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소개
 
 
연구소 약사
 
 
연구소 소식
 
 
민중신학 자료
 
 
독자마당
 
 
월간살림
 
 
신학사상
 
 
신간안내
 
 
도서신청
 
 
관련 사이트 링크
 
 
안병무 선생님
 
신학사상 총목차 연구논문 투고규정 안내 신학사상 원문서비스


  한신연 
 신학사상 2009년 봄호(144집) 차례


이번 호에는

구약학에서 감신대 김종길 외래교수의 “칭의론과 그리스도의 믿음― 갈라디아서 2:15-21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게재하였는데, 김 교수는 칭의론을 사회-수사학 비평(socio-rhetorical criticism)의 새로운 관점으로 연구하였다. 김 교수는 칭의론을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의미를 넘어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로 파악한다. 칭의를 해방을 가져오는 그리스도 사건으로 보고 에큐메니칼 운동과 하느님 선교의 차원에서 바울의 칭의론을 재해석하였다.

조직신학분야에서는  네편의 논문을 게재하였는데, 먼저 장윤재 이화여대교수는 “북미 신보수주의 신학 탐구- 맥스 스텍하우스의 ‘공공의 신학’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미국 기업들을 위한 신보수적 경제 신학인 ‘공공의 신학’의 초상황적 ․ 초문화적 ․ 초역사적 규범이 허울뿐인 초월로 귀결되었음을 비판한다.
류장현 한신대 교수는 “죽재 서남동의 교회론과 민중선교”의 논문을 통해 오늘의 새로운 과제인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담당할 민중교회의 본질과 선교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하였다.  최영 박사는 “개혁교회의 실제적 교의”라는 논문에서 초기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에 나타난 개혁교회의 실제적 교리를 재고찰하여 개혁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최대광 박사의 “기독교의 관용과 신비적 체험을 향한 영성 다원주의: 신중심의 종교다원주의를 넘어”라는 논문은 서구기독교의 극단적인 교리적 비관용적 태도를 비판하고 ‘신’과 종교의 위치에 "신비적 체험" 곧 "영성"을 대입하여 "신비적 체험을 향한 영성 다원주의"를 제시한다. 영성의 영역에 다가서면 설수록, 다원주의적 가능성은 열리게 되고, 멀어지면 질수록 배타적이 된다는 결론이다.

사회윤리학분야에서 한신대 강원돈 교수는 “독일의 사회복지 체계에서 교회복지와 국가복지의 연계 원칙과 그 법제화”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교회의 복지기관들이 개교회적 차원을 넘어 사회, 국가적 복지 서비스를 법제화하고 제도화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종교사회학분야에서 이철 숭실대 교수는 “숭례문 전소 사건의 사회통합적 힘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연구”라는 논문에서 숭례문 전소사건이 사회통합에 미친 영향과 그 과정에 대한 탐구를 종교사회학적으로 분석하였다.

교회사분야에서 오광석 박사는 “독일 급진 경건주의자들과 존 웨슬리”라는 논문에서 존 웨슬리에 영향을 미친 독일 급진 경건주의자들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기독교교육학분야에서 임희숙 한일장신대 연구교수는 “현대의 가족 변화에 대한 기독교 근본주의의 대응에 대한 성 인지적 비교 연구: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현대의 가족 변화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의 대응이 가부장적 질서를 옹호하려는 급진화된 전통주의와 사회문화적 보수주의에 입각한 일종의 저항 전략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비판적 문제 제시를 하였다.
목회상담학분야에서 이정기 서울신대교수는 “存在와 幸福- 목회상담학적 접근”이란 논문에서 기독자가 추구하는 행복은 예수그리스도안의 새로운 존재와 더불어 가능하며, 행복의 제 요소를 <사랑> <자유> 그리고 <자기실현>으로 제시하고 이 요소들을 목회 상담학적 관점에서 조명하였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멀지않고, 추운 겨울은 봄을 잉태한다고 하는데, 이런 자연의 이치와 달리 우리사회의 어둠과 추위는 먼동이 틀, 봄이 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용산 철거민 참사에서, 그리고 그 결과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현 정부의 비인간적이고 부정의함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정부의 재개발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나? 개발업자와 건물주와 지주를 위한 것인가? 정부가 이들의 이익만을 보장한다면 정부가 아니라 개발업자주식회사에 불과한 것이다. 재개발 정책에서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과정에서 불이익당하고 희생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용산 참사에서 우리를 새삼 놀라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은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집권 여당의 눈에는 세입자들, 재개발에서 밀려나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십 억, 수백 억을 가지고도 한 번도 남을 위해 봉사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후원에 참여한 일이 없는 ‘강부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이 결국 정부가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가난한 사람들을 쫓아내고 죽게 한 것이다.
시중에 이명박 대통령이 ‘4수’에 걸렸는데, 그 중 ‘2수’는 물러나고 이제 ‘2수’가 남았는데 그 중 한수가 ‘예수’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집권 2년차인데, 국민들은 이제라도 정말 잘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국민들의 소망이 절망이 안 되도록 대통령이, 교회가 해야 할 책임이 무겁다.    



차례 (144집)              

   연구 논문
   김종길 ․ 칭의론과 그리스도의 믿음― 갈라디아서 2:15-21을 중심으로
   장윤재 ․ 북미 신보수주의 신학 탐구- 맥스 스텍하우스의 ‘공공의 신학’을 중심으로
   류장현 ․ 죽재 서남동의 교회론과 민중선교
   최    영 ․ 개혁교회의 실제적 교의
   최대광 ․ 기독교의 관용과 신비적 체험을 향한 영성 다원주의:
                신중심의 종교다원주의를 넘어
   강원돈 ․ 독일의 사회복지 체계에서 교회복지와 국가복지의 연계 원칙과 그 법제화
   이   철 ․ 숭례문 전소 사건의 사회통합적 힘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연구
   오광석 ․ 독일 급진 경건주의자들과 존 웨슬리        
   임희숙 ․ 현대의 가족 변화에 대한 기독교 근본주의의 대응에 대한 성 인지적 비교 연구: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이정기 ․ 存在와 幸福- 목회상담학적 접근

========================================================================================
(논문 소개)1

숭례문 전소 사건의 사회통합적 힘 대한 종교사회학적 연구*
A Study on the Destruction by Fire of Sungnyemun and its Role of Social Integration

                                                                                    이 철(Chull Lee)
                                                                                    숭실대학교 조교수: 종교사회학

국문초록:
  본 연구는 숭례문 전소사건이 사회통합에 미친 영향과 그 과정에 대한 탐구이다. 2008년 2월에 발생한 이 사건으로 인해 숭례문은-적어도 일시적으로-당시 한국사회의 하나의 ‘토템’이 되었으며, 이 토템에 대한 구성원들의 숭배는 이들을 ‘토템 공동체’로 변모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뒤르켐의 논리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실제로 숭배를 받은 것은 숭례문이라는 토템이 아니고 그 토템이 상징하는 한국 사회 혹은 민족이었다. 사회 구성원들은 이 토템 숭배를 통해 한국 사회 혹은 민족을 숭배한 것이고 그것들의 중요성과 우위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은 국가나 민족을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사회는 개인을 구속하고 개인들은 공동체에 종속되는 결과를 갖게 된다.

ABSTRACT: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destruction of Sungnyemun, which was burned down in Feb., 2008, to find out its integrative role for Korean society. After the blaze, Sungnyemun turned to at least temporarily-to use Emile Durkheim's term-a totem for the society, and those who cherished and worshipped Sungnyemun became a totemic community. According to Emile Durkheim's theory on religion, the object that was in effect worshiped by the people was not the totem(Sungnyemun) but the society or the nation that the totem symbolized. In other words, while they worshiped the totem, they practically worshiped the nation. In so doing, the nation or society was perceived as an object superior to the people, people subordinated themselves to society, and society was re-integrated.

