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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선생님
 


  김인찬(2007-06-18 10:57:48, Hit : 6496, Vote : 1014
 [밀양] 이창동 영화는 극장에서 관람하지 말자]



[밀양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불신앙 그 자체이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재미없는 영화이다. 초기 흥행실패가 입증된다.
사실 돈이 아까운 영화에 속하는 부분이 많다. 많은 네티즌들도 공감한다.

이 영화가 교묘한 것은 전도연(신애)의 처절한 눈물로 기독교인들의 반감을 무마시켰다.
그 뒤에 숨어있는 기독교에 대한 추락을 한 여인의 슬픔으로 교묘하게 위장시킨 것이다

하필 부처가 세상에 왔다는 날에 이런 반기독교적인 영화가 개봉되었다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그는 기독교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고도 남을 만한 기이한 영화를 만들었다. 일명 사탄의 영화이다. 불교의 축제날 기독교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 영화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먼저 출연진들의 종교부터 철저히 알아봐야할 지경이다.
목사는 울산 공무원이라고 들었다. 나머지는 여러분들의 협조가 요청된다.
경상도가 불교권이 강하다고 하지만 한 감독이 이런 수법으로 기독교를 폄하한다는 것은 제2의 도올 사건보다 더 큰 충격적인 일이다.

다시는 이창동과 그와 관련된 영화는 극장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개종한다면 몰라도 그 이전에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의 영화를 전면 거부해야 할 것이다.

이 영화의 타격은 선교자체를 심각하게 막아버리는 중대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미 해외에서 상을 받았으니 해외선교에까지 미치는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이를 묵과해서도 안 되고 응당한 기독교인들의 모든 단합이 요구될 것이다.

이제 세상문화가 기독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종교영화도 아니면서 기독교를 폄하하는 비상식적인 내용들이 가득하다.
이것은 기독교에 대한 반감정적인 신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를 기독교인은 절대로 돈을 주고 보아서도 안 된다.
차후에 텔레비전에 나오니 그 때 보아도 늦지 않다. 보면 절대로 후회한다.
이런 영화는 망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기독교인들의 단합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 영화의 결정적인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를 기독교 전체의 문제로 오해하게 만든 요소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신앙이 일반적인 기독교신앙으로 확대되어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전도연(신애)의 역할도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신앙이었다. 철저히 자신을 위한 자신과 가족을 지켜주는 그리고 자신만을 위로해주는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자 그는 하나님과 정면으로 대결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이 되셔야 하는데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에 하나님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결정적인 인간 중심의 신관이 이 영화에서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살인자를 전도연이 먼저 용서해주어야 된다는 것이 강조된 내용은 철저히 하나님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전도연(신애)이 용서해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살인자를 용서해줄 수 있고 전도연(신애)이 용서해주어도 하나님께서는 살인자를 용서해주지 않을 수 있다.(진정으로 회개가 필요) 이 영화는 용서의 기준을 인간에게 맞춘 전형적인 인본주의 영화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초점은 인간의 용서가 먼저이지 하나님의 용서는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만든다.

과연 그런가?
여기에서 결과적으로 전도연(신애)은 살인자를 끝까지 용서해주지 않았다.
또한 그 살인자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줄 알고 크게 착각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 그런 몰지각한 살인자의 행동은 기독교를 이기적인 종교로 오해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하다. 살인자의 태도가 그렇다면 하나님도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전도연(신애)이 모르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살인자가 끝까지 전도연의 용서를 거부하고 오히려 더 악날하게 나오더라도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는 그러한 자들까지도 모두 용서해주어야 된다는 절대용서의 종교다. 왜 기독교인이 순교하면서 자신에게 고문하는 자들을 끝까지 용서하면서 죽어 가는가? 그 이유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호소한 것을 기억하면 금방 알 것이다.

이것은 바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같은 호소였다. 어찌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겠는가? 인간은 근본적으로 상대적이다. 인간의 생각이 옳은 것은 하나님도 옳은 것이며 인간의 생각이 틀린 것은 하나님도 틀릴 것이라는 것이 인간중심의 사고이다. 마치 하나님을 인간과 수평적인 관계로 설정해 놓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인간중심의 사고이다.

