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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연 
 신학사상 2011년 가을호(154집) 차례


이번 호에는

구약학에서 이종록 한일장신대 교수와 박신배 그리스도대 교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이종록 교수는 “예언과 시뮬라크르- 시뮬라크르 개념으로 살펴보는 에스겔서 40-48장의 환상”이란 논문에서 에스겔서 40-48장에 나오는 환상의 방식과 성격을 ‘시뮬레이션’(simulation)과 ‘시뮬라크르’(simulacre) 개념을 사용해서 본문의 환상(vision)은 환상(fantasy)이라고 해석하고, 이런 연구를 통해 에스겔서 40-48장은 새로운 “환상문학”이라는 점을 밝혔다.
다음으로 박신배 교수는 “구약 민중신학의 재발견- 김찬국 신학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김찬국은 실천적민중신학자로서 사변적 신학이 아닌 운동으로서 살아있는 신학을 추구한 학자, 행동하는 예언자, 민중을 대변한 진정한 예언자라는 점을 새롭게 연구하고, 한국의 민중신학은 신약의 안병무, 조직신학의 서남동, 구약의 김찬국이 삼각형구조를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신약학에서는 김명수 경성대 교수, 김재성 한신대 교수, 김판임 세종대 교수, 세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김명수 교수는 “안병무 민중신학과 씨알 사상”이란 논문에서 안병무는 씨알사상을 그가 서 있는 사회역사의 지평에서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하여 그것을 민중신학에 귀결시켰다고 보았다. 이런 귀결로 서구의 학문전통과 동양의 지혜전통이 안병무에게서 통합되어 아시아적 특성을 지닌 민중생명신학으로 열매를 맺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재성 교수는 “카를 융의 심리학적 성서 해석”이란 논문에서 심층심리학자인 융의 성서해석, 곧 ‘성서는 무의식을 잘 드러내는 상징들로 가득한 무의식의 책’이라는 관점에서 심리학과 신학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사람들을 인간적이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려고 했다.
김판임 교수는 “포도원주인의 비유(마 20:1-15)를 통해서 본 경제정의에 대한 예수의 이해”라는 논문에서 그동안 일반적으로 예수의 윤리는 사랑의 윤리로 알려져 왔는데, ‘포도원주인의 비유’는 예수의 사랑은 정의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김 교수는 이 비유는 하나님나라의 경제정의에 관한 것으로서, 이 비유를 통해 경제정의란 인간의 업적과 노동량에 의해 설정되는 업적 위주의 정의가 아니라 인간의 생존권을 위해 필요한 것을 보장해 주는 필요 위주의 정의라는 새로운 결론에 도출하고, 이것을 오늘 한국사회에 필요한 예수의 윤리로 제시했다.

조직신학 분야에서 손호현 연세대 교수의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인가? -고전적 신정론의 네 가지 대답들”이란 논문을 게재했다.
손호현 교수는 이 논문에서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해석학적 견해가 잠재적으로 비성서적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유일한 견해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요한복음 9:1-7과 누가복음 13:1-5의 본문에 기초하여 저자는 이러한 도덕적 범죄와 자연재해 사이의 인과율적 연관 고리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비판받았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저자는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지진에 대한 세 가지 가능한 신학적 해석, 넬슨 파이크의 ‘도덕적으로 충분한 이유’, ‘어거스틴의 미학적 신정론’, 손 교수는 어거스틴의 미학적 신정론에 근거하여 ‘정의는 각자에게 자신의 몫을 주는 것이고, 이러한 하나님의 정의 때문에 시간 안에서의 악행은 영원한 처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제한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목회상담 분야에서 최광현 한세대 상담대학원 교수의 “국제결혼 가족을 위한 다문화적 목회상담의 돌봄의 모델: 상호문화적 현상학적 목회상담”이란 논문을 게재했다.
최광현 교수는 한국사회에 급증하고 있는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가정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목회상담으로 상호문화적 현상학적 상담모델을 제시한다. 이것은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와 문화에 일방적으로 훕수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존중하며 “상호문화적 교류”를 통해 새로운 사회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독교교육학 분야에서 이향명 한신대 교수는 “현 단계 생태담론들에 대한 고찰과 기독교생태교육의 방향”이란 논문에서 다양한 생태론들과 운동들이 근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자연, 인간, 영성의 문제는 생태문제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리적 관계에 있음을 논증하려고 했다.  

〔편집후기〕

한국기독교와 교회가 세속적으로 너무도 타락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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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154집)              

연구 논문

이종록 ․ 예언과 시뮬라크르- 시뮬라크르 개념으로 살펴보는 에스겔서 40-48장의 환상
박신배 ․ 구약 민중신학의 재발견- 김찬국 신학을 중심으로
김명수 ․ 안병무 민중신학과 씨알 사상
김재성 ․ 카를 융의 심리학적 성서 해석
김판임 ․ 포도원주인의 비유(마 20:1-15)를 통해서 본 경제정의에 대한 예수의 이해
손호현 ․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인가? -고전적 신정론의 네 가지 대답들
최광현 ․ 국제결혼 가족을 위한 다문화적 목회상담의 돌봄의 모델:
               상호문화적 현상학적 목회상담
이향명 ․ 현 단계 생태담론들에 대한 고찰과 기독교생태교육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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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1

                                           구약 민중신학의 재발견
                                           -김찬국 신학을 중심으로

                                                                                           박신배 (그리스도대 교수/ 구약학)

초록

이 논문에서는 김찬국의 민중신학을 연구하였다. 기존에는 안병무, 서남동 만이 민중신학자(문익환 포함)로서 자리매김이 되어 있었는데, 또 한 명의 실천적 민중신학자인 김찬국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 논문의 요지다. 그래서 3대 민중신학자로서 안병무, 서남동, 김찬국이 삼각형 구조를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사변적 신학이 아닌 운동으로서 살아있는 신학을 추구한 학자, 행동하는 예언자, 민중을 대변한 진정한 예언자가 바로 김찬국이라는 면이다.  
사변적인 신학을 위한 신학은 죽은 신학적요소가 많다고 볼 때 김찬국의 신학은 영혼을 살리고 삶의 현장에서 절규하는 민중의 한을 대변하고 풀어준 산 신학이었다. 김찬국은 군사정권 시대에 짓밟히는 민중의 인권을 대변하는 시대의 예언자였다. 그는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처럼 시대의 아픔을 괴로워하며 고난의 현장에서 같이 눈물 흘리는, 운동으로서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제2이사야를 가장 좋아한 김찬국은, 구약 시대 중 어두운 시대 중 하나이었던 바빌론 포로시대를 연구함으로써 한국인의 고난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나라의 주권이 없이 포로의 상황, 가장 비극적 상황이 바로 제2이사야 시대이다. 이 시대는 한국의 박정희 정권 시대, 그 후의 군사정권 시대에 비견할 수 있다. 김찬국은 창조적 신학자로서, 외치는 예언자로서, 고난 받는 선지자로서, 고난의 삶을 산 시대의 증인이었다.
  김찬국은 많은 제자들에게 진정한 예언자는 누구인지를 삶으로 보여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그는 민중신학의 정신적 지주로서 역할을 보이며, 이를 삶으로 보여준 학자였다. 이 때문에 그를 민중신학적 이념 제공자, 민중신학의 근거를 구약학적으로 제공한 학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김찬국의 독특한 민중신학적 방법론을 탐구하였고, 김찬국의 민중신학에서 새롭게 민중신학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주제어
민중신학, 김찬국의 민중 구약신학, 한국 문화신학, 예언자 신학
                              

1. 들어가는 말

  이 논문은 김찬국의 민중신학적 구약학 연구에 대하여 그의 민중신학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한국 민중신학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찬국은 한국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본회퍼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고, 한민족의 고난사(苦難史)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민중신학적 구약학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당시 논리적이고 이론적으로 민중신학을 학문적으로 펼쳐 가는데 상황이 용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약을 민중신학적으로 논하는 글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김찬국의 민중신학적 구약학을 논하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 속에는 민중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자료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 논문에서는 김찬국을 서남동, 안병무 교수에 뒤지지 않는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민중신학자로 해석하고자 한다. 그를 민중신학자로 새롭게 해석할 때, 한국 민중신학사는 3명의 민중신학자를 중요 축으로 하여 삼위일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김찬국은 행동하는 민중신학자로서 위치를 가지고 있어서 위의 두 신학자와의 관계에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행동하는 구약 민중신학자 김찬국이라는 측면에서 보완하는 입장을 가질 수 있지 않는가 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한다. 최근 민중신학을 새롭게 모색하려는 작업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김찬국의 신학을 민중신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노력에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김찬국을 민중신학적으로 연구하는 시도는 한국 민중신학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2. 김찬국의 생애와 신학