주제어: 숭례문, 종교사회학, 문화사회학, 에밀 뒤르켐, 사회 통합, 사회 종속
key words: Sungnyemun, Sociology of Religion, Cultural Sociology, Emile Durkheim,              social integration, social subordination



1. 들어가는 말

  본 연구는 숭례문 전소사건이 사회 통합 및 사회 구성원들에 미친 영향과 그 과정에 대한 탐구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의 관점에 근거하여 논문의 주제에 접근한다. 특히 뒤르켐의 이론을 취합해서 발전시킨 문화사회학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연구한다. 이 연구를 통하여 본 논문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2008년 2월에 발생한 이 사건으로 인해 숭례문은-적어도 일시적으로-당시 한국사회의 하나의 ‘토템’이 되었으며, 이 토템에 대한 구성원들의 숭배는 이들을 ‘토템 공동체’로 변모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뒤르켐의 논리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실제로 숭배를 받은 것은 숭례문이라는 토템이 아니고 그 토템이 상징하는 한국 사회 혹은 민족이었다. 사회 구성원들은 이 토템 숭배를 통해 한국 사회 혹은 민족을 숭배한 것이고 그것들의 중요성과 우위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은 국가나 민족을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사회는 개인을 구속하고 개인들은 공동체에 종속되는 결과를 갖게 된다.
  논문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2장은 방법론에 대한 탐색시도로, 본 논문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뒤르켐 및 뒤르켐주의 문화사회학에 대해 살펴본다. 3장에서 본 주제인 남대문 전소사건을 분석한다. 4장은 이 연구가 종교사회학 및 기독교 일반 학문에 대해 갖는 함의를 다루어 본다. 5장은 결론이다.
  본 연구 주제에 대한 기존연구사를 살펴보면, 현재까지 숭례문 전소사건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문화사회학적 접근 역시 발견되지 않는다. 숭례문 사건이 가지는 사회적 파장을 감안해볼 때 의외의 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 시기적으로 볼 때 조만간 관련 연구들의 게제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가 숭례문 전소사건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물론, 특별히 문화사회학적인 연구를 촉발시키는 논문이 되기를 기대한다.
  
2. 이론적 배경: 뒤르켐주의 문화사회학

  뒤르켐의 주요 관심중 하나가 사회 통합 및 유지이다. 그는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문의하였고, 이에 대한 답을 토템을 숭배하는 호주의 아룬타 부족 공동체에서 찾아내었다. 아룬타 부족에게 토템은 성스러운 대상이다. 그런데 뒤르켐이 발견한 흥미로운 것은 토템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또는 내재적으로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성스러움의 객관적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객관적으로 볼 때 전혀 성스럽지 않은 쥐, 개구리, 오리 등이 그 부족에게 성스러운 토템으로 숭배 받고 있는 것이다. 성스러움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 한 집단에게 귀속되는 주관적 인식과 경험의 결과이다. 그래서 한 개인, 집단에게 성스러운 것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상의 언급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사물과 추상적 개념은 성스러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숭례문도 예외가 아니다.
  한편, 뒤르켐은 성스러운 토템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의례에 주목하였다. 그는 이 토템 예식 안에서 부족원들이 함께 집합표현, 집합 흥분, 집합의식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런 집합 행위를 통하여 개개 구성원들은 개인의식을 넘어 공동체 의식을 다시 함양하게 되고, 자신보다 공동체를 더 귀중하게 여기게 되며, 결국 공동체의 명령이나 요구에 순응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공동체는 다시 한 번 연대감을 가지면서 통합, 유지되는 계기를 갖게 된다. 뒤르켐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후 결국 토템 숭배에서 실질적으로 숭배된 것은 토템이 아니라 공동체, 곧 사회이고, 따라서 사회는 일종의 ‘신’이라고 지적하였다.
  뒤르켐의 이러한 이론적 내용들을 배경으로 하여 최근에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새로운 분야의 연구가 곧 문화사회학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제프리 알렉산더(Jeffrey C. Alexander)와 필립 스미스(Phillip Smith)는 기존의 문화사회학(Sociology of Culture)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문화사회학(Cultural Sociology)을 확립하였다. 이들은 기존의 문화사회학이 문화의 자율성과 그것이 사회와 개인들에게 가지는 중요성을 간과하였다고 본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들은 두 가지 학문 전통을 조합하였는데 첫째로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가 주도한 19세기 말 독일의 해석학 전통이고 다음으로 뒤르켐 이론과 이를 이어받은 상징 인류학과 기호학 전통이다. 첫 번째 전통은 개신교 윤리를 연구한 막스 베버(Max Weber)와 ‘두꺼운 기술(thick description)'을 수행한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에게 이어지며, 두 번째 전통은 원시 사회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도 성과 속의 분류체계가 존재하며, 집합행동으로서의 의례가 존속하고 있고, 이것들과 연결되어 있는 신념, 도덕, 의미, 감정 등이 개인과 사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다고 보는 후기 뒤르켐주의자들, 곧 메리 더글라스(Mary Douglas),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 그리고 언급한 기어츠에게 전수된다. 한편, 뒤르켐의 강의를 들은 페르디낭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언어학, 그리고 이를 토대로 발전된 구조주의 언어학도 문화사회학의 발전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클라우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로 이어진 이 구조주의 언어학은 현대 사회와 삶에서 기호체계가 어떻게 의미를 생산하는지 주목한다. 이들의 이론들은 다음 장의 숭례문 전소사건에 대한 연구에서 소개, 적용된다.
  숭례문사건 분석에서 세 가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숭례문은 분명 하나의 기호이며, 이 사건 발생 후 이 기호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는 성스러운 상징으로 발전된다. 둘째, 숭례문 전소에 대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참배나 추모는 하나의 의례 행위이며, 이 의례는 집합표현, 집합흥분, 집합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이 과정을 통해 숭례문은 하나의 토템이 된다. 셋째, 이 의례에 참여하는 온 오프라인의 참배객들은 모두 이 상징과 연관된 주관적 인식, 의미, 감정, 경험 등을 내면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 내용은 해석의 대상이 된다.

3. 숭례문 전소 사건

  1) 성스러움

  2008년 2월 11일의 방화에 의해 전소되기 전까지 숭례문은 ‘성스러운’ 대상이 아니었다. 비록 국보 1호였지만 그것은 단지 명목상 그러하였고 숭례문의 존재나 가치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에 상응하는 위치를 갖지 못하였다. 심지어 숭례문은 국보 1호로서의 가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국보 1호는 재 지정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당국이나 학계로부터 심심치 않게 재기되었다. 그러나 화재 후 숭례문의 위상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이전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존재 가치와 상징성을 사람들에게 부여받는다. 이러한 점은 화재 후 숭례문을 위해 사람들이 남긴 수많은 글들에서 끊임없이 발견된다.

아! 숭례문/당신이 그렇게 위대한 줄을 당신이 떠난 오늘에야/당신이 그토록 소중한 줄도 그 때는 미처 몰랐지요/당신을 제가 사랑하는 있는 줄도 오늘에사 감지하였습니다/이제 당신의 그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한양 600년 역사의 숨결어린 의연한 자태/다시는 보지 못하겠지요.

위의 글 같이 세련된 글은 아니지만 네티즌들 역시 유사한 생각들을 피력하였다.

  다들아시죠?/화재일어나기전엔../그냥 아 저게 숭례문이구나 그냥 도시한가운데에있구나 그냥 그저그렇게 생각하고있었죠/거의 무관심이랄까나.... 워낙 사람사는게 바쁘니깐말이죠/근데 막상 화재가나니깐 너무 안타깝고 화나고 그런거있죠 ㅠㅠ/....../아참 뉴스에서그러던데....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 하다고하네요.../흑흑 무튼너무슬퍼여/숭례문 지못미ㅠ/조상님 그리고 후손들 볼낯이없네여ㅠㅠ/故숭례문의 명복을빕니다.

  이러한 칭송과 숭배는 사건 직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숭례문을 찾아와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나 선조에게 하듯이 묵념, 절, 합장을 하는 참배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숭례문 앞에 흰색 국화가 쌓여가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은 서울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올라왔으며, 언론은 이를 “시민들 헌화 추모 물결” 혹은 “시민들 애도 행렬”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연령층도 초반기에는 성인들이,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젊은 층들이 더 많이 방문하였다. 이러한 추모 행위는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사이버 애도 물결”로 퍼져나갔다. 숭례문이 불탄 후 첫 주말에는 전국에서 1만여 명이 숭례문을 방문하였다. 이를 보도한 한 신문은 “국보1호 숭례문 화재 현장은 거대한 장례식장으로 변했다”고 전하면서 “17일 오전 숭례문 사고 현장 일대는 숭례문을 잃은 씻김굿이 펼쳐지고, 추모 행렬이 이어져 마치 ‘국장(國葬)’이 치러지는 현장을 방불케 했다”고 기록하였다.
  숭례문이 성스럽게 여겨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드러나게 된 것은 불탄 숭례문을 정부당국이 굴착기로 화재 현장을 청소하고, 일부 잔해를 폐기물 처리장에 폐기하면서 나타났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분노했다”: “‘국상을 맞은 우리가 국보의 흙 한줌이라도 쓰레기 버리듯 하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도 있었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유해를 그냥 버리나’며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반응들은 숭례문이 성스럽기에 비록 불탄 잔해지만 역시 성스럽다는 인식의 단편이다. 한 시민은 “‘옷깃이 스치기도 황망한 몸, 그 가슴에 굴착기가 웬일입니까’라며 불에 탄 잔해의 신중한 수습을 당부” 하기도 했으며, 한 신문은 “숭례문, 잔해도 문화재다. 소중히 보존하라”라는 기사 제목을 달았다.
  화재사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숭례문에 대한 시민들의 마음과 태도는 오히려 비판이나 예기치 않는 사건을 불러오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한 시민은 숭례문에 대한 ‘지나친’ 숭배를 언론을 통해 비판하였다.