사실 이러한 수평적인 신관은 인본주의 사회에서 지금 만연하고 팽창되고 있다.
기독교의 사랑은 어떤 종교에서도 가늠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랑과 용서를 말한다.
그것은 아무리 악한 자라도 죄인이며 아무리 선한 자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용서받을 수 있듯이 하나님의 자녀도 모두를 용서해야 한다.

이것을 놓치면 인간을 신과 대등한 위치로 설정해놓고 인간의 선이 곧 하나님의 선이며 인간의 악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악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철저히 인간중심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사회에서 기독교의 독선적으로 보이는 신앙을 비웃기라도 할 것이다.

과연 기독교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가?
먼저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다. 이것은 다른 종교와 좀 다른 특징이 있다.
이런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은 적어도 기독교 안에서는 다른 종교를 참 종교로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범위이다.(영적) 그런데 이런 종교적인 것을 일반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려는 것은 큰 오해이다. 종교는 종교이지 사회집단이나 국가와 같은 시민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종교일 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있는 정종분리의 원칙은 유일신이나 범신론이나 모두를 인정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문제를 크게 일으키는 것은 사이비 종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독교의 근본정신은 종교로써 하나님 사랑과 그리고 이웃사랑이다. 이것은 불변이다.
또한 기독교는 한 종교로써 자유민주주의 국가 안에 있는 공식적인 종교다. 이것은 민주사회에서 유일신을 믿는 종교를 인정하는 미국이나 기타 모든 발전된 선진국 나라에서도 공히 인정되고 있다.(정치 선진국에서는 더 폭넓게 인정)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는 요즘 철저히 범신론적인 종교관으로 사람들이 변해가고 있다.
도올이 대표적인 예이다. 도올의 주장처럼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함께해야 된다는 것은 매우 비상식적인 종교관이다. 종교는 사회봉사 단체가 아닌 비영리 단체인 종교일 뿐이다. 그리고 정종분리의 원칙을 지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안에서 언제든지 어느 곳에나 인정받는 종교가 기독교라는 사실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민주주의를 이룩하는데 있어서 특별히 공헌했던 종교도 기독교였다.(도올도 인정)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유렵에서 종교개혁을 일으켜 시민혁명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유렵에서 시민이 중심이 되는 의회정치가 탄생하게 됐던 것이다. 불과 약 130년 전 우리나라는 지극히 폐쇄적이었다.

그때 조선은 민주주의와는 사실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 때는 국가와 종교가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즉 정종분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서양종교가 들어 올 때에 매우 심한 핍박을 가했던 것이다. 이런 나라에 민주주의 뿌리를 앞당긴 가장 결정적인 종교가 기독교라는 사실을 왜 국민들은 벌써 잊었는가?

교회를 가봐라! 대부분 의회정치를 행하고 있다. 그래서 지교회가 좀 시끄러운 것이다. 카톨릭이나 유교나 불교의 정치는 교회가 행하는 민주정치와는 비교도 안 된다. 교회는 지금 교인들의 교회로 급전환 중이다. 그러니 당연히 소음이 나고 있는 것이다.(본인은 이런 현상을 반대한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독교 평등사상으로 말미암아 조선이 유교적인 불평등한 사회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기독교가 어느 정도 감당한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기독교를 다른 종교보다 덜 떨어진 것으로 비판하려는 것은 이제 한국이 배불렀기 때문이다.(도올과 같이) 과거를 벌써 잊었다는 것이다. 평민과 양반으로 갈라진 사회가 급속히 무너진 결정적인 원인도 서양의 문명과 문화가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이제 배부른 한국사회는 과거를 벌써 잊어버리고 있다.
종교는 종교이다. 만약에 종교의 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카톨릭은 가장 독재종교이다. 그리고 불교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이다. 종교와 국가를 분리하지 않고 마치 기독교를 한 사회집단으로 보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시각이다. 종교는 신을 믿지만 국가는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찌 서로 같은 종류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서로 인정해주면서 공존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앞서 말한 기독교의 절대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보여주었다. 우리보다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해서 희생했던 것이다.