  본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김찬국의 민중신학을 논하기 위해 그의 생애와 신학을 먼저 규명하고자 한다. 김찬국은 1927년 경북 영주에서 태워났다. 조부 김호영 장로는 김찬국이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김찬국의 가정은 매년 1월 3일과 민족적 경축일마다 함께 모여 할아버지의 ‘중봉 유훈’이라고 불리는 가훈을 읽고 가정예배를 드렸다. 김찬국은 1946년 연희대학교 신과대학에 입학하여, 1950년 7명의 졸업생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1950년 12월 4일 국군포병에 입대하여 ‘포소리’ 군대신문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52년 성윤순(창운)과 2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였다. 그녀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고, 모범적인 가장이었다. 1953년부터 연세대 신과대학에서 교수로 가르쳤다. 1954년 연희대학 대학원에서 최초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1954년 8월 31일, 28세에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 들어가 1955년 5월 24일 신학석사(STM)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일 년 만에 돌아와서 연세대 신과대학의 교수생활을 하였다. 1957년 7월 24일 경기도 과천에서 천막교회를 시작하였고, 1961년에는 감리교 목사가 된다.
  그러나 격정의 한국사는 그를 평범한 대학의 교수나 가장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는 1974년 5월 7일 민청학련 사건으로 대학 강단을 떠나게 되는데, 이는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그는 해직 교수 가운데 김동길 교수와 함께 가장 긴 10년을 보낸다. 그는 1975년 2월 17일 석방 될 때까지 꼭 9개월 열흘 동안 옥살이를 하였다. 이 옥살이 경험을 통해 그는 1976년 3월 25일 ‘교도소 성서보급회’를 만든다. 또한 영등포 산업선교회에도 관여하였다가 1985년 산업선교를 떠날 때 까지 함께한다. 그는 이처럼 40대에서 50대까지 인생의 황금기에 해직 교수로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는 1977년 3월 학기부터 소사에 있는 성공회의 미가엘 신학교(천신신학교)를 시작으로 보따리를 싸들고 감리교의 서울 신학교, 동부신학교, 기독교 장로교의 선교교육원 등에서 시간 강사를 했다. 1978년부터 그 다음해까지는 임시설교 목사로, 1983년 9월부터는 임시 담임목사를 맡게 되었다. 배상길 목사의 유학 때문에 맡게 된 목회 수업이었다.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한 10년의 시간은 광야의 세월이었지만, 그가 자신의 보폭을 민족과 민중을 위한 삶으로 확대함으로써 민중의 지도자로 서는 계기가 된다.      
  김찬국은 예기치 않은 사건을 통해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실천하는 민중신학자로서의 긴 고난의 터널을 시작하였다. 역사는 한 사람을 자연인의 상태로 놔두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존재를 알리기 위해 고난의 과정을 만든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인생의 분기점을 민청학련 사건이라고 한다면 제2의 전환점은 연세대 신과대학에 복귀한 때이다. 그는 1984년 연세대 교정에 돌아와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로 환영을 받을 때까지 파란만장한 고난의 한국사에 동참한 것이다.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민주화 운동에 승리를 쟁취하였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문민정부의 꽃을 피웠다. 김찬국은 이 영광의 시기에 교단(校壇)에 서서 학원과 노동 현장의 민주화와 산업 선교화를 위해 지도적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 시기는 김찬국이 한국사회에서 예언자 직을 수행한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강단과 사회 현장을 다니며 강연과 글을 통해 살아있는 구약 민중신학을 펼쳤다.
김찬국은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 인권위원 및 위원장으로 오래 있으면서(1978-92. 4 위원, 부위원장; 92-93. 8 위원장), 한국의 인권 사각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일을 하였다. 기독교계의 활동과 사회경력을 통하여 살펴볼 때, 김찬국은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활동하며, 한(恨)맺힌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구약학자인 김찬국(1927-2009)의 인생 3기는 상지대 총장을 지내는 시기부터 이 세상을 떠나는 때까지, 곧 영광을 받고 지는 석양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정년퇴임을 하고 명예교수가 된 일 년 후인 1993년 8월에 강원도 원주의 상지대학교 총창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대학 민주화의 상징적 역할을 감당하면서 특유의 미소와 유머를 통하여 상지대학교의 분규를 수습하고 대화로써 정상화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고통을 당한 자의 입장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편에서 서서, 민중의 한(恨)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전교조 문제에 참여하여 해직 당한 교수들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일을 하였다. 그는 징계위원장이었지만, 거창고등학교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징계 위원회를 계속 연기하여 평화롭게 문제를 풀었다. 게다가 1993년 전국 해직 교수들의 복직 촉구를 위한 단식 농성을 전개할 때에도 김찬국 총장 부부가 참여하여 격려해주는 등 사회 정의에 앞장섰다. 그는 입어야 할 옷과 입지 않아야 할 옷을 분간하여 항상 민중들의 편에 서는 옷을 입었고, 고난의 쓴잔을 마시는 쪽의 잔을 택한 민중신학자이자, 실천하는 양심인이었다.  
김찬국의 인생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가 추구한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아는 길은 그가 존경한 이를 아는 것이다. 그는 용재 백낙준과 존 로스 선교사, 그리고 최초의 성서 번역자 이수정을 존경하였다. 용재는 인격의 존엄성, 교육의 민주화, 투철한 봉사 정신과 자유 민주 정신을 강조하였다. 김찬국은 그를 교회의 연합과 일치 운동에도 힘을 쓴 어른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용재를 민족의 분단과 교회의 분열을 안타까워하며 사회 참여를 한 이로 소개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용재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이요, 교육계와 기독교계의 지도자인 동시에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한다. 이수정과 존 로스의 사진은 늘 김찬국 교수의 연세대 연구실에 걸려 있었다. 그는 이 두 사람을 따라야 할 교사상(敎師像)의 표본으로 삼았다. 이는 그가 10년간 해직 교수로서 연세교정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연구실에 이들의 사진을 다시 건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김찬국이 표상을 삼고 본받고자 한 인물은 남강 이승훈, 한글학자 최현배, 나치 독재에 저항한 본회퍼 박사이다. 그는 이들의 삶과 신앙, 정신을 본받고자 하였고, ‘고난과 은혜의 체험사’라는 글을 써서 그들을 기리기도 하였다. 여기에 함석헌과 이윤재, 김선기, 장지영, 김윤경, 주시경 등 한글학자에 대한 존경심도 대단하였다. 그는 한글 바로 쓰기, 한글 사랑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서 구약학을 가르치는데 있어 한글은 기본적인 필수 과목이었다. 그는 한국인의 얼과 정신을 담은 한글을 매우 중시하였다. 그는 이러한 바탕위에서 구약성서와 민중신학의 세계를 살아갔다. 이처럼 그의 인생의 여정은 그가 존경한 사람에게서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다.
  김찬국은 고난의 시대에 험악하고 무거운 고통의 멍에를 많이 짊어졌었기에 말년에는 많은 질고를 가지고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는 의식의 삶속에서 민중들과 일체가 된 공생애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말년 10년 동안은 치매로 인한 무의식의 삶을 보여주었다. 이는 우리시대가 무의식의 깊은 세계로 빠져들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동은 아니었을까. 어떤 의미에서 그의 무의식의 세계는 잠자는 아시아의 민중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동이었으며, 예언적 행동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아시아의 민중들, 더 나아가 아프리카, 세계의 민중들이 깨어서 자유와 인권, 유토피아의 메시야 세계를 만들라고 하는 무언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어쩌면 구약 민중신학의 혼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침묵 속에서 수행했는지도 모른다.  