  숭례문(남대문)이 소실된 지 1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엔 600년 국보가 불에 타 무너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일부 시민들의 숭례문을 문화재 이상으로 숭배하는 듯한 모습은 지나치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마치 문화재를 국민생활의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로 언론 등에서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건 뭔가 숭례문에 대한 국민의 자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국보 1호가 소실되어서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다시는 원래의 모습과 600년의 숨결을 느낄 수 없게 된 것 또한 슬픈 일이다. 그러나 소실된 자리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굿을 하는 것은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문화재를 보호하고 보존해야 할 의무는 있지만 지금과 같이 숭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문화재는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도 아니다. 그런데 그자리에 제사상을 차리고 사물놀이 등 마치 장례식을 치르는 듯한 모습에서 오히려 숭례문을 문화재가 아닌 어떤 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한편, 시민들이 숭례문을 귀하고 성스럽게 생각하다보니 이런 시민들을 대상으로 숭례문 기와를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판매하겠다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폐기물 처리장에서 기왓장을 수집했다고 하는 이 경매주인은 “'숭례문 기와, 화재로 사라진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유할 마지막 기회'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숭례문 기와를 “‘경매 시작가 50만원에서 즉시구매가 100만원에 판매한다’”고 게시하였다.
  이전에는 결코 있지 않았고 또한 있을 수 없었던 숭례문에 대한 이 모든 새로운 인식과 태도는 화재 사건으로 말미암아 숭례문이 ‘성스러운’ 대상으로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참배와 추모는 이러한 ‘성화(聖化)’의 결과이며, 굴착기 항의 사건과 기와 경매 사건도 동일 선상에서 이루어진 현상이다. 숭례문은 이제-에드워드 쉴즈(Edward Shils)의 용어를 빌리면-성스러운 중심이 되었다. 숭례문 및 숭례문과 연관된 가치나 의미(예를 들어, 민족, 역사, 문화 등)는 성스럽게 여겨졌고, 그와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가치나 의미(경제, 물질, 발전 등)는 ‘속’적인 것으로 부각되고 비판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가치의 일반화’ 분석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여기서 우선적으로 지적할 것은 숭례문 전소사건과 관련해 성과 속의 분류체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속적인 것으로부터 성스러운 중심을 지키려는 관심과 시도가 증가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2) 상징의 확장

  하나의 사건이 많은 사람들이 관심하고 참여하는 사회운동 혹은-뒤르켐적 용어를 사용하면-집합행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행사항이 요청된다. 상징의 확대와 심정적 동일시이다. 먼저 상징의 확대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들은 상징을 통해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 사건, 혹은 개념을 인식하고 이해한다. 따라서 상징은 인식과 의미의 통로이기도 하다. 소쉬르와 바르트에 따르면 이 상징은 하나의 기호라 할 수 있다. 기호는 기표와 기의로 구성되며, 사람들은 기표를 통해 기호의 대상을 인식하고 기의를 통해 의미를 파악한다. 중요한 것은 한 기표에 여러 기의가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기호가 확장되었다 혹은 복잡해졌다고 칭할 수 있다. 기호가 확장되면서 초래될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는 기호가 단순할 때 보다 의미가 폭넓어 지고 다양해지기 때문에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나 관심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숭례문에 적용하여 설명하면, 숭례문의 기호가 국보 제1호라는 단순한 기의에서 민족, 역사, 자존심과 같은 기의로 확장될 때 숭례문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관심, 참여가 보다 폭넓게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숭례문의 기호 변화에 대해 살펴보자.
  전소사건 전 숭례문의 기호는 빈약했다. 국보 1호라는 기호도 희미했으며, 숭례문 대신 남대문이라고 사람들에게 인식되었고, 심지어는 그저 조선시대 건축물 또는 교통 및 지리 지표로 의미되었다. 그러나 화재 사건 후 남대문은 숭례문이라는 기호로 완전히 자리 잡았으며, 국보 제1호는 물론, 계속해서 여러 의미의 확장이 발생하였다. 숭례문에 부여된 가장 두드러진 기의는 민족, 역사, 얼, 혼, 자존심, 대한민국, 정체성 등이었다. 구체적인 자료를 살펴보자.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양대 외침(外侵)과 동족상잔인 6·25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위용을 유지한 민족의 자존심이었다.

  많은 시민들은 ‘600년 역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과 죄스러움 때문인지 현장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숭례문 주위를 맴돌거나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숭례문 인터넷 추모카페다음과 네이버 등 주요 포털 사이트에는......‘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상징물이 사라졌다’는 등 애도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국보 1호로서 나라의 얼과 혼을 지닌 보물이 불타 무너졌다. 국민 혼도 함께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숭례문과 함께 우리의 정체성도 타버렸다,’” “숭례문은 조상의 얼이자 우리 민족의 기백이고 후손의 자존심으로서 단순한 건축물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였다. 기호와 관련하여 특이한 현상들도 발견되었는데, 숭례문이 위에서 언급한 추상적 개념들만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인물, 사람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 살펴보자. 결론적으로, 숭례문 사건은 단지 국보 1호에 대한 방화사건이 아니라 이 건물이 상징하는 모든 상징들에 대한 사건이 되었다. 한 대학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총평했다.

숭례문 방화는 한국 사회와 구성원이라는 상징적 정체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 셈이고 대중의 애도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이다. 이처럼 숭례문 방화는 상징계에 대한 '테러'였다. 방화범 채씨가 "문화재가 국가를 대신"하기 때문에 불을 질렀다고 진술한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기호가 단순할 때보다 다양, 복잡해지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갖는
접촉점과 흡인력은 더욱 확장되며, 사람들은 이에 더 쉽게 반응하여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보이게 되고, 결국 집합현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3) 심정적 동일시

  상징의 확장처럼 심정적 동일시 역시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증가시키는 동기가 된다. 심정적 동일시란 사건과 관련이 없는 제삼자들이 사건 피해자와 감정적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에 대한 메스컴의 보도에 대해 제3자가 피해자의 부모와 심정적 동일시를 이룰 수 있고 또한 피해 당사자와도 심정적 동일시를 이룰 수 있다. 숭례문의 경우, 피해자가 사람이 아니라 물체이기에 심정적 동일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유아기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여러 물건들-예를 들어, 인형, 집, 화초, 수집품, 고향 동네 등등-과 감정적 연대감을 나누면서 심정적 동일시를 누린다. 숭례문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숭례문과의 심정적 동일시는 먼저 숭례문의 의인화로부터 그 시작을 찾아 볼 수 있다. 화재로 전소 직후 여러 글에서 숭례문은 의인화의 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이 일은 무엇보다도 추모, 애도 현상에서 두드러진다. “故숭례문의 명복을 빕니다”를 비롯하여, “故 숭례문(남대문).. 우리는 그대를 잊지 못할껍니다..ㅠㅠ,”와 같은 숭례문 의인화 글들이 인터넷에 즐비하게 올려 져 있었다. 한 문화예술인은 다음과 같은 글을 신문에 기고하였다.

