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소개
 
 
연구소 약사
 
 
연구소 소식
 
 
민중신학 자료
 
 
독자마당
 
 
월간살림
 
 
신학사상
 
 
신간안내
 
 
도서신청
 
 
관련 사이트 링크
 
 
안병무 선생님
 


  광야의소리(2000-09-06 00:00:00, Hit : 9748, Vote : 1815
 청결한 한국교회를 위하여


 예수께서 유대 땅에 탄생하셨을 때 유대교가 극대로 부패해 있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성전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제사장들을 포함한 여당 측의 사두개인들과 깨끗이 살아야 하겠다는 야당 측의 바리세인들, 그리고 율법에 정통한 학자들로서 유대교는 운영되고 있었다.  성전의 종교 활동을 통하여 수입되는 제사장들의, 특히 대제사장들의, 경제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로마제국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대제사장은 이만 명이나 되는 제사장들의 총수로 정복 국인 로마제국도 잘 다독거려야 되는 인물이었다.  왕의 옷보다 더 화려한 예복을 입고 있었으니 과히 그들의 위엄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예수께서 보시기에는 이들이 인도하고 있는 유대교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했다.



 제사장들에게는 양성적 수입과 음성적 수입이 있었다.  성전에 바치는 헌금은 전자에 속했고 사회에서 중간 정도의 삶이 보장되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후자에 속하는 성전 이방인 뜰에서 나오는 수입은 상당한 것인데 대제사장의 몫으로 나오는 상납금--통치자금 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종교적 여운이 없음--은 막대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매해 참석하시는 유월절이 오면 절기 몇 주 전부터 세계 각처에서 몰려오는 순례자와 내국인 방문자들로써 예루살렘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제사장들이 소유하고 있는 성전 바깥뜰에 있는 간의 상점에는 손님의 발이 그치질 않았으니 유대교의 중요한 믿음의 절기들은 이제 상인의 대목 한철로 변하고 말았다.   

 

 부패가 이 정도에 이르렀으니 예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은(마태 21:12-16; 마가 11:15-18; 누가 19:45-46; 요한 2:12-22) 우연한 일이 아니다. 상아탑에서 살아가므로 민생고를 모르는 학자들은 실지로는 한 번 일어난 사건을 복음서 저자의 실수로 두 번 일어난 사건처럼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제사장들이 즐기는 부유한 생활의 원천이 되는 성전에서 나오는 수입에 비하여 민생들의 가난한 생활을 걱정하시던 예수이기에 성경 기록대로 두 번 청소하셨다는 의견이다. 예수의 행동이 그의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는 전제하에 강도의 굴혈로 변하고 있는 성전을 두 번씩이나 청결하게 하시므로 종교의 이름으로 강탈하고 있는 제사장들과 강탈당하고 있는 유대교인들의 신앙 생활을 경고하셨다는 나의 설이 더 설득력 있겠다. 예수께서--특히 공생애 시작(요한 복음)때와 마칠(공관 복음)때를 기해서--두 번 청소 못하실 이유가 전혀 없다. 횟수의 논쟁을 떠나서 학자들과 나는 예수의 이러한 경제의 안전을 파괴하는 행동이 그로 하여금 인간적 실패--처형당함--를 경험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소문은 유대인 서민들 사이에 이미 나돌고 있었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성전 청소는 썩어 가는 유대교를 청결하게 하는 교회 생성의 예견적 사건으로 보고 있다.  

 

 예수의 겁 없는 언행은 실권자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청년 예수는 소년 시절 성전 나들이에서 처음 본 안나스와 그의 사위 가야바의 간계에 휘말려 로마인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예수께서 열두살 때 걸어--갓 태어나서 부모 품에 안겨 가신 적 있음--성전에 가셨을 때 안나스라는 대제사장이 집례하고 있었음을 보았을 터이고 성경에 정통한 학자들과 며칠 함께 지나는 동안 가까이에서 만났을 가능성도 있다. 소년 예수가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장성한 예수는 안나스 집안이 예루살렘 본 성전의 대제사장으로 세습하여 부귀 영화를 누릴 것과 그 결과로 야기될 민족의 비극--육이오보다 더 참혹했음--을 내다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던 분이다.  로마법을 어기지도 않은 예수를 빌라도는 자기 부인--예수께서 중병을 고쳐 주셨다는 소문도 유대 땅에 있었음--의 정치적 촉감에서 나오는 충고를 따라 어떻게 하든지 살리려고 했지만 능숙 능란한 방법으로 십자가의 사형을 실현시키는 정치 십 단 안나스의 권모술수는 이후에 안나스 집안 남자가 아니면 대제사장의 자격이 부족하다는 전설을 남기고도 남을 만했다.