3. 구약과 민중신학

  김찬국의 호는 소원(笑園)으로 웃음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웃음처럼 그의 미소는 세월이 변해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서 정치권력을 향하여 나가는 정치인들과는 다른 ‘외치는 소리’로서 예언자의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였다. 한국의 예언자로서 그는 구약의 세계를 바라보았고, 구약학이 구약 민중신학에서 발아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기존에는 민중신학자 하면 안병무, 서남동 박사 두 분만이 크게 자리매김 되어 있는데, 한 명의 실천적 민중신학자로서 김찬국 교수가 추가되어야 균형을 이룬다고 하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3대 민중신학자로서 김찬국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실천적 차원의 민중신학자, 구약 민중신학자로서 김찬국은 안병무, 서남동과 더불어 삼각형을 이룬다고 본다. 사변적인 신학을 위한 신학이 아닌 운동으로서 신학, 살아있는 신학을 한 신학자, 행동하는 삶의 예언자, 민중을 대변한 진정한 예언자의 삶이 바로 김찬국의 신학과 삶이었다.  
  ‘민중’ 개념은 사회학자나 인문학자, 문화운동과 문화 예술운동의 차원에서 각기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 김정환은 민중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지식인도 민중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다.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을 예수 시대의 오클로스로 보고, 그들에 초점을 두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집권층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지배받으면서 소외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예수를 십자가에 달린 민중이라고 보는 송천성(C.S.Song)은 오늘의 고난 받는 민중을 또 다른 예수로 해석하려는 관점에서 민중신학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의 민중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찬국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에서 민중을 찾는다. 억눌린 민중 전체의 탈출, 자유에로의 탈출, 민중 전체의 구원 등을 출애굽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고 보고 이들이 민중 공동체이며, 예언자들의 관심도 가장 약자였던 과부, 고아, 가난한 자에 집중되고 있고, 예언자는 이들의 인권을 대변하는 민중대변자라고 보았다(김찬국과 김관석의 토론에서).
  김찬국 교수 스스로가 민중신학을 정의한 글을 통하여 민중신학의 제3의 대안이 실천적 과제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이 민중신학이라는 것도 정치 신학의 하나로서 민중을 재발견을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안병무 박사께서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와 민중’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 민중이라는 오클로스(마4:25)라는 말이 죄인들을 말하고 억눌림 받는 사람들, 사회에서 버림받고 주변에서만 빙빙 도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갈릴리의 민중이라고 말했는데, 결국은 마가복음 2장 17절에서 말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내용도 역시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민중, 억압을 받고 소외되어 있는 그런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말씀한 것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병무 박사는 편집사적인 관점에서 군중(라오스, 마27:25)과 민중(오클로스, 마4:25)을 비교해서 민중의 재발견을 시도한 것입니다. 돌아가신 서남동 교수께 『민중신학의 탐구』(한길사, 1983)를 저술하였는데, 여기서 민중신학의 성서적 전거라 해서 민중을 억압받는 약자로 규정을 하고 결국 억압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억압을 하고 있는 사회 경제사적 입장에서 성서를 해석해 가지고 이 억압받고 있는 민중을 어떻게 해방시켜야 되겠는가라는 점을 신학적으로 전개한 것입니다.”

  김찬국은 구약 민중신학은 해방신학과 같은 전통과 맥락에서 제3세계의 성서 해석에서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트발트가 편집한 『성서와 해방』(The Bible and Liberation)이라는 논문집이 있는데, 여러 사람들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여기에 ‘성서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이라는 글이 있는데, 결국 네 가지 주제가 해방신학에 나타난 새로운 성서해석을 유도하는 데에 기초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네 가지 주제는, 하나님은 해방자라는 기초에서 출애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행동하는 신앙을 우리에게 요구한다는 것이고, 예수의 해방 운동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지향하는 것이고, 예수가 겪은 갈등은 정치적 차원에 해당된다는 것 등입니다. 이 중에서 제일 많이 활용되는 것이 출애굽 사건인데, 이것은 정치신학에서 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찬국이 이해하는 민중신학은 예언자적 행동신학으로서 국가신학과 교회신학, 그리고 왜곡된 성서관을 비판하고 불의한 정권에 대결하는 신학이다. 바로 왕 앞에 서는 모세의 용감한 신앙 행동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신학이 민중신학이라고 보았다. 정치신학으로 민중신학은 해방신학이요, 구약 민중신학은 행동하는 예언자가 되어 실천할 때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민중신학은 하나의 이론으로서 신학이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으로 나서는 신학, 행동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고 산 신앙인이었다. 민중신학은 바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랑하는 삶을 살았던 것을, 그대로 행동하는 삶으로 보여주는 신학이다.  
  김찬국은 사변적인 신학을 위한 신학은 죽은 신학이라고 보았다. 신학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고 삶의 현장에서 절규하는 민중의 한을 대변하고 풀어주는 신학이라야 산 신학이라는 것이다. 그는 군사정권 시대, 짓밟히는 민중의 인권을 대변하는 시대의 예언자 역할을 하였다. 그는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처럼 시대의 아픔을 괴로워하며 눈물 흘리는 신학자였다. 그는 민중신학자, 특별히 구약 민중신학자로서 고난의 현장에서 같이 눈물 흘리는 실천적 민중신학을 풀어냈다.
  3대 민중신학자로서 서남동, 안병무, 문익환을 들 수 있다. 이재정은 『한국 교회 운동과 신학적 실천』에서 위의 세 분들에게 그 책을 바친다고 서두와 머리말에 밝힌다. 삶의 자리는 신학 연구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 학생운동과 민주화의 중심적 자리에 있다고 하다면 문익환 보다는, 김찬국의 이름을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익환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대명사로서 예언자의 상징적 행동을 몸소 실천하여 민족이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시대의 스승이다. 어느 이름을 들든 문익환 선생은 구약 민중신학의 선구자이며 그 뒤를 이어 김찬국도 구약 민중신학자로서 꼭 집고 넘어가야할 인물이다. 그래서 이 논문은 3대 민중신학자로서 김찬국을 강조하고자 한다.
  한국의 초대 4대 구약학자를 들라고 하면 늘봄 문익환, 장공 김재준, 만수 김정준, 소원 김찬국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한국의 예언자로서 사회의 구조적 악을 고발하고 구약과 사회의 현장을 연결하여 구약 민중신학의 전통을 세운 학자들이었다. 구약학자로서 김찬국은 창조 신학, 한국의 상황의 어둠을 이론적으로 밝히며 새로운 창조를 해야 할 것을 염두에 두고 이사야의 창조신학을 연구하였다. 제2이사야는 바빌론 포로시대로, 구약에서 가장 어두운 역사를 보여준다. 나라 없는 상황, 가장 비극적 상황이 바로 제2이사야 시대이다. 이 시대는 바로 한국의 박정희 정권 시대, 그 후의 군사정권 시대에 비견할 수 있다. 당시 그는 한국적 상황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삶의 신학을 전개하였고, 고난 받는 선지자로서 역사의 한가운데서 고난의 삶을 산 시대의 증인이었다.
  김찬국은 구약의 본문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여 삶의 현장에서 구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보여주었다. 구약의 결정적인 사건인 출애굽 사건을 해방의 근거로서 해석하며 우리나라의 3·1절 운동을 출애굽과 비근한 사건으로 해석하여 기독교인의 해방절로 제시하였다. 그는 구약의 본문을 민중의 시각에서 인권 존중, 약자보호, 히브리 민족의 해방에서 바라보면서 역사를 해석한다. 주기철 목사의 순교, 본회퍼의 순교, 마틴 루터 킹의 순교, 4·19 학생 혁명 때 희생당한 학생들의 순국을 같은 선상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김찬국은 구약학이 한국인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항상 물으며 신학을 하였고, 한국인의 밑바닥 시장과 노동의 현실, 산업현장에서 그 신학적 의미를 확인하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 강연하며 신학을 풀어놓았다. 그래서 그의 글들은 민중의 언어와 민중의 시각으로 민중을 대변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글들은 쉬운 수필식 글들이 많았다. 그는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신학석사학위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한국 신학을 알리기를 원해서, 가능한 축제의 자리에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고, 한국인 구약학자로서 자긍심을 가지며 신학을 하였다. 세계 신학의 중심자리에서 한국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신학을 배우고 알리려는 작업을 하였다.  
  김찬국의 구약학은 예언자 신학, 예언 신학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쓴 석사 논문 제목도 ‘이사야 40-55장에 나타난 세데크(義)의 유래’였다. 특히 바빌론 포로시대라는 암울한 이스라엘 역사의 시기에 활동한 제2이사야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오늘 한국의 상황에서 신학하기’가 관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일렌버그 교수의 지도와 호의에 덕을 입은 바가 큰 것은 물론이었다. 제2이사야는 구약예언자 사상의 절정(클라이맥스)을 차지한 예언자이었기 때문에 그의 사상 중 ‘의’의 개념의 전승을 찾아보는 데 의미가 있었다.” 연세대 박사논문 주제는 ‘제2이사야의 창조전승’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이사야 40-55장에 나타난 제2이사야를 좋아하는 이유는 구약 예언사상의 절정을 이룬 예언자이며 더욱이 제2의 출애굽 운동(바빌론 포로에서 고향으로 가는)인 해방 운동과 구원의 전망을 바빌론에 잡혀 와 있는 동족 이스라엘 포로민(주전539년)에게 보여 주는데 있어서 창조 신앙을 강조하고 창조 교리를 구원 교리와 연관시켰기 때문이다. 폰 라드의 구약신학에서는 창조교리가 구원 교리에 예속된 제2차적인 것이라고 논한 바 있는데, 제2이사야가 창조전승을 어떻게 받았기에 제2의 출애굽의 역사를 전망하는 구원선포에 관련시켰는가를 찾아보려고 한 것이다.”  

