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리고 안식일 축제를 위하여 ... 모든 주간의 안식일들에...축제 그리고...의 네 차례 축제들...수확과 여름의 축제 및 첫 번째 달 초의 축제... 물 속에서 거룩하게 하려고... 그는 송축할 것이요 다음과 같이 말할지니라. 당신은 복되십니다...(1-6열).

이 문서를 통해 쿰란공동체는 안식일에 목욕과 송축 기도문을 수반하는 정결례를 치렀음을 알 수 있다. 4Q251(4QHalakha A) 문서 제 1단편에는 또 다른 정결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안식일에 ...을 욕되게 하며, 안식일에 자기의 육[체]의 순전함을 [더럽히며] 여섯째 날에 ...벌거[벗은] 육체...(6-7열).

4Q251본문은 여러 가지 율법들을 망라하는데, 그 중 안식일에 관한 규정이 나온다. 이미 다메섹 문서를 통해 알려진 노동금지, 여행금지 등과 같은 안식일 법이 여기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안식일과 관련하여 이 문서는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먼저 이 문서는 안식일이 제 육일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제 1단편 7열, “여섯째 날에”). 구약은 안식일이 노동으로부터 쉬는 날이라고 규정하지만, 분명하게 오늘날의 유대인들의 관례처럼 안식일의 시작이 제 육일이라는 것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4Q251 문서는 적어도 제 2성전시대에 안식일은 이미 정해진 날에 지켜지는 제의적 절기였음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4Q512와 4Q251 두 문서의 안식일 정결례를 종합하자면, 안식일의 시작은 제 6일 저녁이며, 공동체의 회원들은 이 날에는 특별한 제의를 통해 스스로를 성결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4Q251 문서의 다른 중요한 규정은 안식일에 ‘육체의 수치(הורע רשב)’를 드러내지 말라는 규정이다. 이 명령에 관해 두어링(Doering)은 두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안식일에 성관계를 금지하는 명령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결례를 통해 ‘육체의 수치’를 제거하라는 명령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해석 가능성 중 쿰란공동체가 의미한 바는 첫 번째의 안식일 성관계 금지법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이런 해석의 가능성은 쿰란공동체가 권위 있는 문서로 여겼던 희년서의 규정과 일치하며, 다른 쿰란규정과도 유사한 규정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입증된다(4QDe 2 i 18-19; CD 11:4-5).. 예를 들어, 성전규정(11QT)는 예루살렘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 내에서 성관계를 금지한다(45:7-10). 아마도 쿰란공동체는 이 규정을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전 유대지역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 4번 동굴에서 발굴된 정결법에 관한 문서 역시 “모든 힘을 다해 그녀는 칠 일 동안 섞이지 말지니라”(4Q274 1 i 5-6)라고 명하고 있다.
        두어링은 쿰란공동체가 출애굽기 19:10; 14-15와 레위기 15:18에 나오는 구약의 두 규정들을 종합하고, 확대하여 해석하고, 적용하였다고 본다. 즉, 먼저 출애굽기에서 십계명을 받기 위한 준비 요건으로 옷을 빨고, 삼일 간 여인으로부터 금욕함으로써 스스로를 성결케 하라는 명령을, 쿰란공동체는 일회적인 시내산 계약사건에 국한시키지 않고, 안식일 정결법으로 확대 적용시킨다. 또한 레위기에서 성관계 후 정결례를 치러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을, 쿰란공동체는 안식일 정결법에 확대 적용시켜, 안식일에 성관계를 갖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이 관점은 오경의 율법을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로 일치시키고, 보다 엄격한 해석을 유도하는 쿰란공동체의 율법 경향성을 고려할 때 타당한 논리로 보인다.              

3) 안식일의 제의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쿰란공동체는 안식일을 제 6일 저녁부터 지키며, 목욕제례하며, 성관계를 갖지 않음으로써 성결한 몸으로 안식일을 지켰다. 그렇다면 쿰란공동체의 안식일 제의는 어떠했을까? 누가복음 1장 10절에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제사장 스가랴가 성전에서 분향할 때, 모든 백성은 밖에서 기도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신약시대의 제의 방식은 이미 신약시대 이전부터 행해졌음이 분명하다. 쿰란공동체는 신약시대 이전에 이미 제사와 송축이 결합된 제의를 안식일에 드렸음을 문서를 통해 밝히고 있다. 쿰란문서는 다른 절기들처럼 안식일에 성서낭독을 하고, 번제와 희생 제의를 드릴 것을 명령한다(4Q421, 4Q264a 1-2). 쿰란공동체는 안식일에 이러한 전통적인 절기를 위한 준수사항 외에도, 위에서 살펴본 4Q512 문서가 규정하는 바대로 정결예식 때에 ‘ךורב’으로 시작하는 송축을 드렸다. 쿰란문서의 보고를 고려한다면, 신구약중간시대에 이미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정결례 이후, 제사와 송축을 포함하는 제의를 드렸음을 알 수 있다.  
        쿰란공동체가 안식일 제의 때 부른 특별한 노래는 ‘안식일의 노래(4QShirSabb, 4Q400–407)’라는 독특한 문서를 통해 알려졌다. ‘안식일의 노래’는 총 13개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고, 학자들은 이 문서를 일 년 중 첫 13번의 안식일에 불린 찬양 모음집이라고 본다. 이 문서는 8개의 사본이 제 4 동굴에서, 1개의 사본이 제 11 동굴에서 발굴되었다. 또한 맛사다에서도 1개의 사본이 발굴되었다. ‘안식일의 노래’라는 제목은 13개 노래의 시작이 “마스킬을 위한 제 O번째 안식일의 희생제사 노래”라는 말로 시작되기 때문에 붙여진 제목이다. 이 문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단락은 심하게 손상된 제 1-5번째 노래로서 천상의 천사 제사장(angelic priesthood)의 임명, 조직, 활동, 찬양에 집중된다. 두 번째 단락인 제 6-8번째 노래는 보다 더 형식적이며 반복적이다. 이 부분은 일곱 순서에 따라 드려지는 천사들의 찬양과 축복이 주된 내용이다. 이중 일곱 번째 노래가 이 단락의 중심이며, 동시에 전체 13개 노래의 절정에 해당한다. 이 일곱 번째 노래는 성소 안쪽과 천상 병거보좌 환상으로 나아가면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고조시킨다. 마지막 단락인 제 9-13번째 노래는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천상성전, 보좌실, 하늘 보좌(메르카바)를 묘사한다. 이 묘사는 바깥 성전으로부터 성소 안쪽으로 점차 나아가고, 메르카바에 앉은 하나님의 영광과 천사 대제사장의 예배에 대한 환상으로 끝맺는다.
        ‘안식일의 노래’는 맨 처음 이 문서가 발견되었을 때 ‘천사들의 예전(Angelic Liturgy)’이라고 불렸을 만큼 천상적 존재인 천사들에 관한 용어와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안식일의 노래’에 나오는 천사, 신적 존재, 천상보좌 등과 같은 표상은 출애굽기, 에스겔, 이사야, 제 1에녹서에서 유래한 영향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안식일의 노래’는 분명 전체적으로 성서적 신화 표상을 사용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이것은 바로 환상이 예언자나 천사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문서는 천상 존재들과 지상의 존재들이 연합하여 하나님을 예배드림을 묘사하는데, 천상과 지상이 상호 대응하는 '이층 구초(two-story structure)'는 다른 쿰란문서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예: 1QS 11:7-8; 4QMa 24:4 등). 이 노래들은 지상의 예배는 천상의 예배를 이상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식일의 노래’는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는 노래를 통해 안식일의 예전적 요소를 강조했다. 대개 서두는 호격(~를 위하여)과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할레루(וללה)’ 문장으로 시작한다. 본문은 13개의 노래가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천사들이 부르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주된 내용이다. 이 찬양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 제의 때 부를 송축의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안식일의 노래’의 절정인 제 7번째 노래의 일부를 살펴보자.