숭례문이 불타던 날 많이 사람이 울었다. 화염 속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는 숭례문을 바라볼 때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임종을 앞둔 한 생명이 마지막 호흡을 힘들게 내뱉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지난 추억 속에서 또는 삶의 현장에서 숭례문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이야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고 하지만, 어쩌다 한번 스치듯 보거나 혹은 한 번도 숭례문을 가본 적도 없는 사람조차 가슴이 메어오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아마도 그건 숭례문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생명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의인화의 결과로 숭례문 앞에서는 추모 행렬이 줄을 이었고, 빈소도 차려졌으며, 더 나아가 죽은 사람에게 행해지는 삼우제, 진혼 굿, 49재도 열렸다. 이에 대해 신문들은 “인명피해가 없는 화재 현장의 이러한 추모 열기는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일,” “사람이나 생물이 아닌 숭례문처럼 무생물을 의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라고 보도하였다.
  한편, 숭례문 전소사건에서 숭례문과 심정적 동일시 일으킨 가장 효과적인 역할은 다음의 기호, 곧 “▶◀ 숭례문 지못미”가 수행하였다. 젊은 층의 네티즌들로부터 시작된 이 기호는 순식간에 숭례문 사건에서 가장 특징적인 기호로 자리 잡았으며, 온 라인 상에서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가 심정적 동일시를 강하게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간의 자신들의 삶에서 지켜주지 못했던 것, 그래서 느끼게 되었던 미안함, 슬픔, 안타까움의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 인터넷에 회자되던 수 컷짜리 만화 “Day by day”는 그림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저에겐 아기때부터 안고자던 아끼던 인형이 있었어요/늘 가지고 다녀서 내 냄새가 베어버린 인형이었죠/찟어져서 꿰메기도 하고 손떼묻어 꼬질꼬질 해졌지만/언제나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는 내 곰 인형/나이가 들고, 친구들이 생기고 더 이상 인형놀이를 안할 무렵에도/신경쓰지 않았어도 늘 내곁에 있던게 당연했던 곰 인형/어느 날/대청소를 하던 마덜님이 컸으니 필요없겠지 라고 생각해서 곰 인형을 내다버렸고/저는 그날 곰 인형을 잃고 대성통곡을 했더랬죠/어머니는 곧 새 인형을 사주셨지만 새 인형에게선 더 이상 포근한 “내 냄새”를 맡을 수 없었어요/이런 마음이예요/[전소된 숭례문 사진 그림]/항상 그 자리에 있어서 소중했다는 것을 까먹었었어.../왜 우리는 늘 잃어버린 후에 후회를 하는 걸까요...?/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인형이라는 매개를 쓴 위 글과 달리 직접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 친구들을 숭례문과 동일시하면서 감정적 연대감을 갖는 사례들도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숭례문 옆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던 한 시민은 “‘그냥 건물 하나가 불탄 게 아니야. 내 인생 기록이 없어진 느낌이야…’”라고 하였으며, 한 네티즌은 “아침 출근길에 숭례문 지나서 왔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버스에서 사람들 다 울었어요..../어쩜 그래..../진짜 이나라가 망할려나바요 .....”라는 글에 대해 리플을 달면서 “어떤 리플을 봤는데 숭례문을 보니깐 친구가 죽은 느낌이래요..출근길에 매일 보던 친구가 없으니 안울수 없겠죠”라고 글을 올렸다. 숭례문 근처 직장에 근무하던 한 회사원은 “‘완전히 불타버린 모습이 너무 삭막해 보여 마치 내 가족을 잃은 듯한 슬픔까지 밀려온다’”고 말하였다.
  이상과 같이 숭례문을 의인화 하거나 인형, 가족, 친구들로 인식하게 되면서 “지못미”는 사람들로 하여금 숭례문과 심정적 동일시를 가질 수 있는 가장 빈번히 감정 통로로 작용하였다. 아래 글은 숭례문 현장에 나가 그곳 대자보에 붙어 있는 많은 글들을 접한 후 한 가장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대자보의 글들은 모두 다 저 한마디로 귀결이 되더군요/"숭례문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철부지 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같지만/그것이 오히려 가슴을 찌르는 비수같았습니다.

  상징의 확대와 심정적 동일시를 통해 숭례문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고조된 관심과 참여는 여타의 다른 관심이나 가치를 상대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다음에서는 이에 대해서 살펴보자.

4) 가치의 일반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과 연관된 가치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새롭게 인식되면서 그 가치는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된다. 이 때 기존의 주요 가치들은 상대화되면서 그 중요성이 약화된다. 이것이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와 네일 스멜서(Neil Smelser)가 언급한 가치의 일반화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기간 동안 그 일반화된 가치는 사람들의 인식 안에서 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 가치를 숭상하면서 강조한다.
  숭례문이 불탄 후 숭례문과 관련된 가치들-이미 언급하였듯이, 민족, 역사, 혼, 자긍심, 문화유산 등등-은 급격하게 부각되고 광범위하게 확산된 반면, 화재 이전까지 한국 사회를 주장하던 가치들은 비판과 성찰의 대상으로 기울어졌다. 대표적인 비판이 경제, 물질, 속도 등과 같은 세속적인 지배적 가치들에 대해 취해졌다. 아래에 있는 대학교수의 칼럼은 그간 한국 사회를 지배하였던 핵심가치를 숭례문 사건과 연결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숭례문은 정말 우리에게 600년 역사의 상징이었던가. 경제 성장과 효율성, 실용성만이 유일한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과거 유물에 대한 관리와 보존에 관심이 덜 가고 자원이 적게 배분된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일 아닌가......속도와 발전에 대한 물신적 숭배는 과거에 대한 부정, 역사에 대한 망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청계천이 '개발'되는 와중에 그 속에 담겨 있던 문화와 역사는 송두리째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발의 속도에 칭송을 아끼지 않았고 그 개발의 주역에게, 좀더 빨리 좀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기를 기대하며 표를 던졌다. 속도와 발전의 물신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숭례문이 힘없이 쓰러지는 장면을 지켜보며 분노에 앞서 공포를 느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한 네티즌은 직설적으로 숭례문 전소와 경제를 연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 나라의 문화유산도 지키지 못하는 시대에 혹여 우리가 돈에 미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종교인 역시 “‘부도덕하고 금권이나 지역감정에 편승한 정치인이 지도자가 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탐하는 기업이 성공하는 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하늘은 그런 나라에 숭례문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숭례문 사건으로 말미암아 갖게 된 가치의 전환을 한 신문은 아래와 같이 전하였다.

먹고사는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문화와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한숨과 탄식으로 내비친 것이다. 비록 경쟁 일변도의 양상 때문에 더러 각박한 세태가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아직 이 대한민국이 ‘경제 동물’로 전락한 것은 아니다. 불타 버린 숭례문 앞에서 시민들은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숭례문의 가치들과 대립되는 기존의 세속적 가치들이 비판을 통해 상대화되고 있을 때, 행정당국이 빠른 복구를 발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발표에 대해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반대와 분노를 표했는데, 이는 가치의 일반화와 역행되는 사태로의 진전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 반응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인터넷 신문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는 “‘오래 걸려도 전통 방식으로 차근차근 해야’”한다고 답하였으며, “‘최대한 빨리 복원하자’”는 단지 4%에 불과했고, 심지어 “폐허로 남겨 교훈되게”해야 한다고 응답도 21%에 달하였다. 한 네티즌은 불타버린 숭례문을 “‘전시행정의 표본, 밀어붙이기식 건설 경제의 표본, 빨리빨리 뻔지르르 형식중독증의 표본’으로 삼아서 반성의 계기로 삼자고 했다.”
경제, 물질, 속도, 발전과 같은 세속적 가치들만 상대화 된 것이 아니라 향락, 재미, 오락과 같은 비도덕적 가치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숭례문이 불타고 있었을 때 KBS와 MBC와 같은 공중파 방송이 화재 현장을 전하지 않고 영화나 쇼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는 지적에서 볼 수 있다. 특히 현장 중계가 가장 늦었던 KBS가 항의와 질책을 많이 받았는데, KBS는 현장 중계 전까지 1TV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2TV는 ‘특선 영화-음란서생’을 내보냈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국보 1호가 불타고 있는데 영화나 방송하고 있나. 공영방송 맞나’(김주호) ‘TV 수신료는 챙기고 어떻게 전 국민이 알아야 하는 곳에 KBS 카메라는 없습니까?’(진영범) MBC 게시판에도 ‘국보가 불타고 있는데 아나운서 토크쇼나 내보내고 있고 할 말 없다’(MRXON)는 항의”를 하였다. 한 네티즌도 “우리나라국보 타고있을때 3개 방송사에서는 연예프로그램나가고 아주 잘들하는짓이죠 ㅡㅡ 아 진짜 우리 조상님들 어떻게뵈요ㅠㅠ 불지른사람 잡히기만해봐. 그리고 제발 이젠 좀 문화재관리의 중요성을 좀 깨달았으면....”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 자영업자는 “경제 살리기도 좋지만 잃어버린 민족정신과 윤리의식을 회복하는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고 제안의 말을 하였다. 아래와 같은 제언도 제시되었다.

숭례문을 다 태우고 주검마저 훼손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우선 입을 다물자. 입안에 고이는 언어로 각자의 마음에 집을 지으며 우리 삶의 속도를 줄이자. 고속 성장의 뒤안길에서 좌절과 분노에 몸을 맡기는 이웃의 수를 줄여나가자. 사랑하는 법을 몰라 떠나보낸 숭례문 앞에서 사랑을 시작하자.  

  이제 지금까지의 연구를 요약해보자. 숭례문 전소 사건은 이후, 숭례문의 ‘성화(聖化), 상징의 확장, 심정적 동일시의 단계들을 거치면서 가치의 일반화 현상을 발생시켰다. 가치의 일반화는 기존의 가치를 급격히 상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숭례문과 관련된 가치나 의미(민족, 역사, 문화, 얼, 혼, 정신, 정체성, 대한민국, 애국심, 공동체 등)는 귀하고 성스러운 것들로 여겨졌고, 상대적으로 그와 대립적인 가치나 의미(경제, 물질, 발전, 향락, 속도, 개인주의 등)는 속적인 영역 밀려났다. 성과 속의 이항대립적 분류체계가 형성되었으며, 사람들은 성을 귀하게 여기며 숭배하였고 속에 대해서는 비판과 분노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뒤르켐의 이론에서 볼 때 이제 하나의 ‘도덕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공동체는 속적인 것으로 인해 피해 받은 숭례문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한편, 더 이상 ‘성스러운’ 중심이 위협을 받거나 오염되지 않기 하기위해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려 노력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는 다시 한 번 정화되고 ‘성스러운 중심’을 중심으로 통합된다. 이러한 작용은 다음에 언급할 집합기억에 의해 단지 사건 당시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일정 기간 지속된다.