이것은 위에 있는 하늘의 사랑이 땅 아래로 내려 온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추구하는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이 된다. 하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이 땅에서 무한히 용서해야만 되는 것이다.

밀양이라는 영화는 이렇게 철저히 인간중심의 사회에서는 찬사를 받을 것이다.(칸 수상)
그렇다! 인간은 별수 없다. 인간은 인간의 기준으로 신도 만들어내고 신의 개념도 만들고 신을 저주하기도 하고 신을 선하게도 만든다. 인간중심의 극치는 신을 심지어 인간 아래에까지 놓으려고 한다.

이제 인간 중심의 사회는 신을 인간 안에서 신을 버리려고 한다.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아래 인간 없다는 세계관으로 나타난다. 즉 인간만이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나타나고 있다.(신도 평가) 이러한 모습은 인간의 지식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더욱더 주장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 영화는 신을 가상적인 존재로 끌어들였지만 신을 정식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다.
신을 실존적으로 인정한 영화라면 신애는 끝까지 그를 용서함으로 결코 사람으로써는 감히 용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보여주었어야 했던 것이다. 어찌 신을 믿지 않고 이 사랑이 가능하겠는가? 이창동씨는 신을 믿지 못한다. 신의 절대적인 사랑도 알지 못한다. 설사 안다고 했다면 무한한 신의 사랑을 도출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것은 요즘 지식인과 문화인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교만이다.

이것은 도올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도올도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공존하면서 화해하고 대화하면서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올의 생각은 종교는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므로 모든 종교는 인간의 화해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가 추구하는 유일신과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은 다른 이방인들에게는 독선적이며 심지어 이기적이므로 없어져야 한다고까지 말하는 안티들의 주장과 같다.

그러나 한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결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하늘에서 온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사랑을 믿는 자들은 인간을 사랑해야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 뿐 아니라 예수와 같이 자신을 져버리는 자들까지도 용서해야 한다. 또한 겉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는 속옷까지 벗어주는 선행을 가르쳐야 한다.

도올은 기독교 정신이 요즘 희박해졌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기독교를 전체적으로 폄하하는 세상의 문화인과 지식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깨달으라는 것이다.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기독교를 그리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공산국가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지금도 연명하는 종교가 기독교이다.(지하교회)

그래도 기독교는 한국사회 속에서 여전히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많은 교회와 목사님들과 교인들이 있으며 그리고 숨어서 남 몰래 일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까지도 도매금으로 함께 기독교를 통째로 비하하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이 독선이다.

기독교 정신은 남 몰래 일하는 것이 무척 강조되는 종교이다. 그래서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많다. 사실 얼마 전에 “칭찬 합시다”라는 프로가 있었다. 거기에서 어느 종교가 더 숨어서 일을 많이 했는가? 역시 기독교였다. 한국에 18%의 기독교가 가장 큰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은 종교의 특성이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실 왜 기독교를 요즘 폄하하려는 것인가? 그것은 그들의 사고의 기준으로 기독교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불교나 천주교나 여타 여러 종교들과 함께 공존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종교의 특성상 함께 일하거나 타협하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범신론과 어떻게 함께 일하겠는가? 그럼 차라리 유일신을 포기하라고 말하라! 이제 국민은 좀더 정직해져야 한다. 서양종교의 특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정분분리의 원칙에 의해서 정식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있는 세계적 종교이다.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으며 다른 종교와 공존을 하지만 스스로 독립적인 종교로 활동한다.
기독교는 사회 속에서 그래도 선한 일을 행하고 있다. 비리는 사이비들의 일부 소행이다.
기독교는 사회집단이 아닌 종교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단순히 사회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면 곤란할 것이다.

교회문제는 어디까지나 교회의 문제이다. 만약에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면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로 크게 확대 될 수 있지만 일부 사이비교회의 사회적인 부작용을 가지고 기독교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키려는 방송은 큰 실수였다.(사이비들의 사회적 물의)

정말로 민주국가에서 정종분리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다른 종교는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서 타도의 일순이가 되는 것이다. 천주교는 민주화도 안 되었고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독재 중에 독재이다. 민주주의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당장 타도의 대상이다. 그러나 정종분리로 바라보기에 종교적으로 특별한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없는 한 언론도 전체적으로 확대하려는 것은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민주주의 정치를 하고 또 그것이 성숙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종교 내부의 일이다. 그것을 사회적인 기준인 민주주의 사회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자체가 이미 정종분리의 원칙을 깨뜨리는 발상이다.