        (30) 훈련 교관을 위하여. 일곱 번째 안식일, 곧 그 달 열여섯 번째 날의 희생제사를 드릴 때 부르는 노래. 모든 지식의 신들 중에서 높임 받은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31)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이 영광의 왕을 찬미하기를 원하노라. 그는 자신의 모든 거룩한 자들을 거룩함으로 거룩케 하시는 분이다...(41) 그런 노래들과 함께 지성소의 모든 [기초들]아 찬양을 드려라 그리고 지극히 높은 처소를 받드는 기둥들과 심지어 성전 구조의 모든 모퉁이들도 찬양을 드려라. (42)...거룩한 성소의 지극히 정결한 궁창을 함께 [찬미]하여라...(4Q403 제 1단편 1열)

이 노래는 희생제사 때 수반되는 송축임을 밝히고 있다. 내용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부름으로 시작하여 찬양의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하고 있다. 모든 백성들과 신들과 왕들과 심지어 성소와 지성소까지 하나님의 거룩성, 창조, 영광, 지식 등을 찬양하도록 재촉한다. ‘안식일의 노래’는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표상하는 병거보좌, 천상성전 예배 등을 묘사하는데로 나아간다. 이를 통하여 안식일 예배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식일의 노래’를 통하여 쿰란공동체가 안식일 제의에 부른 송축은 하나님에게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결론

        안식일 제도의 대원칙은 ‘쉼’에 기초를 두고 있다. 구약시대에 오경의 안식일 법은 노동금지에 집중하였다. 예언서 역시 안식일에 행해지는 노동을 엄격하게 금하였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에 노동을 하여 하나님의 거룩을 범했기에 포로가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예언자들은 안식일 법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제 1-3계명의 외적 표현으로 이해하였다. 즉, 제 1-3계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제 4계명은 인간이 노동을 쉼으로써 안식일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으로 보았다. 예언자들은 인간이 안식일에 온전히 쉼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의무를 다할 수 있다고 보았다. 구약시대의 안식일 법과 개념은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유대사회의 중요한 제도로 확정되었다.
        본 논문은 안식일 법이 제 2성전시대 유대의 한 변방인 쿰란공동체에서 어떻게 구약에서 신약으로 연속하여 제도화되어갔는지를 추적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쿰란문서에 나타난 안식일 제도를 안식일 법, 정결례, 제의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쿰란공동체는 오경의 ‘노동금지’ 원칙을 더욱 세분화하고, 구체화하였으며, 안식일을 다른 주요 절기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정결례를 통해 준비하였으며, 안식일에는 특별한 제의행사를 치렀음을 문서들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쿰란문서에 나타난 안식일 언급은 오경의 안식일 개념이 제 2성전시대에 이미 얼마나 제도화되었는지를 방증해준다. 쿰란문서에 나타난 안식일에 대한 배경지식은 신약시대 예수와 바리새파 간의 안식일 논쟁의 전승사적 위치와 그 논쟁의 엄중성을 이해하기위한 필수적 지식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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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소개)2

혼돈 속에 있는 이주민 선교에 대한 선교학적 진단

                                                                 장성진(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원/선교학)