3) 집합기억

  숭례문 전소사건은 매우 치명적인 사회적 외상(social trauma) 사건이었다. 이런 사건은 모리스 알박스의 용어에 따르면 그 구성원들에게 집합기억으로 자리 잡게 된다. 집합기억이 행하는 기능은 동일한 일이 재발하여 또 다른 외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 및 제재를 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쟁과 같은 사건이 가장 두드러진 예이다. 숭례문 방화사건 역시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일은 일차적으로 문화재를 더욱 귀하게 여기고 잘 보호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마음에서 잘 읽혀진다.
  이러한 집합기억은 행정당국의 수습방안 및 사후 대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중요문화재를 24시간 감시하기로 하였고, 이를 위해 자동경보시스템, CCTV 설치, 순회 순찰 등을 확충하기로 하였으며, 예산도 2008년 224억, 2009년 148억 등 총 372억을 책정하여 안전관리를 강화하기로 하였다. 사건이 있었던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도 유사한 재발 방지 대책을 시행하였다. 대구시의 경우, 이 지역 목조 문화재에 후견인을 지정해 관리하는 “1문화재 1멘터” 사업을 실시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동구 북지장사 대웅전 등 화재에 취약한 목조 문화재 51곳에 대해 문화관광해설사를 후견인(멘터)으로 지정해 관리키로” 하였다. “대구시 관계자는 ‘숭례문 화재를 교훈 삼아 지역 목조 문화재 보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합기억의 역할이 단순히 숭례문과 같은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숭례문 전소사건으로 인해 깨닫게 된 가치, 의미, 감정도 기억 속에 집단적으로 남아 문화재를 넘어 문화재가 상징하는 가치나 의미까지 귀하게 여기고 지키는 역할도 수행한다. 곧 민족, 역사, 애국심, 공동체성 등도 집단적으로 기억하고 회상한다. 그래서 그 구성원들의 사회가 통합, 유지되는데 기여하게 된다.

6) 평가: 숭례문 토템과 사회의 구속성

  전소사건 이후 ‘성스러워 진’ 숭례문은 애도와 추모를 통해 숭배 받았다. 2008년 2월, 숭례문은 한국 사회의 ‘토템’이었다. 그러나 뒤르켐이 아룬타 부족의 토템을 연구한 후 밝혔듯이, 토템은 단지 상징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숭배를 받은 것은 그 토템이 상징하는 다른 어떤 것이었다. 숭례문의 경우 그것은 숭례문이 상징하는 민족, 역사, 혼, 얼, 애국심, 대한민국과 같은 것들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공동체적인 가치들인데, 이러한 가치들이 귀하게 여겨지고 숭배 받음으로서 궁극적으로 공동체, 곧 사회가 귀하게 여겨지고 숭배 받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뒤르켐은 사회가 ‘신’이라고 지적하였으며, “사회와 그 구성원 사이의 관계는 신과 그 신도들 사이의 관계와 마찬가지”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숭례문 사건을 통해 실제로 숭배 받은 것은 한국 사회 혹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숭례문 화재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한국 사회, 민족이라는 ‘신’을 집단적으로 숭배하였고, 그 ‘신’을 받들면서 사람들은 ‘신도’로서 연대감을 형성하면서 그 ‘신’을 중심으로 통합되었다. 이것이 토템과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한 뒤르켐의 종교사회학이 제시하고 있는 하나의 중요한 결론이다.
  한편, 신(神)개념이 있는 대부분의 종교에서 신과 신도 간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이 토템(혹은 사회)숭배에서도 신과 숭배자는 주종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양자 간에는 통치와 종속의 역동성이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사회는 왜 그리고 어떻게 개인을 구속하며, 개인은 왜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 사회에 종속되는가에 대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토템숭배를 통해 사람들은 단순히 토템을 중심으로 통합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토템, 혹은 그 토템이 상징하는 사회 공동체에 종속되기도 한다. 뒤르켐이 밝혔듯이, 토템 신도들은 숭배 의례 중에 느끼는 어떤 힘(mana)을 “개인보다 우월한 힘”으로 인식하게 되며, 그 힘은 윤리, 도덕적 힘뿐만 아니라 물질적(physical), 물리적(material) 힘의 형태로도 인식된다. 이러한 힘으로 인해 구성원들은 종교 공동체가 “그[들]에게 부과된 어떤 행동양식들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공동체적 힘, 혹은 사회적 힘은 “명령조로 우리의 협력을 요구한다. 사회는 우리가 자신의 이익을 잊어버리고 사회의 신복이 되기를 요구”한다. 자연히 개인들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물질적, 물리적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그 아래 있는 하위 존재로 생각하며, 사적이고 개인적인 가치나 관심보다는 공동체적인 가치나 이상을 중요시하며 추구하도록 된다. 물론 이러한 힘들이 사람들을 지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와 도움을 줄 수 있는 힘이 되어 인간의 존재를 고양시키고 자신감이나 안전감을 얻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 속에서도 지배하는 힘의 존재와 그 결과는 결코 무시될 수는 없는 현상이다. 자신감과 안전감은 의존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편, 토템종교의 사회구속력은 언제까지나 동일한 정도로 지속될 수 없다. 숭례문 전소 사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약화된다. 토템의 사회적 힘은 약화되고 개인은 다시 사적인 관심과 가치로 복귀한다. 사회는 구속력을 잃어가며 통합의 정도는 감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필요한 정도의 힘과 통합을 이어간다. 뒤르켐은 그 이유를 집합행위의 주기성과 상징의 기능에서 찾았다. 주기적으로 집합 행위(곧, 토템 의례)를 함으로써 희미해지거나 약화될 수 있는 공동체성을 되살리고, 또한 토템 사건의 의미와 감정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는 토템 관련 상징들의 기능으로 인해 사회 구속성은 지속된다. 또한 모리스 알박스의 주장처럼, 집합기억이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숭례문 사건에 적용해보면, 숭례문이 다시 전소될 수는 없지만, 숭례문 전소와 기능적으로 동일한 사건들이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고, 숭례문과 관련된 상징들-대표적으로 숭례문 그 자체-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상징하는 가치와 관련된 감정을 되살아나게 하는 것들을 통해 사회구속성은 지속될 수 있다. 숭례문 전소 사건 때의 집합기억도 이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뒤르켐주의 문화사회학자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다양한 집합현상들을 주목하고 연구하고 있다.

4. 추후 연구를 위한 제언

  본 연구가 종교사회학 혹은 기타 기독교 학문을 위한 제언에 대해 살펴보자. 간단히 두 가지를 언급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으로 종교가 사회 통합 및 유지에 기여해 왔으며 현대 사회에서도 동일한 역할이 종교(혹은 다음에서 살펴보듯이 시민 종교)에 의해서 수행되고 있다는 주제와 연결될 수 있다. 물론 이 역할은 종교의 보수적 기능이다. 둘째, 시민종교론과 연결시키며 논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 시민종교론은 로버트 벨라(Robert N. Bellah)가 주창한 사회이론이다. 벨라는 미국사회를 통합해온 시민종교를 발굴, 분석하였는데, 이는 뒤르켐의 아룬타 부족의 토템종교의 역할을 미국 사회에 적용한 사례라 볼 수 있다. 최근에 소개되고 있는 뒤르켐주의 문화사회학자들은 미국의 시민운동에서 시민종교의 모습을 찾아내고 있다. 반드시 기독교나 제도종교의 형태를 취하지 않더라도 시민종교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숭례문 사건에서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도 시민운동과 시민종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개인에 대한 사회의 위치와 영향력에 대한 탐구는 종교사회학의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구조, 개인, 제도, 문화 등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요청된다. 본 논문은 이중에서 문화에 주목하면서 최근에 소개되고 있는 문화사회학의 도움을 받아 숭례문 전소사건 연구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문화사회학적 시도는 일반 사회학계에서 아직 미흡한 정도에 머물고 있고, 종교사회학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회 안에 교회, 사회 안에 신자가 있는 한 사회의 위치와 영향력에 대한 연구를 매우 긴요한 주제이다. 특히 오늘날 같이 교회와 교인들이 사회에서 거의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 그래서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하는 필요가 있는 상황에 직면해 이러한 시도는 더욱 그 중요성을 가질 수 있다.