  김찬국이 민중의 해방, 한국의 출애굽 운동과 예언자 신학, 한국의 예언자에 관심을 가지고 구약학을 전개하려는 것은 학위논문에서 볼 수 있다. 특히 구약의 예언자와 예언서는 그가 주목하여 보고, 연구한 분야이다. ‘오늘의 예언자 신앙’에서 그는 예언자는 ‘현재의 문제를 찾아내어 밝혀내고 미래를 전망하는 그런 비전을 보고 외쳐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해서 선포하는 자가 바로 예언자’라고 보았다. 이스라엘 초기 예언 운동에서 사무엘과 나단, 아히야, 엘리야를 비호한 열광주의 예언 등을 소개하며 왕의 정치에 있어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대변했던 예언자의 모습을 밝힌다. 또한 문서 예언자들의 예언 운동을 소개하면서 아모스와 호세아, 사회정의를 외친 예언자와 심판하시고 사랑을 통해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예언자임을 말한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예언자는 아하스 왕 때 임마누엘 예언과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며 새 계약 사상을 강조한 예언자임을 설명하여 불의한 왕, 불공평한 왕에 대하여 고발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예언자들은 국내, 국제 모든 정치현실에 전문가이며,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여 볼 줄 아는 역사의 방향감각을 바르게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며, 정의와 공의, 공평의 이념을 추구하고 개혁적 신앙을 가지고 정의로 항거(Protest)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예언자와 예언서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한국의 예언자이며 참 민중신학자이기 때문이었다. 김찬국은 하박국의 ‘묵시를 기록하라’는 메시지를 좋아한다. 예언자 세계에서 신약의 메시아 세계로 이어지는 출구는 사회 정의와 인권 존중, 청년의 비전과 한국 사회, 메시아 예수의 자유와 사랑의 세계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구약 신학자로서 민중신학하기는 인간의 존엄과 인간 사랑하기의 방편이었다.
  민중신학의 이론가가 서남동, 안병무였다고 하면 구약학자로서 민주 전선의 최전방에는 문익환 목사가, 학생들과 민중 저변에는 김찬국 교수가 버티며 민중 교육자로서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그래서 김찬국은 민중신학의 정신적 지주로서 삶과 행동의 신학을 보여준 학자였다. 그는 신학적 이념 제공자로서, 민중신학의 근거를 구약학적으로 제공한다. 그는 『성서와 현실』이라는 책에서 3·1절이 이스라엘의 출애굽 운동, 유월절에 해당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한국 민족의 해방이 역사적으로 학생 운동과 일맥상통함을 해석한다. 4·19의 의미는 계속되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효시이며 구약의 임마누엘 세대(이사야 7:3-15)가 바로 오늘의 민주화 운동의 희망의 젊은이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외 글들을 통해 민족과 민주, 민중의 세 범주에서 구약의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관심을 보여주며 인간의 고통의 멍에가 무엇인지, 그 멍에를 벗고 자유의 나래를 펴는 것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민족 구원’, ‘예수의 민주정신’, ‘하박국의 고발’, ‘산업선교의 성서적 근거’, ‘구약에 나타난 회개의 의미’, ‘구약의 하나님과 혁명적 변화’, ‘예언자의 신앙관’, ‘구약 예언자들의 사회정의 의식’, ‘이스라엘의 분열과 통일, 그리고 외세’, ‘구약성서에 나타난 억압의 문제’, ‘성서가 말하는 민주주의’, ‘아름다운 창조세계와 악한 환경’, ‘제3세계와 성서해석’ 등이다.
  김찬국의 구약학의 전공분야는 제2이사야이다. 창조 신학, 한국의 상황의 어둠을 이론적으로 밝히며 새로운 창조를 해야 할 것을 염두에 두고 이사야의 창조신학을 연구한 것이다. 어둔 시대에 창조신학자로서 한국의 상황에서 신학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보여주며 민중신학의 자리에서 올곧게 성서에 나타난 고난 받는 예언자가 되어 야웨의 수난 받는 종으로서 이사야 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을 동시에 연구하고 실천하는 산 신학의 소유자가 되었다.

  “한국의 기독교가 민중의 해방 운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태동된 것이 민중신학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민중신학에 관한 논문이 발표된 것은 1975년에 출간된 서남동 교수의『예수 · 교회사 · 한국교회』와 안병무 교수의『민족 · 민중 · 교회』였다.” 민중신학은 한국의 해방신학으로서 나타나서 한국의 억압받는 민중들을 대변하고 인권을 대변하는 신학으로 나타나며 한국적 특이한 정치적 상황에서 태동한 신학이라고 본다. 서남동, 안병무, 현영학, 문동환, 김용복, 서광선, 김경재로 이어지는 민중신학이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이 다하였다고 생각한 노정선 교수는 인민신학으로 다시 민중신학이 부활되어야 하며, 박재순은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의 씨 사상에서 씨알민중신학으로 갱신되어 한다고 본다. 김진호의 오클로스의 민중과 지구화 시대의 새로운 민중의 개념을 제시한다.

  신약학자 안병무의 신학은 독일의 사변적 신학의 관점과 독일신학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한국의 역사적 예수를 포착하여 민중의 고통을 읽어내고 재현하기라고 말할 수 있다. 민중을 환생한 예수라고 보고 성서 정신에서 나온 고통당하는 민중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을 대변하는 신학을 하려고 한다. 그는 민중을 아는 길은 민중과 더불어 사는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보고 민중교회가 참교회라고 본다. 김진호는 『야성』과 『현존』, 『신학사상』과 『살림』지 실린 안병무 민중신학의 과정을 분석하여 ‘내면성의 발견’과 ‘민중적 타자성’ 개념을 중심으로 파악하였다. 사회적 고통에 대한 특별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우리 사회의 고통이 거래되는 시장을 발견하기, 바알세불의 신학을 읽어내고 고발하며 신학하기라는 테제를 주장한다. 그것이 안병무식 민중신학 재현하기라고 보았다.
  조직신학자 서남동은 20세기 신학의 흐름을 섭렵하면서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현재적 그리스도』와 생태학적 신학의『전환시대의 신학』을 저술한다. 서남동은 한국인의 한(恨)을 주제로 한국인의 민담을 연구하여 ‘두 이야기의 합류’라는 논문에서 민중신학을 풀었다고 하면, 김찬국의 구약 민중신학은 한국 민중과 청년의 삶으로 들어가 그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하는 신학으로 현장이 텍스트가 되고 성서가 컨텍스트가 되는 상황을 보여준 실천하는 민중신학자였다. 구약학자 김찬국의 신학은 유니온 신학교와 연세 신학의 사회 참여와 에큐메니칼 신학 전통을 따라 유대교와 기독교의 자유의 전통, 기독교의 십자가 사랑의 전통을 몸으로 수행한 통전적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예언자로서 삶을 보였고, 상아탑의 신학에서 탈피하여 사회현장과 노동 현장, 역사의 현장에서 민주화라는 역사적 과제를 위해 민중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언어로 풀어내는 신학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구약 본문에서 한국 민중들의 언어를 되찾아 구약신학을 풀었던 것이다. 출애굽의 유월절 사건과 한국의 청년운동, 민족 해방운동, 민주화 운동의 근거를 찾는 작업을 하였다. 사회의 정의를 위해 예언서 연구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이었다. 구약 역사 신학을 위해 신약의 역사적 예수를 어떻게 봐야 하며 해석해야 하는지 구약에서 물어본 구약의 예언자로서, 상징적 행동을 감옥에서 보여준 신학자, 실천하는 양심을 강조하며 몸소 보여준 몸의 신학을 한 구약학자였다. 비록 구약의 민중신학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직접적으로 논하지는 않았지만 그 신학의 중심에는 구약의 민중신학적 관점으로 논의하고 있음을 계속하여 살펴보았다. 김찬국의 후학인 김경호 목사는 이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구약성서 읽기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그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으며 한국 구약학의 방향이 그의 선구적 구약학 연구에서 척추와 같은 뼈대 역할을 하고 있어서 그 바탕에서 연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찬국은 본회퍼가 추구한 행동하는 신학을 하였다. 그는 본회퍼의 신학을 좋아하고 묵상을 하며 그의 길을 가고자 늘 소망하였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에 행동하는 사제로서, 목사로 쉽게 설 수 있게 한 것이다. 시편의 신학처럼, 깊은 영성에서 나오는 신학을 하였다. 또한 김찬국의 시편 이해에는 민중의 탄식과 고난의 현실이 담겨 있다. 참회의 노래가 있고, 한국의 시편 3·1절 노래를 강조하고 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는 한국의 시편으로서 고난 받은 한반도의 상황에서 그가 처절한 고통의 절규를 내뱉는 탄식시와 같은 글이었다. 그는『인간을 찾아서』에서는 ‘하박국의 고발’과 ‘악의 기원에 대하여’, ‘예언자의 신앙관’, ‘구약에 나타난 회개의 의미’, ‘구약의 하나님과 혁명적 변화’ 등 구약의 예언자 신학을 보여주며 그 자신이 이러한 예언자의 길을 가고자 하였다. 친구 김동길 교수는 ‘김찬국을 말한다’라는 글에서 그의 성격과 예언자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약학자 김찬국의 신학은 통전적 신학과 예언자 신학으로서 삶의 신학을 보여주었고, 상아탑의 신학이 진정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성서학자의 역사 참여와 예언자 신학이 구약 신학의 꽃임을 보여준 구약신학자요 구약 민중신학자였다. 그는 기독학생들이 이해하는 성서의 세계와 실천의 모델이 된 구약학자요, 예언자 세계의 표상이 되었고, 실사(實事)적 성서해석의 방법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강의』, 『구약성서개론』, 『예언과 정치』, 『성서와 역사의식』, 『성서와 현실』등과 같은 여러 저서와 번역서를 통해 그는 행동으로 육화(肉化)하는 민중신학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4. 김찬국의 구약 민중신학 방법론과 해석, 적용