요약
이 논문은 한국사회전반에 이슈화되어 관심이 집중된 다문화현상에 대하여 다루면서 한국교회의 다문화 선교에 대한 객관적 진단을 목표로 연구된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약 2억만 명 정도가 이주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국 또한 이 ‘이주의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있으며, 전례 없이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진 이주민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부족한 노동인력이나 결혼기피 및 저 출산으로 인한 국제결혼을 목적으로 한국으로 이주하였으며, 이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marginalised)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에 120만 명에 이르는 이들은 이주 노동자, 국제결혼여성, 재외동포, 새터민, 유학생 등으로 분류되며, 각각 이들이 가지는 사회적 정착과 활동은 한국인들에게는 당황과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 관심하였는데, 2007년 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을 계기로 해외선교가 주춤한 가운데 ‘다문화 선교’라는 이름으로 타문화-타종교 선교의 새로운 장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문화 다원주의적 인식과 함께 한국교회 또한 이슬람 포비아에 대한 반응과 배타적이며 동화적 전도방식을 고려한 선교방식 등이 현재 다문화 현상이 나타나는 한국사회에 커다란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본 저자는 현재의 다문화 선교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다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고, 우선 문화다원주의와 다문화주의에 대해 알아보고, 이 틀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이주민 상황 및 이주민 정책을 조사하고 한국교회의 다문화 선교사역, 그리고 기독교 학계의 다문화의 관심 및 연구 등을 조사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본 저자는 요즘 유행되고 있는 다문화가정이나 이슬람에 한국교회가 너무 집중하지 말고, 20여년 노하우가 축척되어있는 이주 노동자 선교를 중심으로 소외된 계층으로 부터의 선교를 이루어야 하며, 이는 한국사회에 탈권력적인 특성을 가진 ‘다문화’의 의미를 살려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이룩하는데 공헌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주제어: 다문화주의, 문화다원주의, 이주민 선교, 한국교회, 선교학, 이주 노동자, 다문화가정


1. 서론

이 논문은 세계적인 이주로 인해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문화다원주의와 다문화주의 사이에서 혼돈을 겪고 있는 실정에서,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혼란을 겪고 있음을 인지하고 이러한 한국사회의 이주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한국교회의 선교에 현실적 인식전환 및 건전한 방안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2006년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총회에 제출한 「이주의 새 시대를 위한 초기 로드맵」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말 이민자는 1990년(1억5천5백만 명)보다 21% 정도 증가하여 약 1억 9100만 명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이주가 세계적인 현상이 된 ‘이주의 시대’에 살게 되었다. 이러한 이주민들의 대부분은 개발도상국 출신들이며, 이주의 이유는 자신들의 노동과 적은 자본으로 경제적 부를 이루거나, 후손들에게 좀 더 나은 경제적이고 사회적 미래를 갖게 하기 위한 것이다. OECD국가에 속하여진 한국은 1990년대말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국가적 경제 위기를 맞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경제적 회복과 급성장, 결혼기피현상, 저 출산문제, 활발한 해외진출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점차 싼 노동력이 필요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경제적 이주 및 국제결혼 이주가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단일민족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한국사회가 갑자기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대상들을 접하고 함께 살아가야만 하게 되었다. 유엔국제이주기구(IOM)에서 조사한 ‘2005년 국제이주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약 200만 명의 외국인노동자와 국제결혼이주민, 피난민, 단기 체류인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고, 법무부의 조사에 따르면, 2007년 8월 단기 체류외국인까지 포함하여 100만 254명이 이주민이라고 보고하고 있으며, 2006년과 비교할 때 15%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제결혼이주자, 이주 노동자, 재외동포, 유학생 등의 형태로 이주민들이 한국사회 속에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이를 한국교회는 좋은 해외선교의 돌파구로 여기게 되었다. 이는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의 피랍사건로 인해 해외선교에 대한 각성과 위축된 선교지원으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한국교회의 전방적, 적극적 선교방식이 비난을 받게 되었고, 그 사건의 충격 및 사회적인 여론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그동안의 선교방식에 대한 각성과 반성을 함께 갖게 되었기에 새로운 형태의 안전하고 가능한 선교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한국사회가 ‘다문화가정’, ‘다문화교육’ 등에 관심을 가지고 정부적 투자는 물론이고, 각종 매체뿐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많은 지원과 결과물들이 나오게 되자 한국교회들, 특히 보수 교단 및 학술 집단들에서도 ‘다문화선교’에 많은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에 본 필자는 다음의 질문을 가지고 ‘다문화’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사회와 이러한 관심을 통해 새로운 선교를 구축하려는 한국교회의 노력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와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1) 한국사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이주민들은 과연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하고 있는가? 아니라면 문화다원주의와 혼동하고 있어 문화인종주의까지 발전할 수 있는 부정적 사회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2) 이주민에 대한 한국교회의 선교사역은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한국사회에 공헌을 하며, 한국 기독교의 긍정적 역할을 확대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답을 찾아나가면서, 이 논문을 필자의 지금까지의 외국인노동자 및 재외동포사역의 경험과 이를 통한  NGO 관련 자료, 정부 자료, 한국여성정책연구소 자료 등의 1차 자료와 함께, 국내외 다문화 및 이주민 관련 자료와 같은 2차 자료를 근거로 구성할 것이다. 그리하여 먼저 다문화 관련하여 가장 세계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문화다원주의’에 대한 정의와 일반적인 현상들을 ‘다문화주의’와 비교 설명하고 한국사회에서 ‘다문화’를 ‘문화다원주의’로 착각하고 나타나는 여러 가지 갈등상황이나 한민족정체성 이슈에 대해 간단히 다루어 볼 것이다. 이러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이러한 사회적 몰이해와 갈등이 바로 한국교회선교에 영향을 주고, 또한 이주민을 어떠한 선교대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전적으로 사회적 인식에 따라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뿐 만 아니라, 종교적인 이슈로, 이슬람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이를 다문화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바로 한국교회 다문화선교에 있어 아이러니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많은 주제들 속에서 이 논문을 통해 답을 찾아보고, 또한 다문화 사회를 결국엔 지향할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 속에 있는 한국교회의 선교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선교지향점을 결론에서 찾아볼 것이다.

