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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선생님
 


  조이스피노자(2007-08-03 20:32:52, Hit : 13795, Vote : 3648) 
 역사와 반역사의 해방/구원

패배자의 역사로서 고난사 그리고 해방적 진보이데올로기

그리스도교의 구원의 회상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실제적이고 포괄적인 고난사는 유한자와 죽음의 슬픔이며 망각된 슬픔이며 죽은 자의 슬픔이다. 이러한 슬픔과 대립해서 그리스도교 구원의 사신은 해방하며 의미를 주는 사신이다. 이러한 고난사의 차원은 경험될 수 있는 고난사에서 결코 부가적으로 더 부당하게 요청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구원론은 진정한 고난사를 궤변적으로 숨기지 않는다. 그 이상으로 자유역사는 항상 고난사로도 머문다.26 이것은 아픔, 슬픔, 우울함으로 남는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과거의 보증되지 않은 슬픔, 죽은 자의 슬픔 안에 말 없는 고통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미래 인종/종족의 더 커다란 자유는 지나간 슬픔을 다시 좋게 만들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지도 않는다. 죽은 자를 정의롭게 다룰 수 있는 어떠한 내세의 개선책도 충분하지 않다. 어떠한 개선책도 지나간 고통의 무의미와 부당성을 변화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27 고난사의 이러한 위상을 넘어뜨리거나 또는 배제하는 해방적 역사는 자신을 감소하시키는 추상적인 자유의 역사가 된다. 이러한 자유의 진보는 종국에 비인간성으로 되는 행진곡으로서 완성된다.
재차로 추상적인 자유의 역사는 순수한 성공의 역사, 순수한 승리의 역사로서 고발된다. 여기에서 역사의 자유의미는 승리자, 성취자에게 예고된 범주인 희생의 패배자(Vae Victis)!이다. 하지만 희생의 패배자는 자유의 역사에 대한 의미원칙이 아니라, 자연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정확한 다윈주의의 정의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추상적인 자유역사는 결론적으로 다름 아닌 모방된 자유의 역사이다. 그 부분에서처럼 여기에서도 더 강한 자의 권리와 생존자의 선택원리가 유효하다. 그러한 자유는 증가되며 판결 받은 죽은 자의 뒤에서 전진한다. 조상의 슬픔은 부득이한 경우에 조카의 행운 가운데 신뢰를 발견한다. 지나간 슬픔은, 이반 카라마조프가 표현했듯이 미래의 조화에 자양분을 준다28, 지나간 슬픔은 제 2질서의 다윈주의를, 지나간 슬픔에 반대하는 그리고 죽은 자와 패배자의 자유를 반대하는 객관적인 견유주의를 지배한다. 하지만 자유의 주제에 대한 이러한 놀랄만한 감소함으로 결국 자유의 역사 자체는 사라진다.
그리스도교는 자신의 구원의 사신가운데서 과거의 보상되지 않은 고통을 위해서 여전히 정화된 의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 이상으로 그리스도교는 정해진 자유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즉 자유는 예수의 십자가 안에 계시는 하느님에 의한 구원하는 해방에서 나온다. 이러한 해방의 역사는 우연의 지옥으로 추락을 포함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가장 빠르게 절단해야 하거나 또는 그리스도교 구원의 회상에 추가적인 보충으로서 상대화했어야 할 어떤 신화적인 유형(Topos)이 다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화적 유형은 예수의 참다운 일(Sache)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에서 그리스도교 구원론에서 모든 묵시적인 가치를 제거한다. 이러한 방식에서 그것의 결정적인 자유의 의미 역시 어둡게 될 것이다. 이러한 추락 즉 “죽은 자와의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공동존재”29는 즉 구원의 역사의 원래의 해방운동을 제시한다. 구원역사 없는 모든 자유의 역사는 자연의 역사에로 되돌아가 배치되고 그 안에서 정지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의 신화로서 자유의 종말역사!(Johann Baptist Metz, in: Glaube in Geschichte und Gesellsch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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