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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선생님
 


  황호용(2005-12-28 19:27:26, Hit : 7609, Vote : 1289
 교회개혁은 교회집착입니다

                                                          교회개혁은 교회집착입니다.

                                              - 이제는 교회 그만하고 하느님나라 기다릴 때입니다 -

     * 계속되는 교회 개혁 주장은 교회에 대한 집착일 뿐입니다.

     요즘 기독교계에서는 많은 신도와 교역자들이 교회개혁 논의에 참여하여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개혁하지 않으면 교회가 살아남지 못한다고 걱정하는 데는 모두 한 목소리입니다. 왜들 그렇게 교회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논리적으로 교회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고 하느님 나라 이전 단계의 존재이며,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가 오면 그것으로 교회는 그 사명을 다하고 교회는 물론 종교까지도 없어지는 것인데 언제까지 하느님 나라 이전 단계에 머물러서 교회만 하고 있으려는지 또 교회를 개혁하자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느님 나라가 빨리 오면 그것은 교회 역할이 그만큼 빨리 끝나서 좋을 것인데, 하느님 나라는 제쳐놓고 2천년 동안이나 교회만 해왔으면서 아직도 모자라서 교회를 개혁하자고 합니다.
     한 때 교회가 곧 하느님 나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는데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2천년 교회 역사를 돌아본다면 아무리 개혁을 거듭해도 교회는 교회일 뿐이지 결코 교회가 하느님 나라 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아무리 선한 사업을 하더라도 교회는 교회일 뿐이지 교회가 하느님 나라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개혁하려는 것은 하느님 나라를 소망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시대를 연장시키려는 즉 교회에 대한 집착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 교회집착은 교회사랑 교회충성

     그리고 개혁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한 번 짚어 봅시다.
개혁의 백과사전적 의미는“기존의 사회제도와 정치체제의 본질적 요소는 그대로 유지한 채 사회의 발전에 적합하도록 특정한 몇 가지 모순된 제도나 행동 및 조건을 한정적으로 변혁 또는 개조함으로써 기존 체제의 붕괴를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개혁 역시 “교회의 본질적 요소는 그대로 유지한 채 사회 발전에 적합하도록 모순된 제도나 신앙생활에 관한 것들을 변혁함으로써 교회의 소멸을 방지해 보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회개혁을 하지 않으면 교회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걱정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니 교회개혁이라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위한 어떤 실천이 아니라 부끄럽게도 교회가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것이랍니다.
     물론 교회 자체가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것이므로 교회개혁은 자연히 하느님 나라를 위한 실천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는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개혁 논의자들의 속내는 교회의 생존 문제가 교회개혁 논의의 주된 동기임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끄럽기도 한 교회개혁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교회사랑 내지는 교회 충성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교회 사랑 교회 충성심 역시 하느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를 건설해야한다는 준비론적 당위성이 함축되어 있겠지만, 이 준비론이라는 것이 2천년동안이나 계속되었다면 그것은 준비론이 아닌 본론인 것입니다.

     * 교회개혁에  집착하면 '적그리스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교회사랑 교회 충성심이 더 심화되면, 어떠한 새로운 사회가 도래하더라도 교회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교회 절대화로까지 발전하게 되며, 이러한 교회 절대화는 또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심화되어서 나중에는 아마 '새 하늘 새 땅이 펼쳐지더라도 여전히 교회는 존재해야한다'고 고집하게 되는 소위 교회 신앙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교회 신앙은 바로 신전 신앙과 같은 것이므로 필연 하느님 나라 신앙을 훼손하는 반(anti-)그리스도교신앙이 되기에 십상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사랑 교회 충성심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칫 반그리스도교신앙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 오심에 대한 믿음이요 예수의 복음도 그 핵심은 하느님 나라 오심이며, 교회는 이러한 믿음을 놓치지 않고 믿음을 지키기 위한 공동체적 노력의 하나일 뿐인데 교회에 집착하여 교회가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이는 사이비 신앙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만약에 하느님 나라 오는데 행여나 교회가 걸림돌이 된다면 교회는 포기되어야할 것이며, 만약에 하느님 나라 오는데 교회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하느님 나라 신앙을 거스르는 것이 되고 그것은 또 더 나아가 예수의 복음을 거스르는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개혁에 너무 집착하다가는 자칫 예수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반 그리스도(Anti-Christ=적스리스도)”가 될 위험도 있는 것입니다.