  김찬국의 구약 연구 방법론에서는 세 가지 카테고리가 중심이었다. 정치적 상황과 종교적 배경과 사회적·경제적 상황 등의 구조 분석이 현실 세계와 성서의 세계를 푸는 열쇠가 되었다. 야웨 하나님에 대한 백성들의 신앙의 상태가 어떠한지, 사회적 구조에 있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어떠한지, 정의로운 사회가 형성되어 불평등의 요소가 없는지, 경제적 상황은 백성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  등을 세 분야로 나누어 세 구조로 나누어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유다의 종교개혁 연구’를 시도하는데, 히스기야 종교개혁과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연구에 있어서 이 세 가지로 정치적 상황, 종교적 경향, 사회적 현실 등으로 나누어 연구하도록 지도하였다.
  김찬국은 제2이사야의 창조전승 연구에서도 역사적 차원의 문제를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상황에서 분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시대인 바빌론 포로시대에 창조신학을 이야기 한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비민주적인 독재 현실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창조신학을 재창조하는 작업이었다. “바빌론 포로기 말기에 나타난 제2이사야가 포로기의 역사적 혼동과 암흑기 속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불렀을까? 역사적 혼동기와 암흑기 속에서 내일의 대 출애굽을 전망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창조의 하나님을 찾는 것이 필요했었다.” 그는 또한 강력한 이방 바빌론의 마르둑 신앙의 위협 속에서 야웨 창조주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종교적 상황에서 논구하고 있다. “바빌론 포로기라는 혼동기는 바빌론 신들로 인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굴욕을 받은 상황이었다. 제2이사야는 그런 혼돈적 궁지 속에서 야웨가 처음이고 마지막이며 유일한 창조자임을 확인하는데 고통을 느꼈기 때문에 야웨가 ‘지은자’(Maker)란 ‘oseh’란 말을 대신해서 ‘창조한 자’(Creator)란 ‘bore’란 말로 고쳐 쓴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창조주 야웨와 혼돈의 세력, 바빌론 제국, 그리고 역사적 과제, 오늘의 창조를 염두에 두고 구약예언자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김찬국의 이러한 제2이사야 창조전승의 연구는 폰라드의 구속사 중심의 신학에 도전하는 것으로서, 그는 제2 이사야의 정치적 상황과 제2이사야의 제의적 칭호(사44:24-28; 사51:9-16) 연구를 통하여 창조교리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야웨가 창조자라는 강한 야웨 신앙의 발언을 하고 있다. “하늘을 창조한 자, 땅의 기초를 정한 자라고 부른 칭호가 예루살렘의 예배에서 사용된 칭호들의 전승을 이어 받았고, 바빌론 포로기라고 하는 처지에서 바빌론 신들과 대항해야 될 혼돈과의 대결에서 새로운 출애굽과 시온으로의 복귀를 바라는 전망 속에서 야웨가 천지를 창조한 창조자임을 내세우고 사람이 살아야 할 자리로서의 땅을 혼돈을 정복함으로써 창조해야 한다는 창조전승에다가 제의적 칭호를 결부시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폰라드의 구속사 일변도의 신학적 해석을 지양하고 새로운 창조 신앙을 강조하는 논문을 전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의 묵시문학적 상황에서 새로운 창조 신학을 전개하고자 하는 뜻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가 전개하는 사회·정치적 민중신학의 기초적 구약해석과 연구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김찬국은 구약 본문을 가지고 논문을 쓰거나 구약의 주제로 강연을 할 때 이 세 가지 범주의 방법론적 연구를 적용한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과 혁명적 변화”라는 논문에서 현 이스라엘 상황을 묘사하며 ‘혁명 없는 이스라엘’이라는 소주제 제목을 달고 사람의 형상을 만들거나 동상을 만들지 않는 것을 설명한다. 그는 또 구약의 중심 주제인 출애굽 사건을 이야기 하며 “출애굽으로 인한 혁명적 변화”를 언급한다.

  “모세로 인한 출애굽이란 혁명적 변화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으로 믿어지고 신앙고백으로 기억되었다. 출애굽이란 역사적 전승은 이스라엘의 미래 역사에서 제 2의 출애굽, 제 3의 출애굽이란 정치적 변동을 하나님의 개입으로써 기대하도록 하는 역사적 전망이 되었다. ‘제2이사야’는 바빌론 포로기 말기에 고향으로의 새로운 탈출을 기대하도록 ‘새 일’ 곧 새 출애굽이란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개혁과 변화를 역사 속에서 바랄 때 마다 이스라엘 역사의 탄생에서 보여지는 모세에게 계시된 야웨 하나님과의 계약을 갱신하고 그에게만 충성하기를 바라는 모세 종교의 재확인과 재해석을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찬국은 예언자들의 사회 참여를 지적하며, 인권을 강조하는 신명기, 예언자 예레미야가 요시아의 종교 개혁을 지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그는 예언자와 예수의 사회 개혁은 영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 개개인의 정신적 혁명과 회개를 통한 인간 개혁을 기점으로 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의 질서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발언하고 투신하고 참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구약학 연구에 있어서 역사비평의 방법으로서 김찬국이 고트 발트의 사회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성서해석에 적용하고 있음을 이미 살펴보았다. 안병무가 신약학자로서 불트만의 신학, 역사적 예수, 실존주의 철학, 동서양의 두 사상의 맥에서 민중신학하기를 하였다고 하면, 김찬국은 성서신학자로서 폰라드의 구속사 신학의 바탕위에서, 한국인의 언어와 철학을 중심으로 역사적 차원에서 종교와 정치, 사회라는 프리즘으로 창조신학을 전개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서남동이 조직신학자로서 민중신학의 방법론을 사회과학적 방법 또는 사회 경제사적 방법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하였다. 또한 두 이야기의 합류에서는 전통적인 기독론적 · 통시적 해석 대신에 성령론적 · 공시적 해석을 채택하여 해석학적 작업을 한다. 그리고 민중신학의 성서적 전거로서 민담의 신학-반신학을 성서 해석 방법론으로 제시한다. 이에 비해 김찬국의 민중신학은 사회·정치·종교적 차원의 역사적 방법이며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의 정치신학, 예언자 신학이다. 메시아 예수의 역사적 해석과 출애굽, 십자가 신학으로서 그는 성서해석의 준거(準據)를 삼고 한국 문화적 성서해석을 적용한다.
  김찬국의 민중신학은 남미의 해방신학과 미국의 흑인 신학의 선상에서 억눌린 자의 편에 서는 신학이었다. 그는 구약의 예언자와 민중을 일체화 시켰고, 정치 신학의 차원에서 불의한 정권과 왕에게 저항하는 예언자 신학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볼 때 김찬국의 신학은 예언자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예언자는 민중의식과 인권의식을 가지고 억눌린 자를 풀어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힘없는 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가난한 자의 인권을 세워 주었다고 강조한다. 즉 예언자가 사회정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언자는 그러기에 억압받는 민중 편에 서서 민중의식으로 의식화하여 사회 정의를 대변한 것이다.” 이처럼 김찬국은 정치, 사회적 분석을 통하여 정의로운 사회인가를 분간하고 정의의식을 가진 예언자가 사회 참여를 통하여 회개하도록 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회복하게 하는 일을 말하였다. 종교적 상황은 사회, 정치적 상황과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예언자들의 말, 글이 자연히 정치적인 행동, 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완전히 종교적인 종교 세계만을 다룬 언어가 아니라 다 현실과 관계된 내용이기 때문에 그 언어, 내용 자체가 정치적 언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5. 나가는 말