 

 안나스는 예수의 나이 스물이 되시기 전에 대제사장 지위에서 물러나 막후의 원로로서 실력을 나타냈다. 왕권과는 달리 자동 세습이 없는 대제사장직인 관계로 이스마엘이 대제사장에 올랐지만 이것은 순간적 모양새에 불과했다. 엘르아살이 곧 대제사장이 되었으니 이는 안나스의 장남이다. 엘르아살이 물러나고 시몬의 짧은 공백을 거친 후 안나스의 사위 가야바가 대제사장이 되었다. 장기 집권자 가야바가 예수를 물리친 후 몇 년 만에 타의에 의하여 대제사장에서 물러나자--빌라도도 동시에 좌천됨--안나스의 차남 요나단이 대제사장 직분을 물려받게 되었다. 요나단이 이년 후 물러나고 안나스의 삼남 데오빌로가 대제사장에 올랐다. 데오빌로 후에 다른 시몬이 공백을 채우고 사남 마티아스가 대제사장 자리에 대두했다. 마티아 후임으로 여러 사람을 거치더니 아나니야스라는 데베다우스가의 아들이 대제사장을 맡아보다가 목숨의 위험을 받을 정도로 사태가 위험하게 되어 물러나게 됐다. 그 후 안나스의 다섯째 안나으스 그리고 손자 예수아가 대제사장의 권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안나스의 다섯 아들과 사위 그리고 손자는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아 적절한 심사를 거친 후 다른 이들을 물리치고 로마 제국의 임명을 받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과정을 밝는 동안 안나스의 사람이 아니면 제사장의 자격에 미달함은 점점 더 확실해졌다. 안나스가의 대 제사장 세습을 지지하던 유대인의 종교성,  묵인할 수밖에 없는 유대인의 정서, 그리고 세습 받은 당사자들이 예루살렘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임을 사학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그 후 유대인들은 천 구 백년이 가까운 긴 세월동안 조국도 없이 그리고 오늘날까지 성전도 없이 나그네 삶을 살아왔다.  어떤 이들은 예수를 죽인 벌을 받아 그 고생이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아들 예수를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유익을 거부하면서라도 자자손손 부귀 영화를 계속 누리겠다는 종교 지도자들의 욕심과 그 욕심을 뒷받침한 대중들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신빙성 있겠다.



 오십 년 동안 대를 물리며 주고받던 영광의 자리를 차지한 안나스가의 여덟 명 대제사장들은 주후 66년부터 독립 운동 소용돌이 속에 민족에게 혹은 이방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후 너무 오래 살아 못 볼 것을 보고있다고 오래 산 자신들의 나이만을 애꿎게 나무라고 있었다.  주 후 70년 예루살렘이 점령 당하면서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파괴됨과 동시에 대 제사장의 자리는 땅위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고 그때 이후로 오늘날까지 한번도 제사 집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이 집례는 복구되리라고 성경에 예언되어 있음. 성전의 위치까지도 명확치 않다면 폐허치고는 너무 지나친 폐허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니 오 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본 후 산천은 의구하지만 인걸을 간 곳 없다고 애석해하던 길재가 본다면 산천까지도 다 없어진 것으로 시조를 지을 것 같다.  