교회의 문제는 교회의 문제이다. 국가나 정부 혹은 국민들은 이런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민주정치를 하는 교회의 정치적 혼란도 내부의 문제이다. 국가정치의 혼란이나 사회의 혼란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종교적으로 해결해야하는 내부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가 잘못한다고 교회가 대모하면서 정치에 직접 참여해서 실력행사를 자주해야 되겠는가? 종교는 국가와 분리되었기에 실력행사를 자체하는 것이다.(물론 주장은 할 수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 정종분리의 원칙을 잘 지키는 것이다. 종교에 위협이 될 만한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니면 교회는 국가의 일에 결코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 없다. 이런 기본적인 국가와 종교의 특성을 국민들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일반 사회와 종교의 관계로도 볼 수 있다. 목사를 국가가 세우는 것도 아니고 시민들이 세우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스스로 알아서 운영되는 국가 안에 있지만 국가와 분리된 비영리 단체이다.
또한 종교와 종교는 서로 다른 특성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다른 종교들은 서로 함께하면서 일한다고 칭찬하면서 기독교만이 홀로 독자적으로 활동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이미 종교의 특성을 무시하는 무지한 발상이다.

이제 국민은 기본을 알자.
정종분리의 원칙을 알아야 하며 종교들의 다양한 특징을 알아야 하며 종교와 종교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것을 통해서 종교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cafe.daum.net/hosannakim

(2007년 5월 28일 김인찬 목사)



**[독자에 대한 답변]**

불신자는 수직적인 사랑의 관계가 없습니다. 오직 수평적입니다. 우리는 수직적인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그 수직적인 사랑의 관계로 말미암아 수평적인 무한한 사랑이 가능합니다. 오직 신자만이 수직적인 사랑의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이라는 것은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유일한 도구입니다...믿음 없는 불신자들이 믿음을 주장하는 기독교를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물론 일반적으로 사랑의 모습을 보는 것은 가능합니다....그러나 사상적으로 깊은 사랑의 깊이는 하늘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그 믿음에 의해서 하늘의 사랑을 체험한 자들이 참신자입니다.

해탈과는 다릅니다. 불교의 해탈과 자비 기독교의 믿음과 사랑은 근본적으로 달리 출발합니다.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은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영화의 결정적인 문제는 마지막까지 기독교의 신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공평하게 영화를 다루었다면 신에 대한 원망과 그리고 신에 대한 사랑을 마지막에 찾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기독교를 다루었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끝까지 신으로부터 신애가 도움을 얻지 못했다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납니다.
결국 이 영화의 목적은 처음부터 신의 도움이 인간의 불행에 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일까요?

=====

예.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그 영화에서 많은 기독교 배경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면이 거의 없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신애가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지만 결국 그렇게 설정한 의도는 배도를 위한 준비된 작업으로 봅니다. 결과가 그렇게 나타납니다.

좀더 객관적인 영화라면 신애가 여기 저기 다른 종교들을 통해서도 도움을 얻지 못한 것으로 설정했다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탄생을 기념하는 날에 기독교를 비하하는 영화가 나왔다는 그 자체가 이미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기독교만을 가지고 신을 찾지 못한 것으로 설명되어지는 이 영화는 결국 기독교의 신은 인간의 삶에서 멀리 있다는 것이 불신자들이 갖게 될 결론입니다.

실제로 제가 영화를 보신 분들께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좀 불편했다고 말하였고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까지 했습니다.

어떤 비기독교 관람자분은 이 영화로 기독교의 객관성이 떨어졌다고 솔직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사회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종교적이며 영적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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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웅변학원 원장의 태도는 상식을 벗어난 것입니다...