이 논문은 김찬국의 신학이 이 시대에 다시 필요하며 그의 신학은 구약 민중신학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신학은 첫째, 한국 신학의 현장 실현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민주화 운동으로 현실 참여의 필요성을 역설한데 있다. 둘째, 민중과 민족, 민주의 차원에서 어떻게 그 뜻을 실현할 수 있는지 뜻을 찾고 있다. 셋째, 그의 신학은 구약의 세계와 하나님의 법을 찾아, 기독교인들의 행동하는 신앙을 촉구하는 이론적 작업이다. 그의 신학배경에는 인간 사랑과 한민족의 얼, 한글 사랑이 있고, 청년 교육과 민족교육이 그의 민중신학의 중심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찬국의 구약 민중신학 방법론은 세 가지 범주, 즉 종교·사회․정치적 차원에서 포괄적이고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의 신학은 예언자 신학으로서 민중신학적 차원을 인도한 구약 신학이었다. 그의 민중신학은 에세이로 쉽게 풀어쓴 행동의 언어였고, 그 안에는 시대의 양심으로서 예언자의 삶이 있었다. 인간 김찬국은 작은 예수의 모습으로 신학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시대의 스승이었다.
  신약 민중신학자 안병무, 조직신학자 서남동, 그리고 구약 민중신학자 김찬국은 상아탑 안에서만의 학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학으로 백성들과 함께 하는 신학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민족 공동체의 비극이 무엇이며 인권이 짓밟히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불의한 정권에 도전하고 항거하며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쳐 준 행동하는 신앙인이자, 참 예언자들이었다. 그들은 삶의 현장에서 절규하는 민중의 한(恨)을 대변하고 풀어주는 신학을 하였다. 김찬국은 여리고 여린 사람으로서 참으로 따뜻한 정을 가진 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군사정권의 칼날 앞에서 민중의 인권과 산업사회 노동자의 아픔을 대변하며 고난받은 종으로서 시대의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였다. 또한 그는 강단에서 가르치는 교사로서만이 아닌 역사적 자리와 현장을 찾아 거리로 나가며 역사 앞에서 고난의 소리를 대변했던 학자이자, 운동가였다. 그리고 그는 한글을 사랑하고 한민족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고난의 현장에서 무정한 신학자로서 신학 이론과 논리를 펴는 단순하고 편한 바리새인의 길을 거부한 참다운 구약 민중신학자이었다.
  민중신학적 구약신학이 중시(重視)되지 않고 있고, 김찬국의 구약 민중신학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고 하는 오늘날 우리는 다시 그의 신학을 물을 이유가 있게 되었다. 민중신학이 외면당하는 문화와 현실 속에서 다시 김찬국의 구약 민중신학을 알리고 탐구하는 노력을 통해, 한국의 신학은 역사 속에 다시 민중을 해방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는 인간 사랑의 문화와 새로운 민중을 위한 신학이 되어야 한다. 본 연구를 통해 김찬국이 구약 민중신학 자로서 재발견되고, 그가 민중 3대 신학자로서 재평가 받는 작은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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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2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인가?
                                             - 고전적 신정론의 네 가지 대답들

                                                                                               손호현 (연세대 교수/ 조직신학)

초록

이 논문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해석학적 견해가 잠재적으로 비성서적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유일한 견해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요한복음 9:1-7과 누가복음 13:1-5의 본문에 기초하여 저자는 이러한 도덕적 범죄와 자연재해 사이의 인과율적 연관 고리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비판받았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저자는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지진에 대한 세 가지 가능한 신학적 해석을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은 넬슨 파이크가 “도덕적으로 충분한 이유”라고 부른 것을 가지기 때문에 지진을 허용하거나 일으킬 수 있다는 논리적 가능성이다. 파이크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 쓴 약숟가락을 강제로 아이의 입 속에 밀어 넣는 아버지의 예를 든다. 마찬가지로 지진의 경우 하나님도 그러한 도덕적으로 충분한 이유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주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은 선과 악, 천국과 지옥 등의 대조적 부분들을 필요로 한다는 성 어거스틴의 미학적 신정론이다. 이러한 서로 다른 대조적 부분들이 존재해야지만 우주 전체가 보다 아름다울 수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도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셋째로 저자는 지옥은 영원할 수 없다는 수정된 어거스틴의 미학적 신정론을 자신의 입장으로 제시한다. 정의는 각자에게 자신의 몫을 주는 것이고, 이러한 하나님의 정의 때문에 시간 안에서의 악행은 영원한 처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제한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견해이다.

주제어
지진, 심판, 악, 신정론, 어거스틴



1. 신학자의 지옥

악의 문제는 신학자의 지옥이다. 신정론이란 한편으로 ‘악의 존재의 명확성’과 다른 한편으로 ‘신의 존재의 불명확성’이라는 이중적 난관에 직면하여,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동시에 양립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신학적 시도이다. 이 글은 이러한 시도를 지진이라는 자연적 악의 문제를 중심으로 스케치하고자 한다.           
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는 수 만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성당에 모여 있었다. 바로 그때가 가톨릭교회 최고의 축일 중 하나인 만성절(All Saints’ Day)이었기 때문이다. 장엄하게 미사가 시작된 직후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3분 간격으로 일어난 두 번의 지진과 세 차례의 쓰나미, 그리고 이어진 대화재는 리스본 시내의 85%를 파괴하였다. 리스본 시민 27만 명 가운데 3만~7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더 슬픈 사실은 당시 리스본은 성당과 수도원으로 가득한 거룩한 도시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리스본의 시민들은 이해할 수 없어 울부짖었다. 하나님은 왜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에, 왜 하필 기도하는 시간에,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더 거룩한 도시를 심판하시는가? “신정론”(théodicée)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라이프니츠가 우리가 사는 현재의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세상들 중에서 최고의 세상(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이라고 주장한 지 채 50년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리스본의 대참사는 지금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자연적 악(natural evil)과 도덕적 악(moral evil)의 구분을 촉진시켰다. 신학자들은 이제 한편으로는 독일의 아우슈비츠가 상징하는 도덕적 악과 포르투갈의 리스본 지진이 상징하는 자연적 악이라는 거대한 두 괴물들 가운데 위태하게 놓여지게 된 것이다.  
        2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당시의 기독교인들보다 자연재해가 던져주는 ‘하나님, 왜입니까?’라는 질문에 더 현명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성탄절이 막 지난 2004년 12월 26일에 동남아시아를 덮친 쓰나미는 2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어떤 이는 희생자들이 성탄절인데도 휴양지에 놀러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셨다고 설교하였다. 성실한 기독교인들이었다면 그날 교회에 있었을 것이라는 논지이다. 몇 개월이 지나 2005년 8월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를 강타하며 1,400여 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여기에 대해 어떤 이는 동성애자들이 뉴올리언즈에서 대규모 행사를 조직하고 있었으며, 태풍은 이러한 동성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하였다. 2010년 1월 아이티를 강타한 지진은 20만 명이 넘는 생명을 파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보수적 기독교 지도자이자 텔레반젤리스트(televangelist)인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은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주 오래 전에 아이티에서는 어떤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당시 그들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나폴레옹 3세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악마(the Devil)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만약 우리들을 왕자에게서 해방시켜주면 당신을 섬기겠습니다.’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진짜 실화입니다. 그리고 악마는 ‘좋다, 약속하지’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프랑스인들을 몰아내었습니다. 아이티인들은 저항하였고, 자신들을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아이티인들은 모든 일 하나 하나에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아이티의 지진 희생자들은 오래전 악마와 맺은 계약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1년 얼마 전 일본 열도를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의 핵재앙을 우리는 기억한다. 일본의 재앙은 아직 진행형이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명이 손실되었는지 정확히 모른다. 어떤 이는 여기에 대해 일본인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는 채 10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기에 겪은 자연재해가 가져온 엄청난 피해의 규모에 놀랄 뿐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우리 자신이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적절한 신학적 해석과 대응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란다. 오히려 이러한 대답들의 시도에서 우리는 신학의 어떤 짙은 어둠, 잔혹성, 그리고 당혹스럽게 치유되지 않고 열려있는 상처들을 보는 것만 같다. 그러한 신학의 상처들을 이 글은 직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2. 왜 우리는 침묵하지 못하는가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지 않을까?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선언한다. 무언가 홀로코스트의 의미에 대해 말하려 하는 것은 그 희생이 지니는 적나라한 공포와 무의미성을 예술을 통해 은폐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은 고통을 견딜 만한 어떤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종종 타인의 공포를 이야기와 그림으로 만듦으로 견딜 수 있는 어떤 것, 곧 남의 고통으로 만들고 우리 자신 밖으로 몰아내는 축사(exorcism)의 기능을 한다. 아름다운 이미지, 의미 있는 이야기의 플롯 등등 예술적 가리개를 통해 고통은 그렇게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어떤 것처럼 통제되는 것이다. 하지만 타자의 고통을 그렇게 자신의 밖으로 몰아낼 때 어쩌면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인간성도 몰아내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가 포기되어져야 하는 것처럼, 동일하게 리스본 지진과 아우슈비츠 이후에 신학도 어쩌면 포기되어져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이른바 신정론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제 침묵으로 대체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해 틸리(Terrence W. Tilley)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는 신정론 이론이 악의 문제에 대해 “해결책”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해결책이 만들어 내는 문제들”을 더 많이 가져왔다고 본다. 신정론은 비실천적이고, 아카데믹하고, 거짓된 의사소통 가능성을 전제하고, 악을 추상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틸리의 중요한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그럼에도 신학은 신정론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정론은 사유되고, 이론으로 제안되고, 비판되고, 수정될 수 있는 반면에, 침묵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담론과 침묵 둘 다 잠재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 비트겐슈타인이 우아하게 신학을 비판하였듯이, 종종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학자로서 고통과 악에 대해 글쓰기를 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알기 때문이 아니다. 거기에 대한 우리 자신의 무지를 침묵의 근엄한 제스처로 신비화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대답하라!’는 희생자의 절규와 요구에 우리의 깊은 침묵은 더듬거리는 신학적 담론보다 어쩌면 더 폭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일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신학자의 지옥이 존재한다. 신학자는 말할 수도 없고 침묵할 수도 없다. 그래서 몇몇은 더듬거리는 말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침묵은 신학의 미덕일 수 있지만, 항상 모두에게 그러한 것은 아니다.  