2. 본론

1) 문화다원주의 대 다문화주의: 갈등과 오해

문화다원주의란 포스트모던주의 하에서 각 문화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평등한 견지에서 각 문화의 가치, 철학, 사회성, 정치성 등에 대해 인정하는 것을 말하는 반면, 다문화 주의란 여성문화, 소수파문화, 등 여러 유형의 이질적인 문화의 주변문화를 제도권 안으로 수용하자는 입장을 이르는 말로 어떤 공통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편에는 단순히 자유주의적, 다원주의나 세계주의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종, 성별, 성적, 취향에 따르는 급진적 분리주의의 한 형태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다문화주의에는 소수파 또는 주변화된 집단을 위한 정치적 변호라는 강력한 성향이 내재해 있으므로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우선 문화다원주의를 수용 잘 표방한 국가는 미국을 들 수 있다. 미국은 세계각지로 부터 이민과 새로운 환경에서 삶을 시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나라의 정체성이 불확실하였다. 왜냐하면, 오랜 기간 다양한 지역으로부터 이민과 신개척지의 확장을 통해 미국과 미국인이 만들어졌으므로 이 나라와 국민들은 종교적, 인종 민족적, 언어적, 지역적으로 매우 높은 다양성을 보인다. 즉, 국민의 대다수가 자유, 평등, 개인의 행복추구 등의 원칙을 자신을 다른 나라 사람과 구별되는 '미국인'으로 만드는 고유한 특성으로 지적하고 있다. 즉, 미국인들은 일상적으로 혈연, 지연, 종교적 연관 등 과거 민족 국가를 구성하는 어떠한 요소에도 속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미국은 애국심(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문화의 다원성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미국은 이민자들의 문화와 생활방식들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를 조화롭게 운영해 나가고자 많은 정책의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로, 여러 집단이 각각의 고유의 생활방식을 향유하고 각 민족의 성격을 유지할 수 있는 데는 사회적 개혁운동과 법률정비 등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여, 1960년대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관련 기구 개설과 더불어 1960-1970년대 인권운동이 학교개혁운동으로 전개하였으나, 1992년 LA사태 발발 1990년대 이후 이민의 증가로 인해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지게 되자 1950년대 우세했던 ‘용광로 이론(melting pot theory)'라 불렸던 동화주의정책에 대한 변화가 요구되었다. 그 변화는 내용물이 제각각 그 맛을 그대로 보존하는 '샐러드볼 이론'(salad bowl theory)'라는 이름의 문화다원주의정책으로 다양한 이민자들의 문화를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동화주의적 입장에서의 학교개혁과 교육정책이 변화하게 되었는데, 변화된 교육정책의 특징으로는 평등 추구의 개념을 적용,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과정, 사회적 평등 발달 촉진의 사회정의 교육, 세계사회에서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정보제공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문화다원주의정책의 대표적 예라고 볼 수 있고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들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독특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 다원주의는 미국사회에서도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로, 권력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한계이다. 문화다원주의 이념은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재평가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미국사회에 있어서 주류와 비주류, 중심사회와 소수집단사회, 백인과 비백인, 남성과 여성, 자본으로 인한 부자와 빈자 등의 대립관계는 문화적으로 특권을 가진 집단과 열등한 집단이라는 위계적 의미체계를 그대로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 작용에 있어서 문화다원주의 개념은 부가적으로 인종, 민족, 성별, 계급 집단 문화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집단 간의 불평등한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근본적 틀은 만들 수 없다. 둘째로, 집단의 특성을 지닌 자연화(naturalise)할 수 있는 본질주의(essentialism)'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의 집단관은 공유하는 문화의 순수성, 동질성, 또는 일관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집단의 순수성과 동질성의 강조는 동질집단으로서의 일치를 강제하는 경향을 가져오게 하여 집단 내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억압할 수 있다. 그러기에 본질주의에 기인한 집단관은 집단의 차이를 역사로서가 아닌 자연으로 고정화 보편화시키기에 집단 밖에서는 배타적, 차별적 태도를 취하며 집단 내의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서도 억압적 묵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기에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주장하는 문화다원주의 이념은 소수집단의 사회적 목소리를 존중한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나, 이전의 고정적인 문화정치로서의 종적인 권력관계를 지닌 한계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경향으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나는 곳이 바로 오랜 문화 역사를 이어온 영국이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식민지정복과 확장으로 인해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영국연방체(the Commonwealth)’를 구성해 지금까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연결(캐나다, 호주 등)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대거 과거 식민지 국가였던 인도, 이란,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경제적 이유로 많은 이주민이 발생하고 이민 3대, 4대가 지나자 그들만의 민족 및 문화공동체를 형성하여 정치 세력화되자, 이들을 영국사회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표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은 도리어 문제와 갈등을 더욱 크게 야기했다. 서구 사회는 ‘다문화’를 표방하였지만 오랜 식민지 정복역사와 타문화권과의 종속적 관계에 익숙하여진 상태라, 이 ‘다문화’의 목적은 영국문화의 주도로 영국사회 내의 이주민의 사회적 통합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서구사회의 이주민 통합방식은 '문명화'(civilisation)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보았으며,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적용되었기에 심정적으로는 현대의 이 ‘다문화주의’가 그들에게 유럽문화를 중심으로 둔 ‘문화다원주의’와 별다를 바가 없을 지도 모른다. 반면에 ‘다문화주의’ 안에서 이주민들은 영국 사회 내 계층적 차별을 주장하며, 그들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종교문화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며, 이 안에서 그들은 '다르게 평등하게 살기'를 외칠 뿐 아니라 소수집단의 정치성을 확보하고, 문화의 다양성 확보 아래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현지지역의 문화적 배경은 도외시 하면서 인종적․종교적 자체 다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려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러한 이해의 불일치 속에 사회적 갈등과 조율을 반복되면서 각종 이주민에 대한 관련 사건들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다. 2005년 10월 27일 저소득층 거주지인 파리 북동쪽 외곽마을 클리시수 부아에서 아프리카와 아랍계 저소득층 이민자들 프랑스의 아랍계 이주민들의 폭동, 2008년 2월, 영국사회에서 이슬람의 관습법인 샤리아법(Sharīah)의 수용여부의 문제, 그 이전에 수없이 작고 크게 일어나는 서구사회를 향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사건들 등이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이러한 다문화주의 근본 틀은 기존의 권력구도에서 벗어난 탈중심화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엘리트위주, 주류위주의 권력으로 성립되는 사회로서의 기존관념에서 벗어나 소수라 불리지만 다수며, 사회의 기본생산구조와 동력으로 구성되는 권력으로 성립되는 사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인종, 민족만을 중심축이 아닌 성별, 계급, 분파주의 그 밖의 사회적 속성의 횡적인 측면에서 복잡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며,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되는 사회가 바로 권력구조의 힘의 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 체제 하에서의 다문화주의뿐 아니라 문화 상대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둘째로, 주체형성에 있어 다양한 배경, 즉, 역사, 언어, 문화의 각종 카테고리에서 구분되어지는 민족성(ethnicity)의 개념을 이끌어낼 수 있고, 한 민족의 중요성도 강조할 뿐 아니라 한 개인의 주위에서 경험되는 복수의 사회 집단(인종, 민족, 성별, 사회계층, 종교, 연령 등)에 소속되고 이와 소통하는 이점이 발생될 수 있다. 셋째로 다문화주의는 본질주의를 반대하고 혼혈성(hybridity)를 기초로 한 다문화 속에 더불어 사는 사회의 의사소통을 예상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킴리카(W. Kymlica)가 말한 것처럼 다문화주의는 한 사회내의 여러 공동체, 특히 소수 공동체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선택의 자유가치를 최대한 보존하는 방법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주민 문화에 대한 연구에 있어 현실적으로 ‘문화다원주의’보다는 ‘다문화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회 대부분은 이미 기존문화를 형성하고 정착하고 있는 주류계층이 장악하고 있고, ‘문화다원주의’의 이론처럼 주류문화와 비주류문화가 평등한 가치를 가지며 사회에서 동등한 평가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문화다원주의가 문화적 개별성을 뚜렷이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표면화되기에 ‘문화인종주의’로 발전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최근 다문화관련 논문들을 발표한 각 분야의 학자들은 서구사회에 나타나는 갈등들을 주목하고 ‘문화다원주의’보다는 비주류문화나 주변이질문화를 제도권에서 인정하고 주류로의 위치와 가깝게 하는 ‘다문화주의’를 지지하면서, 한국사회의 진정한 ‘다문화사회’로의 전환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러한 요구와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이주민들은 이에 대한 인식을 한국사회의 한국인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알아보자.  