참 고 문 헌

단행본 및 잡지

최종렬 엮고 옮김. 『뒤르켐주의 문화사회학: 이론과 방법론』. 서울: 이학사, 2007.
황귀선. “아! 숭례문” 『문예운동』. 2008년 여름호.
에밀 뒤르켐.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노치준, 민혜숙 옮김. 서울: 민영사, 1992.
롤랑 바르트. 『신화론』. 정현 옮김. 서울: 현대미학사, 1995.
제프리 알렉산더. 『사회적 삶의 의미: 문화사회학』. 박선웅 옮김. 파주: 한울, 2007.
필립 스미스. 『문화이론: 사회학적 접근』. 한국문화사회학회 옮김. 서울: 이학사, 2008.
Bellah. Robert N. Beyond Belief: Essays on Religion in A Post-Traditional World. New York: Haper & Row, 1976.

신문

“국민 혼도 함께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것” 『문화일보』2008.2.16. 19면.
“국보 1호서 禮의 상징으로” 『국민일보』2008.2.29. 27면.
“남대문 터줏대감 상인들 ‘상실감 말로 다 못해.’” 『한국일보』2008.2.14. 11면;
“대구/경북]목조문화재 51곳 집중 관리” 『동아일보』 2008.4.11. 19면.
“불탄 숭례문..무너진 자존심/화재현장도 온라인도 애도 물결” 『세계일보』 2008.2.14. 4면.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한겨레』2008.2.23. 31면.
“숭례문 기왓장까지 팔아먹겠다니” 『국민일보』2008.2.18. 23면.
“숭례문 두번 죽이는 '악덕 상술'” 『경향신문』2008.02.18. KU면;
“숭례문 붕괴의 공포” 『한국일보』2008.2.15. 39면.
“숭례문 무너지는데 영화 - 쇼프로만…” 『동아일보』2008.2.12. 20면.
“숭례문 ‘사이버 애도’ 물결” 『문화일보』2008.2.14. 7면
“숭례문 살인사건” 『세계일보』2008.2.22. 12면.
“‘숭례문아, 우리가 꼭 고쳐줄게’ 어린이들도 안타까운 추모 행렬“ 『동아일보』2008.2.16. 13면.
“숭례문, 잔해도 문화재다. 소중히 보존하라”『문화일보』2008.2.15. 31면.
“‘숭례문 차근차근 복원’ 58% ‘폐허로 남겨 교훈되게’ 21%” 『한겨레』2008.2.14. 9면.
“숭례문 현상/이택광 경희대 교수” 『경향신문』2008.2.21. 25면.
“숭례문 화재 1주, 대구참사 5년” 『문화일보』2008.2.18. 3면.
“‘숭례문 49재’… 우리 마음속에 영원하리라” 『세계일보』2008.3.31. 8면.
“숭례문 49재 지내는 우룡 스님 /순리의 세상 만들어야 진정한 ‘복원’” 『한겨레]』2008.3.29. 28면.
“숯덩이 하나도 소중… 굴삭기로 퍼 버리다니…” 『서울신문』2008.2.15. 6면.
“시민들 헌화 추모행렬…아이들 보기가 부끄러워” 『문화일보』2008.2.12. 4면
“아!… 멋진 전망이 삭막한 고통으로” 『한국일보]』2008.2.15. 10면.
“아, 숭례문!” 『서울신문』2008.2.12. 31면.
“여론마당 / 소실된 숭례문에서 제사·굿판 벌이는 것은 자제를” 『문화일보』2008.2.26. 30면.
“인문성의 가치 웅변하는 숭례문” 『동아일보』2008.2.16. 31면.
“잿더미 된 숭례문/ ‘지키지 못해 죄송’ 시민들 애도 행렬” 『한국일보』2008.2.13. 4면.
“‘지못미 ▶◀ 숭례문’ 물결 …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리본 달기” 『중앙일보』2008.2.15. 11면.
“‘지키지 못해 죄송’ 시민들 애도 행렬”『한국일보』2008.2.13. 4면
“24시간 문화재 감시한다 - 서울시, 상주인력 대폭 증원” 『경향신문』2008.4.14. 12면.
“600년 숭례문 잿더미로/참담…허탈…분개…시민들 헌화발길” 『한겨레』2008.2.12. 10면
“600년 역사가 시너1개와 라이터 1개로 사라지다니” 『국민일보』2008.2.12.

온라인 자료

“국보1호 재지정 논란 ‘숭례문 상징성 약해’”                 http://www.donga.com/fbin/dfview?n=D110803416586850.(2008.12.01.검색)
http://blog.empas.com/joayjy20/26904185.(2008.11.22.검색)
http://cafe.daum.net/Bestdresser/2v4I/2759164.(2008.11.22.검색)
http://cafe.daum.net/manful24/2f8U/674330.(2008.11.25.검색)
http://cafe.daum.net/Aaing/3Ncj/36.(2008.11.20.검색)
http://cafe.daum.net/ddojin2/6F61/100.(2008.11.20.검색)

==========================================================================================
(논문 소개)2


죽재 서남동의 교회론과 민중선교    
Ecclesiology and Minjung Mission of Suh, Nam Dong
  

                                                                                              류 장 현(Ryoo Jang-Hyun)
                                                                                              한신대 교수 / 조직신학


초   록                                        

   민중교회는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서 성서적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교회운동으로 태동되었다. 그 동안 민중교회는 민중의 현실을 외면하는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여 교회의 종말론적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교회운동’과 민중을 억압하는 불의한 사회구조를 개혁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운동’을 통하여 교회개혁과 사회변혁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민중교회는 신학의 빈곤, 연대조직의 약화, 교회성장의 정체와 변화된 현실에 대한 선교전략의 부재로 심각한 자기정체성과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논문에서 민중교회가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면 먼저 올바른 교회론이 확립되어야 하며, 그것에 기초한 선교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서남동의 교회론의 입장에서 민중교회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숙고하면서 민중교회의 본질과 선교를 재정립하였다.  

주제어: 민중교회, 민중선교, 해방, 하나님 나라.

Abstract

Minjung Church has begun as the church movements to recover the biblical faith and the orthodox of christian in the Korea's historical situation. In the meantime, Minjung Church has been an enormous contribution to the church reform and social reform throughout not only the church movements trying to restore an original eschatological faith of the church from the reform the corrupt church that neglected the historical reality of minjung but also the social movements trying to build a new society that is from the reform of the unrighteous social structure that oppressed minjung to God's righteousness and peace fulfilled.  

However, today Minjung Church is confronted by a serious crisis of identity and survival because of the poverty of theology, weakening of solidarity organizations, stagnation of the Church's Growth and the absence of missionary strategy to the changed social realities.

The author of this paper has thought, if Minjung Church wants to overcome the current crisis, it would be first establish a correct ecclesiology and formulation based on its missionary policy. therefore, the author of this paper reconstructs the Minjung Church's essence and missionary work critically in consideration of the Minjung Church's problems on the standpoint of  Suh, Nam Dong' Ecclesiology.

Keyword: Minjung Church, Minjung Mission, Liberation, Kingdom of God.




                                      
1. 들어가는 말                        
  
   1970년대 도시산업선교와 빈민선교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민중교회는 민중신학과 사회변혁운동의 영향을 받아 1985년에 민중선교를 지향하는 교회운동으로 태동되었다. 이러한 민중교회운동은 1980년대 운동성에서 1990년대 운동성과 교회성의 결합을 거쳐서 2000년대 민중선교와 목회 혹은 영성의 결합을 강조하는 특징적 변화를 나타내면서 오늘날 민중선교지향적 교회, 목회지향적 교회와 사회복지선교지향적 교회로 분화 혹은 통합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그 동안 민중교회는 몰역사적 신앙에 빠져서 가난한 민중을 외면하는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여 교회의 종말론적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교회운동’과 민중을 억압하는 불의한 사회구조를 개혁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실현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운동’을 통하여 교회개혁과 사회변혁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민중교회는 신학의 빈곤, 연대조직의 약화, 교회성장의 정체와 변화된 현실에 대한 선교전략의 부재로 심각한 자기정체성과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물론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한 목회적 성찰은 항상 있어 왔지만 아직도 올바른 신학적 대안과 선교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중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하여 변화된 현실에 적합한 새로운 선교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교회론이 확립되어야 하며, 그것에 기초한 선교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서남동(이하 ‘죽재’로 쓴다)의 교회론의 입장에서 기존의 민중교회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숙고하면서 민중교회의 본질과 선교사명에 관해서 서술할 것이다.