사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남을 충격에 빠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멀다고 봅니다..저의 의도는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자신이 죽였던 아이엄마 앞에서 그럴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든지 자유라고 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실제가 아닌 영화이기에 저도 그가 하나님을 진실로 믿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글쎄요,,,그리고 그렇게 상식 밖으로 행동하게 만든 영화설정이 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일반적인 것이 아닌 비상식적인 신앙을 가지고 일반적인 것으로 영화가 전개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반 대중에게 나타난 그 장면은 개관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

‘밀양’이 ‘할렐루야’라는 영화와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할렐루야에서 박중훈(극중)은 목사의 역할을 감당할 때에 거룩한 자로 행동합니다.

이것은 목사에 대해서라기보다 기독교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신중한 것으로 봅니다.
만약에 목사의 부도덕한 면만을 강조하면서 박중훈이 열연했다면 아마 그 영화는 기독교의 저항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큰 부작용이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종교를 폄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다르다고 봅니다.

이 영화를 위해서 독실한 실력 있는 기독교 배우를 선발해서 만들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됐을 것입니다.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압니다. 전도연(신애)의 모습에서 연기라는 것을요. 사실 연기는 연기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그런 연기를 했다면 실감이 더 되겠지요. 문제는 신자가 연기했다면 결론은 믿음의 결과로 끝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신자에게 이런 밀양이라는 영화를 부탁했다면 거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하나님께 도전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며 결론도 그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부해야 마땅합니다.

제가 본 것은 영적인 깊은 내면의 것입니다. 전도연은 배우이지만 신자는 아닙니다.
그 연기의 한계를 세상은 결코 모르고 칸 수상을 주었습니다. 목사인 나는 그 연기를 연기로 보았습니다. 실재로 신자라면 달랐겠지요, 이 영화의 목적에 전도연(수애)은 잘 맞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출연하는 자들이 극과 극을 넘나드는 것은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신자이면서 연기자였다면 신자로써의 연기와 그가 과거 불신자로써의 연기가 모두 반영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이 영화의 한계는 한 쪽만 경험한 자들이 만들었으며 한 쪽만이 목적이었고 또 그것을 달성한 것뿐입니다.

기독교인이 만들었다면 결론은 극과 글을 넘나들었지만 결론은 하나님으로 돌아갑니다.
그 극과 극은 참교인만이 체험한 것입니다. 참교인만이 영적으로 살림을 얻었으며 과거 자신의 추악한 상태를 동시에 알고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결코 참교인의 체험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극과 극의 연기를 한다는 것은 그 모두를 경험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영화는 신을 수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출발한 감독과 연기자가 열연했습니다. 그것을 신앙인인 제가 모르겠는지요, 저는 압니다. 적어도 그들에게 그 결론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살림을 얻는 다는 것은 사실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아닙니다.
그 관계는 새로운 수직적인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세워지면 수평적인 인간의 관계는 완전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그것은 절대적 사랑과 용서를 지향하게 됩니다.

하늘과 땅의 관계가 그리스도로 회복된 자들만이 가능한 사랑과 용서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오늘도 그 영원한 관계가 우리의 땅의 삶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려면 먼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늘과 땅의 회복의 관계를 알아야 하며 그 관계로 땅에서 진정한 하늘의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냉철하게 지적하려면 기독교인이 그것을 지적할 자격이 먼저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치부를 드러내려는 목적이 아닌 그 치부를 드러냄과 동시에 회복을 만드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열망입니다.

단순히 모순을 찾는 영화가 아닌 그 영화 속에서 하늘까지 설명되어지는 것이 있어야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용서가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빠졌던 것이 이 영화입니다.

====

그렇습니다. 영화는 영화입니다.

문제는 영화를 본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사상적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단순히 영화이지만 영향은 있다고 봅니다.

그 영향은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리 크지 않다고 봅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비기독교인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얻어지는 영적부작용입니다.

사실 교회에 미치는 영향보다 일반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걱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비기독교인들은 이 영화자체에 대해서 영적인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심겨지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입니다.