3. 왜 하나님의 심판이라 말하는가

앞에서 살펴보았듯 고통과 악의 문제에 대해 침묵 대신에 말의 가능성을 선택한 몇몇 기독교인들은 자연재해와 지진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해석을 제시한다. 본인은 나중에 이러한 하나님 심판론은 한편으로는 비성서적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재해에 대한 유일한 기독교적 대답도 아니라고 주장하려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먼저 왜 사람들은 그러한 대답이 제공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 신학적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악의 문제에 대해 기독교인이 가지는 고민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근본적인 믿음의 충돌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1) 하나님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신학적 설명의 궁극적 끝’(the ultimate terminus of theological explanation)이다. 그러나 (2) 하나님은 전적으로 선하심으로 ‘악의 근원’(the source of evil)이 될 수는 없다. 설명의 끝이라는 첫째 원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최초의 원인자에 근거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 혹은 고든 카우프만이 하나님은 모든 것들에 대한 “최종적인 혹은 궁극적인 참조점”(the last or ultimate point of reference)이라고 정의했던 것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된다. 이는 하나님이 지니는 형이상학적 궁극성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첫째 원칙이 하나님의 전적인 도덕적 선하심이라는 둘째 원칙과 논리적 긴장관계에 놓여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설명의 궁극적 끝이라는 원칙을 악의 문제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하나님을 악의 저자라고 말하는 데에는 무언가 우리의 도덕적 기대와 신학적 감수성을 구토스럽게 만드는 어떤 부조리한 요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모든 신정론 논의는 이러한 두 상반된 원칙들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해소시키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사실 두 가지 논리적 가능성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는 형이상학적 궁극성을 보다 중요시하며, 이를 중심으로 도덕적 선하심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도덕적 선하심을 보다 강조하며, 형이상학적 궁극성을 제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설명의 끝이라는 첫 번째 원칙과 하나님은 악에 대한 설명의 끝이 될 수는 없다는 두 번째 원칙은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통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화이트헤드의 과정신정론은 두 번째 원칙 하나님의 “선하심”(goodness)을 옹호하기 위해 첫 번째 원칙 하나님의 “형이상학적 궁극성”(metaphysical ultimacy)을 다소 제한한 시도라고 평가된다. 그리핀도 이러한 맥락에서 “만물들의 기원이 됨”(being the origin of all things)이 “전적으로 선하심”(being wholly good)에 비해 보다 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고전적 유신론의 모델에 기초한 대부분의 전통적 신정론은 하나님의 형이상학적 궁극성을 보다 중요하게 강조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여러 차원에서 재해석하는 시도라고 평가될 수 있다. 본인은 지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론도 이러한 전통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과정신정론은 다루지 않고 전통 신정론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지진에 대한 하나님 심판론은 위의 두 원칙들을 손쉽게 중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곧 지진의 경우 인간 희생자들을 악의 저자로 규정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지진을 일으킬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하나님의 형이상학적 궁극성 혹은 주권적 통치의 첫째 원칙을 만족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무고성과 전적 선하심이라는 둘째 원칙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지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론이 다른 모든 신정론 논의들과 마찬가지로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자연재해를 인간의 악행이나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희생되어진 (유아들과 동물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이 범죄한 죄인이라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논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진 희생자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존재는 사실 타락한 죄인의 측면을 가지기 때문에, 이 경우 하나님의 심판 대상에 대한 예측불가능성은 일정 정도 하나님의 전적 선하심에 대한 물음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또한 전통적으로 이렇게 심판받는 희생자들은 영원한 지옥에 유기되는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이처럼 하나님 심판론이 제기하는 하나님의 초상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는 성서의 가장 깊고 고결한 신학적 통찰을 거스르며 거의 새디스트 하나님에 가까운 잔혹한 신론을 제시한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성서 자체가 바로 자연재해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견해를 거부하고 있다고 본다.