 안나스가의 무능이 유대교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자는 없다.  차라리 무능했던들 이 경지는 벗어 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 집안에는 능력 있는 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유대나라를 살릴 뻔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민족과 국가와 유대교를 건설하는데 사용하지 못하고 결국은 파괴의 길로 인도하고 말았다.  이를 목격하던 제사장 조셉흐스가 애통해 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악이 가득한 도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로 이미 결정하셨고 성전은 불로 태워버려 정결케 되기를 원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전과 도시를 그토록 사랑하여 붙어 있던 자들을 떼어 팽개쳐 버리셨고 따라서 불과 얼마 전까지 만해도 성직자의 옷을 입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배를 인도하며, 땅 위의 모든 나라에서 찾아오는 방문객들로부터 존경받던 이들이, 알몸으로 내동댕이쳐 버려졌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개들과 들짐승의 밥이 되어 버렸다.  . . . 이것이 안나스와 예수아의 말로였다."" (Josephus가 쓴 유대인의 전쟁, 4권 6장 중에서)

 

 위의 열거한 역사적 사실들이 우리에게 길잡이가 된다면 좋겠다.  역사를 공부하는 자들의 장점 하나는 역사의 교훈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철학자 헤겔이 이야기 한대로 우리는 인간이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 어떤 사가들은 역사는 반복한다고 한다.  반복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고--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면 (야고보서 1장 15절)--죄의 결과를 고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반복하고 있다고 하겠다.

 

 예수는 교회를 청결하게 하시는 분이다.  유대교 성전을 혼자 청소하시던 예수는 반대에 부딪쳐 처형당하셨지만 그의 부활은 그리스도 인들을 참여하게 하여 유대교를 깨끗하게 하므로 기독교를 생성케 하셨다. 구교가 성경 말씀으로 개혁될 때 개신교가 되었다.  그 이후로 천주교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하여 많이 맑아지고 있지만 개신교는 점점 혼탁하여 지금은 종교개혁 이전의 상황으로 빠져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개신교를 정결하게 할 예수의 사람이 필요한 지금이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께서 한국 개신교를 청결케 하실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한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한 뜻을 나타냄--을 풀어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고 반문하시면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누가 18:7-8)고 염려하시던 예수는 이제 문 앞에까지 오신 것 같다.  교회의 표적이 (마태 16장 3절) 그렇게만 보여진다.






243   바른신앙을 찾는 분들에게  brightjohn 2000/11/25 8160 1569
242   책을 찾습니다.  carboni 2012/02/24 7408 1147
241   영화,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등을 무료로 감상하세요.  ChristTV 2001/05/22 8946 1513
240   한국개신교가 한국 근현대의 사회·문화적 변동에 끼친 영향연구  hk 2009/12/08 6578 1326
239   선교신학개요 구할수 없을 까요??모두 품절이네요 [1]  John Ahn 2006/10/11 6733 1028
238   하나님은 강대국의 하나님이신가? 아니면,하나님은 약소국의 하나님이신가?  John Kim 2004/05/11 7762 1308
237   광성교회를 사랑하는 교인  keijo 2005/01/19 8005 1406
236   국제성서주석 더이상 안찍나요?  sdevan 2010/10/16 7755 1402
235   살림 통권 149호 이야기 마당 '예수의 얼굴'에 관한  가순권 2001/06/16 9496 1540
234   예수님의 비유  강문호 2004/04/13 8148 1415
233   편집위원에 대해  강민 2003/10/14 7727 1333
232   주소변경....  강민성 2003/03/21 7478 1289
231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식사인가에 대한 질문  강병송 2003/04/09 10215 1420
230   안녕하세요  강욱 2000/08/24 9556 1452
229   받으면 절대 버리지 않는 효과 좋은 건강 전도지 입니다 1  건강 전도지 2003/06/17 7395 1274
228   국제성서주석  견진호 2014/08/30 4847 879
227   국제 성서 주석  고마워요 2011/12/01 6755 1081
226   국내 유명 모든 목회자 설교가 있는 홈 ?  곽노철 2000/09/30 8485 1485
225   신실한 목사는 어디에: 역사가 주는 교훈 한가지  광야의 소리 2000/09/24 9698 1458
  청결한 한국교회를 위하여  광야의소리 2000/09/06 9748 1815

1 [2][3]..[13] [다음 3개]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
한국신학연구소 / Korea Theological Study Institute / http://www.ktsi.or.kr
03752 서울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55 선교교육원내 / Tel 02-738-3265~7 , Fax 02-738-0167 , E-mail :
Copyright 2000-2020 KTSI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