다빈치 코드로 말미암아 성경을 왜곡해서 이해하게 된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즉 이미 영향을 크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사탄의 전략은 매우 부드럽게 접근하기도 합니다.
별로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결국 이 사탄의 열매를 맛본 자들은 어김없이 사탄의 속삭임으로 자신도 모르게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앙이 없는 영혼들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되지요,

우리는 영적인 독을 심어주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문화의 독, 철학의 독, 지식의 독 등으로 사람들은 신을 가상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 시대의 사탄의 전략으로 평가합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옳다 혹은 아니라 이 둘 중에 분명히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간이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사탄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나타났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됩니다. 그런 자들에게 가장 경계할 것은 세상의 누룩입니다.

결코 세상은 달콤하지만 우리의 영혼에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적절하게도 세상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또한 사랑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의 한 복판에 서있습니다.
그 싸움이 모두 끝나는 것은 여기가 아닌 저기입니다.(낙원)

우리는 치열한 영적인 싸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싸움의 대상은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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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은 사실 기성교회의 문제를 파헤치는 내용으로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에 신앙인들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이 영화는 극과 극을 넘나드는 시도를 함으로 기독교의 신을 인간 밖으로 몰아내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영화가 경종을 울리는 것은 기독교가 아닌 이단이라고 말하는 구원파에게 경종이 될 뿐입니다. 구원파는 살인해도 의인이라고 자랑한다고 합니다...

이런 극단적 구원파에게 극단적인 이 영화가 해당될 것으로 봅니다.
일반적인 교회를 끌어들여 이런 극단적인 영화를 만들었다는 자체가 이미 도를 넘은 것입니다. 이 영화는 구원파 교인들이 모두 보아야 할 영화라고 봅니다.

혹시 이창동씨가 구원파에 대해서 알지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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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민감하지만요......?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창동씨는 현정부의 전직 장관이었습니다..

사실 현정부에 기독교가 매우 부정적으로 대한 정치적인 것이 많았습니다..
한국교회는 보수주의가 강합니다...당연히 현정부에 대한 사학법이나 기타 보안법 등등 모든 부분이 보수주의 색깔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 관계로 이 정권의 역공이 사학법개정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것들도 여기에 해당됩니다..노무현정부는 어느 정도 코드정치를 하였습니다...정치적으로 보면 보수주의자들이 정권을 이끌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는 현정부의 개혁을 지금도 지지합니다....이것이 제가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의 지나친 수구적인 자세가 현정부로부터 그리 좋은 인상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제가 이 글에 정종분리를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의미가 숨겨있습니다....

정종분리는 성경적입니다...그러나 한국교회는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였습니다..
그런 결과 보주주의 한국교회는 진보주의 정부로부터 역공을 당한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종교의 정종분리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창동씨나 이 정부에 몸담았던 진보적인 자들의 눈에 기독교는 결코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그래서 엠비씨의 역공도 그런 이유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현정부, 도올, 이창동, 엠비씨 등등 현정부를 지지합니다.
이들이 기독교의 보수주의에 대한 깊은 우려가 반영되어 은밀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정치적인 개입에 대한 우려입니다...그리고 그 역공일까요??

목사가 끄떡하면 삭발하고, 정부의 대북정체에 빨간 띠 두루고 현정부에 감정적인 대형교회 원로들의 태도는 사실상 현정부에서 볼 때는 정치적인 집단으로 교회를 착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어쩌면 자업자득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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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이 영화의 배경이 기독교가 아니고 천주교가 해당되었다면 천주교의 이미지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큰 타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천주교나 불교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그들은 기독교와 달리 단합이 잘 되고 있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렇듯 이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평이 그리 좋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미 수차례 방송을 통해서 기독교와 관련된 사이비들의 문제가 거론되었고 특히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비리와 사립학교 운영의 문제까지도 거론하였습니다.(목사세습 등)

이런 모습이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불교나 천주교 등은 사실 조용한 편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그 만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는 반증도 되지만 부작용의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도올과 방송 그리고 영화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일련의 사회적인 불신에서 비롯된 것일 것입니다. 안티들이 주로 기독교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이 계속 이어진다면 한국교회가 침체된 현 상황에서 더 이상 부흥은 기대할 수도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구원의 손길을 뻗어야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이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날로 그 위험수위를 높여가고 있고 나아가서 이제는 공식적으로 거론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개입한 것도 한 원인이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교회 스스로 건전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즉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것도 해당됩니다. 자성하고 반성하며 앞으로 잘하려면 뭐가 문제가 있는지 아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외부의 이러한 비판적인 모습들을 우리는 관심을 가지면서 또한 이러한 비판이 정당하지 못했을 때에는 정당한 주장을 해야 합니다. 아마 이대로 20년 지나면 이 사회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눈은 매우 차가운 시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의 자성으로 우리가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환경이 되겠죠.