2. 민중교회의 본질과 형태  
        
   죽재의 교회에 대한 관심은 탈기독교 시대(Post Christendom Era)에 사회경제사적 해석과 성령론적 ․ 공시적 해석을 통해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학과 그 체제로부터 성서적 신앙을 구별하여 그리스도교의 정통성을 찾는데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성서주의와 신학주의의 “시멘트에 갇힌 예수의 해방”을 의미한다. 죽재는 이러한 성서적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정통성이 민중교회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민중교회는 기존교회의 갱신이나 계급교회의 형성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서적 신앙에 근거한 교회의 본래성을 회복하는 교회운동이다. 이러한 민중교회의 본질과 형태는 다음과 같다.

1) 제3의 교회형태      
  
   민중교회는 예수의 민중선교(마9:35-38; 눅4:18-19)에 근거한 “제3의 교회형태”이다. 예수의 민중선교는 예수와 민중의 동일화와 민중의 꿈인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핵심으로 한다. 예수는 가난한 자, 눌린 자, 멸시받는 자, 병든 자와 자신을 동일화했다(마25:31-46). 그것은 어떤 조건이나 자격에 제한을 받지 않는 “무조건적인 동일화, 절대적인 동일화”였다. 그것은 예수가 민중과의 연대적 삶을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 민중이었다는 의미이다. 예수는 모세처럼 민중의 지도자, 교육자, 해방자라기보다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 곧 민중의 친구였다. 그는 민중과 함께 먹고 마시며(눅7:33-34) 그들의 고통과 질고를 짊어졌다(요1:29). 또한 예수는 민중의 꿈이었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했으며(막1:14-15), 그 때문에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의 야합 속에 정치범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다. 따라서 십자가형은 예수의 생애에서 나타난 우연적 사건이 아니라 예수의 민중과의 동일화와 하나님 나라의 선포 때문에 받은 필연적 귀결이었다. 이러한 “예수의 갈릴리에서의 민중선교, 그것이 신약선교의 출발점이고 기독교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민중교회는 “갈릴리의 헐벗고 눌려있고 병든 사람들과 자기를 동일화하고, 그러한 민중을 누르는 정치적, 종교적 권력구조에 항거한 예수의 정통성”에 근거해야 한다. 이러한 민중교회는 가톨릭의 성전의 종교와 개신교의 성서의 종교를 넘어서 철저하게 예수와 민중의 이야기에 근거한 제3의 교회형태이다.    

      가톨릭 교회가 성전의 종교라면,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성서(정경)의 종교라면, 민중의 교회는 민담과 이야기의 교회다. 종교개혁이 성전과 교회조직의 껍질을 벗겨내고 성서를 찾아냈다면 민중의 교회는 성서와 신학의 껍질을 벗겨내고 예수와 민중의 이야기를 찾자는 것이다.

   여기서 죽재는 성서의 계시와 신학을 구분한다. 신학이 성서의 계시 이후에 고대 노예제 사회였던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서 발생한 사상체계라면, 성서의 계시는 노예제 사회에서 탈출한 가나안과 갈릴리 민중의 해방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교회가 민중의 해방 이야기를 말씀과 교리와 신학으로 만들었을 때 예수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학화되었고, 예수의 죽임 당함(murder)은 죽음(death)으로 비정치화되었으며, 정치적인 예수의 십자가형은 종교적인 예수의 십자가로 대치되었다. 이제 이 전도된 진리를 다시 돌려놓는 탈신학화와 반신학(反神學)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민중교회는 성서주의와 신학주의의 감옥에 갇힌 예수를 해방하여 예수와 민중의 이야기를 되찾고, 예수의 민중적 삶을 재연하는 “생활 종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의 갈릴리에서의 민중선교를 실천하는 일이다.  

   민중교회는 추상적 신학이나 사회과학적 운동 논리가 아니라 예수의 민중선교에 근거해야 한다. 그것은 민중교회가 정치적 이념 집단이나 사교적 친목 단체가 아니라 예수의 민중적 삶을 재연하는 신앙공동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민중교회는 운동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했던 1980년대 이념적 민중교회운동론, 곧 “전체운동의 부분운동으로서의 민중교회”, “외피론”, “조건활용론” 등 다양한 실천이론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언제나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기억하며 그 사건에 참여하는 신앙공동체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민중교회는 예수 사건을 기억하고, 결단하며, 행동하도록 촉진하는 하나님의 은총의 수단들인 예배와 성례전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예수 사건을 다양한 형태로 담아낼 수 있는 예배와 성례전을 개발해야 한다.
      
2) 종말론적 해방공동체                          

   민중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기다림, 곧 종말신앙에 근거한 종말론적 해방공동체이다. 종말신앙은 초대교회의 “본래적 신앙, 곧 기다림이며 교단의 출현”이었으며, 민중의 꿈인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기다리는 혁명적 신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말신앙이 비종말화되고 헬라화되었을 때 제도적 교회가 발생했다. 그리고 제도적 교회를 합리화하고 절대화하기 위한 교리와 신학이 생겼다. 다시 말하면 제도적 교회는 본래적인 종말신앙이 쇠퇴하면서 생긴 역사적 산물이다. 죽재는 이러한 제도적 교회를 헬라적-콘스탄틴적 기독교(Hellenistic Constantinian Christianity)라고 정의한다.

     본래적 기독교 신앙은 성서적인 종말론적 신앙이다(성서에는 물론 개인의 종말만이 아니라 역사의 종말에 관해서 또 인류역사의 종말만이 아니라 물리적 자연의 종말-우주적 차원-의 양면이 있다). 교회의 발생은 본래 종말론적인 환상이었다. 종말론이란 급박한 하나님의 나라(그리스도의 천년왕국)를 기다리는 믿음이다. 그 내림하는 왕국은 새로운 사회질서이다. 그것은 특정한 공동체의 구현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다. 그런데 이러한 성서적 종말신앙은 제도로서의 교회의 확립과 더불어 사라지고 말았다. 말하자면 종말신앙을 희생하고 그 대가로서 제도로서의 교회를 얻게 되었다.

   종말신앙은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을 상징하는 신국과 “역사 안에 있는 종말”(the end in history)을 상징하는 천년왕국 신앙으로 고백되었다. “신국은 보다 더 개인적 내면적인 신앙 내용이고, 천년왕국은 보다 더 사회적 외면적인 신앙내용이다. 그렇기에 교회사에 있어서 혁명신앙의 동력이 된 것은 신국 상징이 아니라 당연히 천년왕국 상징이었다.” 이러한 종말신앙은 본래 옛 질서가 가고 새 질서가 온다는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신념이었다. 그 때문에 종말신앙을 상실한 교회는 기존의 사회질서를 신적인 질서로 유지하고 사회변혁을 외면하는 현실안주적인 제도적 교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교회는 “신국 곧 새 질서를 도입하는 사명”을 상실하여 “현상유지, 자기합리화, 자체방어를 위하여 교회와 사회와의 사이에 담”을 쌓았고, “콘스탄틴 황제의 종교, 공적(公的)종교, 호국종교”가 되어 “새 질서를 갈망하는 눌린 자, 가난한 자, ‘암하레쯔’의 종교에서 승격하여 누르는 자, 부자의 종교가”되었고, 새 질서를 이끌 혁명의 세력이 재가자로서의 교회가 되었으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노아의 방주,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 되었다. 안병무도 동일한 신학적 입장에서 제도적 교회를 비판했다. 교회는 본래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천지개벽에 참여하는 종말론적 공동체였지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신앙을 상실했을 때 본래적 교회에서 제도적 교회로,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했다.

   그러므로 민중교회는 초대교회의 종말신앙을 회복하는 일을 선결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제도적 교회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통해서 성서적인 종말신앙을 회복하고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혁명세력과 손을 잡고 사회와 세계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협력할 때 가능하다. 그 때 비로소 민중교회는 종말론적 희망을 상실한 제도적 교회를 개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 희망 속에서 예수의 민중선교를 재연하는 종말론적 해방공동체가 될 수 있다.            
    
3) 성령의 교회

   민중교회는 “성령의 교회”이다. 그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령의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조직교회를 활성화시키는 영적 힘, 곧 교회에 내재하는 힘과 구조로써 교회의 영적 본질이다. 또한 성령의 교회는 교회조직이나 이상적 교회형태가 아니라 민중의 삶의 현장에서 성령이 일으키는 역사적 사건 자체이다.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가톨릭 교회의 갱신을 촉구했다면 이제 다시 민중의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갱신을 촉구한다. 그러나 민중의 교회는 기존의 교회형태처럼 건물이나 조직은 아니다. 그 형태는 성령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서 현장의 사건일 뿐이며 또 하나의 조직교회는 아니다. 그것은 조직교회를 재활성화시키는 하나님의 입김일 것이다.