2) 다문화 시민?: 한국사회의 다문화 현실

2006년 초 한국은 하인즈 워드(Hines Ward)라는 한인혼혈출신이 미국 풋볼 선수의 방한으로 뜨거웠다. 그의 방한으로 혼혈아와 관련된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2020년이면 다문화가정이 증가하여 한국에 혼혈아가 160만 명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2009년도에는 초중고교의 교과과정 중에 단일민족에 대한 강조보다 다인종 다문화 수용 인정하는 쪽으로 교과내용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정부에서는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방문취업비자로 들어올 재외동포(중국, 러시아출신)가 2007년 50여만으로 법무부에서 발표한 것도 고려될 만한 사실이다. 그래서 2020년엔 다문화가정출신 아이들을 위한 대학진학을 위한 특별 전형제도나 정치계에서의 비례대표 공천 때 당선권 이내에 혼혈출신을 몇 명이상 포함시키는 제도 등을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말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한국사회는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커다란 사회적 변화의 파도 앞에 직면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재외동포, 새터민, 유학생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 이주민들은 이제 단일적으로 운영되어왔던 한국사회가 이제 고령화 및 독거노인증가, 독신주의 팽배와 저출산 문제, 노동인구의 극한 감소, 급속한 산업화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점에 대한 필수불가결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대안으로 나타난 이주민들은 부조리한 조건에서 한국사회의 소외된 계층으로 나타나며, 2009년에 들어와서 120여만이 넘어서면서 빈익빈 부익부라는 사회경제적 현상과 맞물려,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팔거나, 저소득층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자리로 점점 확고히 매김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점점 게토화(ghetto)되어 가면서 외국의 차이나타운이나, 소호(일본인집단지역)같은 타운들이 안산의 월곡동, 구로구의 가리봉동 등에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다문화가정의 증가도 괄목할 만한 것인데, 국제 결혼한 남성 수가 2004년 19,214명에서 2006년 30,208명으로, 국제결혼이 한국결혼인구의 8.4%에서 11.9%로 증가하여 다문화가정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급속한 한국경제의 발전 및 산업화로 발전한 한국사회가 IMF 등 한 두 차례의 경제위기 및 국제사회에서의 무역에서 경쟁력약화 등의 문제를 값싼 노동력인 외국인노동자로 해결하였고, 결혼기피 및 저출산, 고령화문제로 인한 인구감소의 문제를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가정으로 대안을 마련한 긍정적 결과도 낳았지만, 반면에 부정적 결과도 생기게 되었다.
이주민 출신의 범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1년에 4천3백28건이던 외국인 범죄는 2008년에는 약 다섯 배가 늘어난 2만6백23건이 되었다. 범죄자 유형도 지난해까지는 문서 위조, 여권 위·변조, 불법 출입국 알선 등의 지능범이 다수를 차지했으나, 2009년 올해(8월 말 기준)는 폭력범(3천4백77명)이 지능범(3천4백41명)을 상회하면서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 사건이 늘어나는 형국이다. 외국인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서울, 경기, 인천, 경남, 부산 순이며, 이곳에서 약 79.2%가 일어났다. 이러한 범죄들은 게토화된 지역을 중심으로 외국인 범죄자들이 활동하거나 본국의 범죄 집단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한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국제범죄단들도 비일비재하게 생겨나는 행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렇듯, 이주민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은 한국사회의 곳곳에서, 즉, 긍정적인 면 뿐 만아니라 부정적인 면에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정부는 이주민의 정착과 이로 인한 한국사회의 안정된 발전을 위해 다음과 같은 다문화정책을 현재 펼치고 있다. 2006년부터 ‘여성결혼이민자 가족 및 혼혈인 이주자 사회통합지원방안’, ‘다문화가정 교육지원 대책’, ‘외국인 정책 기본방향 및 추진체계’ 등의 이주민관련정책을 등장시키고, 2007년부터 관련법이 제정하기 시작하였을 뿐 아니라, 행정자치부가 2006년에 ‘거주 외국인지원표준 조례안’을 제시하고 법무부는 2007년에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을 제정하여 외국인과 다문화정책 전반에 관한 기본법적은 토대를 마련하였다. 또한 보건복지가족부는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을, 교육과학기술부는 ‘다문화 가정 자녀교육지원대책’,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작지원법’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정책들을 분석하여 보면, 단일민족의식을 기반으로 한 동화주의 정책방식을 탈피하고자 노력하면서 이주민의 증가와 함께 가시화된 문화다양성 자체를 다문화사회의 기본 요소로 인정하고 기존의 질서를 전제로 한 사회질서의 회복대신 다양한 문화의 교류와 상호 이해를 기반으로 한 창조적 공동체를 비전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민들이 이러한 정부정책들에 대한 반응은 아주 긍정적이지 않다.  2008년 4월 7일-5월 18일동안 전국 20세 이상 이주노동자 및 결혼이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8 이주민문화향수실태조사”의 결과를 보면 “한국정부는 다문화와 이주민에 대한 정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 이주민들은 ‘그렇지 않다/부정’이 34.0%(전혀 그렇지 않다 4.1%+거의 그렇지 않다 29.9%)로 ‘그렇다/긍정’이 30.7%(매우 그렇다 9.2%+약간 그렇다 21.5%)보다 약간 많았다. ‘보통이다’는 의견은 35.2%였고, 5점 만점(매우 그렇다)으로 환산하면 평균 3.02점이었다. 이렇게 이주민들이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한국사회 정착하고 동화될 가능성이 많은 이주민에 대한 적극적 지원만하는 한국정부의 정책과 한국사회의 인식 및 포용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2008년 통계로 이주민의 약 17%에 해당하지 않는 다문화가정(국제결혼이주자가정)을 위한 지원은 다양하고 적극적이고, 최근 1만여명을 넘은 새터민, 즉, 북한에서 이주한 이들에 대한 지원도 아주 긍정적으로 대처하며 여러 가지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 및 재외동포, 특히 공산권 이주민에 대해서는 노동 및 고용 측면에서만 정책들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이면에는 이주민 수용에 대한 한국사회의 보이지 않은 공포가 존재한다고 예측할 수 있다. 국제결혼이주나 새터민에 대해 수용적이 이유는 이들은 어차피 한국사회에 종속적으로나마 정착, 한국문화에 동화되어갈 수밖에 없고 동화되도록 도와줘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에 관련된 캠페인들을 보면, 실제로 한국에 거주하는 세 명의 동남아시아 여성들을 담으면서 “김치를 정말 좋아하는 한국인”, “한강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한국인”, “한국의 아기를 낳은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비록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이제는 한국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커서 군대에 가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당당한 한국인이 될 것이다.”라는 식의 광고들은 바로 이러한 현상들을 반영하는 것이라 보겠다. 더더군다나,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들에게는 한민족이라는 뿌리와 북한정부체제에 반대하고 목숨을 걸고 탈출하였다는 배경이 바로 한국사회의 보수 세력조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싼 노동력으로 여겨지는 이주 노동자와 공산권 이주민들은 사회전반에 있어 ‘필요악’적인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고 꼭 필요한 존재들이기는 하나 한국의 젊은이들이나 실직자들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리하여 저소득 일용직이나 중소기업 사업장에서 한국 노동자들 보다 이주 노동자들을 고용을 선호하여 3D업종을 회피하는 실업자들의 인식과 함께 한국의 330만 실업의 문제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뿐 만 아니라 이러한 한국사회의 인식과 행태들은 이주민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80%정도를 차지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운영, 종교, 경제, 문화 등을 타운을 형성하여 운영하는 게토화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거의 주요 도시마다 이주민 타운들을 볼 수 있다 서울지역의 구로, 금천 지역뿐 아니라 안산, 인천, 부산, 광주 등,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농촌에 집중된 것이 아닌 도시들에서 민족 문화적(ethnic-cultural) 타운을 형성하며 정치 집단화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이는 주류사회인 한국사회가 동화주의 및 문화 다원주의적 현상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주민조차 스스로 한국사회와 경계를 짓고 자신들을 보호하고 한국 땅에서 그들 방식의 정착을 하기 위해 문화 다원주의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다문화에 대한 인식과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상황들, 그리고 각 정부부처의 구체적인 정책 및 실행들, 이에 대한 이주민들의 반응들 속에서 한국교회가 다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해외선교 뿐 아니라 타문화권 선교에 대한 수정 및 발전된 선교로 다문화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다양한 개신교계통 이주민 선교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다문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정확히 분석하고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또한 어떠한 전략을 형성하고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진단해 보기로 하겠다.    