그렇다고 이러한 상황을 그래도 눈감고 지나갈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기독교인들의 화합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불교나 천주교는 이미 단합이 잘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실 분열이 되어서 외부에서 상식 밖으로 비판해도 기독교의 연합된 소리는 매우 작은 소리로 들리게 됩니다.

만약에 입니다. 만약에 한국교회가 하나로 된 교회라면 어느 누구도 교회를 쉽게 비판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치인, 연예인, 지식인, 사업가 등 누구도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을 매우 신중하게 고려한다는 것입니다.

일단은 표심이 있고 시청률이 있고 상업성이 있는 큰 시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갈라진 만큼 외부의 공략이 쉬워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만든 원인도 있다고 봅니다.

특히 이단들도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의 어두운 부분들입니다. 그들은 교회가 갈라져서 하나 되지 못하는 틈을 노려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누구의 우리의 책임으로 통감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단의 문제는 더 확산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지금 개혁하려는 의지가 없고 우리가 스스로 쉽게 생각한다면 향후 기독교의 이미지는 더더욱 추락할 것입니다. 이미 추락했지만 앞으로는 그러한 추락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교회 스스로의 노력 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이 노력은 목사만 해당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성도들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제 교회는 이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비판받고 거론되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이런 교회의 자화상을 어떻게 치유해야 될까요?

철저한 교회의 자성이 필요합니다.
교회 스스로 개혁할 의지가 있다면 교회는 스스로 사회 속에서 소금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이제 하나님의 교회로써 그 거룩함을 회복하고 하나 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먼저 교회의 정종분리가 잘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적인 비판을 우리 스스로 끌어들인 원인이 정종분리의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되는 운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천갈래가 넘는 교단에서 적어도 서너개의 교파로 나타나야 한다고 봅니다.
갈라진 교회는 결코 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외부의 침투를 적절히 막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램은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기독교인들이 교회의 문턱을 높게 여기는 것들을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헌금을 자율적으로 드리도록 하는 것이 한 예라고 봅니다.

또한 교회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사회 속에 어려운 자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모습으로 나가야 합니다. 즉 교회운영에서 사회봉사(여기에서 봉사는 선교목적)로 그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과정이 없이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것은 욕심으로 생각합니다.

요즘 사회인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려는 것들은 어쩌면 교회가 이 사회에 필요하다는 반증이 됩니다.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그런 비판은 교회에 뭔가 요구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가 바라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범신론 종교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사회와 함께 보편적으로 흘러갔습니다.
사회 속에 있는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는 종교로 나타나는 특징이 일반 종교들입니다.
유일신 기독교는 어느 사회에서나 그 사회보다 더 높은 도덕적 규범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용서 그리고 믿음은 일반사회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적 가치는 인간 안에서 오는 것이 아닌 인간 위에 계시는 절대자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회도 그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절대자 하나님을 믿지는 안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절대자의 하나님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 일반사회에서 부패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이것은 기대를 갖고 있는 사회의 지식인들도 실망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실 실망은 그들은 일반적인 것과 유일신이라는 절대자를 믿는 종교는 다르다는 것을 그들도 조금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일신을 믿는 자로써 참 신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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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얻는 것은 기독교 불신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자성을 요구했다면 교회의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다..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가?
정상적인 기독교인이면 교회의 비리를 세상에 공개하지 못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치열하게 개혁하는 마음일 것이다.
이것은 신앙인의 최소한의 양심이다.

이창동 감독이 크리스천이 맞는지요. 글쎄요?.......의문이 되네요?

이 영화는 기독교를 대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문제는 비기독교인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얻는 것은 유익보다는 부작용입니다.