     * 16세기 기독교개혁은 교회모방일 뿐...

     그리고 개혁 그 자체에 대해서도 한 가지 짚어볼 것이 있습니다.
즉 정치개혁, 제도개혁 등 일반적으로 개혁이라고 하면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것들은 더 이상 따로 존재하지 않고 없어지든가 개혁된 새로운 양태로 존재하든가 하는 것입니다. 종교 역시 개혁되었다고 한다면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것들은 더 이상 따로 존재하지 않고 개혁된 새로운 양태로 바뀌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종교개혁이라고 부르고 있는 16세기의 그 종교개혁이 종교를 개혁한 것이라면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교리상의 문제들이나 교회제도나 신앙 양태들이 지금은 없어진 것도 있고 나머지는 개혁되어 나타난 새로운 교리나 새로운 제도나 새로운 신앙 양태로 바뀌어 있어서 개혁의 대상이었던 것들은 더 이상 지구상에 따로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16세기 기독교의 종교개혁에서는 개혁의 대상이었던 구 종교의 모든 것이 개혁되지 않은 채 지금도 여전히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위세당당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잠깐 혼란하게 됩니다.
     결국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개혁의 대상이 되는 구교를 개혁해서 새롭게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 구교를 그대로 두고 그것을 모방해서 또 하나의 종교(개신교)를 만들어낸 결과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종교개혁이 아니라 종교모방이었던 것입니다.
     유대교를 개혁해서 그리스도교(구교)가 나왔지만 유대교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고 구교를 개혁해서 개신교가 나왔지만 구교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습니다. 아마 오늘의 개신교를 개혁해서 새로운 종교가 나온다고 해도 오늘의 개신교 역시 세세토록 건재할 것입니다. 이처럼 종교는 개혁되는 것이 아니라 모방될 뿐입니다.

     * 교회에 집착하면 교회와 하느님 나라의 혼동 초래합니다.

     그러면 한 번 봅시다. 예수의 가르침대로 유대교의 신전신앙을 부정하고 나온 그리스도교(구교)의 신앙이 유대교의 신전신앙과 얼마나 다르며, 그 구교의 신앙을 다시 개혁해서 나온 개신교의 신앙은 또 구교의 신전신앙과 얼마나 다르다는 것입니까? 신전신앙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지 않습니까?
     개신교의 어느 교파는 예배당을 “성전(신전과 똑같은 말)”로 공식화하고 있고 이제는 성전이라는 말이 개신교에서 거의 보편화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개신교와 구교가 과연 신전종교를 개혁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처럼 개혁된 개신교와 개혁되지 않고 그대로 존속하고 있는 구교와 무엇이 얼마나 다릅니까?
     성모 [마리아]와 그냥 [마리아]가 무엇이 다르며, 성찬 중심의 예배와 설교 중심의 예배가 얼마나 다르며, 목사와 신부, 감독(총회장)과 교황 등, 무엇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입니까? 그런 차이점들이 구원의 여부를 결정할만한 차이입니까? 정경마저도 똑 같은 두 종교를 서로 다른 종교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풀잎 먹는 염소와 신문지 먹는 염소가 얼마나 다르다는 것입니까? 이러함에도 개신교는 과연 구교를 개혁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결국 종교는 개혁되는 것이 아니라 모방되고 변형될 뿐입니다.
하물며 종교의 하위 범주에 속한 교회의 개혁이겠습니까?
교회도 개혁되는 것이 아니라 모방되고 변형될 뿐일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개혁을 거듭하여도 교회는 여전히 교회일 뿐이지 교회가 개혁되어 하느님나라는 되는 것도 아닐 진데 교회개혁이 마치 하느님나라오심이기라도 한 것처럼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그것은 교회의 영원을 위한 교회 절대화 작업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 절대화에 진력하다가 종래에는 교회와 하느님 나라를 혼동하기도 하고 교회를 하느님 나라로 착각하기도 하고 더 심해지면 숫제 교회와 하느님 나라를 일치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당이 교회로 되기도 하고 신전(성전)으로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 하느님나라 외쳤으면 그 다음 수순은 순교