3) 타문화권선교의 기회?: 다문화의 허구 속에서 한국교회 이주민 선교

(1) 한국기독교의 다문화 선교 상황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은 더 이상 전쟁과 빈곤의 나라가 아닌 당당한 경제국가로서의 면모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이에 주변 아시아 국가는 물론이고 공산권 국가 등 저개발국가에서 값싼 노동력을 팔러 온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을 가지고 점차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많은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나타났지만, 이를 더 이상 범죄로만 치부하기에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경제발전에 있어 값싼 노동력이 결정적 요인인데, 이미 한국은 값싼 노동력을 자체적으로 수급하기에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92년 4월 정부는 외국인이 불법으로 체류하며, 생산현장에 취업하고 있는 것을 한국 내 노동력 부족으로 빚어지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여 그 해 6~7월 불법체류 노동자 신고기간을 두어, 이에 61,121명의 외국인이 신고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신고기간을 두어 불법체류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결국 1993년 11월 24일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조정협의회를 열고, 산업연수생의 정원을 2만 명을 증원함으로 3D업종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체들의 인력난을 해소하는데 역점을 두게 되었다. 이렇게 이주 노동자의 이슈가 표면화되자 점차 노동인권선교가 이주 노동자 선교로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이주 노동자 선교는 기존 노동선교를 기반으로 생겨났으며 소규모지만 다양한 단체의 활동들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이문식 목사는 희년선교회를 설립하여 1992년 7월부터 구로공단지역의 필리핀 노동자 중심으로 영어예배를 개설하여 이주 노동자 기독교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적 문제들, 즉, 노동환경 속에서 차별 및 폭력에 관한 노동인권문제, 산업재해 및 열악한 의료상황에 대한 의료문제에 대한 상담을 시작하였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1992년 7월 1일 감리교 지인식 목사는 재한 외국인 선교교회를 설립하여 최초로 다민족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예배공간을 마련하였다. 이뿐 아니라 조선족 노동자들을 위한 사역은 1991년 초부터 ‘중국동포선교협의회’를 설립하여 전통적인 복음전도형식으로 대중 집회, 부흥회, 양육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조선족 노동자들의 한국교회정착을 도왔으며, 신림동에 ‘사랑의 집’이라는 쉼터를 운영하여 조선족 노동자들의 기독교신앙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외에도 성남 외국인재외동포교회의 김해성목사, 성공회 성생원교회의 이정호신부, 갈릴리교회의 인명진목사 등도 1990년대 초중반부터 이주 노동자 선교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사역하게 된 케이스들이다.
이렇듯, 다양하고 많은 선교단체들이 생겨나자, 불공정한 정부정책에 항거하고 증가하는 이주민에 대한 대처 등 각 단체들간의 네트워크형성이 필요하게 되자, 보수주의권과 진보주의권에서 각각 세미나를 마련하여 정보 및 경험교환을 나누면서 연대를 형성하였다. 첫째로, 복음주주의권에서는 1993년 3월 5일 남서울 교회에서 최초로 연합모임이 희년선교회 주관으로 열렸다. 여기서 보수주의권 선교학자인 전호진 박사를 초청하여 선교학적 이론을 발제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주 노동자 선교 경험에 대한 발제는 각 활동가들이 발제하였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현황과 선교과제’는 이문식 목사가, ‘중국동포사역’에 대해서는 강철민 목사, ‘이슬람사역’에 대해서는 이득수 간사, ‘공단지역에서의 총체적 선교사역’에 대해서는 강명규 간사 등 여러 활동가들의 선교적 경험과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반면에 진보주의권도 이러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1993년 3월 19일 한국교회 백주년 기념관에서 ‘한국교회 노동자선교회’ 주최로 '외국인 노동자선교정책협의회'모임을 하게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한국교회의 선교적 과제’라는 제목으로 인명진 목사의 주제발표와 성생원 교회, 희년선교회, 재한외국인 교회의 사례발표가 있었다. 또한 종합토의시간에 복음주의 단체나 진보주의 단체를 떠나 이주 노동자 선교문제는 함께 풀어가자는 제의가 있었고 이에 협의회 모임을 재구성하기로 합의하여 외국인노동자선교협의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에 그해, 7월 2일 이주 노동자 선교를 위한 연합모임을 갈릴리교회에서 개최, 한국교회 이주 노동자 선교 협의회를 창립하고 공동의장으로 인명진 목사, 이만열 장로를 추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끝나지 않고 이주 노동자 선교는 나날이 발전하여 많은 공식적이고 적극적인 협의회들이 생겨나게 되어서, 1994년 12월 인천지역 ‘외국인노동자 선교협의회’가 창립하는 등 전국적으로 1995년에는 약 40개의 이주 노동자 선교사역단체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사역은 한국교회 내에서 아주 소수에 불가하고 민중노동운동과의 연계성으로 인해 정부의 견제와 감시 속에서 급진적 성향을 소유한다는 시각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이주 노동자선교를 다른 방향으로 보게 된 계기가 생겼는데, 다음 두 가지의 이유에서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첫째로, 2007년 아프카니스탄에서 일어난 샘물교회 선교단의 피랍 사건 이후 해외선교에 대한 공포와 함께 한국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부정적 인식과  안티 기독교를 외치는 네티즌들의 여론들이 한국교회에는 커다란 부담이 되었다. 