저는 실제로 이 영화를 본 비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극장 앞에서 제가 설문조사 하듯이 묻는 과정에서 얻은 것은 비기독교인들은 이 영화를 통해서 기독교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창동 감독께서 신중할 필요가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의 글이 [나누고 싶은 글]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불신자를 걱정하는 저의 마음에서 기록한 글입니다. 제가 괜한 말을 여기에 적었는가 생각되네요..


본인이 목사로써 기독교의 비리를 적나라하게 알고 있지만 차마 세상에는 널리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에게 알려지면 그들이 하나님께 영원히 등을 돌릴까봐 두려워서입니다.
개혁적인 글을 올리더라도 교회 안에서만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로 인해서 불신자들의 많은 영혼들이 지옥불에 떨어진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이것은 실재가 아닌 영화에 불과하다. 사람의 누룩과 같은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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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비리를 세상에 널리 알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불신하게 되어 타종교로 이동하거나 혹은 아예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포기한다면 그것이 영적부작용입니다....내가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요.

제가 이 글을 왜 안티가 많은 불거토피아에 올리지 않은 줄 아시는지요, 이 글로 인해서 안티들이 ‘밀양’을 보자는 운동을 전개할까봐 두려워서 입니다. 이 영화를 본 비기독교인들은 어김없이 기독교의 타락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죽어가는 영혼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영화는 역효과가 분명합니다. 칸 수상으로 영화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선교할 대상자들을 많이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전도가 쓸모가 없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만든 환경일 것입니다.

저는 다빈치 코드가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그리고 지금도 주고 있습니다...이미 그 책은 엄청나게 팔려나갔습니다....그리고 필독으로도 추천되기도 한 책입니다...요즘 안티들이 이 책내용으로 선동하고 있습니다...이런 책들로 인해서 많은 불신자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물론 이런 책은 처음부터 그 목적이 상업성이었습니다..

이번은 다릅니다. 한국교회 자체를 비정상적으로 투영했다는 것입니다....그 투영이 철저히 교회의 이기주의 신앙에 초점을 맞춘 것이 문제입니다....이 영화를 본 비기독교인들은 교회를 이제 그러한 곳으로 생각할 마음이 조금더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과연 교회도 별수 없군..! 이런 말이 나온다면 결국 부작용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지금의 헌금제도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습니다...그러나 어찌되었든 마음이 있어야 돈을 쓰는 것입니다...유흥업소에 가서 펑펑쓰는 것은 아깝지 않고 교회에 헌금하는 것은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올과 같은 자들일까요?..오히려 교회의 헌금은 세상에서는 기부금으로 보고 있습니다...그래서 세금공제도합니다..그런 헌금을 무조건적으로 이방인의 시셈으로 비판하는 자들이 안티들입니다...그렇습니다..헌금은 우리는 기부금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그러나 기부금으로만 도올이 생각했다면 그렇게 강력하게 남의 종교를 비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설사 헌금으로 교회를 짓고 교육관을 짓더라도 그것은 엄연히 교인들이 알아서 하는 교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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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내용에 대해서 소견을 논하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내용보다 이 영화로 인한 파급효과 즉 기독교에 대한 역반응을 생각한다면 결코 무난한 영화가 아닐 것으로 사료됩니다.

저의 생각은 이 영화를 두고 갑과 을로 나누어지는 것은 그 내용 안에서는 적어도 그다지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제가 문제를 삼고자 하는 부분은 그 영화로 인한 그 다음 문제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이 영화가 선교에 도움을 주는 영화인가?..아니면 아닌가?,,라는 문제입니다..저의 생각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 영화를 접한 비기독교인들은 이 영화를 통해서 이미 기독교에 대한 인식을 차갑게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회의적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기독교 영화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고통과 순교,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순교, 로마의 압제에서 처절한 성도들의 순교 등등,,,,....이런 영화들로 성도들이 신앙에 도움을 주는 것은 마치 부흥집회와 같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이 이번 ‘밀양’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한번 인식된 차가운 마음은 평생을 갑니다. 이것이 차이점일 것입니다. 복음만이 사람의 마음을 굳게 유지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 복음이 교회에 현저히 약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이 사실상 가장 큰 문제이며 걱정이겠지요, 복음으로 변화된 자는 어떤 학습보다 효과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확신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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