   죽재와 마찬가지로 안병무도 성령의 활동과 민중사건을 일치시켰다. 그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의 본질을 종교사회학적으로 자기초월의식에 충만하여 기존의 전통, 제도, 권위의 억압 체제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생명 공동체를 이루는 종말론적 민중사건으로 이해했다. 이렇게 성령의 활동이 민중사건으로 나타나고 민중사건을 통해서 인식되기 때문에 민중운동 자체가 성령운동이 된다. “성령 사건은 종말 사건이다. 종말 사건은 현 체제에서 보면 혁명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사건은 민중에 의한 혁명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병무가 성령의 활동과 민중사건을 동일한 종말론적 혁명사건으로 이해했다면, 죽재는 민중의 삶의 현장에서 성령이 일으키는 민중사건 자체를 교회로 해석했다. 그것이 사건으로서의 교회와 현장교회론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와 함께 죽재는 제도적 교회와 현장교회를 구별하면서 도시산업선교, 금요기도회, 목요기도회, 갈릴리교회,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NCC인권위원회, KSCF, 기독자교수협의회를 현장교회로 정의했다. 이러한 현장교회는 현시적인 영적 공동체를 대표하는 교회와는 달리 세속적인 영적 공동체를 대표하면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한다.          

     나는 이러한 교회 형성을 가톨릭, 프로테스탄트에 다음가는 교회의 제3의 형태 곧 ‘성령의 교회’ ‘민중의 교회’라고 이름 붙여보는데 그것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건으로 발생하고 일어날 때 일어나고 꺼질 때에 꺼지며 보이는 형태가 없고 자발적으로 명멸하면서 이 속(續) 기독교시대에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할 것이다.    

   이렇게 민중교회를 외적인 형태가 아니라 성령이 일으키는 사건으로 이해할 때 기구적 형태의 현장교회도 민중교회가 된다. 즉 민중교회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교회의 형태와 교파의 차이를 넘어서 일치한다. 성령은 민중교회를 교회되게 하며 일치시키는 내적인 힘이 다. 또한 성령은 예수의 민중선교를 기억나게 하고 영적 능력을 부여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일하게 하며 선교의 열정을 일으켜 교회를 건강하게 성장시킨다. 그러므로 민중교회는 성령에 사로잡힌 “영적 공동체”, 곧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은사공동체, 신앙의 확실성에 근거한 신앙공동체,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공동체, 모든 사회적, 인종적, 민족적, 전통적 차이를 극복하는 형제공동체와 선교의 열정에 사로잡힌 선교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4) 탈출공동체                      

   민중교회와 기존교회와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1980년대 적대적 관계에서 1990년대 협력관계를 거쳐서 현재 연대 관계로 발전되어왔다. 특히 1990년대 민중교회에는 생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교회와의 연대를 모색하고 그들의 신앙전통과 문화를 받아들이자는 목회자들의 요구가 있었다. 제2세대 민중신학자들은 이러한 현장의 요구에 부응하여 제도적 교회를 모방하거나 기존교회와의 연대를 주장했다. 특히 제2세대 민중신학자들의 계약공동체로서의 민중교회, 밥상공동체로서의 민중교회, 대안공동체로서의 민중교회, 해방의 진지로서의 민중교회는 민중교회가 당면한 생존의 위기를 극복하는 올바른 대안이 되지 못했다. 제1세대 민중신학자들이 추구했던 민중교회는 교회의 종말론적 본래성으로 돌아가는 교회운동이기 때문에 비종말화의 역사적 산물인 제도적 교회로의 복귀나 기존교회와의 연대는 민중교회의 정체성을 망각한 것이다. 민중교회가 기존교회와의 교리적, 기구적, 재정적 연계를 갖고 있는 한 자신의 이상과 목표를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민중교회가 진정한 종말론적 해방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교회로부터 탈출하여 열린 미래를 지향하는 탈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제도가 아니고 어떤 공동체, 곧 여기에서는 탈출의 공동체이다. 기존적인 ‘질서’를 비판하고 반항하고 앞에 열린 미래의 길로 나서는 무리들이다. 이 미래의 길을 ‘역사’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질서, 제도, 관습, 관념형태(ideology)에서 탈출해서 새 것을 찾아가는 역사를 말한다.    

   죽재는 탈출공동체의 근거를 소종파 운동에서 찾았다. 그는 성서적 계시가 가톨릭교회,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급진적인 소종파 운동 등 세 가지 교회의 형태를 발생시켰다고 보았다. 가톨릭교회는 “중세의 교회, 봉건주의 종교, 과거지향적인 교회”이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근세의 부르주아의 종교”로서 현실에 안주하며 기존질서를 유지한다. 급진적 소종파들은 무산대중의 종교로서 과거는 없고 현재는 불만이고 미래를 열망한다. 가톨릭 신앙은 “사랑과 은총에 대한 신앙”이며, 프로테스탄트 신앙은 “의지와 신앙에 대한 신앙”이며, 소종파는 “소망과 혁명에 대한 신앙”이다.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현질서를 신적인 질서로 믿기 때문에 현질서에 대한 혁명과 새 질서에 대한 소망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여 교회에서 제거했다.    

   특히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산업화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여 “초월적 주체성의 숭배”, “체념적인 태도로 인격적 공동체에 대한 낭만주의적 동경”과 “의사결정 제도화의 기관”으로 안착했다. 즉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현대 산업사회에 대한 반응은 “반동”, “회고적 동경”과 “제도화의 안착”이다. 그 결과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현대사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애굽 포로, 바벨론 포로”이다. 그것은 교회가 종말신앙을 상실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주어진 사회현실 속에서 자기의식과 자기상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중교회는 기존교회와의 타협, 대화, 연대와 역할 분담이 아니라 기존교회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교회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법, 휴머니즘의 진실과 소종파의 희망을 도입하여 다시 종말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희망을 선포할 때 가능할 것이다.

3. 민중선교의 방법과 특징                                        

   민중선교는 민중교회의 본질에 상응하게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일이다. 그것은 민중교회가 반듯이 추구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선교명령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며, 앓는 사람을 고쳐 주며, 죽은 사람을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내쫓는 일이다(마10:5-8). 이와 관련해서 죽재는 하나님의 선교와 통전적 구원의 관점에서 민중선교의 방법과 특징을 서술했다.

1) 선교과제와 한의 사제        

   예수는 갈릴리에서의 민중선교를 제자들에게 위임했다(마10:1-8). 그것이 민중교회의 선교과제이다. 죽재는 민중교회의 선교과제를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죽재에 의하면 민중교회의 선교현장은 성서의 해방전통과 한국 민중의 해방전통이 합류하는 곳, 다시 말하면 “두 이야기가 합류”하는 곳이다. 그 곳은 민중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써 성령이 활동하시는 곳이며, 하나님이 선교하시는 곳이며, 교회가 있어야 할 현장이다. 죽재는 성서의 믿음의 전통과 한국의 민중운동의 전통이 1970년대에 인권운동과 민중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전개되는 한국교회의 하나님의 선교 활동에서 극적으로 합류되었다고 보았으며, 그 곳에서 한국교회는 한국민족의 역사의식의 근간에 서서 억눌린 민중의 갈망에 호소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초청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전통을 이어받는 것이 오늘을 사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적 운명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민중교회는 지금, 어디서, 하나님의 선교가 일어나는지를 파악해서 그 곳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활동을 증언해야 한다. 그것은 민중의 통전적 구원을 선포하는 것이다. 죽재는 그것을 “신과 혁명의 통일”이라고 말했다.  

       탈기독교 시대의 민중의 교회, 민중의 신학은 본래가 성서적 복음이 탈정치화되면서 양분되었던 개인영혼의 순화와 사회구조의 인간화를 ‘동시적으로 동일체제’로서 다루는 시도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신과 혁명의 통일’이다.    

   그것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물론 질병과 운명으로부터의 해방, 자연의 해방, 종교(혹은 교리와 신학)로부터의 해방과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선교를 의미한다. 그러나 초기 민중교회는 일반적으로 정치투쟁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민중교회는 민중의 종교적, 일상적, 실존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생존에 지친 민중에게 정치투쟁의 짐을 가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민중교회가 교회인지 사회운동단체인지 모르겠다는 비판과 함께 민중이 민중교회를 버리고 기성교회로 가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제 민중교회는 민중의 정치적 요구만이 아니라 종교적 요구(하나님 체험), 일상적 관심(의식주 문제), 실존적 문제(정신적 불안)를 해결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 때 민중교회는 민중의 모든 한을 풀어주는 진정한 해방을 선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목회자는 무엇보다도 민중의 신음소리, 곧 “한의 소리를 이 세속시대에 오신 그리스도의 음성”으로 들을 줄 아는 한(恨)의 사제가 되어야 한다.   (~~생략)

    




신학사상 2009년 여름호(145집) 차례
신학사상 2008년 겨울호(143집) 차례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zero
한국신학연구소 / Korea Theological Study Institute / http://www.ktsi.or.kr
03752 서울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55 선교교육원내 / Tel 02-738-3265~7 , Fax 02-738-0167 , E-mail :
Copyright 2000-2019 KTSI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