이에 한국교회는 다른 종교 및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이주민들의 선교에 관심하게 되었다. 2007년부터 시작된 교회연합체들의 이벤트성 선교활동은 한국기독교에 대한 이미지 개선 및 효과적인 복음화에 대한 관심과 기대로부터 시작되었다. 2007년 7월 8일 상암 경기장에서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여 '교회를 새롭게 민족에 희망을'이라는 주제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 한국교회연합을위한 교단장협의회(교단장협)를 주축으로 국내 주요 교단이 대부분 참여한 연합행사나 그 해 11월에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이 발안의 한 중국인교회에 불법체류자검거를 목적으로 침입한 사건에 대하여 한기총과 교회협, '외국인 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도 27일 오전 11시 종로5가 기독교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법무부의 과잉 단속 행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사실을 통해 보수진보를 떠나 이주 노동자에 대한 선교의 필요를 한국교계가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뿐 아니라 일반교회들 또한 관심을 보였는데, 한국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중대형 교회 목사들 즉, 영락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제자교회, 종교교회, 은평성결교회 등 개신교 10개 교단 중대형 교회 목사 120여명이 사회의 낮고 그늘진 현장으로 직접 나아가 봉사활동을 전개하겠다며 ‘한국교회희망연대(한희연)’를 조직하여 12월 23일 서울시의 한 체육관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 다문화 가정, 중국동포 등 모두 6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성탄 예배를 열고, 참가자들에게 방한용 점퍼, 생필품 등을 나눠주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 다음해 초반에 열린 ‘제2회 이주민 희망축제'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희망연대가 함께 준비한 ‘2008 외국인 노동자·중국동포 희망축제’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어 이주 노동자들을 6천여명을 동원, 방한복 등 생필품을 무료로 제공하고 이주관련 법무부 설명회도 열어주는 등, 실질적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구체적 사역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2009년 1월 4일에는 한희연과 한기총, 교회협이 함께 ‘제2회 이주민 희망축제’를 열어, ‘선교협약식’을 맺어 한국교회와 이주민들에 대한 선교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하였다.
둘째, 이슬람이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유입되어 급속도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한국교계는 충격을 받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통계에 따르면 2008년 8월 국내에 거주하는 113만3874명의 외국인 중 이슬람은 15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이 11만4790명이었던 것에 비해 크게 증가된 숫자다. 2년 만에 특정 종교의 외국인이 3만5000명이 유입된 것은 유례가 없는 현상이다. 이러한 이슬람 노동자들의 증가로 서울중앙성원을 비롯해 부산, 광주, 안양, 안산 성원과 대구, 광주, 포천, 제주, 대전센터 등 모두 13곳에 이슬람 예배처가 마련되고 있다. 이러한 예배처마다 많게는 300여명, 적게는 20여명씩 모이고 있는 상황일 뿐 아니라, 각 지역에 크고 작은 기도처들이 3000여개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슬람교중앙회측은 향후 10∼20곳의 예배처 추가 건립 구상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곳에서 이슬람은 이주한 모슬림들에게 모든 일자리, 숙식, 예배, 교육, 복지까지 제공하고  보살핌과 관리를 철저히 해주며, 한국사회에서 겪는 고통과 충격을 완화해주며 주체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움직임에 한국 교계는 긴장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복음주의 계통에서는 민감하게 더욱 반응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선교는 신학계에 있어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중점적으로 관심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으로 인한 연구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2) 이주민을 향한 복음화의 신학적 견해들