4. 왜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견해가 비성서적인가

과연 어떤 일이나 사건에 있어서 ‘성서적’ 관점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보다 구체적으로 자연재해에 대한 성서적 견해는 과연 무엇인가? 분명 이러한 질문은 쉽게 대답되어질 수 없는 문제로서 다양한 신학적 견해가 존재할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은 대답들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1) 만약 어떤 문제나 사건에 대해 신약성서에는 언급이 없고 오직 구약성서에만 언급이 있다면, 여기서 성서적이라 함은 구약성서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다.
2) 만약 동일한 문제나 사건에 대해 신구약에 모두 언급이 되지만 신약과 구약의 견해가 다를 때, 여기서 성서적이라 함은 신약의 견해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3) 만약 동일한 문제나 사건에 대해 신약성서 내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들이 존재할 때, 여기서 성서적이라 함은 예수의 견해가 다른 성서기자들의 견해보다 더 우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하나님의 말씀은 성서를 통해 계시되지만, 이 둘이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원칙들은 성서의 모든 책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라고 해석했던 마틴 루터의 그리스도 중심주의적 해석학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원을 그릴 때, 그리스도가 전체 원의 중심이다.” 만약 이 입장들 모두가 설득력이 있다면, 아니 최소한 처음 세 입장들이 설득력이 있다면, 자연재해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견해는 비성서적이라고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예를 들어 노아홍수의 이야기와 같은 구약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자연재해에 대한 예수의 견해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성서적으로 우선한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약성서는 여기에 대한 유용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필자는 여기서 신약성서의 역사비평적 문제를 다룰 능력이 없으며, 이는 성서신학자들의 몫이라고 겸손하게 인정한다.)  
        첫째는 요한복음 9:1-7에 등장하는 소경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선천적 장애는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자신이나 자신의 부모가 저지른 죄에 대한 천형으로 여겨졌다. 곧 현실의 고통과 종교적 범죄가 같이 쌍으로 결합된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이러한 선천적 장애와 범죄 사이를 묶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연결고리를 단호하게 끊어버린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한 9:3) 그리고 예수는 그 소경을 치유한다. 이 이야기에서 앞을 볼 수 없는 선천적 장애와 그 고통은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없는 인간사의 물리적 요소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지진 등의 자연재해와 유사한 존재론적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최소한 죄와 자연재해의 심판이라는 인과론적 연결고리에 대해 예수가 회의적이었다는 추측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둘째는 누가복음 13:1-5에 등장하는 두 사건이다. 여기에 따르면 몇몇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 예배를 드리는 동안 빌라도에 의해서 살육되어졌다. 마치 리스본 지진 이후 리스본 시민들이 어떻게 미사 도중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절규하였던 것처럼, 이들도 같은 신앙의 절규를 예수께 가져왔던 것 같다. 이에 대해 예수는 여기서도 다시 범죄-심판이라는 인과론적 관계를 거부하며 실로암 연못 옆의 무너진 망대 이야기를 스스로 자발적으로 예화로 제시한다. 실로암은 예루살렘의 물을 저장한 저수지 이름이었으며, 이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망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망대가 무너져 열 여덟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것이다. 여기에 대해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누가 13:4-5)
우리는 이 사건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 혹자는 빌라도가 물의 공급을 개선하기 위하여 수로를 건설했는데 망대가 무너진 것은 이 건설작업과 관련된 사건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이 사고에 대해서 달리 전해진 자료는 없다고 인정한다. 망대가 무너진 것이 건설작업 때문인지 혹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종종 찾아왔던 지진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예수가 이 사건에서 건축의 부실 등과 같은 인재의 측면을 지적하며 그 건설자들을 비난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 대신, 자연재해의 경우에서처럼 실로암 옆 망대가 무너진 이 사건에서도 희생자의 무차별성이나 무목적성,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의심, 하나님의 심판 가능성 등의 신정론적 고민을 청중들이 가지고 있음을 예수가 전제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우리가 리스본 지진이나 일본 지진과 같이 자연적 악에 대한 신정론 논의라고 부르는 것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며, 나아가 죽은 열 여덟 명이 실제로 지진의 희생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요컨대 실로암 망대 붕괴사건에 대한 예수의 견해와 지진 등의 자연재해에 대한 신정론 논의는 거의 동일한 존재론적 위치를 가진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따라서 본인은 예수가 누가복음의 이 부분에서 자연재해와 하나님의 심판 사이의 연관 고리를 끊고 있으며 하나님 심판론을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사실 이러한 ‘도덕적 범죄’-‘자연재해의 심판’이라는 연결고리에 대한 저항은 단지 신약성서 뿐 아니라 이미 구약성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세계의 고통에 대해 깊은 시적 통찰을 지녔던 화이트헤드는 욥기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욥기는 운좋은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애용되어졌던 손쉬운 해결책, 곧 ‘고난 받는 자는 악한 자이다’라는 해결책에 대한 항거이다.” 성서학자 서중석은 욥기의 결말이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침묵의 항거”로 끝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곧 욥기는 민족적 고난에 대한 손쉬운 대답을 거부하는 책일 뿐만 아니라, 죄와 벌 사이의 “인과율”을 거부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에 기초하여 본인은 자연재해가 도덕적 혹은 신학적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견해는 비성서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내린다.


5. 첫 번째 대안:
하나님은 지진을 허용할/일으킬 도덕적으로 충분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자연재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는 것은 잠재적으로 비성서적 관점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자연재해에 대한 기독교적 대답의 유일한 형태도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른 대안들 몇몇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제안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지진을 허용하거나 일으킬 도덕적으로 충분한 이유가 존재할 수 있다는 논리적 대응이다. 하나님의 이유는 우리의 인식 너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정론에 대한 논리철학적 논의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두 신학적 원칙들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명제들로 다시 나눈다:

1)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2) “하나님은 전선하시다.”
3) “하지만 악은 존재한다.”

만약 이 세 가지 명제 중에서 두 가지가 참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필연적으로 거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의 전능성, 하나님의 전선성, 그리고 악의 존재라는 세 명제 사이를 연결시켜줄 어떤 논리적 공통요소가 바로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결고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맥키(J. L. Mackie)는 다음과 같은 추가 명제를 제시한다.

추가명제 1) “선한 존재는 가능하다면 항상 악을 소멸시킨다.”
추가명제 2) “전능한 존재에는 못할 일이 없다.”

곧 이 두 추가명제 중 어느 하나라도 참으로 판명난다면, 하나님 존재와 악의 존재는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고,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전적으로 비합리적이고 비일관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맥키는 주장한다. 이러한 무신론적 도전에 맞서 파이크(Nelson Pike)는 추가명제 1을 비판하고, 플랜팅가(Alvin C. Plantinga)는 추가명제 2를 비판한다. 하나님의 전능성이란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못할 것이 없다고 분석하는 플랜팅가의 주장은 도덕적 악과 자유의지신정론의 관계에 있어 논의가 되고, 지진의 문제에는 직접적 연관성이 적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의하지 않고자 한다.
        파이크는 추가명제 1이 우리의 일상적인 도덕적 직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어떤 행동에 있어서 “도덕적으로 충분한 이유”(morally sufficient reason)라고 부른 것이 존재할 때, 우리는 그 행동이 가져오는 고통 때문에 행위자를 비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이에게 쓴 약숟가락을 억지로 강제적으로 밀어 넣는 아버지의 예를 생각해볼 수 있다. 아주 어린 유아의 경우 그것을 분명 이유 없는 물리적 폭력으로 인식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강제적 행동은 아이의 건강이라는 도덕적으로 충분한 이유를 가지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이크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허용하거나 혹은 가져오는 하나님의 도덕적으로 충분한 이유를 ‘실제로’(really)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유가 존재할 수 있다는 논리적 ‘가능성’(possibility) 자체가 악의 존재와 신의 존재는 양립불가능하다는 무신론적 비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악의 문제가 이러한 논리적 문제라면, 거기에는 사실 해답이 존재하는 것이다.


6. 다른 대답들을 준비하며 – 작업 도구

신정론의 문제가 단지 이러한 논리적 난제였다면, 어쩌면 그것은 쉽게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단지 “전능성”과 “전선성”이라는 최소한의 논리적 속성만을 지닌 존재는 아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고 세계 속에 성육신이 되시며 세계를 사랑하시며 구속하시는, 곧 훨씬 풍부한 형이상학적 전제들을 지닌 하나님이다. 다시 말해 논리적 난제로서 악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변증으로 바로 전환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논리적 뼈대에 훨씬 많은 형이상학적 전제들과 신학적 교리들이 살로 붙어져야 하는 것이다. 본인은 이러한 논리적 뼈에 살을 붙인 신정론 이론을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다양한 신정론 모델들이 어떻게 서로에게서 차별화될 수 있는가 보기 위해, 두 개의 작은 작업 도구를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예일대학교의 신학자 메럴린 아담스(Marilyn McCord Adams)는 ‘어떻게’(how) 하나님이 악을 구속하시는가의 방법(method)에 대한 성찰과, ‘얼마만큼’(how much) 하나님이 악을 구속하시는가의 범위(scope)에 대한 성찰을 나누고 있다. 악의 극복 방법에는 도덕적 “균형잡기”(balancing-off)와 미학적 “승리”(defeat)가 있다는 것이다. 균형잡기 방법은 일종의 보복적 정의의 개념이다. 행악자는 거기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되고, 희생자는 겪었던 고난에 상응하는 혹은 이보다 더한 보상을 받게 될 때 악은 극복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욥은 말할 수 없는 비극과 고통을 겪은 후 나중에는 보다 많은 양의 재물과 더 많은 수의 자녀들로 보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미학적 “승리”의 방법은 도덕적 상벌의 개념을 넘어서서 우주를 하나님의 거대한 예술적 시나리오로 보고, 거기에서 부분부분 존재하는 악의 상처가 어떻게 전체 시나리오의 아름다움에 기여하는가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아담스는 요한계시록의 시나리오는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의인과 죄인의 위치가 단지 바뀔 뿐이지 그 이원론적 구조 자체는 그대로 잔존하는 상상력이 빈곤한 B급 서부극에 가깝다고 본다. 반면, 누가복음의 수난 시나리오는 악인들조차도 그 평면적 성격에서 벗어나서 드라마의 아이러니를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악에 대해 뛰어난 미학적 극복의 예라고 제시한다.
        이러한 도덕적 “균형잡기”와 미학적 “승리”라는 방법론적 논의 외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범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아담스는 구원의 “우주적”(global) 범위와 “개인적”(individual) 범위라는 구분을 제시한다. 악의 극복이 우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주 전체를 구원하신다고 보는 반면, 악의 개인적 극복은 인간 개개인 모두를 구원하신다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 구분은 중요하다. 하나님은 모든 개개인을 구원하지 않고도, 천국과 지옥이라는 종말론적 대조를 통해 우주 전체를 구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담스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주 안의 개개인은 무시하고 단지 우주 전체를 한꺼번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아




신학사상 2011년 겨울호(155집) 차례
신학사상 2011년 여름호(153집)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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