     성자로 일컫는 예수가 하느님 나라가 온다고 외치고는 곧 바로 순교의 길을 가셨듯이 교회도 하느님 나라 온다고 그만큼 외쳤으면 이제는 순교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랬다고 해서 하느님 나라 오심을 지연시키면서까지 외치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역할이 인간의 구원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결정할 하느님 나라 오심을 외치는 것일 뿐일 진데 그 외침을 수 천 년 동안이나 반복하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예수가,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하느님 나라 온다는 것을 외치면서 계속해서 자기의 시대를 이어나갔다면, 그가 아무리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으며 기적을 베풀었다고 해도 그는 하느님 아들이기는커녕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며 하느님 나라 온다는 말은 고함소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스스로 자기 존재를 성자가 세우신 것이라고 한껏 높이고 자랑하면서 하느님 나라가 온다고 1백년, 2백년…, 1천년, 2천년을 외쳐왔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아직 몇 백 년, 몇 천 년을 더 외치려는지 교회를 또 개혁해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가 외치는 소리는 복음이기는커녕 고함소리도 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교회가 과연 이 문명사회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어야하는가 의심마저 받고 있습니다.
     진정 하느님 나라가 온다고 외쳤으면 하느님 나라가 올 공간을 비워두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하느님 나라가 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든지 더 나아가 하느님 나라 올 때까지 하느님의 역할까지 대신한다든지 해서는 더욱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 나라는 점점 더 지연될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순교하지 않고 자기시대를 연장시켜나갔다면 성자(예수)의 시대가 상당히 지연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세례요한이 순교함으로써 그 빈 공간으로 성자의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자 또한 십자가에서 순교하지 않고 후계자를 세워 대물림까지 해가며 자기의 시대를 연장했다면 아마 교회는 탄생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 역시 계속해서 자기 시대를 연장해 나간다면 하느님 나라는 더욱 지연될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순교하듯이, 성자가 순교하듯이, 교회도 순교해야합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것입니다.

     * 교회개혁 논의 그만하고 교회의 순교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회개혁 논의를 그만 두고 교회의 순교를 준비해야합니다. 그리하여 무교회의 공간을 통해 하느님 나라 오기를 소원해야합니다.
     교회 없는 침묵의 세상을 악마가 점령할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울시를 하느님께 바치고 포항시를 거룩하게 하는 등 마치 하느님 나라는 마왕처럼 어느 도시를 점령하거나 상납 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교회가 점령해 놓은 땅으로 입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교회의 공간으로 임재하실 것입니다.
     교회가 우뚝 서서 위세당당하게 세상을 잘 다스리고 있는 곳에 하느님 나라가 왜 오겠습니까? 하느님 나라는 교회마저 순교한 그 텅 빈 공간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늘진 죽음의 땅”(마태4:16)으로 성자가 오셨듯이 말입니다.
     성자는 순교하려고 오셨다고 합니다. 성자는 당신의 시대를 열어 세상을 점령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 죄를 지고 순교하여 하느님 나라를 오게 하려고 순교의 제물 어린 양으로 이 땅으로 오신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 역시 이 세상을 점령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나라 오시는“첩경을 평탄케(빠른 길을 더욱 평탄하게)”(마가복음1장3절)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나라 오시는 첩경을 평탄케 하려는 성령의 역사일 뿐이지 반석위에 든든히 세워진 콘크리트 신전(성전)이 아닙니다.
     성자가 순교하는 것은 무능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순교하는 것은 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오는 첩경을 평탄케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살아남기 위하여 몸부림치기 보다는 교회의 순교를 결단해야 합니다. 구차한 변명으로 교회에 집착하다가 순교의 기회마저 놓치는 참담한 꼴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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