최근에 신학계에서는 선교학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다문화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총신대 교회선교연구소 주최로 ‘다문화 사회, 선교적 접근 - 개혁주의 관점에서’란 주제로 열리는 심포지엄은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바른 선교적 접근을 모색하기 위해 정기학술대회를 가졌다. 이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학회는 ‘문화를 통한 세계와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12개 지학회의 2천여 명의 신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25편의 논문이 발표하였는데 특히, 연구논문 주제 대부분이 다문화 시대를 맞이한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 논의하고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또한 한국기독교교육협의회에서는 ‘이주민 인권보호와 기독교교육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열어 활동가들을 초청하여 발제하게 하여 기독교 교육과 현장의 연결을 시도하려하였다. 발제자 중의 한 명인 한국염 목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다문화사회의 정의는 다문화의 담지자들이 모든 생활영역에서 인종적, 민족적, 성적, 문화적 차별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라며 “다문화 담지자인 이주민의 인권보호 자체가 다문화사회 기독교교육의 과제”라고 밝히기도 하면서 현실적 참여를 자극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문화 단체들과 학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하는 학회도 나타났다. 선교복지학회는 경기도 포천 다문화가정지원센터, 인천 남동공단과 안산 시화공단의 외국인선교센터 등을 거점으로 삼아 선교단체들의 네트워킹에 주력할 예정이며, 학회와 현장을 연계해 효율성을 기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관심이 선교학계에서는 더욱 뜨거웠다. 한국선교학회 및 한국복음주의선교학회는 ‘다문화사회와 선교’라는 특집 학회지를 발간한다던지, 2008년부터 ‘이슬람포럼’을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다문화 선교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다문화와 관련한 현상과 선교에 있어서 다양한 의견과 대책이 나타나게 되었다. 처음 신학자들은 디아코니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재외동포나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황홍렬은 “한국기독교의 디아코니아 사례와 선교 신학적 의의”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다문화공동체를 통한 새로운 교회형태가 있음을 소개하였다. ‘국경없는 마을’(박천응 목사)의 예를 소개하면서 이주민을 이웃으로 여기는 의식개혁운동,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주민운동, 권력과 돈에 의해 만들어진 차별적 사회구조를 변혁시키는 사회실천운동 뿐 아니라 다문화공동체를 열어가는 문화운동, 참여민주주의 공동체를 열어가는 정치운동, 이주 노동자 창업 협동조합 등을 통한 경제운동이 다문화 교회 형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한국기독교의 대안적 공동체 중의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한국사회의 증가하는 다문화 관심에 따라 선교학계는 바로 반응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장훈태는 “다문화 사회와 교회의 선교적 대응”에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선교에 좀 더 관심하면서 이주노동자, 국제결혼가정, 새터민, 코시안 등이 미래한국사회의 주요한 구성원이 될 수 있으나, 자칫하면 소외계층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있어 다문화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은 포용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 마음으로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교육적 과제를 감당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또한 조귀삼은 다문화 이주자 복지를 통한 가정 복음화를 주장하면서, 교회가 해야 할 복지 분야를 다음 네 가지로 설명하였다: ① 한글학교 운영을 통한 적응력 향상이 필요하다. ② 자녀교육의 지원전략이 필요하다. ③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기술교육을 시켜주어야 한다. ④ 가정단위의 복음화를 실현하여야 한다.  
전반적 다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구체화되어, 선교학계는 다문화를 통한 이슬람의 유입과 한국 내 활동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과 대응 선교전략들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배경은 한국기독교계가 이슬람의 적극적 포교에 긴장하고 있기




(New)신학사상 2010년 가을호(150집) 차례
신학사상 2010년 봄호(148집)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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